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후 전설이 된 여자: Chapter 191 - Chapter 200

310 Chapters

제191화

“조심해요.”배기훈의 심드렁하던 눈빛이 한순간에 날카로워지더니 긴 다리로 성큼성큼 강시원 앞으로 가서 그녀의 손에 있는 전복죽 냄비를 받아들었다.두 사람의 손끝이 무심코 스쳐 지나간 후, 강시원이 서둘러 한마디 했다.“뜨거우니 조심하세요!”눈살을 찌푸린 배기훈은 바로 냄비를 식탁에 내려놓은 뒤 손으로 귀를 잡으며 발을 동동 굴렀다.“뜨겁다고 했잖아요...”강시원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배기훈은 여전히 귀를 잡은 채 조리대에 살짝 기쟀다. 서른을 앞둔 나이였지만 온몸에서 소년 같은 아우라가 풍겼다.“괜찮아요. 시원 씨만 안 다쳤으면 됐어요.”목소리는 여느 때처럼 덤덤했다.남자의 초콜릿 복근은 드러날 듯 말 듯 하면서 헐렁한 잠옷 바지 속으로 이어져 반쯤 가려져 있었다.무심한 듯하면서도 섹시한 매력이 넘쳐흘렀다.자꾸 보면 실례라는 걸 알아챈 강시원은 재빨리 등을 돌려 요리를 계속했다.배기훈이 본인 집에서 편한 차림으로 있는 게 이상한 건 아니지만 강시원에 대해 전혀 거리낌 없는 건 이해가 가지 않았다.“아침 식사 차리려면 시간이 좀 걸린 기훈 씨는 좀 더 주무세요.”강시원은 집안일을 자주 하는 여자라는 게 금방 드러날 정도로 손놀림이 민첩했다.“이런 건 황 비서가 할 겁니다. 시원 씨가 나설 필요 없어요.”배기훈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갸웃하며 강시원을 바라봤다.“늦잠 자는 습관이 없어서요. 그리고 집밥을 좋아해서 평소에도 해 먹어요. 밖에서 사 온 건 입에 안 맞더라고요.”강시원은 아무렇게나 둘러댔다.사실 서도훈이 배다울을 때린 일로 마음이 무거워 이렇게라도 일을 해서 보답하고 싶었다.배기훈은 시니컬하게 웃었다.“아, 어제 제가 사 온 아침 식사가 시원 씨 입에 안 맞았다는 뜻이네요?”할 말을 잃은 강시원은 한숨을 내쉬었다.‘억지를 부려도 정도가 있지... 이 사람, 일할 때도 분명 아주 깐깐할 것이다.강시원 얼굴의 다크써클이 턱 밑까지 내려온 것을 본 배기훈은 그녀가 지난밤 내내 잠 못 이룬 채 수심에 잠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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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화

“괜찮아요.”시선을 내린 강시원은 딱히 할 말이 없어 그냥 덤덤하게 대답했다.“여보세요. 수연아...”“우리 아기, 엄청 컸네!”성수연은 신난 나머지 비명을 질렀다.“다른 건 몰라도 남자 모델 만나는 거 난 완전 찬성이야!”강시원은 황급히 입을 가리며 한마디 했다.“수연아!”“아이고 내가 한 가지 까먹었네. 우리 십원이 몸매가 슈퍼모델 뺨칠 정도라는 걸 말하지 않았어!”배기훈이 천천히 자리를 뜨는 것을 본 강시원은 소파에 앉아 초조하게 설명했다.“수연아, 엉뚱한 상상하지 마. 나 저 사람이랑 아무 사이 아니야.”“그럼 누군데?”성수연은 일부러 말투를 질질 끌며 캐물었다.“아이에게 엄마가 없어서 내가 잠깐 돌봐준 거야. 말하자면 길어. 지금은 불편하니까 나중에 다 알려줄게.”주변을 슬쩍 둘러본 강시원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일찍 전화했어?”“어젯밤에 심지경 엄마한테 우연히 들었어. 서씨 가문 그 고약한 어른 있잖아. 네 전 시어머니가 경시 여성연합회 회장 자리를 자진 사임했다던데?”강시원은 눈이 살짝 커졌다.경시 여성연합회 회장이라는 직책은 김설연이 늘 중요하게 여기던 자리였다. 남에게 자본을 과시할 수도 있고 정부의 장관들과도 좋은 인맥을 맺을 수 있었기에 그야말로 김설연의 목숨줄이나 다름없었다.“그렇게 아끼던 자린데 갑자기 왜 사임했대?”“나도 엿들은 건데 본인이 자진해서 사임한 건 아닌 것 같아. 찌질혁이 건강상의 문제를 이유로 사임하라고 강요한 모양이더라.”성수연이 코웃음을 쳤다.“심지경 엄마가 그 소식을 듣고 표정이 어땠는지 알아? 마치 회장 자리가 자기 손안에 들어온 것처럼 굴더라고. 역시 재벌들에게 진정성이란 없는 거야. 다들 그냥 가식덩어리라니까. 겉으로는 싱글벙글하면서도 속으로는 X발 하면서 욕을 하고.”“서정혁이 자기 어머니에게 사임하라고 강요했다고? 왜?”혼자 생각하던 강시원은 순간 목이 메었다.“혹시 네가 서정혁을 찾아가서 뭐라고 한 거 아니지?”성수연은 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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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화

푸짐한 아침 식사를 다 준비한 뒤 강시원은 배기훈과 배다울 부자와 함께 밥을 먹지 않고 그 집을 떠났다.상대가 모든 여자들이 꼬시지 못해 안달이 난 배기훈이었지만 강시원은 최대한 그와 거리를 두려고 했다.“시원 이모가 한 밥, 너무 맛있어요! 엄마의 손맛이 나요!”오늘따라 구미가 당긴 배다울은 입맛이 당겨 행복해 죽을 지경이었다.배기훈은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스푼을 쥔 뒤 죽을 한 숟가락 떠서 천천히 입으로 가져갔다.“너는 엄마 얼굴도 본 적 없으면서 벌써 엄마의 손맛을 어떻게 알아?”배다울이 생글생글 웃었다.“본 적은 없어도 엄마의 손맛이 딱 이럴 것 같아요!”배기훈이 시선을 내리며 말했다.“식사 자리에서는 조용히 해야 해.”“시원 이모 밥을 자주 먹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어린 녀석이 욕심은 많구나. 시원 이모가 네 친엄마도 아닌데 왜 네게 잘해줘야 해?”배기훈은 검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아들에게 죽을 더 떠주었다.“아빠가 뭐라고 가르쳤어? 사람은 만족할 줄 알아야 행복한 거야.”배다울은 속으로 조금 서운했지만 말 잘 듣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음... 알겠어요. 아빠.”아빠와 아들은 다시 조용히 밥을 먹었다. 그러다가 배기훈이 무심한 듯 물었다.“그저께 병원에서 아빠가 간 다음에 시원 이모랑 무슨 얘기 했어?”“음... 비밀이에요. 아빠한테 말해줄 수 없어요.”배다울은 입에 음식이 가득해 볼이 볼록해졌다.“어허? 두 사람이 이제 편짜기까지 하는 거야?”배기훈은 입을 삐죽 내밀며 삐친 척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물었다.“전부 다 비밀이야? 아빠가 알면 안 돼? 아빠 돈 주고 사도 안 될까?”“돼요!”잠시 멈칫한 배다울은 배기훈의 아름답고 깊은 눈동자를 응시하며 말했다.“서도훈은 자기 아빠가 나쁜 사람이라고 했는데 시원 이모는 아저씨가 한결같은 사람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시원 이모가 너무 답답했어요. 아저씨는 시원 이모를 전혀 안 좋아하는데 시원 이모는 아직도 아저씨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배기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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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4화

“한 비서한테 들었어. 회의에서 이전 버전 칩 모델을 전부 뒤엎었다며?”서정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계속 물었다.“예전 버전이 그렇게 형편없었어?”“성능과 알고리즘이 너무 구식이었어. 내가 M국으로 유학 갔을 때 유행했던 데이터 모델이지만 지금은 시장에서 도태된 지 오래야.”임지민은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엄숙히 고개를 저었다. 눈빛에는 오만함이 가득했다.“우리 서정 그룹이 출시하는 신에너지 전기차는 반드시 국내 시장에서 최고의 성능, 가장 진보된 기술을 갖춰야 해. 그래야 오빠가 연구 개발팀에 매년 수조 억 투자하는 보람이 있지 않겠어?”“지민, 고마워. 너만 믿을게.”서정혁은 분통이 터져 책상을 한 번 쳤다.“이제 보니 양서연이 거액의 연봉을 받아 가면서 겨우 이따위 걸 만들어 냈네. 연구 개발팀이 양서연 손에서 망할 뻔했어!”눈빛이 음침한 임지민은 저도 모르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간신히 참았다.사실 임지민은 거짓말을 한 거였다.칩 1.0 버전은 결코 폐기물이 아니었다. 알고리즘이 매우 정교해 여태껏 본 국내 전기차 중 가장 최고의 성능을 갖추고 있었다. 감히 비교할 수 있는 전기차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조금만 더 보완하면 출시와 동시에 사람들의 거대한 반응을 일으킬 것이다.1.0 버전을 처음 봤을 때 크게 감탄한 임지민은 몹시 초조하고 불안했다.양서연이 단지 세력에 아부하는 천박한 여자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나 실력이 있을 줄은 몰랐다. 서정 그룹에서는 역시 쓸모없는 사람을 두지 않았다.다행히 이렇게 유능한 인재가 강시원 덕분에 감옥에 들어가게 되면서 임지민의 큰 골칫거리를 제거해 주었다. 정말 자다가도 웃음이 나 깰 지경이었다.다만 아쉬운 점은 이 일을 혼자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절대 서정혁이 알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강시원이 젊은 여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다가 회사의 실력 있는 인재를 감옥에 보냈다는 걸 이 남자가 알게 되면 서정혁은 강시원을 목 졸라 죽일 마음이 생길지도 몰랐다.바로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서정혁이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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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5화

준수한 얼굴이 잔뜩 어두워진 서정혁은 눈 밑에 살기가 요동쳤다.“한 비서 말씀은... 우리 언니가 어젯밤 라이트 미라클의 배 대표님과 같이 있었다는 건가요?”임지민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서정혁 대신 화가 나는 척했다.“이건... 정혁 오빠 입장을 완전히 무시한 거잖아요! 전에도 계속 정혁 오빠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친아들까지 병이 도질 정도로 화나게 해놓고는 며칠째 내버려둔 채 신경도 안 쓰더니 본인은 정작 딴 집 애 생일 챙겨주면서 남의 집 애 엄마 노릇이나 하는 거예요? 이런 것들 정혁 오빠가 5년 동안 부부인 정을 봐서 다 참아온 거잖아요.”얇은 입술을 꽉 앙다문 서정혁은 저도 모르게 책상 위에 올린 큰 손을 천천히 움켜쥐었다.임지민이 계속해서 읊조렸다.“그런데 이번에는 유부녀라는 신분도 망각한 채 배 대표와 같이 있다고요? 이건 정신적, 육체적으로 모두 불륜을 저지르는 거잖아요! 이 세상에 어느 남편이 자존심도 없이 자기 아내가 매일 밖에서 이 남자 저 남자 꼬시며 갈아타는 걸 참아요?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하네요!”임지민이 이런 말을 한 이유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식으로 서정혁의 심기를 건드려 서정혁과 강시원이 완전히 끝장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그러면서도 마음속에는 강시원에 대한 질투가 가득 차올랐다.강시원은 친엄마도 죽고 친아빠에게도 버림받았다. 머리에 든 것도 없는 천박한 여자가 늙은 여우를 잘 구슬려 요행히 재벌가에 시집간 것만 해도 복권에 당첨되는 것보다 더 큰 행운인데 몰래 최고 로펌의 변호사 유재윤까지 꼬셔서 서정혁과 주먹다짐까지 하게 했다. 강시원 편을 들던 유재윤이 서정혁의 복수도 두려워하지 않은 채 몸을 내던진 행동을 보면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그런데 이제는 배기훈 같은 거물까지 그녀에게 홀려 넘어가다니!생각만 하면 극도로 짜증 났다.요 몇 년간 임지민을 쫓아다닌 남자들이 적지는 않았지만 모두 속물이고 질이 떨어져 눈에 차지 않았다.그래서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애도 낳은 가정주부에게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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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6화

얇은 입술 한끝을 살짝 올린 서정혁은 눈에 날카로운 빛이 스쳤다.“나를 떠나서 다른 남자 만나서 행복하게 살겠다고? 강시원! 꿈 깨!”그 말에 임지민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눈빛이 흔들렸다.“강시원과 절대 이혼할 일 없어. 내 결혼, 세상에 공개할 거야. 강시원이 내 여자라는 거 온 세상 사람들이 알게 할 거야.”눈을 가늘게 뜬 서정혁은 냉소를 머금고 말했다.“그때 가서도 배기훈이 강시원에게 손을 댈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 과연 그렇게 해서라도 불륜남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지 궁금하네. 본인 아들이 친구들 앞에서 얼굴도 들지 못하게 할 거야.”이혼을 안 할 거라는 서정혁의 말에 한수현은 너무 기뻐 임지민을 흘낏 보았다.예상대로 임지민은 똥 씹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오늘 밤에도 배기훈 집 근처에 사람을 보내 지키고 있으라고 해. 강시원이 오늘도 가면 즉시 내게 알려!”...깊은 밤, 별장 정문 앞에 마이바흐 차 한 대가 멈춰 섰다.먼저 차에서 내린 황근우가 뒷좌석 차 문을 열자 말끔한 정장 차림의 배기훈도 이내 내렸다. 그늘을 드리울 정도로 긴 속눈썹 때문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빛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두 사람이 막 들어서려는 순간 배기훈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뒤를 흘낏 보았다.“맞은편 수풀 속에 누군가 잠복해 있는 것 같아. 우리를 감시하고 있어.”순간 숨을 죽인 황근우는 감히 뒤돌아볼 엄두도 없었다.“그걸 어떻게 아십니까?”“이미 여기에 이틀째 숨어 있었으니까.”배기훈은 무심한 얼굴로 시선을 거뒀다.“별다른 행동이 없어서 첫날은 참아줬지만 오늘 밤에도 왔다는 건 나를 바보 취급하는 거겠지. 한 번은 참아도 두 번은 못 참아.”황근우는 눈빛이 차가워졌다.“잠시만요.”이내 몸을 돌려 민첩한 자세로 짙은 어둠 속으로 재빨리 뛰어들었다.몇 분 후 황근우는 얼굴이 퉁퉁 부은 남자의 멱살을 잡고 배기훈 앞에 끌고 와 땅에 내팽개쳤다.“대표님, 잡았습니다.”얻어맞은 남자는 눈이 두꺼비처럼 퉁퉁 부은 채 바닥에 꿇어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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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7화

어느덧 월요일, 강시원은 차를 몰고 가정 법원으로 향했다.지난번 대화 이후 단 한 번도 서정혁에게 연락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문자 한 통조차 보내지 않았다.그날 서씨 가문 사람들 앞에서 이미 할 말을 다 했기에 서정혁 본인이 개가 되고 싶지 않은 이상 분명 와야 할 것이다.30분 후, 검은색 페라리가 가정 법원 앞에 멈춰 섰다. 약속 시간까지 이제 10분 정도 남은 상황, 10분 후, 자유를 되찾은 강시원은 서정 그룹과 서정혁, 그리고 서도훈이 있는 삶에서 완전히 빠져나갈 것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앞으로 더 이상 교류도 없을 것이다.그러나 약속 시각이 지났는데도 서정혁은 나타나지 않았다.‘찌질혁이 진짜 개가 되려고 작정한 건가?’핸드폰의 시간이 1분 1초 흘러가는 것을 볼 때마다 강시원은 가슴 한편이 꽉 막힌 듯 무겁게 가라앉는 듯했다.‘서정혁, 넌 개보다 더 못난 놈이야! 여기저기 오줌 싸며 영역 표시하는 그런 놈!’더 이상 이깟 남자 때문에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 수 없어 이를 악물고 핸드폰을 들어 서정혁에게 전화를 걸려는 순간 트위터의 실시간 검색어 뉴스가 시선에 들어왔다.[유명 변호사 유재윤, 난교 혐의 적발.]이어 또 하나의 푸시 알림이 화면 위에 떠올랐다.[경시, 어젯밤 동구 주민 신고로 경시 서안 호텔 프레지던트 스위트룸 내 집단 난교 및 마약 현장 적발, 경찰 조사 결과 신고 내용이 사실인 것으로 확인됨.현장에 있던 남성 2명, 여성 3명을 이미 구속하였으며 그중 1명은 명환 법률사무소 유명 변호사 유재윤인 것으로 확인.]강시원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듯했다.한 글자 한 글자가 칼날 같은 모래가 되어 강시원을 향해 내리꽂히는 듯했다. 윙윙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곧장 유재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되돌아온 것은 전원이 꺼졌다는 음성 안내뿐이었다.평소 절대로 핸드폰을 끄는 법이 없던 유재윤이었기에 강시원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어릴 적부터 강시원 곁을 지켰던 유재윤은 강시원의 엄마 강부안이 가장 아끼던 아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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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8화

엘리베이터까지 걸어가는 길, 강시원을 본 직원들은 모두 충격에 휩싸였다. 뒤에서는 수다가 끓이지 않았다.“어... 너희들 봤어? 한 비서가 강시원 씨한테 엄청 공손하던데? 임지민 씨한테 하는 것보다 더 깍듯하고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아?”“벌써 호칭이 바뀐 거야? 얼마 전까지 불륜녀라고 욕하더니? 이름에 어느새 ‘씨’까지 붙이고?”“그때는 강시원 씨가 우위를 점한 줄 몰랐으니까. 이제 보니 확실히 자리 잡은 것 같아. 사모님이라고도 부를 수 있어.”“서 대표님 전용 엘리베이터는 서 대표님 외에 임지민 씨만 탈 수 있었는데... 그런데 이 여자도 타다니, 수완은 참 대단하네!”강시원이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서정혁은 등을 돌린 채 창밖 경시의 번화한 거리를 보며 아주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떡 벌어진 어깨와 큰 키는 마치 얼음장보다 더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그전까지 강시원의 꿈속 서정혁은 지금 이 순간처럼 신과 같이 준수한 모습이었다.그때는 언젠가 이 남자와 나란히 이곳에 서서 이 세상의 번영을 함께 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지금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면 본인한테 철 좀 들라고 따귀를 몇백 대 때려주고 싶은 마음뿐이다.“왔어?”서정혁은 강시원을 보지 않은 채 약간 조롱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대표이사 전용 엘리베이터 타 본 기분이 어때, 서씨 가문 사모님?”“역겨워.”강시원은 목이 꽉 막힌 느낌에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그리고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른대로 하라고 했어. 난 더 이상 서씨 가문 사모님이 아니야.”“이혼 절차 안 밟은 이상 그전까지는 서씨 가문 안주인이야.”그제야 천천히 몸을 돌린 서정혁은 시선을 아래로 내리더니 손에 들고 있는 커피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서도훈이 아플 때도 오늘만큼 안절부절못한 적 없잖아. 오늘은 왜 이렇게 기세등등한 거야? 강시원, 너 자신이 너무 황당하고 우습다고 생각하지 않아?”“설마 당신 만나고 싶어서 온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당신이 재윤 선배보다 마음씨가 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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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9화

사실 서정혁은 마음이 너무 답답했다. 유재윤이 강시원을 여자로 생각한다는 게 너무 확연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강시원이 결혼 생활 중 잠시 흔들려 유재윤과 가볍게 노는 것까지 눈감아 줄 수 있었다.물론 티끌 하나 용납 못 하는 서정혁에게 이 정도의 양보는 그야말로 서쪽에서 해가 뜨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이 정도로 봐줬으니 강시원은 삼보일배를 하면서 고맙다고 해도 모자랄 판이다.하지만 두 사람이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주먹을 꽉 쥔 서정혁은 손에 시퍼런 핏줄까지 툭 튀어나온 채 분노와 함께 공포스러운 아우라를 내뿜었다.무엇이 그리 두려운지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지만 입 밖에 낼 수 없었다.“그래서 사람을 시켜 선배 스캔들을 퍼뜨린 거야? 그렇게 비열하고 치사한 수단으로?”강시원은 예쁜 얼굴로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지만 비아냥거리는 말투를 다분히 느낄 수 있었다.“하... 당신 지금 이 자리, 어떻게 앉았는지 이제 이해되네. 남들이 하늘보다 더 대단하다고 말하는 서 대표가 대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가 봤더니 그저 사기나 치고 사람을 속이며 음흉하게 뒤에서 몰래 약한 자를 괴롭히면서 간사하고 나쁜 짓 하는 데 능한 인간이었을 뿐이구나!”“강시원, 말 가려서 해!”눈을 가늘게 뜬 채 눈에 핏발이 선 서정혁은 온몸으로 사나운 기세를 풍겼다.바로 그때 강시원이 무거운 목소리로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었다.“서정혁, 우리 선배 풀어줘.”눈빛이 잔뜩 어두워진 서정혁은 화가 나 가슴마저 들썩였다.예전의 강시원은 늘 자신이 없는 듯한 말투로 아주 조심스럽게 서정혁을 대했다. 마치 젓가락으로 두부를 집는 듯 태도가 아주 부드러웠다.하지만 지금은 마치 창과 방패의 대결처럼 피를 보지 않고는 절대 멈추지 않을 듯한 기세였다.“그래.”이를 꽉 악문 서정혁은 마치 은혜를 베푸는 듯한 어조로 한마디 했다.“다음 주 베이럴 경매회에 서 대표 사모님 신분으로 나랑 같이 참석해.”강시원이 미간을 찌푸렸다.“그런 일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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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0화

“그러니 너도 바라지 않겠지? 네 선배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알았어... 약속할게.”강시원은 분노를 삼킨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망설임 없이 말했다.‘내가 어쩌다 이런 쓰레기 같은 남자를 사랑했을까. 그때는 왜 그렇게 눈이 멀었을까?’소중한 사람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든 자신의 눈썰미와 스스로의 마음을 용서할 수 없었다.“가자. 나도 곧 인공지능 컨퍼런스에 참석해야 하니까.”‘서정혁! 네 IQ나 좀 어떻게 해 봐!’서정혁은 무심한 얼굴로 책상 위 서류를 집어 든 뒤 무표정한 얼굴로 훑어보며 말했다.“네가 아직도 애 엄마라고 생각한다면 요 며칠 집에 가서 도훈이 좀 돌봐. 네가 계속 안 나타나면 도훈이가 곧 남의 아들이 될지도 모르니까.”“그게 도훈이가 바라는 거 아니었어?”강시원은 약간 쉰 목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없는 시간이 당신들 부자 두 사람 인생에는 가장 편하고 즐거운 시간이겠지.”“강시원, 네가 가장 마음에 안 드는 점이 뭔지 알아?”서정혁은 쌀쌀한 목소리로 말했다.“바로 네가 스스로를 너무 얕보고 자기 자신을 낮춘다는 거야. 너에게는 사모님다운 자신감과 품위가 전혀 없어. 네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남이 너를 사랑할 수 있어?”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철커덩하는 소리와 함께 강시원이 책상 위의 블랙커피를 집어 들더니 순식간에 서정혁의 온몸과 얼굴에 쏟아부었다.“강시원! 죽고 싶어 환장했어?”벌떡 일어난 서정혁은 눈시울이 붉게 물든 채 포효하듯 외쳤다.“당신한테 호감같은 거 바란 적 없어. 착각하지 마. 잘난 척도 좀 그만하고.”강시원은 침착한 얼굴로 커피잔을 원래 자리에 내려놓았다.“뜨거운 물이 아니라서 참 아쉽네.”말을 마친 뒤 강한 패기로 홱 돌아서서는 거침없이 밖으로 걸어 나갔다.그 자리에 얼어붙은 서정혁은 화가 나서 얼굴이 창백해졌지만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있었다.“대표님!”깜짝 놀란 얼굴로 뛰어 들어온 한수현이 티슈를 뽑아 서정혁을 닦아주려 하자 남자는 짜증스레 막아서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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