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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다시 쓸 운명: Chapter 31 - Chapter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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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화

“네 성년례 날에는 국공부의 노부인을 너의 주빈(主賓: 고대 소녀의 성년례 때 소녀의 부모의 초대를 받고 의식을 주관하는 귀빈)으로 모셨다. 이 어미와 국공 부인은 혼인하기 전부터 가깝게 지낸 사이라 그분께서 노부인을 설득해 주셨어.”그런 분이 주빈으로 오신다면 설은영의 성년례는 조촐하게 진행할 수가 없었다.반면 설은비의 주빈은 그에 비해 신분이 그리 높지 않았다. 주빈으로는 에부시랑 가문의 노부인을 모셨다.관직은 그리 높지 않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체면은 챙겨준 것이다.설은영은 온순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해요, 어머니.”표정이 많이 좋아진 그녀를 보고 강 부인의 기분도 훨씬 가벼워졌다.곧이어 그녀의 혼사 얘기가 나왔다.“참말로 진국공부에 시집을 갈 생각이니?”불구가 된 건 그렇다 쳐도 연 장군이 아이를 볼 수 없는 사람인 건 꽤나 문젯거리였다.딸은 어쩌면 양자를 들이거나 평생 외롭게 늙어갈지도 모른다.강 부인은 저도 모르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만약 진작에 진실이 밝혀졌다면 딸아이가 진국공에게 보내질 일도 없었다.설은영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예, 제가 원해서 가는 거예요.”그녀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연준과 혼인하지 않는다면 최진겸에게 시집을 가야 했다.그녀는 갑자기 자신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에게 연준은 어쩔 수 없는 선택지였지만 상대는 어떤 마음일까?연 장군이 지금은 이렇게 되었지만 연씨 가문은 운나라를 위해 혁혁한 공훈을 세운 집안임은 부인할 수 없었다.그는 한때 뭇 여인들의 선망의 대상이고 경성에서 가장 빛나는 소년 장군이었다. 게다가 준수한 외모까지 겸비하였으니 가장 좋은 여인과 혼인할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다.그녀 역시 연씨 가문에서 비호한 백성 중 한명이었다.그런데 이제 와서 그녀는 두 번의 삶을 살게 된 기회를 이용해서 그의 신분과 연씨 가문의 전공, 그리고 진국공부의 권세를 이용하여 자신의 원한을 풀려 하고 있었다.배은망덕함에 있어서 그녀와 최진겸은 다를 바가 없었다.‘다 비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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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망서관.진주가 바느실을 가져다가 설은영의 앞에 놓았다.여자쪽 답례 중에는 예비신랑을 위해 직접 지은 잠옷과 신발이 필요했다.연 장군의 치수는 며칠 전 궁에서 온 재단사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혼례복은 궁중 재단실에서 준비하겠지만 이런 일들은 타인의 손을 빌릴 수 없었다.“아씨, 추 이랑은 이미 경조부로 보내졌다 합니다.”진주가 살짝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진주와 취아는 그동안 추 이랑이 설은영에게 한 짓을 곁에서 모두 지켜봐 온 사람들이었다.악인이 악행에 따른 말로를 맞았으니 기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아마 다시 그곳을 나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멀쩡히 살아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만약 이 혼사가 아니었다면 신분이 밝혀졌다고 해도 공정한 대우를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두 시녀는 진국공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이로써 조금 옅어졌다.혼인도 하기 전에 그분의 신분을 빌려 설은영이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루었으니 오히려 감사할 뿐이었다.설가의 시종으로서 진주와 취아는 저택의 다른 시종들과도 꽤 가까운 편이었다.둘은 똑똑하고 눈치가 빠른 편이었기에 일부러 둘을 곤란하게 하는 사람은 없었다.그러나 설은영은 달랐다. 그녀는 오로지 망서관에서만 존재감이 있었다.처소를 떠나면 그들의 아씨는 마치 투명인간처럼 모두에게 무시를 당했다.설은영은 바느질 솜씨가 꽤 좋은 편이었다. 가문 내에서 가장 바느질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설은비는 신변에 바느질을 가르쳐주는 어멈이 따로 있고 강씨 부인은 후작부 출신이라 주변에 인재가 부족하지 않았다.하지만 설은영은 달랐다.전생에 최진겸과 혼인한 후, 넉넉치 않은 그의 집안 때문에 최진겸 신변의 반독과 최 부인 신변의 나이 든 어멈을 돌보는 일은 모든 게 그녀의 몫이 되었다.진주와 취아는 그녀를 덜 힘들게 하기 위해 그 집으로 가자마자 최 부인의 시중을 들었다.지난 생의 고생이 이번 생에서는 모두 경험이 되었다.하지만 이는 그녀의 굴욕이고 낙인이기도 했다.“앞으로는 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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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최씨 가문도 예전에는 흥했던 가문이고 비록 지금은 몰락했지만 가문의 토대는 일반적인 집안과 비할 수가 없으니, 설은비가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유일한 불만이라면 최진겸에게 병약한 어머니가 있다는 점이었다.비록 자신이 낳은 딸은 아니지만 15년간 곁에 두고 기른 정이 있으니, 강 부인은 설은비가 좋은 집안으로 시집가길 바랐다.강 부인이 보기에 최진겸은 좋은 짝은 아니었다.비록 준수한 외모에 단정한 기품을 가졌지만 집안 살림이 어렵고 병약한 어머니까지 모시고 있으니 앞으로 집안을 돌보는 일은 모두 설은비의 부담이 될 것이다. 곱게만 자란 아이가 정말 최씨 가문의 집안 살림을 돌보고 안주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있을까?설은비는 병풍 뒤에서 틈새를 통해 최준겸을 바라보고 있었다.소박한 차림새를 하고 있지만 귀티 나는 분위기를 가릴 수는 없었다.그녀는 연준과 혼인하여 생과부로 살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부군의 사랑을 받으며 자신의 아이를 낳고 일품 고명부인이 되고 싶었다.최진겸의 모친이 오랜 시간 병상에 누워 있다고 하지만 괜찮았다. 비록 혼수가 그리 풍족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적지 않았다.혼수에만 의지하여 산다고 해도 그리 힘들 것 같지는 않았다.하물며 신변의 어멈과 시녀만 적어도 일여덟 명이니 그녀가 굳이 고생할 이유는 없었다.설은영처럼 재미없는 사람도 그 자리까지 올라갔으니 자신이라면 더 쉬울 거라는 확신도 들었다.최진겸이 결연한 의지를 보이자, 설은비는 병풍을 돌아 밖으로 나갔다.연녹색 치마저고리는 소녀의 순수하고 밝은 분위기를 돋보이게 했다. 햇살이 그녀의 얼굴을 밝게 비추니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이가 어디 있을까 싶기도 했다.최진겸은 흠모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당하고 올곧은 눈빛에서는 전혀 불쾌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소녀의 예쁜 눈망울도 그에게 닿았다.“소저, 오랜만에 뵙는군요.”운나라는 남녀 사이의 교류에 큰 제한을 두지 않았기에 혼약을 정한 후에는 서로 약속을 잡고 만남을 가지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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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아씨, 광평 후작부의 강 소저께서 오셨습니다.”진주의 뒤로 연노랑 치마를 입은 아름다운 소녀가 걸어들어왔다.소녀는 설은영을 보고 잠깐 놀란 표정을 짓더니 재빨리 다가와 그녀를 요리조리 뜯어보기 시작했다.“너 고모와 정말 닮았구나.”추 이랑이 아이를 바꿔치기 했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이 오랜 시간 동생으로 칭해왔던 아이가 가짜였고 오히려 늘 존재감이 없던 서녀가 진짜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강민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그래서 아침 일찍 설부로 달려왔던 것이다.“전에는 왜 몰랐을까?”그녀는 의심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설은영은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언니, 일단 앉아서 얘기해요.”두 사람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창밖에는 연못이 하나 있었는데 햇빛을 받은 수면이 운치 있게 반짝이고 있었다.벚꽃 나무 한 그루가 창문 절반을 가리고 있어 이따금씩 꽃잎이 흩날려 방 안으로 들어왔다.방은 크지 않지만 꽤나 우아하게 정돈되어 있었다.취아는 차와 간식을 내온 후, 조용히 물러갔다.광평 후작부 적장녀인 강민은 올해 열여섯 살로 경왕 서윤후와 눈이 맞아 정혼한 사이였다.2년 전, 노경왕이 병환으로 돌아가시며 혼례가 지체되었다.3년의 효도 기간이 끝나고 두 사람은 혼례는 내년 연초로 결정되었다.강민과 경왕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소꿉친구로 서로에 대해 잘 아는 사이였다.적어도 전생에 설은영이 죽을 때까지 경왕 부부는 금슬이 좋은 부부였다.왕부에는 강민 홀로 있었고 세 아들과 딸 한 명을 낳았는데 모두 똑똑한 아이들이었다.자리에 앉은 강민은 눈도 깜빡하지 않고 설은영을 관찰했다.“오라버니께 말씀 들었어. 성인례 때 내가 네 찬자(贊者: 고대 소녀의 성년례 때 주빈을 도화 의식의 절차를 진행하는 귀빈)로서 참석하지. 아니면 혹,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라도 있어?”설가의 출생의 비밀을 듣게 된 강민은 충격이 매우 컸다.오라버니가 설은영이 고모와 똑 같은 외모를 가졌다고 말했을 때도 그녀는 믿지 않았다.그녀는 전에 설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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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설은영은 놀란 눈으로 강민을 바라봤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광평후의 차남 강정익은 작년에 성년례를 마쳤다.운나라 사내들은 일반적으로 16세에서 20세 사이에 혼례를 올리는데 그는 성년례를 올린 후에야 신붓감을 물색하기 시작했으니 다른 사람들보다 좀 늦은 편이었다.그러나 강정익은 굳이 가문을 이어받을 필요가 없으니 혼사 방면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웠다.가업을 계승하지 않는다고 해서 가문에서 그를 버린 게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온 힘을 동원해 도와줄 것이다.“어떤 집 아씨를 마음에 두고 계신가요?”설은영이 물었다.강민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예부상서 제 대인의 둘째 딸인데 나와 동년배라고 하더라고.”그 말을 들은 설은영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전생에도 강정익은 그녀와 혼인하였는데 부부 사이가 꽤 좋은 편이었다.“사람들을 만나보는 것도 나쁘진 않네요. 그럼 집에서 언니의 소식만 기다릴게요.”강민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럼.”한편.쾅!백옥 찻잔이 바닥에 떨어지며 산산이 부서졌다. 뜨거운 찻물이 옆에 무릎을 꿇고 있던 어린 시녀의 얼굴에 튀었다.시녀는 이를 악물고 신음을 참아냈다.설은비가 이를 갈며 물었다.“왜지? 아무리 내가 어머니의 소생이 아니라지만 15년의 정이 있는데, 왜 내 성년례의 정빈이 그 애보다 신분이 낮은 거지?”옆에 있던 어멈이 다급히 그녀를 말렸다.“아씨, 지금 시국에 소란을 부리면 안 됩니다. 누가 듣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설은비는 짜증스럽게 자리에 앉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시녀를 노려보았다.“꺼져.”냉랭한 명이 떨어지자 시녀는 다급히 몸을 일으키고 물러갔다.그들은 왜 아씨의 성격이 점점 까다로워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전에는 분명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어멈은 설은비에게 따뜻한 차를 내어주며 부드럽게 말했다.“그분과 혼례를 치를 상대는 진국공이고 또한 폐하의 신뢰를 받고 계신 분이니, 미래의 국공 부인으로서 성인례를 성대하게 치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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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이번 생의 선택이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설은비는 최씨 가문에서 보낸 예물 장부를 보고 일그러지는 표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만약 전생에 진국공부의 예물을 받아보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속상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예물 장부에 적힌 물건들이 딱히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너무 예법을 잘 지켜서 일반 집안의 예물과 딱히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여기서 말한 일반적인 집안은 민간의 백성들을 가리키는 말이고 절대 양반가의 기준이 아니었다.모두 가치가 없지만 좋은 의미를 뜻하는 물건들이었다. 설은비의 허영심을 충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후회가 몰려왔지만 돌이키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진감래라고 최진겸의 앞길이 창창하니 몇 년만 참자고 그녀는 스스로를 되뇌었다.“뭐 부족한 거라도 있느냐?”강씨 부인이 그녀의 눈빛에 담긴 서운함을 읽지 못했을 리 없었다. 강 부인도 속으로 한숨이 나왔지만 더 이상 간섭하지 않기로 했다.설은비는 고개를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그런 건 없어요. 어머니께서 고생이 많으시네요.”앞날을 생각하면 예물이 하찮은 건 참을 수 있었다.어쨌거나 그녀는 절대 진국공 연준을 쳐다도 보지 않을 것이다.용모가 망가지고 불구가 된 사람은 사는 것도 재미가 없을 텐데, 차라리 일찍 죽는 게 나은 일일지도 모른다.강 부인이 말했다.“최씨 가문의 상황은 너도 이제 알지 않니. 그 집으로 시집을 가면 고생 좀 할 거다. 집에서 부리던 성격이나 습관들도 좀 자제해야 할 것이야. 알겠니?”다음 달이면 그녀를 시집 보내는 날이었다. 공을 들여 15년을 키웠으니 강 부인도 아쉬움을 금할 수 없었다.하지만 아무리 아쉽다고 해도 겉으로 티를 내선 안 되었다.만약 이 정도 감정조절도 할 수 없다면 일가의 안주인으로서 덕목이 부족하단 의미였다. 그녀는 후작부에서 세심한 가르침을 받고 자란 규수였다.설은비는 몰래 주먹을 꽉 쥐며 답했다.“명심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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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자신이 곁에 두고 키운 딸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으니 안쓰럽지 않을 수 없었다.“네 마음은 다 이해한다. 가기 싫으면 가지 마. 혼례가 코앞이니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신경 쓰지 말렴. 이 어미가 있잖니.”목적을 달성한 설은비는 일어나서 공손히 예를 행했다.“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 날도 늦었으니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강 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가봐.”청람원을 나오니 휘영청 밝은 달이 허공에 걸리고 싸늘한 바람이 불어왔다.시녀가 등불을 들고 설은비의 앞길을 밝혀 주었다.주변은 모두 어둠이지만 그녀가 걷는 길은 눈부시게 밝았다.그녀의 인생도 이리 되어야 할 것이다.한편, 최씨 집안은 경성에서 지리적 위치가 상당히 괜찮은 구역에 있었다.몰락한 양반가이지만 그래도 양반가문은 양반가문이었다.최가의 조상님들도 한때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권세를 누렸기에 지금은 몰락했지만 일반인들과 비할 바가 못되었다.집안에는 그래도 남은 재산이 조금 있었다.그게 아니라면 오랜 지병을 앓고 있는 최 노부인의 치료를 지탱할 수 없었다.“내 듣기로 설가의 두 딸은 출생 시에 바꿔치기를 해서 지금 네가 혼인하려는 처자는 서녀라던데.”얼굴이 누렇게 뜬 최 노부인이 음침한 얼굴로 아들에게 물었다.비록 적출과 서출의 차이가 크지는 않지만 생모의 신분 차이는 극명했다.예전에는 노부인도 경성에서 유명세도 있고 생모가 광평 후작부의 외동딸인 설은비가 아들의 앞길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서 꽤 마음에 들었지만 지금은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그녀가 여전히 설 시랑의 딸이지만 최씨 가문은 한때 존귀함을 누리던 가문이니 설씨 가문과 비할 바가 못된다고 생각했다.지금 가문이 몰락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설은비를 아들의 짝으로 받아주지 않았을 것이다.최진겸이 웃으며 말했다.“걱정 마세요, 어머니. 제가 연모하는 사람이고 출신과 무관합니다. 그런 것들을 제치고라도 정말 좋은 처자예요.”최 노부인은 고개를 숙여 기침을 하며 표정을 숨겼다.연모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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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금수방.설은영은 취아와 함께 점포 안으로 들어섰다. 연준에게 줄 잠옷을 만들려고 촉감이 부드러운 천을 보러 온 것이다.왔던 김에 자신이 입을 옷도 몇 벌 장만할 생각이었다.“너도 천 고르러 왔니?”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연분홍 치마저고리를 입은 설은비가 멀지 않은 곳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추 이랑을 닮은 화려한 얼굴이라 멀리서 보고 있어도 빛이 났다.오늘은 머리에 화려한 장신구까지 하고 나오니, 외모가 한층 더 돋보였다.그녀의 옆에는 설은영이 죽어도 잊지 못할 얼굴도 있었다.설은영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손바닥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간신히 이성을 잡아주고 있었다.‘최진겸!’전생에 그녀를 뼛속까지 이용해먹고 마지막에 인간돼지로 만든 짐승이 눈앞에 있었다.그를 제외하고도 그들의 곁에는 일남일녀가 있었다.최진겸의 동문 사형과 사매로, 여인은 경성 3대 서원 중 하나인 청송서원 원장의 외동딸 서유은이고 곁에 있는 사내는 그녀의 정혼자이자 영원 후작부의 세자인 유명원이었다.전생에 서유은은 성격이 조용한 시랑부의 서녀를 속으로 무시하며 이런 신분의 여인은 사형인 최진겸에게 부족하다고 생각했다.혼인하고 설은비가 집안을 알뜰히 관리하였지만 그럼에도 서유은은 싫은 티를 내고 다녔다.그런데 지금 보니 설은비와는 꽤 잘 지내는 것으로 보였다.아마 차이가 있다면 두 사람을 대하는 최진겸의 태도일 것이다.그는 진심으로 설은비를 연모했다.설은영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았다.“그러네.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인사를 주고받은 후, 그녀는 취아를 데리고 천을 고르기 시작했다.흰색, 검은색과 붉은색 세 가지 색상을 골랐다.금수방의 천은 경성에서도 꽤 귀한 편이었기에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그러나 외출하기 전 강 부인에게 받은 은화가 있으니 충분했다.궁중 재단실의 상궁이 말하기로 연준은 검은색을 좋아한다고 했으니 검은색은 그를 위해 고른 것이었다.최진겸은 설은영을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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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오늘 외출은 필요한 천을 주문하기 위함이고 중간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서둘러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들과 시간을 보낼 생각은 없었다.설은비가 웃으며 말했다.“이따가 교외로 나들이를 갈 건데 너도 같이 갔으면 해서.”예비 부부 두 쌍의 사이에 그녀를 초대한다니, 아무리 봐도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초대는 감사하지만 마음만 받을게.”말을 마친 그녀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취아의 부축을 받으며 마차에 오르는 설은영을 보고 일행도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본디 예의 상 한 말이고 정말 초대에 응한다면 오히려 어색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저 사람 성격이 까탈스럽네요.”서유은이 걱정스러운 어투로 물었다.“저택에서 언니를 괴롭히는 건 아니죠?”설은비는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앞으로 수년간 최진겸의 앞날을 위해서 친정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 굳이 적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아니야. 원래 사람들과 교류하는 걸 어색해하는 성격이야.”서유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그럼 다행이고요. 만약에 괴롭힘을 당했으면 제게 말해줘요.”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설은비와 함께 한바탕 욕해줄 수는 있었다.한편, 마차는 중도에 서서히 멈추었다.가림막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설 소저, 국공께서 보자고 하십니다.”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말투는 굉장히 공손했다.설은영은 뭐라고 말하려는 취아를 말리고 고개를 끄덕였다.“예.”그녀는 눈빛으로 취아를 안심시킨 뒤, 마차에서 내렸다.옆에는 그녀의 마차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호화마차가 서 있었다.안에는 흰옷을 입은 사내가 앉아 있었다. 시선을 강탈하는 완벽한 몸매에 반쪽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고 있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람이었다.그녀는 예전에 연준을 본 적 있었다.물론 연준은 그녀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몇 년 전, 연준이 처음 연 노장군과 함께 남부 변방 전장에 참여했을 때, 고작 이백 명으로 적군 이천 명을 물리치며 위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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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앉지.”사내는 서책에서 시선을 떼고 설은영을 힐끗 바라보았다.청량한 그의 목소리는 마치 가을안개처럼 몽롱하면서도 듣기가 좋았다.그의 옆으로 가서 앉으니 그는 다시 시선을 서책으로 돌렸다. 설은영은 굳이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마차 안에는 얕은 숨소리와 이따금씩 들려오는 책장 넘기는 소리뿐이었다.마치 세상과 단절한 듯, 아무런 잡음도 들리지 않았다.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설은영은 정신을 번쩍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언제부터인지, 사내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꽤 참을성이 있군.”비록 사람을 시켜 그녀에 대해 알아보면서 그녀가 약간의 계략과 계산이 있는 사람이란 걸 알았지만 성격이 유약하고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단호함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다.물론 국공부의 살림을 주관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다른 건 천천히 가르치면 될 것이다.“어쩐 일로 저를 부르셨습니까?”그녀는 공손한 어투로 물었다.연준은 그녀를 힐끗 바라보고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별일 없으니 이만 돌아가 보게.”설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물론 농락당한 기분은 아니었다. 연준 같은 사람이라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의 심기를 심히 거스르지 않은 이상은 이렇게 악랄한 수법으로 사람을 괴롭힐 사람은 아니었다.아마 아직은 자신에게 말해줄 수 없는 사정이 있을 거라고 설은영은 생각했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예를 행했다.“그럼,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마차로 돌아간 그녀는 다급히 질문을 던지려는 취아를 눈짓으로 말렸다.“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야.”취아는 곧바로 그 의미를 알아차리고 차 벽을 두드렸다.“출발하죠.”사내는 설가의 마차가 멀어질 때까지 뒤에 서서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도련님.”잠깐의 침묵 후에 연준은 담담한 시선으로 부하를 바라보며 말했다.“돌아가자.”저택에 돌아오니 강씨 부인의 부름이 있었다.설은영은 취아를 시켜 천들을 망서관으로 옮기게 한 후, 청람원으로 향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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