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얘기에 미쳐 버린 내 남편: Chapter 101 - Chapter 110

146 Chapters

제101화

인영은 원래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야 그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유한 오빠 마음속에 아직도 진리은이 있어.’‘유한 오빠는 아직도 진리은을 신경 쓰고 있어.’‘그런 건 절대 용납 못 해. 존재해서도, 일어나서도 안 돼.’화장실에 다녀오려고 리안이 병실 문을 조금 열었는데, 문틈 사이로 들려온 유한의 마지막 말이 또렷하게 그녀의 귀에 꽂혔다.리은은 그 자리에 멈췄다가,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다시 병상으로 돌아왔다.‘아, 그냥 익숙해서였고, 귀찮아서였구나.’‘그 말은 결국 주유한은 허인영을 좋아하고, 허인영을 많이 신경 쓰긴 하지만...’‘나랑 이혼해서 허인영에게 정식으로 본부인 자리를 만들어줄 생각은 없다는 거네.’‘그럼 이 세 사람의 감정 게임에서 도대체 누가 이긴 거지?’‘난 항상 내가 완전히 진 쪽이라고만 생각했는데...’‘지금 보니까... 진짜 승자는 없는 것 같아. 우리 모두... 다 진 셈이지.’리은은 여러 가지 검사를 거친 끝에 가벼운 폐렴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며칠간 입원해 링거 치료를 받기로 했다.의사의 말을 듣고 리은은 입원을 결정했다.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몸이 무너질 수는 없었다.다만 광윤에게는 한마디 해두는 게 맞았다.이렇게 며칠 걸러 한 번씩 문제를 만드는 직원이라는 사실이 리은 스스로도 민망했다.“내 핸드폰은?”유한이 리은을 한 번 흘끗 보았다.“안 가져왔어. 사람 시켜서 갖다 줄까?”리은은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그건 곧 동의였다.요즘 세상에 핸드폰 없이 버틴다는 건 말이 안 됐다.유한은 집으로 전화를 걸어 핸드폰을 병원으로 가져오라고 지시했다.통화가 끝난 걸 확인한 리은이 담담하게 말했다.“너 바쁘면 가. 여기 나 혼자 있어도 돼.”링거만 다 맞으면 혼자 움직이는 데도 문제없었다.누군가의 간호가 필요한 상태는 아니었다.비록 병원에 오게 된 계기가 유한 때문이긴 했지만.눈빛을 가라앉은 유한이 리은을 똑바로 바라봤다.“나 가라는 거야?”리은은 속내를 숨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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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

유한은 병원을 나서자마자 곧장 복싱클럽으로 향했다.링 위에 오르자마자 코치와 마주 서서, 쉬지 않고 한 시간 내내 주먹을 주고받았다.연달아 밀려나던 코치가 결국 손으로 잠시 멈추자는 신호를 보냈다.“야, 야, 스톱. 그만하자. 오늘 왜 이래? 기분 안 좋은 거 티 너무 난다. 화력이 말이 안 되잖아, 내가 버티질 못하겠어.”유한의 얼굴은 잔뜩 가라앉아 있었고, 이마와 뺨을 타고 흐른 땀이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턱을 꽉 다문 유한이 마우스피스를 뽑아내고 글러브를 벗었다.그대로 링 아래로 내려와 바닥에 앉아 물병을 집어 들고 단숨에 들이켰다.하지만 가슴속에 들끓는 눈노는 전혀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더 세게 타올랐다.‘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고, 마음이 통한다?’그 생각이 스치자 유한은 빈 물병을 세게 움켜쥐고 그대로 집어던졌다.‘진리은, 점점 더 거리낌이 없어지네. 이젠 대놓고 나를 도발하겠다는 거잖아.’‘이혼? 꿈도 꾸지 마.’코치는 다시 물병 하나를 내밀었다.유한은 물병을 받아서 얼굴 위로 그대로 부었다. 차가운 물줄기가 흘러내리자, 그제서야 유한은 기둥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좀 나아졌냐?”유한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떨어진 체력을 회복하는 데 집중했다. 이 분노를 여기서 다 쏟아내지 않으면, 무슨 짓을 할지 스스로도 장담할 수 없었다.누군가를 다치게 해서라도 자신이 받은 상처를 덮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코치는 고등학생 때부터 유한을 가르쳐온 사람이었다.오래된 인연이었고, 스승이자 형 같은 존재였다.“무슨 고민 있구나?”유한은 진리은에 관한 이야기를 스스로 꺼내본 적이 거의 없었다.밖에서는 늘 귀찮아하거나 아예 언급 자체를 거부하는 태도를 보였다.“코치님, 여자친구랑 사귄 지 몇 년 됐지?”“3년 좀 넘었지. 근데 갑자기 왜?”“서로 좋아해?”“그럼 아니겠어? 갑자기 왜 이런 걸 묻는데? 혹시 너도 연애 문제로 골치 아픈 거냐?”유한은 젖은 머리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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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화

리은은 막 싸우다가 목이 쉬었다고 말하려던 참이었는데, 그때 병실 문이 열리며 간호사가 들어왔다.“이제 약 갈아드릴게요.”병원 생활을 오래 해온 성빈이 상황을 금세 짐작하지 못할 리 없었다.[지금 병원이야? 어디 병원이야? 무슨 일 있어? 다친 거야?]연달아 쏟아지는 성빈의 질문에 리은은 바로 답을 하지 못하고 잠시 말을 잃었다.[어느 병원이야. 오빠한테 거짓말하지 마.]결국 더 숨길 수 없게 된 리은이 사실대로 말했다.성빈은 요양병원에 부탁해서 병원으로 이동했고, 숙련된 간병인이 휠체어를 밀어 병실로 들어왔다. 리은은 그가 온다는 걸 알고 미리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바이러스성 감기나 고열은 아니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는 게 맞았다.“어때? 어디가 불편해?”리은은 눈매를 살짝 접으며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지금은 열도 내렸고 그냥 감기야. 며칠 수액만 맞으면 돼. 걱정하지 마.”리은의 얼굴에 머물던 성빈의 시선이 목덜미에 남은 자국들에 닿자 미세하게 멈췄다. 그 시선을 느낀 리은은 괜히 어색해져서 머리카락을 들어 올려 자국을 가리려 했다.그제야 성빈은 더 보지 않겠다는 듯 시선을 돌렸다. 리은이 불편하게 생각할까 싶어서였다.“매제한테 맞은 거야?”리은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이게 맞은 거라고 해야 하나... 그냥 억지로 끌려간 정도인데.’“아니야. 오빠가 너무 크게 생각하지 마.”“너랑 매제는 원래 그런 사이야? 분명 예전에 나한테 말했잖아. 매제랑 결혼하겠다고 한 이유가...”“오빠.”리은이 나지막히 말했다. 자신과 유한의 실제 관계를 성빈 앞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괜히 성빈이 더 걱정하고, 마음을 쓸까 봐.성빈은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리은을 바라봤다.“리은아, 오빠한테 거짓말한 거야? 너랑 매제 사이, 네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 좋지는 않은 거지?”“나는...”리은은 유한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하나씩 풀어내기엔 너무 복잡했고, 몇 마디로는 절대 다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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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

리은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유한이 다시 돌아올 거라고는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이런 일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원래부터 제멋대로였던 유한은, 결혼 후에는 그런 성향이 더 짙어졌다. 한 번 돌아서면 끝이고, 나갔다가 다시 발길을 돌린 적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유한은 정말로 돌아왔다.유한은 굳은 얼굴로 도시락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리은을 차갑게 내려다봤다.“내 질문에 대답해. 내가 돌아오는 게 그렇게 싫었어?”리은은 그가 어떤 대답을 듣고 싶은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속이지 않고 마음속 말을 꺼냈다.“난 네가 돌아올 거라고 기대한 적 없어. 이 대답이면 만족해?”‘넌 내 앞에서 수도 없이 돌아섰잖아.’‘그중에 단 한 번이라도 나 때문에 되돌아온 적이 있었어?’‘없어. 단 한 번도.’리은의 말뜻을 이해한 유한은 주먹을 천천히 움켜쥐었다. 이번에는 곧바로 화를 내지 않고 시선을 성빈 쪽으로 옮겼다. 유한의 눈길은 성빈의 다리와 휠체어에 머무르자, 얇은 입술이 비틀리듯 올라갔다.“몸도 불편한데 괜히 밖으로 돌아다니지 마. 리은은 지금 형님까지 신경 쓸 여유 없으니까, 형님이 괜히 리은이 귀찮게 하지 않는 게 좋겠어.”조금의 체면도, 배려도 없는 말이었다.성빈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허벅지 위에 얹힌 손이 서서히 주먹을 꽉 쥐었다.“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그보다 먼저 리은이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리은은 한 번도 성빈을 짐이나 부담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성빈은 얼굴이 창백해진 채 고개를 저었다.“리은아, 매제 말이 맞아. 오빠가 너무 생각이 짧았어.”‘오빠’라는 말이 나오자 유한의 눈빛이 단번에 날카로워졌다.“장 비서.”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곧바로 문을 열고 들어온 선호는 병실 안 분위기를 훑어본 뒤 고개를 숙였다.“대표님.”“형님 요양병원으로 돌아가게 모셔다 드려.”“알겠습니다, 대표님.”리은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지만 막지는 않았다. 성빈의 몸 상태를 생각하면 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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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화

리은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잠시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나? 내가 너무하다고?”말을 하다 말고 리은 스스로 헛웃음을 흘렸다.“내가 누구를 어떻게 괴롭혔다는 거야? 너? 주 대표님, 해성시에서 너 위에 군림할 사람이 있기나 해? 누가 감히 너한테 그런 짓을 해. 나랑 농담하는 거야?”“다른 사람들은 확실히 못 하지.”유한은 그렇게 말하며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얼굴이 가까워질수록 검은 눈동자가 리은을 꿰뚫을 듯 내려다봤다.“근데 딱 한 사람이 있어. 죽을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내 마지노선을 건드리는 인간.”리은은 유한이 말하는 그 ‘한 사람’이 자신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리은은 자신의 위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주유한 눈에 나는 아무것도 아니잖아. 그런 내가 어떻게 이 남자의 마지노선을 시험해?’‘말도 안 돼. 주유한이 말하는 사람은 나랑은 전혀 상관없어.’‘이 5년 동안, 나는 이 남자 앞에서 거의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살았어.’“네가 말하는 그 사람, 나랑은 상관없어.”유한이 짧게 비웃었다.“그래, 상관없다 이거지.”잠시 침묵이 흐른 뒤, 유한이 낮게 물었다.“그럼 너랑 상관있는 건 누구야? 네 오빠?”리은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미간이 저절로 좁혀졌다.“우리 사이 문제에 왜 자꾸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 왜 매번 내 오빠 얘길 꺼내? 오빠는 너랑 아무 사이도 아니고, 너한테 잘못한 적도 없어. 근데 왜 그렇게 오빠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이건 리은이 계속 이해하지 못하던 부분이었다. 성빈을 병문안하러 갈 때마다, 유한의 눈빛과 태도는 유독 더 차가워졌다. 이유를 아무리 떠올려봐도 둘 사이에 얽힌 일은 없었다.유한은 리은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시선은 마치 사람을 삼킬 것 같은 깊은 우물 같았다.“왜 내가 네 오빠를 못마땅해하는지 궁금해?”“몰라!”리은은 정말 몰랐다.유한의 턱이 살짝 굳었다. 한동안 리은을 바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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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화

사실 리은이 처음부터 유한의 사생활을 묻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결혼 초반, 리은은 유한에게 기대를 품고 있었다.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서 두 사람이 제대로 부부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유한은 어떻게 했던가?신혼 첫날밤, 유한은 리은을 커다란 저택에 혼자 남겨두었다.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놓인 그 침대 위에서 리은은 밤새 꼼짝없이 혼자 있어야 했다.그렇다면 유한은 어디에 있었을까?그때의 리은은 신혼 첫날밤에 전화로 유한을 불러낸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는 법이었다.나중에서야 리은은 알았다. 그날 밤 울렸던 전화의 벨소리는 허인영 전용으로 설정된 것이었다.신혼 첫날밤, 유한은 새 신부인 리은을 두고 다른 여자의 곁으로 갔다. 리은의 감정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리은도 사람이다. 상처받았고 억울하고 화가 났다.그럼에도 리은은 사흘을 기다린 뒤에야 유한을 다시 볼 수 있었다.강덕순이 신혼 첫날밤 유한이 리은을 혼자 두고 나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유한은 아마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유한이 돌아온 것도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할머니의 강요 때문이었다.그런데 사흘 만에 돌아온 유한이 리은을 보자마자 내뱉은 첫마디는 이랬다.“이제 내 아내니까, 앞으로는 얌전히 굴어.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고, 말 잘 들어.”리은은 유한이 사흘이나 자리를 비웠다면, 최소한 이유라도 설명해줄 거라 생각했다. 설령 거짓말이라도 저런 경고보다는 나았을 것이다.“주유한, 너 나랑 결혼하는 게 그렇게 싫어?”그때 유한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리은을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나라면, 원하지도 않는 사람하고 억지로 결혼하고 싶겠어?”그 말은 유한이 리은과의 결혼이 자신의 의지가 아님을, 처음으로 아주 분명하게 드러낸 순간이었다.하지만 리은이 이해할 수 없었던 건 따로 있었다. ‘그렇게까지 결혼이 싫었다면, 할머니 강덕순이 결혼을 제안했을 때 왜 곧바로 반대하지 않았을까?’만약 그때도 그날처럼 노골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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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화

“귀 닫고 눈 감고, 머리 위에 뿔이 몇 개나 자라든 모른 척하는 것도 얌전한 게 아니고, 분수를 지킨 게 아니라면 말이야.”리은은 숨을 고르고 유한을 똑바로 바라봤다.“그럼 도대체 내가 어디까지 참아야 네가 말하는 ‘얌전한 게’되는 건데?”리은은 두 팔을 천천히 벌렸다.“아니면 내가 애초에 눈치를 좀 챙겨서, 더 일찍 네 아내 자리에서 물러나 줬어야 했던 거야? 네 마음속 사람한테 그 자리를 내 줘야 그게 말 잘 듣는 거고, 쓸데없는 생각 안 하는 거야?”유한이 단단하게 주먹을 쥐었다. 리은의 입에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말들이 하나같이 유한의 가슴 깊숙한 곳을 정확하게 찔렀다.“그만해!”유한은 손을 들어 리은을 가리켰다. 얼굴은 음울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분노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말도 안 되는 소리로 사람 몰아붙이지 마. 내가 그때 그런 말 한 건, 네가 나한테...”말끝이 뚝 끊겼다.유한은 그 뒤의 말을 끝내 꺼내지 못했다. 어떤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게 된다. 덮어두고 버텨오던 것들이 한꺼번에 무너지게 되니까.유한의 안색이 갑자기 창백해졌다가 다시 붉어졌다. 결국 유한은 이를 악물고 냉소를 흘렸다.“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도 정도가 있지. 본말을 뒤집는 재주 하나는 대단하네. 됐어, 네가 이겼다.”그 말을 남긴 유한은 리은을 한 번 더 날카롭게 노려본 뒤 병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분노와 체념이 뒤섞인 기색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리은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닫힌 문을 바라보다가 거의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정말... 미쳤나 봐.”...유한이 화를 내며 떠난 뒤, 강덕순이 병실을 찾아왔다.“리은아, 괜찮니? 어디 많이 안 좋아?”“할머니, 어떻게 오셨어요?”“네가 걱정돼서 와봤지.”리은은 강덕순의 손을 잡고 조용히 말했다.“저 괜찮아요.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해요.”강덕순은 리은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유한이 그 못된 녀석은 내가 이미 혼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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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화

“오빠.”유한은 고개를 들어 인영을 봤다.“너도 왜 이렇게 빨리 돌아왔어?”인영은 부드럽게 웃었다.“오빠가 너무 급하게 가는 것 같아서 걱정됐어. 그래서 따라왔어.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유한은 잠시 말이 없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별일은 아니고, M국 일정은 당분간 미루기로 했어.”그 말을 듣는 순간, 인영은 아무 소리 없이 주먹을 꽉 쥐었다.‘유한 오빠가 진리은 그 여자 때문에 M국도 안 가겠다고?’‘말도 안 돼...’인영은 곧장 표정을 정리하고 다가갔다. 말투는 여전히 다정했다.“왜? 오빠 무슨 일 있는 거야? 혹시라도 문제가 있으면 혼자 끙끙대지 말고 말해. 말하면 다 같이 방법을 찾을 수 있잖아.”“내가 무슨 문제가 있겠어.”“그럼 왜 갑자기 일정까지 바꿔?”인영의 태도에는 이유를 듣기 전까지 물러서지 않겠다는 기색이 분명했다.유한은 잠시 인영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꼭 내가 말해야 해?”“아...”인영은 그제야 자신이 조급해졌다는 걸 깨닫고 급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그런 뜻은 아니야. 그냥 걱정돼서 그래. 우리 부모님도 오빠 걱정 많이 하셨어. 무슨 일 생긴 줄 알고.”그 말을 듣고서야 유한은 손에 쥐고 있던 만년필을 내려놓았다.“사적인 일이 좀 있어.”‘사적인 일...?’‘진리은이 오빠의 사적인 일이야?’‘그동안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굴더니? 왜 이제 와서 신경을 쓰는 거야?’‘안 돼! 이렇게 두면 안 돼. 빨리 이혼부터 해야 해. 시간 끌수록 변수가 생겨.’인영은 다시 미소를 지었다.“그럼 알겠어. 마침 내가 가져온 계약서가 하나 있어. 오빠 서명만 하면 되는 건데, 겸사겸사 가져왔어. 여기 사인해 줘.”유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인영은 서류철을 건네며 웃었지만, 속은 이미 바짝 타 들어 가고 있었다.‘제발... 들키지 마.’‘한 장뿐이야. 설마 눈치채겠어?’유한은 계약서 앞부분을 몇 장 넘기면서 훑어봤다. 특별히 문제가 될 부분은 없어 보였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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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화

‘안 돼, 절대 유한 오빠가 이게 내가 일부러 꾸민 일이라고 생각하게 하면 안 돼!’‘무슨 일이 있어도... 오빠가 내가 얼마나 진리은이랑 이혼하길 바라고 있는지 알아채게 해선 안 돼!’인영은 지난 5년 동안 유한 곁에서 욕심 없고, 묵묵히 희생하는 사람처럼 굴어왔다. 한결같고 순하면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모습. 그 이미지를 이 일 하나로 무너지게 할 수는 없었다.곧바로 표정을 바꾼 인영의 눈가가 순식간에 붉어졌다.“오빠... 나, 나 그냥... 그냥...”유한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유한은 서류를 집어 들고 책상 위에 내려쳤다.“그냥 뭐?”인영은 고개를 천천히 숙였다. 목소리는 떨렸고, 끝은 흐려졌다.“미안해. 나도... 나도 속일 생각은 없었어. 근데, 근데...”유한은 인영을 말없이 바라봤다.“진리은 씨가 먼저 나한테 연락했어. 직접 만나자고 하면서 도움을 좀 달라고 해서... 그래서 내가...”“잠깐.”유한이 갑자기 말을 끊었다.인영은 눈물이 고인 채로 고개를 들었다. 억울하고 상처받은 사람처럼 유한을 바라봤다.“방금 뭐라고 했어? 리은이가 먼저 널 만나자고 했다고?”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응. 처음엔 나도 만나기 싫었어. 오빠도 알잖아, 나 사실 진리은 씨 좋아하지 않는 거.”“근데 진리은 씨가 오빠 얘기를 하고 싶다고 해서... 그래서 한 번만 만나기로 한 거야. 근데...”인영은 일부러 말을 끊고 숨을 골랐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진리은 씨가 오빠랑 이혼하고 싶대.”“오빠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다고 했어.”그 말을 들은 순간, 유한의 주먹이 세게 쥐어졌다. 얼굴은 금세 얼음처럼 식었다.“그거 말고는?”인영은 잠시 망설였다. 입술을 꾹 깨문 뒤,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이것도... 있어.”인영은 화면을 조작한 뒤, 녹음 파일 하나를 재생했다.“사실... 예전에도 이혼 이야기를 먼저 꺼낸 건 저였어요. 그런데 유한 씨가 계속 서류에 도장을 안 찍었을 뿐입니다.”“말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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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화

인영은 눈가가 붉어진 채로 유한을 바라봤다. 억울함이 가득 담긴 얼굴이었다.“오빠가 그렇게 말하니까... 정말 마음 아파. 우리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잖아. 이렇게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는데, 오빠 눈에는 내가 그냥 외부인이야?”유한은 인영의 손을 조용히 떼어냈다. 그리고 감정이 거의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짧게 말했다.“미안.”달래지도 설명하지도 않고 그저 그뿐이었다.인영의 속에서는 분노와 질투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고 있었지만, 동시에 이 상황에서 더 나가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번 일로 이미 유한의 심기를 건드렸다. 여기서 더 욕심을 부렸다가는 완전히 돌아설지도 모른다.인영은 손등으로 눈가를 가볍게 닦으면서 이해심 많은 사람처럼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오빠가 일부러 그런 말 한 거 아니라는 거 알아. 난 그냥... 오빠가 내가 멋대로 나선 거 때문에 화내지만 않았으면 좋겠어.”“난 정말 오빠가 이 결혼 안에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게 보기 힘들었어.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오빠가 이 몇 년 동안 얼마나 행복하지 않았는지 나는 다 알잖아.”“그래서 그냥... 오빠가 거기서 빠져나오길 바랐어. 과거도 잊고, 앞으로 나아가길 바랐고...”인영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진리은 씨가 예전에 했던 일들, 또 오빠한테 그렇게 대했던 거... 난 그냥 오빠가 그걸 내려놓고 앞을 봤으면 했을 뿐이야. 내 마음... 오빠라면 이해해 주겠지? 나를 탓하지는 않을 거지?”“그만해.”눈을 감았다가 뜨면서, 꽉 조여 있던 유한의 턱선도 조금 느슨해졌다. 그리고 눈가가 붉어진 인영을 바라봤다.“널 탓하는 건 아니야. 근데 이건 분명히 해 두자. 이런 일은 이번이 마지막이야. 너도 알잖아. 내 일에 남이 끼어드는 거, 난 원래부터 싫어해.”그 말을 듣고서야 인영은 비로소 한숨을 길게 내쉴 수 있었다.인영은 고개를 천천히 숙였다.“알겠어.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 이제 돌아가. 나도 나가 봐야 하거든.”유한은 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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