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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다시 쓸 운명: Chapter 51 - Chapter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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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화

그녀는 진심을 다해 애원했다.“그리고 이 약재는 꼭 언니 손에 전달해 주셨으면 해요.”그리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다.그런데 설은영이 이렇게 진지하게 부탁을 하니 설민준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설은비라면 이렇게까지 예의를 갖춰 그를 대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설은영을 탓할 수는 없었다.일전에 그가 보인 일련의 언행은 설은비의 편에 섰다고 할 수 있었다.그래서 그녀가 거리를 두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아마 그의 신분을 빌려 친우의 기를 살려주기 위함이 아니었다면 먼저 찾아오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어려운 일은 아니지. 이따가 외출할 때 한번 만나보도록 하마. 걱정할 것 없어.”설은영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예를 행했다.“감사해요, 오라버니.”설민준은 성급히 손을 뻗어 그녀를 다시 자리에 앉혔다.“그리 예의 차릴 것 없다니까. 난 네 오라비야.”설은영이 예의를 갖춰 대할수록 그는 점점 죄책감이 들었다.눈치 빠른 설은영은 입술을 살짝 깨물고 진심 어린 미소를 지었다.“예, 오라버니 뜻에 따를게요.”갑자기 달라진 그녀의 태도에 설민준은 기분이 좋아졌다.이는 설은비를 대할 때와는 다른 기분이었다.설은비는 늘 달콤하고 녹아들 것 같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그녀에게는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재주가 있었다.이제 와서 그는 갑자기 설은영도 보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렇게 온순한 성격에 어디 가서 괴롭힘을 당하진 않을까 벌써 걱정이 되었다.설민준의 태도변화를 느낀 설은영도 몰래 웃음을 지었다.‘이렇게 다루기 쉬운 사람일 줄이야.’혼례를 앞두고 있지 않았다면 그녀는 직접 전지연을 찾아가고 싶었다.잠시 후, 시내의 한 주루.설은비는 자색 두루마리에 얼굴 반쪽을 가린 사내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비록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비범한 분위기의 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압박감과 공포감이 그녀를 옥죄었다.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치다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은비야!”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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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내가 두려운가?”연준은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갑작스러운 질문에 설은영은 멈칫하다가 멍하니 고개를 들고 그와 시선을 맞추었다.희비를 알 수 없는 참으로 고요한 눈빛이었다.무감각한 상대의 시선 속에 설은영은 담담히 답했다.“두렵지 않습니다.”그 말은 진심이었다.연준은 피식 비웃음을 짓더니 말했다.“경성의 많은 사람들은 나를 두려워하지.”특히나 폐하의 무한한 신뢰를 받고 있기에 그를 두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사람들은 그가 폐인이 되어서 모든 걸 잃었기에 신경 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설은영이 말했다.“연씨 가문은 대대로 전장에 나가 적을 물리치고 운나라의 백성들을 비호하였습니다. 저 또한 연씨 가문의 비호를 받은 사람 중 한명이지요.”연준은 의외라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실로 오랜만에 듣는 말이었다.그는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소녀의 입술에 시선을 두었다.“연 장군께선 어린 나이 때부터 전장에 나가 무수히 많은 적장을 베었습니다. 연가군은 기율을 엄격히 지키는 군대이고 장군께서는 연 노장군의 가르침을 받은 분이니, 검을 운나라의 백성에게 겨누지 않을 것입니다.”“장군, 저는 평범한 외모에 출신도 빼어난 편이 아니니 진국공부는 제게 감지덕지한 곳이지요. 심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장군께 과분한 마음을 품고 있지 않고, 악의는 더더욱 없습니다.”연준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평범한 외모라는 말은 맞지 않았다.별을 담은 듯한 반짝이는 눈동자에 오똑한 코, 탐스러운 입술, 비록 설은비처럼 화려한 외모는 아니더라도 깨끗하고 청순한 인상을 주는 여인이었다.‘일부러 약한 척을 하는 것일까?’출신을 따져도 3품 시랑이면 절대 낮은 관직이라 볼 수는 없었다.그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은 큰 실수를 하여 황제의 분노를 사지 않는 한, 관직을 강등당할 걱정은 없었다.설시랑은 상서의 오른팔 정도 되는 사람으로, 능력이 없다면 그 자리까지 오를 수 없었을 것이다.그녀의 마음이야 어떻든 그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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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설은영은 따분함을 느껴 찻잔에 든 찻잎을 세기 시작했다.단지 시간을 때우기 위함이었다.연준은 수시로 고개를 들고 그녀를 힐끔거렸다.이런 환경에서도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소일거리를 찾아낸다니 참으로 재밌는 사람이었다.그러나 그녀가 살아온 배경을 생각하면 어느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원하는 게 있으면 언제든 분부만 하시오.”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설은영이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이곳은 연씨 가문 휘하의 주루거든.”설은영이 뭐라 대답하려던 찰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전해졌다.“은영아, 안에 있니?”설은비였다.그녀는 연준이 두려웠지만 진주가 방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설은영도 안에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찾아온 거였다.설은비의 감정은 매우 복잡미묘했다.그녀는 연준을 증오했다.남녀 사이의 애정과 쾌락을 주지 못하면서 자신이 바람이 난 것을 발견하고 그동안의 노고와 정은 모두 무시하고 잔인하게 자신을 죽인 그가 미웠다.하지만 전생에 자신의 부군이었던 사람이 이번 생에 다른 여인에게 특별하게 대하는 건 또 꼴보기 싫었다.특히나 그녀가 줄곧 안중에도 두지 않았던 설은영이라면 더욱 그러했다.끼익!방문이 열리고 흰 비단치마를 입은 설은영이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잠깐의 놀람을 뒤로하니 설은비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분노가 사무쳤다.‘역시 여기 있었네.’전생에 그녀와 연준 역시 황제의 명으로 혼례를 올리게 되었다.연준은 그녀에게 풍성한 예물을 주었지만 혼례 전에 두 사람은 사적으로 만남을 가진 적이 없었다.만약에 만났었더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와 혼인하지 않았을 것이다.얼굴이 다 망가진 못난이는 꽃처럼 아름다운 자신의 곁에 설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다른 선택지가 있었더라면 그녀의 외모로 입궁하여 후궁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쉽게도 지금의 태자와 태자비 부부는 금슬이 좋고 우애가 깊으니 파고들 기회가 없었다.물론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설은비는 태자에게 접근할 마음이 없었다.지금의 태자는 결국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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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전생의 설은비는 적녀로 평생을 살았고 죽을 때까지 신분이 밝혀지지 않았다.태어났을 때부터 그녀는 가문에서 가장 사랑받는 존재였다.부모님은 그녀를 총애했고 오라버니는 언제나 그녀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다.순탄한 인생에 가장 힘들었던 역경이 바로 연준과의 혼인이었다.늘 무시만 당하던 설은영이 이런 말투로 자신을 대하니 치미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신분이 바뀌었다고 믿는 구석이 생긴 거야? 웃기네.’서녀라고 할지라도 설은비는 자신이 적녀인 설은영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했다.“은비야, 가자.”최진겸이 다가와 그녀에게 말했다.“그쪽에서 네 호의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앞으로 멀리하면 될 일이야.”설은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나가는 와중에도 그녀는 수시로 고개를 돌려 굳게 닫힌 방문을 바라보았다.최진겸은 그녀가 동생을 걱정해서 그러는 줄로만 알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한편.연준은 설은비에게 단호한 태도를 보인 설은영에게 또 한번 호감을 느꼈다.겉보기엔 아무런 욕심도 없어 보이지만 사실 상 그녀는 날카로움을 감추고 있었다.그는 이런 사람이라면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싫어하는 사람인가?”그가 갑자기 물었다.설은영은 멈칫하다가 입술을 살짝 깨물고 고개를 저었다.“싫어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굳이 형식적인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겠다고 느껴서요. 피곤하거든요.”그녀와 설은비 사이에는 원한이 존재하지 않았다.전생에 그녀가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 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결과였다.새 삶을 얻었으니 다른 사내를 선택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그녀 역시 그러했다.방 안에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해가 저물 무렵, 설은영은 진주와 함께 주루를 나왔다.마차에 오르려는데 연준의 심복이 그녀를 불렀다.“아씨.”설은영은 고개를 돌려 청년을 바라보았다.청년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적색 옥패 하나를 건넸다.“앞으로 주루에 오실 일이 있으시다면 조금 전 들었던 방으로 바로 가시면 됩니다. 그곳은 도련님의 방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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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저택으로 돌아오자마자 시녀가 다가와서 고했다.설은영은 옷도 갈아입지 않고 곧장 청람원으로 향했다.안으로 들어서니 설은비도 같이 있었다. 그녀는 뭐가 즐거운지 강씨 부인과 하하호호 웃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은영이 왔구나.”강씨 부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목소리만 들어도 피로가 다 가시는 기분이었다.다만 전생에는 이런 기분을 느껴보지 못했다. 전생의 강 부인은 늘 그녀에게 냉랭하게 대했기에 함께 있으면 압박감만 느꼈을 뿐이다.“어머니.”설은영은 공손히 예를 올렸다.“찾으셨어요?”강씨 부인은 품에서 초대장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이틀 후면 상원절인데 장공주께서 교외의 별원에서 각 가문의 어린 낭군들과 처자들을 초대하여 연회를 베푼다고 하니 너희 자매가 함께 참석하도록 하여라.”설은영은 고개를 돌려 설은비의 미소를 힐끗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예, 어머니.”강 부인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날 널 위해 지은 옷이 곧 완성된다는구나. 내가 청연을 시켜 보내주도록 하마.”“감사해요, 어머니.”그렇게 설은영은 강 부인의 처소에서 저녁식사까지 마친 후, 망서관으로 돌아갔다.상원절.이번 생에도 그때와 같은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었다.3월 2일, 상원전 전날에 진국공부에서 사람을 보내왔다.설은영은 사내의 신분을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연안이 웃으며 자기소개를 했다.“아씨를 뵈옵니다. 저는 진국공부 부관인 연안이라고 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저를 연 부관이라 불러주시면 됩니다.”설은영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연 부관께서 이곳까지 걸음하신 건, 혹 장군께서 제게 전할 말씀이라도 있으신 겁니까?”연안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설은영을 바라보았다. 옆에 있던 청년이 앞으로 다가와 상자 하나를 건넸다.“내일이 곧 상원절이군요. 도련님께선 아씨가 장공주의 꽃 맞이 연회에 참석하시는 줄 알고 저희를 시켜 장신구를 보내드리라 하셨습니다.”설은영은 잠시 침묵하다가 진주에게 눈짓을 했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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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설은비는 설은영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지금의 모든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연준이 그녀를 특별하게 생각할수록 미칠 것 같았다.전생에 그녀는 연준을 위해 수년간 생과부로 살았다. 한 소녀의 가장 아름다운 나날들을 허비한 것이다.그녀가 아무리 얌전히 굴고 아무리 그의 눈에 들려고 노력해도 상대는 그녀에게 눈길 하나 제대로 준 적 없었다.일년 사계절, 무수히 많은 밤을 그녀는 홀로 보냈다.그런 절망을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 없었다.정말 참기 힘들지 않았다면 호위와 사통하는 황당한 짓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아직 혼례도 올리지 않고 정혼만 했을 뿐인데 연준은 전생의 그녀에게는 한 번도 준 적이 없었던 친절을 설은영에게 베풀고 있었다.‘네가 무슨 자격으로!’설은비는 치미는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하지만 참아야 했다.교지로 이어진 혼사이고 만약 설은영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설은비 본인에게도 득 될 게 전혀 없었다.한편, 설은영은 상자를 열어보았다.안에는 투명한 빛이 반짝이는 옥제 머리 장신구가 서른여섯 가지나 들어 있었다.“아씨, 참으로 예쁘네요.”진주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감탄했다.세상물정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최상품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법이다.강 부인이라고 해도 이렇게 화려한 장신구는 갖고 계시지 않았다.“국공 나리께서는 참으로 자상하시네요. 장신구와 내일 입고 가실 옷도 잘 어울려요.”설은영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상자를 덮었다.상원절을 지내고 며칠 후면 설은비의 혼례였다.혼례가 끝나면 그녀의 성년례가 치러질 것이다.내일은 장공주의 연회에 참석하는 날이니 그리 눈에 띨 필요가 없었다.설은영은 이 장신구는 성년례 날 하기로 했다.“내일은 어머니께서 주신 장신구를 하고 갈 거야.”진주는 살짝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지만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다음 날 아침.취아의 도움을 받아 단장을 끝낸 설은영은 청람원으로 향했다.근처에 거처가 있는 설은비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청순하고 단아한 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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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그 모습을 지켜보는 강 부인은 어딘가 눈에 거슬렸다.친동생이 뒤에 있는데 설민준은 여전히 서녀만 챙기고 있었다.‘어리석은 놈.’저택 입구에 도착하여 설은비가 먼저 마차에 올랐다.설민준은 뒤에서 따라오는 설은영을 보고 잠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방금 전에는 설은비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정신이 팔려 미처 신경을 써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은영아, 조심히 올라가렴.”그는 옆에서 부드럽게 손을 내밀었다.설은영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부축을 받아 마차에 올랐다.“감사해요, 오라버니.”설민준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남매끼리 그리 예의 차릴 것 없대도.”말을 마친 그는 곧바로 말에 올랐다.“출발하자.”마차 안.설은영은 유람기 한권을 꺼내 읽었다. 며칠 전 광평 후작부로 갔을 때 빌린 것인데 위에는 읽기 좋게 표기가 잘 되어 있었다.마차가 좀 흔들렸지만 책을 읽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설은비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얌전한 척하기는.’그녀는 오늘 금수각에서 산 해바라기 꽃무늬의 비단치마를 입었는데 화려한 외모와 어우러져 무척이나 눈부셨다.“너는 이런 연회는 처음일 테니 있다가 분수를 잘 지켜서 행동해. 가문의 체면이나 깎지 말고.”그 말을 들은 설은영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눈빛으로 설은비를 힐끗 바라보다가 답했다.“그래, 고마워.”설은비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화를 내고 싶은데 목구멍에 뭔가가 꽉 막혀 말도 나오지 않고 가슴만 갑갑했다.‘비웃는 말도 못 알아들은 건가? 역시 멍청이는 눈치도 없나 봐!’설은영은 더 이상 말을 섞기 싫어 다시 시선을 책으로 돌렸다.귓가에 누군가가 자꾸 떠들어대는 것보다는 조용한 분위기가 좋았다.“매년 꽃 맞이 연회 때는 폐하와 황후께서도 얼굴을 비추실 거야. 비록 잠깐 오셨다가 돌아가시겠지만 태자 전하와 공주님들은 연회에 남으셔.”“넌 예법도 배운 적 없고 초대를 받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니 혹 실수라도 하면 우리 가문 전체가 너 때문에 연루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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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소문으로 연준은 부상을 입은 후로는 폐하의 궁중 연회를 제외하고 그 어떤 초대에도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그런 사람이 오늘은 어쩐 일로 왔을까?설은영은 그가 자신을 보러 왔다고는 생각지 않았다.그러나 설은비는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았다.그녀는 안색이 음침하게 변하여 차창을 뚫을 기세로 바깥을 노려보고 있었다.“저 사람이 어쩐 일이래?”얼핏 듣기에는 질문 같지만 말투에서 깊은 분노가 느껴졌다.설은비는 연준에게 마음을 준 적 없었다.그러나 자존심이 강한 그녀는 전생과 확연히 다른 차별적 대우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전생에 연준은 그녀를 거의 무시하다시피 하며 냉대했다.그런데 이번 생에 신부가 바뀌었다고 수시로 설은영의 주변에 나타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설은비는 자신이 중심인 세상에서 살았고 자신이 설은영보다 못한 구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가림막을 열자 설민준이 마차 옆으로 다가왔다.“도착했어.”그는 웃는 얼굴로 설은영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연준 앞이라서 여동생에게 친근하게 구는 게 아니라 설은영이 가장 바깥쪽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설은영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설은비가 먼저 일어나서 손을 그의 손바닥 위에 놓았다.그녀는 마차를 내려가면서도 고개를 돌려 설은영에게 경고의 눈빛을 보냈다.설민준은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그는 설은비를 부축해서 내려준 후에 다시 다가가서 설은영을 부축했다.설은영은 이런 사소한 것들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다만 두 번의 인생을 살게 된 설은비가 왜 지금도 이렇게 참을성이 없고 속내를 감추지 못하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감사해요, 오라버니.”그녀는 마차를 내린 후에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설민준은 그녀가 남매 사이에 과하게 예의를 지키는 것이 서운했다.아무리 그가 그날 설은비의 편에 섰다고 해서 피를 나눈 정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그날 일은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났고 15년을 총애한 여동생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뿐이었다.그는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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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설은영은 그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했다.그게 아니라면, 전생에 10년을 함께한 정실에게 인간돼지로 만드는 혹형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차라리 이혼을 했더라면 어떨까?어쩌면 설은비는 가질 수 없는 마음에서 비롯된 그의 집념일 수도 있었다.“아씨가 오는 줄 알고 내가 데려왔지.”뒤에서 호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원 후작부 세자인 유명원이었다.그의 옆에는 연두색 치마저고리를 입은 서유은이 있었다.그들은 자연스럽게 설은영을 무시하고 설은비, 설민준 남매와 인사를 나누었다.설은비가 서유은을 바라보며 말했다.“며칠 안 보이더니 뭐 하고 지냈어?”서유은은 다정하게 설은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언니의 혼례식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지요.”설은비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네….”그들은 웃고 떠들며 장공주의 별원으로 향했다.설민준은 동생을 버려두고 그들을 따라갈 수 없었다.저들이 일부러 설은영을 따돌리는 것을 그가 모를 리 없었다.그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서서 설은영의 옆에 섰다.“내 기억에 넌 상서부의 셋째 아씨와 우애가 깊었었는데.”설은영은 그의 호의를 알기에 웃으며 답했다.“지연 언니는 출산 때 원기를 상하여 지금은 저택에서 요양 중이세요. 아마 당분간은 연회에 참석할 수 없을 듯하네요.”“그러게. 일전에 진수랑 같이 그 집에 다녀오긴 왔었지.”비록 전지연 본인은 보지 못했지만 그날 들은 충격적인 소식은 아직도 기억에 남았다.전지연은 딸을 낳은 후로 시어머니의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두 사람은 근방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비꼬는 소리를 들었다.전지연이 시댁에서 사랑받지 못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오라비로써 전진수의 표정이 음침하게 굳었다.그들은 곧장 들어가서 싸늘히 경고했고 전지연은 아마 당분간은 조금 편히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상서부의 딸을 이렇게 하찮게 대한다는 것은 전씨 가문에 대한 무시이고 경멸이었다.적장자인 전진수는 이 일을 좌시할 수 없었다.설민준 본인이라고 하더라도 신분이 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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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지는 가운데, 설은영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그저 우연히 지나가다가 마주쳤을 뿐입니다. 군주께서 무사하셔서 다행이지요.”서이경은 그녀의 손을 잡고 정자가 있는 곳으로 이끌었다.“언니, 따라오세요.”그녀는 설민준 일행을 무시하고 또박또박 말했다.“생명의 은인에게는 평생을 두고 보답해야 하는데 저도 소녀라서 언니와 혼인할 수는 없어요.”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소녀를 바라보았다.서이경이 계속해서 말했다.“하지만 괜찮아요. 저희 오라버니의 친우들 중에 혼기가 찬 황족들이 많으니까요. 저랑 함께 가서 언니가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골라봐요. 제가 중매를 설게요.”서혁은 당장이라도 눈 뒤집고 기절하고 싶었다.그는 다급히 달려와 여동생을 가로막으며 말했다.“이경아, 그만하거라. 설 소저는 이미 정혼자가 있는 몸이야. 다음 달이면 혼례를 올릴 텐데 소란 피우지 말거라.”서혁이 나서니 설민준도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언니, 정혼자가 있었어요? 누군데요?”서이경은 약간 실망한 눈으로 설은영을 바라보며 물었다.설은영은 살짝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말과 행동이 거침없는 것을 보면 왕부에서 얼마나 사랑을 받고 자랐는지 알 수 있었다.‘그래서 민왕비께선 딸을 잃고 우울증을 겪다가 그렇게 가셨구나.’“그분도 나라에 위명을 알린 영웅이랍니다.”설은영은 생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군주의 뜻은 감사하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겠네요.”그 말을 들은 서혁은 의외라는 눈빛으로 설은영을 바라보았다.‘진심으로 연준과의 혼인을 원한다고? 아니면 이경이를 거절하기 위해 지어낸 말일까?’서이경은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런 거였군요.”“예. 하지만 군주님의 마음은 참 감사하답니다.”설은영은 소녀의 손을 잡으며 계속해서 말했다.“만약 진심으로 제게 보답하고 싶으시다면, 나중에 영선루에서 밥이나 한번 사주세요. 저는 그곳 음식을 아주 좋아하거든요.”서이경은 환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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