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Chapter 401 - Chapter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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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1화

한 달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렀다.차유준의 집에서 강지연을 마주친 뒤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이혼 숙려기간 삼십 일이 끝났다. 전날, 온하준은 강시우 측 변호사에게서 전화받았다. 다음 날 구청에 나오는 걸 잊지 말라는 연락이었다.사실 온하준은 이혼을 이렇게 순순히 끝낼 생각이 없었다. 결과가 결국 이혼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최소한 시간을 끌 수는 있다고 여겼다.소송을 걸거나 말을 바꾸거나 조건을 뒤집는 방식으로라도 이혼을 미루면 절차는 훨씬 복잡해질 것이고 그만큼 강지연을 몇 번이라도 더 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하지만 이제는 그럴 낯이 없었다.오전 아홉 시. 온하준은 시간을 맞춰 구청 앞에 도착했다. 이미 강지연은 와 있었다.그녀 곁에는 변호사가 있었고 강시우가 직접 동행하고 있었다.한때는 강시우가 몹시 불편하고 싫었는데 지금은 묘하게 마음이 놓였다.앞으로는 강지연 곁에서 그녀를 지켜주고 아껴주고 보호해 줄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이 차라리 다행처럼 느껴졌다.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강지연은 아홉 시 정각, 온하준의 차가 정확히 시간에 맞춰 들어오는 걸 보고서야 내렸다.그는 머리를 단정히 정리한 채 여전히 그녀가 신디움 스튜디오에서 맞춰줬던 맞춤 셔츠를 입고 있었다. 차 문을 닫는 순간, 소매 끝의 커프스가 아침 햇살에 푸르게 반짝였다.살이 많이 빠져 셔츠는 몸에 헐렁했지만 전처럼 초췌하지도 불안하게 날 서 있지도 않았다. 이상할 만큼 차분해 보였고 눈빛에는 옅은 슬픔이 어렸다.잠시, 고등학생 시절의 그 분위기로 되돌아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물론 시간은 되돌릴 수 없었고 남은 건 상처뿐이었다.온하준이 다가와 조용히 웃으며 불렀다.“강지연.”“들어가자.”강지연은 그의 웃음을 무시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더 이상 나눌 말도, 하고 싶은 말도 없었다.온하준은 그녀 옆에 선 강시우를 보고 잠시 망설이다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형.”“그만.”강시우가 곧바로 말을 잘랐다.“너 같은 동생은 둔 적 없어.”온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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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2화

“그럴 일은 없어.”강지연은 돌아보지 않았다.“앞으로 다시 보게 되더라도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자. 처음부터 몰랐던 사람처럼.”“강지연...”온하준이 다시 울먹이며 이름을 불렀지만 이미 차에 올라탄 강지연은 듣지 못했다. 곧바로 그녀를 태운 차는 그대로 멀어져 갔다.오랫동안 억지로 눌러왔던 슬픔이 마침내 밀물처럼 확 밀려왔다.시야가 흐려져 주변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온하준은 차에 몸을 기댄 채 한동안 숨을 고르지 못했다.그래도 마지막 작별의 순간에 이런 추한 모습까지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나마 다행처럼 느껴졌다. 마지막만큼은 멋있는 모습으로 남고 싶었다.“하준아.”흐릿한 시야 너머에서 누군가 놀란 듯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의 얼굴을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던 온하준은 고개를 돌렸다.“하준아, 너... 울었어?”이하나의 목소리에는 당혹과 실망이 뒤섞여 있었다. 온하준은 한참을 돌아선 채 서 있다가 겨우 다시 몸을 돌렸다. 그의 얼굴에는 이미 아무 표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눈앞에는 김도윤과 이하나가 서 있었다. 김도윤이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됐어. 이제 인생의 다음 단계야. 그만 내려놓자.”온하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준아, 우리 너 데리러 온 거야. 조용한 데 가서 차분히 얘기하자.”이하나가 그의 소매를 붙잡으려 하자 온하준은 가볍게 뿌리치며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 너희 먼저 가. 난 볼일이 좀 있어.”“또 무슨 일인데?”이하나가 미간을 찌푸렸다.“이제 다 끝났잖아. 오늘부터 넌 자유야.”“은행에 갈 거야. 처리할 게 좀 있어.”온하준은 그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고 올라탔다.“하준...”이하나가 다시 불렀지만 그는 이미 시동을 걸고 있었다. 차가 서서히 멀어지자 이하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은행에서 처리할 일이라는 게 설마 모든 재산을 다 강지연한테 넘기려는 거 아니야?”“그럴걸.”김도윤이 음산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예금, 적금, 투자금 전부 정리해야 하니까. 주주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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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3화

이제 온하준의 방문에 익숙해진 차씨 부부는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환한 미소로 맞아 주었다. 저녁 준비를 하던 참이었는지 집 안에는 은은한 반찬 냄새가 퍼져 있었다.온하준은 골목 끝에 있는 마트에서 장을 잔뜩 봐 왔다. 채소며 과일이며 양손 가득 들려 있었다.차씨 부부는 두 손 가득 들고 들어오는 그의 모습을 보며 잔소리를 해댔다.“아이고, 뭘 이렇게 많이 사 들고 다녀. 앞으로는 이렇게 예의 차리지 말고 그냥 편하게 자기 집처럼 와.”그 말을 듣는 순간 온하준은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오늘부터 그는 정말로 집이 없었다. 돌아갈 곳도, 머물 곳도 없었다.집은 전부 내놓았고 자신을 위해 남겨 둔 퇴로도 없었다. 앞으로 어디에서 살게 될지조차 생각해 보지 않았다.차씨 부부는 그를 붙잡아 저녁을 함께했다. 온하준은 사양하지 않고 밥을 먹고 설거지까지 도왔다.두 노인과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밤이 깊어 있었다.평소와 다른 온하준의 멍한 표정을 본 차씨 부부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즉시 눈가가 붉어지더니 결국 사실을 털어놓았다. 자신은 이제 집도 없고 갈 곳도 없다고.차씨 부부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저 짧게 한숨을 내쉬더니 이 집에 묵고 가라고 했다.온하준은 자신이 몹시 무례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이 집에 묵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무엇보다 차유준의 부모를 위로하러 온 사람이 오히려 그들의 온기에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오늘 밤만큼은 정말로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차씨 부부는 서재 바로 옆에 있는 손님방에 이불을 깔아 주었다.“책 보고 싶으면 서재에 가도 돼. 거긴 거의 다 유준이 책이야.”“네, 감사합니다.”오늘 하루, 그의 마음은 계속 시큰거렸다.차씨 부부는 일찍 쉬라고 말한 뒤 방을 나갔다.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던 온하준은 한참을 뒤척이다가 결국 서재로 향했다.서재에는 책장이 두 줄로 놓여 있었는데 한쪽은 부부의 책이었고 다른 한쪽은 전부 차유준의 책이었다.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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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4화

그 종이학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할머니, 꼭 회복하셔야 해요. 온하준한테는 할머니밖에 없어요.]같은 글씨체였다. 온하준에게 너무도 익숙한 강지연의 글씨였다. 강지연의 글씨는 유독 개성이 뚜렷했다. 둥글고 통통하고 어딘가 귀여운 느낌이었는데 이하나의 날카로운 필체와는 완전히 달랐다.그 글자를 바라보는 순간 온하준은 심장이 바닥으로 내리꽂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바닥이 어디인지도 모를, 보이지 않는 심연 속으로 떨어지는 것처럼.그가 잃어버린 것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그는 두 장의 종이를 포개 쥔 채 마침내 소리를 내어 울음을 터뜨렸다.‘강지연, 미안해.’사무실 안은 숨 막힐 만큼 고요했고 세상 전체가 멈춘 것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만약 지금이 시간의 끝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온하준은 더 이상 내일을, 해가 뜨는 아침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그는 깨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긴 밤이 지나가기를, 그저 견디며 기다릴 뿐이었다.하지만 그 밤은 너무도 길었다. 그의 인생에는 이제 밤밖에 남지 않은 것 같았다.온하준은 사무실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밤을 새웠다. 그리고 다음 날, 김도윤과 이하나가 찾아왔다.“하준아, 어제 밤새 여기 있었어?”소리를 지르며 뛰어 들어오던 이하나는 동시에 그의 손에 들린 종이를 보았다.아주 잠깐,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틈도 없이 온하준은 곧바로 종이를 접어 치웠다.온하준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셔츠의 첫 단추는 풀려 있었고 턱과 양 볼에는 수염이 거칠게 올라와 있었으며 눈 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져 있었다.이하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싸늘한 기색이 담겨 있었다.“하준아...”이하나는 당황한 듯 말을 꺼냈다.“괜찮아? 어디 아픈 거 아니지?”온하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그녀를 똑바로 집요하게 바라볼 뿐이었다.“하... 하준아...”이하나는 목소리까지 떨렸다.“너 왜 그래? 이혼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그런 거면 우리가 옆에 있어 줄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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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5화

이하나의 말대로 온하준은 이사를 해야 했다. 그래서 그날, 처리해야 할 일들을 모두 끝낸 뒤 오전과 점심시간을 쪼개 이사업체를 불렀고 그와 강지연이 함께 살던 신혼집의 물건을 전부 비우기로 했다.집 안에는 값나가는 물건이 적지 않았다. 가전제품부터 장식 소품, 주방의 식기와 조리도구까지 처음 들일 때부터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다.이사업체가 하나하나 물어올 때마다 그는 그저 다 필요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온하준은 집 안에 서서 강지연이 살아온 흔적만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그건 분명히 그와 함께 오 년을 살아온 사람의 흔적이었다.그의 삶 속에 오롯이 스며들어 있던 오 년이라는 시간, 자신의 인생 전체를 그에게 맡기고 살아온 사람이 남긴 자취였다.“이 방은 제가 정리할게요.”온하준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다른 데만 정리해 주세요.”결국 물건은 온하준 혼자 정리하게 되었고 이사업체 사람들은 한쪽에 서서 어쩔 줄 몰라 서성였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이상함을 느끼고 물었다.“다 정리됐나요?”이사업체 직원이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아니, 그게 아니라... 말씀하신 대로면 저희가 옮길 게 없어서요. 다 필요 없다고 하셔서...”온하준은 한참 뒤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그러면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정리 다 하면 옮길게요. 편히 앉아 계시거나, 가볍게 음료나 사러 가셔도 돼요.”그들은 이 회사가 포장과 수납까지 모두 포함된 이사업체라는 사실을 말해 주고 싶었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라는 걸 느끼고 결국 입을 다물었다.이런 의뢰는 처음이었다. 손님이 혼자서 쉬지 않고 정리하고 정작 자신들은 옆에서 물을 마시고 간식을 먹고 있으라니.온하준은 강지연의 물건을 크고 작은 것 가리지 않고 전부 정리했다.사실 강지연은 이미 한 차례 정리를 끝낸 상태였다. 옷과 가방, 액세서리는 전부 처분했고 남아 있던 건 쓰지 않는 화장품과 책 그리고 몇 가지 잡동사니뿐이었다.온하준은 자신의 물건은 거의 남기지 않았다. 갈아입을 옷 몇 벌과 옷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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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6화

강지연은 휴대전화 화면에 떠 있는 입금 알림을 바라보다가 더는 그 숫자에 붙은 0의 개수를 세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십이 년의 사랑과 오 년의 결혼이 남긴 결과가 고작 이 숫자라니.만약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면, 십이 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자신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그러나 세상에 만약은 없었고 시간은 결코 되돌릴 수 없었다. 사람은 그저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휴대전화를 쥔 채 멍하니 서 있는데 위층에서 강시우가 내려왔다.“온하준이 밖에 와 있어. 네게 전할 게 있다는데 나가서 볼래? 싫으면 내가 대신 나갈게.”강지연은 잠시 멈칫했다.‘오빠는 어떻게 온하준이 왔다는 걸 안 거지?’그 생각을 읽은 듯 강시우가 덧붙였다.“네가 번호 차단해 놨잖아. 온하준이 변호사한테 전화했고 변호사가 나한테 연락했어.”강지연은 더 이상 온하준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오빠가 대신 나가 줘요.”“알겠어.”강시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온하준은 차 안에 앉아 강지연이 나올 것 같은 방향만을 바라보며 손에 땀이 배도록 긴장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그러나 마주한 얼굴은 강지연이 아니라 강시우였다.예상했던 결과에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강지연은 결국 그를 만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차에서 내려 고개를 숙였다.“형.”“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강시우가 어떤 태도로 자신을 대하든 전부 감수할 생각이었던 온하준은 말없이 차로 돌아가 트렁크에서 여행 가방 하나를 꺼내 들었다.“집 정리했어요. 강지연이 예전에 팔겠다고 했던 집이니까 이제 매물로 내놓으셔도 될 거예요. 등기 서류랑 관련 서류는 전부 이 안에 넣어 두었어요. 어떻게 할지는 강지연이 결정하면 돼요.”“알았어.”강시우가 짧게 대답하고 등을 돌리자 온하준이 다급히 다시 불렀다.“형, 하나만 더 전해 주세요. 집 비밀번호는 바꿨고 새 비밀번호는 123456이에요.”너무 단순한 숫자라 강시우는 잠시 눈을 찡그렸지만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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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7화

강지연은 바닥에 떨어진 것을 집어 들었다. 종이학이었다.‘이건 무슨 뜻이지?’오래전에 묻어 두었던 기억이 다시 떠오르자 가슴 한편이 미묘하게 흔들렸다.‘설마... 온하준이 알고 있는 건가?’종이의 질감이 낯설었다. 예전 자신이 쓰던 종이가 아닌, 새것이 분명했다.강지연은 잠시 망설이다 종이학을 조심스럽게 펼쳤다. 그녀의 예상대로 안쪽에는 글이 적혀 있었다. 너무나 익숙한,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온하준의 필체였다.[우리 지연이, 언제나 행복하고 평안하길.]역시 온하준은 종이학과 자원봉사, 그 모든 일을 알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게다가 ‘우리 지연이’라니. 이미 오래전에 끝난 부적절한 호칭이었다.만약 이혼을 결심하기 전에 이 종이학을 받았다면 그녀는 분명 감동이 벅차올라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그러나 지금은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때늦은 진심은 그녀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고 이게 정말 진심인지조차 확실하지 않았지만 그것 또한 상관없었다.강지연은 망설임 없이 종이학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여행 가방을 닫았다.등 뒤에서 강시우가 웃음을 터뜨리자 그녀는 돌아서서 오빠를 노려봤다. 강시우는 두 손을 들어 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다.“사람들이 내 눈에는 돈만 보인다고 그러더라. 돈만 알고 사람은 모른다고. 지금 보니까 이건 우리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훌륭한 유전자인 것 같네.”강지연도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잘했어.”강시우가 만족스럽게 말했다.“이제 정리 좀 하고 할머니 모시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그리고 한의원도 같이 가고.”오빠가 맛있는 걸 사주겠다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좋아요.”온하준은 강시우의 별장을 떠나자마자 곧장 회사로 향했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김도진은 온하준을 보자마자 대표실까지 따라 들어오며 물었다.“하준아, 너 어디 갔다 온 거야? 아까부터 연락도 안 되고. 도대체 요즘 뭐 하는 건데? 지금은 또 어디 갔다가 온 거야?”김도진은 그의 이마에 맺힌 땀을 보고 얼음물 한 컵을 따라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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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8화

김도윤은 차갑게 미소를 지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김도진이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김도윤 아내가 이혼 소송 걸었대.”“진짜 어이가 없어서!”김도윤이 분노를 터뜨렸다.“협의 이혼은 어차피 안 된다는 걸 알고 지금 이걸로 나를 쥐락펴락하겠다는 거야. 웃기고 있어. 재판 열리면 내가 먼저 이혼에 동의할 거고 그다음에 어떻게 나올지 두고 볼 거야.”김도진이 나서서 그를 달랬다.“그래도 그러지 마. 아현이 좋은 사람이잖아.”“좋은 사람이 툭하면 이혼이라는 말을 꺼내? 먹고 마시고 입고 쓰는 돈이 다 누구 건데. 다른 여자한테 그만한 돈을 쓰면 아주 좋아서 날아다닐걸. 그런데 주아현은 매일 죽상을 하고 있어. 도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인 건데.”김도윤은 날을 세워 불만을 쏟아내더니 손을 휘휘 저으며 덧붙였다.“됐다. 이런 얘기는 그만하고 회의나 준비해.”회의는 오후 내내 이어졌다. 지금 온하준의 회사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지난해부터 확장한 신규 사업이었다.이 사업은 기존 사업의 수익으로 겨우 버티고 있었고 만약 기존 사업의 수익성이 흔들리면 신규 사업은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문제는 이미 신규 분야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버렸다는 점이었다.더 불운한 건, 신사업과 기존 사업 모두 강시우의 사업 영역과 정면으로 겹친다는 사실이었다. 신사업의 확장은 물론 기존 사업마저 전망이 불투명해진 상황이었다.결국 회의의 핵심은 하나였다. 접을 것인가, 버틸 것인가.신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본업에 집중하자는 쪽과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밀어붙이자는 쪽이 맞서며 몇 시간이나 설전을 벌였지만 끝내 결론은 나지 않았다.주주들이 하나둘 회의실을 떠나고 그곳에는 세 사람만이 남았다.김도진이 애처롭게 온하준을 바라봤다.“하준아, 네가 찾아가 보면 안 돼? 가서 강시우 만나고 강지연도 만나서 잘 말해 봐. 두 사람 부부였잖아. 설마 그렇게 매정하게 굴겠어?”온하준은 미간을 눌렀다. 강시우라면 그를 도와주기는커녕 지금쯤 자신이 사라지길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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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9화

그 사람은 전신을 검은 옷으로 감쌌고 마스크와 모자까지 깁게 눌러쓴 탓에 얼굴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이하나는 그저 눈앞을 스쳐 지나간 검은 형체를 희미하게 인식했을 뿐 정체를 파악할 틈도 없었고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그녀의 품 안에 낯선 봉투 하나가 꽉 쥐어져 있었다.‘뭐지?’미간을 찌푸린 채 봉투를 연 이하나는 그 안에 들어 있는 서류를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온하준의 진단서였다.제일 아래에는 ‘정자 감소증 및 운동성 저하’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뭐야 이게? 정자 감소증 및 운동성 저하라니. 그러면 온하준은...’머릿속에 물음표가 무수히 떠올랐다. 그리고 곧 그동안 억지로 외면해 왔던 기억들이 하나씩 맞물리기 시작했다.‘그래서였구나. 김도윤과 짜고 판을 벌였던 그날 이후로 온하준의 태도가 달라졌던 이유가. 그러면 하준이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던 건가? 아니면 의심만 하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왜 아무 말도 안 한 거지? 도대체 무슨 생각하는 거야? 김도윤이랑 상의해 봐야겠어.’그녀는 곧장 다시 회사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거의 부수듯 누르고 있을 때마침 1층에 멈추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안에는 김도윤과 김도진이 함께 타고 있었다. 이하나는 조급한 표정으로 김도윤을 바라봤다.눈빛만으로도 다급함이 전해졌다. 반면 아무것도 모르는 김도진은 해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하나야, 아까는 내가 미안해. 그냥 말이 헛나왔어. 알잖아, 나 원래 입이 좀 가벼운 거.”하지만 이하나는 그 말을 들을 여유조차 없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김도윤에게 눈짓을 보냈다.김도윤은 곧바로 상황을 알아차리고 김도진을 향해 말했다.“됐어, 김도진. 너는 집에 가서 마누라나 챙겨. 하나한테는 내가 대신 사과할게.”김도진은 안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역시 너밖에 없다. 그러면 난 먼저 갈게.”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김도진이 떠나자 이하나는 참아 왔던 말을 쏟아냈다.“김도윤, 지금 정말 중요한 얘기가 있어.”“가자.”두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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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0화

“나랑 엮이는 게 그렇게 억울해?”김도윤이 비뚤어진 웃음을 지었다.“네가 하준이를 제대로 붙잡을 능력이 없었을 뿐이잖아. 그러면 나랑 사는 수밖에 없지. 어차피 먹고사는 건 걱정 안 해도 되잖아.”“그게 무슨 말이야?”이하나는 그를 노려봤다.“너랑 산다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무슨 소리냐니. 다 알면서 뭘 물어?”“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이하나는 손에 들고 있던 컵을 탁자 위에 내던지고 자리에서 일어섰다.“내가 왜 너 같은 쓰레기랑 결혼해!”김도윤이 어떤 인간인지 그녀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었다. 여자관계는 난잡했고 가리지도 않았다.학생이든 술집 여자든 마음만 먹으면 손을 뻗는 인간이었다. 그런 사람과의 결혼이라니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김도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나도 널 뭐라 안 하는데 네가 감히 나를 뭐라고 하는 거야? 오늘 여기서 나가면 누가 널 지켜주기라도 할 것 같아? 그 무능한 온하준? 아니면 네 목숨을 노리고 있는 로시?”말문이 막힌 이하나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다시 자리에 앉아 김도윤을 노려봤다.김도윤은 여유롭게 차를 따르며 느긋하게 말했다.“기왕 이렇게 된 거면 미루지 말고 빨리 시작하자.”“뭘 하겠다는 거야?”이하나가 경계하며 물었다.“설마 하준이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건 아니지?”김도윤은 비웃듯 그녀를 훑어봤다.“너의 그 온하준 말이야. 맨날 사랑 타령이나 할 줄 알았지. 그런 애가 어떻게 큰일을 해?”“너... 정말 너무 무섭다.”이하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너희 둘, 친구 아니었어?”“친구?”김도윤이 크게 웃었다.“친구한테 애를 떠넘기겠어?”이하나는 김도윤이 마치 오늘 처음 만난 사람처럼 낯설게 느껴져 아무 말 없이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왜 그런 얼굴이야?”김도윤이 차갑게 말했다.“그러는 넌 뭐 좋은 사람인 줄 알아? 설마 아직도 네가 하준의 순수한 첫사랑이라고 믿고 있어?”“나는...”이하나는 이를 악물었다.“너랑은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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