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Chapter 661 - Chapter 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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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1화

강지연은 얼른 그의 손에서 고기 두 꼬치를 받아 들었다.“고마워.”안 받는 게 더 이상했을 것이다. 그가 굳이 ‘소고기야’라고 덧붙인 이유도 곧 떠올랐다.예전에 최아현과 몇몇 친구들과 학교 밖 포장마차에서 꼬치를 사 먹은 적이 있었고 온하준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때 그녀가 무심히 말했었다.“양고기 말고 소고기로 주세요. 누린내 때문에 양고기는 못 먹거든요.”온하준의 기억력은 누구나 인정할 만큼 좋았다. 다만 기억하지 않는 일이 있다면 그건 그가 기억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5년을 함께 살았던 시간 동안 그는 그녀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사소한 말까지 기억하고 있었다.강지연은 고기를 한입 베어 물었다.조금 질겼다. 솔직히 아주 잘 구운 건 아니었다. 아마 이 시기의 그는 아직 요리에 익숙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그런데도 그날 밤 그는 유난히 그릴 앞을 떠나지 않았다.자신은 거의 먹지 않으면서 계속 고기를 올리고 뒤집고 익히고 나눠 주었다. 그리고 무엇을 굽든 마지막 한 조각은 늘 그녀에게 건넸다.마지막으로 내민 건 꽁치였다. 강지연은 손을 저었다.“나 이제 진짜 배불러. 더 못 먹겠어.”사실 그 전에 받은 고기도 손에 들고만 있었지 다 먹지는 못한 상태였다.“우리는 더 먹을 수 있어. 오징어도 더 구워 줘.”최아현과 이승우가 앞다투어 떠들었지만 온하준은 듣는 척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나 손 좀 씻고 올게.”“뭐야? 강지연 안 먹는다니까 이제 안 굽는 거야? 너무 티 나잖아.”이승우의 말에 온하준은 잠시 멈칫했다.“무슨 소리야. 과일 씻어 오려고. 이렇게 많이 먹었는데 안 느끼해? 과일 먹어야지.”평소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기에 설명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더 어색해졌다.다행히 열여섯, 열일곱의 그들은 단순했고 누구도 그 미묘한 기색을 눈치채지 못했다.강지연도 마찬가지였다.온하준이 저녁 내내 그릴 앞에 서 있었던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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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2화

“하준아, 포도 떨어졌어!”이승우가 재빨리 달려와 대야를 그의 손에서 받아 들었다.“너무 많이 담아서 무거웠던 거야?”“응.”온하준은 대충 대답하고는 쪼그려 앉아 바닥에 떨어진 포도를 주워 담았다. 그러나 시선은 자꾸만 옆으로 흘렀다.어둠이 내려앉은 마당 한쪽, 차유준을 향해 웃고 있는 강지연의 얼굴이 유난히도 밝았다.온하준은 문득 그날 오후를 떠올렸다. 장뇌나무 아래에서 차유준에게 달려가 환하게 웃던 순간. 그때도 저런 표정이었다.“하준아, 이건 더러워졌으니까 버리자.”이승우가 그의 옆으로 다가서며 자연스럽게 시야를 가렸다.“그래.”온하준은 포도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자리로 돌아왔다.다들 먹을 만큼 먹었는지 배가 부르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이제 뭐 할래?”이승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카드놀이가 나왔다가, 끝말잇기, 사자성어 잇기, 심지어 시 낭송까지 제안이 오갔다.결국 선택된 건 진부한 진실게임이었다. 이승우의 강력 추천이었다.“놀러 나와서 또 머리 쓰는 거 할 거야? 그냥 단순하고 재밌는 거로 가자.”도구는 따로 없었다. 휴대전화로 음악을 틀고 과일 대야에서 작은 참외 하나를 꺼내 돌리기로 했다.몇 차례는 참외가 이승우와 최아현 쪽에서만 맴돌았다. 질문은 점점 노골적으로 바뀌었다.이 나이에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건 조심스러운 일이었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대부분 혼자만의 짝사랑으로 숨기기 마련이었다. 그래서인지 질문은 거의 모두 그쪽으로 향했다.“최아현, 좋아하는 사람 있어?”“없어.”최아현은 단호했다.“그러면 이승우는?”이승우는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외쳤다.“있어!”“누군데?”최아현이 재빨리 물었다.“질문은 한 번만 해야지! 이미 대답했으니까 넘어가!”이승우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자 웃음이 터졌다.“야, 이승우도 얼굴 빨개지네?”“계속할 거야, 말 거야?”이승우가 복수를 다짐하듯 말했다.다시 음악이 흘렀고 멈추는 순간 참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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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3화

“하준아, 그거 진짜로 하면 완전 구경거리 된다? 전교 애들 다 몰려와서 볼 걸?”이승우가 옆에서 부채질했다.“동물원 원숭이처럼 서 있는 거야. 상상해 봐, 얼마나 민망하겠어.”강지연과 차유준을 제외한 아이들이 한꺼번에 거들었다.“야, 내가 벌서는 건데 왜 너희가 더 난리야?”온하준은 담담하게 말했다.“벌칙 받을게.”결국 이승우와 최아현은 원하는 답을 얻지 못했지만 포기할 리 없었다.게임은 다시 시작됐고 두 사람은 작정한 듯 참외를 온하준 쪽으로 몰았다. 몇 차례 지나고 결국 참외가 다시 그의 손에 떨어졌다.“하준아, 네가 좋아하는 여자 우리 반이야?”이승우의 질문은 번개처럼 빨랐다.“아니.”대답도 즉각적이었다.‘아니라고?’강지연도 잠깐 생각에 잠겼다.‘예전이라면 이하나였겠지만 지금은 아직 만나지 않았을 텐데. 그러면 누구지?’하지만 상관없었다. 이하나도 아니고 자신도 아니라면 그걸로 충분했다.강지연은 그저 온하준이 좋아하는 사람과 오래도록 평안하게 지내기를 바랐다.이승우는 더 묻고 싶었지만 말을 삼키고 다시 음악을 틀었다.그러나 참외는 좀처럼 온하준에게 가지 않았고 강지연에게 넘어갔다.단짝이었던 최아현은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는지 서둘러 질문을 던졌다.“강지연, 네가 제일 가고 싶은 대학은 어디야?”곧장 야유가 쏟아졌다.“너무 봐준다!”강지연은 웃으며 느긋하게 답했다.“당연히 진경시에 있는 무용대학이지.”아이들은 시시하다며 투덜댔다.“에이, 재미없게 뭐 하는 거야? 최아현, 이렇게 봐주기 있어?”그러자 강지연이 먼저 말했다.“너희가 궁금한 건 내가 누굴 좋아하는지야?”이승우의 눈이 번쩍였다.“맞아. 좋아하는 사람 있어? 알려줄 거야?”“못 알려줄 것도 없지.”강지연은 태연하게 말했다.“좋아하는 사람은 당연히 있는 거 아니겠어?”그 순간, 옆에 앉은 차유준과 맞은편의 온하준이 동시에 그녀를 바라봤다.“그 사람 여기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야?”경험을 쌓은 이승우가 재빠르게 범위를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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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4화

온하준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먼저 할머니 방을 들여다보았다. 최숙희는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고 잠결에도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그 미소를 바라보던 온하준도 잠시 따라 웃었다가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샤워를 마친 뒤 책상 위에 올려 두었던 상자를 다시 바라보았다.차유준이 건넨 선물이었다. 올해 생일에 받은 유일한 선물.케이크를 제외하면 그것 하나뿐이었다.선물이 많고 적음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다만 친구들이 하나둘 돌아가고 마당이 완전히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렸지만 우주 별자리 수정구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그날 밤하늘은 유난히 맑았다. 마당에서도 별이 또렷이 보였고 웃음과 말소리가 집 안을 가득 채워 오랜만에 집이 살아 있는 공간처럼 느껴졌다.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은 비어 있었고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모를 헛헛함이 남아 있었다.온하준은 차유준이 준 작은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안에는 열쇠고리가 들어 있었는데 사진으로 특별 제작하는 기념품 같은 물건이었다.지극히 평범한 물건이었지만 그 안에 들어간 사진은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온하준은 한참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열쇠고리를 다시 상자에 넣고 서랍 깊숙이 밀어 넣었다. 그리고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앉아 있다가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다음 날 학교에 가서도 이승우는 어제 일을 곱씹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하준아, 어제 강지연한테서 따로 선물 받았어?”온하준은 마음 한편이 묘하게 쓰라렸지만 담담하게 말했다.“케이크 줬잖아.”“아니, 그게 아니라...”이승우는 말을 흐리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그러면 내가 잘못 봤나 보네.”그때 복도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문과 반 가 보자. 우주 별자리 수정구라는데 천장에 별이 뜬 것처럼 보인데.”“우주? 수정구?”이승우가 중얼거렸다.“내가 본 게 저거였어. 하준아, 우리도 가 보자.”그는 온하준을 붙잡고 문과 반으로 달려갔다.교실은 커튼이 내려져 있어 어둑했고 차유준의 책상 위에는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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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5화

말이 떨어지자마자 이승우는 스스로 실수했다는 걸 깨닫고 황급히 온하준을 바라봤다.“하준아, 그게 아니라 내가 잘못 본 걸 수도 있어. 미안해, 하준아. 내가...”하지만 온하준은 그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돌아섰다. 그 뒷모습을 보는 순간 이승우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괜히 입을 열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분명히 그 수정구 받침대에 OHJ라고 새겨져 있었는데. 내가 알파벳을 잘못 볼 리가 없잖아. 만약 차유준 거라면 CYJ여야 하는 거 아니야?’조급해진 이승우는 곧장 차유준에게 달려갔다.“잠깐, 이거 좀 보자.”그는 수정구를 집어 들고 받침대를 뒤집어 확인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고 받침대는 매끈한 나무색 그대로였다.“말도 안 돼...”그는 중얼거리며 수정구를 내려놓고 다시 교실로 뛰어왔다.온하준은 이미 자리에 앉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문제를 풀고 있었다.“하준아...”이승우는 숨을 고르며 다가갔다.“방금 수정구 봤는데 받침대에 아무것도 없었어. 내가 봤던 그 물건이 아닌 것 같...”“온하준!”날카로운 목소리가 교실을 가르며 이승우의 말을 끊었다. 수학 교사가 손가락으로 온하준을 가리켰다.“따라 와!”이승우는 어젯밤 벌칙 때문이라는 걸 즉시 알아차렸다.“하준아...”그는 미안한 눈으로 온하준을 바라봤다. 생일 선물 일도 그렇고 괜한 장난 때문에 벌까지 받게 된 상황이 괜히 더 마음에 걸렸다.자신처럼 벌서는 게 익숙한 사람이라면 몰라도 온하준은 달랐다.“괜찮아.”온하준은 펜을 내려놓고 조용히 일어서 교사를 따라나섰다.그날 수학 시간부터 그는 교실 뒤에 서서 하루 종일 수업을 들었다. 쉬는 시간마다 다른 반 학생들이 구경하듯 들여다보며 수군거렸다.참다못한 이승우는 결국 교무실로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했다. 온하준은 숙제를 안 한 게 아니라 자기 책임이라며, 벌을 줄 거면 자신에게 주라고.하지만 결과는 둘 다 서 있는 것으로 끝났다. 그의 자백은 온하준을 구하지 못했고 오히려 자신까지 끌어들인 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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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6화

온하준은 걸음을 재촉해 버스에 올라탔다.퇴근 시간이라 차 안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먼저 오른 강지연은 중간쯤에 밀려 서 있었고, 그는 앞쪽에 가까스로 자리를 잡았다.두 사람 사이에는 몇 겹의 사람 벽이 가로막혀 있었다. 일부러 찾지 않는 이상 서로를 알아볼 수 없는 거리였다.강지연은 온하준이 같은 버스에 타 있다는 걸 모른 채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온하준은 급커브를 돌 때마다 사람들 틈 사이로 잠깐씩 보이는 그녀의 옆모습을 훔쳐보았다.여름을 지나며 강지연은 꽤 그을렸다. 대신 얼굴선은 더 또렷해졌고 마냥 겁이 많던 예전과도 조금 달라져 있었다.석양이 그녀의 뺨에 스며들어 얇은 금빛을 입히자 순간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정류장에 멈춰 사람들이 내리자 차 안이 조금 느슨해졌다. 온하준은 몸을 비집고 한 걸음쯤 그녀 쪽으로 다가갔다. 이제 두세 사람만 사이에 두고 있었다.하지만 다음 정류장에서 또다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그는 다시 안쪽으로 밀려났다.여전히 그를 발견하지 못한 강지연은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온하준도 어느새 다른 생각에 잠겼다.그때였다. 버스 안에서 갑자기 소란이 일었다.“뭐 하세요? 지금 뭐 하려고요? 당장 꺼내세요!”또렷한 목소리에 온하준의 시선이 단번에 그쪽으로 쏠렸다. 그는 사람들 사이를 밀치며 앞으로 나아갔다.거친 남자의 목소리가 뒤이어 터졌다.“뭐라고? 학생, 말 함부로 하지 마!”“제가 똑똑히 봤어요. 물건 훔치셨잖아요!”강지연의 기세는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헐렁한 작업복 바지를 입은 남자가 소매를 걷어붙이며 다가섰다.“말 함부로 했다간 맞는 수가 있어!”그 순간, 온하준이 겹겹이 막힌 사람들을 밀치고 두 사람 사이에 몸을 끼워 넣었다.“뭘 하려는 거죠?”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학생티가 나는 얼굴이었지만 키는 남자보다 반 뼘은 더 위에 있었다.남자는 순간 움찔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경고하는데 너랑 상관없는 일에 끼어들지 마.”“뭘 훔쳤어요? 당장 꺼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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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7화

이제 버스 안에서 남자가 휴대전화를 훔쳤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사람들은 앞다투어 강지연을 거들며 휴대전화를 꺼내 보라고 재촉했고 할머니도 다급한 목소리로 애원했다.“내 휴대전화 좀 돌려줘요. 거기 우리 애들 사진이 다 들어 있는데...”남자의 얼굴이 점점 굳어 갔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버텼다.“안 훔쳤다니까! 내가 안 훔쳤다는데 다들 왜 이래? 지금 여기서 몸수색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당신들한테 그럴 권리가 있어? 이건 명예 훼손이라고!”그는 갑자기 온하준을 향해 소리쳤다.“그리고 넌 함부로 내 손목을 꽉 잡고 안 놓았지! 이것도 폭행으로 고소할 거야. 합의금 물어내야 할 걸?”“좋아요.”온하준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그러면 지금 하세요. 기사님, 문 좀 열어 주세요. 바로 내려서 고소하러 가죠.”“어딜 가겠다는 거야!”남자는 다시 손목을 비틀며 빠져나가려 했지만 온하준의 손은 여전히 단단했다.“경찰서로 가야죠.”온하준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저를 폭행으로 고소하신다면서요. 같이 가죠.”남자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지만 끝까지 허세를 부렸다.“그래! 가자면 못 갈 줄 알아? 가자고! 내려!”속셈은 분명했다. 버스에서 내리면 상대는 학생 하나뿐이니 틈을 봐 도망치겠다는 생각이었다.그 순간,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승객들이 한꺼번에 외쳤다.“그래요! 다들 내려서 같이 가요! 저 사람 신고합시다!”남자의 얼굴이 완전히 굳었다.운전기사는 잠시 더 달리다가 방향을 틀어 한 정거장에 버스를 세우며 말했다.“조급해하지 마세요. 여기서 내리면 바로 경찰서입니다. 다들 같이 내려서 신고하세요.”창밖에는 정말로 경찰서 간판이 보였다.“기사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소란스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저희만 내릴 테니 다른 분들은 그대로 가세요.”온하준의 말에 한 중년 남자가 손을 저으며 나섰다.“그건 안 되지. 어른으로서 학생 혼자 저런 놈 상대하게 둘 수는 없어. 같이 내려서 경찰서로 갑시다.”“맞아요. 같이 가요.”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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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8화

“버스에 그렇게 사람이 많은데 뭐가 무서워.”강지연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정류장에서 건물까지 이어진 길에는 오동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고 퇴근 시간의 인파가 끊임없이 오갔다. 사람들 틈을 따라 두 사람은 나란히 걸었다.“강지연...”온하준은 몇 번이나 입을 열었다가 밀려드는 사람들에 가로막혀 말을 삼켰다. 건물 앞에 도착할 때까지 그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강지연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전혀 모른 채 1층 빵집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나 이만 올라갈게. 잘 가.”온하준은 그녀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수많은 말을 끝내 삼켰다.두 시간이 지나고 강지연이 연습을 마치고 내려왔다. 강시우에게 데리러 와 달라고 연락은 해 두었지만 길이 막혀 한 이십 분쯤 늦는다고 했다.그녀는 건물 앞에 잠시 서 있었다. 길가에서 기다릴지, 아니면 안으로 들어가 있을지 고민하던 찰나 온하준과 시선이 마주쳤다.“아르바이트 아직 안 끝났어?”그녀가 가볍게 물었다.“곧 끝나.”온하준은 가로등 불빛에 비쳐 은은히 빛나는 그녀의 이마 위 땀방울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강지연은 춤출 때면 머리를 단정하게 올려 묶어 목선이 훤히 드러났다. 그 모습은 마치 한 마리의 백조처럼 단정하고 우아했다.“차 기다려?”“응.”“얼마나 남았어?”“한 이십 분.”“그러면 안에 들어와서 앉아 있어. 밖에 너무 덥잖아.”온하준은 콧등까지 땀이 맺힌 강지연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음... 그래.”해는 이미 졌지만 열기는 가시지 않았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더운 공기에 숨이 막힐 듯해 강지연도 고개를 끄덕였다.에어컨만 쐬고 나가기도 애매해 그녀는 빵이라도 몇 개 사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트레이를 들었다.고모와 오빠가 집에 있고 두 사람 모두 빵을 좋아하니 많이 사도 낭비는 아닐 터였다.“강지연.”가게 안에는 다른 손님이 없었고 그날 근무자는 온하준 혼자였다. 그는 빵을 담고 있는 그녀 곁을 맴돌며 말을 걸었다.“응?”강지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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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9화

어딘가 토라진 기색이 스며 있어 강지연은 괜히 그가 오해하고 있는 건 아닐지 마음이 쓰였다.그녀는 정말 그날 계단에서 이승우와 나눴던 대화를 의식해 받아친 게 아니었다. 다만 자신도 모르게 그의 영향을 받은 것뿐이었다.과거의 온하준은 늘 그녀의 선물을 화려하기만 하고 실속 없는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무의식중에 그렇게 말해 버린 것이다.“그날...”두 사람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강지연은 계단에서의 대화를 들은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고 온하준은 혹시 들은 거냐고 묻고 싶었다.하지만 강지연은 문득, 굳이 풀 필요도 없는 오해라는 생각이 들어 화제를 돌렸다.“온하준.”그녀는 트레이에 담은 빵을 안고 계산대로 다가섰다.“계산해 줘.”그 한마디에 온하준은 하고 싶던 말을 다시 속으로 밀어 넣을 수밖에 없었다.빵을 하나씩 집어 스캔하고 포장지에 담으며 화면에 찍히는 가격을 보는 순간, 온하준의 가슴에 억울한 감정이 차올랐다.언제부터 두 사람의 관계가 빵을 사고파는 사이가 되었는지, 왜 이렇게까지 멀어졌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그 수정구, 원래 나한테 주려고 만든 거지?”마침내 억눌려 있던 감정이 정점에 이르자 그는 무심코 그 말을 던졌다.강지연은 봉투를 정리하던 손을 멈췄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아니.”그는 믿지 않는다는 듯 피식 웃음을 흘렸다.늘 무심한 얼굴을 하던 온하준은 정말 아플 때일수록 먼저 웃는 버릇이 있었다. 자신만이 아는, 코끝이 시린 웃음이었다.“내 거였다는 거 다 알아. 강지연, 난 그냥 이유가 궁금한 거야.”“무슨 이유?”강지연은 휴대전화를 한 번 확인했다. 강시우가 거의 도착한 모양이었다.“왜 갑자기 달라졌어?”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조심스럽게 만 원을 건네며 문제 풀이를 부탁하던 강지연은 어디로 갔을까.예쁜 나뭇잎 하나만 주워도 참지 못하고 그와 나누고 책갈피로 만들어 예쁜 글귀까지 적어 건네던 강지연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누가 데려간 걸까.“이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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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0화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이미 서른을 넘겼고 뜨겁게 사랑해도 보고 처절하게 미워도 해봤다. 그러니 이제는 말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온하준.”강지연이 단호하게 말했다.“난 돌려 말하는 거 안 좋아해. 내가 네 뜻을 잘못 이해했을 수도 있어. 그래도 내가 이해한 대로 말할게.”잠깐 숨을 고른 뒤 또렷한 목소리로 덧붙였다.“예전의 강지연은 너를 좋아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니야.”온하준의 눈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 순간 강지연은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는 걸 알았다.‘참 이상하지, 온하준. 왜 너는 늘 강지연이 너를 사랑하지 않을 때야 강지연을 사랑하게 되는 걸까.’“왜?”그는 한 번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오늘은 꼭 답을 듣고 말겠다는 얼굴이었다.“말했잖아.”강지연이 부드럽게 웃었다.“지금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았다고. 그리고 그게 너는 아니야.”그 순간 휴대전화 화면이 밝아졌다. 도착했으니 내려오라는 강시우의 문자였다.“이만 갈게.”강지연은 빵 봉투를 들고 등을 돌렸다.온하준은 그 자리에 서서 그녀의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봤다.길가로 나가는 모습, 차 문을 여는 모습, 그리고 올라탄 차.낮은 조명이 비친 차체는 한눈에도 값비싸 보였고 운전석에는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소년의 자존심이 마지막 질문을 삼키게 했다.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서냐고.하지만 그 질문은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집에 돌아와서도 그 물음은 머릿속을 맴돌았다.온하준은 책장에서 시집 한 권을 꺼냈다. 책을 펼치자 한 장의 책갈피가 끼워져 있었다.오동잎을 말려 정갈하게 다듬은 나뭇잎이었다. 그 위에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그는 그 잎을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 실린 페이지에 끼워 두었다.한때 그는 이 시가 자신의 삶 같다고 여겼다. 홀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끝없이 이어진 어둠을 바라보는, 외롭고 말 없는 사람.온하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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