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Chapter 711 - Chapter 720

775 Chapters

제711화

대회는 일요일이었다. 경기를 앞두고 강지연은 그 주에는 집에 가지 않았다.차유준과는 다음 날 함께 대회장으로 가기로 약속해 둔 상태였다.그런데 여학생 기숙사에서 나오자마자 나무 아래 서 있는 차유준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커다란 칭찬 배지가 들려 있었다.강지연은 그걸 보는 순간 웃음이 터졌다.“뭐야, 이거? 옛날에 유치원에서 주던 배지 아니야?”차유준도 따라 웃더니 칭찬 배지를 그녀에게 건넸다.“오늘 경기에서 제일 잘한 선수, 강지연에게 드립니다. 자, 다들 박수!”차유준이 혼자 손뼉까지 치며 말하자 강지연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이런 건 경기 끝나고 정해야지. 벌써 주면 반칙이잖아.”“너는 그냥 최고야.”차유준은 말끝을 가볍게 흐리며 배지를 그녀의 캔버스 가방에 달아 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법 잘 어울렸다.가슴팍에 달았다면 민망했을 텐데 가방에 다니 오히려 말끔해 보였고 눈에 띄는 배지가 캔버스 천 위에서 또렷하게 살아나 괜히 반듯한 느낌까지 났다.강지연은 손끝으로 배지를 만지며 웃었다.“이거 완전 한정판이네.”십몇 년 뒤에서 돌아온 강지연은 고모에게서 배운 감각 때문인지 진지하게 그 물건이 하나의 상품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그런데 차유준은 왜 하필 이런 걸 준비한 거지?’아침 햇살 아래, 차유준은 환하게 웃으며 선언하듯 말했다.“지금 발표합니다. 강지연 어린이는 오늘 무대에서 제일 멋진 선수였습니다.”그 한마디에 강지연의 웃음이 뚝 멈췄다. 순간 그녀는 이 배지의 출처를 떠올렸다.어릴 때부터 강지연은 춤을 좋아했고 무용 학원에서는 원래 센터에 서던 아이였다.그런데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 학원비를 내야 했고 부모는 그 돈을 내 주지 않았다.그 학기, 학원 아이들은 방송국에 가서 단체 무용을 선보였지만 강지연은 그 무대에 서지 못했다.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칭찬해 주며 한 사람씩 칭찬 배지를 달아 주었다.지금 생각하면 유치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강지연에게 칭찬 배지는 단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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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2화

“차유준.”강지연은 무심코 그의 이름을 불렀다. 차유준이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보며 웃자 강지연은 그다음 말을 차마 잇지 못했다.‘너 앞으로 세계 유람하지 마. 그러다 죽을 수도 있어.’하지만 그 말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강지연이 뜸을 들이자 차유준이 웃으며 가볍게 입을 열었다.“왜 그래? 대회 걱정돼?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 내가 옆에 있어 줄게.”여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차유준은 아무렇지 않게 한마디를 더 얹었다.“나중에 대학 가고 취직해도 계속 옆에 있어 줄게.”강지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이거, 고백이야?’차유준의 귀 끝이 햇살에 붉게 물들었다. 그도 자기가 뱉은 말이 어떻게 들렸는지 알아차린 듯 급히 손사래를 쳤다.“아, 아니. 그 뜻이 아니야. 오해하지 마. 너 진경시에 있는 무용대학 가는 게 목표잖아. 나도 목표가 그쪽이거든. 나는 뉴스 쪽 일을 하고 싶어. 그래서 나중에 방송국이나 신문사에 들어갈 거야. 그러니까 우린 동창으로서, 또 같은 고향 친구로서 자주 보고 서로 챙겨 줘야 하지 않겠어?”화제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앞으로의 생활로 옮겨 갔다. 차유준이 정말 그런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 강지연은 자신이 알고 있는 그의 결말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마음이 조금 놓였다.“차유준, 너 진짜 그런 생활 괜찮겠어? 매일 출근하고 퇴근하고 정해진 일정대로 사는 거.”그건 강지연이 알던 다른 세계의 차유준과는 전혀 다른 삶이었다.햇살 속에서 환하게 웃는 차유준의 미소는 더욱 눈부셨다.“안 괜찮을 게 뭐야? 가족이랑 같이 무난한 하루를 쌓아 가다가 늙는 거. 그게 제일 좋은 인생일 수도 있지.”강지연은 그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말을 꺼냈다.“차유준, Ádh mór ort.”세레니아 말이었다. 그의 얼굴에서 잠깐이나마 흔들리는 기색이라도 건져 보고 싶어 꺼낸 말이었지만 차유준은 오히려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그거 무슨 말이야? 무슨 언어야?”그의 표정과 말투에는 조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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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3화

강지연과 차유준에게 이번 스피치 대회는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탄탄한 원고와 막힘없는 영어. 해성의 쟁쟁한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두 사람의 발표는 유난히 또렷했고 점수는 현장에서 바로 공개되는 방식이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최고점을 받았다.결과가 확정되고서야 대회 측은 두 학생이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았다.하지만 점수는 이미 공개됐고 발표까지 모두 끝난 뒤였기에 이제 와서 바꿀 수는 없었다.결국 강지연과 차유준이 나란히 1등 상을 가져갔고 학교로서는 큰 경사였다.이 대회가 입시에 직접적인 가산점을 주는 건 아니었지만 영예를 마다할 사람은 없었다.더구나 강지연이 다니는 학교는 공립이었다. 수준이 탄탄하긴 해도 해성에는 사립 외국어학교가 따로 있었고 영어는 그쪽이 더 강하다는 인식이 있었다.다음 날 조회 시간, 학교에서는 두 사람을 따로 불러 특별히 표창했다.운동장 앞에서 상을 주고 작은 시상식까지 덧붙여 사진도 찍었다. 박수는 한동안 멎지 않았다. 최아현은 누구보다 크게 손뼉을 쳤다.그런데 박수 소리 사이로 뒤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쳇, 원래 온하준 거였는데 저 둘이 뺏어 갔네.”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였다. 최아현이 들을 만큼, 그리고 남학생 줄에 서 있던 온하준이 들을 만큼.최아현이 홱 돌아봤지만 누가 말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시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그 목소리가 한 번 더 이어졌다.“명단 다 나왔던 거 아니야? 그런데 갑자기 다시 뽑았잖아. 그 안에 꼭 무슨 꿍꿍이가 있었다니까.”최아현은 다시 한번 뒤를 돌아봤다. 이번에는 말이 길었던 탓에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같은 반 유건우가 옆에 선 애와 귓속말을 나누고 있었다.마침 해산해도 된다는 방송이 울렸고 최아현은 그대로 유건우에게 달려가 멱살을 움켜잡았다.“야, 너 지금 뭐라 그랬어?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건데? 똑바로 말해.”유건우는 얼굴이 확 붉어졌지만 기세를 꺾지 않았다.“난 같은 반인 온하준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원래 온하준이 나가야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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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4화

그날을 기점으로 소문은 무섭도록 빠른 속도로 번지기 시작했다.“야, 그런데 나 사실 예전부터 들었어. 강지연... 너희도 알지?”“뭘 알아? 뭔데? 말해 봐.”“강지연, 돈 많은 남자한테 붙어산대.”“말도 안 돼. 무슨 소리야?”“너 진짜 못 봤어? 매주 학교 앞에 데리러 오는 차 있잖아.”“차도 한 대가 아니야. 매번 달라. 어떤 날은 몇천만 원짜리였다가 어떤 날은 억대 차도 오던데?”“그러면 다 다른 사람인 거야?”“그건 모르지. 여러 남자를 홀렸을 수도 있고 한 남자가 차를 여러 대 갖고 있을 수도 있고.”“나 봤는데 데리러 오는 사람도 늘 같은 사람은 아니더라. 어떤 날은 검은 머리 남자였고 어떤 날은 외국인이었어. 아무튼 강지연 사생활이 문란해 보여.”“외국인도 있다고?”“아, 원래 예술 하는 애들 좀 그렇잖아. 사생활이 다 복잡하대.”“그런데 확실한 거 맞아?”“확실하지. 야, 네가 말해 봐. 너 예전에 강지연이랑 온하준이랑 같은 반이었다며. 강지연 집이 그런 차를 탈 만한 형편이었어?”“아니. 강지연 집 진짜 어려웠어. 동생도 있다고 들었는데 옷도 늘 후줄근한 것만 입고 다녔거든. 걔네 부모가 강지연을 싫어해서 집에도 제대로 못 들어갔다더라. 그래서 주말마다 할머니 집으로 갔다잖아.”“맞아. 그런데 요즘 하고 다니는 거 봐. 신발, 가방, 휴대전화까지 다 비싼 거잖아.”“그리고 반 나누기 전에는 온하준을 좋아한다면서 계속 들이댔거든. 그런데 온하준이 안 받아줬잖아. 그러다 반 갈리고 나서는 밖에서 돈 있는 남자 만난 거겠지.”“온하준네도 돈 많다며?”“그럼. 돈 없으면 강지연이 좋아했겠어? 결국 돈 있는 집 아들을 물려고 했던 거지. 그런데 그런 집 애가 강지연을 진지하게 만나겠냐. 그냥 갖고 노는 거지.”“맞아. 부잣집 애가 진심으로 만나려면 깨끗한 여자를 만나겠지 뭐 하러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진 애를 만나겠어.”그런 소문 속에서도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사람이 전혀 없던 건 아니었다.“너희 너무 심한 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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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5화

수업 시작 전이었다. 최아현과 강지연이 교실로 가려고 본관 쪽으로 걷는데 학교 게시판 앞이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학생들이 빽빽하게 몰려 있는 곳은 강지연과 차유준의 수상 소식이 붙어 있던 바로 그 칸이었다.“야, 우리도 가 보자.”최아현이 강지연의 손목을 잡아끌었다.하지만 무슨 일인지 미리 알았더라면 최아현은 절대 강지연을 그 앞으로 데려가지 않았을 것이다.게시판에는 강지연의 사진과 프로필 아래 낯선 사진 한 장이 덧붙어 있었다.사진 속 여자아이는 옷을 입지 않은 채였고 마찬가지로 벗은 남자와 껴안고 있었다.각도는 남자의 등을 보여 주는 쪽으로 잡혀 있었지만 여자 쪽은 정면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얼굴도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중요한 부위만 모자이크로 가려져 있었다.그 옆에는 글자가 빼곡하게 적힌 A4 한 장이 붙어 있었고 제목부터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우리 학교의 자랑, 스피치 대회 1등이 어떻게 1등을 차지했는지 알아봅시다. 결국 몸을 팔아 얻은 명예였네.]그 아래로는 더 길고 더 더러운 문장들이 이어졌다. 강지연이 여러 남자에게 후원받는다느니, 학교 망신이라느니, 예술 생 망신이라느니 단어 하나하나가 노골적이고 비열했다.어떤 여자애들은 얼굴을 찌푸리며 돌아섰지만 더 많은 애들은 그 자리에 남아 구경하고 있었다.화가 치밀어 오른 최아현은 사람들 사이를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 게시판 앞에 서더니 유리창을 등으로 가로막고 소리쳤다.“누가 붙인 거야! 누가 이런 걸 붙였냐고!”대답 대신 낮은 수군거림이 사방에서 번졌다.“강지연 돈 많은 남자한테 붙어산다는 소문 하루이틀 아니잖아.”“맞아. 매주 차가 와서 데려가는데 차도 한 대가 아니래. 외국인도 있고 부잣집 아들도 있고 나이 든 남자도 있다더라.”“솔직히 본 사람 많다잖아.”사람이 너무 많아 어느 쪽에서 누가 말하는지 잡히지 않았다. 다만 모든 입술이 움직이고 있었고 모든 눈이 강지연을 훑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다 닥쳐. 전부 거짓말이야. 전부 조작이고 모함이야.”최아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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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6화

“결백을 밝혀 준다고요?”강지연이 교감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선생님, 혹시 이걸 누가 붙였는지 알고 계세요?”교감이 급히 고개를 저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방금 와서 상황 파악하는 중이야.”“그러면 CCTV부터 확인해 주세요.”강지연의 생각은 분명했다. 최아현도 곧바로 끼어들었다.“맞아요. CCTV부터 보죠. 누가 이런 무례한 짓을 했는지 한번 보자고요. 이건 장난이 아니라 범죄예요. 허위사실 유포는 불법이라고요.”구경하던 학생들은 아직 다 흩어지지 않았고 그 말에 다시 수군거림이 번졌다.“맞네. CCTV 보면 바로 나오겠다.”“누가 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지. 강지연이 진짜 저런 짓을 했는지가 중요하지.”“사진까지 붙여 놨는데 가짜겠냐.”강지연은 눈앞의 사람들을 천천히 훑었다. 일부는 분명 의도적으로 말을 보태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저 구경꾼이었다.그녀는 숨을 고르고 최아현에게 말했다.“최아현, 휴대전화로 영상 찍어. 여기 있는 사람들 얼굴 다 나오게. 그리고 말하는 목소리도 전부 녹음되게 확실히 찍어. 지금 누가 계속 떠드는지 당장은 못 가려 내도 천천히 찾아보면 돼. 못 찾아내면 기술을 이용하면 되고. 지금은 목소리도 분석할 수 있는 세상이잖아. 영상에 찍힌 이상 절대 못 빠져나가.”“오케이.”최아현은 곧바로 촬영을 시작했다.그제야 모여 있던 학생들은 우르르 뒤로 물러나 손을 저으며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나 아니야! 난 아무 말도 안 했어! 난 아무것도 몰라!”“맞아, 맞아. 난 그냥 궁금해서 구경만 했어!”“나는 진짜 아니야. 내 목소리 들으면 알잖아!”인파가 순식간에 갈라졌다. 많은 학생이 아예 교실로 돌아가 버렸고 몇몇만 멀찍이 서서 눈치만 봤다.교감이 재빨리 상황을 수습하려는 듯 말했다.“강지연 학생, 이제 다들 들어갔으니까 여기 붙어 있는 건 선생님이 뗄게. 너도 얼른 교실에 들어가.”교감이 유리문을 열어 사진을 떼려는 순간, 강지연이 앞으로 나서서 그의 손을 막았다.“안 됩니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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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7화

강지연이 한 치도 물러서지 않자 교감의 말투도 덩달아 단단해졌다.“강지연, 너 졸업할 때 학교에서 생활기록부 의견도 써 주는 거 알지?”강지연은 믿기지 않는 얼굴로 교감을 바라봤다.“선생님, 지금 저를 협박하시는 거예요?”“협박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거다. 학교 안에서 일어난 일은 학교 안에서 처리하면 돼. 밖으로 키우지 말고. 우리는 같은 식구야. 집안일은 문 닫고 해결하는 게 맞다.”강지연은 단번에 요지를 알아차렸다. 학교 이미지가 나빠질까 봐,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갈까 봐 두려운 거였다.“그러면 학교 측에서는 어떻게 처리하실 건데요?”강지연이 차갑게 물었다.“일단 사무실로 가서 상의하자꾸나. 학교 측에서 조사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밝혀 줄 거야. 그러니 신고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겠니? 잘 생각해 봐. 너도 이 학교 학생이고 선생님들도 너한테 잘해 줬잖아. 가르친 선생님들 체면도 있는데 좋게 해결하는 게 좋지 않겠어?”그때 복도를 다급하게 달려오는 담임이 눈에 들어왔다.지금 문과반 담임이기도 했고 반이 갈리기 전에도 담임이었던 선생님. 마흔쯤 되어 보이는 여자 교사였고 이름은 백하영이었다.그녀는 도착하자마자 강지연을 꼭 끌어안으며 분노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어떤 애가 이런 짓을 해. 여자애한테 이런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씌우다니.”백하영은 혹시라도 강지연이 그 사진과 글 때문에 더 상처받을까 봐 한 손으로 그녀의 뒤통수를 감싸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괜찮아. 선생님이 있잖아. 선생님이 너 끝까지 지켜 줄게.”강지연은 실제 나이로는 백하영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그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약해졌다. 마치 병아리가 어미 닭의 품으로 숨어들어 바람을 피하는 것처럼 포근하고 든든했다.“선생님...”“그래. 선생님 여기 있어.”백하영은 강지연의 옆을 지켜 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반의 남학생 몇 명까지 불러 신신당부했다.“선생님은 지연이랑 같이 교감 선생님 사무실로 가서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상의할 거야. 결과가 나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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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8화

차유준은 교감의 말을 듣고도 겁먹기는커녕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지금 당장 교실로 돌아가서 수업 들으라는 거죠?”교감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래. 당장 들어가. 너는 성적도 좋고 이번에 상도 탔잖아. 이런 일에 휘말려서 앞날 망치지 말고 애들도 다 데리고 들어가.”그 말에 백하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교감 선생님,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 징계로 아이들 협박하겠다는 겁니까? 이런 식으로 겁주는 게 해결 방식이에요? 전 동의 못 합니다.”차유준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알겠어요. 저희 지금 들어가서 수업 들을게요.”교감이 안도하며 칭찬이라도 하려는 순간, 차유준이 휴대전화를 꺼내며 말을 이었다.“대신 신고부터 할게요. 신고 끝나면 바로 들어가서 수업 준비하면 되죠?”교감의 얼굴이 굳었다.“너, 처벌받는 게 두렵지도 않은가 보구나?”차유준은 태연하게 말했다.“그럴 리가요, 교감 선생님. 저희는 어릴 때부터 어려운 일이 있으면 경찰을 부르라고 배웠는데요. 학생이 신고하면 규정 위반이라는 말은 저는 들어 본 적 없어요. 아니면 제가 직접 전화해서 물어볼까요?”교감은 속이 뒤집힌 얼굴이었다.“좋아. 너희 마음대로 해. 무슨 일 생기면 나중에 교장 선생님께 직접 설명해.”그는 그렇게 쏘아붙이고 돌아서서 백하영과 강지연을 데리고 교감실로 향했다. 하지만 그날 교장은 외부 회의로 자리에 없었다.교감은 자기 방으로 두 사람을 데려와 앉혀 놓고 한숨부터 내쉬었다.강지연과 백하영의 요구는 같았다. CCTV 확인과 가해자 처벌.교감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그러면 관제실로 가서 CCTV를 봅시다.”세 사람은 교감의 안내로 관제실로 향했다. 마침, 전 선생님이 안에 있었다. 교감은 들어가자마자 게시판 쪽 카메라 영상을 틀어 달라고 지시했다.“네.”전 선생님은 곧바로 컴퓨터에서 시간을 맞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니터에 보이는 건 온통 까맣게 죽은 화면뿐이었다.전 선생님은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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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9화

교감은 끝내 강지연과 백하영의 뜻을 꺾지 못했다.신고 전화는 백하영이 직접 걸었다. 교감실에서, 교감이 보는 앞에서였다.그리고 출동은 빨랐다. 백하영이 말한 대로 아침 자습이 끝나기도 전에 경찰이 도착했다.게시판 앞을 지키고 있던 남학생들도 그제야 교실로 돌아갈 수 있었고 경찰은 게시판에 붙어 있던 사진과 종이에서 증거를 채집했다.진술받고 간단한 조사까지 마치고 나서도 아직 1교시는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경찰이 돌아간 뒤 교감이 강지연과 백하영을 바라보는 눈빛은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강지연은 올해 백하영이 무슨 평가나 승진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교감 선생님, 그럼 전 이만 지연이 데리고 수업 들어갈게요. 감사합니다.”백하영이 강지연의 팔을 잡아 이끌었다.교감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고 붙잡지도 않았다.다만 두 사람이 나간 뒤 곧바로 교무실로 전화를 걸어 학부모를 부르라고 했다. 경찰까지 왔어도 결국 부모를 통해 압박을 넣고 합의로 정리할 수 있다고 여기는 눈치였다.강지연의 하루는 겉으로 보기엔 평소와 다를 바 없었지만 학생들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건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열일곱의 강지연이었다면 그 무게를 버티기 힘들었겠지만 지금의 강지연은 아니었다.그녀는 이미 너무 많은 바람과 비를 지나왔고 이런 식의 소문과 이런 식의 더러운 수법은 오히려 익숙했다. 그리고 누가 이런 일을 가장 잘하는지도 알고 있었다.그렇다고 하루가 온통 차갑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최아현은 쉬는 시간마다 문과반으로 달려와 강지연 옆에 붙어 앉아 말을 걸고 괜히 웃기려 애쓰고 눈치를 살피며 진짜 괜찮은 건지 몇 번이고 물었다. 강지연이 정말 괜찮다고 여러 번 못 박고 나서야 최아현은 겨우 안심했다.차유준을 중심으로 문과반 남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강지연이 교실에 들어오기만 하면 시선이 쏠렸고 쉬는 시간에도, 밥을 먹으러 갈 때도 무리 지어 따라붙었다.혹시 누가 한마디라도 비웃기만 하면 바로 나서겠다는 얼굴들이었다.강지연은 솔직히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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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0화

공용 샤워실은 칸칸이 나뉘어 있었고 안은 커튼 하나로만 가려져 있었다.강지연이 다 씻고 물을 잠근 뒤 수건을 집으려던 순간이었다. 쫙 하는 소리와 함께 커튼이 거칠게 찢기듯 열렸다.밖에는 다섯 명의 여학생이 뭉쳐 서 있었다. 맨 앞의 여자애는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고 카메라 렌즈는 정확히 강지연을 향해 있었다. 입가에는 악의 섞인 웃음이 걸려 있었다.“야, 다들 와 봐. 우리 학교 1등이 씻는 모습이야.”강지연은 순간 몸이 굳어졌다.“몸이 진짜 하얗네. 아침 게시판 사진이랑 똑같이 하얗다. 하하.”그 애가 휴대전화를 더 가까이 들이밀자 뒤쪽에서 낄낄대는 웃음이 터졌다.“더 잘 나오게 찍어!”다른 애들도 함께 부추겼다.강지연은 재빨리 수건을 들어 몸을 가렸다. 그리고 말없이 차갑게 그 아이들을 바라봤다.“뭘 그렇게 고고한 척해? 네 알몸 사진을 전교생이 다 봤잖아.”맨 앞에 선 애가 더 신이 나서 말했다.강지연이 수건을 움켜쥔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욕실 안으로 폭발하듯 고함이 터졌다.“다 꺼지지 못해!”주변에 둘러서 있던 아이들이 거친 힘에 밀쳐지더니 최아현이 그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고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최아현은 곧장 손을 뻗어 그 애의 손목을 붙잡았다.“뭘 찍어! 내놔!”하지만 휴대전화를 빼앗는 데는 실패했다.그 애가 팔을 세게 털어 내는 바람에 바닥에 물이 흥건한 탓까지 겹쳐 최아현은 중심을 잃고 그대로 넘어졌다.쿵.둔탁한 소리가 욕실 안에 울렸다.강지연은 이미 티셔츠와 바지를 급히 끌어 올려 입고 커튼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최아현을 붙잡아 일으켰다.그런데도 애들은 계속 키득거렸고 카메라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와, 너 속옷 안 입는 거야? 그렇게 남자를 홀렸구나!”“봐 봐, 안에서 흔들린다! 하하하!”강지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최아현이 제대로 선 걸 확인한 뒤 그대로 앞으로 치고 들어갔다.그 애는 강지연도 휴대전화를 빼앗으러 오는 줄 알았는지 팔을 번쩍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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