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렬하던 말다툼은 그 순간 잠시 숨을 고르는 듯 멎었다. 온하준은 몇 초간 굳어 있다가 낮게 입을 열었다.“강지연, 강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내가 너한테 해준 것만큼은 못 했어.”강지연은 코끝이 시큰해져 가볍게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강지연의 집사람들은 그녀에게 단 한 번도 버팀목이 되어 준 적이 없었고 심지어 온하준과 다투는 순간에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오히려 그녀가 더 불리해지곤 했다.강지연은 다시 두 사람의 이야기로 돌아와 담담하게 말했다.“온하준, 난 이미 여러 번 말했어. 화풀이도 아니고 협박도 아니야. 난 정말로 다른 삶을 살고 싶어. 남은 인생은 즐겁게 살고 싶어. 너도 그래야 하고.”그 시각 수성은 저녁 바람에도 여전히 지중해 특유의 열기를 품고 있었고 내륙의 물 냄새가 섞인 공기가 축축하게 눌러와 숨이 막혀왔다.온하준은 미간을 깊게 찌푸린 채, 마치 처음 강지연을 보는 것처럼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의 눈동자 안에는 억눌러 누른 감정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돌아가서 이혼 조건 다시 잘 읽어 봐. 우리 진지하게 이혼에 관해 얘기하자. 더 이상 날 따라오지 마.”그 말을 끝으로 강지연은 등을 돌려 장시범과 윤해정 쪽으로 걸어갔다.두 사람은 강지연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서둘러 다가와 양옆에서 그녀를 보위하듯 붙들고 온하준이 서 있는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다음 날 있을 공연을 위해 장시범 일행은 그날 밤을 기분 좋게 풀기로 했다.수성의 골목골목을 천천히 거닐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윤해정이 가면 하나를 사고 싶다고 하자 네 사람은 주변 상점들을 하나씩 들러 보며 비교했다.강지연은 하트 문양의 붉은 여왕 가면을 골랐고 장시범은 밤의 기사 가면을 집었다.네 사람이 모두 가면을 쓰고 가게 앞에서 셀카를 찍는 순간, 강지연은 윤해정이 들고 있는 휴대전화 화면에 비친 두 사람의 그림자를 보았다.바로 옆, 인형을 파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이었다.강지연의 웃음은 그대로 멈춰 버렸다. 옆 가게 입구에서는 익숙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