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나는 여집사의 말이 사실이란 걸 너무 잘 알기에 힘없이 흔들리는 발걸음을 옮겨 계단을 내려왔다.몸에 걸친 헐렁한 실크 잠옷, 창백한 얼굴, 아직 가시지 않은 병색이 엿보이는 눈매까지 더해 초췌하기 그지없었다.빅토르는 식탁의 상석에 앉아 있었고 그의 앞에는 영양죽과 풍성한 음식들이 차려졌다.송하나를 힐끗 보더니 맞은편 자리를 가리켰다.“앉아.”송하나는 그의 맞은편에 앉아 고개를 숙였다. 이 남자를 쳐다보고 싶지 않았으니까.한편 빅토르는 그녀 앞에 죽을 내밀었다.“먹어.”숟가락을 들어 한 입씩 떠먹는 그녀, 뜨거운 죽이 목을 타고 넘어가도 얼음처럼 차가워진 그녀의 마음을 녹여주지 못했다.주방에는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희미한 소리만이 정적을 갈랐다. 숨 막히는 압박감이 둘 사이를 감돌았다.한참 후, 빅토르가 먼저 침묵을 깼다.“어제는 우스운 꼴 보였지?”송하나의 손가락이 멈칫하며 숟가락이 떨어질 뻔했다.어젯밤 그 여집사의 울음소리, 빅토르의 눈가에 서린 살기가 순식간에 뇌리를 스쳤다. 그녀는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천천히 고개를 들어 빅토르를 바라보면서 마음속에 단 하나의 끔찍한 생각이 맴돌았다.‘혹시... 나도 그 비참한 몰골을 봤다고 여집사처럼 처리해버리는 걸까?’한편 빅토르는 그녀의 속마음을 꿰뚫어 본 듯 입꼬리를 씩 올리고 직설적이면서도 오싹한 투로 말했다.“괜찮아, 두려워하지 마. 널 죽이면 내 병은 어떻게 치료하겠어? 아직은 쓸모가 있는 몸이야.”송하나는 깊은숨을 들이쉬며 마음속 공포를 억눌렀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 빅토르를 올려다보며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빅토르 씨, 우리 혹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저는 생명공학 연구원이라 약을 개발해 드릴 수 있어요. 장기 이식보다 훨씬 안전할 거예요. 여기서 풀어만 주신다면 최선을 다해서 협조해드리겠습니다. 절대 번복할 일 없어요!”이 말을 들은 빅토르가 갑자기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꼭 에르빈이랑 똑같이 구네? 주제넘게 말이야.”송하나는 흠칫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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