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얘기에 미쳐 버린 내 남편: Chapter 61 - Chapter 70

146 Chapters

제61화

리은은 우느라 목이 메어서 이미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유한은 리은의 몸에서 비정상적으로 뜨거운 체온을 느꼈다. 그는 고개를 숙여 리은의 이마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면서, 눈빛에는 잔혹한 살기가 번쩍 스쳤다.그럼에도 유한은 리은을 꼭 안은 채 걸어 나갔다.광윤의 앞을 지나치면서도 유한은 그에게 단 한 번의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처리해야 할 문제는 따로 있었다.그리고 그 문제는 반드시 유한이 직접 처리해야 했다.광윤은 침묵 속에서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비밀의 방’ 내부를 다시 확인했다. 순간 광윤은 단단히 미간을 찌푸렸다.그는 장제부가 여자를 밝힌다는 것, 그리고 출산 경험이 있는 여자를 이상하리만큼 선호한다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었다.그러나 이 정도로 타락하고 잔혹할 줄은 몰랐다.광윤의 얼굴에 무거운 표정이 드리워졌다.‘주유한이 올 걸 알았다면... 내가 몇 분이라도 더 빨리 왔어야 했는데...’‘이제 주유한이 이 일의 책임을 전부 나에게 돌려도 할 말이 없겠군.’‘비밀의 방’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선 광윤의 눈빛에는 짙은 고민이 어려 있었다.“장 회장님, 저는... 장 회장님이 이런 사람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우리 두 회사의 협력은 여기서 끝입니다. 이런 짓을 저지르셨으니, 이제 감옥에 갈 준비나 하셔야죠.”그가 즉시 핸드폰을 꺼내 신고하려고 했지만, 선호가 재빠르게 그의 손목을 잡고 막았다.광윤은 선호를 바라보았다.“장 비서님, 지금 이게 무슨...”“죄송합니다, 허 대표님. 이 일에는 허 대표님이 개입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결정은 주 대표님 지시에 따를 예정입니다.”선호가 유한을 얼마나 잘 아는지, 그 말투와 태도에서 명확했다.유한이 직접 손에 피도 안 묻히고 장제부를 감옥에 보내는 일? 그런 쉬운 방식은 절대 선택되지 않을 것이다.선호의 속마음은 분명했다.유한의 분노가 해소되지 않으면, 그것이 2차... 3차로 다른 사람들에게 튀었을 때 더 위험해질 것이다.지금은 오히려 장제부를 살
Read more

제62화

“진짜 사람을 죽게 만들지는 마.”유한이 지시했다.선호는 그제야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처리하는 게 옳았다는 확신이 들었다.“의사가 말하길 제때 옮겨져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허 대표님께서 대표님을 뵙고 싶다고 하셨습니다.”유한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그자는 장제부가 어떤 인간인지 알고 있는 것 같았어?”선호는 잠시 뜸을 들인 뒤, 다소 모호하게 대답했다. 선호 역시 광윤에 대해 잘 아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사실 선호는, 리은이 LC테크놀로지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허광윤에 대해서 따로 조사해두고 있었다.조사한 이력에 따르면, 허광윤에게는 흠잡을 구석도 문제가 될 만한 비위도 없었다. 하는 일마다 늘 차분하고 단단하게 진행했고, 선을 넘지도 않았다. 지금의 위치 역시 누군가의 힘이 아니라 본인의 능력으로 쌓아 올린 것이었다.“그건 조금 장담하기가 어렵습니다.”“허광윤은 해성시로 돌려보내. 거기서 기다리라고 해.”선호는 병상에 누워 있는 리은을 잠시 바라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대표님.”...광윤은 선호의 말을 들은 뒤 잠시 말없이 서 있다가, 조용히 한마디를 덧붙였다.“장 비서님, 주 대표님께 전해주십시오. 오늘 일은 제 책임도 있습니다. 별도로 보상할 방법을 찾겠습니다.”선호는 ‘이쪽으로’ 오라는 듯 손짓을 했다.광윤은 병실 문을 한 번 바라본 뒤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내 책임은 다른 방식으로 충분히 메우면 돼. 하지만 장제부는 이제 끝났어.’광윤은 안경을 손끝으로 밀어 올렸다. 살짝 올라갔던 입꼬리가 금방 사라졌다....밤이 깊어지고, 병원 복도에는 적막이 내려앉았다.선호는 병실 밖 복도의 휴게 의자에 앉아 있었고, 유한은 계속 병실 안을 지키고 있었다.“안 돼, 만지지 마... 만지지 마, 저리 가, 저리 가!”유한은 눈을 뜨자마자 단숨에 침대로 다가가서 리은의 손을 붙잡았다.“괜찮아. 이제 괜찮아.”“싫어... 만지지 마... 저리.
Read more

제63화

“주 대표님, 저는 그냥 비서일 뿐입니다. 저, 저는 장제부 회장님 말씀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제 잘못이 아닙니다, 저는 정말로 몰랐습니다... 그분이 주 대표님의 부인이신 줄, 정말 몰랐습니다!”“제가 알았으면... 제가 미쳤다고 그런 짓을 했겠습니까! 주 대표님, 정말 잘못했습니다, 주 대표님!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주 대표님!”차훈은 울음을 터뜨리며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 그 비참한 모습에도 유한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손에 들려 있던 라이터를 툭 하고 바닥에 떨어뜨렸다.“시끄럽네.”말이 끝나자마자, 옆에 있던 부하가 바로 주먹을 날렸다. 묵직한 충격음과 함께 차훈의 몸이 옆으로 고꾸라졌다.“입 다물어. 한 마디라도 더 지껄이면 혀부터 잘라버린다.”차훈은 그 말만으로도 숨이 끊어질 듯한 공포에 질렸다.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은 채 바닥에 엎드려 떨기만 했다.정혁은 흐름을 파악한 듯,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와... 장제부 그 늙은 새끼가 색욕이 얼마나 올랐으면 형수님까지 건드렸대? 장제부가 미쳤구나, 아주.”정혁은 턱을 쓰다듬다가 신발 끝으로 차훈의 턱을 툭 들어 올렸다.눈물과 콧물이 뒤섞여 흐르는 차훈의 얼굴을 보면서, 인상부터 찌푸렸다.“야, 너희는 대체 어떻게 간이 배밖에 나왔어?”유한 쪽을 힐끗 보던 차훈은, 다시 고개를 세게 저으면서 아무 말도 못 했다.비웃음을 흘리던 정혁이 차훈의 몸을 발로 차서 넘어뜨렸다.“이 자식은 어떻게 처리할 거야?”그러면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유한에게 건넸다.유한은 천천히 연기를 내뿜었다. 눈빛은 생명이라고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은 얼음장 같았다.“내 아내가 몇 번째야.”차훈은 그 말을 듣자마자 비틀거리며 다시 무릎으로 기어와 꿇어앉았다. 한참 머릿속에서 숫자를 세듯 입술을 떨더니, 조심스럽게 손가락 두 개를 들었다.“두 번째?”정혁은 그 말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듯 눈썹을 찌푸렸다.차훈은 급히 손을 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아, 아닙니
Read more

제64화

리은이 다시 눈을 뜬 건, 해가 완전히 저문 뒤였다.천장과 사방을 한참 바라본 뒤에야 상황을 인지한 듯 몸을 일으켰다.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간 듯했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훨씬 회복된 느낌이었다. 단지 아직 약간의 무기력함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옆에 놓인 물컵이 눈에 들어오자, 리은은 물을 마시려고 손을 뻗었다.그러나 손끝이 제대로 힘을 받지 못해서 컵을 떨어뜨리고 말았다.쨍!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컵은 산산이 부서졌다.밖에서 소리를 들은 선호가 바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사모님, 깨어나셨습니까?”선호는 바닥의 부서진 컵을 보고, 급히 다가가서 새로 물을 따랐다.“사모님, 드십시오.”“고마워요.”리은은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건넨 뒤, 컵을 받아 반 정도 마셨다.따뜻한 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조금은 기력이 돌아오는 듯했다.리은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유한이 제때 도착해서 자신을 구해냈다는 사실을.그런데 정작 유한은 보이지 않았다.“주유한은 어디 갔어요?”“대표님은 나가셨습니다. 하지만 곧 돌아오실 겁니다.”“허 대표님이랑 그 장제부는요?”“아, 그 둘은...”선호가 말을 채 잇기도 전에, 병실 문이 갑자기 열렸다.선호와 리은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대표님, 돌아오셨습니까.”유한은 리은을 바라봤지만, 우선 선호에게 말했다.“장 비서, 나가 있어.”“알겠습니다.”선호는 더 묻지도 않고 바로 병실을 빠져나갔다.병실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다.리은은 물컵을 쥔 손가락에 조금 더 힘을 주면서, 유한에게 먼저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하나 망설였다.‘어쨌든... 주유한이 제때 오지 않았으면, 난 지금...’그 끔찍한 상상을 떠올리는 순간, 리은의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졌다.그 표정을 놓치지 않은 유한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어디가 불편해?”리은은 살짝 눈을 떨며 고개를 저었다.“괜찮아.”‘그런데... 주유한이 왜 경항시에 있었던 거지?’‘게다가 하필 그 타이밍에 나타나 날 구한 거야?’‘어떻게 그
Read more

제65화

욕먹을 일은 그동안 수도 없이 겪어왔기에, 오해든 죄명이든 이제 와 못 짊어질 것도 아니었다.하지만 유한은 갑자기 화살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장제부가 어떤 인간인지 알기나 해? 그런 놈한테도 기어가서 붙어?”“내가 그 사람이 어떤 인간인지 어떻게 알아? 난 그냥 일하러 간 거잖아...”말을 하다 리은은 문득 생각이 나서 물었다.“아, 허 대표님은? 내가 이런 일 당한 거 아셨어?”유한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렸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넨 또 뭐라고 말하고 싶은 건데?”유한은 리은을 깊게 한 번 바라보더니, 그녀가 들고 있던 물컵에다 다시 물을 따라주었다.“마셔.”리은은 잠시 얼굴을 찌푸렸다.방금 전에도 큰 컵 하나를 다 마셨는데 또 마시라니, 솔직히 이미 배도 꽉 찼다.“나 좀 전에 마셨잖아.”“마시라면 마셔. 말이 많네?”고개를 든 리은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안 마셔. 목 안 말라.”“물을 마셔야 약물 배출이 빨라진대. 네 몸에 약이 남아 있는 시간을 줄이고 싶으면...”거기까지 듣자마자, 리은은 번개같이 컵을 낚아채 그대로 원샷을 했다.뱃속이 불룩해질 정도로 이미 가득했지만, 한 방울도 남기지 않았다.유한의 입꼬리가 살짝 씰룩이더니 티슈를 하나 뽑아서 손등을 닦았다.방금 리은이 너무 급하게 잡아당기는 바람에 물이 조금 튀었기에.“겁은 있네?”리은은 손등으로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누가 안 무서워? 당연히 무섭지. 나 아직 루이도 있고, 우리 오빠도 챙겨야 되는데. 나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내 딸하고 오빠는 어떻게 하라고.”유한의 동작이 잠시 멈췄다.어둡고 깊은 그의 시선은, 속에 감춰진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보니까 네 오빠 걱정이 진짜고, 루이는 그냥 덤이네.”“너 진짜 미쳤어? 루이는 내 딸이야. 당연히 걱정되지. 물론 내가 없어도 할머니가 계시고, 나중에 할머니마저 안 계시면...” “그때쯤은 루이도 다 컸을 테니까 스스로 잘 해낼 거라고 믿어. 하지만 우리 오빠는 나 말
Read more

제66화

리은은 순간적으로 좀 민망했지만, 유한의 그 잘난 듯한 표정을 보자 곧바로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나는 사실대로 말한 거야. 네가 이혼 서류에 도장을 안 찍으면 나는 여전히 주유한의 아내잖아?” “싫으면 지금이라도 도장 찍어. 네가 찍기만 하면, 앞으로 네 얘기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을 테니까.”유한의 얼굴빛이 즉시 다시 어두워졌다.“쓸 만큼 쓰고 이제 필요 없으니까 토사구팽하겠다 이거지?”리은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받아쳤다.“네가 사냥개야?”“허. 이제 와서 말싸움은 잘하네? 낮에 누가 계속 날 붙잡고 울면서 내 이름 부르다가, 손도 못 놓겠다고 했는지 기억도 안 나지?”리은의 표정이 굳어졌지만, 그래도 끝까지 강하게 말했다.“그때 날 누가 구했든 난 꽉 붙잡고 안 놨을 거야. 마음속으로는 그 사람 조상한테까지도 다 감사했겠지.”“상처가 좀 아물었다고 바로 까먹는구나?”리은은 시선을 거두고 눈을 감아버렸다. 유한과 괜히 말싸움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그래도 주유한이 날 구해준 건 사실이야.’순간 두 사람 모두 말이 없었다. 하지만 눈을 감은 상태에서도 리은은 유한의 시선이 자기 얼굴에 고스란히 떨어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근데 너 아직 말 안 했어. 어떻게 경항시에 와서, 나를 구하게 된 건데?”“출장.”리은은 천천히 눈을 뜨고 유한을 바라봤다.“그럼 넌 어떻게 장제부 회사에 있었던 거야?”유한은 묵직한 시선으로 리은을 내려다보며 말했다.“어떤 대답을 듣고 싶은데?”“무슨 소리야, 어떤 대답이라니?”“내가 널 따라온 거라든가, 일부러 그곳까지 찾아가서 너를 구하려고 했다는 그런 대답?”리은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난 그런 생각 안 해. 예전부터 그런 생각 할 이유도 없었고.”“그런 생각이란 게, 정확히 어떤 생각?”‘당연히 자의식 과잉, 착각하는 생각이지.’‘이미 지난 5년 동안, 주유한 넌 내 착각을 행동으로 철저히 깨부숴 놓았어.’‘그런 인간이 아직도 나를 신경 쓰고 있을 거라고 내가
Read more

제67화

“너!”리은은 유한의 말에 반박도 못 한 채 입을 다물었다.‘그러니까 주유한이 나타난 이유는... 내가 아직도 주씨 가문의 며느리라는 그 명칭 때문인 거야?’‘주유한은 내가 자기한테, 그리고 주씨 가문에 먹칠할까 봐 나타난 거고?’“왜, 불만 있어?”유한이 다시 쏘아붙였지만, 리은은 입술만 달싹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어차피 입을 열면 싸움밖에 안 되니 차라리 벙어리처럼 조용히 있는 편이 나았다.리은이 그런 태도를 보이자, 화가 더 치밀어 오른 유한이 비웃듯 말했다.“정말 그렇게 이혼하고 싶어?”리은은 다시 고개를 들고 유한을 바라보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너는... 동의해 줄 거야?”“내가 감히 이혼에 동의하겠어?”리은의 미간이 좁혀졌다.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안 됐다.“무슨 뜻이야? 감히 동의 못 한다는 게 무슨 말이야?”‘주유한이 못 하는 일이 있다고? 그 말을 누가 믿어?’유한은 눈을 가늘게 뜨고서 리은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봤다.“지난 5년 동안 너도 참 사람 마음 사는 건 잘하더라. 니가 가진 수단들을 다 내 가족들한테 쓰고 있었겠지?”리은은 제대로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사람 마음을 산다고? 내가 누구 마음을 샀다는 건데?”‘내가 누구한테 그런 걸 했다는 거야?’“그리고 너, 맨날 나한테 수 쓰는 거 같다고 하는데, 내가 대체 무슨 수를 썼다는 건데?”유한은 말 대신 그저 깊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리은을 바라볼 뿐이었다.그 눈빛에 더 말릴 것 같아서, 리은은 결국 등을 돌리고 누워 버렸다.“나 언제 퇴원해?”“내일.”“그럼 너 가. 나 혼자 있어도 돼.”“도와준 은혜도 모른 척하고 가라는 거야?”리은은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 그녀가 말했다.“내가 주 대표님 불편하게 밤새 지키게 할 정도로 철면피는 아니라서 그래. 됐지?”“자각은 있네.”“당연히 있지. 그러니까 주 대표님, 편하신 대로 하세요.”말을 끝내고 리은은 눈을 감아버렸다.잠시 뒤, 유한이 의자에
Read more

제68화

다음 날, 리은이 눈을 뜨자마자 소파에 누워 있는 유한이 보였다.소파는 크지 않았다. 그래서 거의 190cm에 가까운 유한이 그 위에 누워 있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불편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리은은 자신이 마지막으로 입원했던 때가 떠올랐다. 루이를 낳았던 그날.그날 리은은 산통이 너무 심해서, 자궁문이 열리는 데 꼬박 하루하고도 밤까지 걸렸다. 끝내 자연분만에서 제왕절개로 전환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그때 필요한 것이 보호자 서명이었다.하지만 유한에게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전화는 계속 신호만 가고 받지 않았다.리은은 사실상 혼자 버텨서 루이를 낳은 것이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니, 병실 소파에 유한이 앉아 있었다.지친 얼굴로, 싸늘한 눈길을 그녀에게 건네며 단 한마디를 했다.“수술하는데 내 서명이 필요하다며?”그때 리은은 억울함이 턱밑까지 차올라서 유한에게 설명하고 싶었다.하지만 유한은 그녀를 한 번 더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그 얼굴에 떠올랐던 ‘싫다’는 표정은 아직도 선명했다.유한은 리은의 말은 단 한 마디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고, 아이의 얼굴조차 보지 않은 채 병원을 떠났다.나중에서야 리은은 사람들 입을 통해 알게 되었다.자신이 병원에서 진통하고 있던 그 시간, 유한과 인영은 M국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는 사실을.강덕순이 억지로 연락해서 유한을 국내로 불러들였고, 리은이 눈을 뜨자마자 그는 다시 M국으로 떠났다.단 1분도 리은에게 머물고 싶지 않았던 듯이.그 시기에, 산후우울증을 앓았던 리은은, 루이의 얼굴을 보며 매일 자신을 의심했다.‘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나를 이렇게까지 대하는 거지?’‘애초에 사랑하지도 않을 거면서, 왜 나를 건드렸던 거야?’해답은 없었다.그저 매일같이 자기부정과 혼란 속에서 허우적거릴 뿐이었다.그 깊은 구렁텅이에서 벗어나는 데 정말 오랜,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그 과정의 고통은 온전히 리은 혼자만 알고 있었다.겨우 스스로를 구해낸 만큼, 다시는 똑같은 절망에 빠지지 않겠
Read more

제69화

말을 끝낸 유한이 소파에서 천천히 일어났다.그리고 곧장 병상 쪽으로 걸어와 리은의 곁에 서더니, 그녀의 턱을 손가락으로 들어 올리고 깊고 어두운 시선으로 들여다 봤다.“이 결혼은 네가 하자고 한 거니까... 끝낼 때는 내가 정하는 게 공평하겠지?”리은은 숨이 턱 막히면서, 손은 무의식 중에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그게... 어떻게 똑같아?”“왜 달라? 너는 결혼이랑 애로 날 묶어놓고, 이제 와서 빠져나가겠다고? 꿈도 꾸지 마.”말을 끝내자 유한은 리은의 턱을 툭 놓았다. 표정은 잿빛처럼 어둡게 가라앉았다.“당연히 다르지. 그땐 난 선택지가 없었어. 애는 생명인데... 그리고 나는 원래 가족도 거의 없어서... 아이를 버릴 수가 없었어.”“게다가 우리 집도 해성시에 있는데, 너는 나보고 평생 돌아오지 말라고 했잖아. 난 그건 못 해. 내 부모님도 여기에 묻혀 있고...”“그리고 결혼했다지만 난 너를 잡아둔 적 없어. 네가 뭘 하든, 누구를 만나든 내가 막은 적 있었어? 없잖아. 결혼한 신분 말고는 넌 계속 자유였어.”유한의 얼굴은 더 어두워졌고, 리은의 설명하려는 태도에 비웃음을 흘렸다.“그래도 난 그 화가 안 풀리거든. 넌 처음으로 나를 해코지하고, 날 가지고 논 여자니까.”리은의 얼굴이 조금씩 하얗게 질렸다.오랫동안 그를 바라보던 끝에 조용히 입을 열었다.“그래, 그건 내 잘못이야. 근데 네가 안 풀린다는 그 화, 어떻게 해야 풀리겠어? 말만 해. 가능하면 뭐든 맞춰 줄게. 그렇게 하면 되겠어?”그러나 유한의 표정은 더 안 좋아졌고, 오히려 냉소가 더 짙어졌다.“내가 또 네 말에 속아넘어갈 것 같아?”“내가 뭘 속였다는 건데? 말 좀 똑바로 해.”바로 그때, 병실 문이 덜컥 열렸다.“헬로!”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꽃다발을 든 정혁이 문 앞에 서 있었다.사실 정혁과 리은은 그리 친하지 않았다.그동안 딱 두 번 봤고, 이번이 세 번째였다.정혁은 둘 사이의 냉랭한 기운을 눈치채지 못한 듯 환하게 웃으면서
Read more

제70화

식당.“정혁 씨, 먼저 드세요.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정혁의 말을 듣고 있던 유한은, 리은의 말이 들리자 고개를 돌려 힐끗 바라봤다.“괜히 돌아다니지 말고 사고 치지 마.”리은은 그 말의 의도를 정확히 알기에 잠시 유한을 보며 아무 말도 없이 일어섰다.정혁은 유한의 어깨를 툭 치고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형수님, 괜찮아요. 이 식당에 제 지분도 있어요. 형수님 맘대로 둘러보세요. 완전 안전합니다. 걱정 마세요!”리은은 고개 숙여 인사한 뒤, 조용히 룸을 나갔다.리은이 나가자마자, 정혁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형이랑 형수님 혹시 화난 거야? 아니면 좀 틀어진 거야? 설마 이번 일 때문에 그런 건 아니지?”“형 진짜 그러면 안 돼. 형수님도 피해자잖아.”유한은 잔을 들어 술을 한 모금 넘기고 담담하게 말했다.“그 일과는 상관없어. 나랑 네 형수는...”하지만 유한은 말 끝을 흐렸다.정혁은 오히려 더 답답해져서 물었다.“형수님이랑 뭐가?”“몇 년째 계속 이래.”“뭐? 몇 년째?”정혁은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아니 왜요? 형이 처음 형수님 데리고 나한테 놀러 왔을 때 기억나? 그때 둘이 얼마나 붙어 다녔는데. 진짜 연애 초반 커플처럼, 한시도 못 떨어지는 것 같았는데. 내가 그때 형 보고 사랑꾼이라고 놀렸잖아? 기억 안 나?”유한은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그 말을 되새겼다.“사랑꾼?”“네, 그게 맞지. 완전 사랑꾼이었잖아.”유한은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잔을 다시 기울였다.“맞아. 네 말이 맞아. 내가 그때는 열나 사랑꾼이었지.”순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걸 느낀 정혁이 유한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뭐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하지만 막상 정곡을 찌르자 유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조용하게 술잔만 기울였다.정혁은 유한이 이렇게 말을 아끼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입을 열 수 없는 사정이 있는 사람이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걸려 있는 사람처럼.정혁은 조심스레 유한의 어깨를 토닥
Read more
PREV
1
...
56789
...
15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