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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화

이번에 설은비는 어멈 한 명과 두 명의 심복 시녀, 그리고 잡일을 할 시녀 네 명과 네 시종을 데려가기로 했다.2품 관원의 딸로서는 최고의 규격이었다.앞으로 그들의 녹봉은 설은비나 최진겸이 지불하게 되었다.그 두 사람은 설은영이 일부러 명단에 넣은 건 아니었다. 두 사람이 먼저 설은비를 따라가기를 자청했다.강 부인은 하인을 박대하는 상전이 아니기에 적지 않은 시종들은 굳이 환경을 바꾸고 싶어하지 않았다.특히 잡일을 하는 시녀라면 더욱 그랬다.그쪽으로 가서 잘될지 힘들어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만약 최씨 가문 사람들이 그들을 박대한다고 해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것이다.그래서 인원은 대부분 자발적으로 가기를 청한 사람들 위주로 꾸려졌다.이는 불필요한 마찰을 줄일 수 있는 수단이었다.“아씨는 시집을 가시면 누굴 데려가실 생각인가요?”취아가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설은영은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너와 진주, 최씨 어멈은 원래 국공부 사람이니 당연히 같이 갈 거고 다른 사람들은….”그녀는 잠깐 숨을 고르고 취아를 바라보며 말했다.“좀 더 지켜보자꾸나.”이 저택 사람 중에 설은영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사람은 몇 없었다.적절한 인원이 없다면 진국공부에 가서 사람을 간택하는 수도 있었다.진주가 음식 상자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상자 안에는 밖에서 가져온 간식이 들어 있었다.“아씨, 왕원 오라버니가 보낸 거예요.”설은영은 간식들을 힐끗 보고는 그 속에서 서신 한 통을 꺼냈다.비뚤비뚤한 필적은 왕원의 것이었다.서신을 다 읽은 그녀는 위에 차를 부어 푹 적셨다.“간식은 마당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렴.”진주가 간식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취아는 옆에서 설은영을 도와 실을 정리했다.연준에게 줄 잠옷은 이미 완성되었고 이제 신발만 남았다. 최씨 어멈은 이 부분에 대해 간섭하지 않았다.설은영은 그 점이 매우 만족스러웠다.최씨 어멈은 자신이 진국공부에서 왔다고 하여 오만하게 굴거나 편견을 갖고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고 공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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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한편, 최씨 가문.“도련님.”시종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어디 불편하십니까?”최근 들어 최진겸은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안색이 몹시 초췌했다.그는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피로감을 해소하려 애썼다.꿈을 꾸는 횟수가 점점 빈번해지고 있었다.매일 밤 그 처참한 몰골을 한 인간돼지가 처참한 비명을 지르는 것을 들었다.며칠 동안 같은 꿈이 반복되니 그의 정신력도 점점 피폐해지고 있었다.오늘은 그의 혼례날이라 집안 전체에 잔치 분위기가 흘러넘쳤다.이제 그가 신부를 데리러 갈 시간이었다.하객으로 동료와 이웃들이 참석했고 병든 최씨 어멈을 대신해 오늘 혼례의 주관은 그의 사모가 맡았다.“괜찮아.”그는 진하게 우린 차를 한모금 마셨다. 떫은 맛이 입안에 퍼지자 약간 정신이 돌아왔다.“어머니 쪽은 문제없게 사람을 보냈지?”시종이 답했다.“그럼요. 노부인 쪽은 걱정하지 마십시오.”이야기를 나누는데 부관이 안으로 들어왔다.“도련님, 영원 후작 세자께서 오셨습니다.”운나라의 혼례식은 황혼 때 치러진다.그러니 잔칫상도 자연히 저녁에 치러졌다.최씨 가문은 몰락한지 오래되어 본가의 저택을 돌려받을 수 없었지만, 지금 사는 곳도 나쁘지 않았다.서유은은 어젯밤에 서 부인과 함께 저택으로 와서 하룻밤 묵고 아침 일찍 혼례를 도와준다고 돌아쳤다.밖으로 나가니 함께 들어오는 두 사람이 보였다.“세자를 뵙습니다.”유명원은 걸음을 멈추고 최진겸을 바라보더니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역시 신랑관답군. 준수하고 귀티가 난단 말이야.”최진겸은 겸손하게 고개를 숙였다.“감사합니다, 세자. 일찍 오셨는데 저와 함께 신부를 맞으러 가실 겁니까?”유명원은 고개를 끄덕였다.“물론이지.”그는 자신의 차림새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그래서 일부러 잔치 분위기에 맞는 옷을 골라 입고 오지 않았나. 그런데 자네 안색이 어째….”“너무 흥분돼서 잠을 못 잔 겐가?”최진겸은 묵인의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그렇지 않고 꿈에서 인간돼지를 봤다는 불길한 말을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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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옆에 있던 최씨 어멈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시종 명단은 함부로 변경할 수 없습니다. 같이 가는 시종이 죽었으니 누군가가 대신해서 가야하고 부령의 이름을 써야겠지요.”진주도 고개를 끄덕였다.“한씨 어멈이 거기 갔다가 연주를 봤다고 하네요. 앞뜰 청소를 맡았던 시녀가 그녀를 대신했다고 해요.”설은영은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넌지시 물었다.“그 대체자와는 아는 사이니?”진주가 말했다.“지나가다가 몇 번 마주쳤던 사람이에요.”자리로 돌아간 설은영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누가 부령을 죽였을까?오늘은 설은비의 혼례식이고 만약 소문이 퍼지기라도 한다면 필히 입방아에 오르내릴 것이다.“아버지께서는 그 애를 총애하시고 어머니도 그 애에게 정이 있으니 집안 사람은 아닐 거야. 최씨 어멈….”부름을 들은 최씨 어멈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누군가 부령을 대신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어쩌면 그 사람은 최씨 가문으로 따라가고 싶어서 부령을 제거했을 수도 있지 않나요?”설은영은 고개를 저었다.“글쎄요. 앞뒤가 잘 안 맞는군요.”최씨 어멈이 말했다.“왜 하필 오늘이어야 했을까요?”“그러게요.”설은영이 말했다.“신부와 함께 가는 인원들은 진작에 정해졌어요. 어머니께서 직접 간택하시고 설은비가 확인을 마치고 정해진 거죠.”“신변에서 시중을 드는 자들은 은비와 오랜 시간 함께한 사람들이에요. 각자 장점이 있고 용모도 나쁘지 않으니 장차 첩실이 될 수도 있겠죠.”“하지만 잡일을 하는 시녀는 용모도 평범하고 설은비도 절대 예쁜 사람을 선택하진 않았을 거예요.”부령의 죽음은 어딘가 이상했다.진주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아씨, 혹 자결한 건 아닐까요?”황당한 추측이었다.설은영은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 없어.”부령과 연주 두 사람은 설은비를 노리고 가는 사람들이었다.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자결했을 리 없었다.“기다려 보자. 혼례가 끝나면 어머니께서 처리하시겠지.”북소리가 멀리서 들려오자, 설은영은 발꿈치를 들며 바깥을 내다보는 시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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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흥겨운 잔치가 계속되고 있었다.진주와 취아는 사람들 틈에 끼어 저택 밖 상황을 바라보았다.새신부가 가마에 오르자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아씨, 4인가마네요.”진주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다음 달 아씨의 혼례 때는 필히 8인가마가 올 거예요.”말을 마친 그녀는 깨고소한 표정을 지었다.설은영은 웃으며 듣고만 있었다. 가끔은 진주가 왜 이렇게 설은비를 싫어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날 위해서 그러는 거 알아.”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망서관에 있을 때는 괜찮지만 앞으로 진국공부에 가서도 그렇게 말이 거침이 없으면 난 널 하루라도 빨리 시집보내는 수밖에 없어.”놀란 진주가 다급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아씨, 저를 내쫓지 말아주세요. 앞으로 꼭 언행에 조심할게요.”설은영은 손을 뻗어 진주를 부축하며 부드럽게 달랬다.“내가 널 내쫓으려는 게 아니라 네 성격에 앞으로 위험에 빠질까 봐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진국공부 내부가 어떤지 우린 모르지만, 아마 예법을 엄격히 따지는 집안임은 틀림없어. 난 그분께 그리 중요한 사람이 아니니, 너희들도 마찬가지란다.”“너희들의 안전과 내 안위를 위해서라도 앞으로 말하기 전에 잘 생각해 보고 신중히 말을 뱉으렴.”진주는 자신을 위한 말이라는 것을 알아듣고 정중히 고개를 끄덕였다.“걱정 마세요, 아씨. 명심할게요.”만약 말실수로 인해 자신이 죽는 거로 끝난다면 상관없지만 아씨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최씨 가문.밖에서 들리는 북소리가 노부인은 거슬렸다.그동안 느낀 바, 아들이 새신부를 얼마나 만족스럽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최진겸이 신부에게 애정을 가질수록 노부인은 가슴이 쓰렸다.부군을 일찍 잃은 노부인은 홀로 힘들게 아들을 키워냈다.모든 것을 아들에게 쏟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노부인은 최진겸을 수재로 길러낸 것에 자부감을 가지고 있었다.최진겸은 유능한 관원이기도 하지만 준수하고 효심이 지극한 아들이었다.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여인이 그의 시선을 빼앗아갔으니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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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합근주를 마신 최진겸은 수줍게 얼굴을 붉히고 있는 신부를 보자 가슴이 일렁였다.“은비 너는 조금 쉬고 있어. 나는 손님들을 접대하고 올게. 이따가 시종이 음식을 가져올 거야.”설은비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밤 치를 초야를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설레었다.“어서 가보세요, 부군. 유은이가 제 곁에 있을 거예요.”최진겸이 밖으로 나가니 구경하러 왔던 손님들도 분분히 물러갔다.사람들 중에는 이웃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신부 얼굴을 봤으니 이제 잔칫상을 먹으러 간 것이다.오늘 최가의 잔칫상은 경성 인기 주루의 주방장을 모셔서 음식을 만들었으니 꽤나 풍성했다.최씨네 저택에 잔치 분위기가 흐르는 가운데, 설씨 저택은 한겨울처럼 꽁꽁 얼어붙었다.집안의 안주인으로서 비록 대부분 살림은 며느리에게 맡겼지만 강 부인이 사건을 조사하려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진주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설은영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왜 그러니? 아는 사람이니?”진주가 다가와 작은 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아씨, 부령의 죽음을 제게 알린 주희가 바로 저 사람이에요.”한편, 상석의 강 부인이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우리 가문의 잔칫날에 사람을 죽이다니. 간땡이가 부었구나.”소녀는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분명 오늘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으면서 지금은 겁이 나서 떨고 있으니 황당할 따름이었다.그녀는 살려 달라 애원하지도 않았다.“며칠 전에 작은 마님께서 누가 은비를 따라가겠느냐고 너희에게 물었을 때, 너희는 우물쭈물하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지. 인원이 정해진 후에 사람을 죽이고 그 자리를 대신하려 한 것이냐!”강 부인은 화가 나서 머리가 지끈거렸다.그녀는 더 이상 말할 가치도 없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진월에게 말했다.“끌어내서 곤장을 쳐 죽여라.”소녀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눈물로 얼룩진 소녀의 얼굴은 초췌하고 기괴했다.“살려주십시오, 부인. 소인은 일부러 그런 것이….”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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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거기가 좋은 선택지가 아닐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니?”설은영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무덤덤한 눈빛 속에는 은은한 연민이 담겨 있었다.주희는 반박의 말을 내뱉지 않으려 입술을 꾹 깨물었다.“조씨 어멈은 너를 아끼기 때문에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최가네 저택으로 보내기 보다는 옆에 두려고 했던 것이거늘. 나도 눈치챈 것을 너는 전혀 몰랐구나.”그 말을 들은 조씨 어멈은 감격 어린 눈빛으로 설은영을 바라보았다.“말 한마디 못 나눠보고 네게 눈빛 한번 주지 않은 사내를 위해 무고한 사람을 살해하다니. 네 잔인함이 정말 소름 돋는구나.”말을 마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어머니, 저는 이런 사람을 보고 싶지 않으니 이만 돌아가 볼게요.”강 부인은 손을 흔들었다.“너도 오늘 노곤했을 텐데 어서 가서 쉬거라.”마당을 나서는데 등 뒤에서 강 부인의 싸늘한 음성이 들려왔다.“끌어내서 곤장을 쳐죽여라.”이렇게 수법이 잔인한 자는 살려둘 수 없었다.원한관계도 없는 사람도 죽이는데 언제 주인을 물지 알 수 없었다.주희는 더 이상 애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멍하니 시종들에게 끌려 밖으로 나갔다.설은영은 청람원 대문 앞에 서서 잠깐 뒤를 돌아보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주희에게는 이게 유일한 결말이었다.만약 오늘 일을 가볍게 처리한다면 언젠가 또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집안을 관리하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사람의 마음은 복잡하고 세세한 것들까지 헤아려야 했다. 약간의 차질이 있어도 집안 전체가 화를 입을 수 있었다.한편.정신이 아득해진 사이, 설은비가 마지막으로 든 생각은 정말 만족스럽다는 거였다.전생에 사랑을 나눴던 그 호위보다도 더 화끈했다.반면 최진겸은 신부를 품에 안고 멍하니 타고 있는 촛대를 바라보고 있었다.머릿속이 어지럽고 어쩐 일인지 가슴이 갑갑했다.분명 그는 연모하는 이를 품에 안았고 혼례도 차질없이 진행되었으며 부부의 합도 잘 맞았다.사내에게 과거 급제하는 일 말고 오늘이 가장 들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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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든든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설은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부부 사이의 합방이 이토록 미묘한 느낌일 줄이야.전생에 호위와의 사통도 자극적이었지만 극도로 긴장했기에 시름 놓고 즐길 수가 없었다.반 시진 후, 부부는 옷매무시를 정돈하고 노부인에게 문안드리러 갔다.뒤뜰.노부인은 진청색 비단옷을 입고 편청에 앉아 있었다.옆에는 인상이 싸늘한 중년 어멈과 굳은 표정의 시녀가 있었다.여기서 일각을 기다렸는데 며느리가 아직도 안 오고 있으니 세 사람 다 짜증이 치민 상태였다.“어머니.”노부인이 분노에 휩싸인 사이, 최진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노부인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아들을 바라보았다.하지만 최진겸의 옆에서 따라오는 설은비를 보자 미소가 한층 옅어졌다.며느리는 젊고 아름다우며 요염한 몸매에 듬뿍 사랑을 받은 티가 났다.그에 반해 부군을 떠나보낸 이후로 노부인은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고 있었다.마음가짐도 마음가짐이지만 노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중이었다.아침에 세수를 하며 거울을 봤더니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노부인을 당혹스럽게 했다.오래전엔 노부인 역시 젊고 아름다운 처자였다.설은비와 비교를 하니 점점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속에서 올라오는 시기심에 노부인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어머니, 은비와 함께 문안드리러 왔어요.”“어머님께 인사올립니다.”설은비는 단정하게 무릎을 꿇었다.옆에 있던 시녀가 찻잔을 그녀의 앞으로 건넸다.설은비는 찻잔을 받아 공손히 노부인의 앞으로 내밀었다.노부인은 그녀를 무시하고 부드러운 눈길로 아들을 바라봤다.“어제는 잘 쉬었느냐?”최진겸은 살짝 당황한 어투로 답했다.“저는 괜찮습니다.”어머니가 신혼 첫날밤에 대해 물으니 약간 불편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십여 년간 모자는 서로 의지하고 지냈기에 어머니가 자신을 얼마나 걱정하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시간이 참 빠르구나. 네가 벌써 혼인을 하다니.”노부인은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어 눈물을 보였다.“어머니.”최진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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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어머니, 잠을 잘 못 주무셨나요?”청람원.설은영은 안색이 초췌한 강 부인을 보고 걱정스레 물었다.강 부인은 의자에 몸을 기대고 청연에게서 안마를 받고 있었다.“별일은 아니야. 그 애의 혼례 때문에 신경을 쓰느라 좀 노곤했던 게지.”마침내 설은비를 시집보냈으니 앞으로 마주하며 신경 쓸 일이 없어서 좋았다.강 부인은 가끔은 설은비를 보고 있으면 짜증이 치밀었다.신경을 안 쓰자니 15년 길러준 정이 있고 너무 관심을 주면 친딸이 원망하진 않을까 눈치가 보였다.설은영은 설은비와 완전히 다른 성격이었다.침착하고 사려 깊으며 이성적인 아이였다.아마 이런 아이가 국공부로 시집간다면 설은비를 보내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물론 진작에 눈치챘더라면 아마 무슨 일이 있어도 딸을 진국공부에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겉으로는 부귀영화를 누리겠지만 자식을 볼 수 없는 처지이니 얼마나 고독하고 힘들지는 본인만 알 것이다.다행히 그녀의 배후에는 설씨 가문과 광평 후작부의 조력이 있으니 어느 정도는 비호해 줄 수 있었다.“네 성년례도 곧 돌아오는구나. 성년례 준비도 거의 다 마쳤고 혼수도 다 정리되었어. 넌 아무 근심도 하지 말고 안심하고 혼례만 기다리면 돼.”“혹….”강 부인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말했다.“혹여 진국공부에서 마음이 편치 않거든, 언제든지 친정에 놀러오렴.”설은영은 당연히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걱정 마세요, 어머니. 매사에 조심할게요.”강 부인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였기에 그녀는 더 머물지 않고 시녀와 함께 돌아갔다.“아씨.”오후가 되어 진주가 손에 초대장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민왕부에서 보냈어요. 왕비께서 연회를 베푸신다는데 아씨를 초대하셨더군요.”펼쳐보니 맨 마지막 단에 서이경의 글씨도 보였다.정갈하고 예쁜 궁서체였지만 앳된 티가 났다.그런데 연회 날짜가 조금 곤란했다.“이틀 후에 설은비가 친정으로 인사를 올 테니, 연회에 참석하긴 힘들 것 같구나.”그녀는 책상 앞으로 다가가 붓을 들었다.잠시 후, 그녀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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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서이경도 큰 기대를 갖고 꺼낸 얘기는 아니었다.“그럼 그 두 사람이 친정에 문안 오는 날짜를 하루 늦추게 할 수밖에요.”소녀는 주먹을 꼭 쥐고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민왕비는 이마를 짚으며 부드럽게 소녀를 타일렀다.“여인은 혼례를 올리고 3일 후에 친정에 문안을 오는 게 예법이거늘. 그런 중요한 행사를 어찌 미룰 수 있단 말이냐. 그건 옳지 않아.”얘기를 들은 서이경은 화가 나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니 언제면 언니를 다시 만날 수 있단 말인가?시무룩한 딸의 얼굴을 보고 민왕비가 말했다.“며칠 지나면 설 소저의 성년례 날이니 그때 어머니랑 같이 가자. 선물은 준비해 뒀니?”그 말을 들은 소녀는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잘 고민해 봐야겠네요. 은영 언니의 혼례식도 곧 돌아오는데….”아이는 동그란 눈으로 왕비를 바라보았다.민왕비는 딸이 또 무슨 말을 할지 몰라 가슴이 철렁했다.“어머니, 예쁜 장신구 갖고 계신 거 있나요?”그 말을 들은 민왕비는 오히려 안도했다.“있지.”그녀는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어머니가 잘 준비해 두도록 하마.”“예, 감사해요, 어머니.”어린 군주는 그제야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웃었다.한편.설은영은 우연히 지나가다가 설민준이 사람들과 궁술 겨루기를 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설 소저.”누군가가 그녀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상대를 알아본 그녀는 순간 당황했다.인사를 건넨 사람은 서혁이었다.전생에 양가는 한 번도 접점이 없었다.민왕은 현 황제의 동복 동생으로 형제 우애가 깊어 입지도 탄탄한 사람이었다.그런 사람이라면 아부하려 달려드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강 부인은 광평 후작부 출신이지만 민왕부와 비교하면 거리가 멀었다.그런데 서이경 덕분에 양가의 도련님이 어울리게 된 것이다.“세자 전하.”그녀는 공손히 예를 행했다.나머지 두 사람은 공부 상서부의 전진수와 대리사경 가문의 도련님 명준이었다.“어디 다녀오니?”설민준이 활을 내리더니 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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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설민준은 여전히 연준을 처남으로 들이는 게 마땅치 않았다.하지만 황제의 교지가 내려졌으니 거역할 수도 없었다.“제가 방해한 것 같은데 먼저 가볼게요.”설은영은 웃으며 그들과 인사를 하고 시녀와 함께 자리를 떴다.명준은 팔을 설민준의 어깨에 올리며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전에는 몰랐는데 자네의 동생은 강 부인과 정말 닮았군.”설민준은 침묵으로 응대했다.그 역시 동생과 같은 집에서 십여 년을 살아도 알아채지 못한 일이었다.그녀는 거의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게 바뀐 것 같았다.한편, 최씨 가문.설은비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최 노부인의 점심 시중을 들고 있었다.신혼 첫날이라 노부인은 며느리의 기강부터 잡기로 했다.최진겸은 조금 불편했지만 어머니의 심기를 거스를 수 없었다.그는 그저 눈빛으로 처에게 위안의 눈길을 보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설은비는 속으로 부아가 치밀었지만 대놓고 화를 낼 수도 없었다.하지만 이대로 이 나이 든 노친네의 손아귀에서 놀 수는 없었다.전생에 오랜 시간 진국공 부인으로 살아온 사람이니 그녀는 그리 멍청한 편이 아니었다.“은비야, 너도 이제 앉아서 먹어.”어머니의 식사가 거의 마무리되어가자 최진겸은 얼른 설은비에게 자리를 권했다.최 노부인의 눈빛에 불만이 살짝 스쳤지만 아들의 말을 반박하진 않았다.“아이고. 나이가 들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구나.”그녀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설은비를 바라봤다.눈빛에서 흘러나오는 악의가 없었더라면 설은비도 괜찮은 시어머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듣기 좋은 말은 설은비도 꽤나 능숙한 편이었다.“어머니의 시중을 드는 것은 며느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최진겸은 그 광경을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사내라면 누구든 어머니와 부인이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랄 것이다.점심식사가 끝나자, 최진겸은 자리에서 일어섰다.“난 처리해야 할 공무가 있으니 늦게 돌아올 거야. 은비 너는 졸리면 날 기다리지 말고 일찍 쉬어.”설은비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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