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얘기에 미쳐 버린 내 남편: Chapter 211 - Chapter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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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1화

유한은 퀵서비스 상자를 뜯고 안에서 약 상자를 꺼냈다.상자 위에는 약 이름과 효능이 분명하게 적혀 있었다.사후피임약이었다.리은의 시선이 그 약에 고정됐다.리은이 손을 뻗어 다시 약을 가져가려는 순간, 유한이 한발 먼저 약을 집어들었다.리은은 곧장 유한을 올려다봤다.“돌려줘.”유한은 말없이 약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알약 하나뿐이었다.“이거 먹으려고?”‘당연하지. 먹을 생각이 아니면 왜 샀겠어...’유한이 소리없이 웃더니, 리은의 손목을 잡아끌고 그대로 휴게실 쪽으로 향했다.리은은 잠시 멍해졌다가 뒤늦게 저항했다.“뭐 하는 거야? 놔!”“지금 뭐 하냐고!”세면대 문을 밀어 열더니, 유한은 하얀 알약을 그대로 안에 던져 넣었다.그리고 곧바로 수도를 틀었다.알약은 물살을 타고 순식간에 사라졌다.“안 돼!”리은이 막으려고 했지만, 모든 동작이 너무 빠르고 자연스러워서 손을 뻗을 틈조차 없었다.약이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하자 리은의 표정이 바뀌었다.돌아서서 유한을 밀치면서 소리쳤다.“지금 뭐 한 거야?”유한은 밀려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시선만 깊어졌을 뿐이었다.“먹지 마.”“왜? 왜 내가 못 먹는데?”“몸에 안 좋아.”그 말에 리은은 헛웃음을 흘렸다. 조소가 분명히 섞여 있었다.“몸에 안 좋아? 그럼 어제는 왜 멈추지도 않았어? 왜 아무 생각 없이 계속했어? 왜 피임도 안 했는데?”유한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검은 눈동자가 리은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그렇게까지... 우리 애 갖기 싫어?”리은은 냉정하게 대답했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응, 싫어.”유한은 리은에게 그런 고통을 다시 감내할 자격이 없었다.한 번이면 충분했다.입원해 있는 동안, 주변의 다정한 부부들을 보면서 리은의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그 고생은... 절대 값진 게 아니었어.’그래서 다시는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유한의 표정이 싸늘해졌다.“다시 말해 봐.”“몇 번을 말해도 똑같아. 주유한, 내가 다시 네 아이 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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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2화

결과는 결국 같았다.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침대 머리맡에 기대 앉은 리은은, 몸을 감싼 이불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욕실 쪽에서 물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이게 뭐야?’‘어쩌다 이렇게까지 온 거지?’유한은 분명 리은을 보기 싫어했다.싫어해서 피했고, 리은과 함께 있는 걸 꺼렸다.침대 위에서의 일 말고는 평소에는 얼굴 보기도 어려웠다.그런데 요즘은 달랐다.모든 게.왜 갑자기 이렇게 변한 건지... 리은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그때 욕실 문이 열렸다.리은은 고개를 돌렸다.젖은 머리의 유한과 시선이 맞닿았다.“이제 얌전해졌어?”리은은 가슴이 막힌 듯 답했다.“도대체 목적이 뭐야?”유한은 수건을 내려놓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아까 말했잖아. 둘째.”그 단어가 들리는 순간, 리은은 마치 털이 곤두선 고양이처럼 반응했다.“미쳤으면 정신병원에나 가. 제발 정신 차려!”“내가 농담하는 것 같아?”그 말에 리은의 몸이 굳어지면서,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기운이 올라왔다.“진짜 미친 거야? 우리가 그런 얘기할 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해? 이기적인 것도 정도가 있지.”유한은 침대 쪽으로 다가왔다.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우리 관계가 뭔데?”“네가 제일 잘 알잖아. 겉만 부부일 뿐...”“난 분명히 알고 있어. 근데 너는 진짜 알고 있어?”“당연히 알지.”유한은 짧게 비웃었다.“알긴 뭘 알아.”리은은 말문이 막힌 채 그를 바라봤다.“뭘 봐?”유한은 말을 이었다.“언제 끝낼지는 네가 정하는 게 아니야. 우린 부부고, 아이는 자연스러운 거야. 뒤에서 몰래 잔꾀 부릴 생각은 접어.”리은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이불을 더 세게 움켜쥐면서 옆에 있던 베개를 집어 들고 그대로 던졌다.“주유한, 진짜 뻔뻔해. 난 네가 이렇게까지 뻔뻔한 인간인 줄 몰랐어.”베개를 받아 든 유한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베개를 다시 제자리에 던져 놓았다.“널 아내로 삼은 사람이 나야. 이제 와서 체면이 필요하겠어?”리은의 표정이 변했다.“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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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3화

유한이 방금 했던 말을 떠올리자 리은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농담처럼 던진 말이 아니었다.정말로 아이를 가지게 해서 하나 더 낳게 하겠다는 뜻이었다.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맨몸으로 있자니 익숙하지 않아서, 리은은 자신의 셔츠 대신 유한의 셔츠를 걸쳤다. 리은의 키는 작은 편이 아니다. 맨발로 서도 정확히 170cm기에 유한의 셔츠가 아무리 커도 엉덩이 언저리까지만 겨우 가려줄 뿐이었다. 움직이면 안쪽이 보일 것 같은 불안감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게다가 아까 떠나던 순간, 유한이 바닥에 떨어져 있던 리은의 속옷까지 함께 가져간 걸 리은은 똑똑히 봤다.‘미친 놈, 변태야.’‘애초에 그 골목으로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는데...’‘그랬으면 주유한과 엮일 이유도 없었겠지.’리은은 힘없이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러면서도 손은 천천히 자신의 아랫배로 향했다.유한이 그녀를 이곳에 묶어둔 이유는 분명했다. 24시간이 지나게 해서 피임약을 먹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리은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한 번, 두 번으로 설마 그렇게 쉽게...’팔을 들어 눈가를 가리자, 생각이 흐려지면서 어느새 졸음이 스며들었다....그 시각, 회사 로비.안내데스크 직원은 인영이 곧장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걸 보고 급히 앞으로 나섰다.“허인영 씨, 안녕하세요.”인영은 시선을 옮겨 직원 쪽을 보았다.“무슨 일이죠?”안내데스크 직원은 인영의 태도를 보며 자연스럽게 리은을 떠올렸다. 늘 부드럽고 말하기 편했던 리은과는 너무도 달랐다.역시 사람은 비교가 된다.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루기 쉬운 쪽을 선호했다.“죄송합니다, 허인영 씨. 장 비서님 지시로, 앞으로는 누구든 주 대표님을 만나려면 사전 예약이 필요합니다. 허락 없이 올라가실 수 없습니다.”잠시 멈칫하던 인영은 비웃듯 선글라스를 벗고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제가 누군지 몰라요?”안내데스크 직원은 예의 있게 미소를 유지했다.“그게 아니라... 저도 장 비서님께 여쭤봤습니다. 인영 씨도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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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4화

선호를 보자마자 인영은 숨도 고르지 않고 따져 물었다.“장 비서님, 제 지문을 삭제하셨습니까?”선호는 안경을 가볍게 밀어 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허인영 씨, 죄송합니다만 주 대표님의 지시였습니다.”인영은 잠시 말을 잃고 선호를 똑바로 바라봤다.“지금 뭐라고 하셨죠? 대표님이 직접 그렇게 하라고 했다는 말씀이세요?”선호는 다시 한번 분명히 고개를 끄덕였다.“예. 주 대표님의 결정이 맞습니다.”“그럴 리 없어요.”인영은 즉각 부정했다.“전 그동안 아무 제약 없이 드나들었어요. 주 대표가 이유도 없이 이런 결정을 내릴 리 없어요. 대체 왜죠?”말을 잇던 인영은 스스로 어떤 결론에 닿은 듯 미간을 좁혔다. 선호의 옷깃을 움켜쥐고 따져 물었다.“진리은 때문이죠? 또 무슨 수를 써서 주 대표를 부추긴 거죠?”선호는 인상을 찌푸리며 한 발짝 물러섰다. 유한의 수석비서이기에 밖에서는 늘 사람들이 예의를 갖춰 대우했다.누군가 자신의 옷깃을 잡고 몰아붙이는 건 처음이었다.선호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말을 정리했다.“허인영 씨,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주 대표님의 지시입니다. 사모님께서는 어떤 관여도 하지 않으셨습니다.”“사모님...?”인영은 주먹을 꽉 쥐었다. 눈에 담긴 감정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진리은은 사모님이고, 나는 끝까지 허인영 씨라는 거야.’“대표님을 만나야겠어요.”선호는 차분한 태도를 유지했다.“주 대표님은 지금 일정이 많으십니다.”완곡한 거절에 인영의 인내심이 결국 무너졌다. 인앞으로 나선 인영이 선호의 뺨을 세게 때렸다.“ 주 대표 비서 주제에 어디서 감히! 주 대표는 나를 거절한 적이 없어요.”안내데스크 직원들은 숨을 삼키면서 아무도 말을 잇지 못했다.선호에게까지 손을 대다니, 인영의 행동은 너무도 거리낌이 없었다.고개가 돌아갔다가 자세를 바로 한 선호가 안경을 다시 고쳐 쓰며 인영을 바라봤다.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인영은 자신들을 겉으로만 예우했을 뿐, 속으로는 깔보고 있었다는 걸.“한 번 더 말씀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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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5화

“맞아, 맞아... 그만 얘기하자.”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마자 인영은 곧장 대표실로 향했다. 선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더 이상 막지도 않았다.인영은 분노에 휩싸인 채 문을 거칠게 밀고 들어가면서 노크조차 하지 않았다.“유한 오빠, 왜...”소리를 들은 유한이 고개를 들었다. 인영이 그렇게 들어오는 걸 보자, 유한의 표정이 단숨에 가라앉았다.“누가 들어오라고 했어?”인영은 그 자리에 굳은 채 유한을 바라봤다.“오빠...?”유한은 인영을 보지도 않은 채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들어와.”뒤이어 들어온 선호가 인영 옆에 섰다.“죄송합니다, 대표님.”선호의 얼굴에 남은 흔적을 한눈에 알아차린 유한의 시선이 차갑게 내려앉았다.그제야 인영은 선호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정말로 유한의 지시였다.자유롭게 드나들던 주강그룹의 출입이 제한됐다는 사실이 이제야 실감이 났다.유한의 태도를 마주하자 인영의 마음은 어지럽게 흔들렸다.“오빠, 나는...”“사람 하나 제대로 못 막아?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너도 비서일 더 이상 못 해.”선호를 향한 말이었지만, 인영은 그 말이 자신을 향했다는 걸 분명하게 느꼈다.표정이 조금씩 흐려진 인영이 주먹을 꽉 쥔 채 숨을 고르며 말했다.“미안해. 난 장 비서님이 제멋대로 그런 줄 알았어. 아니면 누군가 말해서 내 지문을 지운 줄 알고... 그래서 화가 났던 거야.”“그럼 누굴 떠올렸는데?”“그게...”인영은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진리은 씨가 그렇게 한 줄 알았어. 그래서 감정이 앞섰어. 오해였어.”“설령 리은이 시켰다 해도 뭐가 문제야?”인영은 고개를 들고 유한을 바라봤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네...?”유한의 답을 기다리기도 전에 인영이 말을 이었다.“예전엔 진리은 씨가 회사에 오는 것도 싫어했잖아. 출입도 막아 뒀고. 그런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장 비서님께 지시를 해?”“내 아내니까. 그리고 할머니가 직접 정하신 후계자니까. 그 정도면 충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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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6화

“무슨 말이야!”리은의 목덜미에 남은 자국을 확인한 인영의 눈이 붉어졌다. 가슴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라 숨조차 고르기 힘들어 보였다. 감정을 전혀 통제할 수 없었고, 리은을 향한 인영의 시선에는 노골적인 혐오가 담겼다. 마치 리은이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진리은 씨, 여긴 회사야. 그런 차림으로 서 있다니, 정말 뻔뻔하네.”예전 같았으면 인영이 그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볼 때, 리은의 마음 한구석에는 조금이나마 죄책감이 남았을 것이다.유한이 인영과 정리한 뒤에야 자신과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드러냈고, 형식상으로는 인영의 자리를 가로챈 쪽은 리은이니까.하지만 지금은 달랐다.인영의 증오를 마주하면서도 리은의 마음에는 더 이상 흔들림이 없었다.리은은 분명히 말했다. 이 자리를 돌려줄 의향도 있었고, 이혼 합의서에도 서명했다.붙잡고 놓지 않은 건 유한이었다.그 선택의 결과까지 리은이 짊어질 이유는 없었다.“내가 뭘 입었는데?”리은은 자신의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셔츠 자락을 내려다봤다.“아, 보기에 좀 그렇긴 하네. 그럼 허인영 씨가 좀 도와줄래? 옷 좀 사서 여기로 가져다줘.”그 말은 인영에게 전혀 다르게 들렸다.비웃음과 자랑처럼.분노는 더 깊어졌지만 유한의 앞이라서 인영은 이를 악물고 참았다.“오빠, 왜 회사에서 저런 모습으로 있게 허용한 거야? 체면은 생각 안 해?”“아, 그건 미안한데.”리은이 먼저 입을 열었다.“문제 일으킨 건 내가 아니라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주 대표야. 내 옷을 억지로 벗기고 휴게실에 가둔 것도 주 대표고, 옷을 가져가서 내가 못 나가게 한 것도 주 대표였어.”“그러니까 체면 걱정할 시간에 주 대표는 지금 이혼부터 걱정해야 할 걸? 이혼하면 이 사무실 주인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 허인영 씨?”리은은 일부러 말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불편하면 모두가 불편해져야 했다.그리고 인영이 이 상황을 그냥 넘길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제일 초조한 건 허인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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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7화

리은은 멍하니 서 있다가 반사적으로 허리를 곧게 폈다.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가득 찼다.‘뭐야...? 설마 이 정도로?’‘내가 뭘 그렇게 잘못 말했단 말이야?’예전에 리은도 인영에게 훨씬 더 날 선 말들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숨이 막히고 속이 불편하긴 했어도 이렇게 쓰러진 적은 없었다.유한의 표정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의자에서 일어난 유한이 인영에게 다가가서 부축했다.뺨을 가볍게 두드려도 반응이 없자, 유한은 고개를 돌려 리은을 바라봤다.남자의 시선을 마주하자, 리은은 순간적으로 가슴이 조여 들었다. 하지만 주먹을 꽉 쥔 채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나를 왜 그렇게 봐? 난 그냥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야. 그렇게 걱정되고 신경 쓰이면, 나랑 거리 두면 되잖아. 그러면 허인영도 예전처럼 자극을 받을 일도 없을 거고.”두 사람이 마주치면, 이기는 쪽은 늘 정해져 있었다.지난 5년 동안, 그 승자는 언제나 인영이었다.유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인영을 안아 들고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리은은 그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면서 오랫동안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이렇게까지 신경 쓰면서...’‘그럼 왜 나랑은 아직도 이렇게 얽혀 있는 거야?’리은은 몸을 돌려 휴게실로 들어갔다. 문을 닫는 손에 힘이 실렸다.핸드폰도 가져오지 못한 상태라서 지금은 완전히 고립된 셈이었다.그렇다고 이 상태로 도망치듯 나갈 수도 없었다.시간이 한참 지난 후, 누군가 휴게실 문을 조심스럽게 노크하더니 선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사모님, 요청하신 옷은 앞에 두었습니다. 다른 일 없으시면 저는 물러나겠습니다.”리은은 잠시 그대로 서 있다가, 10초쯤 지나서야 문 쪽으로 걸어갔다.문을 열자 바닥에 정갈하게 놓인 옷들이 보였다. 그녀는 얼른 옷을 안으로 가져왔다.사이즈는 정확했다.옷을 갈아입고 난 뒤 휴게실에서 나온 리은은 시간을 확인했다.아직 24시간이 지나지 않았다.지금이라면 사후피임약을 사서 먹을 수 있었다.‘허인영이 완전히 쓸모없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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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8화

결국 리은은 피임약을 먹지 못했다.‘설마 이렇게까지 운이 없겠어.’한두 번으로 정말 임신이 되기라도 한다는 말인가?게다가 리은은 핸드폰을 꺼내 달력을 열어 날짜를 하나하나 짚어 보았다.계산해 보니 지금은 배란기도 아니었다. 아직 이틀은 더 남아 있었다.그제야 막혀 있던 숨통이 조금 트이는 것 같았다.그때,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가을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저... 팀장님.”리은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왜요, 가을 씨?”가을의 시선은 계속 리은의 목 쪽에 머물러 있었다. 호기심과 흥분이 섞인 눈빛이었다.그제야 리은은 아침에 목에 스카프를 둘렀다는 사실을 떠올렸다.하지만 아까는 그걸 완전히 잊고 있었다.새로 남은 흔적에 예전 자국까지 겹쳐서, 셔츠 깃으로는 다 가려지지 않았다.뒤늦게 깨닫고 얼굴이 달아오른 리은이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목을 가렸다.가을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팀장님, 혹시 남자친구 생기신 거예요? 아까 어디 다녀오신 거예요? 옷도 바뀌셨고요.”말하며 가을은 리은의 옷을 유심히 살폈다.“이거 올해 신상 아니에요? 저 공식몰에서 봤는데 아직 일주일은 더 있어야 판매 시작하던데요. 팀장님, 발매도 안 된 옷을 입고 계신 거면... 남자친구가 보통 분은 아니신 것 같은데요?”리은은 그런 부분까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그저 옷장의 옷은 주기적으로 바뀌고, 자신은 눈에 들어오는 옷을 입을 뿐이었다.그래서 뭐라고 답해야 할지 잠시 말이 막혔다.우길이 고개를 쭉 내밀며 물었다.“팀장님, 남자친구분 조건이 아주 좋으신가 봐요. 평소에도 입으신 게 다 유명 브랜드잖아요.”리은은 사적인 이야기를 업무로 끌고 오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하루 대부분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이고, 앞으로도 계속 마주해야 할 사이였다.모든 걸 끝까지 숨기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저... 남자친구는 없습니다.”잠시 말을 고른 뒤, 리은이 덧붙였다.“결혼은 했어요.”“네?”가을과 우길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왔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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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9화

“인영이는 괜찮습니다. 최근에 잠을 제대로 못 잔 것 같아서 그런 것 같고, 이미 검사도 다 했습니다. 건강에는 전혀 이상 없습니다. 두 분 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허 회장 부부는 서로를 잠시 바라보다가 유한에게 시선을 옮겼다.“인영이를 자네가 병원에 데려온 건가?”유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지금의 사회적 위치만 놓고 보면, 유한과 허 회장은 동등한 위치에 있었다.원칙대로라면 허 회장도 유한에게 존댓말을 써야 했다.하지만 두 집안은 오래전부터 왕래가 있던 사이였고, 어릴 때부터 양가 어른들이 서로를 알고 지냈다.그 탓에 허 회장은 지금까지도 유한을 늘 한결같이 ‘윗사람’이 아닌 ‘아랫사람’처럼 대했다.유한 역시 그런 점을 굳이 문제 삼지 않았다.호칭도 마찬가지였다.유한은 형식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당초 허씨 집안과의 혼인 발표가 있었을 때조차도 말을 바꾸지 않았다.여전히 유한은 인영의 아버지인 허재근을 그대로 ‘회장님’이라고 불렀다.“인영이는 정말 아무 일 없는 거지?”“네. 곧 깨어날 겁니다.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아이고... 인영이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우리 부부는 정말 살 수가 없어.”수혁이 안경을 밀어 올리며 헛기침을 했다.“회장님, 사모님. 정말로 괜찮습니다. 제가 보증하겠습니다.”“그래, 다행이다. 다행이야...”허 회장은 아내를 다독인 뒤 유한을 바라봤다.“유한아, 언제 시간 되면 집에 와서 같이 밥 한번 먹자.”“알겠습니다.”“그래, 그럼 날짜는 나중에 다시 잡자. 회사에 아직 볼 일 있지? 바쁘면 먼저 가 봐라. 우리가 여기서 인영이 보고 있을 테니까.”유한은 짧게 말했다.“그럼 먼저 가겠습니다.”“그래, 조심해서 가.”몇 사람은 그렇게 유한이 자리를 떠나는 걸 지켜봤다.수혁도 슬슬 빠져나갈 틈을 노렸다.“저도...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수혁아, 잠깐만. 자네한테 물어볼 게 있어.”수혁은 입꼬리를 슬쩍 올리면서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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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0화

허 회장 부부는 서로를 잠시 바라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수혁의 뒷모습이 멀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제야 병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인영은 이미 의식을 되찾은 상태였다.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 반사적으로 다시 눈을 감았다.‘유한 오빠가 들어오는 건가...’“인영아.”익숙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자, 인영은 곧바로 눈을 뜨고 상체를 일으켰다.“아빠, 엄마? 두 분이 어떻게 오셨어요?”“수혁이가 전화했어. 네가 쓰러졌다고 해서 아빠랑 바로 왔지. 괜찮니? 어디 불편한 데는 없고?”인영은 대답 대신 시선을 부모 뒤쪽으로 보냈다.“유한 오빠는요? 왜 같이 안 들어와요?”허 회장 부부는 다시 한번 시선을 주고받았다.잠시 후, 한영숙이 입을 열었다.“회사에 일이 있다면서 먼저 갔어.”“갔어요?”인영의 목소리가 작아지면서 이불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사실 인영은 완전히 정신을 잃은 게 아니었다.상황을 넘기기 위해 일부러 의식을 놓은 척했을 뿐이었다.그런데 유한은 병원까지 데려다 놓고,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고 떠나 버렸다.‘나를 이렇게 두고 갔다고?’이를 악문 인영이 침대를 내리치며 소리쳤다.“진리은 그 여자가... 회사에서 그것도 대낮에 유한 오빠을 유혹해서 그런 짓까지 하게 만들었어요!”허 회장 부부는 놀란 표정으로 인영을 바라봤다.“인영아, 무슨 말을 하는 거니?”“제가 회사에 유한을 만나러 갔는데, 그 여자가 유한 오빠의 사무실에 있었어요. 옷도 제대로 안 입고... 둘이 거기서 그런 짓을 했어요. 저한테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말하고, 속옷까지 사다 달라고 했어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요?”“뭐라고?”허 회장 부부의 표정도 굳어졌다.“그게 사실이라면... 너무 지나친 거 아니니?”한영숙은 숨을 고르며 물었다.“인영아, 너 그동안 유한이랑 사이 좋다고 하지 않았니? 그런데 그럼 그 여자랑은 대체 무슨 관계야? 아까 수혁이 말로는, 네가 말해온 것과는 다르다던데... 엄마한테 솔직히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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