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s les chapitres de : Chapitre 301 - Chapitre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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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1화

“먼저 가.”강솔은 남은 감정을 모조리 한쪽으로 밀어냈다. 머릿속에는 이제 멘토가 맡긴 작업을 끝내야 한다는 생각만 남아 있었다. “오늘 밤은 회사에서 쉬고 갈게.”설현은 강솔을 말리고 싶었다.하지만 강솔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린 화인게임즈를 대표해서 온 거잖아. 맡은 일도 다 못 끝내고 가면 회사 이름에 먹칠이 될 수밖에 없어.”“그래도 안 쉬면 내일 일은, 공부는 어떡해?” 설현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강솔을 바라봤다.“이거 끝내면 아마 네다섯 시쯤 될 거야.” 강솔은 시간을 한 번 확인한 뒤, 머릿속으로 대강의 진행 속도를 계산했다. “그럼 조금이라도 잘 수 있어.”설현은 더 말리려 했지만, 끝내 강솔의 설득에 밀려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강솔의 실수로 벌어진 일이었다. 그런 일을 다른 사람까지 함께 짊어지게 할 수는 없었다.10분 뒤.회사 사무실 안에는 강솔만 남았다.강솔은 사무실의 다른 불을 전부 껐다. 환하게 켜 둔 건 책상 위 스탠드 하나뿐이었다.궁지에 몰려서였을 수도 있고, 회사의 평판에 흠이 갈까 두려워서였을 수도 있었다. 어느새 강솔은 조금 전까지 자신을 휘감던 감정과 생각을 밀어내고, 일에만 정신을 쏟고 있었다.그제야 강솔은 인터넷에서 떠돌던 말이 사실이라는 걸 실감했다. 직장인은 슬퍼할 시간도 없다. 밤에는 엉엉 울고, 다음 날이면 감정을 추슬러서 리셋한 뒤 다시 출근한다는 사실.그 뒤 몇 시간 동안 강솔은 멘토가 맡긴 작업에만 파고들었다. 강솔은 중현 빽으로 회사에 들어왔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중현이 말한 것처럼 아무 가치도 없는 사람이라는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다.‘난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있어.’‘적어도 나와 내 자식은 먹여 살릴 수 있어. 최소한 살아갈 힘은 있다고.’강솔이 아래층에서 야근하는 동안, 중현은 위층에서 오래 강솔을 기다리고 있었다. 건물 안에서 희미한 불빛이 남아 있는 곳은 두 사람의 자리뿐이었다. 나머지는 전부 어둠에 잠겨 있었다.새벽 4시 40분이 조금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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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2화

“금방 갈게.”강솔은 대충 옷매무새만 정리한 뒤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설현이 강솔에게 아침을 건넸다.강솔은 고맙다고 말했다.“어젯밤 하 대표님이랑 같이 밤새웠어?” 설현이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강솔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강솔은 우유를 한 모금 마신 뒤 물었다. “무슨 뜻이야?”“내가 들어올 때 하 대표님이 여기서 나가시는 거 봤어.” 설현은 그저 가볍게 이야기를 꺼낸 것뿐이었다. “손에 외투 들고 있었고, 셔츠도 아침에 막 갈아입은 것 같진 않더라. 조금 구겨져 있었어.”강솔은 아침을 먹던 손을 멈췄다. 머릿속에는 잠에서 깼을 때 맡았던 그 향이 저절로 떠올랐다.‘어젯밤에도 안 간 거야?’“왜 그래?” 설현이 물었다.“아마 들어와서 상태만 보고 갔겠지.” 강솔은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잘 때도 못 봤고, 깨고 나서도 못 봤어.”강솔은 중현이라는 사람이 참 모순적이라고 생각했다.한쪽에서는 강솔을 그렇게까지 몰아세우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남몰래 챙겼다.‘정말 나에게 잘해 줄 마음이 있었다면, 왜 나를 놓아주지 못하는 거지?’ ‘왜 내가 자유롭게 살아갈 앞날을 그냥 허락하지 않는 걸까?’설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일에 대해 설현이 더 말을 보태지는 않았다. 설현이 더 궁금한 건 다른 쪽이었다. “작업물은 다 완성됐어?”“끝냈어.” 강솔이 답했다.짧게 말을 주고받은 뒤 두 사람은 아침을 먹는 데 집중했다. 다 먹고 난 뒤 강솔은 세수하러 갔다. 강솔은 계속 차가운 물을 얼굴에 끼얹었다. 반나절 가까이 밤을 새운 탓에 머리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당장 정신을 차려야 했다.중현 쪽 상태도 강솔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는 억지로라도 정신을 붙들고 일을 해낼 수 있었다.“조금 더 주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회의는 오후로 미루겠습니다.”강 비서는 중현이 어젯밤을 꼬박 지새운 걸 알고 있었다.“괜찮아.” 중현은 무심한 낯으로 앉아 있으며 기색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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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3화

강솔은 멈칫했다.가슴 한복판을 무거운 것이 세게 내려친 듯했다.“미안해.” 강솔은 사과했다. 방금 전, 가시를 세운 채 중현을 몰아붙였던 자기 태도가 분명 사람을 아프게 했다는 걸 강솔도 알았다.“네 사과 안 필요해.” 중현의 시선이 강솔에게 단단히 박혔다. “내가 원하는 건 네가 돌아오는 거야. 네가 돌아오기만 하면 네가 아무리 제멋대로 굴어도 다 받아줄 수 있어.”“네가 매일 나를 아프게 하는 말을 해도, 난 조금도 상관없어.”강솔은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 왔다.중현은 사랑할 때는 숨김이 없었고, 감쌀 때는 끝이 없었으며, 매몰차질 때는 너무도 냉정했다.띵-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강솔은 중현에게 이끌려 중현의 방으로 갔다. 방금 있었던 일 때문인지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고, 방 안 공기마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당신은 왜 소아연을 평생 책임지려고 하는데?” 강솔은 빠져나갈 수 없다는 걸 알고, 대신 궁금한 것을 묻기로 했다. “당신이 말한 은혜가 대체 뭐였는데?”“소아연이 내 목숨을 구했어.” 중현이 말했다.중현은 원래 강솔이 자기 곁으로 돌아온 뒤에야 말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강솔이 이런 상황에서도 이 질문을 꺼냈다는 건, 강솔이 한 발 물러서고 있다는 뜻이었다. 강솔이 한 발 물러선 이상, 중현도 더 숨길 생각은 없었다.“목숨을 구해 줬으면 그 대가로 돈을 주거나, 바라는 걸 좀 들어주면 되잖아.” 강솔은 눈을 들어 중현을 바라봤다. 중현이 하는 방식은 강솔에게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같이 데리고 살면서, 평생 책임질 정도야?”중현은 얇은 입술을 곧게 다물었다.짙은 밤빛 같은 눈동자 안에서 여러 감정이 천천히 일렁였다. “내가 잘 돌보겠다고 약속했어.”강솔은 이번에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약속?’‘또 약속이야?’“왜 약속에 그렇게 집착해?” 강솔은 처음으로 중현 기분을 살피지 않은 채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예전에는 중현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서 한 마디도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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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4화

“먼저 들어가서 쉬어.”중현은 감정을 모조리 눌러 담고 다시 차분해졌다.“내일도 출근해야 하잖아.”강솔은 몸을 돌리자마자 그대로 걸어 나갔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엘리베이터 안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강솔은 중현과 제대로 이야기해 보려고 했다. 이유가 충분하고, 중현이 바뀌겠다고 한다면, 예전 일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 뒤 다시는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강솔도 지나간 일을 조금쯤은 용서해 보려고 했다.그런데 이제 강솔은 알았다. 중현은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았다.중현은 누구도 자기 마음 깊숙한 데까지 들어오게 하려 하지 않았고, 모든 걸 털어놓을 생각도 없었다. 그런 식의 대화로는 문제가 풀릴 리 없었다.엘리베이터 문이 18층에서 열리자 강솔은 빠르게 걸어 나갔다.쿵!강솔의 몸이 누군가와 부딪쳤다. 강솔은 상대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먼저 사과했다.“죄송합니다.”“아, 진짜 아파 죽겠네.”설현은 등을 문지르며 몸을 돌렸다. 조금 전까지 설현은 엘리베이터를 등지고 서 있었다.“왜 이렇게 급하게 걸어와? 이건 밥 두 끼는 사 줘야 낫겠다.”‘설현이?’강솔은 잠깐 멈칫했다.강솔은 설현이 크게 다친 데는 없는지 살피면서 물었다.“왜 아직도 여기 있어?”“하늘 씨가 돌아왔어.”설현은 등을 문지르던 손을 내리며 이유를 설명했다.“이따가 네가 혼자 들어가면 하늘 씨가 또 이것저것 캐물을까 봐, 그냥 같이 들어가려고 기다리고 있었지.”둘이 같이 늦게 들어가면 어디 가서 놀다 왔나 보다 하고 넘길 수 있었다.강솔이 혼자 들어가면, 지난번 일만 봐도 하늘은 분명 신나서 물고 늘어질 게 뻔했다. 쓸데없는 말은 덜 듣는 편이 나았다.“고마워.”강솔이 짧게 말했다.“뭘 그런 걸 다.”설현은 강솔과 나란히 방으로 걸어가며 물었다.“아까 왜 그렇게 급했어? 하 대표님이랑 싸웠어?”“싸운 건 아니야. 그냥 몇 가지는 서로 생각이 너무 달라서 얘기가 안 됐어.”강솔은 더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자기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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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5화

중현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전신에서는 이상하리만치 잔잔한 기운이 흘렀고, 강솔의 물음 앞에서도 중현은 담담하게 한마디만 내놓았다. “아직 위험한 상태야.”“의사 선생님들은 뭐래?” 강솔은 HS그룹 산하 개인 병원을 신뢰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의사들이 모여 있었다. “뭐 때문에 알레르기가 온 건지, 증상은 어떤지 들었어?”“아직 치료하라고 허락하기 전이야.” 중현의 시선이 강솔에게 머물렀다.강솔은 중현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말이야?”중현은 말을 바꿔 꺼냈다. “지안이가 위험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는... 네가 내 곁으로 돌아올 마음이 있느냐에 달렸어.”강솔은 굳어 버렸다.곧이어 중현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알아들었다.“당신 미쳤어?” 강솔은 이번엔 정말 화가 났다. 중현이 아이 일을 가지고 이런 식으로 말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안이도 당신 아이잖아. 당신은 지안이한테 무슨 일 생길까 봐 무섭지도 않아?”“그래서 문 열어 두고 네가 올라오길 기다린 거야. 네 대답 들으려고.” 중현은 너무도 고요하게 그런 말을 했다.강솔은 멍해졌다.강솔의 머릿속에서는 일이 빠르게 맞물렸다.‘선생님은 아마 먼저 지안 아빠에게 연락했을 거야.’강솔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바로 올라와 중현을 찾을 거라는 점도, 중현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문을 열어 둔 채 이 자리에서 조건을 내건 것이었다.“다시 들어와서 내 아내 자리로 돌아오겠다고 해. 그러면 바로 치료 지시 내릴게.” 중현은 강솔 얼굴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느릿한 말투였지만, 강솔을 짓누르는 힘은 컸다. “아니면 지안이 운명은 그냥 내버려두는 거고.”강솔은 억지로 숨을 고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당신은 그럴 사람 아니잖아.”중현은 냉정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지안이한테만큼은 늘 잘해 왔다.지안이 아버지인 중현이 이런 식으로 일을 밀어붙일 리 없었다. 아이를 그런 위험 속에 내버려둘 리는 더더욱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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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6화

“하중현!”강솔은 이번엔 정말 다급해졌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당신은 아이를 가지고 딜을 해? 지안이가 정말 당신 아이 맞아요?”“치료 시작해.” 중현은 아직 끊지 않은 통화 너머로 말했다. “위험한 고비 넘기면 바로 나한테 연락해.”주승현이 답했다. “알겠습니다.”통화가 끊겼다.방 안에는 중현과 강솔만 남았다.중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열려 있던 문을 닫았다. 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협의서를 집어 강솔 앞으로 내밀었다. “이제 서명해.”강솔은 중현을 바라봤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낯설었다. 이제는 정말 알아볼 수조차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이 사람... 어떻게 이토록 매정할 수 있지?’지안의 상태가 저 지경에 이르렀데도,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있다는 게 강솔은 믿기지 않았다.“여기 서명해도 난 당신을 용서 못 해.” 강솔 안에서 중현을 향한 미움은 이미 한계까지 차올라 있었다.“용서받는 건 중요하지 않아.” 중현은 펜을 강솔에게 내밀었다. “내가 원하는 건 너 스스로 내 곁에 남는 거야.”“이건 자발적으로 남는 게 아니잖아.”“네가 받아들이면 그게 자발적인 거지.”강솔의 눈가에는 거센 감정이 출렁였다. 강솔은 중현이 점점 더 낯설었다.중현은 여전히 펜을 내민 채였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10초 안에 서명해. 안 그러면 바로 메시지 보내서 치료 중단시킬 거야.”강솔은 중현 손에 들린 펜을 낚아채듯 가져왔다. 곧바로 서류 위에 자기 이름을 써 내려갔다.찌익-힘이 너무 들어간 탓에 이름의 마지막 획이 종이를 찢어 버렸다.탁!강솔은 펜을 탁자 위에 세게 내던지듯 내려놓았다. 중현을 바라보는 강솔의 눈에는 적의와 거부감만 가득했다. “이제 됐어?!”중현은 방금 서명된 협의서를 집어 들었다. 반듯하게 적힌 두 글자를 확인한 중현은 마음속 깊이 눌러앉아 있던 돌덩이가 조금씩 내려앉는 걸 느꼈다.“이런 건 법적 효력이 없으니까 서명해 봤자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거지?” 중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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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7화

“내 옆에 두고 이혼만 못 하게 하는 거지, 자유까지 막은 건 아니야.”중현이 차분하게 설명했다.강솔은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이혼도 못 하게 하고, 소아연까지 책임지는 걸 받아들이게 하면서 자유를 막은 게 아니라니... 나에게는 다를 게 하나도 없는데.’“이건 원래 주인한테 돌려주는 거야.”중현이 품에서 한도 없는 블랙카드를 꺼내 강솔에게 내밀었다.“카드 디자인만 새로 바꿨어. 이 카드는 소아연이 손도 안 댄 거야.”예전의 강솔이었다면,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챙긴 점에 마음이 움직였을지도 몰랐다.지금 강솔 머릿속에는 지안 상태가 대체 어떤지, 알레르기 유발 식재료는 이미 다 전달해 뒀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그 생각뿐이었다.그러다 문득 뭔가가 스쳤다.강솔은 갑자기 중현을 밀어내며 거리를 벌렸다. 눈빛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작은 짐승처럼 바짝 날이 서 있었다.“지안이 알레르기, 당신이 일부러 시킨 일이야?”미리 준비해 둔 협의서.병원에서 일부러 지안의 치료를 미루게 만든 일.강솔이 직접 찾아오길 기다리며 판을 깔아 둔 것 같은 상황.하나하나 짚어 보면, 강솔로서는 이 일에 중현이 아무 관련 없다고 믿기 어려웠다.“아니야.”중현은 군더더기 없이 바로 대답했다.강솔이 다시 물었다.“정말 아닌 거 맞아?”“아니야.”강솔은 일단 중현의 말을 믿기로 했다. 이런 일에 중현이 거짓말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다.강솔의 감정이 서서히 가라앉는 걸 확인하자, 중현은 대부분의 사람이 한 번쯤은 꺼낼 법한 말을 입 밖으로 냈다.“네 마음속의 나라는 인간은... 지안이 목숨으로 장난칠 사람으로 보였어?”“조금 전엔 지안이 목숨 들먹이면서 날 압박한 거 아니었어?”강솔이 되물었다. 방금 한 일도 잊어버리다니,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 기억력은 참 대단하다고 강솔은 비꼬고 싶었다.중현은 얇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변명하지도 않았다.지안이 위험에 빠졌을 때, 중현 역시 강솔만큼이나 마음을 졸였다.다만 그 말은 강솔에게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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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8화

그때, 중현은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이따가 어린이한테 써도 되는 화장품으로 지안이 피부를 방금 알레르기 올라온 것처럼 만들어주세요.”중현이 사람들에게 지시했다.“입술은 좀 더 하얗게 보이게 하고, 이마에는 미스트를 뿌려서 물방울이 맺힌 것처럼 해주세요.”사람들은 잠깐 말을 잃었다.의아하긴 했지만, 사람들은 결국 중현의 지시대로 움직였다.그래서 조금 전 강솔이 본 광경이 만들어졌다.그 일을 떠올리던 중현은 강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어 아까 강솔이 던졌던 질문에 답했다.“그래, 들먹이긴 했어. 이번 한 번만.”지안의 목숨을 걸고 강솔을 흔들었다는 걸 순순히 인정하는 태도였다. 강솔은 그제야 더 분명히 알았다. 중현은 정말 이 일 앞에서 독하게 마음먹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그래야만 강솔이 아무 미련 없이 중현 곁을 떠나지 못할 테니까.“돌아가면 화인게임즈 일은 그만둬도 돼.”중현은 강솔이 조금은 편하게 지냈으면 했다. 밤새워 가며 영혼을 갈아 넣듯 일하는 걸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그 정도 돈 때문에 강솔이 그렇게까지 애쓰는 건 전혀 값어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하지만 일은 강솔에게 삶을 살아가는 버팀목이었다.강솔은 곧장 발끈했다.“당신이 무슨 권리로?”중현은 되묻지도 못한 채 잠깐 말을 멈췄다.강솔이 왜 화를 내는지, 중현은 처음으로 바로 짚지 못했다.“카드 줬잖아. 그걸로 마음대로 쓰면 돼.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시간을 굳이 일에 묶어 둘 필요 없잖아.”“꿈도 꾸지 마. 이 일 절대 안 그만둬.”강솔은 중현이 건넨 협의서를 홱 집어 들었다. 감정이 올라온 탓에 손끝에도 힘이 잔뜩 들어갔다.“여기 어디에도 내가 일하면 안 된다는 조항은 없어.”일을 그만뒀다가 다음번에 또 크게 부딪히는 날이 오면, 중현이 높은 자리에서 내려다보듯 말할 게 뻔했다. 네가 먹는 것, 쓰는 것, 입는 것 전부 내가 번 돈이라고. 그 말을 들어도 강솔은 반박조차 못 하게 될 터였다.‘같은 데서 두 번은 안 넘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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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9화

강솔은 심장이 조이던 마음을 끝내 놓지 못했다.중현 정도 되는 사람이면 일의 전말을 밝혀내는 건 어렵지 않을 터였다. 그래도 지안은 말 그대로 큰 고비를 한 번 넘긴 셈이었다. 아직 후유증이 남을지 아닐지도 알 수 없었다.“지안이는 원래 건강해. 별일 없을 거야.”중현은 강솔 불안을 알아차리고 곁으로 다가와 강솔을 끌어안았다.강솔은 재빨리 중현을 밀어냈다.중현을 바라보는 눈에는 혐오가 가득했다.아이 목숨이 걸린 일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듯한 태도에, 강솔은 본능적으로 메스꺼움과 거부감부터 치밀었다.“네가 나랑 닿기 싫어하고, 나를 역겨워하고, 증오하는 거 이해해.”중현은 시선을 곧게 맞췄다. 숨이 막힐 만큼 짓눌러 오는 기세가 온몸을 감쌌다.“그래도 네가 방금 사인한 협의서는 잊지 마.”강솔 몸이 굳었다.중현은 강솔 앞으로 다가섰다. 몸을 숙인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서로 얼굴에 난 잔잔한 솜털까지 또렷하게 보일 정도였다.“지안이는 아직 병원에 있어. 내 기분이 상하면, 아들이 거기서 멀쩡히 걸어 나오지 못할 수도 있어.”“또 뭘 하려고!”이번에는 강솔도 정말 두려웠다.중현이 제정신을 놓을까 봐 두려웠고, 목적을 위해서라면 아이한테도 무슨 짓이든 할까 봐 두려웠다.“내가 뭘 할지는 네가 내 말을 듣느냐에 달렸어.”중현은 강솔 손을 끌어와 제 손안에 넣었다. 엄지로 천천히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내 아내 노릇만 제대로 해. 그러면 아들은 아무 일도 없어. 안 그러면, 지안이 몸에 뭐 하나 더 들어가게 하는 것도 난 상관없어.”짝!강솔 손바닥이 중현 뺨을 세게 후려쳤다.있는 힘을 다해 때린 탓에, 중현 뺨에는 금세 다섯 손가락 자국이 붉게 떠올랐다.강솔은 온몸에 분노를 두른 채 중현을 노려봤다. 이를 악물고 한 글자씩 내뱉었다.“당신... 사람 맞아?”“맞을 수도 있지.”중현은 그 말을 그대로 받아냈다.“아닐 수도 있고.”강솔만 곁에 붙잡아 둘 수 있다면.강솔 눈에 자신이 천하에 죽일 놈으로 비쳐도 중현은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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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0화

중현은 전화를 끊자마자 곧바로 영상통화를 걸었다. 지안이 정말로 위험한 고비를 넘긴 걸 직접 확인하고 나서야, 강솔은 팽팽하게 조여 있던 마음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지안이 안전한 건 확인했으니까, 이제 내려가서 짐 가져와야지.”중현은 핸드폰을 거두며 말했다. 서늘한 기운이 밴 압박감이 다시 강솔을 덮쳐 왔다.강솔은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다른 사람들에게 강솔과 중현 관계를 알리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일이 여기까지 온 이상, 강솔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중현은 지안이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걸 보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강솔이 말을 듣지 않으면, 중현은 정말로 그 끔찍한 짓을 저지를 가능성이 컸다.강솔은 아이의 목숨을 담보로 중현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됐다.“나랑 약속 하나만 지키면 돼.”강솔이 입을 열었다.중현은 내내 흔들림이 없었다.“말해.”“앞으로 내 일에 간섭하지 마. 그리고 회사에서는 당신이랑 나 관계 공개하지도 말고.”강솔은 오랫동안 애써 쌓아 올린 결과가 끝내 ‘빽’이라는 말로 뭉개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강솔 가치를 중현과의 관계로 설명하게 두고 싶지 않았다.“첫 번째는 괜찮아.”중현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시선은 강솔에게 머물러 있었다.“두 번째는 안 돼.”강솔이 물었다.“왜?”중현이 되물었다.“내가 그렇게 내세우기 부끄러운 사람이야?”강솔은 더 말하고 싶은 마음조차 사라졌다.중현은 끝까지 몰랐다.강솔이 왜 회사에서 이 관계를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강솔도 알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강솔도, 그 사람들도 결국 서로의 인생에서 스쳐 지나갈 거라는 걸. 그래도 어렵게 실력으로 얻어 낸 자리였다. 그런데 끝내 ‘사모님이 심심해서 회사 생활 체험하러 왔네’ 같은 말로 남는 건 견딜 수 없었다.그런 말은 보이지 않는 데서 강솔 자체를 지워 버릴 테니까.“네가 내려가기 싫으면, 내가 가서 가져올게.”중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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