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후 전설이 된 여자: Chapter 261 - Chapter 270

308 Chapters

제261화

배기훈은 강시원을 등진 채 있었다. 선천적으로 다정다감한 복숭아꽃 같은 눈이 지금 이 순간은 마치 먹물처럼, 깊은 바닷속처럼 짙고 어두워졌다.“어떻게 됐어?”“대표님 짐작대로였습니다. 개는 역시 똥 먹는 버릇을 고치지 못하나 봐요. 며칠 동안 숨어 다니다가 오성에 얼굴을 드러냈습니다.”배기훈은 고개를 옆으로 까딱하며 어깨와 목을 풀었다.“그쪽에는 건드리지 말라고 얘기했지?”황근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 지시가 떨어지길 기다립니다. 지금은 감시만 할 뿐 아직 체포하지는 않았습니다.”강시원은 패딩 점퍼를 여미며 배기훈의 빼어난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원숭이처럼 긴팔과 역삼각형을 생각나게 하는 잘록한 허리, 그야말로 황금 비율이 따로 없었다. 양복바지 속 긴 다리 또한 탄탄하고 힘이 넘쳐 보였다.한 군데 한 군데 너무 완벽해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눈이 호강하는 느낌이 들었다.강시원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재앙과도 같았던 결혼 생활에서 벗어난 지금, 이 세상에 잘생긴 사람이 서정혁뿐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사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보면 서정혁만큼 잘생긴 사람이 널리고 널렸다.예전의 강시원은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저버리고 스스로를 울타리 속에 가두었다. 그래서 서정혁이 곧 하늘이고 땅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서정혁은 결코 강시원의 하늘도, 땅도 아닌 그저 감옥일 뿐이었다.“오늘 밤, 그쪽으로 가자.”배기훈은 말투가 아주 느긋했지만 눈빛은 무섭도록 차가웠다.“좀 이따 전용기 준비해.”“대표님, 직접 가실 겁니까?”“직접 갈 거야.”황근우는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오대호 같은 개자식 따위를 처리하는데 직접 나서려 하다니... 황근우가 가서 가볍게 처리해도 될 텐데...배기훈이 직접 나선다는 것은 그야말로 원자탄으로 모기를 잡는 격이었다.“내가 도착하기 전까지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전해.”배기훈이 손가락 마디를 꺾자 경쾌한 소리가 났다.“내가 직접 처리할 테니.”황근우는 엄숙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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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2화

“이렇게 해야만 사모님을 찾을 희망이 생깁니다. 지금 사모님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한 글자 한 글자 서정혁의 마음을 뜨겁게 달궜다.한수현은 서정혁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일분일초... 그러나 기다림 끝에는 실망감을 안겨주는 침묵뿐이었다.바로 그때 책상 위의 핸드폰이 진동했다.임지민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 것이다.검은 눈동자로 화면을 응시하던 서정혁은 서둘러 받지 않고 멍하니 휴대폰만 뚫어지게 바라봤다.그 모습을 본 한수현은 눈빛에 한 줄기 놀라움이 스쳤다.예전에는 임지민에게서 전화만 오면 회의 중에 회의를 중단하더라도 임지민의 전화를 받았다.평소에는 일 초라도 지체할세라 바로 ‘통화’버튼을 누르던 사람이 오늘은 그렇게 급박해 보이지 않았다.‘어떻게 된 일일까? 유전자가 돌연변이라도 한 걸까?’하지만 결국 ‘통화’버튼을 누른 서정혁은 평소와 다름없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지민아, 무슨 일 있어?”“서 대표님! 큰일 났어요!”그러자 전화기 너머로 박영주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지민이 병이 또 도졌어요. 지금 응급실에서 응급 치료 중이에요. 저랑 애 아빠 모두 다 애가 타서 죽을 지경이에요. 서 대표님, 병원으로 좀 와 주실 수 있나요?”깜짝 놀란 서정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어제까지 멀쩡했는데 왜 갑자기 아픈 거죠?”박영주는 목메어 우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이틀 전에... 지민이가 트위터에 글 하나를 올렸어요. 그저 일상을 공유한 것뿐이라 원래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런데 악플러들의 표적이 되어 뻔뻔스러운 세컨드라고 엄청 욕을 하더라고요. 녀석이 마음이 어찌나 아파하는지, 이틀 동안 핸드폰도 안 보고 밤새 잠도 못 자더라고요. 오늘 출근한 뒤 동료들이 자기 험담하는 소리를 무심코 듣게 됐대요. 원래 언니 일 때문에 밤낮으로 마음을 졸이고 있었는데 이렇게 모욕까지 당하니... 결국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사무실에서 기절하고 말았어요.”눈빛이 잔뜩 어두워진 서정혁은 옷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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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3화

“응.”눈빛이 잔뜩 어두워진 서정혁은 목소리가 아주 무거웠다.“경찰이 고속도로 옆 숲속에서 납치범이 탄 차량과 사용한 도구도 찾아냈어. 납치범의 신원도 어느 정도 파악했고.”임지민은 순간 심장이 북을 치듯 쿵쾅거리는 느낌에 이불을 꼭 움켜쥐었다.“하지만 아직 납치범과 네 언니의 행방은 찾지 못했어.”“오빠, 언니가... 언니가 아직 살아 있을까?”찾지 못했다는 말에 다소 마음을 놓은 임지민은 그제야 슬픈 표정을 지으며 연기를 계속했다.“언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 게 아니라...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어서 걱정돼서 그래. 만약 상대방이 몸값을 요구하려 했다면 진작 움직이지 않았을까? 이렇게 오랫동안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는 건 언니가 이미...”“그럴 리 없어!”서정혁은 안 좋은 말을 듣고 싶지 않은 듯 냉랭한 목소리로 임지민의 말을 끊었다.“납치범은 강시원을 노린 게 아니라 나를 노린 거야. 납치범의 목적은 내게 복수하거나 돈을 요구하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강시원을 납치할 이유가 없잖아. 그러니 목적을 달성하기 전까지는 강시원을 어떻게 하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 놓고 있을 수는 없어. 시간이 길어질수록 위험하니까, 1분이라도 더 끌면 그만큼 위험해질 수 있어.”예전에 강시원의 일이라면 무시가 일상이었던 서정혁이었다. 늘 코웃음 치며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아내를 이토록 걱정하는 모습에 임지민은 가슴이 점점 답답해졌다. 마치 시고 쓴 레몬을 한꺼번에 입에 넣은 듯했다.여기까지 생각하자 또다시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핑 돌았다.몹시 억울해하는 임지민의 모습에 조금 전 자신의 말투가 너무 지나쳤다는 것을 깨달은 서정혁은 이내 감정을 추슬렀다.“미안해. 지민아, 너한테 화를 내려던 건 아니야, 그저...”“오빠, 말하지 않아도 알아. 오빠가 언니를 너무 걱정해서 그런 거라는 걸, 너무 신경 쓰다 보니 혼란스러워서 그런 거잖아... 언니는 누가 뭐래도 오빠의 아내이고 도훈이 엄마니까. 내가 너무 경솔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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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4화

서정혁은 병원에 남아 임지민이 저녁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떠날 준비를 했다.임지민은 섭섭한 표정으로 서정혁이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바라봤다.바로 그때 서정혁이 걸음을 멈추더니 망설이면서 뒤돌아섰다.“지민아.”임지민이 맑고 순수한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왜 그래? 오빠?”잠시 멈칫한 서정혁은 목이 메는 듯 머뭇거리더니 한참 후에야 한마디 했다.“아무것도 아니야, 푹 쉬어. 연구 개발팀 일은 일단 네 몸이 회복한 다음에 해도 되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임지민이 다정한 눈빛으로 서정혁을 바라봤다.“응... 오빠도 조심히 가.”서정혁이 막 나가자 임지민은 바로 표정이 음침해지더니 바로 자기 엄마더러 들어오라고 했다.도둑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병실 안으로 들어온 박영주는 문을 꼭 닫은 뒤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딸아, 어때? 뭐라도 알아냈어?”“엄마, 대체 엄마가 시킨 사람 믿을만한 거예요? 왜 일 처리가 이렇게 깔끔하지 못해요!”임지민이 원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를 갈았다.“오빠가 그러는데 경찰에서 납치범의 신원을 확인했대요. 그리고 납치범의 차도 찾았대요! 강시원 그년 시체를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언제든지 발견할 가능성이 있어요... 그년,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고요!”마음이 철렁 내려앉은 박영주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강시원, 왜 바로 처리하지 않은 거예요? 왜 살려둔 거냐고요!”임지민은 화가 나서 침대 위 베개를 향해 주먹질했다. 조금 전 서정혁 앞에서 보이던 측은하고 가여운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랐다.“아직도 오빠에게서 몸값을 받아내려고 그러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나한테 오히려 불똥이 튈 거라는 거 몰라서 그래요?”“아이고. 우리 딸! 좀 진정해, 네 몸부터 챙겨야지!”박영주가 임지민의 떨리는 등을 황급히 토닥였다.한편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민 임지민은 눈이 빨개진 채 말했다.“어차피 이렇든 저렇든 사람 속이는 건 똑같은데 뭐가 걱정돼서 그러냐고요!”“아이고. 우리 아가씨! 미쳤나 봐! 말을 함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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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5화

...어두운 밤, 온갖 사치와 향락, 물질만능주의가 오성이라는 도시에 넘쳐흘렀다.아무도 모르는 어느 폐허가 된 별장 지하실, 머리에 주먹만 한 혹이 난 오대호는 의식 불명 상태에서 깨어났다.어둡고 습하고 칙칙한 주위를 둘러본 순간 그야말로 절망적이었다.그날 밤, 강시원을 가두었던 장소처럼...“누... 누구야! 누가 나를 묶었어?”오대호는 오싹 소름이 끼치는 듯 메추라기처럼 구석에 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떨었다.“형님, 저기요. ... 얼굴 보고 얘기라도 하시죠? 저도 알아요. 제가 도박 빚이 좀 많은 거... 하지만 걱정 마세요! 곧 돈이 생길 거라 돈 들어오면 빚 바로 청산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 돈이 들어오면... 두 배로 갚을게요! 믿어주세요. 약속할게요. 거짓말이면 제가 직접 길바닥에 나가서 차에 치여 죽겠습니다. 형님! 제발... 이틀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바로 엊그제 몸값이 입금되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던 오대호는 고용한 그 남자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지금 서정혁과 경찰이 경시 시내에서 강시원의 행방을 수색하고 있기에 자신이 인질과 함께 이리저리 숨어 다니고 있으니 안전해지는 대로 즉시 서정혁에게 몸값을 요구하겠다고 했다.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던 오대호는 자신이 곧 억만장자가 될 거라고 확신했기에 조금 전에도 빚쟁이에게 호언장담했다.바로 그때 쾅 하는 무시무시하면서도 둔탁한 소리가 났다. 지하실 문이 열리자 오대호는 온몸을 떨며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문이 열리며 크고 우람한 검은 실루엣 하나가 나타났다. 날렵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은 마치 넘을 수 없는 빙산처럼 강력하고 사나워 저도 모르게 등에 소름이 끼치는 듯했다.오대호는 귓가에 윙 하는 소리와 함께 식은땀이 흘러내렸다.‘서정혁? 아니야. 서정혁이 아니야.’비록 이 사람의 체격이 서정혁과 비슷했지만 내뿜는 아우라는 서정혁과 완전히 달랐다.서정혁의 행동거지는 마치 황실 가문의 귀족과 같았지만 눈앞의 이 남자는 온몸으로 귀신 같은 서늘함과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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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6화

“악!”히스테릭한 비명이 울려 퍼진 후 지하실은 쥐 죽은 듯 고요한 정적에 잠겼다.문밖을 지키고 있던 황근우는 늘씬하면서도 탄탄한 몸이 살짝 떨렸다.십 년 전, 경시 지하 세계 최대 조직에서 가장 막강한 실력자로 칼날 위 피까지 핥으며 살아온 황근우조차도 가끔은 배기훈의 냉혹하고 포악한 면모에 식은땀을 흘리곤 했다.‘저런 하찮은 놈 때문에 배 대표님이 직접 손을 쓰시다니.’그만큼 강시원 씨를 특별히 여기신다는 뜻이었다.황근우는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했다.‘신경 안 쓴다더니, 배 대표님, 완전 쩔쩔매시는데요?’음산한 지하실 안에는 차갑고 피비린내가 가득했다.“다시 한번 물어보겠다. 이 사람, 알고 있나?”배기훈은 위에서 아래로, 얼굴 가죽이 벗겨져 썩어가는 듯한 오대호를 내려다보며 차가운 눈빛으로 하찮은 존재처럼 바라봤다.“알... 알고 있습니다...”오대호는 남자 앞에 무릎 꿇고 온몸이 피범벅이 되어 완전히 꼼짝 못 하게 되었다. 배기훈은 가슴에서 손수건을 꺼내 느긋하게 손끝의 피를 닦았다.“네가 그 사람을 시켜 강시원을 납치한 그날 밤, 그놈은 이미 내가 잡았다.”오대호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큰 화가 닥친 걸 깨달았다. 즉, 그 뒤로 자기랑 연락했던 사람이 바로 이 남자였던 것이다. 자기는 줄곧 속은 채, 억만장자가 될 꿈만 꾸고 있었던 것이었다. 정말 스스로가 진짜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그... 그 사람 지금...”배기훈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죽었다.”“대표님! 형님!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오대호는 몰골이 말이 아닌 데다 사채업자에게 쫓기고 서정혁에게 제명당해 이 지경이 됐으면서도 여전히 목숨만 살려달라며 배기훈에게 미친 듯 머리를 조아렸다.“저... 저도 진짜 강시원 씨 해칠 마음은 없었습니다! 다 서정혁한테 쫓겨 어쩔 수 없었을 뿐입니다!”“서정혁한테 당했으면 서정혁한테 따져. 총을 그놈 머리에 대든 말든 난 관심도 없으니까.”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긴 다리를 든 배기훈은 깨끗한 구두 끝으로 오대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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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7화

그러니 배기훈의 상대가 되지는 않을지 몰라도 귀찮은 놈인 것은 확실했다.“살길을 원한다면 하나 알려주지.”배기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자수해라.”오대호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으면서도 여전히 망설였다.“평생 감옥에 썩든지, 내 손에 죽든지. 하나 골라.”오대호는 염라왕처럼 무서운 남자를 쳐다보며 어금니를 깨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낫다. 자수하면 감형받을 수 있고 감옥에 들어가면 사채업자도 피할 수 있다. 나중에 나온 뒤 이 세상을 누리면 그만이다.그 순간, 지하실에서 또다시 비명소리가 울렸다.문이 활짝 열리더니 배기훈은 잘생긴 얼굴에 잔뜩 어두운 기색이 드러난 채 걸어 나왔다. 손에 꽉 쥔 시계에서는 아직 피가 뚝뚝 떨어졌다.황근우가 급히 물었다.“대표님, 어떻게 되셨습니까?”“이놈 뒤에, 누가 조종하고 있다.”황근우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누구입니까?”“조사해야 해. 그래서 당분간 경시로 돌아갈 수 없다.”배기훈은 피투성이가 된 시계를 황근우에게 건네고, 칼날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그날 카지노 CCTV, 그리고 그놈이 오대호와 식사한 식당 CCTV까지 전부 조사해. 배후 세력이 오대호를 총알받이로 쓰고 있어. 목표는 강시원 씨야. 이 사람은 강시원 씨의 배경을 잘 알고, 그걸 교묘하게 이용해 오대호를 부추겨 해치게 한 거야. 즉, 강시원을 알거나 주변 인물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경찰이 조사하는 서정혁의 원한 관계가 아니야.”“알겠습니다. 당장 처리하겠습니다!”황근우는 배기훈의 시계를 깨끗이 닦아 공손히 다시 건네고 물었다.“대표님, 이 쓰레기는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배기훈은 무표정한 눈으로 말했다.“적절한 시기를 봐서 경찰서에 데려가 자수시켜라.”황근우가 울분을 토했다.“네? 그럼 이 개새끼한테 너무 관대한 거 아닙니까!”“누가 감옥 가는 게 끝이라고 했어?”사악하게 입꼬리를 올린 남자는 장난스럽게 웃었다.“들어가는 건, 시작일 뿐이야.”...그날 배기훈이 병원에서 강시원을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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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8화

깜짝 놀라 강시원은 살짝 죄책감 있는 눈빛으로 하얀 가운을 입은 청렴하고 잘생긴 남자를 쳐다봤다.“신 선생님...”“강시원 씨, 침대에서 잘 쉬지 않고 왜 돌아다니고 있어요?”신우민은 단정하게 차려입은 강시원을 훑어보며 잘생긴 눈썹을 찌푸렸다.“이렇게 차려입고 나가려는 거예요?”강시원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병실에 너무 갇혀 있어서 답답해서, 잠깐 나가서 걷고 싶어요.”“안 돼요, 절대 안 됩니다!”신우민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그 몸 상태로 퇴원하면 안 되는데 그러다가 만약 또 무슨 일 생기면 제가 배 대표한테 뭐라고 보고해요?”겁에 질린 표정을 보니 당장이라도 ‘배 대표’가 아닌 ‘폐하’라고 부를 것 같았다.기운이 없었던 강시원은 부드러운 말투로 부탁했다.“선생님, 몸이 많이 나아졌어요. 잠깐 걷다 올게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요. 금방 돌아올게요...”“안 돼요, 아무리 그래도 안 됩니다.”신우민은 아주 단호했다.“지금 서정혁도 경찰도 전국으로 강시원 씨를 찾고 있어요. 경찰한테 걸리면 그나마 낫겠지만 서정혁한테 걸리면 그야말로 죽을 맛이에요. 편안하게 살고 싶지 않으세요?”미간을 살짝 찌푸린 강시원은 가는 속눈썹도 부드럽게 내려앉았다.“그러네요. 알려줘서 고마워요, 신 선생님.”강시원의 깨끗하고 예쁜 얼굴에 실망감이 가득한 데다 맑은 눈과 얌전한 모습을 보니 신우민은 마음이 아팠다. 정말 착하고 귀여운 아기고양이 같았다. 서정혁은 눈이 멀어도 한참 멀었나 보다. 하지만 저 눈먼 놈 덕분에, 자기 친한 친구가 기회를 얻은 것이지 않은가? 기회가 되면 직접 서정혁한테 말해주고 싶었다.‘고마워!’라고...불쌍해 보이는 표정에 마음이 약해진 신우민이 결국 한발 양보했다.“정 답답하면 배 대표님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나가세요. 그래야 저도 마음 놓고 허락할 수 있습니다.”강시원은 눈을 살짝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그럼 배기훈 씨 돌아오면 얘기할게요. 신 선생님한테 폐 끼쳐드렸네요.”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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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9화

배기훈은 눈을 감고 잠시 쉬며 미간을 꾹 눌렀다.“오성에 있는 우리의 모든 인맥을 동원하고 쓸 수 있는 인력은 다 써봤지만 마스크를 쓴 남자에 관한 단서 하나도 찾지 못했다. 더 깊이 추궁하면 오성 정부에 들통나기 쉬워, 그럼 더 귀찮아진다.”“그놈, 절대 오성 사람 아니다.”별처럼 반짝이는 눈을 살짝 뜬 배기훈은 눈동자에는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오대호가 그 후에 말했듯이 그 남자는 표준 경시 억양을 썼다고 했어. 분명 경시 출신일 거야. 일부러 오대호를 노리고 간 게 틀림없어.”황근우는 뭔가 깨달은 듯하다가 아쉬워하며 탄식했다.“정말 아쉽네요! 오대호 그 개새끼가 얼굴 특징 하나도 기억 못 했으니!”배기훈이 차갑게 입꼬리를 올렸다.“하지만 기억한 게 있어. 그 남자는 결벽증이 심했고 손톱은 아주 깔끔하게 다듬었으며 엄지와 약지 관절에 굳은살이 선명하게 있다는 거.”“하...”황근우는 욕하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얼굴은 하나도 기억 못 하면서 손에 굳은살 난 곳만 그렇게 잘 기억하다니! 손 패티시라도 있는 건가...”“그 남자가 오대호 앞에서 돈 세는 모습을 보여줬고, 오대호는 계속 그 손만 쳐다봤기 때문에 잘 기억한 거야.”황근우가 머리를 긁적였다.“그런데 이런 특징만으로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 누른 배기훈은 매처럼 예리한 눈빛으로 말했다.“결벽증은 직업병일 가능성이 커. 엄지와 약지에 굳은살이 있다는 건 예리한 칼이나 특수 기구를 자주 다뤘다는 뜻이고.”“결벽증... 칼... 설마 의사일까요?”눈을 번쩍 뜬 황근우는 바로 깨달았다.“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구나.”배기훈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하지만 추측일 뿐 확실한 건 아니야. 그래도 경시 의료계 인물들을 유심히 살펴봐.”배기훈은 처음부터 배후에 있는 그놈이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 일을 해결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그때 배기훈의 휴대폰이 울리자 화면을 확인한 배기훈은 바로 받았다.“우민아,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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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0화

추석이 되거나 고인을 추모하는 날이면 언제나 하늘이 뿌연 안개에 싸여 무겁고 슬픈 기색이 감돌았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휴연 추모 공원.늦가을이 되어가는 지금은 낮이어도 돌바닥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강시원은 아직 아픈 상태라 한기만큼은 조심해야 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무릎을 꿇고 엄마 묘 앞에 앉아 깨끗한 하얀 국화를 올린 뒤 손으로 묘비 주변 잡초를 정성껏 뽑았다.“엄마, 딸 왔어요.”얌전히 묘비 앞에 앉은 강시원은 깨끗한 비단 손수건으로 엄마의 흑백 사진을 부드럽게 닦았다. 마치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엄마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듯했다.“딸 보고 싶었어요?”사진 속 강부안은 화장 하나 하지 않은 채 안경을 쓴 모습이었다. 화려하게 예쁘진 않아도 깔끔하고 단정하며 이목구비가 우아하고 속되지 않았다. 강부안은 살아있을 때 사진 찍는 걸 싫어했고, 임성호와 함께 가는 지루한 접대나 천박한 장사꾼들을 만나는 일도 꺼렸다. 이 영정사진마저 강시원이 옛 물건을 뒤져 겨우 찾은 것이다.강부안은 짧은 평생을 연구와 임성호에게 바쳤다. 간과 쓸개를 다 바쳤지만 끝내 그 배은망덕하고 이기적이고 차가운 남자에게 크게 상처받고 버려져 좋지 못한 최후를 맞았다.사진 속 엄마의 얼굴을 쓰다듬은 강시원은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엄마, 어릴 적부터 한 사람만 바라보고 살라고 가르치셨잖아요. 그래서 열 살 때 학교 합창대회에서 처음 서정혁을 본 순간, 정혁 씨를 좋아하게 됐어요.”그때 강시원은 합창단 가장 눈에 띄지 않는 맨 끝에 서 있었고 맞지 않는 단체복 치마를 입고 있었다. 통통한 하얀 얼굴은 붉게 물들어 그림 속 복어를 안은 복덩이 같았다. 반면 단정한 교복을 입고 단상에 앉은 소년 서정혁은 어깨가 떡 벌어진 데다 키도 컸으며 당당하고 의기양양했다. 그때부터 마음속에 열등감이 생겼고 사랑도 마찬가지였다.“하지만 이제 더 이상 서정혁과 함께할 수 없을 것 같아요.”강시원은 눈빛이 흐릿해졌다.“진심은 통한다고 했는데... 사랑은 오직 하나뿐이라는데... 서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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