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별이 되어 빛나리 / Chapter 801 - Chapter 810

All Chapters of 별이 되어 빛나리: Chapter 801 - Chapter 810

831 Chapters

제801화

송하나는 무심결에 옆으로 피하려 했지만, 이미 몸은 제멋대로 앞으로 쏠리고 있었다. 발밑에 힘이 풀리자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뒤편에 있던 경호원들도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그들은 누구보다 잘 안다. 지병에 시달리는 빅토르는 성미가 포악하기 짝이 없어 눈엣가시처럼 보이는 사람이나 사소한 일에도 분노를 터뜨리며 살기까지 내뿜는다는 것을.이 여자가 어쩌다 보스의 앞을 막아선 걸까. 아무래도 험한 꼴을 면치 못할 듯싶었다.몇몇 경호원들이 즉각적으로 달려들어 송하나를 떼어놓으려 했다. 보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그녀를 그대로 끌어낼 기세였다.하지만 경호원들의 손이 송하나에게 닿기 직전, 빅토르가 불현듯 그들을 제지했다.그는 몸을 살짝 틀어 마디가 선명한 손으로 그녀를 살며시 붙잡아 주었다.코끝으로 희미한 향기가 스며들었다.연구실 시약 특유의 맑고 시원한 향기 사이로 눈앞의 여자에게서 풍기는 은은하고 달콤한 향이 뒤섞였다.아주 옅고 깨끗한 향기였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그 숨결이 닿자 잔뜩 긴장했던 신경이 느슨해지는가 싶더니 몸에 느껴지던 불편함마저 조금은 가시는 듯했다.송하나는 고개를 들어 눈앞의 남자를 똑바로 마주했다.잘생긴 외모였지만 비정상적으로 창백한 피부 아래 관자놀이의 푸르스름한 핏줄이 희미하게 드러났다.조각같이 입체적인 이목구비는 마치 유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했으나 눈동자에는 어떤 온기도 담겨 있지 않았다.거대한 위압감이 주위를 맴돌았고 마치 언제라도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낼 듯한 맹수 같았다.직감이 미친 듯이 경고했다. 이 남자는 위험하다고 말이다!송하나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본능적으로 반걸음 뒤로 물러서며 그에게서 황급히 팔을 뺐다.“감사합니다.”그녀는 살짝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한편 빅토르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훑어볼 뿐이었다. 회색빛이 도는 푸른 눈동자에는 어떤 감정도 비치지 않았다.경호원들이 에워싼 그의 모습이 복도 끝으로 멀어져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숨 막히는 압박감이 걷혔다.
Read more

제802화

“네, 원장님!”검사실 의사가 재빨리 진찰실로 들어서더니 진찰 의사에게 몸을 숙여 몇 마디 나직이 속삭였다.진찰 의사는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고 서류 한 장을 받아 들고는 문을 나섰다.“송하나 씨.”송하나는 팔걸이를 짚고 몸을 바로 세웠다. 목소리는 여전히 잠긴 상태였다.“네, 선생님, 검사 결과 어떤가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의사는 억지로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저었다.“큰 문제는 아니고요. 바이러스성 감기에 장시간 밤샘 작업으로 몸이 많이 허해져서 열이 심하게 오른 것 같아요.”그는 서류를 건네며 태연한 말투로 덧붙였다.“해열제 좀 처방해 드릴게요. 그리고 수액도 맞으셔야 할 것 같아요. 열이 이렇게 높은데 약만으로는 안 내려가요. 수액을 맞아야 확실히 잡을 수 있습니다.”송하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받았다.“네, 알겠습니다.”그녀는 해열제를 먹고 간호사를 따라 수액실로 향했다.등 뒤에서 의사가 간호사에게 슬쩍 눈짓하는 모습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수액실은 1인실이었고 조용하고 깔끔한 환경에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시설이 좋았다.‘이 병원 서비스 꽤 좋네!’송하나가 생각했다.간호사가 주삿바늘을 꽂을 때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이를 본 송하나는 의아한 듯 물었다.“왜 그러세요?”간호사는 억지웃음을 지었다.“아 그게... 환자분 혈관이 좀 가늘어서 찾기가 어렵네요. 혹시나 아프게 할까 봐요.”송하나는 별다른 의심 없이 나직이 대답했다.“괜찮아요.”간호사는 주사를 놓고 수액 속도를 조절한 뒤 안에 계속 남아 있으면 송하나가 눈치챌까 봐 조심스럽게 일어섰다.“그럼 쉬고 계세요. 무슨 일 있으면 벨 누르시면 되고요.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송하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 눈을 감았다.다만 밖으로 나온 간호사는 멀리 가긴커녕 문 앞을 지켰다.30분쯤 지났을까. 약효가 돌기 시작하며 송하나의 이마에 감돌던 열기가 차츰 가라앉고 정신도 조금씩 맑아졌다.그때, 수액실 밖에서
Read more

제803화

원장의 떨리는 목소리에 주체할 수 없는 흥분이 섞여 있었다.“빅토르 씨에게 꼭 맞는 기증자를 찾았어요. 매칭률이 무려 99.7%나 됩니다. 완벽해요!”전화기 너머로 순간 침묵이 흘렀다.이윽고 빅토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느긋한 말투였으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압박감이 묻어났다.“그 사람 지금 어디 있어?”“수액실에 있습니다. 저희 간호사가 감시하고 있어요.”“이리로 데려와.”“네! 지금 바로 보내겠습니다.”원장은 전화를 끊고 검사 의사와 함께 수액실로 달려갔다.문 앞에 막 도착했을 때, 방금 응급 처치를 마치고 돌아온 간호사와 마주쳤다.“아까 그 여자 어디 갔어?”“안에 있습니다.”다만 원장이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안은 텅 비어버렸다.그는 걸음을 재촉해 창가 쪽 병상으로 다가섰다. 수액 주머니에 약이 절반 이상 남았고 주삿바늘이 허공에 덩그러니 매달려 있었다.원장은 돌연 표정이 굳었다. 수액 주머니를 홱 뜯어내곤 간호사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어디 갔냐고! 똑바로 감시하라고 했잖아!”식겁한 간호사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고 말까지 더듬었다.“실은 제가 아까 환자 응급 처치 때문에 잠시 나갔다 왔어요. 몇 분 안 됐는데... 분명 수액을 맞고 계셨는데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네요.”원장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그는 옆에 있던 의자를 발로 걷어찼다. 의자가 바닥을 구르면서 귀청이 째질 듯한 소리를 냈다.“사람 하나 제대로 못 지켜? 쓸모없는 것들!”그는 눈을 질끈 감고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겨우 찾아낸 완벽한 기증자가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다니.빅토르의 분노가 여기 있는 모두를 집어삼키고도 남을 터였다.한참을 망설이던 원장은 끝내 빅토르를 찾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상황을 보고했다.텅 빈 서재에서 무릎을 꿇고 차가운 마룻바닥에 이마를 댄 채 등은 이미 식은땀으로 흥건해졌다.인생에서 겪었던 어떤 기다림보다도 길고 긴 시간이었다.한편 빅토르는 책상 뒤에 앉아 있었다. 손에는 이미 식어버린 찻잔이 들려 있었지만 그
Read more

제804화

송하나가 연구실로 돌아왔을 때, 동료들은 엉망이 된 데이터 앞에서 진땀을 빼고 있었다.그녀는 자신의 컨디션을 돌볼 겨를도 없이 곧바로 문제 해결에 나섰다.새벽 두 시가 넘도록 씨름한 끝에 마침내 데이터를 복구했다.동료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송하나를 돌아보더니 얼굴에 미안함이 가득했다.“아픈데도 불러내서 정말 미안해요, 하나 씨...”이에 송하나는 고개를 저으며 여전히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요. 열은 다 내렸어요. 데이터만 문제없으면 되죠.”아파트로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막 침대에 누우려는데 차정원한테서 영상 통화가 걸려왔다.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마주하자 남자는 대뜸 미간을 찌푸렸다.“얼굴이 왜 이래? 어디 아파?”송하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솔직하게 말했다.“감기 기운이 좀 있어서 병원 다녀왔어요. 이제 약 먹고 훨씬 나아졌어요.”차정원은 잠시 침묵했다.“컨디션 안 좋을 땐 병가 내고 쉬어. 너무 무리하지 마. 프로젝트가 아무리 중요해도 몸 챙기면서 해야지.”송하나는 웃으며 답했다.“알았어요. 우리 차 변호사님도 자꾸 밤새우지 말고 일찍 쉬어요.”차정원은 영상 통화를 끊었지만, 마음 한구석에 찜찜한 기운이 가시지 않았다.그는 하던 일을 모두 미루고 가장 빠른 항공편을 예약했다. 그녀 곁에 있어 주기로 결심한 것이다.다음 날 아침 일찍, 차정원은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차씨 가문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던 동생 차설아가 그의 갑작스러운 외출에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 댓바람부터 어디 가요, 오빠?”“하나 보러.”“다음 주에 가기로 한 거 아니에요?”“그땐 늦었어!”차설아는 그의 표정을 살피며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혹시 무슨 일 생겼어요?”“아니야, 그런 거.”차정원은 캐리어를 챙기고 태연하게 대답했다.“하나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래.”그날 오후, 송하나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연구동을 나섰다.고개를 들자 차정원이 문 앞에 떡하니 서 있었다.손에는 꽃다발을 든 채 먼 길을 달려온 듯 옷깃에 먼
Read more

제805화

참으로 귀엽고 아름다운 사냥감이었다.몸에서 나는 향긋한 냄새처럼 장기 역시 아름다울 터.빅토르는 언제나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완벽을 추구했다.그의 몸속에는 오직 아름다운 것만이 담긴 채 자신과 하나가 될 자격이 있었다.추한 것은 그저 혐오스러울 뿐이었다.하늘에서 뚝 떨어진 이 작은 사냥감에 그는 매우 만족했고 이미 그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있었다.하지만...옆에서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떨어지지 않는 남자가 눈에 거슬렸다. 이건 영락없이 모욕당한 기분이었다.빅토르의 시선이 차정원에게 잠시 머물렀다. 회색빛이 감도는 푸른 눈동자에 싸늘한 한기가 서렸다.“이 남자는 누구지?”원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아... 아마도 남자친구일 겁니다.”빅토르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그는 고개를 들어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저 남자 신원 조사해!”“네.”뒤에 있던 경호원이 즉시 대답했다.송하나와 차정원은 의사를 찾아갔다. 의사는 두 사람을 보자마자 열성적으로 맞이했다.“송하나 씨, 드디어 오셨군요. 검사 결과에 약간의 이상 소견이 있어서 최종 진단을 위해 엑스레이 촬영이 필요합니다.”차정원이 옆에서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자 의사의 얼굴에 띤 미소가 살짝 굳었다.잠시 밖에서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괜히 경계심을 일으킬까 두려워 입을 다물었다.송하나의 엑스레이 촬영을 지켜보는 동안, 차정원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구석에 서 있는 몇몇 사복 차림의 남자들이 은근히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체형을 보니 다들 보통 실력이 아닌 듯했다.천장의 CCTV 역시 누군가가 조종하는 듯 자신들이 있는 방향으로 무심결에 돌아갔다.마치 온 세상의 시선이 자신들에게 쏠리고 온전히 감시당하는 듯한 느낌은 그를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다.차정원은 조용히 송하나의 손을 잡으며 속삭였다.“이따가 무슨 일 생겨도 절대 내 곁에서 떨어지지 마.”송하나가 고개를 들고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왜 그래요, 정원 씨?”“아니 그냥
Read more

제806화

차정원은 송하나의 손을 잡고 병원을 빠져나왔다.그는 곧게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몇 차례 복잡한 경로를 거치며 버스도 몇 번 갈아탔다. 아무도 자신들을 미행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든 후에야 택시를 잡았다.아파트로 돌아온 그는 송하나에게 짐을 챙기라고 했다.“우리 이만 국내로 돌아가야겠다!”담담한 말투지만 상의의 여지가 없었다.“가서 정밀 검사 다시 받아보자, 하나야. 여긴 뭔가 찝찝해.”송하나 역시 병원의 수상한 분위기를 어렴풋이 느꼈던 터라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그녀는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차정원은 창가에 서서 아래 거리를 살펴보았다.그 시각, 길 건너편 건물에서는 누군가가 망원경으로 그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했다. 물론 차정원과 송하나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이 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또 가장 신비로운 존재로 알려진 리히터 가문의 실질적인 지배자 빅토르는 나라 경제의 절반을 쥐락펴락하는 말 그대로 천하를 손안에 쥔 권력자였다.차정원, 송하나가 병원을 나선 순간부터 빅토르의 부하들에게 철저히 감시당했다.그들의 모든 움직임은 빅토르의 통제 아래 있었다.차정원은 국내로 돌아가는 항공권 두 장을 예약했다.그는 송하나의 손을 잡고 서둘러 공항으로 향했다.모든 과정이 순조로웠지만, 비행기 탑승권을 들고 게이트로 향하던 바로 그때, 안내 방송이 울렸다.“승객 여러분, 안내 말씀드립니다. 항공기 고장으로 인해 화인국행 항공편은 임시 결항되었습니다. 정확한 출발 시각은 추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차정원의 안색이 돌변했다.왜 하필 탑승 직전에 고장이 난 걸까?단순한 우연일지 누군가의 의도적인 방해일지 가늠이 안 됐다.“육로로 가자.”차정원은 단호하게 결정을 내린 뒤, 송하나의 손을 잡고 공항을 나섰다.그들은 도시를 벗어나기 위해 버스 회사를 찾아갔다. 인근 국가에서 다시 비행기를 타면 되니까.그러나 직원이 서류를 확인하더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죄송합니다, 손님. 시스템상으로 두 분 모두 비자 발급 기록이 없어 티
Read more

제807화

화인국으로 돌아가 다시 검사를 받아서 몸에 아무 이상이 없다면 그 병원이 분명 문제가 있다는 게 증명이 될 터였다.그날 밤, 송하나는 약을 먹고 차정원의 품에 안겨 금세 깊은 잠에 빠졌다.차정원은 그녀를 살포시 안아주었다. 눈 밑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경계를 늦추지 않고 밤을 꼬박 지새웠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야 하니까.다음 날 아침 일찍 호텔 프런트에서 전화가 걸려왔다.“안녕하세요, 손님. 대사관 관계자 두 분이 손님을 찾아오셨어요. 지금 로비에 와 계십니다.”차정원은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살짝 젖혔다. 아니나 다를까 로비 앞에 검은색 승용차가 한 대 세워졌고 차체에는 대사관 상징이 새겨져 있었다.운전석의 에인시아계로 보이는 남자는 영락없이 대사관 관계자임을 짐작게 했다.차정원은 비로소 안심하고 송하나를 깨웠다. 서둘러 소지품을 챙긴 뒤 그녀의 손을 잡고 로비로 내려갔다.두 사람이 내려오자 대사관 관계자가 반갑게 맞이했다.“차정원 씨, 송하나 씨, 두 분 고생 많으셨습니다. 위기 상황에 대비해 저희가 두 분을 모시러 왔습니다. 전용기까지 준비했으니 바로 모시겠습니다.”차정원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차에 올라타자 두 남녀의 팽팽했던 신경이 조금은 느슨해지는 듯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송하나가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운전기사가 핸들을 돌릴 때 손목에 아주 작은 벚꽃 문신이 언뜻 보였는데 국내에서는 공직자들이 문신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송하나는 즉시 차정원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비록 그 문신이 곧 소매 속으로 감춰졌지만, 차정원도 이미 눈치챘다.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두 사람은 유창한 화인국어를 구사했지만 악수하는 방식이나 말투가 전혀 화인국인처럼 보이지 않았다.외국 문화에 오래 노출되어 생긴 영향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경계를 늦출 수가 없었다.송하나는 재빨리 머리를 굴리더니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어머, 어떡하죠? 제가 중요한 연구 자료를 호텔 방에 두고 왔네요. 최근
Read more

제808화

차 안에서 송하나는 경호원들에 의해 꼼짝없이 좌석에 짓눌렸다. 거친 밧줄로 손발이 꽁꽁 묶였고 검은 천으로 눈이 가려지자 순식간에 세상이 칠흑 같은 어둠으로 변했다.얼마나 달렸을까. 흔들림이 잦아들고 차 속이 줄어들며 마침내 완전히 멈춰 섰다.안대가 거칠게 벗겨지자 눈이 부셔 제대로 뜰 수 없었다. 몇 번의 깜빡임 끝에야 방 안의 풍경이 조금씩 선명해졌다.호화롭지만 텅 빈 방 안, 대리석으로 반짝이는 바닥, 위엄있게 배치된 값비싼 유럽풍 가구들까지 차갑고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겼다.창밖은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였고 담벼락에는 무시무시한 가시들이 촘촘히 박혔다. 문 앞을 지키는 냉철한 표정의 검은 옷차림 경호원들...그랬다. 그녀는 철저히 갇혀버렸다.가까운 곳에 놓인 소파에 빅토르가 비스듬히 기대앉아 있었다. 회색빛이 감도는 푸른 눈동자는 송하나에게 고정되어 괴이한 만족감을 드러냈다.“하나야, 웰컴 홈!”송하나는 그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충격에 휩싸여 동공이 아찔거렸다.“아니, 그쪽은?”바로 그날 병원 복도에서 왠지 모르게 불안감을 안겨준 위험한 남자.그녀는 무심코 주먹을 불끈 쥐며 간신히 두려움을 억눌렀다.“난 그쪽 손님도 아니고 여긴 내 집 아니니까 당장 풀어줘요, 당장!”빅토르는 늘씬한 손가락으로 소파 팔걸이를 가볍게 두드리며 마치 담소를 나누는 듯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단호함이 묻어 있었다.“안타깝게도 넌 이제 여길 못 떠나.”송하나는 그를 쏘아보며 눈가에 의문과 분노가 가득했다.“이봐요. 우린 전혀 모르는 사이인데 제가 언제 그쪽 심기라도 건드렸나요? 갖은 수단으로 여기까지 납치해온 이유가 뭐죠 대체?”빅토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앞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190 남짓한 훤칠한 키는 숨이 막힐 듯한 압박감을 안겨주었다.그는 거만한 표정으로 송하나를 내려다보았다.“정식 소개가 늦었네. 난 리히터 가문의 수장 빅토르 리히터야.”리히터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송하나는 몸이 움찔거리고 가슴
Read more

제809화

송하나의 옷에 묻은 먼지와 초라한 몰골을 보고 있자니 빅토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이토록 아름다운 사냥감이 더럽혀지는 건 완벽하지 않을 터. 그는 옆에 있던 경호원에게 턱짓했다.“얘 풀어주고 여집사 불러서 샤워시키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혀.”경호원이 다가가 송하나의 손발을 묶고 있던 밧줄을 풀었다.자유를 되찾은 송하나는 즉시 책상 위의 과일칼에 시선을 고정했다. 별안간 생존에 대한 희망의 불씨가 타올랐다.모두가 방심한 틈을 타 맹렬하게 달려들어 과일칼을 낚아채고 빅토르의 목에 겨눴다. 목소리는 조금 떨리지만, 태도는 여느 때보다 단호했다.“나 이만 보내줘. 안 그러면 당신 확 죽여버릴 거야.”그녀를 바라보는 빅토르의 눈동자에 어떤 두려움도 찾아볼 수 없었다.병약한 체구와 달리 남자의 움직임은 놀랍도록 빨랐다.송하나가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손목을 꺾어 칼을 바닥에 떨어트렸다.“쯧, 얌전하게 굴어야지.”빅토르의 목소리가 조금 차가워졌다.“얘들아.”두 명의 경호원이 즉시 들어와 명령을 기다렸다.빅토르는 늘 그렇듯 담담하게 말했다.“얘 좀 진정하도록 근력 약화제 맞아야겠다.”송하나는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지만, 꼼짝없이 제압당했다.싸늘한 주사액이 팔에 투여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의 기력이 빠져나갔다. 손가락 하나 들 힘조차 없어졌다.그녀는 두 명의 여집사에게 부축받아 욕실로 향했다. 눈가에는 절망만이 가득한 채로...그 시각, 차정원은 마침내 두 명의 가짜 대사관 직원들의 속박에서 벗어났다.그는 저항 능력을 잃은 두 사람을 밖에 내던지고 그대로 차를 몰아 송하나가 끌려간 방향으로 미친 듯이 추격했다.액셀을 꾹 밟자 차가 거의 날아갈 듯 질주했다.바로 그때, 휴대폰이 울렸는데 임창진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전화를 받은 차정원의 목소리는 절박함에 심하게 쉬어 있었다.“아저씨!”“어떻게 된 거야, 정원아? 대사관에서 너희 데리러 호텔에 갔는데 이미 떠났다고?”“가짜예요! 누가 대사관 직원을 사칭해서 하나를 데려갔어요!”차정
Read more

제810화

차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하의 목소리가 이어폰에서 들려왔는데 약간의 긴장감이 섞여 있었다.“보스! 상대가 우리 쪽으로 추격해오고 있습니다. 우리의 동선을 전부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아요.”빅토르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어떻게 된 거야? 얘 몸에 추적 장치라도 달았어?”부하가 황급히 대답했다.“여집사가 옷을 싹 다 갈아입혔는데 추적 장치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손목에 특이한 재질의 팔찌가 있는데 여집사가 아무리 떼어내려 해도 분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빅토르의 시선이 송하나의 손목에 멈췄다.섬세하고 정교한 디자인의 팔찌는 확실히 평범한 액세서리 같지 않았다.“손 내밀어 봐!”송하나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녀는 무심코 손을 등 뒤로 숨기며 애원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건... 엄마 유품이라 제겐 너무 소중한 팔찌에요. 제발... 건드리지 말아 주세요.”빅토르는 말없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너무 세게 잡아당기진 않아도 거부할 수 없는 힘이었다.그는 고개를 숙여 팔찌를 자세히 살펴보며 손끝으로 표면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마치 그 질감을 느끼는 듯했다.“이 팔찌, 남편이 준 거야?”송하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최대한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아니요. 정말 엄마 유품이에요. 돌아가신 지 꽤 됐고 이제 남은 건 이 팔찌뿐이라 제발 뺏어가지 마세요...”빅토르는 고개를 들어 짙은 눈동자로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 당장이라도 왈칵 울어버릴 기세였다.남자가 하도 오래 쳐다보니 송하나는 자신의 속임수가 먹힌 줄 알았다.“화인국 여자들은 다들 이렇게 거짓말을 잘해?”빅토르가 별안간 입을 열었다.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송하나의 마음은 바닥까지 가라앉았다.빅토르는 그녀의 손목을 놓지 않고 다른 손으로 무전기를 들었다.“기술팀 불러.”“안 돼요!”송하나의 목소리에는 억누를 수 없는 공포가 묻어났다.“엄마가 남겨준 건데 대체 무슨 자격으로...”“넌 이제 내
Read more
PREV
1
...
798081828384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