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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별이 되어 빛나리: Chapter 451 - Chapter 460

642 Chapters

제451화

산뜻하고 깔끔한 바디워시 향이 은은하게 피어올라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처음으로 후회가 밀려왔다.만약 내가 건강한 몸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다면 그녀에게 대시했을 텐데...아쉽게도 죽음을 앞두고 있어 그녀에게 미래를 약속할 자격조차 없었다.8월 10일, 맑음.우연히 묘원 근처에서 해바라기밭을 발견했다. 금빛으로 물든 해바라기 꽃이 만개했다.오늘 그녀를 데리고 그곳에 갔더니 드물게 환한 미소를 지었다.그녀의 웃는 모습은 정말 예뻤다. 햇살처럼 눈부신 미소랄까?그녀는 몰래 나를 사진으로 담기도 했는데 나름 마음에 들었다.이건 아마 내 인생의 마지막 사진이 될 듯싶었다.그녀의 찬란한 미소를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서글퍼졌다.바보야, 내가 과연 네 곁을 얼마나 더 지켜줄 수 있을까?8월 15일, 맑음.병세가 다시 악화되어 이제는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졌다.의사는 입원을 권했지만 나는 마지막 힘을 다해 그녀를 한 번 더 만나러 갔다.그리고 그녀에게 잠시 먼 길을 다녀와야 한다고, 인연이 닿으면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말했다.돌아서는 순간, 나는... 이것이 영원한 작별임을 알고 있었다.그녀가 내 이름을 물었지만, 그저 성이 이 씨라고 알려주었다.곧 죽을 사람이라 굳이 그녀에게 기억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나 또한 그녀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 묘비에 있는 사진을 보아 아빠가 송 씨니 그녀도 송 씨일 거라 짐작했다.겨우 힘을 내 차에 올랐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이미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슬슬 이 세상과 인연을 끊기 싫어졌다.8월 18일, 맑음.병실 침대에 누워서 펜을 들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곧 이 세상을 떠나겠지...이원 그룹은 강우가 맡아줄 것이다.비록 예전에는 좀 한량처럼 굴었지만 내 병세가 악화된 걸 알고는 열심히 회사 경영을 배우고 있다.강우가 있는 한 이원 그룹은 괜찮을 것이다.할머니도 강우가 잘 보살펴 줄 테니 걱정할 것 없다.오직 그녀만 자꾸 마음에 걸린다.혼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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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2화

‘내가 눈이 멀었지. 개 같은 편견 때문에 하나를 이렇게까지 오해하다니.’송태리라는 짝퉁을 위해 송하나에게 수도 없이 상처를 주었다.거대한 후회가 해일처럼 밀려와 순식간에 그를 완전히 집어삼켰다.이강우는 형이 목숨으로 남긴 마지막 유언을 저버렸을 뿐만 아니라 송하나에게 가장 치명적인 상처를 줘버렸다.그녀 홀로 수많은 서러운 나날을 보내게 했고 기댈 곳 하나 없어서 두려움에 떠는 것조차 냉정하게 외면했다...이제 그 모든 것들이 가장 날카로운 부메랑이 되어 휘몰아치는 바람과 함께 이강우의 심장에 박혔다.고통이 후폭풍이 되어 질식할 것만 같았다.그는 천천히 몸을 숙이고 가죽 일기장에 손끝이 닿은 순간 걷잡을 수 없는 미세한 떨림을 느꼈다.상업계에서 호령하던, 늘 냉정함을 유지하던 이 남자는 지금 통제할 수도 없이 눈가가 벌겋게 충혈되었다.그는 두 눈을 질끈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목구멍을 꽉 메어오는 답답함을 억지로 삼키려 애썼다.생리적인 불편함이 밀려왔고 속이 뒤틀려 눈앞이 핑 돌았다.‘내가 늦었어. 모든 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어.’몇 분 후 다시 눈을 떴을 때, 덧없고 여린 감정들은 모조리 짓눌려 사라진 뒤였다. 그 자리에는 거의 냉혹에 가까운 선명한 이성과 단호한 결심만이 대신했다.이강우는 몸을 일으켰다. 격한 감정을 억누르느라 동작이 다소 뻣뻣했지만 내딛는 걸음마다 놀라울 정도로 묵직하고 흔들림이 없었다.휴대폰를 꺼내 들고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덤덤한 목소리에 폭풍 전야의 압박감이 실려 있었다.“송태리 명의로 된, 그리고 이원 그룹 연관 명의로 송태리에게 준 모든 자산을 한 치의 여지도 없이 즉시 동결하고 회수해. 3시간 내로 송태리를 송씨 저택에서 내쫓고 지난번 병원 사건 피해자 가족들에게 먼저 연락드려. 우리 회사 법무팀은 전면적으로 협조해서 송태리를 상대로 형사 소송을 제기하도록 해!”전화 너머의 비서는 적잖게 놀란 눈치였다. 지금 이건 송태리를 완전히 매장하려는 조치였다.그는 감히 더 묻지 못하고 곧바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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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3화

“용건이 뭐야? 이따가 또 약속이 있어서 시간이 얼마 안 남았거든.”이강우도 돌려 말하지 않고 깊은 눈빛으로 차정원을 바라보며 본론에 들어갔다.“송종현이 송하나 부모님을 살해한 사건은 지금 진행 상황이 어떻게 됐지? 증거들은 확실하게 갖춰졌어?”차정원은 흠칫 놀랐으나 이내 입가에 비웃음이 번졌다.“뭐지? 그 집안 사람들을 위해서 변호사 역할이라도 자처하는 거야? 아니면 사건이 너무 커져서 이 대표가 애지중지하던 분께 피해가 갈까 봐 염려하는 거야?”그는 일부러 마지막 몇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뾰족한 가시가 되어 이강우의 정곡을 콕콕 찔러댔다.이강우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지만 예상했던 분노는 터져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눈가에 선명한 혐오감이 스쳤다.그의 눈빛에는 모질고도 잔혹한 기세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는 한 글자씩 힘을 주어 말했다.“아니. 그건 오해야. 이 사건에서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얘기해. 이원 그룹의 모든 법률 자원, 인맥, 자금 지원까지도 아끼지 않을게. 송종현, 김지영이 가장 무거운 형량을 받고 영원히 재기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게 내 목표야.”180도 달라진 남자의 태도와 독기 어린 눈빛을 보고 있자니 차정원은 순간 온몸이 얼어붙었다.지난번에 김지영과 송종현이 구속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이강우는 인맥을 동원하고 압력을 행사하면서 그들을 간신히 빼냈는데...송씨 가문을 감싸는 태도가 얼마나 확고하고 결연한지는 아직도 눈앞에 생생할 지경인데...지금은 왜 또 그들을 지옥 끝까지 밀어 넣고 영원히 고개를 들지 못하길 바라는 걸까?극적인 변화의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차정원은 마음속의 의혹을 억누르고 여전히 신중하면서도 조롱이 섞인 어조로 말했다.“이 대표 태도 변화가 너무 드라마틱한 거 아니야? 송태리한테 질려서 그 부모까지도 버려지는 패가 된 건가?”이토록 무례한 발언은 이강우의 자존심을 긁기에 충분했다.하지만 그는 테이블 밑으로 주먹을 꽉 쥐어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지만, 겉으론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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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4화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이강우를 바라보며 더할 나위 없이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이강우 씨!”아예 성까지 붙여서 말하는 이 남자!“네가 뭔데 하나를 대신해서 고맙다고 말하는 거야? 난 오직 내 의지대로 송하나라는 여자를 위해서 이렇게 해왔어.”잠시 머뭇거리다가 얼음처럼 차가운 말투로 계속 쏘아붙였다.“이강우 너랑은 아무 상관없다는 뜻이야!”말을 마친 차정원은 더는 머무르지 않고 성큼성큼 문밖을 나섰다.이강우는 제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방금 차정원이 내뱉은 말들은 한없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만신창이가 된 그의 심장을 마구 난도질했다.‘그러게... 내가 뭔데?’가장 극심한 상처를 준 당사자가 대체 무슨 낯짝으로 송하나를 지켜준 차정원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있는 걸까?테이블 위의 커피는 이미 식어버렸다.창밖의 햇살은 여전히 눈부셨지만, 이강우는 마치 시간 속에 버려진 외딴섬처럼 그곳에 멍하니 앉아서 짙은 후회와 적막에 잠겨 있었다.그 시각, 송씨 저택.송태리는 거실을 서성이며 무심코 손바닥을 잡아 뜯었다.이강우의 갑작스러운 심문과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에 그녀는 마치 화살에 놀란 새처럼 안절부절못했다.이강우가 베푼 모든 관용과 보호는 단지 돌아가신 형님이 임종 직전에 당부한 여자가 송태리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이 거짓말이 탄로 나는 순간...그녀는 자신에게 닥칠 일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안 돼. 당장 여기를 떠나야 해!”이 생각이 미친 듯이 머릿속을 맴돌았다.어차피 카드에는 이강우가 준 거액의 예금이 남아 있으니 평생 먹고 놀아도 남아돈다.경찰에 연행된 아빠라면...더 이상 돌볼 겨를도 없었다. 지금은 스스로를 지켜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송태리는 핸드백을 들고 허둥지둥 집에서 나와 평소에 자주 가던 은행으로 향했다.은행 지점장이 그녀를 보자마자 자본주의 미소를 지으며 곧장 VIP실로 안내했다.“태리 씨, 정말 오랜만이네요. 오늘은 무슨 업무를 보러 오셨어요?”정성스레 준비된 커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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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5화

아무리 못해도 몇억은 건질 수 있을 터였다.송태리는 즉시 차를 몰아 송씨 저택으로 향했다.하지만 대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눈앞의 광경에 피가 거꾸로 솟는 것만 같았다.낯선 일꾼 몇 명이 그녀의 개인 소지품들을 쓰레기 버리듯 거칠게 대문 밖 잔디밭에 내던지고 있었다.평소 아끼던 한정판 핸드백은 진흙탕에 굴러떨어졌고 값비싼 드레스는 마구 짓밟혔으며 화장대 위의 화장품들은 산산조각이 났다.어디 그뿐일까. 송종현, 김지영의 물건들까지 난장판으로 흩어져 있었다.“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그만두지 못해?”송태리는 고함을 지르며 앞으로 달려가 일꾼이 막 던지려던 여행 가방을 사정없이 붙잡았다.일꾼이 귀찮다는 듯 그녀를 밀쳤다.“방해하지 말고 비켜! 우린 그저 분부대로 일하는 거야.”“분부? 누가 시켰는데?”송태리가 분노로 온몸을 떨며 일꾼의 코앞에 대고 소리쳤다.“날강도 같은 것들! 남의 집에 무단 침입해서 재물을 훼손하는 건 엄연한 범죄 행위야. 경찰에 신고해서 너희들 싹 다 잡아넣고 말 거야!”그녀가 휴대폰을 꺼내 떨리는 손으로 112에 전화를 걸려던 찰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다들 빨리빨리 움직여요. 이 대표님께서 보고를 기다리고 계시니.”송태리가 화들짝 놀라서 뒤돌아보니 이강우의 비서가 한창 일꾼들을 재촉하고 있었다.순간 그녀는 사색이 되었다.“비서님? 강우 씨가 이 사람들 보냈다고요? 여기 우리 집이에요. 뭔데 함부로 남의 집에 무단침입해요?”비서도 그녀를 발견하고 겉으로는 예의 바른 미소를 지었지만 웃음 속에 냉랭한 기운이 잔뜩 담겨 있었다.“송태리 씨, 이 별장이 누구 것인지는 본인이 더 잘 알 거라 믿습니다. 대표님은 단지 원주인에게 돌려주고 계실 뿐이에요.”날벼락 같은 그 한 마디에 송태리는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걸음을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서다가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이강우가 정말 이렇게 인정사정없이 굴 줄은 몰랐다.은행카드 동결은 물론 7년을 살았던 집에서 내쫓으며 마지막 남은 체면마저 짓밟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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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6화

이강우는 테이블 위에 놓인 열쇠와 부동산 등기부 등본을 응시했다. 금속 열쇠 뭉치가 조명 아래서 차가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그는 한참 침묵하다가 마침내 손을 뻗어 열쇠를 챙겨 넣었다.“차 준비해.”반 시간 후, 차는 송하나의 별장 앞에 소리 없이 멈춰 섰다.이강우는 차 안에 앉아 조수석에 놓인 서류 봉투에 시선을 고정했다.이 안에는 7년 전부터 송하나에게 속해야 할 모든 것들이 담겨 있다.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예상대로 즉시 끊어졌다.잠시 고민에 잠겨 있다가 문자를 보냈다.[집 앞이야. 물건 줄 거 있어.]별장 안에서 송하나는 한창 푹신한 카펫 위에 앉아 뭉치를 쓰다듬고 있었다.휴대폰 화면이 밝아지고 [이강우]라는 이름 석 자가 뜨자 그녀는 기분이 확 잡쳐서 휴대폰을 뒤집어놓고 일부러 무시해버렸다.이강우는 아무 반응 없는 전화를 바라보며 눈빛이 점점 더 짙어졌다.차 문을 열고 끝내 별장 문 앞으로 다가섰다.안에서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오자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더니 곧이어 집 안의 조명이 전부 꺼졌다.“하나야, 집에 있는 거 알아.”남자는 잠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자고 있어.”안에서 그녀의 싸늘한 대답이 돌아왔다.선명하게 울리는 잠금장치 소리는 이강우의 머리 위에 찬물을 끼얹는 것만 같았다.그는 허공에 손이 붕 뜬 채 가슴이 옥죄이고 답답해졌다.송하나가 일부러 이러는 걸 잘 안다. 이제는 얼굴조차 보고 싶지 않다는 뜻인가?이강우는 힘없이 차가운 벽에 등을 기댔다. 심장이 무언가에 세게 움켜잡힌 듯 욱신거렸다.하지만 이 모든 건 그가 자초한 일이고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고 있을 뿐이다.먼저 상처를 준 건 이강우이니까.그는 한 발짝도 떠나지 않고 계속 문밖에 서 있었다.밤이 깊어지고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에 담배를 한 대 물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붉은 불꽃이 희미하게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했다.한 대, 또 한 대, 쓰레기통에 쌓인 담배꽁초가 지금 그의 황량한 심경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다음 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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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7화

“아니면 나더러 송종현 놓아주라고 이 저택까지 내세우는 거예요?”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그런 목적이라면 단언컨대 불가능해요!”“그런 거 아니야.”송하나의 오해가 그의 가슴을 마구 후벼 팠다.“마땅히 네 것이어야 할 것들을 되돌려주고 싶었을 뿐이야.”남자의 이유 없는 도움을 선뜻 믿을 그녀가 아니었다. 송하나는 경계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난 송태리한테 이성의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어.”이강우가 어렵게 설명했다.“다 우리 형 때문이야. 형이 임종 직전에 나한테 한 소녀를 돌보라고 부탁했는데 그 아이가 송태리인 줄 알고 갖은 방식으로 감싸고 방임했어. 그러다가 어제서야 알게 됐지. 형이 내게 부탁한 사람은 바로 너였더라.”송하나의 얼굴에 띤 분노와 야유가 순식간에 굳어버렸다.그녀는 멍하니 이강우를 바라보며 동공이 미세하게 떨렸다.‘하준 씨가 임종 직전에 이강우한테 나를 잘 돌봐주라고 부탁했다고?’이 소식은 마치 거대한 바위가 그녀의 고요했던 마음에 던져지듯 걷잡을 수 없는 파도를 일으켰다.햇살처럼 따뜻하고 자상하던 그 남자,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하준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송하나를 생각해주고 있었다.이강우는 그녀가 넋 놓은 틈을 타서 후회와 간절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하나야, 미안해... 내가 어리석었고 내가 개자식이야! 바보 멍청이라서 네 마음을 너무 아프게 했어... 이제 와서 이런 말이 무슨 소용이겠냐마는 하준 형을 봐서라도 내게 속죄할 기회를 주면 안 되겠니?”그는 지금 극도로 자세를 낮추고 있었다.한없이 오만하던 이원 그룹 총수가 누군가에게 이토록 굽신거리며 애원해본 적이 있을까?송하나는 충격에서 빠져나와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후회와 원망에 휩싸여서 초라한 몰골이 된 이 남자를 바라보며 마음속에서 차오르는 복잡한 심경은 말로 이루 형용할 수가 없었다.이하준에 대한 그리움과 감사함, 과거의 비극에 대한 안타까움까지...다만 이강우에 대해서는?그가 자신이 마음속에 그리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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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8화

“네.”송하나의 대답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이혼이야말로 강우 씨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이에요.”이강우는 긴 침묵에 빠졌다. 공기가 얼어붙은 듯했고 매 순간이 고문처럼 느껴졌다.송하나는 그가 번복할 줄 알았다. 늘 그랬듯 강압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이 실체가 없는 결혼 생활에 가둬 넣을까 봐 내심 걱정했다.이강우는 끓어오르는 고통과 애원을 겨우 삼키고 부서질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고개를 들자 그의 눈동자에는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난 뒤의 황량함만이 남아 있었다.“네 뜻대로 할게. 널 위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겠지 아마도... 비서더러 시간 조율하라고 할게.”송하나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격하게 분노하고 끈질기게 집착할 줄 알았지만 정작 남자는 너무나도 쿨하게 손을 놓아주었다.이 뜻밖의 반응은 곧바로 경계심으로 바뀌었다.혹시 시간을 벌기 위한 술수가 아닐까? 뒤로 물러서는 척하며 공격하려는 계략이 아닐까? 그녀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 당장 이혼 수속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다급하면서도 결연한 의지가 묻어났다. 어떤 협상의 여지도 주지 않았다.“지금 바로 가정법원으로 가요.”이강우의 몸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왜 이렇게까지 서두르는 걸까?단 한 순간의 여유조차 주지 않고 당장이라도 그의 이름을 자신의 삶에서 영원히 도려내고 싶어 하다니.만신창이가 된 심장이 다시 한번 거세게 짓밟혀서 질식할 것 같은 고통이 차올랐다.남자의 눈가에 훅 스쳐 지나가는 어둠을 포착한 송하나는 좀전의 불안감이 또다시 피어올랐다.그녀는 가장 모진 말로 이강우를 떠보며 자극했다.“왜 그러세요? 아까부터 말끝마다 보상해주고 싶다고 하더니 그냥 나를 달래기 위한 수작이었어요?”이강우가 고개를 들었다. 입가에는 씁쓸한 미소가 걸렸고 눈동자는 이미 빛을 잃은 지 오래였다.“알았어...”그는 심각하게 잠긴 목소리로 재차 대답했다.“비서에게 이혼 서류 준비시킬게.”“아니요. 그럴 필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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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9화

가는 내내, 차는 거의 멈춰선 듯 느린 속도로 움직였다.창밖의 풍경은 유유히 흘러갔지만, 이강우의 마음은 심연으로 가라앉았다.과거에는 아무리 관계가 틀어졌어도 혼인신고서라는 종이 한 장이 보이지 않는 끈처럼 둘 사이를 단단히 묶어두었는데 이제 이혼하면 그 끈도 완전히 잘려나가 송하나와는 더 이상 아무런 인연이 없게 된다.가정법원 입구에서 비서가 한참 기다리고 있었다.차에서 내리는 두 사람을 보더니 비서는 재빨리 다가와 서류를 공손하게 건넸다.“대표님, 요구하신 대로 서류를 작성했습니다.”이강우는 서류를 받아 빠르게 훑어보더니 태연하게 송하나에게 건넸다.“확인해 보고 문제없으면 서명해.”송하나는 빠르게 훑어보다가 [재산 분할] 항목 아래의 천문학적인 숫자와 빼곡한 자산 목록에 닿았을 때 미간이 확 구겨졌다.현금, 전 세계 여러 곳의 부동산, 회사 주식, 펀드...심지어 개인 소유의 섬까지 있었다.4년이라는 결혼 생활로 이렇게 과분한 것들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말했잖아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니까요.”그녀는 차가운 어조로 거듭 강조했다.“알아.”다만 이강우는 결연한 눈길로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이건 나의 보상이자... 하준 형이 너에게 해주고 싶었던 보장이야. 이런 일에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사인해.”“보장이요?”송하나는 냉소를 날리고 싶었다.하지만 남자의 흔들림 없는 눈빛과 곧 얻게 될 자유를 생각하니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서명을 했다. 요구한 적도 없는 엄청난 액수의 보상 합의서에 자신의 이름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펜촉이 종이를 가로지르는 소리는 간결하고 명료했다. 마치 두 사람 사이의 마지막 인연을 끊어내는 것처럼 말이다.직원이 두 사람에게 형식적인 질문을 던졌다.“두 분 모두 자발적으로 이혼하시는 것이 맞습니까?”“네.”송하나는 더할 나위 없이 또렷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대답했다. 미련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이에 직원이 이강우를 바라보았다.그는 침묵했고 이 순간 공기가 다 얼어붙을 것 같았다.송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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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0화

이강우는 말없이 차 옆으로 걸어갔다. 마디가 선명한 손으로 문고리를 잡고 다시 그녀를 위해 차 문을 열어주었다.“어디 가? 데려다줄게.”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있는 듯한 잠긴 목소리... 하지만 송하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간결하게 대답했다.“아니요, 괜찮아요.”이어서 손을 들고 근처의 길목을 가리켰다.“택시 타고 가면 돼요. 대표님, 약속하신 대로 한 달 뒤에 꼭 시간 맞춰서 이혼 증명서 받으러 와요.”정중하면서도 딱딱한 말투는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담벼락을 만들어 깔끔하게 선을 그어버렸다.이강우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문고리를 쥐고 있던 손가락 마디가 너무 힘을 준 나머지 하얗게 질렸다.미련 없이 떠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더는 붙잡지 않았다.그렇게 송하나는 이강우의 세상에서 한 걸음씩 서서히 사라져갔다.남자는 훤칠한 몸매에 넋이 나간 것처럼 제자리에 멍하니 서서 송하나의 모습이 시야의 끝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고 있었다.어느덧 시야에는 끊임없이 오가는 자동차들과 낯선 얼굴들만 남았다. 그제야 이강우도 비로소 힘없이 뒤로 물러나 차가운 차 문에 쿵 하고 기댔다.심장에서 전해져 오는 둔탁한 통증이 온몸으로 퍼져나가 제대로 서 있기도 위태로워 보였다.먼발치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비서가 깜짝 놀라 황급히 달려왔다.이강우의 창백한 얼굴과 공허한 눈빛을 보고 있자니 덜컥 겁이 났다. 비서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대표님... 괜찮으세요? 회사로 돌아갈까요 아니면...”이강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짙은 속눈썹이 눈 밑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세상의 모든 빛을 차단하는 듯했다.그는 겨우 침을 삼키고 부서질 듯 쉬어버린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로운이한테로 가.”바.이강우는 홀로 룸에 앉아 잔 속에 담긴 독한 술을 묵묵히 들이켰다.바는 아직 영업시간이 아니지만, 이강우의 전화를 받은 최로운이 급히 사람을 시켜 문을 열게 했다.잠시 후 최로운이 헝클어진 머리에 몽롱한 눈으로 위층에서 내려오며 투덜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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