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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별이 되어 빛나리: Chapter 711 - Chapter 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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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1화

안다미는 금세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며 연신 사과했다.“죄송해요, 언니! 아까 연회장 음악 소리가 너무 커서 휴대폰 진동을 못 들었어요. 언니 가시는 줄도 몰랐고요... 진짜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송하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알았어요. 그냥 장난 좀 친 거예요. 방금 그 샌님하고는 어떻게 됐어요? 둘이 춤추는 거 보니까 꽤 죽이 잘 맞던데요.”그 말에 안다미의 목소리가 한층 부드러워졌다. 수줍음을 담아서 평소보다 훨씬 느긋하게 대답하는 그녀였다.“그분 정말 괜찮은 사람 같아요. 성격도 자상하고 말도 얼마나 예쁘게 하는지.”잠시 뜸을 들이던 그녀의 목소리에 참을 수 없는 들뜸이 묻어났다.“있잖아요, 언니, 우리 글쎄 같은 고등학교 나왔더라고요! 다만 그때 그분은 3학년이고 저는 1학년이라 마주칠 일이 없어서 전혀 몰랐어요... 그런데 그분은 저를 기억하는 눈치인 거예요!”안다미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순수한 설렘에 송하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잘됐네요. 두 분 인연인가 보다.”“에이, 언니도! 아직 시작도 안 했어요. 그냥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안한 정도랄까.”안다미의 만족감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에 송하나는 부드러운 어조로 당부했다.“알죠, 마음 맞는 사람 만나기 쉽지 않은 거. 너무 늦게까지 있지 말고 집에 들어가면 꼭 연락 줘요.”“네, 언니!”안다미는 순순히 대답했다.“언니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더 방해 안 할게요!”밤늦게 집에 돌아오자 차정원이 익숙한 손길로 온수 한 잔을 건넸다.그녀에게 컵을 건넬 때 문득 뭔가 생각난 듯 나직이 물었다.“그러고 보니 연구 센터 곧 휴가 아니야?”송하나는 컵을 든 채 고개를 끄덕였다.“네. 내일 마무리하면 끝이에요.”그녀가 차정원을 바라보며 덧붙였다.“정원 씨는 언제 끝나요? 비행기 티켓 끊게.”송하나가 핸드폰을 켜려던 찰나, 차정원의 손이 다정하게 그녀의 손등을 덮었다.“비행기는 너무 번거로워.”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너 퇴원한 지 얼마 안 됐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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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2화

“먼저 들어갈게요.”송하나는 시선을 떨구며 작게 덧붙였다.“잘 자.”말을 마친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침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차정원은 그 자리에 서서 닫힌 문을 가만히 응시했다.잠시 침묵하던 그는 욕실로 들어가 찬물로 샤워를 했다.그녀가 감정적으로 자신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신체적인 접촉은 여전히 그녀를 긴장하게 만드는 모양이다.아마 지난 결혼 생활이 남긴 상처 때문일 것이다. 온전히 마음을 열기까지는 아직 두려움이 남아있겠지.차정원은 조금 더 인내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스스로 마음의 빗장을 풀고 기꺼이 자신을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려주겠다고 말이다.다음 날, 연구 센터.송하나는 마지막 실험 데이터를 정리하고 컴퓨터를 껐다. 드디어 공식적인 휴가가 시작되었다.안다미와 함께 건물 밖으로 나오자 길가에 익숙한 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차정원은 차에 기댄 채 송하나만 뚫어지라 쳐다봤다. 그 눈빛에는 숨길 수 없는 다정함이 뚝뚝 묻어났다.“와, 우리 차 변호사님 진짜 최고네요. 벌써 여기서 기다리고 계시다니!”안다미가 송하나에게 짓궂게 눈짓하며 말했다.“우리 내년에 봐요! 휴가 잘 보내시고요!”“그래요. 다미 씨도 설 연휴 잘 보내요.”송하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근데 다미 씨는 언제 돌아가요?”“저는 뭐...”안다미의 얼굴이 다시금 수줍게 붉어졌다.“그분이 오후에 퇴근이라 근처에서 좀 구경하다가 같이 점심 먹고 가려고요.”송하나가 알겠다는 듯 미소 지으며 가볍게 당부했다.“안전 유의하시고요.”그녀는 차정원에게 다가갔다.차정원은 아주 자연스럽게 송하나의 가방을 받아 들고 다정한 손길로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차는 부드럽게 출발해 강현을 향해 달려갔다.문득 차정원이 콘솔 박스에서 태블릿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보고 싶다던 영화 몇 개 담아왔어. 가는 길에 지루하면 봐.”송하나가 받아 들고 리스트를 넘겨보니 인기작들은 물론, 며칠 전 그녀가 지나가는 말로 언급했던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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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3화

“응?”차정원이 대답하며 송하나를 바라보았다. 눈빛에는 걱정과 다정함이 가득했다.“아니에요, 아무것도.”그녀는 말을 아끼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햇살이 참 좋은 날, 저 멀리 산줄기가 길게 이어지고 높은 하늘에 옅은 뭉게구름까지 아름다운 조화를 이뤘다.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온기가 가슴 속까지 퍼져 흘렀다.그저 이 남자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이 세상에 더 이상 무서울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강현에 도착했을 땐 이미 깊은 밤이었다.차가 송하나의 별장 앞에 조용히 멈췄다.차정원이 차에서 내려 그녀의 짐을 들어주었다.두 사람이 현관으로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미리 주문해둔 식사가 도착했다.송하나는 그를 붙잡아 함께 저녁을 먹었다.식탁 위에는 긴 대화 대신 따스한 정적이 감돌았다.식사를 마친 차정원은 손수 설거지까지 마쳤다.물기를 닦아낸 뒤 송하나 앞에 다가와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었다.“나 이제 갈게. 일찍 쉬어.”송하나는 현관까지 그를 배웅하며 눈가에 부드러운 기운이 머물렀다.“정원 씨도 조심히 가요. 집에 들어가면 바로 연락하고요.”“알았어.”그는 돌아서려다 말고 다시 한번 그녀를 쳐다보았다.현관 조명이 그녀의 뒤에서 쏟아지며 실루엣을 부드럽게 감쌌다.지금 이 모습은 꼭 마치 남편을 배웅하는 흔한 아내의 모습을 방불케 했다.차정원은 목울대를 울리고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더 바라보다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한편 송하나는 문가에 서서 차의 후미등이 골목 끝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고 나서야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깨끗하게 세팅된 침대에 누우니 그녀는 금세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오랜만에 느끼는 참으로 편안한 밤이었다.다음 날 오전, 송하나는 잠에서 깨자마자 들려온 노크 소리에 외투를 걸치고 문을 열었다.문틈 사이로 웬 따스하고 말랑한 온기가 확 끼쳐왔다.“우리 하나 드디어 돌아왔네!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잖아!”차설아의 명랑하고 톡 쏘는 목소리가 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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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4화

송하나는 문득 용기를 내보고 싶어졌다. 마침내 한 걸음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기로 마음먹었다.차설아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한층 진지해졌다.“설아야, 너희 큰아버님, 큰어머님은 평소에 뭘 좋아하셔? 선물을 좀 준비해야지, 빈손으로 갈 순 없잖아.”이전에도 차씨 저택에 방문해 차정원의 할아버지 차진세와 차설아의 부모님까지 뵌 적이 있지만 정작 차정원의 부모님과는 마주할 기회가 없었다.예의를 갖추기 위해서라도 미리 취향을 알아두는 게 좋을 듯했다.송하나의 물음에 차설아는 두 눈이 번쩍 뜨였다.“그런 건 나한테 맡겨! 가자, 쇼핑하러! 두 분 마음에 쏙 드는 거로 골라 줄게.”송하나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차설아를 따라나섰다.두 여자는 신나게 백화점을 누볐다.차설아의 조언에 따라 송하나는 차씨 가문 어른들을 위한 선물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골랐다.쇼핑을 마치고 나니 어느새 점심시간이었다.근처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 이제 막 음식이 나왔을 때, 차설아의 얼굴이 갑자기 흙빛으로 변했다.그녀는 황급히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뛰쳐 갔다.송하나도 불안함을 느끼며 뒤따라 들어갔다.칸막이 너머로 들려오는 억눌린 헛구역질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한참 만에 밖으로 나온 차설아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송하나는 다급히 그녀의 팔을 붙들었다.“너 왜 그래? 어디 아픈 거야?”차설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꾸했다.“아니, 괜찮아. 어제 뭘 잘못 먹었나 봐. 별일 아니야.”하지만 송하나는 직감했다. 평소의 명랑함은 온데간데없고, 음식을 앞에 두고도 숟가락을 드는 둥 마는 둥 넋을 잃은 모습이 무언가 심상치 않았다.레스토랑에서 나오자마자 송하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목소리에는 단호함과 동시에 깊은 배려가 묻어났다.“설아 너 솔직하게 말해.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지? 뭐야? 똑똑히 말해봐!”차설아의 성격에 이렇게까지 넋을 놓고 있을 리가 없었다.한참을 망설이던 끝에 차설아는 결국 고개를 떨구고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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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5화

차설아의 기억을 따라 아찔하고도 엉망이었던 그날 밤의 전말이 하나씩 드러났다.한 달 전.회사에서 제대로 깨지고 잔뜩 독이 오른 차설아는 홀린 듯 최로운의 바로 발길을 옮겼다.최로운이라는 인간은 마음에 안 들지만, 그가 운영하는 바만큼은 확실히 감각적이었다.인테리어, 선곡, 그리고 술 한 잔의 퀄리티까지 그녀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하는 곳이라 마음이 복잡할 때면 종종 들르곤 했다.차설아는 바 테이블 구석에 앉아 독한 술을 연거푸 들이켰다.그때, 룸에서 손님을 배웅하고 나온 최로운이 그녀를 발견했다. 헐렁한 검은 셔츠 차림에 깃을 살짝 풀어헤친 채였는데 술기운 때문인지 그의 눈매에는 나른함이 짙게 배어 있었다.그러다 문득 그녀와 눈이 마주치고 걸음을 멈췄다. 최로운은 흥미롭다는 듯 곧장 그녀에게 다가와 옆자리 높은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러더니 능글맞게 입을 열었다.“어이, 차설아 씨, 또 선 자리에서 깨지고 여기 와서 술주정이야?”안 그래도 심란하던 참인데 그가 툭 건드리는 말에 차설아는 결국 참았던 화가 왈칵 치밀어 올랐다.술잔을 꽉 쥔 그녀가 독기 어린 눈으로 최로운을 쏘아보았다.“최 사장, 참 한가하신가 봐? 내가 술을 마시든 말든 그쪽이랑 무슨 상관이야?”말다툼은 순식간에 감정싸움으로 번졌다.분을 참지 못한 차설아는 보란 듯이 가장 독한 술을 한 잔 더 주문하며 턱을 치켜들었다.“나 손님이야. 손님은 왕이라는데 최 사장 어디 한번 깍듯이 술 한 잔 따라보시지?”최로운이 눈썹을 까딱였다. 눈가에 서린 장난기가 한층 짙어졌다.그는 본디 착해 빠진 인간과는 거리가 멀었다.이 바의 주인으로서 감히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라고 강요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이강우나 심성빈 같은 절친들이 찾아와도 그는 그저 술 한 잔 툭 내어주는 게 전부였다.그 외의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었다.하지만 최로운은 픽 웃으며 낮게 읊조렸다.“좋아. 네가 그럴 능력이 된다면 무릎 꿇고서라도 대령하지.”“말 다 했어? 후회하지 마라.”그렇게 시작된 술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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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6화

“야!”차설아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독설을 쏟아냈다.“너 진짜 최악이었어. 그러니까 여자를 그렇게 많이 만나도 결국 다 차였지. 너 설마... 고자 아니야?”최로운은 안색이 확 짙어졌다.여자를 많이 만나긴 했지만 늘 그가 먼저 상대를 찼는데 이런 굴욕을 당해야 한다니.최로운은 쓴웃음을 짓고 거침없이 반격했다.“만나주는 남자도 없는 너보단 낫지. 잘 들어. 이번 일은 여기서 끝이야. 나중에 나한테 들러붙지 마라. 그런 거 딱 질색이니까.”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몸매부터 인성, 과거와 미래까지 들먹이며 독설을 쏘아붙였다.한참을 그렇게 가시 돋친 말을 주고받다 목이 타들어 갈 때쯤에야 서로 지쳐서 입을 다물었다.결국 차설아가 먼저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결론을 내렸다.“이번 일은 그냥 똥 밟았다고 생각할 테니까 앞으로 두 번 다시 마주치지 말자! 또 마주친다 해도 서로 모른 척하고 살아.”최로운 역시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를 갈았다.“그래, 좋아! 번복하기 없기다? 무르기만 해봐, 인간 취급도 안 할 거야.”차설아는 대꾸도 하지 않고 옆에 있던 베개를 집어 그에게 냅다 던졌다.“뒤로 돌아! 옷 입게!”최로운은 분해서 어금니를 깨물었지만 어쩔 수 없이 등을 돌려 앉았다.차설아는 머리도 제대로 매만지지 못한 채 허겁지겁 옷을 주워 입고는 씩씩거리며 방을 뛰쳐나왔다.하지만 바를 나서는 그녀의 걸음걸이는 어딘가 어색했다. 허리는 뻐근하고 아래쪽도 알 수 없는 통증이 느껴졌다.차설아는 속으로 최로운을 수백 번도 더 저주했다.그녀는 이토록 황당한 사건을 애써 잊으려 했다.애초에 가볍게 노는 성격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첫 경험에 목을 매는 타입도 아니었다.그저 술김에 벌인 한바탕 해프닝이라 여기기로 했다.그 뒤로 차설아는 평소처럼 출근하고 친구들을 만나며 지냈다.그날 밤의 모든 기억이 단지 아주 기분 나쁜 꿈이었던 것처럼 말이다.하지만 며칠 전부터 이상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이유 없이 구역질이 올라왔고 기름진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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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7화

차설아를 달래려던 송하나의 말들은 입술 끝에서 맴돌다 결국 삼켜지고 말았다.그녀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차설아를 가슴 깊이 끌어안았다.보듬는 손길은 조심스러웠지만, 그 안엔 상대방을 안심시키는 따스한 온기가 배어 있었다.“네 선택 존중할게. 마음 굳혔으면 수술 날짜 빨리 잡는 게 좋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옆에 있을 거니까 걱정 마. 절대 너 혼자 두는 일 없어.”차설아는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감격에 겨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하나야, 네가 있어서 진짜 다행이야.”곧이어 지체 없이 의사를 찾아 다음날 오전 10시로 가장 빠른 수술 시간을 예약했다.병원을 나서려던 차설아는 임신 진단서를 주머니에 욱여넣었다. 그녀의 제스처는 다소 성급하면서도 데면데면해 보였다.이를 본 송하나가 재빨리 손을 뻗어 그녀를 제지하며 낮은 목소리로 일렀다.“설아야, 만약 가족들한테도 비밀로 하려는 거면 이런 서류는 흔적도 없이 깔끔하게 처리해야 해.”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차설아가 이마를 툭 쳤다.“역시 넌 꼼꼼하다니까. 진짜 깜빡할 뻔했네.”차설아에게서 진단서를 건네받은 송하나는 몇 번이고 잘게 찢어 쓰레기통에 던졌다.바로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최로운이 이 모습을 지켜보았다.그는 할아버지의 약을 타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산부인과 복도를 지나던 참이었다. 무심코 시선을 던진 곳에 낯익은 두 실루엣이 보였다.‘차설아랑 송하나? 쟤들이 왜 산부인과에 있지?’쓰레기통 옆으로 찢어진 종잇조각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두 사람이 멀어지자마자 최로운이 무언가에 홀린 듯 슬쩍 다가갔다.바닥에 떨어진 종잇조각에는 [임신확인서]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최로운은 당연히 임신한 사람이 송하나일 것이라 단정 지었다. 호사가의 심리로 슬쩍 휴대폰을 꺼내 멀어지는 그녀들의 뒷모습을 한 장 찍었다.그날 밤, 최로운의 바.어둑한 조명 아래 이강우가 말없이 독주를 들이켰다.최로운이 술잔을 들고 다가와 그의 옆에 앉았다. 다리를 꼬고 앉은 품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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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8화

이건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최로운은 점점 더 깊어지는 의구심을 안고 이강우에게 전화를 걸었다.“강우야, 어제 일 조사해봤어? 송하나 진짜 임신 맞대?”수화기 너머 이강우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냉랭했다.“임신은 맞는데 하나는 아니야.”최로운은 어리둥절해졌다.“뭐래?”“차설아가 임신했대.”“뭐? 뭐라고?”최로운은 그대로 굳어버렸다.그는 목소리 톤을 한껏 높이며 다그치듯 물었다.“임신 몇 주인데?”“결과지상으로는 6주 차야.”6주.최로운은 머리가 띵해졌다.날짜를 계산해보니 마침 차설아와 하룻밤을 보낸 그 날과 맞아떨어졌다.“어떻게 이럴 수가...”그는 벼락 맞은 것처럼 큰 충격에 휩싸인 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이강우도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미간을 구겼다.“차설아가 임신인데 네가 왜 이렇게 흥분해? 뭐 설마 네 애라도 되는 거야?”그냥 던진 말이었으나 전화기 너머로 깊은 침묵이 흘렀다.몇 초 뒤, 최로운은 잔뜩 잠긴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내 아이일 가능성이 아주 커...”이강우는 휴대폰을 잡은 손에 힘이 쭉 들어갔다. 잠시 이어진 정적 끝에 그가 낮게 덧붙였다.“차설아 오늘 오전 10시에 수술 예약 잡혀 있어. 알아서 해.”전화가 끊기고 최로운은 시계를 확인했다. 9시 30분...그는 침대에서 튀어 올라 대충 옷을 걸치고는 차 키를 챙겨 현관문을 뛰쳐나갔다.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충격인지, 혼란스러움인지, 혹은 분노인지 분간할 수도 없었다.아이가 생겼는데 단 한마디 상의도 없이, 심지어 존재조차 숨긴 채 혼자서 수술을 감행하려 하다니.배 속의 아이가 반은 자기 피붙이인데 감히 어떻게 혼자 결정을 내리는 걸까?최로운은 머릿속이 백지장이 돼버렸다.갑작스럽게 찾아온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다른 건 다 제쳐두고 급선무는 단 하나, 차설아를 막아야 한다.병원 산부인과.차설아는 수술실 앞 의자에 앉아 떨리는 손으로 옷자락을 꽉 쥐고 있었다.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고 있자니 호흡이 다 가빠졌다.“하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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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9화

최로운과 차설아의 시선이 허공에서 엉켰다.그녀는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네가 여긴 어떻게?”임신 사실을 아는 건 송하나뿐이었다.입이 무겁기로 소문난 송하나가 최로운에게 먼저 알렸을 리는 없다.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찾아온 걸까?최로운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문 앞에 서 있었다.머리카락은 헝클어지고 셔츠 깃은 구겨진 채 눈가엔 핏발이 잔뜩 서 있었다.“안 왔으면 내 아이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평생 모른 채 살았겠네?”차설아는 찰나의 순간 멍하니 굳었다가 곧바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녀의 목소리엔 빈틈 하나 없는 냉기가 서려 있었다.“누가 네 애래? 나가. 수술 방해하지 말고.”“차설아!”최로운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그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았지만, 그 안에는 차설아가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묘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가슴에 손 얹고 말해봐. 그 시기에 나 말고 다른 남자 만났어?”차설아는 찰나의 침묵 끝에 냉소적으로 쏘아붙였다.“다시 볼 일 없기로 했잖아. 누구 애든 이제 너랑은 상관없어. 어차피 말할 생각 없었는데 잘됐네. 수술비 반반 내. 그거 입금해주면 그 뒤로는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최로운은 헛웃음을 터뜨렸다.수술대 위에 누워 무심하게 굴어대는 여자를 보고 있자니 속에서 천불이 났다.“이런 미친...”욕을 삼킨 최로운은 이를 박박 갈았다.“안 돼. 이 수술 절대 못 해!”“야, 최로운! 적당히 좀 해!”차설아도 폭발한 나머지 수술대에서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내 몸이야! 내가 결정한다고! 너 따위가 이래라저래라할 자격 없어. 의사 선생님, 저 이 사람 몰라요. 당장 끌어내 주세요! 미친 사람이에요!”상황이 험악해지자 곁에 있던 의사와 간호사들이 서둘러 달려들었다. 그들은 최로운을 제지하며 다급하게 외쳤다.“선생님! 진정하세요. 여기 수술실이에요. 이렇게 소란 피우시면 곤란합니다. 얼른 나가주세요!”의료진에게 밀려 문밖으로 끌려나가면서도 최로운의 마음속은 분노와 다급함으로 뒤엉켜 끓어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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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0화

송하나는 잠시 멍하니 차정원을 바라보았다.“정원 씨, 무슨 일이에요?”이내 그녀는 찔린 듯 고개를 숙였다.“다... 알았어요?”차정원은 그녀의 곁에 앉아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응.”“일부러 숨기려던 건 아니에요. 설아의 개인적인 사정이라...”송하나는 다급히 해명했다.“정원 씨, 설아 너무 몰아붙이진 말아요. 걔도 정말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이런 일은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는 거잖아요.”사실 차정원도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땐 화가 치밀었다.철없는 동생이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해서 이런 황당한 사고를 쳤다는 사실에 속이 뒤집혔다.하지만 걱정으로 휩싸인 송하나의 두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동생을 향한 분노가 눈 녹듯 사라졌다.“걱정 마. 다 잘 해결될 거야.”차정원은 송하나의 손을 잡고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구석진 자리에 앉으니 차설아 일행이 있는 테이블이 한눈에 들어왔다.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차씨 일가와 최씨 일가의 부모들이 마주 앉아 있었다.분위기는 생각보다 험악하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 사업적 교류가 잦았던 탓인지 묘한 친근함과 격식이 느껴졌다.더군다나 차설아의 어머니 백윤희와 최로운의 어머니 연세경은 대학 시절 룸메이트에 절친한 사이였고 졸업 후에도 꾸준히 연락하며 지내왔다.최로운의 부모님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넸다.“정말 면목 없습니다. 다 우리 로운이가 철딱서니 없이 굴어서 설아만 마음고생 시켰네요. 이번 일은 우리 집안에서 반드시 책임지고 해결하겠습니다. 절대 설아가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겁니다.”차설아의 부모님도 꽤 상식적인 분들이라 말투에 차분함이 묻어났다.“말씀이 너무 과하십니다. 이번 일은 로운 군에게만 책임을 물을 순 없지요. 우리 설아도 철없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두 아이 모두 어린 마음에 사리 분별을 못 한 탓이니 어느 한쪽만 탓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대화는 전적으로 부모님들의 몫이었다.그 사이 최로운과 차설아는 잘못을 저지른 학생들처럼 쥐 죽은 듯 조용히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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