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Chapter 421 - Chapter 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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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1화

김도진은 그녀를 그대로 두고 돌아섰다.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하지도 않은 채 일자리를 알아보거나 온하준을 찾아가 보라는 말만 남겼다.‘하준이를 찾아가라니...’이하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녀는 이미 온하준이 무언가를 알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그렇지 않고서야 결혼 이야기가 오가고 예복까지 맞춰봤던 사이에서 이렇게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질 리 없었다. 전화도, 문자도 없이.그럼에도 이미 벼랑 끝에 몰린 이하나에게 온하준은 마지막으로 붙잡을 수 있는 끈이었다.호텔 침대 위에 몸을 웅크린 채, 결국 그녀는 온하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의외로 신호는 바로 연결됐다.“하준아...”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이번에는 연기가 아니었다. 정말로 서러웠다.한때는 그의 보살핌을 받던 사람이 지금은 갈 곳 하나 없는 처지가 되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아팠고 뒤늦은 후회도 함께 밀려왔다.하지만 그녀는 이 모든 게 결국 온하준 탓이라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가 자신과 확실한 관계를 맺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늘 불안했고 그래서 김도윤의 말에 휘말리고 마음이 흔들렸던 거라고.온하준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정말로 의심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아무것도 알 수 없어 마음이 조급해졌다.그런데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그의 목소리는 놀라울 만큼 평온했다.“하나야, 왜 울어?”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전히 부드러운 어조였다. 이하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하준아, 너 요즘 왜 이렇게 안 보였어?”“아, 며칠 좀 아파서 회사도 못 나가고 쉬고 있었어.”“아팠다고? 어디가? 매우 심해? 내가 가서 간호해 줄까?”“아니야, 괜찮아.”온하준은 별거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고열이 계속돼서 낮과 밤 가릴 것 없이 잠만 잤어. 오늘에서야 좀 나아졌고.”“하준아...”이하나는 흐느끼며 말했다.“그래도 역시 너밖에 없어.”“응? 누가 뭘 어쨌는데?”온하준이 차분하게 묻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말을 쏟아냈다.김도윤과 주아현의 이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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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2화

“당연히 기억하지. 그걸 어떻게 잊어. 아이 잘 있지? 몸은 괜찮고?”그 말을 듣는 순간, 이하나는 마음이 완전히 풀렸다.‘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하준이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구나.’다른 한편, 온하준은 호텔의 통유리창 앞에 앉아 있었다.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창밖의 거리 풍경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깊고 차분했으며 어디에도 아픈 사람의 기색은 없었다.잠시 후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김도윤이었다. 그는 화면을 힐끗 보고 전화받았다.“하준아? 너 어디야? 요즘 왜 이렇게 얼굴 보기 힘들어?”급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였다.“아, 몸이 좀 안 좋아서. 무슨 일 있어?”온하준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느긋하게 말했다.“큰일은 아니야. 너 괜찮은 거지?”김도윤 역시 이하나와 마찬가지로 여러 말을 섞어가며 그를 떠보았다. 온하준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며칠 동안 열이 심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결혼 준비도 제대로 못 했고 하나도 거의 챙기지 못했어. 네가 좀 알아봐 줘. 하나는 남들보다 더 특별한 결혼식을 하고 싶어 하잖아. 내가 지금은 도저히 신경 쓸 여력이 없는데 더 미루면 안 될 것 같아. 시간이 더 지나면 배도 더 나올 거고.”“그래, 알았어.”김도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마음이 반쯤은 놓였지만 완전히 안심하지는 못한 듯 다시 물었다.“아, 그리고 외주 업체들 있잖아. 결제할 건들도 있고 계약도 곧 끝나는데 계속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그쪽도 그럴 의지가 있어.”“좋지. 내일 회사 가서 얘기하자.”“그래, 그러면 내가 내일 회사에서 기다릴게.”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온하준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다가 김도윤의 프로필 사진을 눌렀다. 그의 프로필 사진은 여전히 그대로였다.자신과 김도윤 그리고 김도진, 셋이 나란히 찍힌 단체 사진이었다.대학 동기이자 형제 같은 사이.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서로를 믿으며 함께 여기까지 온 사람들.그는 휴대전화를 침대 위에 던져두고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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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3화

온하준은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짧은 정적이 흘렀고 그사이 어색함이 스쳤다.배우진은 더 묻지 않고 진료실로 들어갔고 온하준은 다시 대기석에 앉아 묵묵히 기다렸다.강지연이 재활실에서 나온 건 두 시간쯤 지나서였다. 온하준은 그녀를 발견하자 천천히 앞으로 다가갔다.불과 며칠 만이었는데 이름을 속으로 부르는 것조차 아득하게 느껴졌다.강지연은 노골적으로 기분 나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다시 마주치게 된다면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기로 했는데 왜 또 나타난 거야.’그녀의 눈에 스친 불편함을 본 온하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이제 얼굴 한 번 보는 것도 싫어졌어? 그렇게 내가 원망스러워?”강지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원망스럽지는 않아.”그 말에 온하준의 눈빛이 순간 환해졌지만 곧이어 이어진 그녀의 말이 그를 바닥으로 끌어내렸다.“이미 너를 내 삶에서 지웠어. 네가 이렇게 나타나지 않으면 나는 너를 떠올릴 일조차 없어.”그제야 온하준은 증오보다 더 잔인한 게 망각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차라리 미움이라도 받는다면 적어도 기억 속에는 남아 있을 수 있으니 그편이 더 낫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강지연은 더 말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고 온하준은 그녀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옆을 걸었다.한의원에서 출입문까지의 거리는 너무도 짧았다. 짧아서 몇 마디 말도 채 나누지 못하고 끝나 버렸다.한때는 평생을 함께 천천히, 아주 멀리까지 걸을 수 있었던 인연이었다. 하지만 온하준은 그 인연을 지켜내지 못했다.사실 오늘 강지연을 찾아온 이유는 그때 할머니를 위해 접어 준 종이학과 마지막까지 곁을 지켜준 일에 대한 감사를 전하고 싶어서였다.그러나 그 말은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가 꺼낸 말은 이것이었다.“강지연, 어느 나라로 가? 꽤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거야?”그제야 온하준의 머릿속에 강지연이 읽던 외국어책들과 언어 능력 시험 문제들이 떠올랐다. 네 주제에 무슨 외국어냐며 그녀를 비웃었던 자기 말이 함께 떠올라 그는 얼굴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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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4화

온하준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숨기지 않고 말했다.그는 노인들이 그를 위해 조금이라도 분주해지는 편이, 둘이 마주 앉아 매일 한숨으로 저녁을 때우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거로 생각했다.식사를 마친 뒤 그는 차정욱을 도와 텃밭을 정리했다.원래는 잡초만 무성하던 마당이었는데 요즘 차정욱이 채소를 심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생기가 돌고 있었다.온하준은 밭에 쪼그리고 앉아 흙을 고르다 문득, 예전에 강지연과 함께 홍순자의 집에 갔던 장면이 떠올랐다.집 앞 마당에 앉아 넝쿨마다 열매가 달리고 월계화가 담을 타고 피어 있던 풍경.쓰라린 통증이 예고 없이 다시 가슴을 쳤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완전히 어두워진 뒤에야 그는 차씨 집을 나와 호텔로 돌아갔다.다음 날 오전, 온하준은 회사로 향했다. 김도윤은 그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고 몇몇 협력사 책임자들도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회의실로 가시죠.”온하준의 말에 김도윤은 웃으며 말을 얹었다.“온 대표가 왔으니 오늘 계약 연장도 한 번에 정리하시죠.”회의실에 사람들이 둘러앉았다. 이들이 오늘 온 목적은 계약 연장뿐 아니라 결제까지 마무리하는 것이었고 모든 절차는 사실상 온하준의 서명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계약서는 김 대표가 미리 보내줘서 봤습니다. 내용에는 문제없어요. 예년처럼 계속 협업하면 됩니다. 다만 결제는...”온하준은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김 대표도 알다시피 요즘 회사 사정이 별로거든요. 그래서...”김도윤이 어색하게 웃으며 끼어들었다.“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결제일이 곧 다가오는데...”“조금만 미루도록 할게요. 아직 며칠 남아 있잖아요.”온하준의 목소리는 담담했다.“그러면 대표님께서 먼저 서명이라도 해주시면 안 될까요?”한 업체 책임자가 조심스럽게 묻자 온하준은 서류를 다시 돌려주며 말했다.“아니요. 계약 연장, 결제, 신규 프로젝트 선급금까지 모두 한 번에 같이 합시다.”책임자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김도윤을 바라봤다. 김도윤은 웃음을 유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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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5화

김도윤은 속이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온하준이 무언가를 숨긴 채 자신과 연극하고 있다는 확신은 점점 짙어졌지만 문제는 그가 지난 삼사 년 동안 자신이 저질러 온 일들을 어디까지 알고 있느냐였다.‘이대로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어. 온하준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해.’그러나 방법이 문제였다. 돌고 돌아 김도윤의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은 결국 이하나뿐이었다.이하나는 김도윤이 먼저 찾아가자 괜히 오만해져 한동안 토라져 있었지만 김도윤이 현금 이천만 원을 내밀자 입꼬리를 올리며 태도를 바꿨다.“어쨌든 내 아들이잖아. 그리고 너는 내 아들 엄마고. 내가 어떻게 외면하겠어.”김도윤은 능숙하게 가스라이팅을 시작했다.그 말에 이하나는 서운했던 마음이 풀리며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어쩌면 결국 자신은 김도윤 쪽으로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뱃속의 아이는 김도윤의 아이였다. 당분간 온하준 곁에 머문다고 해도 아이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존재였다.이하나는 매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사느니 차라리 처음부터 확실한 쪽을 택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김도윤을 바라보는 눈길에도 미묘한 온기가 스며들었다.그날 김도윤은 일부러 술을 마시며 연기를 시작했다.“도대체 무슨 일이야?”이하나가 묻자 김도윤은 한숨만 길게 내쉬며 말을 아꼈다.그렇게 한참을 버티다 그녀가 계속 캐묻자 그는 마지못해 말하는 척 고개를 떨구며 입을 열었다.“나 지금 큰일 났어.”김도윤은 어쩔 수 없이 털어놓는 사람처럼 자신의 상황과 앞으로 이하나가 해줘야 할 일을 하나하나 읊었다.이하나는 내키지 않았다. 김도윤이 건넨 제안은 온하준을 완전히 배신하는 일이었다.김도윤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해도 온하준을 이렇게까지 끊어내는 건 아직 두려웠다.“하나야, 나도 여기까지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야. 회사는 이미 끝났어. 로시가 해성에 발을 들여놓은 것도 모자라 우린 그 사람한테 제대로 찍혔잖아. 나만 망하면 모르겠는데 하준이까지 같이 망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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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6화

그때 서야 온하준은 자신의 휴대전화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다.“하준아, 너 폰 어디 있어? 차에 두고 온 거 아니야? 나가서 한 번 확인해 봐.”이하나는 그의 옆에 놓인 노트북을 힐끗 보며 다급하게 말했다.온하준은 잠시 미간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럴 수도 있겠네. 잠깐 보고 올게.”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노트북까지 함께 집어 들고 밖으로 나갔다.이하나는 그의 손에 들린 노트북을 보고 멍해졌다.‘아니, 왜 노트북까지 들고 나가? 그걸 두고 가야 내가 볼 수 있잖아.’하늘이 도와주는 줄 알았는데 완전히 헛다리였다. 그런데 온하준이 복도 끝까지도 가지 못했을 무렵이었다.옆쪽 룸의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안에서 사람이 튀어나와 그의 입을 막고 그대로 끌어당겼다. 온하준은 저항할 틈도 없이 방 안으로 끌려 들어갔고 문은 재빨리 닫혔다.“온하준 씨, 잠시만 협조해 주십시오. 해치지는 않겠습니다.”등 뒤에서 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울렸다.한편 이하나는 룸 안에서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실례합니다.”“들어오세요.”이하나는 짜증이 묻어난 목소리로 답했다. 흰 셔츠에 나비넥타이를 맨 종업원이 휴대전화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이 휴대전화, 혹시 이쪽 손님 물건 맞을까요? 조금 전에 프런트에서 분실 문의가 있어서 찾아왔습니다.”그 순간, 이하나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온하준의 휴대전화였다.“네, 맞아요!”그녀는 정말 하늘이 자신을 도운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종업원은 여전히 미심쩍은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실례지만 본인 물건이라는 걸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그건 쉬워요.”이하나는 곧바로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냈다.“제가 전화하면 되잖아요. 제 번호는요...”그녀는 자신의 번호를 불러주며 말을 이었다.“제 이름은 아마 ‘울하나’로 저장돼 있을 거예요.”전화를 거는 순간, 직원 손에 들린 휴대전화가 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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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7화

“네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하준이가 우리 셋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예전부터 그랬잖아. 친척도 의지할 가족도 없으니까 우리를 자기 가족이라고 했어. 그런 사람이 너를 의심하겠어?”“그건 옛날얘기고!”김도윤이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이 무능한 년! 영상 켜서 카메라로 휴대전화 화면 비춰. 내가 직접 볼게.”이하나는 욕을 내뱉고 싶었지만 간신히 삼키며 영상 통화를 켜고는 김도윤이 시키는 대로 앱과 폴더를 하나씩 열어 보였다.문자, 문서, 사진, 메모.어디에도 김도윤과 관련된 흔적은 없었다. 이메일도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다.업무 메일, 계약 관련 자료까지 전부 훑었지만 김도윤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이상하네... 정말로 아무 의심도 안 한 건가?”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김도윤이 문득 말을 이었다.“잠깐. 이메일 계정이 다른 계정으로 전환된 적 없어?”이하나는 설정 화면을 눌렀다. 그 순간, 낯선 계정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이거야! 이걸로 전환해!”김도윤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이하나가 시도했지만 들어갈 수 없었다.“안 돼. 2차 비밀번호가 있어.”“이러면 더 수상하지!”김도윤의 목소리에는 묘한 흥분이 섞여 있었다.“비밀번호 입력해 봐.”지옥 같은 시간이 다시 시작됐다.온하준 생일, 강지연 생일, 두 사람의 생일을 섞은 조합, 숫자와 영문을 뒤섞은 패턴까지. 전부 실패였다.이하나는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안 돼, 김도윤. 이건 완전히 다른 조합이야. 숫자랑 영문, 특수문자까지 섞여 있어. 네가 생각하는 것으로는 못 맞혀.”“잠깐.”김도윤이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이거 한 번 넣어 봐.”그가 불러준 건 영문과 숫자, 기호가 뒤섞인 낯선 조합이었다. 그리고 잠금이 풀렸다.“뭐야? 이게 왜 돼?”이하나가 멍하니 중얼거렸다.“대학 때 쓰던 게임 계정 비밀번호야. 감탄은 나중에 하고 빨리 확인해.”김도윤이 다그쳤다.이하나는 받은 편지함을 훑다가 일주일 전 도착한 메일 하나에서 손을 멈췄다.제목.[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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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8화

온하준은 이하나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자신의 휴대전화를 열었다.화면에는 여전히 이메일이 떠 있었다. 정확히는 첨부파일 목록 페이지였다.“하준아, 우리 아이가... 나 배가 너무 아파...”이하나는 배를 움켜쥐고 고통스러운 얼굴을 만들어냈다. 휴대전화를 몰래 들여다본 사실이 들통나는 걸 막기 위한 마지막 발악이었다.하지만 온하준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이하나는 테이블을 짚고 힘겹게 일어서더니 이내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하준아, 우리 아이가 어떻게 되든 넌 상관없는 것 같네. 나 혼자 병원 갈게. 배가 너무 아파서 안 되겠어.”늘 그래왔듯 익숙한 수법이었다.온하준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그녀의 연기를 끝까지 지켜봤다.그러나 당장이라도 나갈 것처럼 울먹이던 이하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그녀가 기다린 건 온하준의 만류였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 끝에 온하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것뿐이었다.“왜 안 가? 김도윤이 기다리는 거 아니었어?”이하나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하준아, 무슨 말이야?”“무슨 말이긴. 내가 굳이 설명해 줘야 해?”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이하나는 억지웃음을 지었다.“설마 휴대전화를 말하는 거야? 그건... 맞아. 김도윤이 시켜서 그랬어. 걔가 나를 몰아붙인 거야. 하준아, 미안해. 이 정도 일로 화내는 건 아니지? 하준아...”그녀는 다시 배를 감싸안으며 울먹였다.“너 말이야.”온하준은 다시 배가 아프다며 징징거리려는 그녀의 말을 끊듯 단호하게 말했다.“배가 그렇게 아프면 애 아빠 불러서 병원 가야 하는 거 아니야?”이하나는 무언가에 머리를 얻어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다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겨우 입을 열었다.“애 아빠는 너... 너잖아.”온하준이 차갑게 웃었다.“그래? 그러면 유전자 검사 한번 해볼까?”그 말에 이하나는 누군가 목을 움켜쥔 것처럼 숨이 막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긴 침묵 끝에 그녀는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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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9화

이하나는 이제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했다.온하준이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다면 자신을 그냥 둘 리 없다고 믿었다.그런데 예상과 달리 온하준은 몇 번의 냉소만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나가버렸다.그녀를 혼자, 텅 빈 룸에 남겨 둔 채.잠시 멍하니 앉아 있던 이하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곧장 김도윤에게 전화를 걸었다.“김도윤! 김도윤! 어떡해? 하준이 다 알고 있었어! 아이가 네 애라는 것도 고등학교 때 봉사활동도 내가 아니라는 것도 종이학도 전부 다 알고 있었어! 나 어떡해, 김도윤!”전화는 곧바로 끊겼다. 다시 걸었지만 이번엔 연결조차 되지 않았다. 번호가 차단돼 있었다.이하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마치 한순간에 얼음물 속으로 떨어진 기분이었다.‘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분명 잘해주겠다고 했잖아. 아이랑 나,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했잖아. 좋은 날이 올 거라며?’“김도윤! 이 개자식!”목이 찢어질 듯 소리쳤지만 이제 그 소리를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온하준은 식당을 나섰다. 아까 그를 붙잡았던 종업원 차림의 사람들은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온하준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이렇게까지 복잡하게 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네가 입만 열면 난 무엇이든 해줬을 거야.’사실 그의 휴대전화는 분실한 것이 아니라 식당에 들어올 때 누군가가 슬쩍 가져간 것이었다.휴대전화를 찾으러 나갔던 온하준은 두 사람에게 붙잡혀 다른 룸으로 끌려갔다.처음엔 강도거나 더 위험한 일인가 싶었지만 이내 그가 알게 된 건 전혀 다른 그림이었다.그의 휴대전화를 들고 들어온 사람은 아까 식당에서 휴대전화를 훔쳐 간 바로 그 종업원이었다.그들은 그에게 협조를 요청했다.협조라는 건,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새로 설정하고 이메일 비밀번호를 다시 만들고 휴대전화에 새로운 이메일 계정을 로그인하는 일이었다.그 이메일은 그의 것이 아니었고 그 안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도 그는 돌려받기 전까지 전혀 알지 못했다.그들이 요구한 비밀번호는 다소 복잡했지만 동시에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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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0화

강지연은 가볍게 웃었다.“김도윤이라는 사람은 의심이 지나칠 정도로 많은 타입이에요. 증거를 그냥 던져주면 오히려 함정이라고 생각하겠죠. 차라리 자기가 피 말리며 직접 파낸 결과여야 안심해요. 그게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 이유가 더 중요해요.”“뭔데요?”앳된 얼굴의 남자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두 번째는 애초에 나한테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거예요. 그리고 나한테 결정적인 증거를 준 적도 없잖아요. 파일 이름만 만들어놓은 거고 안에는 전부 노래가 들어 있어요.”남자의 얼굴이 굳었다.“저는 진짜 증거가 다 있는 줄 알았는데요.”강지연은 고개를 저었다. 온하준이라는 멍청이가 이미 김도윤의 배신을 알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그녀가 하려는 일은 애초에 온하준과 무관했고 완벽한 증거도 필요 없었다.그저 김도윤이 흔들리기만 하면 됐다.궁지에 몰린 쥐는 결국 고양이를 문다. 마음이 급해지면 반드시 무리수를 두게 되어 있었다.“세상에.”남자가 감탄하듯 말했다.“그래도 너무 위험했어요. 타이밍 조금만 어긋났어도 첨부파일 여는 순간 다 들통났을 텐데요.”강지연은 미소를 지으며 느긋하게 말했다.“바보예요? 컴퓨터 전공이라면서요. 첨부파일에 따로 비밀번호 걸어놨죠.”멍하니 있던 남자는 이마를 탁 치며 허탈하게 웃었다.“저는 진짜 너무 놀랐거든요. 큰일은 아무래도 체질이 아닌가 봐요.”“아니요.”강지연은 단호하게 말했다.“아주 적합해요.”그녀는 잠시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가 덧붙였다.“이안한테 약속했거든요. 반드시 기회를 주겠다고.”...김도윤은 자기 집 앞에서 이하나를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그녀는 거의 미친 사람처럼 달려들어 가방을 휘두르며 욕을 퍼부었다.김도윤은 한동안 피하다가 더는 피할 수 없자 가방을 움켜쥐고 힘껏 잡아당겼다. 그대로 이하나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어디 갔다 온 거야! 양심도 없는 놈아! 우리 모자를 이렇게 버릴 생각이야?”이하나는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울부짖으며 다시 가방을 던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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