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라가 웃으며 말했다.“어린 여자애가 이렇게 멀리 와 있으면 집이 그리운 게 당연하지.”저녁을 먹고 난 뒤, 강지연은 거실에서 할머니가 캐시미어 스웨터를 뜨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이곳에 온 뒤 할머니는 보석 디자인과 재단에 푹 빠졌고 고모의 부추김까지 더해지자 손이 쉴 틈이 없었다.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하자 손뜨개 캐시미어에도 마음을 빼앗겼다.이미 강지연과 강희라, 강시우에게 한 벌씩 떠 주었고 지금 손에 들린 건 색감부터 남성용처럼 보였다.장시범은 그 곁에 바짝 붙어 앉아 기대에 찬 눈으로 물었다.“할머니, 이거 혹시 보비 거 아니죠?”조심스럽고도 불쌍한 표정이었다. 보비는 고모가 기르는 작은 강아지였다.장시범의 말에 할머니가 웃음을 터뜨렸다.“글쎄, 네 생각은 어때?”장시범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시 고민하더니 슬쩍 말을 돌렸다.“그럼 보비 거 하나 뜨고 나면 저는 장갑 하나만 떠주시면 안 돼요?”스웨터는 감히 입에 올리지도 못하고 희망 사항을 장갑으로 낮춘 셈이었다.홍순자는 더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이건 네 거야.”“정말요? 감사합니다, 할머니!”그의 기쁨이 고스란히 얼굴에 번졌다.명품으로 치장해도 부족함 없는 집안의 아들이 이곳에서는 손뜨개 스웨터 한 벌을 두고 강아지와 경쟁하고 있었다.강지연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마음 한쪽이 천천히, 차분하게 내려앉았다.장시범은 자신의 스웨터가 완성되는 과정을 놓칠 수 없다는 듯 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았다.그 덕분에 돌아갈 시간이 훌쩍 늦어졌고 결국 그날은 고모 집에서 묵게 되었다.이 집에는 이미 장시범의 방이 있었다.성탄절 이후로 종종 함께 묵다 보니 그의 옷과 세면도구, 심지어 책까지 하나둘 자리를 잡았다.어느새 그는 이 집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다.강지연의 방은 2층, 장시범의 방은 3층이었다.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자 그는 2층 복도에서 괜히 서성거렸다.학교 근처 집에 있을 때도 그랬다. 가끔 강지연의 집에서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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