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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241 - チャプター 250

775 チャプター

제241화

강지연은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사실 그녀도 예전에 이런 적이 많았다.연습량이 많다 보니 체력 소모가 심했고 괜히 식단만 줄이면 체력이 따라가지 못했다.오늘은 무대에 서지 않고 뛰어다니며 뒷정리만 했을 뿐인데도 하루 종일 쉴 틈 없이 움직인 탓에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고 배는 몹시 고팠다.이국의 밤, 좁은 방 안에 둘러앉아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샤부샤부를 바라보며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를 맡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평온하고 즐거워 보였다.그때 강지연의 휴대전화에 영상 통화가 걸려 왔다.온하준이었다.그제야 그녀는 그가 해성으로 돌아갔다던 메시지가 떠올랐다.‘그렇다면... 이혼 서류를 확인하고 연락한 거겠지?’강지연은 조용히 휴대전화를 들고 화장실로 들어가 전화를 받았다.하지만 화면에 가장 먼저 나타난 얼굴은 예상과 달리 온하준이 아니라 이하나였다.“강지연.”이하나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더니 휴대전화를 들고 천천히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겼다.화면을 보는 순간 강지연은 그곳이 어디인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지난 5년 동안 자신과 온하준이 부부로 살던 바로 그 집이었다.이하나가 거실을 지나 주방으로 들어가자 화면에는 한창 식사 준비 중인 온하준의 모습이 비쳤다.‘같이 산다는 걸 보여 주려고 연락한 거였네.’“하준아!”이하나는 일부러 다급하게 부르며 화면을 살짝 돌리더니 말을 이었다.“얼른 와서 강지연이랑 얘기 좀 해 봐!”온하준은 잠깐 고개를 돌려 화면 속 강지연을 힐끗 보았을 뿐 이내 다시 등을 돌리고 조리하던 손을 멈추지 않았다.이하나는 더 초조해진 목소리로 재촉했다.“하준아, 얼른 강지연한테 설명해 줘.”그러나 온하준은 여전히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결국 이하나가 스스로 입을 열었다.“강지연,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내가 너무 졸라서 하준이는 어쩔 수 없이 나랑 놀러 간 거야. 하준이 원망하지 말고 화낼 거면 나한테만 내. 내가 다 보상...”늘 그랬듯 목적이 뻔히 보이는 사과였다.겉으로는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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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2화

강지연은 가슴을 누르며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이제 어떤 상황에서도 더는 아프지 않을 거라는 걸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다만 적어도 약간의 역겨움은 느껴질 거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느껴지지 않았다.화면 속 두 사람은 마치 한 번도 마주친 적 없고 전혀 상관없는 남남처럼 보였다.강지연은 어둠 속에서 드디어 빠져나온 기분이었다.그녀는 온하준에게서 벗어나니 마치 허물을 찢고 나온 나비처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선배님, 어서 와요! 이제 준비가 다 됐어요.”밖에서 장시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응, 알겠어.”강지연은 부드럽고 흐뭇한 목소리로 말했다.“선배님.”화장실 문 앞에서 장시범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문은 이미 열려 있었지만 그는 괜히 예의를 차리듯 두어 번 더 두드리며 말했다.“선배님, 다 됐어요? 다들 선배님만 기다리고 있어요.”“알았어. 지금 나갈게.”강지연이 휴대전화를 손에 쥔 채 화장실을 나서며 통화를 종료하려 했다.그 순간 화면 속에 온하준의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한눈에도 알 수 있을 만큼 그의 표정은 짙게 가라앉아 있었다.강지연은 더 보고 싶지도 않았기에 그가 이름을 부르려는 찰나 망설임 없이 통화를 끊어버렸다.그 후로 온하준이 몇 번이나 영상 통화를 걸어왔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받지 않았다.사실 식사는 분위기가 반이다.샤부샤부나 컵라면 같은 야식은 평소라면 제대로 된 한 끼로 치지도 못할 메뉴들이다.하지만 서로 같은 꿈을 꾸고 같은 무대를 향해 달리는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둘러앉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소박한 음식들은 금세 진수성찬이 되었다.강지연은 오늘 밤의 야식이 지난 5년 동안 온하준과 함께 다녔던 그 어떤 인당 몇만 원짜리 고급 레스토랑보다도 훨씬 풍성하고 맛있게 느껴졌다.실컷 웃고 떠들다 보니 어느새 자정이 가까워졌다.아무리 즐거워도 다음 날 또 무대를 준비해야 하기에 그들은 각자 아쉬움을 남긴 채 흩어졌다.방으로 돌아오니 조민서가 막 불을 끄고 누우려던 참이었다.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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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3화

강지연이 5년 만에 겨우 빠져나온 구덩이였다.메시지 대화창을 위로 훑어보자 오늘 밤에만 온하준이 보낸 메시지가 수두룩했지만 더 이상 하나하나 확인하고 싶지도 않았다.그녀는 짧고 단호하게 답장을 보냈다.[온하준, 난 이미 할 말은 다 했어. 이혼에 동의하는 내용이 아니라면 앞으로는 나한테 이런 메시지 보내지 마. 나도 더는 안 볼 거니까.]문자를 보내자마자 답장이 곧바로 날아왔다.[이혼으로 날 협박하는 거야? 내가 이혼이 무서워서 피하는 사람처럼 보여?]협박이 아니라는 말을 그녀는 이미 지겹도록 반복해 왔다.[온하준, 이혼 서류는 이미 집에 두고 나왔어. 너도 이미 다 봤겠지. 이혼이 두렵지 않다면 그냥 깔끔하게 끝내자. 내가 돌아가면 바로 수속 처리하는 거로 해.”“좋아.”그의 짧은 대답에 강지연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나 곧이어 사진 두 장이 연달아 도착했다.한 장은 바다 앞 별장에서 찍은 온하준과 이하나의 사진이었고, 다른 한 장은 지난 5년 동안 그녀와 그가 함께 살았던 집에서 식탁에 마주 앉아 식사 중인 두 사람의 모습이었다.강지연의 짐작이 맞는다면 식탁 위에 놓인 음식은 모두 온하준이 직접 만든 것이었다.이어 메시지 한 통이 더 도착했다.[강지연, 내가 그렇게 못난 사람은 아니야. 나를 원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어.]강지연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이모티콘 하나를 보내고 형식적인 축복의 말을 덧붙였다.그걸 끝으로 그의 메시지에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은 채 그녀는 다시 인스타를 내려보기 시작했다.예전의 그녀는 늘 자신감이 없었고 사소한 것에도 예민했으며 작은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둔 채 인스타조차 거의 들여다보지 않았다.하지만 요즘 들어서야 비로소 그곳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찾게 되었다.사람들의 일상, 해가 뜨고 지는 풍경, 그런 평범한 삶의 장면들은 세상이 지닌 생생한 색채였고 그녀의 마음을 은근히 따뜻하게 데워주었다.다만 예상치 못한 건 화면을 내리다 온하준의 인스타까지 보게 된 것이었다.12년 동안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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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4화

하지만 연습실은 말 그대로 춤을 위한 공간일 뿐이었다.재활 훈련을 하기에는 장비도 안전장치도 턱없이 부족했다.강지연은 한의원에서 받아 두었던 재활 영상 속 동작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이 환경에서 이 몸 상태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예전에는 한의원에서 간호사가 늘 곁을 지키며 그녀의 몸을 받쳐 주었지만 지금은 혼자이기에 몇 번이나 넘어졌는지 셀 수조차 없었다.시간이 얼마 흐르지도 않았지만 온몸이 이미 땀으로 흠뻑 젖었고 그녀는 고통에 이를 악문 채 몸부림치고 있었다.“강지연!”또 한 번 바닥에 넘어지는 순간 등 뒤에서 한 여성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동시에 유연한 두 손이 등을 받치며 그녀를 조심스럽게 일으켜 세웠다.마치 예전 무용학원에서 연습하던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조민서 선생님...”강지연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자 옆에는 장시범도 서 있었다.그녀는 멋쩍은 표정으로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넸다.강지연은 다시 제대로 서고 싶었다.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혹시라도 끝내 회복하지 못한다면 자신을 믿고 기대해 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배신하는 꼴이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조민서는 고개를 저으며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그 표정을 본 강지연은 조민서마저 자신의 회복 가능성을 믿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이 살짝 가라앉았다.하지만 곧 그것조차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자신 역시 큰 기대를 품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니 실망도 그만큼 크지 않았다.강지연은 그저 억지웃음을 지은 채 어색하게 서 있었다.“얘야, 보호 장치도 없이 이게 뭐니? 이렇게 하다가 온몸을 붕대 감은 인형으로 만들 셈이야?”조민서는 못마땅하다는 듯 그녀를 한번 흘겨보았다.“우리 투어단에 사람이 몇인데, 선생님만 해도 몇 명이나 되는데 도와달라는 말 한마디를 못 해? 남들 불편할까 봐 말 못 하겠으면 나한테라도 했어야지. 우린 방도 같이 쓰는 사이잖아.”“맞아요. 저도 있잖아요,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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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5화

어떤 일은 한번 시작하면 백 퍼센트의 몰입이 아니고서는 끝까지 해낼 수 없다.예전에 강지연이 재활 훈련을 할 때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마음이었다면 지금의 그녀는 다시 무대에 서는 분명한 목표를 품고 있었다.이제는 결과가 어떻든 받아들이겠다는 체념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그 무대 위로 다시 올라가겠다는 집념이었다.목표가 또렷해지자 사람도 자연스레 단단해졌다.요즘 그녀의 하루는 홍순자와 영상 통화를 하거나 무용단의 각종 사무를 돕는 일과로 채워졌고 남은 시간은 모조리 재활 훈련에 쏟아부었다.이처럼 빼곡한 일정과 쉴 틈 없는 움직임 덕분에 해성에서의 일들은 완전히 잊힌 지 오래였다.그날은 프엔스 공연을 마치고 에덴으로 이동하는 날이었다.새벽 다섯 시 무렵 강지연은 조용히 잠에서 깨어났다.남들보다 한두 시간 먼저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일은 이제 그녀에게 익숙한 루틴이 되어 있었다.그래야 아침 일찍 재활 훈련을 끝내고 낮에는 무용단의 의상과 분장, 그리고 무대 세트 작업까지 모두 책임질 수 있었다.여섯 시쯤, 장시범이 연습실로 들어오더니 이미 땀에 젖은 채 훈련 중인 그녀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선배님, 날이 갈수록 더 일찍 나오시네요. 제가 매일 늦잠 자는 사람이 되는 것 같잖아요.”“그런가? 오늘은 호텔 옮기는 날이라 다들 일찍 일어날 것 같아서 나도 조금 더 서두른 거야.”장시범은 그녀가 재활 훈련을 할 때마다 늘 먼저 나서서 곁을 지켰다.본인은 그저 연습하러 나온 것뿐이라고 했지만 강지연은 그가 일부러 시간을 맞춰 이른 아침마다 나와 자신의 안전을 살피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장시범, 조민서 그리고 윤해정 세 사람은 매일 번갈아 가며 그녀 곁에서 묵묵히 보호자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일곱 시 반쯤, 두 시간 가까이 연습을 마친 강지연과 장시범은 방으로 돌아가 짐을 정리한 뒤 동료들과 함께 차에 올라 에덴으로 향했다.차에 오른 뒤 그녀는 이어폰을 끼고 휴대전화를 꺼내 음악을 들으려 했다.그때 휴대전화 앨범이 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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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6화

명절이나 기념일, 생일뿐만 아니라 그저 평범한 일상의 순간들까지, 앨범 속 사진 대부분은 강지연이 몰래 찍은 것들이었다.카메라에 담긴 지난 5년간 온하준의 모습은 그녀가 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고스란히 증명하는 기록이기도 했다.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모든 모습을 남기고 싶었고 어떻게 찍어도 질리지 않았던 것이다.5년이라는 시간은 거의 이천일에 가까웠다.하루에 한 장만 찍었어도 천장이 훌쩍 넘었을 테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았다.강지연은 더 이상 망설이지도 않고 손가락을 움직여 화면을 가로질러 삭제 버튼을 눌렀다.5년이라는 시간, 이천일에 가까운 나날의 기록이었지만 지우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몇 번의 터치뿐이었다.최근 삭제 항목까지 한 번 더 클릭하자 온하준의 모습은 그녀의 앨범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그 기록을 삭제하니 휴대전화가 갑자기 텅 비어 버린 것만 같았고 강지연의 마음도 함께 비어 버린 느낌이 들었다.하지만 슬프지는 않았다.마치 요즘 유행하는 정리하는 삶이라는 영상처럼 묵혀둔 쓰레기를 버리고 나니 집 안 가득 햇빛이 들어 밝게 빛나고 공기가 한결 상쾌해진 그런 기분이었다.하늘은 유난히도 맑았고 햇살은 세상 전체에 금빛을 입힌 듯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한편, 해성은 이미 해 질 무렵이었다.온하준은 외부 일정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그가 사무실 문을 여는 순간 갑자기 머리 위에서 꽃잎이 쏟아져 내렸다.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어느새 사무실은 풍선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곳곳에 화사한 꽃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생일 축하해.”이하나의 부드러우면서도 한껏 들뜬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김도윤과 김도진도 각자 숨어 있던 곳에서 튀어나왔다.온하준은 그제야 오늘이 자신의 생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지난 5년 동안 그는 거의 한 번도 자신의 생일을 먼저 기억한 적이 없었다.늘 먼저 챙겨준 건 강지연이었다.그 이름이 떠오르자마자 온하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애써 머릿속에서 밀어냈다.그리고 눈앞에 환하게 웃는 이하나의 표정을 보더니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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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7화

삼 분 남짓한 영상이었고 배경음악은 오래된 노래 ‘친구’로 그들의 청춘 시절을 죄다 끌어모아 부어 넣은 듯한 멜로디였다.노래가 후반부로 이어지자 이하나가 먼저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김도윤과 김도진도 소리를 보탰다.“세상에 꺾일 때면 술 한잔 기울이며 이제 곧 우리의 날들이 온다고...”끝부분에 이르자 김도윤과 김도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하준아, 생일 축하해! 우리 우정 만세!”이하나가 커다란 케이크를 밀고 나오며 큰 소리로 외쳤다.케이크 위에는 가장 사랑하는 우리 하준이의 생일을 축하해, 너의 영원한 친구들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온하준도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고마워, 진짜 고마워...”“우리한테 고맙긴 뭐가 고마워! 하나한테 고마워해야지. 이건 전부 하나가 만들어낸 작품이야. 케이크도 하나가 직접 만든 거래.”김도윤이 이하나를 그의 옆으로 밀어주며 말했다.“누가 진심이고 누가 진심이 아닌지 이제는 아주 똑똑히 보이지?”“하준아, 우리 앞으로 칠팔십이 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도 지금처럼 잘 지냈으면 좋겠어.”이하나의 오늘 옷차림은 유난히 캠퍼스 느낌이 났고 방금 본 사진 속 한 장의 모습과 똑같았다.“그래. 꼭 그럴거야. 고마워, 하나야.”온하준이 힘껏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자, 다들 서 있지 말고 이제 자리에 앉자. 밥 먹으러 온 거잖아. 나 오늘 하루 종일 굶었거든. 이 한 끼만 많이 먹으려고.”이하나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물었다.“하준아, 내가 많이 먹는다고 싫어하는 건 아니겠지?”“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왜 해.”온하준이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내 생일인데 나한테 좋은 일만 바라줘야지. 내가 너희들 밥 한 끼 사주지 못할 형편은 아니잖아?”그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지만 그 속에서 온하준은 쉽게 웃지 못하며 다시 한번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여섯 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지만 역시 아무런 알림도 없었다.“하준아, 뭐 해? 왜 정신을 딴 데 팔고 있어?”김도진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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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8화

그러나 이하나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온하준을 지탱할 수 없었다.사람은 술에 취하면 이유 없이 더 무거워진다.죽은 듯 축 늘어진 온하준을 그녀가 겨우 부축해 세우자마자 그는 다리에 힘이 풀려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하나야, 내가 도와줄게.”김도윤은 그나마 살짝 취했고 비교적 멀쩡했다.그는 온하준의 팔을 자기 목에 걸고 반쯤 끌다시피 해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다행히도 레스토랑이 이하나가 사는 아파트 단지 바로 옆이라 김도윤은 곧장 그를 이하나 집 안까지 들여보내 주었다.“하나야, 하준이가 많이 취한 것 같으니까 너한테 맡길게. 두 사람한테 내가 방해될 것 같으니 먼저 집에 간다.”김도윤이 눈썹을 살짝 치켜세우며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했다.이하나는 투정을 부리는 듯 그를 흘겨보더니 말했다.“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얼른 집에 가!”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현관문을 닫아버렸다.온하준은 거실 소파에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원래는 깃만 풀렸던 셔츠가 이동하는 동안 단추가 더 풀려 가슴 근육까지 훤히 드러난 상태였다.“하준아...”이하나는 조심스레 다가가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술이 조금 깬 듯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하준아, 우리 집에 도착했어. 씻고 자자, 응?”그녀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 속삭이더니 손을 뻗어 그의 셔츠 단추를 마저 풀려 했다.이하나의 손길이 스치자 온하준은 다시 눈을 어슴푸레 뜨더니 미간을 깊게 찌푸린 채 굵은 목소리로 물었다.“누구야?”“나야, 이하나.”그녀가 다급히 말을 이었다.“오늘 네 생일이잖아, 잊었어? 조금 전까지 같이 생일 파티하고 같이 노래도 부르고 옛날 생각 하면서...”그는 애써 눈을 뜨려 하며 눈앞의 사람을 확인하려 했다.“이하나?”“응, 나 하나야. 너 지금 취했어. 우리...”“취해? 생일?”온하준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그래, 오늘 네 생일이야...”그때 마침 그의 셔츠 마지막 단추까지 모두 풀렸고 그녀의 손이 밑으로 미끄러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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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9화

“아, 네...”경비원은 온하준이 왜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었다.술 취한 사람은 원래 말이 많다더니 그는 오늘 특히 더 그런 것 같았다.택시를 기다리던 온하준은 또다시 입을 열었다.“할머니가 저를 위해 지금 음식을 잔뜩 준비해 놓고 기다리시거든요.”“아, 그러시구나. 할머님은 참 좋은 분이시네요.”경비원은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맞장구를 쳐 주었다.“네. 할머니는 너무 좋으신 분이에요. 저를 제일 아껴주시고... 너무 오래 기다리시게 하면 안 되니까 얼른 가봐야 해요.”“그렇죠. 어르신들은 많이 챙겨 드려야죠.”“일이 좀 한가해지면 할머니 모시고 여행도 갈 거예요. 바다도 보여 드리고...”“정말 효도하시네요...”“효도요?”온하준은 왜인지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졌다.“아니에요. 저는 효도 같은 건 못 해 드렸어요. 제가 별로 좋은 놈도 아니고...”경비원은 더 이상 어떤 말을 이어야 할지 몰라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때 마침 택시가 도착하면서 어색한 공기를 흩트렸다.“택시가 도착했네요.”경비원은 서둘러 그를 부축해 뒷좌석에 태우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안녕히 계세요. 오늘 고마웠어요.”온하준은 차창을 내리더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아니에요, 별말씀을요.”어두운 밤길을 한참 달린 끝에 택시는 마침내 홍순자 댁 문 앞에 도착했다.하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는 상태였다.“할머니, 할머니! 저예요, 하준이에요. 문 좀 열어 주세요. 집에 계세요?”온하준이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그는 다시 한번 더 세게 두드리며 목소리를 높였다.“할머니, 오늘 하준이 생일이에요. 생일 밥 준비 안 하셨어요?”“할머니, 어디 가셨어요?”“할머니, 할머니도 이제 하준이가 싫어지신 거예요?”온하준은 결국 버티고 서 있던 다리에 힘이 풀려 문에 등을 기대더니 미끄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은 채 눈을 감았다.캄캄한 어둠 속에서 마치 밤하늘에 별들이 쏟아지는 듯했다.손을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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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0화

“이장님, 그게...”온하준은 살면서 이토록 초라해 본 적이 없었다.“저... 저는 회사에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요.”더 이상 말을 보태봤자 그저 변명에 불과할 뿐이었다.그는 반쯤 걸어가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이장님...”마을 이장은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온하준 씨, 제가 뭐 도와드릴 일이라도 있을까요?”“저... 혹시...”온하준은 홍순자가 어디로 갔는지 묻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자신의 가족이 어디에 있는지를 남에게 묻는다는 건 너무나 한심한 일이겠지만 묻지 않으면 알려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알기에 결국 말을 이었다.“혹시 할머니가 어디로 가신 건지 아시나요?”마을 이장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건 저도 몰라요. 안 보이신 지 꽤 오래됐거든요. 온하준 씨도...”마을 이장은 그 역시 모르고 있음을 눈치채고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온하준은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네, 고마워요.”마을 이장이 끝내 입 밖에 꺼내지 못한 그 말을 그는 모를 리 없었다.강지연은 해외로 떠나 버렸고 홍순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족들이 하나둘 사라졌지만 정작 본인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 정말로 한심한 일이었다.어젯밤 술에 취해 기억이 완전히 사라진 탓에 온하준은 자신의 차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고 꼴이 너무나도 초라했기에 운전기사를 불러올 수도 없었다.그는 택시를 부르고 나서야 휴대전화 화면에 마지막 택시 이용 기록을 보게 되었다.이하나가 사는 아파트에서 홍순자 집으로 향했던 내용이었고 시간을 보니 홍순자 집 문 앞에서 밤새도록 있었던 것이었다.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정말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다만 생일 파티를 했던 레스토랑이 이하나 집 근처였던 것이 떠올랐다.다시 생각해 보니 그녀가 사는 아파트에서 택시를 탄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아마 애들이 하나를 집에 바래다주고 나한테 택시 잡아줬을 거야.’온하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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