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Chapter 211 - Chapter 220

225 Chapters

제211화

주현우의 달콤한 말에도 허아연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믿지도 않았다.그저 할아버지한테 혼나서 하는 소리겠거니 했다. 두 손으로 주현우의 가슴을 밀어내려는 찰나, 주현우가 갑자기 허아연 어깨에 턱을 살며시 얹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나랑 오지은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야."잠깐 멈칫하던 주현우가 덧붙였다."오씨 집안에 신세진 게 있어."주현우의 해명에 잠시 침묵하던 허아연이 입을 열었다."주현우 씨, 오지은이 돌아오기 훨씬 전부터 우리 사이에는 이미 문제가 있었어요."그 말에 주현우는 허아연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조금 지친 듯 부드럽게 말했다."그럼 우리 다시 시작하자."다시 시작하자고?3년을 노력했고 3년을 실망했다. 이제는 몸도 마음도 다 지쳐버리고 우울증까지 왔는데 어떻게 다시 시작한단 말인가.감정에 쏟을 에너지가 남아 있지도 않았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었다. 조용하고 단순한 삶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랐다. 더 이상 자질구레한 귀찮은 일들에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너무 지쳐서 더 이상 애쓰고 싶지 않았다.허아연은 주현우의 말에 답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주현우 씨, 나는 이제 되돌아갈 수 없어요."주현우가 피식 웃었다."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허아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무 피곤했다. 그저 푹 자고 싶고 일에만 집중하고 싶고 제품이 빨리 시장에 나오기만을 바랐다. 그렇게 잠시 주현우의 품에 안겨 있던 허아연이 슬며시 빠져나왔다.방으로 돌아가는 허아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주현우는 의외로 차분했다.오예은이든 오지은이든, 아니면 허아연 마음속에 있던 다른 누구든 다 과거일 뿐이었다. 주현우와 허아연이 부부라는 것만이 현실이고 현재 진행형이었다. ……방으로 돌아온 허아연은 샤워를 마치고 주민경에게 방금 일을 털어놓았다.전화기 너머에서 주현우의 대처를 전해 들은 주민경은 책상을 탁 치더니 언성을 확 높이며 소리쳤다."역시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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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2화

그래도 결국 전화를 받고 다정하게 물었다."무슨 일이에요?"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듣기 좋은 허아연의 목소리에 주현우는 통유리창 앞으로 걸어가 옆 서랍장에서 담뱃갑을 꺼내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이어 담뱃갑을 내려놓고 라이터를 들어 불을 붙였다.담배를 길게 한 모금 빨아들이자 입술 사이로 연기가 천천히 새어 나왔다."아직 야근 중이야?"그때 허아연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나 이사했어요."담배를 피우던 주현우는 순간 멈칫하더니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낀 채 그대로 입 가까이에 굳어버렸다.한동안 그렇게 멈춰있던 주현우는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겨우 한 모금 피운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껐다.담배 생각이 사라졌다.새것과 다름없는 담배를 몇 토막으로 부러뜨려 재떨이에 쑤셔 넣었다.주현우는 오른손에 휴대폰을 바꿔 쥐고 왼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조용히 마당을 바라봤다.전화기 너머에서 한동안 아무 말이 없자 허아연이 전화를 끊으려는데 주현우가 마당을 바라보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피식 웃었다."이사 축하해."이어서 또 웃으며 말했다."주소가 어디야? 집들이 축하하러 가야지."이렇게 오랫동안 꾹 참으며 화도 내지 않고 오히려 이사 축하한다는 말을 하는 주현우는 조금 의외였다. 이미 트집 잡으면 맞서 싸울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어쩌면 주현우도 사실 오래전부터 같이 살기 싫었는데 허아연이 눈치도 없이 아레아 베이에서 계속 버티고 있었던 걸지도 몰랐다.휴대폰을 들고 창가로 걸어간 허아연은 왼팔을 가슴 앞에 모으고 건물 아래로 보이는 야경을 바라봤다."감사하지만 집들이는 괜찮아요."담담한 허아연의 말에 주현우는 아직 이혼한 게 아니라고 화를 내고 싶었다. 하지만 요즘 두 사람이 이혼 문제로 너무 많이 부딪혔던 게 떠올라 마음을 진정시켰다. 지금 허아연은 오로지 이혼에만 집착하고 있으니 잠시 떨어져 지내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눈에 띄지 않게 잘 살펴보다가 가끔 마주치면 되는 거였다.이렇게 계속 싸우다가는 허아연이 정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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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3화

그냥 허아연을 막지 않은 것뿐이었다. 또 이 일로 싸우기도 싫었고 두 사람 사이가 더 틀어지는 것도 바라지 않았다.주현우가 말없이 술만 마시는 걸 보던 전서진이 말했다."잠깐 떨어져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아. 잠깐 헤어지면 더 그리운 법이잖아."전서진의 말에 심유환이 고개를 들어 주현우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하지만 현우야, 아연이랑 제대로 잘살아 볼 건지, 아니면 다른 생각이 있는 건지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해.""지금 허아연 태도를 너도 봤잖아. 예전에 하던 걸 상상하면 안 될 거야. 이것도 갖고 싶고 저것도 가지려고 해서는 안 돼. 오지은이랑도 확실히 정리해야지."심유환의 말에 주현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내가 오지은이랑 뭐가 있겠어. 오예은 대신 오씨 가문 챙겨주는 것뿐이야."주현우가 오예은 얘기를 꺼내자 전서진도 따라 웃으며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아무리 닮았어도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이어 전서진이 바로 말을 덧붙였다."그래도 오지은이랑은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 해."전에 주현우가 오예은과 사귀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주씨 집안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허락할 리도 없었고 다들 미래가 없다는 걸 알았기에 굳이 얘기하지도 않았다.사실 벌써 몇 년이나 지났으니 이제는 내려놓을 때도 되었다.게다가 몇 년 동안 오씨 가문을 챙겨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전서진의 권고에도 주현우는 아무 말 없이 술잔을 들었다. 오예은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절뚝거리며 필사적으로 구조 요청하러 다니던 모습이 떠올랐다.그리고 오예은은 그렇게 조용히, 아무도 귀찮게 하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심장은 오지은에게 남겨준 채.주현우는 술잔을 무심히 손에 든 채, 전서진과 심유환이 계속 내려놓으라고 권고하는 동안에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뒤로 며칠간 주현우는 허아연에게 연락하지 않았다.그러던 어느 날 오전, 프로젝트 업무 보고가 있었다. 프로젝트 투자자 대표로서 주현우는 스타라이트 테크에 회의하러 방문했다. 손꼽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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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4화

주현우의 말에 허아연이 고개를 돌려 뒤를 살폈다. 한민규 일행이 아직 오지 않은 걸 확인하고는 결국 차에 올라탔다.뒷문이 잠겨 있어 조수석에 탈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주현우가 미리 노린 것 같았다.차 문을 가볍게 닫고 안전벨트를 매자 차가 천천히 출발했다.핸들을 왼쪽으로 꺾어 도로에 진입한 주현우가 허아연을 슬쩍 보며 느긋하게 물었다."나가서 사니까 마음이 편해?""네." 허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훨씬 편해요."잠시 말이 없던 주현우가 말했다. "며칠 있다가 기분 풀리면 돌아와. 아레아 베이가 얼마나 살기 좋아."환경만 놓고 보면 산과 물이 어우러진 아레아 베이가 쾌적한 건 사실이었다.다만 사는 게 편한지 불편한지는 어디 사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결국 누구와 함께 사느냐에 달려 있었다. 아레아 베이로 돌아오라는 주현우의 말에 허아연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볼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힘들게 나왔는데 다시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마이바흐가 식당 야외 주차장에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바로 지일우가 예약해 둔 룸으로 들어갔다.식당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는 동안 허아연은 가슴 앞에 팔을 포개고 있었다. 경계하는 자세였다.마치…… 주현우가 옆에 없는 것처럼 혼자 온 사람 같았다. 룸에 들어서니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았고 지일우는 먼저 주문을 하러 나간 상태였다.입구 쪽 자리를 골라 앉은 허아연은 핸드폰을 꺼내 뉴스를 봤다.주현우는 허아연의 오른쪽에 자리를 잡았다.앉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심유환에게서 온 업무 전화였다. 주현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 쪽으로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5~6분 후 전화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니 한민규와 다른 투자자들이 들어왔다.룸에 들어선 사람들은 대주주 격인 주현우가 테이블 끄트머리에 앉아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주 대표님, 여기 앉으시면 어떻게 해요. 상석에 앉으셔야죠! 이러면 저희가 어떻게 앉겠어요?""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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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5화

유건희의 말에 다들 빠르게 자리에 앉았다. 지일우도 주문을 마치고 들어왔다.잠시 후 직원들이 음식을 내오기 시작했다. 유건희가 먼저 투자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프로젝트를 지지해 준 것에 고마움을 표했다. 평소 직설적인 유건희였지만 그래도 나름 격식을 차린 편이었다.딱 그 정도일 뿐 더 이상 격식을 차리는 말은 하기 힘들었다. 인사가 끝나자 사람들은 다시 일 얘기를 이어갔다. 연말 전에 제품을 출시하는 것과 관련한 것이었다. 설 연휴 수요를 노려볼 수 있었다.투자자들은 유건희와 프로젝트팀에 맡기겠다고 했다.주현우는 별다른 의견을 내지 않았다. 이 프로젝트에 투자한 건 허아연 때문이었고 허아연이 자본을 등에 업고 팀에 합류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사람들이 얘기를 나누는 동안 주현우는 허아연을 꽤 살뜰히 챙겼다. 가끔 반찬을 집어주며 신경을 써줬다.허아연은 그 모습에도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한창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을 때, 테이블 위에 놓인 주현우의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휴대폰이 두 사람 사이에 놓여 있던 터라 주현우가 고개를 숙여 확인할 때 허아연도 무심코 힐끗 쳐다봤다.별생각 없이 봤을 뿐 바로 시선을 거뒀다.그런데…… 저장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오지은이었다.오지은 전화인 걸 확인한 주현우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오지은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성대 테크에서 기술 전시회가 있는데 오지은은 주현우를 초대하고 싶었다. 마침 성대 테크 대표와 함께 있는 지금 빨리 답을 주고 싶었다. 두 번째 전화에도 주현우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또 끊었다.주현우가 다시 휴대폰을 들다 실수로 허아연을 살짝 건드렸다. 허아연이 자연스럽게 눈길을 돌리자 주현우는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허아연은 신경 쓰지도 않고 고개를 숙인 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계속 밥을 먹었다.다만 예전에 허아연이 주현우에게 연달아 두 번씩 전화를 걸었다면 아마 바로 차단당했겠지. 주현우가 전화를 받지 않자 얼마 후 오지은에게서 짧은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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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6화

권승준이었다!권승준의 전화라는 걸 알아차린 순간 허아연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 벌떡 일어나 앉으며 바로 업무 모드로 전환했다."비서실장님, 안녕하세요. 지금 바로 답변 가능해요. 제품 관련해서 불편하신 점이나 궁금한 점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전화 너머에서 허아연의 목소리가 확 달라지는 걸 듣자마자 권승준이 웃음을 터뜨리더니 부드럽게 말했다."허 선생님, 방금 스타라이트 로봇을 좀 살펴봤는데요. 기능이랑 사용법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요.""시간 되면 한번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가능하면 직접 현장에 와서 조작하면서 가르쳐주면 더 좋을 것 같아요."권승준은 고위직이다 보니 평소에 결정을 내리는 것 외에 일상적인 것들은 다 비서들이 대신 처리해 줘서 스마트폰 앱 기능도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게 많았다.업무가 워낙 바쁘다 보니 전자기기를 연구할 시간이 없었다.권승준의 말을 들은 허아연이 말했다."그럼 주소 보내주시면 제가 직접 가서 시스템 업그레이드까지 해드릴게요. 그게 사용하는데 훨씬 편하실 거예요."전화로 설명하다 보면 결국 영상 통화까지 하면서 설명해야 했다. 게다가 체험에 투입된 동안 시스템 업그레이드도 이뤄진 터라 직접 방문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그게 서로 시간도 아끼고 허아연도 현장에서 바로 의견을 물어보고 기록할 수 있었다.허아연과 한민규는 체험 중인 다른 사용자들도 이런 식으로 대응했다. 특히 나이 있는 어르신들 댁에는 여러 번씩 다녀온 곳도 있었다.전화기 너머에서 권승준이 웃으며 말했다."번거롭게 하게 됐네요. 주소 보내줄 테니 차량 번호 보내줘요. 경비실에 미리 얘기해 둘게요.""네, 알겠습니다."권승준과 통화를 마친 허아연은 자신의 차량 번호를 보냈다.얼마 후 준비를 마치고 권승준의 아파트 단지에 도착하니 경비원이 차량 번호를 확인하고는 바로 들여보냈다. 권승준은 권씨 가문 본가가 아닌 교진시 행정 업무 구역 근처의 한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었다.단지가 무척 조용했고 조경도 아주 잘 가꿔져 있었다.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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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7화

권승준이 다가오며 말했다."일단 찾아봐야 해요. 갈아신지 말고 그냥 들어와도 돼요."현관 신발장을 뒤적이던 권승준이 말했다."죄송해요, 허 선생님. 이런 건 평소에 아주머니가 정리하거든요. 그냥 들어와요."허아연이 정중하게 물었다."그럼 양말만 신고 들어가도 괜찮을까요?"권승준이 피식 웃었다."허 선생님, 그렇게까지 예의 차리지 않아도 돼요."허아연의 성격을 아는 권승준은 계속 신발장을 더 뒤져 한 번도 신지 않은 것 같은 남성용 오픈토 슬리퍼를 꺼내 내밀었다."허 선생님, 이건 어때요? 한 번도 신지 않았을 거예요." "좋아요. 감사합니다, 비서실장님."사용자 집을 방문할 때면 허아연과 한민규는 늘 예의를 지키고 최대한 불편을 끼치지 않으려 했다.권승준이 건네는 슬리퍼를 받아 갈아 신은 허아연은 거실로 따라 들어갔다.막 포장을 뜯었는지 로봇 옆에 포장 박스가 그대로 놓여 있고 테이블 위에는 리모컨과 부품들이 흩어져 있었다.권승준 나름대로 이것저것 만져본 것 같았다.로봇 앞으로 다가간 허아연이 먼저 전원을 켜고 권승준에게 말했다."비서실장님, 배터리가 거의 없네요. 먼저 충전부터 할게요."그리고 설명을 이어갔다. "이 로봇은 스타라이트 최신 무선 충전 기술을 적용했는데 유선도 동시에 사용 가능해요. 최근에 시스템 업그레이드도 했으니 지금 업그레이드해 드릴게요. 그러면 앞으로 훨씬 편하게 쓰실 수 있어요."허아연의 말을 듣던 권승준이 물었다."허 선생님, 시스템 업그레이드하는 동안 잠깐 자리를 비워도 될까요?""부품 조립하고 업그레이드까지 하면 삼십 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먼저 다른 일 보셔도 돼요. 삼십 분 후에 기능 사용법 설명해 드릴게요.""알겠어요, 수고해요. 여기 차랑 과일 있으니까 편하게 들어요.""감사합니다, 비서실장님."허아연은 곧바로 바닥에 쪼그려 앉아 권승준이 뜯어놓은 부품들을 조립하고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진행했다.로봇 키가 80센티미터밖에 안 되다 보니 쪼그려 앉아서 작업해야 했다.테이블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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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8화

허아연이 꼼꼼하게 설명을 이어가자 권승준이 물었다."요리도 돼요?""네. 주방을 먼저 인식시켜 주면 있는 재료로 알아서 레시피를 검색해서 요리해요. 메뉴도 거의 겹치지 않게 해줘요. 드시고 싶은 게 있으면 미리 입력해 두면 요구대로 해줘요.""사용하는 데 편하도록 직접 이름을 지어주셔도 좋아요. 나중에 직접 바꾸실 수도 있고요.""키도 자동으로 조절할 수 있어서 집안일 종류에 따라 맞춰서 조절해요."허아연이 말하며 로봇을 조작했다. 로봇은 바로 키와 체형을 조절하더니 순식간에 동글동글 귀여운 모양에서 성인 크기로 변했다.권승준은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볼 정도였다. 마치 SF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비록 일찍이 온갖 첨단 기술과 군사 시연, 작전 무기까지 이미 익숙할 만큼 봐왔지만 막상 자기 집 거실에서 로봇이 모습을 변형하고 첨단 기술이 일상의 구석구석에 녹아든 모습을 보는 건 또 달랐다. 권승준은 솔직히 감탄했다.거기에 로봇을 능숙하게 조작하는 허아연을 보니 더 놀라웠다.이렇게 어린 데다 그것도 여자가 기술 분야에서 이런 재능을 갖고 있다니.앞으로의 허아연의 행보가 가정용 로봇이나 생활용 제품에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산업용 프로젝트나 더 중요한 분야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권승준이 놀라워하는 사이 허아연이 말을 이었다."비서실장님, 산책도 같이 다닐 수 있어요. 방어 기능도 꽤 강력하고요."허아연의 말이 끝나자 권승준이 말했다."허 선생님, 정말 너무 놀랍네요."허아연은 정말 예상 밖의 사람이었다. 허아연의 특허가 없었다면, 허아연이 가정용 로봇 프로젝트에 합류하지 않았다면 스타라이트 제품이 이렇게 완성도 높은 최첨단 제품이 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유건희가 사람 보는 눈이 정확했다. 허아연을 스타라이트에 영입한 건 앞으로 스타라이트를 새로운 단계로 이끌어갈 선택이 될 것이다.놀라는 권승준의 말에 허아연이 웃으며 말했다."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인류 기술 발전 속도가 워낙 빠르잖아요. 무선 전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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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9화

권승준의 말이 맞았다. 실제로 설명도 다 끝내지 못했고 아직 권승준의 의견도 물어보지 못한 상태였다.허아연이 깍듯하게 말했다."비서실장님께 폐 끼치게 됐네요."권승준을 따라 식탁으로 향하자 권승준이 의자를 빼주며 부드럽게 말했다."허 선생님, 앉아요.""감사합니다."허아연이 자리에 앉자 권승준이 부엌으로 음식을 가지러 갔다.그 모습에 허아연이 바로 다시 일어섰다."비서실장님, 제가 도와드릴게요."권승준이 갈비찜과 나물 반찬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웃으며 말했다."허 선생님, 너무 예의 차리지 않아도 돼요. 도울 것도 없으니 편하게 앉아 있어요."말을 마친 권승준은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 생선찜과 냉채를 더 내왔다.마지막으로 향긋한 삼계탕을 들고 나왔다. 소박하지만 먹음직스럽고 오감을 자극하는 가정식이었다.아침을 굶은 허아연은 음식 냄새를 맡자 허기가 지며 식욕도 돌았다.권승준이 삼계탕을 떠서 건네며 부드럽게 말했다."허 선생님, 자기 집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먹어요.""감사합니다."두 손으로 권승준이 건네는 국그릇을 받아 든 허아연이 조금 놀란 듯 물었다."이거 다 비서실장님이 직접 하신 거예요?"권승준이 맞은편에 앉으며 미소를 띤 채 말했다."솜씨가 뛰어나진 않아요, 그래도 맛있게 먹어줬으면 해요.""충분히 먹음직스러워 보여요. 비서실장님처럼 대단하신 분이 직접 요리도 할 줄은 몰랐어요." 권승준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아무리 고위직이라고 결국은 감정도 욕심도 다 있는 평범한 사람이에요. 평소엔 바쁘니까 주말에 가끔 직접 요리하면서 나름 스트레스 해소해요."숟가락으로 삼계탕을 한 입 떠서 맛을 본 허아연이 말했다. "국물이 진짜 향긋해요, 맛도 있고요." 삼계탕이 향긋하고 맛잇다는 허아연의 칭찬에 권승준의 표정이 더 환해지더니 젓가락을 들어 갈비찜을 한 점 집어줬다."허 선생님, 갈비도 먹어봐요.""감사합니다."권승준이 차린 음식이 적지 않았고 양도 충분했다. 허아연은 사양하지 않고 평소처럼 밥을 두 공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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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0화

오늘 성대 테크가 기술 전시회를 열었는데 몇 번이나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것이다. 오지은도 오늘 꽤 주목을 받아 역시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을 올렸다. 네티즌들은 오지은을 진짜 여신이라느니, 완벽한 이상형이라느니 칭찬을 늘어놓으며 띄워댔다.집안도 좋고 예쁜 데다가 저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오지은을 보면 부끄러워진다며 저렇게 잘나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오지은도 여론 분위기에 맞춰 기술 전시회에 참석해 기술을 설명하는 사진 여러 장을 올렸다.오늘은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원피스 차림이었다. 첨단 기술과 우아한 스타일의 조합이라며 오지은을 좋아하는 남자 팬들은 오지은 SNS에 "여보"라는 댓글을 달고 난리였다. 단체방 대화 내용을 간단히 훑고 성대 테크의 메인 제품들을 살펴본 허아연은 단톡방을 나와 핸드폰을 내려놓고 일을 시작했다.요즘 실험실에 드나드는 일이 많고 제품도 체험 단계에 접어든 터라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넘쳤다.그래서 요즘은 논문을 쓰고 있었다.얼마나 지났을까, 한창 집중해서 쓰고 있는데 마우스 옆에 놓인 핸드폰이 진동했다.주현우에게서 온 전화였다.화면에 뜬 이름을 봤지만 허아연은 전화를 받았다.허아연은 전화가 온 걸 보고도 안 받는 경우는 없었다.통화가 연결되자 주현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본가에 밥 먹으러 가자. 데리러 갈게."허아연이 컴퓨터 화면 속 논문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야근 중이에요, 혼자 가요.""앞으로 밥 먹으러 가자는 연락은 안 해도 돼요."어차피 이미 이혼 예정이라는 걸 다들 알고 있는 상황에 같이 본가로 돌아가 밥이라도 먹으면 어르신들이 또 기대를 품을 게 뻔했다.주현우와 다시 잘 해볼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다. 합의서를 건넨 순간부터 두 사람은 되돌릴 수 없었다.그러니 어르신들을 괜히 건드리는 일은 하지 않는 게 나았다.이어 허아연이 부드럽게 말했다."지금 논문에 작업이 잘 되는 중이니 이만 먼저 끊을게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현우가 대답하기도 전에 허아연이 전화를 끊었다.거짓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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