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Chapter 701 - Chapter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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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1화

옆집은 샤부샤부 전문점이었다.최아현과 강지연이 도착했을 때, 이하나는 가게 앞에 줄 선 손님들에게 번호표를 나눠 주고 있었다.두 사람을 발견하자마자 그녀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더니 금세 눈가가 붉어졌고 손은 갈 곳을 잃은 듯 허둥댔다.강지연과 최아현은 황당한 표정으로 잠시 눈을 마주쳤다.‘우리가 뭘 했다고 저래?’그 순간, 이하나의 시선이 두 사람의 어깨 너머로 흘렀다. 그러더니 눈을 붉힌 채 급히 달려왔다.최아현은 얼떨떨했다.‘이건 또 무슨 상황이야? 설마 우리한테 덮어씌우려는 거야?’하지만 이런 일이 익숙했던 강지연은 한 박자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조용히 최아현의 팔을 끌어 한 걸음 비켜섰다. 그리고 뒤늦게 최아현도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두 사람의 뒤에는 온하준이 있었고 이하나는 그를 향해 달려온 것이었다.강지연과 최아현은 나란히 팔짱을 낀 채 이번에는 또 어떤 연극이 펼쳐질지 지켜보았다.이하나는 온하준 앞에 멈춰 서더니 돌연 몸을 돌려 마치 병아리를 품은 어미 닭처럼 그를 감싸듯 막아섰다. 그녀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눈물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맺혀 있었다.“하준이한테 뭐라고 하지 마. 다 내 잘못이야. 내가 다시 일자리 구해 달라고 부탁했어. 화나면 나한테 화풀이해. 제발 하준이를 탓하지는 말아 줘. 그리고 하준이랑 멀어지지도 말고...”최아현은 강지연과 달랐다. 강지연은 서른을 넘긴 시간을 한 번 살아 본 사람이기에 이런 식의 피해자 연기를 수도 없이 봐 왔지만 최아현은 아직 열일곱의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말다툼이나 싸움쯤은 겪어 봤어도 이런 식의 몰아가기는 처음이었던 최아현은 황당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강지연을 바라보며 이하나가 왜 저러냐는 눈빛을 보냈다.강지연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이제 시작이니 좀 더 지켜보라는 뜻을 내비쳤다.최아현이 그 뜻을 완전히 읽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어진 이하나의 행동에는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이하나는 천천히 무릎을 꿇듯 바닥에 주저앉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채 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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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2화

“이건 질투 싸움이 아니라 괴롭힘 같은데? 부모를 불러야 하는 거 아니야?”“부모가 나서서 뭘 해결하겠어. 이런 경우엔 경찰을 불러야지. 어린애들이 남자나 홀리고 형편 어려운 학생 한 명을 괴롭히고 있네.”최아현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곧고 순수한 성격 탓에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던 그녀로서는 그럴 만도 했다.소매를 걷어붙이며 이하나에게 달려들려는 순간, 강지연이 재빨리 그녀를 붙잡아 말렸다.덕분에 잠시 냉정을 되찾은 최아현은 곧바로 깨달았다. 지금 달려가 손을 대는 순간, 자신은 이하나를 괴롭히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된다는 걸.억울하고 화가 난 최아현은 결국 온하준을 바라보았다. 온하준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강지연은 그 표정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속은 이미 들끓고 있을 때의 표정.대놓고 화를 내지는 않아도 마음속은 살얼음처럼 차갑게 식어 있을 때의 침묵.사실 지금과 같은 상황은 그때도 똑같이 벌어졌었다.고3이었던 온하준은 이미 가게를 차렸고 이하나는 병원을 드나들며 간호사와 환자들에게서 온하준에 대한 정보를 주워 담았다.어린 나이에 가게를 꾸렸고 아주 큰 집에 산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이하나가 그렇게까지 공을 들일 이유도 없었다.그런데 그때의 온하준은 이하나를 그저 할머니를 돌봐 주는 착한 자원봉사자라고만 생각했다. 선량하고 착한 아이, 딱 그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하지만 온하준이 알고 있는 착하기만 한 천사는 그가 없는 곳에서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고 강지연은 그런 이하나를 잘 알고 있었기에 지금 이 장면이 너무도 익숙했다.그때 고3이었던 강지연과 최아현은 아무 의심 없이 온하준의 가게로 갔다.강지연은 자신의 자원봉사자 자리가 이미 이하나에게 넘어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가게에서 이하나는 마치 주인인 양 굴었다. 말끝마다 온하준과 가까운 사이라는 듯 행동했고 웃는 얼굴로 강지연과 최아현을 눌렀다.최아현이 결국 참지 못하고 받아쳤고 그때 온하준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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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3화

그때의 강지연은 자원봉사자로 온하준의 할머니 곁을 지켰던 그 시간을 이하나가 가로채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그래서 온하준이 왜 저렇게까지 이하나를 감싸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렇게까지 단호하게, 끝까지 이하나의 편을 들어 주는지.온하준이 차가운 얼굴로 이하나를 두둔하자 최아현은 기가 막힌 듯 자기 코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온하준, 너 지금 우리보고 나가라는 거야?”온하준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한 채 잠시 입을 다물었고 그 침묵은 오히려 최아현을 더 자극했다.“말해 봐. 우리 몇 년을 알고 지낸 사이야.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어. 너 진짜, 걔 때문에 나를 네 가게에 영원히 못 들어오게 할 거야?”강지연은 최아현의 마음이 이해됐다. 자신은 무용 특기생으로 이 학교에 들어왔지만 최아현은 온하준과 중학교 때부터 같은 반에서 함께 지낸 친구였다.최아현이 던진 말은 단순한 화풀이가 아니라 자기 자리를 확인하려는 마지막 질문이었다.그 질문에 온하준도 아주 잠깐 흔들렸다. 그리고 말투를 바꿨다.“나는 이하나를 싫어하는 사람만 내 가게에 못 오게 하겠다는 거야.”말은 그럴듯했지만 뜻은 분명했다. 친구로 남고 싶으면 이하나도 받아들이라는 말이었다.최아현은 곧바로 등을 돌렸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내뱉었다.“온하준, 이하나가 네 친구라면 난 영원히 네 친구가 될 수 없어.”최아현이 차갑게 돌아서자 온하준은 어두운 표정으로 강지연을 쏘아보며 물었다.“너는? 너도 갈 거야?”강지연은 망설이지 않고 최아현의 뒤를 따라 그대로 나가 버렸다.굳이 온하준을 선택할 이유도 없었다. 자신은 그저 온하준을 짝사랑하는 수많은 여학생 중 한 명이었고 최아현처럼 당당하게 친구가 될 수 없다고 말할 용기도 자격도 없었다.애초에 온하준을 가져 본 적도 없었고 친구라는 자리조차 최아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그 이후로 강지연은 온하준의 가게에 다시는 가지 않았다.그 무렵 그녀는 졸업 선물로 온하준에게 주려고 작은 조약돌에 달과 계수나무를 새기기 시작했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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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4화

강지연은 순간 멈칫했다.‘뭐지? 온하준이 변한 건가?’막 불쌍한 표정으로 울음을 터뜨리려던 이하나는 온하준의 말에 울먹이던 얼굴 그대로 굳어 버렸다.“최아현은 성격이 쾌활하고 의리가 있는 애고 강지연은 착하고 순한 애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애들 아니야.”온하준은 더 단호한 말투로 다시 한번 강조했다.강지연과 최아현은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서로를 흘끗 바라봤다.더 이상 연기를 이어 갈 수 없었던 이하나는 울먹이던 표정을 어색한 미소로 바꾸더니 곧 다시 서러운 척하는 목소리로 말했다.“아, 그래... 내가 오해했나 봐. 너희를 잘 몰라서... 미안해. 내가 사과할게.”그 말과 함께 이하나는 두 사람 앞으로 다가왔다. 얼굴에는 아직 눈물이 맺혀 있었고 입꼬리는 억지로라도 올려 보이려 애쓰고 있었다.“강지연, 최아현, 미안해. 나 사실 너희랑 친구 하고 싶었어. 그런데 너희가 날 안 받아줄까 봐 무서웠어.”그때 온하준의 가게로 들어갔던 구경꾼들이 다시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안에는 자리가 부족해 밖에서 기다려야 했고 새로 지나가던 사람들까지 합쳐지면서 식당가 앞은 다시 북적였다.사람이 많아지자 이하나의 연기도 다시 시작됐다. 그녀는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을 이었다.“나 진짜, 진짜 너희랑 친해지고 싶어. 너희는 나랑 달리 집안 환경이 좋아서 나 같은 건 어울릴 수 없다는 걸 잘 알아. 하지만 나는 전학해 온 지 얼마 안 돼서 친구도 없고 너무 외롭거든... 그래서 너희 같은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사과한다더니 어느새 또 자신을 불쌍한 사람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역시 이하나는 이런 쪽 연기는 배우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었다.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이 다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애들이 너무 매정하네. 저렇게 불쌍하게 울면서 친구 하자는데 가난하다고 무시하는 거야? 하이고, 이제는 어린 애들도 빈부를 따지면서 친구를 사귀네.”그 말과 함께 온하준의 눈빛도 아주 잠깐 흔들렸다. 그 표정은 마치 그냥 이하나를 받아주면 안 되냐고 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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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5화

강지연은 이하나가 무심코 온하준을 흘끗 바라본 그 한 번의 시선에서 단서 하나를 건져 올렸다.‘온하준이 사 준 거구나. 온하준, 너는 참 돈 앞에서는 한결같이 후한 사람이구나.’강지연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아, 가짜야?”그녀는 시선을 내려 이하나의 발끝을 훑으며 덧붙였다.“그러면 신발도 가짜겠네. 요즘 그 모델 엄청나게 뜨잖아. 정품이면 최소 백사십만 원은 넘지 않아?”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서서히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학비 모으려고 아르바이트한다면서 저 정도면 몇 년 치 학비 아닌가?”“가짜일 수도 있지.”“가짜라도 저런 걸 하고 다닌다고?”강지연이 뭐라고 더 입을 열 틈도 없이 누군가 신이 나서 소리쳤다.“그러면 구매 링크 보여 주면 되잖아! 링크 까면 가짜인지 아닌지 알지!”이하나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었다. 그녀는 온하준을 바라보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나... 난 그저 길거리에서 산 거야... 링크 같은 거 없어.”곧장 다른 사람이 의견을 내놨다.“아래층에 매장 있잖아. 내려가서 직원한테 감정받으면 되겠네.”그 말에 이하나는 순간적으로 불쌍한 척하던 표정을 확 바꾸며 본색을 드러냈다.“안 가! 못 가!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그리고 당신들은 뭔데 자꾸 이래라 저래라야? 내가 왜 증명해야 하는데? 정품이라면 너희가 증거를 대! 너희가 나를 몰아가는 거잖아!”온하준의 눈빛이 더 어두워졌다. 그리고 아까까지 이하나를 안고 있던 가게 직원조차 슬쩍 팔을 풀며 한발 물러서더니 전과는 다른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사실 여기서 중요한 건 정품이나 짝퉁이냐가 아니었다. 집이 어렵고 학비를 모으려고 아르바이트한다는 고등학생이 몸에 명품을 두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하나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누군가 먼저 입을 열었다.“가난하다면서 무슨 명품이야? 진짜든 가짜든 앞뒤가 안 맞잖아. 진짜 어려운 집안이면 저 브랜드가 뭔지도 모를 텐데.”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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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6화

이하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일이 점점 더 꼬이고 있다는 걸 깨닫자 곧장 자신이 가장 잘하는 연기를 이어 갔다. 눈가를 붉히고 눈물을 흘리며 측은한 표정으로 울먹였다.“하준아, 미안해... 나... 너한테 민폐 끼치기 싫어서 그랬어. 진짜야. 너한테 영향을 줄까 봐... 너는 나한테도 잘해 줬고 품행도 좋고 성적도 우수한데...”“떳떳하면 남의 의심쯤 두려운 것도 없겠지.”온하준이 말을 잘랐다. 그러고는 이하나의 뒤쪽에서 여전히 눈치를 보며 서 있는 직원들을 흘끗 바라본 뒤 덧붙였다.“여기서 계속 일하고 싶으면 해. 아무 문제 없을 거야.”그는 곧바로 돌아서서 강지연과 최아현을 향해 말했다.“가자.”“어딜 가?”최아현이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밥을 먹으러 왔다가 밥은커녕 억울한 일까지 겪었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밥 먹으러 온 거 아니야?”온하준은 담담하게 말했다.“사과하는 의미로 네가 밥 사겠다는 거지? 뭘 살 건지 말해 봐. 사과를 받아들일 만한 메뉴인지 생각 좀 해 봐야겠어.”말은 까칠했지만 몸은 이미 그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최아현과 온하준은 결국 친구였다. 온하준이 아무리 선을 넘어도 고개를 한 번 숙이고 밥 한 끼 사 주면 최아현은 넘어가 주곤 했다.하지만 예전의 강지연은 달랐다.온하준이 자신 앞에서는 이하나를 정리하겠다고 해 놓고 뒤에서는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 주고 값비싼 선물까지 쥐여 준 정황이 드러났다면 그녀는 그저 조용히 물러나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애초에 강지연의 마음은 짝사랑이었고 온하준은 그녀에게 어떤 약속도 한 적이 없었으며 최아현이 없었다면 두 사람은 친구라고 부르기조차 애매한 관계였다.길에서 마주쳐도 말없이 스쳐 지나갈 사이였고 강지연 혼자 그 침묵에도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착각했을 뿐, 어쩌면 그 침묵은 아무 의미도 아니었을 가능성이 컸다.그렇게 강지연은 한 걸음씩 온하준과 멀어졌고 결국 진학 방향마저 바꿔 진경시에 있는 무용대학으로 가며 그에게서 완전히 멀어졌다.하지만 지금의 강지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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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7화

친구라는 단어에 최아현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친구? 내가 말했지. 이하나가 네 친구인 이상 나는 너랑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라고. 앞으로 또 이하나를 친구라고 부르면 한 달 내내 프렌치 사 줘도 절대 안 봐줄 거야.”강지연은 말없이 음료만 휘저었다.예전에도 최아현이 온하준과 이런 식으로 자주 부딪혔는지는 이제 기억이 흐릿했다. 그때의 강지연은 늘 조용히 한 발 뒤로 물러나곤 했고 지금도 본능처럼 그러고 있었다.“최아현.”온하준은 그녀의 이런 태도에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넌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너랑 이하나 사이에 무슨 이해관계가 있다고 그렇게까지 배척하는 건데?”강지연은 입꼬리를 아주 미세하게 올렸다. 저 한마디만으로도 그의 마음이 어디로 기울어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식전 빵에 소스를 찍던 최아현은 순간 손을 멈추더니 곧 소스 그릇을 온하준 쪽으로 내던지며 말했다.“온하준,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잘 생각해 봐. 이해관계가 왜 없어? 걔가 강지연 원고를 뺏어 간 거 잊었어? 강지연이 두 가지를 준비해 놔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얼마나 개망신이었겠어.”온하준은 즉시 반박했다.“강지연이 일부러 그런 거잖아.”최아현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온하준을 노려봤다.“지금 그 말, 다시 해 봐.”온하준은 피하지 않고 강지연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강지연이 일부러 미끼를 던진 건 사실이잖아.”최아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기세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온하준...”온하준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나도 알아. 원고를 뺏은 건 결국 이하나 잘못이야. 강지연이 한 건 말 그대로 미끼를 던진 거고 이하나는 이기고 싶어서 그 미끼에 걸려든 것뿐이지.”최아현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라 팔을 걷어붙이며 싸울 기세로 입을 열었다.“온하준, 너 지금 그게 무슨 뜻이야? 그러니까 네 말은 너도 이하나가 잘못한 건 알지만 결국 걔 편이라는 거야?”“나 진짜...”계속 침착하던 온하준은 결국 화가 치밀었는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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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8화

“너랑 나 사이는...”온하준은 말을 꺼내다가 잠깐 목이 막힌 듯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네가 아는 줄 알았는데.”“그래?”강지연이 얕게 웃었다.“난 모르겠는데.”서른을 넘긴 강지연이 그 말의 뜻을 모를 리 없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한 거였다.알아 버리면 더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아서 차라리 모르는 척하는 쪽을 택한 것이었다.온하준이 그녀를 바라보는 눈동자 속에서 불꽃이 잠깐 튀었다.화가 치밀어 오를 때만 스쳐 지나가듯 드러나는 그런 눈빛이었다. 왠지 지금의 온하준은 강지연이 알던 온하준이 아닌 것 같았다.예전의 그는 그저 아무 감정도 없는 물 같은 사람이었고 그 무엇도 그의 마음에 불을 붙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아주 잠시였지만 분노라는 감정을 드러냈다.다만 그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표정을 거두고 다시 평소처럼 담담하게 말했다.“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그래.”강지연이 무심하게 받았다.“나 아무 생각도 안 했어.”온하준은 딱 봐도 못 믿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다 마치 최아현에게 설명하듯 말을 이었다.“최아현이 내 뜻을 물었잖아. 내 뜻은...”강지연이 턱을 살짝 들고 그를 바라봤다. 온하준은 잠깐 시선을 피했다가 다시 그녀를 보며 말을 골랐다.“멍청하게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고 네가 널 지킬 줄 알아서 좋다는 뜻이야.”평생 온하준의 입에서 이런 낯간지러운 말을 처음 들어 본 강지연은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무엇보다 ‘멍청하게’라는 말이 귀에 걸렸던 그녀는 그대로 받아쳤다.“네가 더 멍청해! 너는 진짜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사람이야.”안 그랬으면 이하나한테 그렇게까지 휘둘리지도 않았겠지.강지연은 그 말만 던지고 돌아섰다. 모퉁이를 도는 순간, 그녀는 최아현과 정면으로 부딪쳤다.최아현의 얼굴에는 분노가 고스란히 떠 있었다.아마 숨기려고는 했겠지만 강지연이 나오자 더는 참을 필요가 없어졌던 모양이었다. 최아현은 그대로 앞으로 튀어 나가 온하준에게 쏟아 냈다.“야, 너 방금 누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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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9화

이하나는 여전히 겁먹은 얼굴이었다. 조금 전 울었던 흔적이 채 지워지지 않아 눈은 붉게 부어 있었고 억울함을 가득 머금은 채 온하준을 올려다봤다.“무슨 일이야?”온하준이 먼저 물었다.“하준아...”이하나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고 눈가에는 다시 눈물이 맺혔다.“너... 이제 내가 싫지?”온하준은 잠시 침묵하다가 짧게 말했다.“아니.”“난 그냥...”이하나가 변명하려는 순간, 온하준이 말을 끊었다.“널 탓을 할 생각은 없어. 여자애니까 당연히 예쁜 걸 좋아하겠지. 나도 이해해. 무엇보다 네 도움을 받은 대가로 준 선물이야. 나도 누구한테 빚지는 건 싫거든.”이하나의 눈가에 매달려 있던 눈물이 그대로 멈췄다.“그럼... 나한테 선물을 준 이유가 그저 빚 갚으려고 준 거란 말이야?”“응.”온하준은 이하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물건으로 갚을 수 있는 신세가 제일 깔끔해.”이하나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그러면 네 가게에서 일하게 해 준 것도, 월급을 준 것도, 나중에 옆 가게에 일자리 구해 준 것도 다 그거 때문이야?”온하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응. 도움받았고 고마웠으니까.”이하나의 눈빛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온몸에서 힘이 쭉 빠진 듯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서던 그녀의 눈가에 다시 눈물이 맺혔다. 이번에는 연기가 아닌 진짜 눈물이었다.“그러면 넌 지금 내가 허영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겠네? 강지연이 그런 말 안 해? 내가 허영심 많다고.”온하준은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강지연은 그런 말 안 해. 그리고 네가 어떤 사람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아. 허영심이 많던 순수하든 다 상관없어.”이하나의 눈빛이 다시 반짝였다.“그 말은 내가 어떤 사람이든 넌 상관없다는 거야?”“응.”기쁜 마음에 다시 눈물을 흘리려는 찰나, 온하준의 다음 말이 그 기분을 잘라냈다.“우린 그저 동창일 뿐이야. 네가 어떤 사람인지 나한텐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네가 나를 도와줬다는 거고 난 그걸 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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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0화

그날 밤, 이하나는 집으로 돌아왔다.집 안은 컴컴하고 휑했다. 엄마는 야간 근무 중일 테고 아빠는 아마 또 밖에서 술을 마시고 있겠지.원래부터 이렇게 망가진 집은 아니었다. 이하나에게도 한때는 제법 그럴듯한 가정이 있었다.큰 집에 살았고 해성에서 가장 고급이라는 백화점에 가서도 사고 싶은 걸 앞에 두고 크게 망설인 적이 없었다. 그 시절의 자신은 분명 ‘공주’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부유했고 여유로웠다.하지만 아빠의 투자 실패 이후 모든 것이 뒤집혔다.큰 집은 순식간에 월세방으로 바뀌었고 비싼 차는 겨우 굴러가는 싸구려 차로 바뀌었다. 그 차를 학교 앞에 세우는 것조차 창피해서 늘 한참 떨어진 곳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야 했다.예전에 가던 식당도, 예전에 쓰던 물건도, 예전에 누리던 생활도 더는 돌아오지 않았다.아빠는 거액의 빚을 떠안았고 엄마의 월급만으로는 집안 살림조차 버거웠다.떠안은 빚을 언제쯤 다 갚을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가장 좋아하던 집이 이제는 가장 견디기 싫은 공간이 되어 버렸다.아빠는 매일 술에 취해 들어왔고 엄마는 집에 없었다. 집에 있어도 둘은 싸우기만 했다.말다툼으로 끝나지 않는 날도 많았다. 손이 먼저 나가고 물건이 곧이어 날아갔다. 그릇이 깨지고 전자제품이 망가지고 의자는 성한 걸 찾기 힘들었다.이하나는 그저 예전처럼 살고 싶었고 이런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 지독한 생활을 더는 하루도 견딜 자신이 없었다.그런 상황에서 온하준을 만났고 그의 환경이 마음에 들었다.온하준은 큰 집에 살고 있었고 아직 고3이면서도 식당을 운영할 만큼 능력이 있었으며 돈 쓰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무엇보다 잘생겼다.이하나는 온하준만 붙잡으면 이 끔찍한 집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런데 오늘 온하준은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 감정도 없고 그저 고마운 마음 때문이었다고 말했다.이하나는 이 모든 게 결국 강지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처음에는 문과반 강지연이 온하준과 무슨 관계가 있겠냐고 여겼다.이하나가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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