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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별이 되어 빛나리: Chapter 521 - Chapter 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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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1화

단발머리 여학생이 콧방귀를 뀌며 비웃었다.“콧대만 높지 실력으로 따지면 우리보다 못할걸. 저 뒤에 앉은 걸 보니 제 주제는 아는 모양이야.”안다미는 그 말을 듣더니 얼굴이 새빨개지며 울화가 치밀어올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다들 지금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이때 송하나가 재빨리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잡고서 차분하게 고개를 저었다.그녀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속눈썹이 살짝 드리워져 눈 밑에 옅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 그림자가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를 가리고 있었다.방금 그 말들이 뾰족한 가시가 되어 그녀 마음속의 가장 취약한 곳을 찔렀다.틀린 말도 아닌 게 학벌은 확실히 그녀의 약점이었다.그 해 송하나는 세계 최고 명문 대학의 전액 장학금 박사 오퍼를 스스로 포기했다.이강우와 결혼하기 위해, 행복이라 믿었던 그 결혼을 위해 학업과 커리어 모두 포기했다.물론 지난 몇 년간 배움을 멈춘 적은 없다. 혼자서 파고든 논문이며 독학으로 메운 이론들이라면 그 어떤 박사 과정 학생들보다 빽빽했을 터였다.문제는 학위라는 이름의 황금 명함도 없고 체계적으로 연구를 배운 경험도 없으니 그녀의 모든 노력이 그저 허공에 날리는 말처럼 보일 뿐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언니, 저 사람들 진짜 너무 해요!”안다미가 낮은 목소리로 분노에 떨며 말했다.“저 사람들이 한 말 중에 일부는 사실이에요.”송하나는 시선을 올리고 놀라울 정도로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난 확실히 석사 학력까지가 다예요. 장 교수님이 날 파격적으로 영입한 것도 사실이고요.”“그래도 장 교수님이 추천할 정도면 언니 능력을 인정하셨다는 거잖아요...”“능력은 말로 증명하는 게 아니죠.”송하나의 시선이 대각선 맞은편 젊고 우월감에 찬 몇몇 얼굴을 훑었다.“여기서는 오직 실험대 위의 데이터와 산출된 결과만이 스스로를 증명해줄 뿐이죠. 지금 여기서 다투는 건 장 교수님을 곤란하게 하고 우리 처지를 우스꽝스럽게 만들기만 할 뿐 아무 의미가 없어요.”당연히 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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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2화

그 남자는 태연자약하게 프로젝트 최고 의사결정을 상징하는 자리에 앉더니 손에 든 마이크를 쓱 만지작거렸다.그의 움직임은 겉보기엔 더없이 자연스럽고 여유로웠으나 그 안에는 오랜 세월 높은 자리를 지켜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은 품격과 위엄이 은근히 배어 있었다.찰나의 순간 회의실은 일제히 숨을 들이켜는 소리로 가득 찼다. 그 뒤를 이어 장내에 작은 소동이 번져 나갔다.평소엔 관심조차 없던 뒤쪽 학생들까지 입을 쩍 벌리고 못 믿겠다는 눈길로 앞자리의 남자를 바라보았다.“대박! 저분이 바로 최시훈 국장님이야? 완전 젊었잖아!”“우리 부서에서 제일 젊은 실세 국장님이셔. 뒤에 받쳐주는 라인도 엄청나고 거기에 괴물 실력이래. 정부 쪽에서 이 일을 주관하는 정책의 최고 책임자라니까. 저렇게 젊어도 저분 한마디면 이 프로젝트의 자원 배분과 향후 방향을 바로 결정할 수 있다고!”아까 송하나를 거리낌 없이 험담하던 몇몇 여학생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가 이내 수치심으로 붉게 상기되었다.그들은 꼼짝 않고 자리에 얼어붙어서 당장이라도 사라지고 싶었다.우월감에 도취하여 퍼부었던 모든 비아냥거림과 박한 농담들이 저토록 막강한 실권을 쥔 ‘최 국장’의 귀에 한 글자도 빠짐없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그 어떤 직접적인 질책보다도 더 견딜 수 없이 창피하게 만들었다.송하나 역시 멍해졌다.그녀는 순식간에 회의장의 모든 이목을 집중시킨 남자를 바라보며 충격으로 가슴이 떨렸다.이 남자는 평범한 연구원이 아니라 한참 젊은 나이에 높은 자리에 오른 분이었다.제연시, 그녀가 막 발을 들인 이 도시에 숨은 고수들이 득실거렸다.이곳의 위계와 규칙이 상상 그 이상으로 복잡하고 심오했다.전례 없는 각성이 찾아오는 순간이었다. 그 뒤편으로 자그마한 불안의 씨앗이 마음속에 조용히 피어올랐다.회의는 숙연한 분위기 속에 정식으로 시작되었다.프로젝트 소개와 주요 인사들의 축사가 흠잡을 데 없이 정석대로 이어졌다. 그러다 마침내 업무를 주관하는 기관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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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3화

진서영이 옆으로 다가오며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최시훈도 걸음을 멈추고 그녀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막 팀에 합류했는데 적응 잘하고 있어?”그의 말투는 지극히 평범해서 특별히 살갑거나 친근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하지만 진서영의 귀에는 분명 염려로 받아들여졌다.그녀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짙어지더니 반걸음 앞으로 다가서며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목소리에는 희미한 경쾌함이 섞여 있었다.“잘 적응하고 있어요. 나름 큰 도전이지만 그래도 너무 흥미로워요. 방금 듣고 있던 마지막 몇 구절이 정말 정곡을 찌르더군요. 덕분에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큰 깨우침을 얻었어요.”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화제를 더 개인적인 영역으로 돌리며 친밀하고 거리낌 없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아 참, 지난 주말에 오빠네 어머님, 아버님 뵈러 갔다가 어머님하고 차 마시면서 얘기하는데 요즘 오빠가 너무 바빠서 통 얼굴 보기가 힘들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번 주말에 집에서 조촐한 가족 모임을 열 텐데 오빠도 오실 수 있냐고 물으셨어요.”매우 홀가분한 말투지만 그 속에 담긴 무게감은 상당했다.두 집안이 대대로 친분을 쌓아온 사이임을 밝혔을 뿐 아니라 이들 둘 사이가 심상치 않음을 암시했다.한편 최시훈은 그 말을 듣고도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그의 어조는 여전히 평온했고 어떠한 감정의 변화도 읽을 수 없었다.“일단 업무 진척 상황을 봐야 하니 아직은 주말 일정을 확답하기 어려워.”그 말을 끝으로 그는 장현서에게 눈짓을 했다.“교수님, 가면서 얘기 나눕시다.”“그래요, 최 국장.”진서영은 제법 자연스럽게 옆으로 비켜 길을 터주었다. 얼굴에 띤 미소는 여전히 흠잡을 데 없이 단아했다.“그럼 두 분은 중요한 일들 먼저 보세요. 시훈 오빠, 아무리 바빠도 건강은 꼭 챙기셔야 해요.”그녀는 제자리에 서서 떠나가는 두 사람을 배웅했다. 우아하고 여유로운 자세에 익숙함과 배려가 엿보이는 눈빛까지,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회의장에 있던 일부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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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4화

회의가 끝나자 송하나는 곧장 도서관으로 향했다.그녀는 앞으로 시작될 연구 작업에 제대로 몰입하기 위해 장현서가 건넨 자료들을 최대한 빨리 소화해야 했다.한창 공부에 집중하고 있을 때, 책상 모서리에 놓아둔 휴대폰이 갑자기 진동했다.화면에는 강현에서 걸려온 낯선 번호가 떠 있었다.순간 송하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강현이라...차정원, 차설아, 안재준 일행 말고 그녀에게 연락할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그냥 무시하려 했지만 휴대폰이 끈질기게 진동했다.마지못해 복도 구석으로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송하나 씨, 저 최로운이에요.”전화 너머에서 들려온 남자의 목소리는 평소의 장난기 가득하던 부잣집 도련님 말투를 완전히 벗어던진 상태였다.이에 송하나는 마음이 살짝 가라앉고 손끝에 저도 몰래 힘이 들어가 꽉 쥐어졌다.이강우의 절친 최로운, 그가 전화를 걸었다는 것은 목적이 뻔했다.“최로운 씨, 무슨 일이시죠?”그녀의 잔잔한 목소리에 아무런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전화 너머로 2초간 침묵이 흘렀다. 뭔가 머릿속으로 말을 정리하는 듯, 또 한편으로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스스로를 진정시키려는 몸부림 같았다.몇 초가 더 지난 후에야 최로운이 다시 입을 열었는데 목소리는 아까보다 훨씬 더 가라앉았다.“하나 씨... 강우가 더 이상 못 버틸 것 같아요.”휴대폰을 잡은 그녀의 손이 살짝 떨렸다.어제 주은호의 전화를 받고 대충 짐작은 했지만 최로운에게 이토록 심각한 말을 직접 듣고 있자니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최로운은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계속 말을 이어갔다. 마치 오랫동안 쌓아뒀던 불안과 무력감을 토해내듯 속도가 빨라졌다.“내가 엄살 부리는 게 아니에요.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위출혈이라 응급실에서 살려내긴 했는데 애가 완전 넋이 나갔어요. 이제 폐인이나 다름없다고요! 의사 선생님 말로는 생존 의지가 전혀 없어서 회복이 너무 더디대요. 계속 이런 식이라면 이번 고비를 넘긴다 해도 몸이 완전히 망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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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5화

“저기...”송하나의 목소리는 잔뜩 메말라 있었다.“잠시 생각할 시간 좀 주세요.”“송하나 씨...”최로운이 더 말을 이으려 했다.“이만 끊을게요.”다만 송하나는 그의 말을 자르고 통화를 종료했다.제자리로 돌아왔지만 더 이상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폰 화면이 다시 켜졌고 최로운에게서 사진 몇 장이 도착해 있었다.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사진을 열어보았다.병실 안, 이강우는 두 눈을 감은 채 병상에 누워 있었다. 뺨은 깊숙이 꺼져 있었고 턱에는 수염이 지저분하게 나 있었으며 얼굴은 종잇장처럼 창백했다.뼈만 앙상하게 말라서 정장 차림의 기세등등하고 오만하던 이원 그룹 대표님 이미지와는 전혀 딴판이었다.송하나는 동공이 아찔거렸다.이혼이 이 남자에게 이토록 파괴적인 타격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굳이 이럴 필요까지 있을까?전에는 그렇게 모질게만 굴더니 대체 왜?그녀는 이해가 안 됐다. 뒤늦게 찾아온 자해에 가까운 ‘지독한 사랑’을 당최 파악할 수가 없었다.심란한 마음을 달래고 있을 때, 머릿속에 별안간 홍경자 할머니의 자애로운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할머니는 세상에서 그녀에게 따뜻한 보살핌을 준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분이다.만약 할머니께서 자신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던 손자가 초라한 몰골로 변한 걸 아시게 되면 얼마나 속상하고 걱정하실까?결국, 이 생각이 송하나의 마음을 흔들었다.그녀는 휴대폰을 꽉 쥐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복도로 나섰다.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이미 무음 설정으로 돌려놓았던 번호를 찾아냈다.강현시 병원, 최고급 VIP 병실.공기 중에는 소독약 냄새와 쉽게 가시지 않는 침울한 기운이 감돌았다.이강우는 침대 머리맡에 반쯤 기댄 채 공허한 시선으로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그는 치료와 검사에 영혼 없는 기계처럼 순순히 따랐다. 모든 행동에는 얼어붙은 듯한 마비감이 스며 있었고 삶의 의지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바로 그때, 침대 협탁에 놓인 그의 개인 휴대폰이 진동했다.“대표님,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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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6화

이강우가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그토록 익숙하지만, 이상하게도 비현실적으로 멀게 느껴지는 목소리가 다시 귓가에 닿자 그는 온몸에 보이지 않는 전류가 관통한 듯 흠칫 굳어버렸다.창백한 입술이 희미하게 벌어졌으나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거칠고 억눌린 숨소리만이 새어 나올 뿐이었다.짧은 정적 후, 그는 마침내 목구멍 깊은 곳에서 간신히 한 글자를 짜냈다.“응...”잔뜩 잠긴 목소리에는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아 생긴 뻑뻑함과 허약함이 묻어났다.그는 몇 마디 더 말하고 싶었다. 왜 갑자기 전화를 걸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모든 말이 가슴에 막혀 억누를 수 없는 마른기침으로 변하고 말았다.전화 너머의 송하나는 기침 소리를 듣고 잠시 머뭇거렸다.그녀의 말투에는 여전히 기복이 없었으나 톤이 한결 가벼워진 듯했다.“몸은 좀 괜찮아요?”간단한 물음이지만 이강우의 심장을 옥죄인 것처럼 둔탁한 통증과 함께 조여왔다.괜찮을 리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는가.그러나 그 미세한 말투의 변화는 마치 짙은 어둠을 뚫고 들어오는 한 줄기 가느다란 빛과 같았다. 볼품없이 말라붙어 버린 그의 마음속에 애처롭고도 가련한 희망이 다시금 피어오르는 순간이었다.‘하나가 지금 날 걱정해주는 거야?’“안 죽어.”이강우는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평소의 고집스러움이 묻어났지만, 지금에 와서는 지독히도 취약하게 들렸다.말을 내뱉자마자 후회가 밀려왔다.‘내가 하고픈 말은 이게 아닌데...’그는 원래 안 괜찮다고, 전혀 안 괜찮다고, 너 없이는 살 수가 없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럴 자격이 없었다.송하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는 듯했다. 그 숨결은 미약했지만, 정확히 이강우의 고막을 때렸다.“최로운 씨한테 연락이 왔어요.”그녀는 다시 차분한 말투로 돌아와 바로 핵심을 찔렀다.“사진도 다 봤어요.”이강우의 심장이 곤두박질쳤고 곧이어 부끄러움과 굴욕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그는 초라한 자신의 몰골을 송하나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울화통이 터지고 격한 짜증이 밀려왔지만 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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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7화

이토록 무너진 모습을 어떻게 그녀에게 보일 수 있을까?“그래서?”이강우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가다듬었다.“로운이 대신 나 설득하려고 전화한 거야 아니면 내가 가여워서 전화한 거야?”마지막 그 질문은 목소리가 너무 작아 잘 들리지도 않았다. 그는 가슴 깊은 곳에 열등감을 숨겨둔 채 조심스럽게 송하나를 시험해 보았다.전화 너머로 몇 초간 정적이 흘렀다.그 몇 초의 시간이 이강우에게는 몇 세기처럼 길게 느껴졌다.“둘 다 아니에요.”송하나의 목소리에 마침내 아주 희미한 파동이 생겨났다.“이미 끝난 과거 때문에 본인을 망가뜨리고 주변에서 걱정해주는 사람들까지 고통받게 하는 건 수지가 안 맞는다고 봐요. 강우 씨는 늘 이해득실에 능한 사람이었잖아요.”그녀는 과거 이강우의 ‘장점’을 들먹이면서 반문했다.이에 이강우는 멍해졌다.“그 결혼은 시작부터가 잘못 끼워진 단추였어요. 결혼 생활 내내 나를 불행하게 했고 자아를 잃게 했죠. 이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하기로 했어요. 이게 바로 내 선택이고 내가 가야 할 길이에요.”송하나의 목소리는 명료하고 단호했으며 모든 단어들이 이강우의 심장을 강타했다.“강우 씨의 선택과 강우 씨가 가야 할 길은 더 이상 나랑 연관 지으면 안 돼요. 난 이미 강우 씨 곁을 떠난 사람이잖아요. 자꾸 나한테 매달리는 건 사랑이 아니라 비겁한 행동이에요.”“너 없이 이 길을 가는 게 아무 의미 없다고 느껴진다면?”이강우는 잠긴 목소리로 마음속 가장 깊은 절망과 집착을 담아서 물었다.“그럼 의미 있는 일을 찾아 나서야죠.”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깔끔하고 단호한 대답이었다.“의미는 남이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쟁취하는 거예요. 한때 이원 그룹이라는 상업 제국을 홀로 일궈낸 사람인데 그런 추진력과 능력을 스스로를 파괴하는 데 낭비해서는 안 되죠. 진정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세요. 내가 없이도 여전히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악착같이 살아보세요. 지금처럼 병상에서 썩어가는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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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8화

“내가 없이도 여전히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악착같이 살아보세요.”이 한 마디가 그의 공허한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되감기며 마비된 신경을 구석구석 강하게 때렸다.침대 시트 위에 놓여 있던 손가락이 천천히 힘을 주며 오므라들었다.병실에는 고요함이 계속 번져 나갔다.주은호가 참지 못하고 말을 걸려는 찰나, 이강우가 마침내 움직임을 보였다.“주 비서.”목소리는 여전히 거칠었지만 좀 전보다 훨씬 또렷하게 들려왔다.“네, 대표님!”주은호는 즉시 앞으로 다가섰다.“의사 불러.”이강우는 초점 없는 시선으로 어딘가를 응시하며 나직이 말했지만, 목소리에는 거부할 수 없는 단호함이 실려 있었다.“내 치료 계획을 다시 평가하고 영양 보충 부분은 가장 적극적인 방안으로 조정해. 그리고...”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목울대를 움직였다.“재활 트레이너한테 연락해서 내일부터 재활 계획을 짜라고 해.”주은호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곧 거대한 기쁨이 밀려왔고 목소리마저 떨리기 시작했다.“알겠습니다, 대표님.”“그리고 또 하나.”이강우가 고개를 살짝 창밖으로 돌렸다.“회사에 요즘 긴급하게 처리해야 할 서류 있어?”주은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곧바로 대답했다.“긴급한 결재 건들이 몇 개 있는데 양 대표님이 계속 재촉하고 계십니다. 해외 인수합병의 추가 계약 건은 법무팀에서 대표님의 마지막 지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가져와.”이강우가 담담한 어투로 그의 말을 잘랐다.“지금 당장 많은 걸 보긴 무리이니 가장 중요한 것부터 가져와.”“네, 알겠습니다. 바로 가져오겠습니다!”주은호는 거의 달려가다시피 밖으로 나갔다.상권을 휘어잡던 카리스마 대표님이 완전히 돌아온 건 아닐지라도 최소한 죽으려던 마음은 일단 접어두었다.이러한 집착을 내려놓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송하나 씨뿐이었다.제연시 국가 연구 센터.송하나의 일상은 순식간에 바쁜 연구로 도배했다.장현서가 그녀에게 배정한 두 명의 대학원생 중 안다미 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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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9화

말을 마친 그녀가 문을 닫으려 했다.“잠깐만요?”이에 안다미가 다급해져 손으로 문을 확 막아섰다.“저희도 겨우 실험 일정에 맞춰서 왔고 한참이나 기다렸거든요! 예약제는 모두가 순서대로 쓰자는 거 아니었나요?”“규칙은 어차피 죽은 거니까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해나가야지, 안 그래?”또 다른 여학생이 안에서 걸어 나오더니 문에 기대 우월감을 뽐내며 말했다.“누가 뭘 위해 쓰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지. 진 교수님 쪽 실험이 결정적인 단계에 접어들었고 당장 다음 주 보고까지 데이터를 맞춰야 하거든. 너희 팀 사정이 매우 급한 거야?”그녀는 말을 길게 끌며 안다미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대놓고 야유를 날렸다.“송 연구원님은 이제 막 들어온 신참이라 실력도 경험도 부족하잖아. 몇 가지 실험 과정은 아직 탐색 단계일 테니 좀 늦게 하거나 다른 방법을 써도 큰 영향은 없겠지? 그 귀한 장비 시간을 낭비하진 말아 줘.”“뭐라고요?”안다미는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낭비라니요? 저희 실험도 엄청 중요하거든요.”“중요한지 아닌지는 네가 결정하는 게 아니지.”그 여학생이 차갑게 코웃음 쳤다.“됐어. 여기서 떠들지 마. 우리 실험 방해되니까. 밖에서 잠자코 기다려. 끝나는 대로 부를 테니.”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쾅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고 안에서 잠금쇠까지 채워버렸다.안다미는 굳게 닫힌 문 앞에 서서 분노로 몸을 떨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그녀는 실험실로 돌아와 자료를 정리하고 있던 송하나와 신우혁에게 울먹이는 목소리로 보고했다.“하나 언니! 저 사람들 진짜 너무 해요! 분명 우리 시간인데 진서영 박사님 학생들이 차지하고 안 비켜줘요. 심지어... 우리 실력이 부족해서 그 장비 쓰는 건 낭비니까 먼저 쓰게 하고 기다리래요! 이게 말이 돼요? 공용 자원을 왜 자기들 마음대로 독차지해요?”신우혁 역시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이처럼 노골적이고 뻔뻔한 배척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송하나는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그녀는 안다미의 붉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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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0화

전략을 수정한 후, 송하나 팀의 생활 패턴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깊은 밤, 대부분 실험실이 소등하고 문을 잠글 때도 그들의 구석진 공간만은 여전히 환하게 빛을 밝히고 있었다.안다미와 신우혁은 젊고 의욕이 넘쳤지만 송하나가 그들을 안쓰럽게 여겨 밤 10시가 되면 먼저 들어가 쉬게 하고 본인만 남아서 마지막 정리와 데이터 기록을 마치곤 했다.쉴 틈 없이 몰아치는 고강도의 연구 일정에 더해 제연시의 건조하고 찬 기후와 완전히 다른 식생활까지 겹치면서 송하나의 몸은 곧 적신호가 켜졌다.처음에는 그저 목이 칼칼하고 간질거리는 정도였으나 이내 멈추지 않는 코막힘과 희미한 두통이 이어졌다.그녀는 단순한 감기려니 생각하고 약국에서 약을 사 물과 함께 삼킨 뒤 다시 실험대 앞에 머리를 파묻었다.헐렁한 흰 가운이 가녀린 그녀의 몸에 걸쳐지자 텅 빈 듯한 느낌을 주었다.그날 밤.핵심적인 억제제 선별 실험은 반응 종점을 연속적으로 관찰해야 했기에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밤 11시가 되어야 할 듯싶었다.송하나는 녹초가 된 안다미와 신우혁을 보더니 어서 들어가 쉬라고 단호하게 밀어붙였다.텅 빈 실험실에는 오직 그녀 홀로 남았고 기기가 작동할 때 윙윙거리는 나지막한 소리만이 공간을 채웠다.그녀는 가운을 단단히 여몄지만, 발밑에서부터 한기가 올라오는 듯했고 머리도 계속 띵했다.약을 두 알 더 삼키고 강제로 정신을 집중하며 다시 실험에 몰두했다.한창 전념하고 있을 때, 훤칠한 실루엣이 소리 없이 실험실 문 앞에 나타났다.상대는 바로 최시훈이었다.낮에 이곳을 시찰하면서 잠시 이 구역의 회의실에서 짧은 회의를 했는데 끝마치고 나갈 때, 딱히 급한 건 아니지만 나름 중요한 서류 한 부를 의자에 놓아두고 가버렸다.저녁이 돼서야 그 일이 생각나 가는 길에 들른 참이었다.그 구역의 어느 한 실험실에 불이 켜져 있길래 누군가 깜빡 잊고 나갔겠거니 생각하며 이쪽으로 걸어왔는데 가까이 다가서자 실험대 앞에서 부산하게 움직이는 가녀린 실루엣이 보였다.이 시간대에도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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