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후 전설이 된 여자: Chapter 271 - Chapter 280

308 Chapters

제271화

사람이란 일단 비교하기 시작하면 비교할수록 서정혁이 한심해 보일 따름이었다.“대표님.”그때 황근우가 하얀 장미꽃 한 다발을 든 채 휠체어를 밀고 다가왔다. 꽃다발을 본 강시원은 눈이 휘둥그레졌다.배기훈은 강시원을 안아 휠체어에 앉힌 뒤 싱그러운 하얀 장미를 건네주었다.“급하게 와서 어머니가 어떤 꽃을 좋아하실지 모르겠네요. 싫어하시는 꽃만 아니길 바랄게요.”“엄마는 꽃이면 다 좋아하셨어요... 잠깐만.”강시원은 키 큰 멋진 남자를 올려다보며 놀란 얼굴로 물었다.“어떻게 알았어요... 이 추모 공원에 계신 게 제 엄마라는 걸?”눈빛이 살짝 흔들린 배기훈은 웃을 듯 말 듯 하며 말했다.“그게 뭐가 이상한데요? 내가 알고 싶다면 여기에 있는 모든 귀신 사정까지 다 꿸 수 있는데.”강시원과 황근우는 어이가 없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배기훈도 말실수한 걸 깨닫고 입술을 다물었다. 사과하려던 찰나, 강시원이 입을 가리고 웃음을 터뜨렸다.“배기훈 씨, 실력 자랑하는 방식이 참 독특하네요. 이런 곳에서 인맥 자랑하는 사람 처음 봐요. 혹시 염라대왕 환생하셨어요?”멈칫한 배기훈도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옆에 있던 황근우는 속으로 생각했다.‘환생이 아니라 그냥 염라대왕이 인간 세상에 온 거예요!’강부안 묘 앞으로 간 배기훈은 허리를 숙여 꽃을 놓은 뒤 깊은 절을 하며 예를 다했다. 남자의 당당한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강시원은 저도 모르게 코가 찡하고 눈물이 고였다.강부안을 추모한 뒤, 배기훈은 휠체어를 밀며 천천히 걸었다.“방금 보니까 묘 앞에 새 풀이 돋아났던데.”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강시원이 눈을 깜빡였다.“무슨 뜻인가요?”배기훈이 앞을 보며 말했다.“묘 앞에 풀이 무성하면 다음 생에는 부귀영화를 누리고 마차와 말이 끊이지 않는다는 뜻이에요.”“고마워요. 좋은 말씀 기억할게요.”강시원의 눈이 별처럼 반짝이는 모습에 황근우는 진지한 표정의 배기훈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강부안을 추모할 때, 배기훈 눈시울이 살짝 붉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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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2화

“아빠! 지민 이모 왔어!”서도훈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앉아 있지도 못했다.그 모습에 이 집사는 표정이 더 굳었다. 웃음이 나올 리가 있겠는가? 진짜 짜증 나 죽을 지경이었다. 하루 건너씩 찾아오고 올 때마다 귀한 손님 대접해야 하니 정말 얌체가 따로 없었다.“응.”서정혁은 태연한 얼굴로 이 집사에게 지시했다.“지민이더러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이 집사는 속으로 불쾌했지만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도련님.”“오빠.”임지민이 식당으로 들어와 남자를 향해 부드럽게 웃음을 짓자 서정혁은 봉황 같은 눈으로 담담하게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임지민이 원래 이 연안 빌리지의 주인인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지민 이모!”바로 의자에서 내려온 서도훈은 임지민 앞으로 달려가 가는 허리를 꽉 안았다.“흑흑... 보고 싶었어!”임지민은 서도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도훈아, 이모도 정말 보고 싶었어.”서도훈은 입을 삐죽 내밀고 애교 부렸다.“지민 이모, 요즘 왜 안 왔어? 아빠랑 싸운 줄 알았어.”서정혁이 눈썹을 치켜세웠다.“서도훈, 예의가 없구나!”아빠가 화내는 모습에 서도훈은 자기 말이 맞은 것 같아 서운한 눈빛으로 쳐다봤다.“아빠, 지민 이모 몸 안 좋은 거 알면서 왜 화내? 이모 기분 나쁘면 또 걱정할 거면서.”서정혁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도훈아, 네가 아빠를 너무 오해하는 거야.”임지민은 몸을 숙여 아이 동그란 얼굴을 감싸고 이마에 뽀뽀했다.“이모랑 아빠는 싸운 거 아니야. 요즘 몸이 조금 안 좋아서 못 온 것뿐이니 걱정 마.”예쁜 이모한테 키스 받은 서도훈은 수줍은지 얼굴이 새빨개졌다.“그... 그럼 이모, 이제 괜찮아?”“응. 너처럼 챙겨주는 아이가 있으니 이모 몸이 바로 나을 수밖에 없지.”임지민과 서도훈이 친 모자처럼 지내는 모습을 본 서정혁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기억 속, 서도훈이 강시원과 이렇게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을 못 본 지 아주 오래됐다. 하긴 서정혁도 늘 강시원을 못마땅하게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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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3화

부태사에는 향 연기가 피어오르고 불경 소리가 은은하게 퍼졌다.병원으로 오는 길에 강시원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배기훈에게 어떻게 자기가 휴연 추모 공원에 있는지 알았는지 물어봤다. 돌아온 대답은 여전히 거만하고 허황된 말이었다.“내가 찾고 싶은 사람이라면 아무리 높은 산이든 깊은 바다든 다 찾을 수 있어요. 이 세상 끝에 있다고 해도요.”강시원은 매년 엄마 묘에 와서 인사한 뒤 꼭 부태사에 와서 향을 피웠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부태사 문밖에 돌계단이 이어져 있어 휠체어로는 올라갈 수 없었다. 배기훈이 허리를 숙여 강시원을 가로로 안으려던 찰나 그녀가 부드럽게 거절했다.“고마운 마음 알겠지만 이러면 예의가 아니고 정성도 부족해요. 제가 직접 걸어 올라갈게요.”배기훈의 깊은 눈이 가라앉았다.“괜찮겠어요?”강시원이 부드럽게 웃었다.“괜찮아요.”“그래요. 그럼.”배기훈도 더 고집부리지 않고 오른손을 내밀었다. 강시원이 그의 따뜻한 손에 살짝 기대자 배기훈은 손을 꽉 단단히 잡았다. 강시원도 입술을 꽉 다문 뒤 배기훈의 손을 지지대로 삼아 일어섰다.배기훈은 손바닥에 느껴지는 무게를 느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말 없는 믿음이다.강시원은 한 계단 한 계단 천천히 올라갔다. 주위가 고요해 돌바닥 소리가 유독 선명하게 들렸다. 배기훈은 강시원 뒤를 바짝 따라가며 자기 고집을 꺾지 않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말없이 지켜주는 듯한 모습이었다.그때 염주를 쥔 스님 한 분이 내려오다 강시원을 보고 깜짝 놀랐다.“강시원 씨 맞나요?”고개를 든 강시원은 반가운 듯 인사했다.“회공 대가님!”절 안으로 가는 내내 강시원은 회공 대가와 아주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강시원이 향 피우러 들어간 사이 배기훈은 문밖에서 스님과 이야기를 나눴다.“대가님, 강시원 씨랑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아... 삼 년 전에요.”회공 대가는 강시원의 가늘고 곧은 뒷모습을 바라보며 추억에 잠겼다.“삼 년 전 추운 겨울, 온 세상이 눈에 덮였을 때입니다.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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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4화

한편.검은 고급 승용차들이 줄을 지은 채 가지런히 부태사 문 앞에 서자 넘쳐나는 위엄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쏠렸다.경호원이 공손하게 차 문을 열자 다른 차에서 내린 김설연이 재빨리 다가와 박해순을 부축했다.“어머니, 천천히 내리세요.”그때 서유정 부부가 아들 서한성을 데리고 다가와 박해순에게 인사했다. 살짝 고개를 끄덕인 박해순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정혁이 부부는 어디 갔어?”서유정은 안 좋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겨우 참았다.“어머니, 정혁이네도 오는 길이에요. 곧 도착할 겁니다.”그때 최고급 롤스로이스가 느긋하게 다가오자 김설연이 웃으며 가리켰다.“보세요, 정혁이네 벌써 왔잖아요.”롤스로이스가 서씨 가문 사람들 앞에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자 서정혁이 먼저 내렸다. 차분하고 단정한 복장에 잘생긴 얼굴을 드러내고는 우아하게 정장 단추를 채웠다.이어 장손 서도훈이 뛰어내려 웃으며 박해순과 김설연 앞으로 달려왔다.“증조할머니! 할머니!안녕하세요!”“도훈아 왔구나.”김설연은 큰 손자가 귀여운 듯 바로 품에 안았다. 박해순도 서도훈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애틋한 눈빛을 보냈다.서유정 가족은 완전히 외면당했다. 모두 서도훈에게만 시선이 쏠려 서한성을 완전히 무시하자 서유정의 미소도 굳어졌다. 남편 송현태는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쓴웃음을 지었다. 데릴사위로 들어와 서씨 가문에 의지해 살며 가문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건 참아왔다. 하지만 자기 아들도 서씨 혈통이자 외손자인데... 이렇게 차별하는 건 일부러 자기를 난처하게 하는 거 아닌가!그때 서정혁이 차 안으로 부드럽게 손을 내밀자 가는 듯한 하얀 손이 남자의 손에 살짝 얹혔다.임지민이 하얀 치마폭을 들고 점잖게 내렸다. 야윈 어깨에는 서정혁의 큰 검은 코트가 걸쳐져 더욱 여리고 불쌍해 보였다.“어머나! 지민이잖아!”서유정은 남들이 모를까 봐 큰 소리로 외쳤다.다가오는 서정혁과 임지민의 모습에 김설연은 의미심장하게 박해순을 쳐다봤다. 역시나 박해순의 얼굴이 예상대로 싸늘하게 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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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5화

아무리 어른이라고 해도 여우 같은 임지민을 계속 이렇게만 잡을 수는 없었다. 이제 몸도 나이 들수록 쇠약해지는 노인네인 만큼 언젠가 세상을 떠날 날이 올 것이다.‘내가 없으면 시원이는... 이 나쁜 년한테 괴롭힘당해 살지도 못할 거야!’“어머니, 늘 지민이한테 그렇게 대하지만 오늘처럼 중요한 날에 어머니가 아끼는 손주며느리는 어디 갔나요?”김설연이 쓴웃음을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지난번 집안 식사 부를 때도 안 왔고 오늘 회장님 건강 빌러 가는 자리에도 모습을 안 보이네요. 며느리인 제가 강시원 앞에서까지 고개 숙여야 하나요? 직접 편지까지 써서 모셔야 하는 건가요? 어머니가 이렇게 감싸주고 있을 때 강시원은 대체 뭘 하고 있나요? 중요한 자리엔 모습도 안 보이고 얼마 전 도훈이가 아파 집에 누워 있을 때도 한마디 관심도 없었어요. 자기를 서씨 가문 식구라고 생각도 안 하는데 어머니는 왜 그렇게 챙기시나요?”“정혁아, 시원이는 대체 어떻게 된 거냐?”박해순이 큰 소리로 따졌다.“시원이는 왜 같이 안 왔어? 너 또 무슨 망나니짓이라도 한 거야?”목이 꽉 막힌 서정혁은 입술을 꼭 다물었다. 강시원의 상황을 말할 수 없었다. 할머니가 요즘 몸이 안 좋으신데 또 충격을 드릴 순 없다.“갑자기 일이 생겨 못 온 겁니다. 노여워 마세요.”화가 치민 박해순은 얼굴까지 붉어졌다.“지난번도 일이 있다 하고, 이번에도 일이 있다 하고! 시원이는 요즘 대체 뭘 하느라 바쁜 거야? 나 같은 늙은이를 잊은 거야?”“할머니, 진정하세요. 몸조심하셔야 합니다.”서유정이 할머니 등을 쓰다듬으며 달래는 척했지만 사실은 부추겼다.“세월이 지면 사람 마음도 알게 된다고 했잖아요. 지난번에 제가 미리 말씀드렸는데 할머니가 강시원한테 홀려서 친손녀 말도 안 믿으셨잖아요. 강시원이 어떤 사람인지, 곧 알게 되실 겁니다.”...강시원은 엄마를 위해 소원을 빌고 깊이 절하며 정성을 다했다. 여전히 밖에서 조용히 지키던 배기훈은 어느 정도 끝난 걸 보고 긴 다리로 문턱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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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6화

공기에는 폭발 직전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칼날을 맞댄 듯한 분위기가 몰려와 사람을 숨 막히게 했다.몸이 멀쩡한 강시원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임지민은 눈 속에 깊은 음흉함이 스쳐 지나갔다.‘힘 하나 없는 가정주부인 강시원이 어떻게 납치범 손에서 멀쩡하게 탈출할 수 있지? 혹시... 배기훈이 구해준 건가? 그럴 리 없어! 오빠는 온 경시를 다 뒤져도 못 찾았는데 저 사람이 어떻게 찾을 수 있어? 설마 정혁 오빠보다 더 능력이 있는 건가?’배기훈이 조개껍데기로 진주를 감싸듯 강시원을 꽉 안고 있는 모습을 보자 임지민의 눈빛은 증오와 질투로 붉게 물들었다. 자신과 엄마가 온갖 꾀를 내고 철저히 계획했는데 결국 헛수고만 한 셈이었다.“강... 시... 원?”어리둥절해진 서정혁은 배기훈에게 안긴 여자를 계속 응시했다. 핏줄이 선 눈을 몇 번이나 깜빡이며 꿈이 아니고 착각도 아님을 확인했다. 옆으로 내린 큰 손에는 핏줄이 불거져 터질 듯했다.서도훈은 아직 임지민의 손을 잡은 채 표정이 굳은 상태였다.“엄마, 왜 여기에...”하지만 자기 엄마가 배다울 아빠에게 공주 안기듯 안겨있는 모습, 심지어 온 가족 앞에서 당당히 보이는 걸 보자 까만 눈이 분노로 붉게 물들며 복잡한 감정이 순식간에 분노로 바뀌었다.‘아빠 앞에서 엄마가 다른 남자랑 이렇게 친하게 지내다니 부끄럽지도 않은가!’가끔 엄마가 혼자 밖에 있으면 나쁜 사람 만날까 걱정했던 자신이 바보 같았다.“언니? 왜 여기에 있어?”임지민은 눈 속 음흉함을 감추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형부랑 같이 회장님 건강 빌러 오지 않은 줄 알았어. 안 오는 줄 알았는데.”“배기훈 씨, 저 좀 내려주세요.”깊게 숨을 들이마신 강시원은 어두운 눈이 고요한 호수처럼 일말의 파동도 없었다.“네.”배기훈은 조심스럽게 강시원을 내려놓은 뒤 귓가에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억지로 버티지 말고 휠체어 타요.”강시원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고집 세고 워낙 강한 강시원인지라 누구에게 지는 걸 싫어했다.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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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7화

시뻘게진 서정혁의 붉은 눈을 응시하던 강시원은 순간 눈동자가 떨렸다. 결혼 5년 동안, 이 남자가 자기에게 이렇게 격하게 화내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주변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노는 당장이라도 그녀를 태워버릴 듯했다.“요 며칠... 어디 있었어?”격분에 눈이 붉어진 서정혁은 목이 꽉 막혀 이를 악물었다.“어디 있었냐고! 대답해!”고함 소리가 조용한 절 안에 울려 퍼졌다. 원래 품위 있고 자제심 강한 사람인 서정혁인지라 절에서 소리치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멀쩡하게 배기훈과 붙어 다니는 강시원을 보니 그런 예의 따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서씨 가문 사람들은 놀라 서로 눈치만 봤다. 서정혁은 강시원이 위험에 처한 사실을 완벽히 숨겼기에 아무도 그녀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을 겪었는지 몰랐다. 그들 눈에는 강시원이 애인과 만나다 남편에게 들킨 바람피운 여자일 뿐이었다.“내가 죽든 살든 당신이랑 상관없어.”강시원은 담담하게 말한 뒤 배기훈을 쳐다봤다.“배기훈 씨, 가요.”배기훈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래요.”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남자가 갑자기 막아서더니 차가운 기운이 감도는 눈빛으로 말했다.“요 며칠 내내 이 뻔뻔한 놈이랑 같이 있었어!”화가 난 강시원은 예쁜 눈을 부릅떴다.“서정혁 씨, 말조심해. 배기훈 씨는 내 소중한 친구야!”“친구? 웃기고 있네.”아이 앞에서도 서유정은 거리낌 없이 비웃었다.“이런 걸 친구라고 하면 세상에 불륜 커플 없겠다.”박해순이 큰 소리로 꾸짖었다.“더러운 소리 지껄이지 마! 여기가 어딘 줄 알고!”서유정은 억울한 듯 중얼거렸다.“제가 더러운 소리 하는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거예요. 할머니, 강시원을 믿고 아끼시는 거 알아요. 하지만 현실을 바라보세요. 강시원은 원래 마음이 갈대처럼 이 남자 저 남자 왔다 갔다 하며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여자예요.”눈을 꼭 감은 박해순은 심장이 아릿해 왔다. 배기훈은 서유정을 흘끗 쳐다본 뒤 무심히 시선을 돌렸다.“강시원, 너 알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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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8화

“서도훈... 무슨 소리 하는 거야!”가쁘게 숨을 내쉰 박해순은 온몸을 떨며 화를 냈다.“네 친엄마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너 낳고 키워준 분이야! 어떻게 엄마한테 그런 소리 할 수 있어! 모든 사람이 엄마한테 등을 돌려도 너만은 곁에 서줘야 하는 거야!”“싫어요!”서도훈은 화가 나 고개를 돌렸다. 마치 강시원이 더러운 것처럼 쳐다보기도 싫었다.“엄마는 아빠도 나도 안 사랑해요! 그런 엄마 나도 필요 없어요! 지민 이모가 훨씬 잘해줘요! 난 지민 이모를 엄마로 삼고 싶어!”“서도훈, 제멋대로 굴지 마!”떨리는 목소리로 호통친 박해순은 가슴이 심하게 오르내렸다.평소 할머니가 자기한테 화낸 적 없었기에 살짝 겁을 먹은 서도훈은 무의식적으로 임지민 품으로 숨었다.“도훈아, 걱정 마. 이모가 곁에 있잖아.”임지민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어머니, 전 도훈이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줄곧 침묵하던 김설연이 이때 차갑게 입을 열었다.“강시원이 눈앞에서 바람까지 피우고 부끄러움도 모르는데 왜 아직도 감싸주시는지 모르겠어요. 정혁이 체면은 생각 안 하실 건가요?”시선을 내린 박해순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설연아, 너 불교 믿는 사람이면서 불전에서 그런 소리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나?”평소 시어머니 앞에서는 기세를 죽인 채 부드러운 모습을 보이던 김설연이었지만 지금은 빳빳이 고개를 든 채 그 누구보다도 당당했다.“더 이상 편애하시는 모습 보기 싫어요. 오늘 결정 안 하시면 저뿐만 아니라 아이들 마음도 다 식을 겁니다.”극도로 화가 치민 박해순은 심장이 아렸다.“김설연, 너!”병든 기색이 드러난 할머니 얼굴에 마음이 아픈 강시원은 목이 메어 소리도 못 냈다. 할머니가 강시원만의 할머니가 아니라 서씨 가문의 기둥이었다. 아무리 강시원을 아껴도 서정혁의 기분과 가문 사람 입장까지 무시할 순 없었다. 서씨 가문 중심에 있는 박해순은 최선을 다해 강시원을 지켜줬다. 늘 박해순에게는 고마운 마음뿐이었기에 이번에 더 이상 자신을 감싸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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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9화

“서 대표가 요 며칠 어떻게 지내셨는지 저는 관심 없어요. 다만 강시원 씨가 그동안 어떻게 버텼는지 서 대표는 알고 있나요?”서정혁은 차갑고 얕보는 눈빛으로 말했다.“배 대표님께서 제 아내랑 이렇게 가까이 지내니, 당연히 다 알고 계시겠죠.”“당연하죠.”눈에 핏줄이 선명한 배기훈은 감추고 싶은 격한 감정이 거대한 그물처럼 온몸에 퍼졌다.“내가 납치범 손에서 강시원 씨를 구했습니다.”순간 서정혁은 목이 컥 메어 할 말을 잃었다. 주위 사람들도 깜짝 놀라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담담히 있는 강시원을 쳐다봤다.“배기훈 씨, 그게 무슨 말이죠?”박해순은 순식간에 얼굴이 창백해졌다.“시원이가... 납치됐다고요?”배기훈은 엄숙한 얼굴로 사실을 털어놓았다. 숨길 것 하나 없이,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오직 진실만 알렸다.“맞아요, 어르신. 강시원 씨는 납치됐어요. 그쪽 손자께서 임지민 씨와 함께 경매대회에 참석했던 그날 밤이요.”강시원은 산처럼 든든한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술을 떨었다. 말리려 했지만 배기훈이 듣지 않을 걸 알았다. 다른 게 두려운 게 아니라 이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할머니가 견디지 못할까 걱정됐을 뿐이다.역시나 박해순은 머리가 윙 하고 울리고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느낌에 제대로 서 있기 힘들었다. 굳어버린 서정혁을 응시하며 한 마디씩 따졌다.“정혁아... 넌 시원이가 위험한 걸 알고 있었지, 그렇지?”이를 악문 서정혁은 눈썹을 더욱 찌푸렸다. 나이가 많아도 머리는 여전히 맑고 빠른 박해순은 모든 사실을 바로 알아챘다.“지난번 집안 모임 때 시원이가 일이 있어 못 온다고 거짓말했지... 그때 이미 위험했던 거 아니야?”서정혁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걱정 끼치고 몸 상하실까 봐 그렇게 말했습니다.”“내 몸 걱정한 거라고? 넌 그냥 아내 죽든 말든 신도 안 쓴 거야!”박해순은 눈물을 쏟으며 분노를 토했다.“차라리 시원이가 잘못되면 마음 놓고 놀고 싶었던 거 아니야? 서정혁... 너 언제부터 이렇게 차갑고 무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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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0화

서정혁은 숨을 참고 깊이 들이마셨다. 숨소리가 무거워지고 가슴 속에 피가 몰려 심장을 꽉 조였다. 배기훈 뒤에 조용히 선 강시원에게 눈 한 번 떼지 않고 뚫어지게 쳐다봤다. 평온하고 담담한 모습은 겉보기엔 아무 일도 없었던 듯했다. 이 사람이 목숨 걸릴 고통을 겪고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강시원은 고개를 돌려 서정혁의 뜨거운 시선을 피했다. 사실 배기훈이 이 모든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건 강시원의 바람이 아니었다. 그냥 조용히 사라지고 싶었을 뿐이었다. 서정혁에게 조금이라도 미련이나 미안함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서정혁과 관련된 모든 끈, 얽힘, 미련... 전부 다 버리고 싶었다.절 안 전체가 차가운 바람이 지나간 듯 무겁고 조용했다. 방금까지 강시원을 욕하고 매도하며 창녀 낙인 찍으려던 사람들은 말 한마디 못 하고 가만히 입을 닫았다.임지민은 입 안 살을 깨물며 시선을 내려 드러날 뻔한 악독한 마음을 가렸다.‘강시원, 얼굴도 재능도 지위도 나는 너보다 뒤지지 않아! 그런데 왜 너는 항상 운이 좋은 거야? 5년 전에는 할머니가 밀어서 아무것도 못 하는 너를 서씨 사모님 자리에 앉혔고 이제 겨우 너를 완전히 무너뜨리려 했는데 배기훈 같은 거물이 나타나다니! 멍청하고 오빠한테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네게 왜 항상 귀인이 나타나는 거야? 흥, 어디 두고 보자. 운이란 영원히 좋을 순 없어.’“시원아! 우리 시원아!”박해순은 마음이 아파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떨리는 발걸음으로 강시원에게 다가갔다.“할머니!”강시원도 당장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몸이 아직 약한 걸 잊고 움직이려다가 저도 모르게 중심을 잃고 몸을 휘청였다.“조심해요.”배기훈이 낮은 소리로 한마디 한 뒤 긴 팔을 뻗어 강시원의 허리를 단숨에 붙잡았다. 서정혁 앞에서도 전혀 숨기지 않고 당당하고 강한 기세였다.이를 악문 서정혁은 가슴 속에 답답하고 쓰린 감정이 가득 차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이 기분이 뭔지 알 수 없었다. 살아온 삼십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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