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얘기에 미쳐 버린 내 남편: Chapter 91 - Chapter 100

146 Chapters

제91화

나무로 만든 비녀는 날이 서 있지 않았다.하지만 리은이 힘을 주어 찔렀기에, 깊이 박히지는 않았다 해도 유한의 피부를 얇게 찢어버렸다.유한은 그저 말없이, 눈을 깜박이지도 않은 채 리은을 응시했다.그 검은 눈동자 깊은 곳에서 파도가 뒤집히듯 격한 감정이 소용돌이쳤다.“너... 네 오빠 때문에 나한테 상처를 낸 거야?”그 말을 듣고서야 리은의 시선이 번쩍 흔들렸다.방금 자신이 저지른 행동을 깨닫자 손끝에서 힘이 빠졌다. 손에서 미끄러진 비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나... 그게 아니고...”유한의 이마에는 굵은 핏줄이 불쑥 솟았다.분노로 일그러졌던 표정이 순식간에 무표정으로 굳어졌지만, 그 무표정은 오히려 더 섬뜩했다.눈은 계속 리은만 똑바로 보고 있었다.리은 본인도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다만, 성빈이 너무 걱정되었을 뿐이었다.원래부터 허약한 몸인데 방금 같은 상황이라면 정말 큰일이 날 수도 있었다.그리고 유한이 방금 목을 조르는 힘은... 숨이 막힐 만큼 강했다.유한은 갑자기 리은의 뒤통수를 거칠게 잡더니, 얼굴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읍...!”리은은 놀라 눈을 꽉 감았다.바짝 떨리는 속눈썹이 그녀가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유한은 비웃듯 숨을 흘리면서, 리은의 귓가를 물어뜯을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사고가 나고 위기를 겪고, 문제 생길 때마다 내가 대신 나서서 처리해줬지? 진리은, 너 아주 잘했어. 이렇게 나한테 보답하네? 참 기가 막히네.”리은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나, 난 그럴 의도가 아니었어... 그건 네가...”“봐. 역시 내가 너한테 너무 잘해준 게 문제였네? 그래서 감히 나한테 대든 거야?”유한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끓어올랐다.“좋아. 내가 잘해주는 게 싫다고? 그럼 아주 쉽게 해결해줄게.”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한은 리은의 허리를 번쩍 들어올렸다.“리은아!”성빈은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면서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봤다.“리은아! 주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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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화

욕실 안은 차가운 물소리가 가득 울렸다.“주유한!”리은은 사방으로 몸을 피하려 했지만, 유한은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너 도대체 뭐 하는 거야! 놓으라니까, 놓으라고 했어!”얼굴 전체에 드리워진 유한의 그림자는 어둡고 무겁게 일그러져 있었다.그는 욕조에서 흠뻑 젖은 리은을 거칠게 끌어올리더니, 차갑게 식은 타일 벽에 그대로 밀어붙였다.갑작스러운 냉기에 리은의 어깨가 떨렸다.“넌 진짜... 배은망덕한 인간이지.”“무슨 말 하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어. 왜 이러는데? 제발... 일단 좀 놓고 말하자니까!”“놓고?”유한은 비웃음을 흘리며 몸을 숙여 리은과의 거리를 단숨에 좁혔다.두 팔로 그녀를 옴짝달싹 못 하게 가둬버린 채, 귓가에 바싹 붙어서 낮고 서늘한 목소리를 흘렸다.남자의 말투는 어디서 스며든 한기처럼 뱀 한 마리가 살갗 아래로 파고드는 듯한 느낌을 들게 했다.차가운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다가 갑작스레 뜨거운 열기가 올라붙는 듯, 리은은 몸 안팎으로 ‘얼음과 불’을 동시에 맞는 듯한 말로 설명하기 힘든 불쾌함에 휘말렸다.“내가 왜 널 놓아야 하는데?”“나...”리은은 정말로 이해할 수 없었다.왜 유한이 갑자기 이렇게까지 분노하는지... 무엇이 유한의 심기를 건드린 건지...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그저 온통 안개 속에 갇힌 듯 답을 찾을 수 없는 혼란뿐이었다.“뭐? 잘 들어, 너는 내 아내야. 내가 아니라고 하기 전까지는... 아니, 내가 평생 놓지 않는 한... 넌 죽을 때까지 내 아내라고.”유한은 리은의 턱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리은의 목이 뒤로 젖혀지며 숨을 쉴 때마다 아픔이 배어 나왔다.“내가 네 마음속에 뭐가 있는지, 누굴 생각하는지, 그딴 건 관심이 없지만... 절대 내 눈에 띄지 마. 내 마지노선을 넘는 짓은 생각도 하지 말고.”하지만 리은은 유한의 말조차 이해하지 못했다.‘내가 뭘 생각했다는 건데?’‘누굴?’‘내가 언제 주유한의 선을 넘었지?’‘이 인간의‘마지노선’이 뭔지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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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화

두 사람의 몸이 오랜 시간 엉켜 있었던 탓에 유한은 끝까지 리은의 체온이 비정상적으로 뜨겁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그저 격한 상황에서 흔히 올라오는 열기 정도로만 생각한 것이다.“여보, 정신 좀 차려봐.”그러다 리은의 몸이 축 늘어진 걸 확인한 순간, 유한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확실히 열이 오르고 있었다.그제야 그는 몸을 떼고 욕실로 돌아가, 욕조 옆에 걸어둔 가운을 급히 집어 들었다.흠뻑 젖은 리은을 그 안에 감싸 안고 자신은 셔츠와 바지를 대충 걸쳐 입은 채, 그녀를 품에 안고 방을 뛰쳐나왔다도우미 유영자는 막 불을 끄고 방으로 들어가려다 두 사람이 허겁지겁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대표님, 사모님이 왜 이러세요?”“대표님...?”유한은 대답조차 하지 않은 채, 리은을 안고 그대로 현관을 향해 내달렸다.유영자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다른 도우미들과 서로 얼굴만 마주볼 뿐이었다.“저... 무슨 일 난 거 아니야?”“위에 가서 확인해 봐야 하는 거 아니야?”“...”도우미들은 조심스레 위층으로 올라갔다.방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들어서는 순간 누구나 알 수 있었다.방금 전까지 방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이게...”“설마 큰 사고가 난 건 아니겠지?”“큰 사모님께 연락해야 하는 거 아냐? 작은 사모님은 부모님도 안 계시고... 오빠 한 분 말고는 의지할 사람도 없다던데...”“이 시간에 전화하는 게 좀...”“잠깐, 침대... 저거 피 아니야?”“뭐? 피?”불을 켠 순간, 하얀 시트 위로 번져 있는 붉은 자국이 드러났다.도우미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다.이 집안에서 ‘피’라는 단어는 단순한 사고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주씨 가문에 남자아이는 아직 없었고, 강덕순 여사는 늘 손자를 바라던 터였다.만약...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다면...“빨리! 큰 사모님한테 전화해!”“내가 할게! 지금 바로!”“...”한편, 차를 몰고 병원으로 향하던 유한은 계속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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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화

간호사는 유한의 기세에 놀란 듯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사실대로 말했다.“그... 수간호사에서 전달받은 내용인데요. 안에 계신 환자분은... 아래쪽에 약간의 파열이 있어서 산부인과에서 약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말이 끝나자마자 수혁의 눈가가 미세하게 떨렸다.그는 외과 의사이지, 산부인과와는 전혀 인연이 없는 사람이다.유한도 순간 멈칫했지만... 당황, 부끄러움 같은 감정은 없었다.오직 하나... 상황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정보뿐.“파열?”간호사는 유한의 시선에 얼굴을 들지 못했다.‘아무리 잘생겨도... 어떻게 저렇게 거칠게...?’“네... 조금 심해서요.”“심각한 수준이에요?”간호사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가볍진 않습니다.”유한의 시선이 수혁과 간호사를 지나서 검사실 문으로 향했다.당장이라도 뛰어들 듯한 기세였다.그러나 수혁이 팔로 가로막았다.“야, 여기 병원이야. 병원 규칙을 어기는 짓은 하지 마.”유한은 꽉 쥔 주먹을 풀지도 못한 채, 잠시 숨을 골랐다가 간신히 말했다.“그럼 뭐해? 약은 안 가져오고.”수혁이 간호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약 받아오고, 산부인과 선생님도 모셔와요.”전문적인 건 전문가가 직접 처리해야 했다.“네, 네! 바로요!”산부인과는 아래층이라 의사는 금방 도착했다.“임 선생님, 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 이 선생님. 부탁드릴 환자가 있습니다.”“네, 그럼 제가 먼저 보고 오겠습니다.”“부탁드립니다.”“예.”방으로 들어갔던 이지민은, 5분도 되지 않아 다시 나왔다.이런 진료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하지만 이지민의 표정은 묘하게 굳어 있었다.그녀는 먼저 수혁을 보았다.“임 선생님.”그 표정을 읽은 수혁이 옆에 서 있는 유한을 슬쩍 보며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예, 이 선생님. 말씀하세요.”“방금 진찰한 결과, 환자분은 현재 고열 중이고 내부 파열, 외곽 붓기가 모두 심합니다. 명백하게... 거친 방식으로 다뤄진 흔적입니다.”수혁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렸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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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화

말을 마치자마자 수혁은 휴대폰을 꺼내서 말없이 유한의 몰골을 사진찍었다.유한은 그 모습을 보고 서늘하게 눈을 가늘게 떴다.“죽고 싶어?”수혁은 태연하게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너희 또 싸웠냐?”유한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애초에 리은과의 일을 남에게 떠들어본 적이 없었다.심지어 누가 먼저 리은 이야기를 꺼내도, 대부분의 경우 그는 침묵으로 넘겼다.그래서 모두가 알고 있었다. 유한은 리은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심지어 미워한다고 생각했다.수혁은 고개를 돌려 병상에 누워 있는 리은을 보았다.머리카락은 이미 드라이로 말라 있었다. 아마 이지민이 빌려온 드라이일 것이다.“근데 웃긴다, 너처럼 여자를 싫어하는 인간이 싫어하는 여자한테 이런 흔적을 남기냐? 이게 ‘싫어하는 방식’이면, 정말 독특하네.”유한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다만 시선은 리은에게서 떼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내가 네 와이프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말하자면... 여자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이는 방식은 좀 아니거든. 이건 아무리 그래도...”“말 다 했냐?”유한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단번에 분위기를 가라앉혔다.수혁은 어깨를 으쓱하며 화제를 돌렸다.“너 원래 인영이랑 M국에 있었잖아. 근데 왜 갑자기 들어온 건데?”역시나 유한은 대답하지 않았다.수혁은 그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 묻지 않고 입을 닫았다.대신 그는 유한의 손등을 힐끗 보았다.“이거, 네 와이프가 한 거냐?”유한은 내려다보았다.손등의 상처가 붉게 남아 있었다.그리고 그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그래. 그것도... 다른 남자 때문이지.’수혁은 고개를 저었다.“야, 너희 서로 상처를 내고 피까지 보는 사이면, 그냥 깔끔하게 헤어지는 게 낫지 않겠어? 애초에 네가 리은이랑 결혼한 것도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이었잖아.”“그때 우리 모두 너희 할머니 때문이라고 생각했어. 진리은이 애 낳을 때까지만 기다렸다가 바로 내칠 줄 알았지.”“근데 웃기게도... 너희 둘이 이렇게 몇 년을 버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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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화

강덕순은 전화를 받자마자, 한밤중임에도 주저 없이 병원으로 달려왔다.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 그녀의 시선은 침대에 누워 아직 깨어나지 못한 리은에게 곧장 향했다.순간 얼굴에 깊은 걱정이 드리웠다.유한은 할머니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갔다.“할머니, 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떻게 오셨어요?”대답 대신... 강덕순의 지팡이가 그대로 유한의 어깨를 세게 내리쳤다.딱!묵직한 소리가 병실 공기를 찢었다.유한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이게 사람을 어떻게 돌보는 방식이냐!”유한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번 일은 변명할 여지가 없다는 걸... 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분노에 눈이 어두워져 순간적으로 조절하지 못한 자신을 이미 인정하고 있었다.그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강덕순은 매서운 눈초리로 유한을 가리켰다.“새겨 들어. 리은은 네 아내야. 죽으면 같은 무덤에 묻힐 사람이야!”유한은 고개를 조금 숙이며 말했다.“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강덕순은 말없이 눈을 감으면서 분노를 억눌러 삼킨 뒤, 천천히 침대 가까이 다가갔다.가까이 살펴보니 리은의 팔과 목덜미, 어깨 곳곳에 아주 익숙한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그제야 상황의 전말을 이해한 듯 강덕순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잠시 후, 함께 온 장영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그녀는 리은의 상태를 한 번 보고, 또 유한을 한 번 보더니 한숨을 내쉰 채 고개를 저었다.그리고 강덕순에게 다가가 조용히 귓가에 말을 전했다.“뭐? 거길 다쳤다고?”장영옥은 고개를 끄덕였다.“크게 심각하진 않답니다. 며칠 약을 바르면 괜찮아진다고 합니다... 다만 앞으로는 조심해야 한다고 하네요.”그 말을 듣자마자 강덕순의 얼굴빛이 완전히 변했다.“이 죽일 놈의 새끼가! 봐라, 네가 한 짓이 어떤 꼴을 만들었는지!”지팡이를 다시 들었지만, 장영옥이 재빠르게 막았다.“사모님, 진정하세요. 여긴 병원입니다. 작은 사모님도 아직 못 깨어나셨고요.”강덕순은 리은을 한 번 더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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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화

강덕순은 지팡이를 짚은 손을 떨면서 유한을 노려보았다.“내가 딱 하나만 묻겠다. 그 허씨 집 애하고, 깔끔하게 끊을 수 있어?”유한은 짧게 숨을 들이켰다.“할머니, 제가 허씨 가문에 진 빚이 있습니다. 그건 제가 어떻게든 갚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제가 처리하겠습니다.”강덕순의 눈빛이 더 날카로워졌다.“처리? 네가 뭘 어떻게 처리할 건데?”유한의 시선이 어느새 리은에게로 향했다.굳게 닫힌 눈, 창백하게 달아오른 얼굴.그 모습이 그의 눈동자 속에서 짙고 무거운 그림자를 만들었다.“믿어주세요.”한동안 말을 잇지 않던 강덕순은 리은을 한 번 더 바라본 뒤 살짝 눈을 감았다.“됐고... 오늘 같은 일, 다시는 있어선 안 된다. 알아들었지?”“예. 할머니 먼저 들어가서 쉬세요. 늦은 시간입니다.”강덕순이 장영옥과 함께 떠나자, 문이 살짝 열리면서 수혁이 들어왔다.“네 할머니 또 죽여라 재워라 하셨냐?”이 말과 함께 수혁이 헛웃음을 내뱉었다.사실 강덕순은 이 동네에선 보기 드물 정도로 리은을 예뻐했고 챙겼다.심지어 리은이 ‘그 일’을 저질렀을 때조차 한 번도 모질게 굴지 않았다.다들 그때는 리은이 강덕순의 마음에 든 건 ‘임신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세월이 지나고 나니 알 수 있었다.강덕순의 마음은 꽤나 확고했다.“근데 말이야, 네 할머니는 진리은의 뭐가 그렇게 좋대? 집안도 별거 없어, 성격은 더 별로고, 도덕성은 말할 것도 없고...” “너 결혼 앞두고 온갖 구설수에 엮여 있던 애인데... 도대체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을까? 진짜 이해가 안 간다.”유한은 이런 얘기엔 단 한마디도 반응하지 않았다.대신 눈을 리은에게 고정한 채 짧게 물었다.“리은이... 언제쯤 깨어나?”“그냥 자다가 자연스레 깨겠지.”수혁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근데 네가 굳이 있을 필요 없어? 그냥 간호사 붙여놓고 가서 쉬어. 열하고 감기는 별거 아냐.”“괜찮다. 너 나가.”수혁은 유한의 표정을 한참 보다가 문득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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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화

리은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아침 햇살이 병실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주위를 둘러보니 자신이 병원 침대에 누워 있다는 사실이 서서히 인식됐다.리은은 고개를 돌려 천장을 한참 바라보다가 힘없이 한숨을 내쉬었다.반나절을 앓아 누운 탓인지 목은 타 들어가듯 바짝 말라서, 갈증이 계속 목구멍을 자극했다.물을 마시고 싶었다.그녀가 고개를 비스듬히 돌리자 탁자에 놓인 물컵이 눈에 들어왔다.리은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손을 뻗었다.그러나 손끝을 조금 뻗는 순간, 온몸이 굳어 버렸다.희미하지만 아래쪽이 찢겨 나가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면서,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잔인하게 상기하게 만들었다.어젯밤, 유한은 완전히 통제력를 잃었고, 그 결과 리은의 몸에는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상처만 남았다.더구나 두 사람의 첫날밤보다도 지금의 통증이 훨씬 컸다. 그때의 유한은 조심스럽기 그지없었는데...철컥-그때 병실 문이 열렸다.리은은 고개를 돌렸지만, 들어오는 얼굴이 유한이라는 걸 확인하자마자 거의 반사적으로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딱 보기에도 ‘보기도 싫다’는 태도였다.순간 멈칫하던 유한은 굳게 다문 입술로 나직하게 말했다.“깼어?”리은은 눈을 감았다.유한이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이 싫었고, 조용히 스스로를 비웃듯 속삭였다.“실망했지?”유한은 아예 리은이 대꾸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말이라도 받아준다는 사실에 걸음을 옮겼다.“뭘 실망해?”“내가 네가 원하는 대로 죽지 않아서 실망했다는 거겠지.”유한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그 말에 담긴 조롱을 모를 리가 없었다.“네가 그렇게 약했으면 진작 침대에서 죽었겠지.”리은은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 천천히 눈을 뜨고, 유한의 검은 눈동자를 정면으로 마주한 채 물었다.“주유한, 너 이혼하기 싫지?”유한의 심장이 순간적으로 꽉 조여드는 듯했다.주머니 속에 넣어 둔 손이 꽉 쥐어졌다가, 리은의 시선 앞에서 서서히 풀렸다.“내가 언제 이혼...”“네가 이혼하기 싫은 이유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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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화

간호사는 잠시 난처한 듯 유한을 힐끗 보았다.유한이 비록 얼굴을 굳히고 서 있기는 했지만, 막겠다는 기색은 없었다.결국 간호사는 조심스레 리은에게 다가갔다.물을 따르는 동안 유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말리지도, 도와주지도 않은 채 그저 서 있었다.“여기 물입니다. 어젯밤에 고열이 나서 지금 탈수 기운도 있어요. 천천히 드세요, 목이 막힐 수도 있으니까요.”리은은 물컵을 받아들며 간호사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응, 고마워요.”“아, 아닙니다.”유한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낯선 사람에게는 저렇게나 부드럽게 웃으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늘 굳은 표정뿐이었다.‘이 여자가 언제부터 나한테 웃지 않게 된 거지?’‘결혼하고 나서는 단 한 번도...’‘...’리은은 물 한 컵을 천천히 다 마시고 나서야 겨우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그래도 몇 번 기침이 이어졌다.유한의 미간이 좁혀졌다.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듯 성큼 다가와 물컵을 빼앗고 리은의 등짝을 두드렸다.“천천히 마시라니까? 말이 귀에 안 들어와?”수혁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씁쓸하게 안경을 밀어 올렸다.‘분명히 걱정해서 하는 말인데, 저렇게밖에 못 하네.’기침을 하다가 숨이 막힌 리은이 가슴을 꽉 누르며 더 크게 기침을 터뜨렸다.‘네 일 아니야’라고 한소리 하려고 할 때, 말이 나오기도 전에 더 심하게 사레가 들렸다.“컥, 켁! 켁!”기침은 도무지 멈출 기미가 없었다.얼굴이 벌개지는 건 물론이고, 아래쪽 상처까지 울리는 듯 아릿하게 아팠다.유한의 표정은 더 험악해졌다.그는 수혁을 날카롭게 노려보며 말했다.“너는 구경하러 왔어? 환자 기침 좀 멈추게 할 방법 없어?”수혁은 어깨를 으쓱했다.“응급성 기침을 내가 어떻게 멈춰. 그런 건 방법이 없어.”그리고 다가와서 전자 체온계로 리은의 체온을 쟀다.수치는 여전히 비정상인... 37.8도. 낮은 열이 지속되고 있었다.“미열이에요. 수액은 더 맞아야 하고, 조금 있다가 흉부 X-ray 찍어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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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화

옆에 서 있던 수혁이 결국 대놓고 눈을 부라릴 수밖에 없었다.“너 정말 환자가 기침하다 죽길 원하는 거면 그냥 말해.”리은은 더 심하게 기침하면서도 힘겹게 말했다.“너... 켁, 그런... 켁켁... 그런 생각... 켁... 하지 마!”간호사는 폭소가 터질 것처럼 어깨를 들썩이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정색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웃음이 새어 나올 것 같아 애를 쓰는 모습이었다.유한은 리은을 차갑게 흘겨본 뒤 더는 말다툼을 이어가지 않았다.대신 간단하게 내뱉었다.“빨리 수액이나 맞아. 이러다 진짜 폐가 떨어져 나오는 줄 알겠다. 무섭게 말이야.”“너... 켁켁... 꺼져!”결국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던 수혁이 못 견디겠다는 듯이 말했다.“야, 너 잠깐만 나와서 얘기 좀 할래?”유한은 짧게 수혁을 보더니 병실을 먼저 나갔다.수혁도 리은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나갔다.“뭐 얘기하려고.”“그냥... 방금 좀 신기하더라.”유한은 수혁을 쳐다보다가 몸을 돌려 창틀에 몸을 기대고 시선을 병실 문 쪽으로 돌렸다.“뭐가 신기한데?”수혁은 흰 가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유한의 시선을 따라 문 쪽을 힐끗 봤다.“네가 누구하고 말싸움하는 건 처음 보는데? 그것만 해도 충분히 신기하지 않아?”유한이 잠깐 멈칫했지만 별다른 말은 없었다.“솔직히 말해봐. 너 진리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데?”“어떻게 생각하긴.”유한은 대수롭지 않은 듯 되물었다.“너 말이야, 애매하니까 그래.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너 속엔 뭐가 있는 건지 모르겠어서 묻는 거잖아.”유한은 아무 말이 없었다.수혁은 알고 있었다.유한이 리은 이야기는 애써 비켜가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라는 걸. 이렇게 말을 아끼는 것도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을.그래서 더 묻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솔직하게 말해서, 우리는 다 진리은을 별로라고 생각했거든. 다들 네가 인영이랑 정리되는 걸 바랐고.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끼리 오래 알고 지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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