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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화

확신이 서지 않으니 설은비는 나중에 시간을 내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그녀는 회귀한 사람이 자신뿐이었으면 좋겠다며 요행을 바라고 있었다.그게 아니라면 설은영이 최진겸을 자신에게 양보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전생에 두 사람은 사이가 꽤 좋았고 아이까지 있었다.설은영이 회귀자라면 뭐가 아쉬워서 연준을 택하겠는가.그녀는 속으로 괜한 걱정하지 말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한편, 정자의 뒤편에는 엿못이 하나 있었는데 비단잉어가 신나게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맞은편에는 3층 높이의 누각이 있었다.2층 창가 쪽에서 연준은 한 청년과 바둑 대결을 진행하고 있었다.“각궁의 마마님들께서 축하 선물을 이미 준비해 두셨다는군. 국공부에 보낼지 아니면 신부의 혼수에 보태게 할지 고민이라고 해.”청년은 담담한 표정으로 바둑판에 흑자를 내려놓았다.연준은 바둑판에 정신을 집중한 채, 무심한 듯 말했다.“국공부로 보내라고 하십시오. 그 사람 혼수품에는 더 이상 추가할 수 없습니다.”청년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의외라는 듯 웃었다.“자네 미래의 부인될 사람에게 꽤 관심이 많은가 보군?”‘난 아바마마께서 괜한 일을 하셨다고 생각했는데.’연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바둑을 내려놓으며 항복을 표했다.“설가에서 상자 80개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국공부와 폐하께서 하사하신 것까지 합치면 또 80상자가 되지요.”그는 새로운 판을 시작하며 말을 이었다.“더 추가하면 예법에 어긋나게 됩니다. 궁에서 보낸 물건은 어차피 국공부로 가져가야 하니, 괜한 수고를 덜라는 의미였습니다.”태자 서종이 웃으며 말했다.“그렇군. 관원 가문의 딸로서는 최고의 격식이 되겠어.”비록 혼수가 많을수록 딸을 아낀다는 의미이지만 대놓고 예법을 어기면서까지 혼수품을 더할 필요는 없었다.그랬다가는 정적들의 탄핵을 면치 못할 것이다.두 사람은 폐하께서 점찍어준 혼인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굳이 예법을 어길 이유도 없었다.연준은 콧방귀를 뀌며 태자를 재촉했다.“전하의 차례입니다.”한편, 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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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전생에 최진겸을 내조하여 재상 부인의 자리까지 오른 적 있는 설은영이기에 수도 없이 많은 연회에 참석한 경험이 있었다.그녀는 장공주의 치하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이상, 황제의 체면을 생각해서 예의 상 한 말일 것이다.그걸 진심으로 여긴다면 너무 순진하고 어리석은 거였다.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진심을 말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10여년 동안 겪은 고난은 그녀에게 값진 경험을 주었다.“장공주께서 이렇게 칭찬해 주시니 소녀,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황제의 안목이 탁월한 게 아니라, 그녀의 친정세력이 황실에 위협이 되지 않기에 억지로 진국공에게 보내진 사람이었다.“언니는 저에게 최고로 좋은 사람이랍니다.”옆에 있던 서이경이 갑자기 치고 들어왔다.“제가 사람 보는 안목은 탁월하거든요.”소녀는 진지한 표정을 짓고서 누가 설은영에 대해 안 좋게 말하면 화를 낼 것처럼 굴었다.옆에 있던 부인들은 못 말린다는 듯 웃었다.이경 군주가 민왕부에서 얼마나 총애를 받는 존재인지 다 알고 있었다. 지금의 폐하마저도 태자와 영녕공주 서선화를 제외하고는 조카딸을 가장 총애했다.태자와 영녕공주도 사촌동생인 서이경을 아꼈다.어쨌거나 서이경은 운나라에서 가장 총애를 받는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군주께서 저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설은영은 눈매를 곱게 접으며 웃었다.서이경은 콧방귀를 뀌며 장공주의 품에 안겼다.“제가 좋은 사람이라면 좋은 사람인 거예요.”군주가 이렇게까지 감싸니 다른 사람들도 감히 설은영에게 시비를 걸지 못했다.어린 군주는 가끔 화를 낼 때면 폐하의 안전에서도 울어버리는 아이였다. 만약 설은영을 적대한다면 이경 군주는 절대 조용히 넘기지 않을 것이다.“고모, 이제 궁금증은 풀리셨나요? 풀리셨다면 저는 언니랑 놀러 갈게요.”서이경이 장공주의 손을 잡고 흔들며 말하니, 장공주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그래, 그래. 가서 놀아. 밖에 사람이 많으니 부딪치지 않게 조심하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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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어린 군주는 쉬지 않고 설은영에게 음식을 권했다.설은영은 잔뜩 들뜬 소녀의 눈빛을 보고 참으로 순수하고 맑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나중에도 먹고 싶으면 제게 말해줘요. 제가 주방장을 시켜서 만들어 보낼게요.”설은영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그럼 감사해요, 군주님.”서이경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자신이 좋아하는 간식을 상대도 좋아한다니 점점 더 설은영이 마음에 들었다.“제 주방장은 폐하께 졸라서 데려온 사람이거든요.”설은영은 그 말을 듣고 잠깐 침묵했다.‘궁중 요리사였구나. 어쩐지….’한편, 한무리의 청년들이 설민준을 에워쌌다.“자네 언제 저런 여동생이 생긴 겐가?”그들은 설씨 가문의 적녀와 서녀가 바뀌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눈앞의 처자가 그때의 그 서녀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현장에는 예전에 설은영을 만났던 사람들도 있었다. 긴 머리로 얼굴 절반을 가리고 있어 음침한 인상을 주었던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차림새도 거의 눈에 띄지 않고 겁이 많아서 가까이 다가가기 싫은 모습이었다.아무도 그때의 설은영을 지금의 그녀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연노랑색 치마에 청순한 얼굴, 걸을 때마다 산들거리는 치맛자락과 행동 하나하나가 품위가 있으니, 적지 않은 청년들은 마음이 혹했다.그녀의 배후에는 시랑부까지 있으니 집안의 안주인으로서는 손색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한 것이다.설민준은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언제 생겼다니? 우리 가문에 딸은 둘뿐이야. 자네들도 알지 않은가?”몇몇 청년들은 평소에도 설민준과 자주 왕래하는 사람들이었다.탁!부채를 닫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시선이 전진수에게로 쏠렸다.그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눈살을 찌푸리더니 물었다.“저 사람이 원래는 서녀였던 자네의 동복 동생인가?”같은 공부에 임직을 맡고 있으니 전진수와 설민준은 사이가 꽤 가까운 편이었다.그 역시 몇번이나 설씨 저택에 방문하였기에 내부 사정에 대해 알고 있었다.설민준은 눈을 끔뻑이며 말했다.“자네는 그게 왜 궁금한가? 당연히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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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설민준은 친우들이 설은영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고 마음이 착잡해졌다.기쁘기도 하고 서운한 마음도 있었다.전에도 그는 설은영을 미워하거나 싫어한 적은 없었다. 지금은 어머니와 흡사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더욱 정감이 갔다.하지만 그녀는 늘 오라버니인 그에게 거리를 두고 있어서 갑갑한 상황에 친우들이 그녀에게 관심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한편, 정원의 어느 정자.설은비는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다.그녀는 설은영이 어떻게 우연히 민왕부의 군주를 구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폐하께도 총애를 받는 아주 귀한 신분이었다.설은영이 군주의 관심을 받게 되었으니 든든한 지원군이 한 명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설은비는 억울했다.분명 생을 거슬러 돌아온 것은 자신인데 돌아온 것은 미미했다.만약 설은영도 회귀자라면 전생의 경험을 통해 운명을 바꿨을 수 있었다.‘흥, 네가 무슨 자격으로….’“은비 언니?”정신을 차리니 서유은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유은아, 무슨 일이니?”서유은이 웃으며 말했다.“무슨 생각을 하는데 그리 멍하니 있어요?”설은비는 재빨리 생각을 정리하고는 말했다.“곧 혼례날이 돌아오니 좀 긴장되기도 하고 생각이 많아지네.”서유은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와 유명원은 혼례날까지 아직 2년이나 남았으니 체감이 잘 되지는 않았다.“언니는 혼인한 후에 지금처럼 자유롭지 못할까 봐 걱정하나요?”설은비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혼인하면 집안살림도 해야 하고 아이도 낳아서 길러야 하니 여유시간이 얼마 없겠지. 지금처럼 너와 함께 자주 나들이도 못 나갈 테고.”서유은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괜찮아요. 제가 언니 보러 자주 갈게요.”서유은은 생각이 단순한 처자였다.두 번의 삶을 산 설은비의 속내를 그녀가 헤아릴 수는 없었다.한편, 난각.연준은 시종의 부축을 받으며 옷을 갈아입었다.옆에 함께 있던 태자가 말했다.“체내 독소가 좀 줄어든 건 그나마 좋은 소식이로군. 과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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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설가의 자매는 자연스럽게 함께 앉게 되었다.하지만 그걸 원치 않는 사람이 있었다.“언니, 저랑 같이 앉아요.”서이경은 옆에 있는 시녀에게 명했다.“언니의 수저와 음식들을 내 쪽으로 좀 가져와.”설은비는 입밖으로 거의 나오려던 인사말을 속으로 삼켜야 했다.그녀는 시녀가 다가와 설은영의 음식과 수저를 가져가는 것을 바라보다가 자신을 묘하게 바라보는 주변인들의 시선을 느끼고 이를 악물었다.설은영을 자신의 옆자리로 데려와서야 서이경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언니, 어서 들어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해요.”장공주는 놀란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어린 서이경은 먹는 것에 있어서 이렇게 관대한 사람이 아니었다.이 정도로 설은영을 배려하는 것으로 보아 진심으로 그녀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감사해요, 군주님.”설은영은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서이경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색해서 말했다.“언니, 이경이라고 편하게 불러주세요. 저는 서이경이라고 해요.”설은영은 기대에 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소녀를 거절할 수 없었다.“그래. 군주께서 예법에 어긋난다고 생각지 않는다면야. 이경야.”“헤헤.”서이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오찬이 거의 끝나갈 때쯤, 태자 서종이 안으로 들어왔다.현장에 있던 여인들은 분분히 일어나서 예를 행했다.서종은 황후의 적장자로, 외조부 가문은 청렴한 문관 가문이었다. 뭇 황자들 중에서 학식이나 재량이나, 아니면 외척의 도움이나 흠잡을 데가 없는 분이었다.설은영은 그를 힐끗 보고는 생각에 잠겼다.전생에 태자는 7년 후 갑자기 병을 앓다가 세상을 떴다.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황제도 몸 상태가 많이 노쇠해졌다.남은 황자들은 대놓고 그 자리를 두고 서로 죽일 듯이 경쟁하기 시작했다.맨 나중에 오황자가 황위를 이어받고 최진겸은 그의 측근으로서 공을 인정받아 최연소 재상이 되었다. 동시에 그는 호부상서 직까지 겸하였으니 신황제가 얼마나 그를 신뢰하는지 알 수 있었다.설은영뿐이 아니고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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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태자 오라버니, 연 장군은 분명….”소녀는 말끝을 흐리다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이렇게 빨리 혼인해도 괜찮나요?”태자는 손을 들어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효는 다해야지. 다만….”그는 소녀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계속해서 말했다.“연씨 가문에는 이제 연준 한 사람만 남았고 집안을 관리할 안주인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야. 연가의 조상님들께서 사정을 아신다면 분명히 뭐라 하진 않을 게야.”전장에서 위명을 알린 진국 장군부의 이백여 명은 모두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연준은 연씨 가문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었다.황제는 절대 연가군의 업적을 경계하지 않을 것이다.가문은 한두 사람이 일으키는 것이 아니었다.연준에게 시간을 줘서 재기한다고 하여도 최소 이십 년은 필요했다.황제와 태자가 즉위하는 기간에는 연씨 가문의 위명을 경계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였다.정말로 그들의 공훈이 황실의 빛을 가린다는 말이 나올 때도 황제와 선황은 연씨 가문을 멸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황제는 백성들에게 성군의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연준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진국공과 진국장군, 두 관직을 모두 한사람에게 주었으니 그 무게는 어마어마했다.황제는 제 몸도 가누기 힘든 연준이 홀로 3년이나 부모님상을 지키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연씨 가문 조상님들도 그걸 원치는 않을 것이다.부인을 들인다면 적어도 저택 안에 활기는 돌 것이다.이는 저택의 시종들이 대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서이경은 설은영이 안타까웠다.“시집을 가자마자 집안살림을 관리해야 하나요? 그럼 언제 저랑 놀아요?”설은영은 고운 미소를 지으며 소녀에게 말했다.“이경이가 언니한테 오면 되지.”서이경의 눈빛이 잠깐 반짝였지만, 이내 사라졌다.소녀는 멀리 있는 호화마차를 바라보며 입을 삐죽였다.“그건 그때 가서 얘기해요. 하지만 신혼 선물은 준비할게요.”소녀는 나이가 어려 뭘 준비해야 할지 모르지만 돌아가서 어머니에게 물어볼 수 있었다.풍성해야 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는 그런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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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솔방울과 매화꽃술 같은 향료를 말린 후에 가루로 만들어 향낭 안에 넣고 다니면 정신이 맑아지는 효과가 있습니다.”그녀는 허리춤에 달고 있는 흰색 향낭을 가리키며 물었다.“나으리도 하나 드릴까요?”연준은 말없이 그녀를 조용히 바라만 볼뿐이었다.설은영은 어색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숙였다. 진국공부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뭔들 부족할까 싶기도 했다.따뜻한 온기가 그녀의 손끝에 잠깐 닿았다가 떨어졌다.향낭을 가져간 연준은 주머니를 열고 향료를 꺼낸 후, 향낭을 그녀에게 돌려주었다.“향이 괜찮군. 앞으로 잘 부탁하오.”설은영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만들기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저는 향을 만드는데 흥취가 있으니 앞으로 다른 향도 한번 만들어 드릴 테니 맡아보세요.”연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마차 안에 다시 정적이 찾아오고 잠시 후에 마차가 천천히 멈추었다.“도련님, 시랑부에 도착했습니다.”설은영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예를 행했다.“저는 먼저 돌아가 보겠습니다. 데려다주셔서 감사했어요, 나으리.”연준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설은영은 취아의 부축을 받으며 마차에서 내렸다.“아씨, 도련님께서 아씨께 뜨리는 간식입니다.”호위가 마차 안에서 작은 함 하나를 들고 나오더니 취아에게 건넸다.설은영은 뒤로 두 걸음 물러서서 떠나는 연준을 배웅한 후, 저택으로 돌아갔다.그녀는 처소로 돌아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청람원으로 갔다.“왜 이리 일찍 왔어?”강 부인이 물었다.“네 오라비는?”“오라버니는 조금 늦게 오실 거예요. 저는 국공부 마차를 타고 돌아왔어요.”강 부인은 곧바로 상황을 이해했다.연 장군은 워낙 그런 장소를 좋아하지 않는데 얼굴을 비춘 것만으로 장공주의 체면을 살려준 거였다.그런 그가 성으로 돌아오며 정혼자를 데리고 돌아오는 건 문제될 게 전혀 없었다.그가 딸에게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꽃맞이 연회란 본디 미혼 남녀들이 모임을 가지며 알아가는 자리였다.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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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다음 날.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으러 나오는 설은영에게 취아가 다가와 설은비가 왔다고 전했다.“밖에서 기다리라고 해.”설은영은 더 이상 참아줄 수 없었다.서로 간섭하지 않기로 해놓고 왜 이렇게 귀찮게 군단 말인가.취아와 진주는 굳이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예전부터 두 사람은 설은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신분이 까발려진 지금에도 자존심을 부리는 것이 굉장히 불쾌했다.남의 인생을 15년이나 차지하고 살았으면서 미안한 마음은 전혀 없어 보였다.“은비 아씨, 저희 아씨는 지금 아침을 들고 계시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진주의 말에는 빈틈이 없었지만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설은비도 그것을 느끼고 화가 치밀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설은영이 자신을 싫어하는 걸 알면서 먼저 찾아왔으니 반응이 싸늘해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설은영은 천천히 아침을 즐겼다.예전보다는 아침 식사의 규격이 많이 좋아진 편이었다.처음 신분이 밝혀진 날, 주방장은 설은비 대신 화풀이를 하려는 건지, 엉망인 아침을 보내왔다.그러나 곧바로 강 부인에게 들켜 지금은 모든 부엌 인원들을 교체하고 새롭게 사람을 들였다.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누군가가 원망을 품고 음식에 넣지 말아야 할 것을 넣는다면 그게 더 큰일이었다.설은비는 차 세 잔을 비운 후에야 설은영을 만날 수 있었다.설은영은 앞으로 다가가서 앉으며 말했다.“할 얘기 있으면 빨리 해. 곧 혼례를 올릴 텐데 이 시기에 너와 말다툼하기는 싫으니까.”같은 여인으로서 평생 한번뿐일 혼례식이고 두 사람 사이에는 그렇게 큰 원한도 없으니 굳이 이런 때에 다툴 이유는 없었다.설은비는 그 말을 듣고 말문이 막혔다.분명 설은영도 자신처럼 회귀자가 아닌지 물어보려고 온 건데 지금 그녀의 모습을 보니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회귀한 사람이라기엔 성격이 너무 직설적이었다.전생에 그녀는 일품 재상 부인 칭호까지 얻은 몸이었다.매년 수많은 연회를 참석해야 했을 텐데, 이 정도 참을성이면 구설수에 올랐을 것이다.처음부터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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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취아에게 음식을 들려 보내도록 할게.”설은영은 바보가 아니었다.“우리가 사적으로 사이가 어떻든, 사람들 앞에서 흠잡을 일을 해서는 안 돼.”설은비는 가슴이 철렁하여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어제 꽃맞이 연회에서 친한 지인들과 설은영의 험담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지금 생각해 보면 어리석은 짓이었다.설은영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가 아니라, 언젠가 지인이 자신을 배신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설은영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할 때,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봤을지도 생각하니 짜증이 치밀었다.설은영은 그녀의 속내를 뻔히 알고 있지만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전생에 설은비가 현명한 사람이었다면 그런 결말을 맞지도 않았을 것이다.물론 최진겸에게 10년이나 속아 처참한 결말을 맞은 자신도 어리석었다.“그럼 이만 가볼게.”더 이상 앉아 있기 힘들어진 설은비는 대충 인사를 하고 나가버렸다.밖으로 멀어지는 설은비를 보며 설은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연정? 어쩌면 처음부터 그런 게 없었을지도.’연정이란 어쩌면 최진겸의 핑계일지도 모른다.자신의 능력으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이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일 리가 없었다.조금만 알아보면 설은비가 왜 그를 내치고 연준에게 갔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결국 따져보면 설씨 가문이 몰락하고 그 자신은 재상의 자리에 올랐으니, 이득을 가져다줄 수 없는 설씨 가문은 오히려 짐으로 느꼈을 것이다.설은비에게 약간의 호감은 있을 수 있어도 권세가 가져다준 미묘한 느낌과 비교하면 남녀간의 애정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최진겸은 결국 그녀를 내칠 생각이었다.10여년간 집안에서 살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점점 건강 상태도 나빠져 늙어가는 그녀가 그에게는 부담이었을 것이다.고관으로 승진하고 부자가 되고 부인이 죽은 것, 그뿐이었다.한편, 설은비의 시녀 백주가 말했다.“아씨, 망서관 아씨는 참으로 무례하네요.”설은비가 직접 찾아와 초대까지 했는데 그렇게까지 대놓고 거절하다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설은비가 웃으며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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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마차 안.설민준은 보따리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랑이 직접 만든 거라면 옷감이 어떻든 충분한 성의를 표시한 거였다.“자네 집안의 이랑은 참으로 현명한 분이로군.”전진수는 바로 말속에 숨은 뜻을 알아차렸다.“집안에 이랑이 둘인데 두 분 다 현명하고 분수를 잘 지키는 분들이긴 하지.”분수를 아는 사람이기에 전지연은 참을성 많고 서럽다고 친정 식구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이번에 자네 동생이 아니었으면 우리 가문 체면도 상했을 게야.”전지연은 서녀이긴 하지만 저택에서 존재감이 없는 아이는 아니었다.전씨 가문의 아들딸들은 동등한 대우를 받았다.다른 건 몰라도 2품 관원의 딸이 시댁에서 난산으로 죽었는데 친정에서 의원조차 불러주지 않았다면 분명히 서녀를 박대한다는 구설수에 오르내렸을 것이다.이는 가문의 다른 자매들의 혼사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만약 정적들이 이를 이용해 문제 삼는다면 폐하의 신뢰를 잃게 되고 관직이 강등당할 수도 있었다.개미구멍 하나로 성이 무너질 수도 있는 법이다.적지 않은 가문들의 몰락은 아주 사소한 사건에서 비롯되었다.“며칠 후에 자네의 동생을 연회에 초대할 생각이었는데 곧 혼례를 치를 처자들이니 나중으로 미루는 수밖에 없겠군.”적어도 5월까지는 기다려야 했다.설은영의 혼례는 4월 22일, 이는 황제가 흠천감을 시켜 고른 날짜였다.“혼례가 끝나면 국공 부인이 될 텐데 자유롭게 연회에 출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지금의 연준은 모두가 경외심을 갖는 상대이고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많았다.특히나 연가군과 마찰이 잦았던 호부나 병부는 더욱 그러했다.모든 걸 잃은 연준이 화가 나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다들 쉬쉬하고 있는 분위기였다.호부와 병부의 사람들은 연 장군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벌렁거렸다.혹 진국공의 심기를 건드려 자신들의 목이 날아가지 않을지 걱정한 것이다.어쩌면 그들이 죽어도 황제는 연준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도 있었다.전진수가 웃으며 말했다.“자네도 말했듯이 진국공 부인이면 진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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