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Chapter 251 - Chapter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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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1화

온하준은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다.“그런데 말이죠, 여자는 마음이 약하고 선량한 게 천성이에요. 진심으로 대해주면 그 마음을 다 느끼는 게 여자라고요. 잘못이 있든 없든 먼저 사과하고 고칠 게 있으면 고쳐야죠. 일이 생길 때마다 술부터 찾으면 아내가 더 서운해할 거예요. 집에 도착하면 바로 전화해서 지금 어디쯤인지 돈은 부족하지 않은지 챙겨주고 돌아올 땐 데리러 가겠다고 말하세요. 같이 재미있게 사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겠어요?”온하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운전기사는 그를 힐끗 바라보며 물었다.“내가 나이도 좀 있어 보이는데 말 편하게 해도 되지?”온하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운전기사는 더는 망설이지 않고 말을 이었다.“잔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귀찮아하지 말고 들어. 보니까 평소에 아내한테 돈도 잘 쓰는 것 같은데 남자는 돈만 쓰는 게 다가 아니야. 돈이 없어도 마음으로 챙겨주는 게 진짜 사랑이지. 나도 별것 없이 운전이나 하면서 벌어 먹고살지만 우리 아내만큼은 늘 마음으로 아끼고 사랑해. 그래서 결혼하길 잘했다면서 그렇게 행복해해. 그러니까 너도 지금 전화 한 번 해봐. 거긴 마침 아침이잖아. 잘 잤냐고 안부도 전하고 어제 내내 보고 싶었다고 말 한마디만 해봐.”온하준은 짧게 웃기만 하고 움직이지 않았다.“왜? 부끄러워?”그는 휴대전화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배터리가 거의 다 돼서 곧 꺼질 것 같네요.”운전기사가 허허 웃었다.“그러면 꼭 기억해.”온하준은 고개를 숙이고 휴대전화를 내려다봤다. 밤새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배터리는 바닥이 나 있었다. 하룻밤 내내 전화는 울리지 않았다.화면엔 아침 7시가 떠 있었고 막 시차를 계산하려던 찰나 화면이 꺼져버렸다.집 앞에 다다르자 운전기사는 마지막으로 말했다.“아내한테 꼭 사과해. 알았지? 형이 쓸데없는 참견이 많다고 욕하지 말고.”온하준은 짧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집에 들어서자 그는 전화를 충전기에 꽂고 곧장 욕실로 향했다.옷을 벗다 가슴에 남은 얇은 손톱자국을 보고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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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2화

뚱보는 끝내 그 돈을 받지 않았다. 회사에 가려던 온하준은 몸이 축 처진 채로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무심히 뚱보의 인스타그램을 찾아봤다.그곳에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자잘한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아내가 오늘 무엇을 해 먹었는지 두 아이가 또 어떤 사고를 쳤는지 집 강아지가 무엇을 망가뜨렸는지 쉬는 날 집에서 요리 솜씨를 뽐낸 사진 같은 것들이었다.특별할 것 하나 없는 일상적인 사진들이었지만 온하준은 이유를 알 수 없이 눈시울이 붉어졌다.사진 속 사람들은 모두 웃고 있었고 그 웃음은 눈이 반짝일 정도로 환했다. 그는 뚱보가 요리한 사진 아래에 무심코 댓글을 남겼다.[형, 요리 솜씨 좋네요. 맛있어 보여요.]댓글을 남기고 다른 게시물을 보다 한참 뒤 인스타그램에 빨간 알림이 떠 눌러보니 뚱보의 답장이었다.[시간 나면 우리 집에 놀러 와.]온하준은 속으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 처음 만난 평범한 운전기사의 집에 놀러 간다는 건 그로서는 말이 되지 않았다.그는 잠옷 차림으로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있다가 천천히 미끄러지듯 몸을 내려 그대로 침대에 누워버렸다. 회사에 갈 마음도 함께 가라앉았다.벽에는 그와 강지연의 결혼사진이 걸려 있었다. 결혼식 날 촬영사가 찍어준 사진이었다.문득 강지연이 따로 결혼사진을 찍고 싶다고 몇 번이나 말했었다는 게 떠올랐다.그때마다 그는 바쁘다며 나중에 시간 나면 찍자고 넘겼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강지연은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고 온하준 역시 그 일을 잊어버렸다.대신 강지연은 결혼식 사진 가운데 한 장을 골라 크게 인화해 침실에 걸어두었다.그날 강지연은 들뜬 얼굴로 온하준이 퇴근하기를 기다렸다가 집에 돌아온 그를 붙잡고 사진을 보여주며 이 자리가 괜찮은지 이 사진이 예쁜지 이것저것 물었다.온하준은 그때 두어 마디로 건성으로 맞장구쳤을 뿐 곧바로 욕실로 들어갔다. 강지연의 눈에 실망이 스치는 걸 보면서도 그는 끝내 돌아보지 않았다.머리가 점점 무겁게 가라앉자 온하준은 아예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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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3화

조민서는 상황을 알아차린 듯 가볍게 웃어 보이며 먼저 걸음을 옮겼다. 강지연은 몸을 돌려 전화받았다.“온하준, 지금 뭐 하는 거야? 미쳤어?”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심하게 쉰 되다 갈라져 있었다.“강지연... 강지연...”“할 말 있으면 빨리 해.”“나... 나 몸이 안 좋아. 너무 힘들어...”목소리만 쉰 것이 아니라 정신이 또렷하지 않은 사람처럼 말끝도 흐릿했다.“온하준, 할 얘기 없으면 끊을게. 네가 아픈 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강지연, 끊지 마. 나 진짜로 아파... 너무 힘들어.”강지연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새어 나왔다.“아픈데 왜 나한테 전화하는 거야? 온하준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야?”“물... 물 마시고 싶어. 머리가 너무 아파서 못 일어나겠어.”소귀에 경 읽기였다. 그녀가 무슨 말 해도 온하준의 귀에는 닿지 않는 듯했다.‘아프니까 이제 와서 나를 찾는 거야? 병간호할 사람이 필요해서?’“온하준, 아프니까 병간호해 줄 사람이 필요한 거야?”“강지연, 나 진짜 너무 힘들어...”“힘들면 이하나한테 전화해! 비밀번호까지 다 알잖아. 와서 챙겨 달라고 해.”온하준은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하나... 하나를 왜 불러. 걔를 귀찮게 하면 안 되지.”강지연은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온하준, 정말 대단해. 바다 건너 해외에서까지 사람을 이렇게 열받게 만들다니.’이미 다 내려놓았고 이제는 상처도 받지 않으며 아무렇지도 않다고 믿었는데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이하나는 절대 성가시게 하면 안 되는 공주님이고 나는 필요하면 아무 때나 불러다 쓰는 사람이라는 거야? 정말 어이가 없어.’“선배.”뒤에서 따라오던 장시범은 강지연의 표정을 보고 웃으며 물었다.“왜요? 누가 선배를 화나게 했어요?”강지연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밥 먹으러 가자.”“그래요. 사람한테 밥보다 더 중요한 건 없죠.”장시범이 싱긋 웃으며 농담을 건네자 강지연도 결국 소리 내 웃었다. 그는 티 나지 않게 그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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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4화

마침내 안쪽에서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니요.”‘아픈 건가?’“대표님 그러면 제가 들어가도 될까요?”진경숙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네.”방으로 들어가자 온하준은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이런 모습은 평소의 온하준과는 분명히 달랐다.“대표님, 어디 많이 불편하세요?”“물 좀...”온하준은 목이 바짝 말라 있었다. 잠들어 있을 때는 몰랐는데 깨어나자마자 목이 타들어 가듯 따끔거리고 아파 물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아, 네. 잠깐만요.”진경숙은 거실로 나가 딸에게 물 한 컵을 떠 오라고 시킨 뒤 다시 한번 얌전히 앉아 있으라고 당부했다.그리고 절뚝거리며 컵을 받아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온하준은 겨우 몸을 일으켜 물을 마셨지만 물이 목을 타고 내려갈 때마다 칼로 긋는 것처럼 아팠다.진경숙은 벌겋게 달아오른 그의 얼굴빛을 보고 감기 몸살 같다는 생각이 들어 체온계를 가져와 재 보았다. 39.5도였다.온하준이 물을 마시고 다시 쓰러지듯 눕자 진경숙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대표님, 고열이에요. 병원 가셔야 하지 않을까요?”온하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설득해도 병원에는 가지 않겠다고 했고 가정 주치의를 부르자는 말에도 끝내 고개를 흔들었다.속이 타들어 가던 진경숙은 결국 직접 약을 챙겨 먹일 수밖에 없었다.다행히 그녀는 아이를 키운 경험도 있었고 강지연을 5년 동안 돌보며 기본적인 약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온하준은 몽롱한 상태로 약을 먹고 다시 잠들며 한마디를 남겼다.“오늘 밤에는 강지연을 객실에서 자라고 해요. 감기 옮길까 봐 그래요.”진경숙은 잠시 말을 잃었다. 솔직히 말해 그녀는 온하준에게 큰 동정심을 느끼지는 못했다.이 집에 고용된 사람이었지만 강지연과 함께한 5년 동안 그녀가 겪어온 일들이 늘 마음에 걸려 있었다.그래도 온하준의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었고 무엇보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를 이대로 두고 떠나는 건 아닌 것 같았다.어쩔 수 없이 진경숙은 절뚝거리며 한 손으로 집 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그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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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5화

진경숙은 그 말을 끝내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온하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그러면 계속 여기서 일하세요.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시고요. 지난 5년 동안 강지연을 잘 돌봐주셨잖아요. 월급은 올려드릴게요.”말투는 단정했고 단호했다.“하지만 사모님이...”진경숙은 그 뒤를 잇지 못했다.“강지연은 한 달만 나가 있는 거예요. 한 달 뒤면 돌아옵니다.”온하준은 이미 그 순회 공연단이 유럽을 한 달 정도 도는 일정이라는 걸 확인해 둔 상태였다. 진경숙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 사모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굳이 지금 꺼낼 수는 없었다.“그러면 대표님, 밥은 방으로 가져다드릴까요?”진경숙은 우선 침묵을 택했다. 한 달만 더 있다가 강지연이 온하준과의 이혼을 완전히 마무리하면 그때 떠나도 늦지 않았다. 지금 괜히 말을 꺼냈다가는 강지연의 일을 그르칠 수도 있었다.온하준은 침대에서 식사할 사람이 아니었다. 입맛은 없었지만 그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나가서 먹을게요.”“네.”진경숙은 서둘러 부엌으로 나갔다. 식탁에는 이미 진수연이 식기를 모두 차려 놓은 상태였다.방에서 나온 온하준은 진수연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진경숙이 재빨리 딸을 끌어당겼다.“아저씨께 인사해야지.”“아저씨, 안녕하세요.”진수연의 얼굴에는 긴장과 경계가 동시에 묻어 있었다. 조금 겁을 먹은 눈빛이었지만 자신이 지금 다니는 학교 역시 온하준의 도움 덕분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대표님, 죄송해요. 원래는 오늘 짐 정리하고 인사드리고 나가려고 했어요. 그래서 수연이도 같이 데려왔고요. 짐 정리를 좀 도와달라고.”온하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식탁 의자에 앉았다.“아이들 지금 방학이죠?”“네.”“지낼 데는 있어요?”“있어요.”진경숙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지난 5년 동안 진경숙은 진수연은 방학마다 기숙사에서 지내도록 했었다.하지만 올해는 이 집을 나가야 했고 결국 방을 구해 지내야 했기에 이번엔 기숙사를 신청하지 않고 방 하나를 얻어 두 달 정도 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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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6화

온하준의 병은 말 그대로 무너지는 산처럼 한꺼번에 덮쳐왔다.진경숙이 챙겨준 약을 먹고 열이 내려가자 이제 좀 괜찮아졌나 싶었지만 침대에 다시 눕는 순간 그대로 잠들어버렸고 밤이 되자 열은 거짓말처럼 되살아나 몸을 사정없이 두드렸다.약을 먹으면 가라앉았다가 조금 지나면 다시 오르고 그렇게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며 그는 사흘을 꼬박 앓았다. 나흘째가 되어서야 비로소 더는 열이 치솟지 않았다.병은 물러났지만 온하준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눈에 띄게 살이 빠졌고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간 듯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찼다. 회사에 나갈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그 사이 이하나와 김도윤과 김도진은 여전히 단체방에서 매일 같이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고 가끔은 따로 연락해 요 며칠 왜 보이지 않느냐고 물어왔다.그는 괜히 사람들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아프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휴가를 내고 집에서 쉬고 있고 개인적인 일도 조금 처리 중이라는 말로만 얼버무렸다.다섯째 날, 한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상대는 그가 온하준이 맞는지 확인한 뒤 몇 달 전 강지연이 주문해 두었던 수제 맞춤 가을옷이 모두 완성됐다고 전했다.직접 가져다줄 수도 있고 배송도 가능하니 혹시 수정할 부분이 있는지 확인해 달라는 연락이었다.온하준의 옷은 늘 강지연이 챙겼다. 특정 브랜드의 맞춤 제작이 기본이었고 여기에 다른 한 곳의 기성복이 더해진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 주문 방식이나 세부 사항에는 한 번도 관여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결제만 했다.직원이 덧붙였다.“강지연 씨께 계속 연락드렸는데 전화도 연결이 안 되고 카톡도 답이 없어서요. 예전에 고객 정보에 온하준 씨 연락처가 남아 있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연락드렸습니다.”“남자 옷입니까, 여자 옷입니까?”온하준이 물었다.“둘 다 있습니다. 강지연 씨가 올해 초에 주문하신 건데 이제야 전부 완성됐어요.”그는 잠시 시간을 가늠했다. 지금쯤이면 유럽은 밤일 테고 강지연은 아직 자고 있을 터였다.“그러면 제가 직접 가서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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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7화

“제가 할게요.”어시스턴트가 급히 나섰다.외투를 벗고 나서야 온하준은 셔츠 소매에 달린 커프스단추를 제대로 보았다. 블루 사파이어였다. 품질도 절단면도 한눈에 들어오는 두 알의 사파이어였다.“커프스단추가 꽤 독특하네요.”그의 말에 어시스턴트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지연 씨는 디자인 감각이 정말 좋아요. 예전에 한 번은 이 커프스 디자인을 브랜드에 라이선스로 넘겨 달라고 제안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거절하셨어요.”온하준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뭐라고요? 이걸 강지연이 디자인했다고요?”“네.”어시스턴트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온하준 씨 옷에 달린 커프스는 전부 강지연 씨가 직접 디자인하신 거예요. 지금 착용하신 이 사파이어 말고도 두 세트가 더 있어요. 하나는 퍼플 핑크 다이아몬드고 하나는 옐로 다이아몬드예요. 지난번에 어떤 고객이 이 옐로 다이아몬드 커프스단추가 무척 마음에 들어서 꼭 쓰고 싶다고 했는데 결국 포기했죠. 강지연 씨가 이 셔츠에 맞춰 디자인한 거라서요. 강지연 씨 말로는 이 커프스단추 이름이 ‘계수은하’래요.”온하준은 그 ‘계수은하’를 바라보다가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그의 커프스단추 대부분은 플래티넘에 보석이나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것이었는데 이 옐로 다이아몬드는 골드를 사용하고 있었다.그는 이 금세공 기법이 필리그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얼마 전 이하나가 전통 기법 장신구에 유난히 빠져 있었기에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가느다란 금선을 엮어 다섯 장의 작은 꽃잎 모양을 만들고 그 안에 황금빛 다이아몬드를 감싸 넣었다. 놀라울 만큼 정교했고 뒷면의 고리조차 작은 계수 꽃이 이어진 형태였다.“아, 그리고요.”어시스턴트가 말을 이었다.“강지연 씨가 주문하신 이 롱드레스도 이 ‘계수은하’에 맞춰 제작된 거예요. 보세요.”강지연이 주문한 유일한 드레스였다. 계수 꽃을 닮은 노란색 원단 위에 별처럼 점이 박혀 있었고 그 점들이 모여 계수 꽃 모양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꽃 하나하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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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8화

진수연은 처음 보는 여자였다. 그 여자는 현관으로 들어오자마자 애교를 잔뜩 실은 목소리로 온하준의 이름을 불렀다.“하준아, 하준아?”이하나는 며칠째 온하준을 보지 못했다. 김도윤과 김도진과 함께 두 번이나 약속을 잡아봤지만 그는 끝내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오늘은 아예 집으로 직접 찾아온 것이었다.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와 보니 온하준은 없고 마른 체구의 어린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너 누구야?”이하나는 온하준 주변에 자신이 모르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설마 강지연 쪽 사람인가?’“저는 진수연이라고 해요. 그런데... 누구세요?”진수연은 첫인상부터 이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남의 집에 얹혀사는 처지라 무례하게 굴 수는 없었다.“진수연? 누구야? 온하준이랑 무슨 관계인데?”이하나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대표님 댁에서 일하시는 가정부의 딸이에요.”진수연은 여전히 공손하게 말했다.“대표님을 찾으러 오신 건가요?”“가정부 딸?”이하나는 그 말을 천천히 곱씹었다.“진경숙 딸이네?”“네.”진수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하나는 문득 기억을 떠올렸다. 예전에 자기에게 욕을 퍼붓던 바로 그 여자였다. 그때부터 이하나는 진경숙을 강지연과 한패인 천박한 여자라고 여기고 있었다.이하나는 냉소를 지었다.“가정부 딸 주제에 주인집에까지 눌러앉았어? 낯가죽이 두껍네.”당황과 수치심이 한꺼번에 치밀어 올라 진수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그... 그건 온 대표님이 여기 있으라고 하셔서 있는 거예요.”“대표님?”이하나는 입꼬리를 올렸다.“물이나 한잔 가져와.”진수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얌전히 물을 떠 왔다. 유리컵에 물을 담아 두 손으로 내밀자 이하나는 힐끗 보더니 혀를 찼다.“쯧, 눈치도 없는 것. 손님이 왔는데 맹물을 대접하는 게 말이 돼? 이러면 대표님 체면 떨어진다는 것도 몰라?”“차... 차도 있어요.”진수연은 급히 차를 바꿔 들고 왔다. 그 순간 이하나는 손을 들어 차가 담긴 컵을 그대로 쳐냈다.끓는 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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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9화

진수연은 그제야 완전히 겁에 질렸다. 시골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돌아가서도 안 됐다.다시 돌아간다면 아버지는 분명 그녀를 그리고 엄마를 때려죽일 것이었다.진수연은 학교에 다니고 싶었고 능력을 키워 돈을 벌어 엄마를 잘 모시고 싶었다.아이는 소리 없이 울며 이하나의 발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해본 적이 없어 손길은 서툴렀고 덴 자리는 여전히 타는 듯 아팠다.공포가 목을 조르는 바람에 숨조차 제대로 쉬기 어려웠다. 울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지만 눈물은 말을 듣지 않고 뺨을 타고 흘러내려 이하나의 발등 위로 떨어졌다.그다음 순간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가슴 쪽 덴 자리에 둔중한 충격이 전해졌다.“아!”진수연은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더러운 눈물이 내 발에 떨어졌잖아!”이하나가 날카롭게 소리쳤다.“이 썩을 년! 너도 네 엄마도 다 썩은 년들이야!”진수연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러나 마음 놓고 울 수도 없어 울음소리를 삼킨 채 바닥에 엎드려 떨리는 손으로 아픈 곳을 눌렀다.“뭔 아픈 척이야? 당장 일어나. 다시 와서 주물러!”이하나의 고함에 진수연은 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바로 그때 현관문 소리와 함께 누군가 들어왔다.이하나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은 진경숙이었다. 온하준이 집에 있는 줄 알았던 진경숙은 이하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시선을 옮긴 순간 바닥에 쓰러져 있는 딸이 눈에 들어왔다.진수연은 엄마가 걱정할까 봐 급히 몸을 일으키며 아무 일 없다는 듯 말했다.“엄마.”“수연아, 너 왜 그래?”진경숙은 이하나를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자신은 그저 이 집의 가정부일 뿐이었다.강지연도 없는 지금 이하나가 찾아온 것을 막을 권한은 없었다. 진수연은 이하나의 시선에 등골이 서늘해졌지만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엄마, 괜찮아요. 제가 부주의해서 넘어졌어요.”“넘어졌다고?”진경숙의 시선은 이미 딸의 젖은 옷과 쇄골 아래로 붉게 번진 피부에 머물러 있었다.“여긴 왜 이래?”“아무것도 아니에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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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0화

진경숙은 온하준을 보자마자 그동안 꾹 눌러왔던 눈물이 끝내 버티지 못하고 쏟아졌다. 온하준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집안을 한 바퀴 훑어보았다.“하나야, 네가 왜 여기 있어?”이하나는 이미 탁자 위에 올려두었던 다리를 거두고 애교를 잔뜩 담은 목소리로 온하준을 부르며 두 팔을 벌려 그에게 달라붙었다.“하준아, 요즘 도통 얼굴도 못 봤잖아. 너무 보고 싶었단 말이야. 다들 너를 기다리는데 너는 연락도 없고 그래서 내가 직접 온 거잖아.”온하준은 새처럼 달려드는 그녀를 보며 온화한 표정으로 웃었다.“요 며칠 다른 일로 바쁘다고 했잖아.”“흥, 그래서 우리를 다 잊은 거야?”이하나는 입을 삐죽이며 투정을 부리다 그가 들고 온 여러 개의 쇼핑백을 보고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와, 하준아. 무슨 옷이 이렇게 많아?”“아, 응.”온하준은 안으로 들어가 옷을 내려놓았다. 그 사이를 타 진경숙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집을 빠져나갔다.문 닫히는 소리가 난 뒤에야 온하준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아주머니!”하지만 이하나는 그의 팔을 붙잡으며 투덜거렸다.“어떻게 하인 주제에 나가면서 주인한테 인사도 안 해? 너무 무례한 거 아니야? 하준아, 네가 왜 하인을 신경 써. 이 집 주인은 너잖아.”“그렇게 말할 일은 아니지.”온하준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요즘 하인이라는 말이 어디 있어. 회사 직원이랑 다를 게 없잖아. 아주머니도 내가 고용한 사람이고.”“돈 주고 부리면 하인이지!”이하나는 고집스럽게 말하며 쇼핑백을 뒤적였다. 그때 온하준은 진경숙에게 전화를 걸었다.“대표님.”진경숙은 이미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 있었다.“아주머니, 아무 말도 없이 어디로 간 거예요?”옷을 뒤지던 이하나는 손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진경숙은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대표님, 원래는 내일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 물으시니 말씀드릴게요. 대표님도 이제 다 나으셨고 오늘부로 수연이 데리고 나가려고 합니다. 그동안 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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