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Chapter 341 - Chapter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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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1화

그 말을 듣던 전서진이 불쑥 주현우의 말을 끊고 말했다."아연이가 너를 떠나서 더 잘 살 수도 있지 않을까? 경주 그룹 나와서 스타라이트에 입사해서 이미 자기 능력을 증명했잖아.""특허 기술 현금화에 프로젝트 담당자인 데다 스타라이트 고급 기술직까지 맡고 있어. 시 고위 임원들과 전문가들 모두 아연이를 눈여겨보고 있는데 올해 이제 겨우 스물넷이야." "아연이 잠재력은 무한대야. 일에만 전념하면 앞으로 우리 둘보다 훨씬 큰 성과를 낼 거고 사회 기여도도 우리 같은 건 감히 비교도 안 될 거야."주현우는 허아연이 자신을 떠나면 더 잘될 거라고 말하는 전서진을 싸늘하게 바라보았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전서진이 말했다."내가 하는 말이 다 사실인 거 너도 알잖아. 아연이 머리 좋은 것도 알잖아."전서진의 말이 끝나자 주현우는 무덤덤하게 시선을 거두고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사실 여전히 이혼은 하고 싶지 않았다.담배를 끈 오른손을 거두는데 주현우의 양복 안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심드렁하게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보니 강유미의 전화였다.태연하게 전화를 받자마자 곧바로 강유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도련님, 집에 불이 났어요. 불길이 엄청나요."주현우가 미처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강유미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저희가 자고 있는데 갑자기 불이 났어요. 사모님, 사모님이 2층에 혼자 있어요."강유미의 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주현우는 전화를 끊자마자 차 키를 챙겨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그 모습에 전서진도 바로 따라 일어섰다."왜 그래?"얼굴이 잔뜩 굳은 주현우가 성큼성큼 걸어 나가며 말했다."유미 이모가 집에 불이 났대."말을 마친 주현우는 곧바로 119에 전화를 걸었고 주소를 얘기하자 상담원이 말했다."이미 신고 접수돼서 소방대원이 출동 중입니다."주현우 뒤를 빠르게 따라가던 전서진도 덩달아 긴장해서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멀쩡하던 집에 왜 불이 나? 이 날씨에……"전서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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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2화

주현우는 죽을힘을 다해 몸부림치며 안으로 뛰어들려 했지만 예닐곱 명의 어른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전서진도 옆에서 잡으며 진정하라고 다독였다. 하늘이 허아연을 보살펴주고, 부모님과 할아버지가 지켜주실 거라고 말했다.어딘가에 몸을 숨겼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한 시간 뒤, 불길은 소방대원들에 의해 진압되었다. 아직 돌아가지 않은 사람들이 몇몇 남아 있었다. 다행히 별장들 사이 거리가 멀어서 주현우네 건물 외에 다른 집에는 불길이 번지지 않았다.동시에 허아연을 제외한 집 안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탈출한 상태였다.소방대원들은 누전으로 인한 화재로 추정했다. 그 말을 들은 강유미는 그 자리에서 목 놓아 울음을 터뜨리며 며칠 전부터 집 전기가 이상했는데 자신이 대수롭지 않게 넘긴 탓에 불이 난 거라고 자책했다.주민경은 화재를 진압한 소방대원이 안에 불 탄 시신 한 구가 있다는 말에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지금도 병원에서 깨어나지 못한 상태였다.법의학 감정실 앞, 주현우는 긴 의자에 앉아 고개를 떨구고 허리를 굽힌 채 두 손을 꽉 맞잡고 있었다. 밤새 단 한 번도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주현우가 앉아있던 바닥은 어느새 흠뻑 젖어버렸다.벽에 기댄 채 옆에 서 있는 전서진은 조금 전 울어서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주건영과 박민정은 아레아 베이에 불이 나서 허아연을 구하지 못했다는 소식에 한 사람은 정신을 잃고 한 사람은 병이 도져 버렸다. 울면서 구급차와 함께 병원으로 향한 유서희는 가는 내내 자신들이 허아연에게 죄를 지었다며 자책했다.애초에 꺼내지 말았어야 할 혼사였고, 주현우의 스캔들 뒷수습을 허아연한테 시키지 말았어야 하고, 좀 더 허아연 편을 들어줬어야 했다며 가슴을 쳤다. 주현우를 좀 더 압박해서 일찍 이혼시켰더라면 허아연이 이 화를 피했을지도 몰랐다. 지금 주씨 가문은 완전히 아수라장이었다. 평소 가장 침착하던 주석진마저 어쩔 줄 몰라했다.계속 자신이 무능력했다며 좀 더 빨리 주현우를 압박해서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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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3화

법의관의 최종 확인에 주현우는 잔뜩 지친 얼굴로 초점을 잃은 채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심유환이 얼른 잡았다."나랑 준서가 들어갈게. 넌 이따 서명만 해."법의관이 이미 신원과 사망 경위를 상세히 확인해준 데다 시신은 두 사람의 신혼 침실에서 수습된 것이었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그러니 주현우가 직접 보러 들어가는 건 너무 큰 충격을 줄 수 있으니 안 보는 게 나았다.주현우가 심유환의 손을 뿌리치며 잠긴 목소리로 힘없이 말했다."내가 보고 올게."사실 봐도 알아볼 수 있는 게 없었다.결국 다 함께 들어갔고 나올 때는 모두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주현우가 서명을 마치자 전서진 일행은 곧바로 장례 준비에 나섰다.허민수와 허아연 두 사람이 두 달도 채 안 되는 사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병실 안. 주현우가 보러 갔을 때 주민경은 식음을 전폐한 채 말없이 침대에 멍하니 앉아있었다.병상 옆 의자를 당겨 앉고 한참 침묵하던 주현우는 주민경을 보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내일 아연이 장례식이야. 마음 좀 추스르고 있어."주현우의 말에 깨어난 뒤로 줄곧 말이 없던 주민경이 그제야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현우 오빠, 오빠 아연이 목숨 구해준 적 있잖아. 아연이가 이제 그 목숨 다시 오빠한테 돌려준 거야."주민경은 주현우를 원망하고 있었다. 허아연과 결혼해놓고 잘해주지도 않고 그러면서 또 이혼도 안 해준 걸 원망했다. 두 가지 중 하나라도 제대로 했더라면 허아연이 이런 결말을 맞지 않았을 것이다.주민경의 비난에 주현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단 한 번도 허아연이 그 목숨값을 갚기를 바란 적이 없었다.하지만 주민경의 말을 반박하지 않았다. 반박할 자격조차 없었다.아무 말도 없는 주현우를 보던 주민경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연이도 갔으니까 이제 마음 편히 오지은 만나겠네. 마음 편히 오지은과 결혼해서 당연하다는 듯이 첫사랑 집안까지 챙기겠네.""축하해, 주현우."주민경의 비난에 주현우가 담담하게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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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4화

옛 전우인 허민수를 볼 면목이 없어서였다.주민경은 방에 들어가 베개를 끌어안고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허아연이 떠났다. 이제 다시는 허아연을 만날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퇴원한 허아연을 본가로 끌고 왔어야 했다.그랬다면 화는 피할 수 있었을 텐데.하지만 이제와서 만약이라는 게 무슨 소용일까. 주현우도 본가 방에 틀어박힌 채 허아연이 아직 곁에 있던 시절 지난 일들을 곱씹고 있었다.허아연의 사진이라도 좀 찾아보려 했지만 두 사람은 웨딩 사진도 찍은 적이 없었다.결혼 생활 삼 년 동안, 혼인증명서 한 장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결혼식은커녕, 주현우가 제대로 해준 건 하나도 없었다.장례식 다음 날, 변호사가 주현우에게 전화를 걸어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주 대표님은 허아연 씨의 유일한 재산 상속인입니다. 허아연 씨 절차에 대표님 서명이 필요합니다."주현우가 입을 열기도 전에 변호사가 덧붙였다."전에 대표님이 허아연 씨한테 준 주식과 자산 외에도 허아연 씨는 본인 명의 부동산이 두 곳 있어요. 하나는 허씨 가문 본가이고 하나는 최근에 마련한 집이에요.""그리고 현금 예금도 52억 원 있는데 다 서명 처리하셔야 해요."책상 앞에서 주현우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힘없이 말했다."알겠어요. 이건 나중에 다시 얘기하죠.""네, 대표님. 그래도 최대한 빨리 처리하셔야 합니다."그 말에 주현우는 더 이상 대꾸 없이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곧이어 휴대폰을 책상 위에 툭 던져놓고 손을 올려 이마를 짚었다.허아연에게 주었던 재산이 고스란히 다시 돌아오고 허아연 집안의 재산마저 자기 손에 들어올 줄은 전혀 생각지 못한 전개였다. 의자에 머리를 기댄 채 천장을 올려다보던 주현우는 문득 앞으로의 날들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함께 학교 다닐 때 지난 시절 일들을 떠올렸다.그때 누군가 주현우의 방문을 거칠게 두드렸다.주현우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문 쪽을 바라보는데 주민경이 잔뜩 화난 얼굴로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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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5화

허아연이 태어나서 20년을 살았던 곳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그러나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예전에 허아연이 늘 반갑게 뛰어나와 맞아주고 허민수가 자상한 얼굴로 인사를 건네던 모습을 떠올리자 주민경은 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아연이가 없다.이제 아연이가 없다.마당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서니 사방이 한없이 고요했다. 새소리와 바람에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래층을 한 바퀴 둘러본 주민경은 다시 2층으로 올라가 허아연의 방으로 향했다.허아연이 주현우와 결혼하기 전, 두 사람은 자주 이 침대에 나란히 누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하지만 허아연의 인생은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허무하게 끝나버렸다.침대 머리맡 책장 앞에 선 주민경은 책장 위 책들을 바라보며 오른손으로 조심스레 쓸어내리고 나직이 말했다."아연아, 너무 보고 싶다."아연이가 떠난 지 겨우 일주일인데 몇 겁의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몇 년은 못 본 것 같았다.붉어진 눈시울로 책장 위 사진을 바라보던 주민경은 목이 메어왔다.손끝으로 사진 속 허아연을 어루만지다 앞으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또 눈물이 났다.아직 한창 젊은데 하늘은 왜 기회 한 번을 안 준 걸까? 다른 사람들은 다 빠져나왔는데 왜 아연이만 못 빠져나오게 했을까?그때 침실 문이 다시 열리자 고개를 돌린 주민경은 주현우를 발견했다. 주민경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여긴 뭐 하러 왔어?"주현우는 말 없이 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주민경의 손에 들린 액자를 본 주현우는 참지 못하고 몇 번이나 바라보다가 옆에 놓인 다른 사진들도 살펴보았다.주현우, 전서진, 심유환, 하준서도 있었다. 허아연은 몇 안 되는 친구들을 무척 소중히 여겼었다.주민경은 서글픈 눈빛의 주현우를 흘겨보고는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옆에서 허아연의 책장을 살펴보던 주현우는 일기장에 시선이 닿자마자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꺼내 들었다.일기장을 펼쳐보니 안의 내용은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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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6화

그러니까 '결혼은 겉모습일 뿐, 사랑은 마음속에 있다'던 그 말은 주현우가 아닌 큰형인 주진우와 결혼할 뻔했을 때 감정을 적은 거였다고?허아연이 짝사랑했던 사람은 줄곧 주현우였다.주현우가 삼 년 내내 허아연이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냉대한 것이었다. 결국 그 오해가 허아연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왜 말을 안 했냐고?" 주현우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그 모습에 주민경이 돌아보며 물었다."뭘 말 안 했다는 거야?"주현우가 노트를 든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아연이가 나 좋아했다는 거, 왜 말을 안 한 거야?"주현우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주민경이 목소리를 높였다."아연이 원래 부끄러움 많은 애야. 당연히 오빠 좋아하니까 오빠랑 결혼했지, 아니면 왜 결혼했겠어? 지금까지 계속 오빠가 아연이를 안 좋아한 거잖아."주민경의 비난에 주현우는 노트를 든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몰랐어. 아연이가 나 좋아하는 줄 몰랐어. 난 그냥……"주현우는 말을 하다 말고 멈춰버렸다. 정말 허아연이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서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주현우의 말에 화가 치민 주민경이 싸늘하게 쏘아붙였다."오빠는 오예은과 오씨 집안 말고 아는 게 뭐가 있어? 오빠는 애초에 아연이와 함께할 자격도, 아연이한테 사랑받을 자격도 없는 사람이야.""현우 오빠, 나 평생 오빠 용서 안 할 거야. 아연이 대신 평생 오빠를 원망할 거야."말을 마친 주민경이 액자를 다시 책장에 올려놓으려는데 주현우가 노트를 빼냈던 책장에서 진료 기록 두 장이 툭 떨어졌다. 고개를 숙이고 진료 기록을 펼쳐보던 주민경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우울증?허아연은 이미 2년 전부터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그런데 단 한 번도 주민경에게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지난번 신체화 증세가 나타나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이 얘기는 하지 않았다.허아연의 진료 기록을 보던 주민경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주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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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7화

의사의 말에 주민경이 다급하게 말했다."아연이 상태를 좀 알고 싶어서요."프라이버시 때문에 의사가 말해주지 않을까 걱정된 주민경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전 아연이 제일 친한 친구예요. 지난주에 세상을 떠났는데 자세한 정황을 알고 싶어서요."주민경의 말에 의사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더니 말했다."환자분이 돌아가셨다고요?""네, 지난주에 떠났어요."거듭된 주민경의 말에 의사는 놀라면서도 이미 예상했다는 듯 큰 동요는 없는 표정이었다. 의사는 마흔이 넘어 보이는 선한 인상의 중년 남성이었다. 주민경은 착잡한 듯 시선을 떨구는 의사를 보며 말했다."아연이가 너무 갑자기 떠났어요. 저희는 아연이가 오래전부터 우울증이었는지도 몰랐어요. 그러니까 상황 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알고 싶어서 그래요."말을 하는 주민경의 눈시울이 다시 붉어졌다.자신이 제대로 지키지 못한 탓 같았다. 허아연과 그토록 친했으면서 결혼 후 행복하지 않다는 걸 알고도 심한 우울증일 거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좀 더 일찍 알아챘더라면 허아연의 인생이 달라졌을지도 몰랐다.주민경의 격한 반응에 의사가 한숨을 내쉬더니 손에 든 진료 기록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이 환자분은 우울증 앓은 지 2년이 넘었어요. 작년부터 신체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주로 위 통증으로 나타났죠.""최면 치료를 진행하면서 내면 깊은 곳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어요. 그 결과 결혼 생활로 인한 우울증이라고 거의 특정할 수 있었죠." "치료 시작하고 반년 뒤에도 호전되지 않고 오히려 점점 심해지길래 결혼 생활을 마무리하고 환경을 바꿔보라고 권했었어요. 그런데 환자분이 미련이 남았는지 계속 애쓰고 노력하시더라고요.""얼마 전에 드디어 마음을 정리했는지 이혼 얘기를 꺼냈다고 하셨는데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을 줄은 몰랐네요."남매가 입을 열기도 전에 의사가 다시 말했다."환자분 지능이 아주 높고 똑똑하셨는데 정말 안타깝네요."의사는 허아연의 이전 치료 기록을 찾아 주민경에게 보여주며 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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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8화

주현우는 후회가 되었다. 평생 후회할 것이다.자신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던 허아연의 노트를 떠올린 순간, 주현우는 무언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처럼 숨이 턱 막혀 한동안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주차장에 도착한 뒤, 쓸쓸한 주현우의 옆모습을 보던 주민경이 문득 돌아서서 담담하게 말했다."현우 오빠, 아연이는 오빠한테 오해받고 오빠 때문에 병이 난 거야. 아연이가 이제 없으니까 마음이 편해?"이런 말로 주현우를 자극하려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허아연이 3년 동안 겪었을 괴로움과, 두 사람이 함께 건강 검진을 받으러 갔을 때 종양이 있다고 했던 의사의 말, 그리고 허아연의 우울증, 지난 몇 년간 주현우의 지나친 냉대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주현우의 마음을 도려내서라도 괴롭게 만들고 싶었다.게다가 이 정도 괴로움이 허아연의 병이나 목숨과 비교할 수라도 있을까? 허아연이 체면 때문에 하지 못했던 말을 주민경이 대신 해준 셈이었다.주민경의 비난에도 주현우는 등을 돌린 채 차 문 손잡이를 잡고 한참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끝내 돌아서지도, 반박하지도 않았다.주현우가 차 문을 열고 올라타더니 아무 말 없이 차를 몰고 떠나는 걸 보던 주민경도 눈시울이 붉어졌다.허아연이 떠났다.주현우는 앞으로 더 이상 편히 지내지 못할 것이다.주현우의 차가 병원을 빠져나가는 걸 지켜보던 주민경은 그제야 고개를 돌리고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주현우에게 화풀이를 했는데도 여전히 마음이 괴로웠다. ……주현우는 두 손으로 핸들을 잡은 채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 운전하는 중에 휴대폰이 몇 번이나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허아연은 병이 난 뒤에도 주현우를 볼 때마다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허아연이 계속 진지하게 얘기 좀 나누자고 부탁했지만 주현우가 응하지도 않고 기회도 주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차가 허씨 본가 앞에 멈췄다. 주현우는 본가를 돌아보았지만 이제 다시는 웃으며 뛰어나와 반겨줄 허아연이 없었다.눈시울이 붉어진 주현우는 자신이 나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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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9화

마치 허아연이 떠나지 않은 것처럼.명절 때마다 주민경은 생화를 챙겨 허아연과 허민수의 묘원을 찾곤 했다. 그녀만의 방식으로 허아연과 함께 하며 그리워했다.……2년 뒤.어두컴컴한 하늘에서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주현우는 허아연의 묘비 앞에 이미 한참을 서 있었다. 지난 2년 동안 틈만 나면 어김없이 허아연을 보러 오곤 했다. 옆에서는 기사가 아무 말없이 우산을 받쳐주고 있었다.그때 통화를 마친 오원빈이 빗속을 뚫고 빠르게 뛰어와서 말했다. "대표님, 발표회 곧 시작합니다. 지금 안 가시면 지각하실 수도 있어요." 오원빈이 말한 발표회는 교진시와 강성시의 첨단 기술 협력 발표회였다. 강성시에서는 지방 정부 연구소 외에 동승 그룹도 협력에 참여했다.이 회사는 강성시 정부와 현지 최대 기업 가문인 안씨 가문이 공동 지분을 소유한 기술 연구 개발 기업이었다.정부는 투자와 자원 유치를 담당하고 경영은 주로 안씨 가문이 하고 있었다. 연구 개발은 안씨 가문 둘째 딸이 전담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었다.안씨 가문 두 남매 중 첫째 안서준은 올해 30살, 둘째 안시연은 25살로 자동화 전공 박사 학위를 갖고 있었고 제어 시스템, 산업용 로봇 등의 분야에도 조예가 깊었다.안서준은 금융과 경영에 능했고 안시연은 기술형 인재였다.남매 모두 보기 드문 인재였다.오원빈의 말에 주현우는 묘비 위 사진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아연아, 먼저 일하러 가야 해. 며칠 뒤에 또 보러 올게."사진 속 허아연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마치 이 세상에 있을 때 무척 행복했던 것처럼.차가 시내로 돌아가는 동안 주현우는 고개를 숙여 손에 든 서류를 훑어보았고 오원빈은 몸을 틀어 곧 있을 발표회 얘기를 끊임없이 전했다.지난 2년 동안 경주 그룹은 기술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가정용 로봇과 무선 전력 프로젝트 외에도 스타라이트 테크와 두 건의 프로젝트를 추가로 협력했다.경주 그룹은 자체 연구소도 세워 해외에서 전문 인재를 대거 영입해 왔다.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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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0화

주변에는 온통 셔터 소리뿐이었다.세상에 둘도 없는 풍채를 가진 남자였다. 안서준에 대해서는 다들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일 처리가 과감하고 빈틈이 없기로 유명했으며 강성시에서는 안서준을 함부로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다. 젊은 나이에 능력이 출중하고 일 처리가 과감하고 대담해서 안씨 가문 어르신이 일찍 모든 실권을 넘겼다고 전해졌다. 게다가 외모까지 출중한데 아직 미혼이라는 것이다. 평소 스캔들 하나 없었고 남매 사이도 무척 좋았다. 성큼성큼 무대로 걸어가자 아래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는데 강성시 지도부보다도 인기가 더 많아보였다. 객석 뒤쪽에서는 젊은 여성들이 눈을 반짝이며 강성시가 실력파 다이아몬드 싱글남을 하나 배출했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무대 중앙에 선 안서준은 사람들의 뜨거운 반응에 미소를 머금었다. 한 손은 등 뒤로 하고 한 손으로 마이크를 잡은 채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지도부 여러분, 각 기업 책임자 여러분, 그리고 업계 전문가와 기술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교진시에 오게 되어 무척 기쁘고 교진시 정부와 협력을 맺고 신형 에너지, 반도체, 무인 주행 기술 등 첨단 기술을 공동 연구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앞으로 5년 계획에서 동승 그룹은 강성시를 대표해……"안서준이 무대에서 발표하는 동안 사람들은 아래에서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안서준을 눈여겨보던 전서진과 심유환이 귓속말을 주고받았다."강성시가 이번에 진짜 물건을 보냈네. 안서준한테 여동생이 하나 있다던데 전문 분야에서 탑이래." "안시연이라고 나도 들어본 적 있어. 동승 그룹 연구 개발 쪽을 주로 맡고 있다던데 남매 둘 다 되게 조용한 성격인가 봐.""안서준 얼굴이 저 정도면 안시연도 나쁘지 않을 거야.""언젠가 볼 기회가 있겠지."……열한 시쯤, 발표회가 마무리되었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교류하는 동안, 안서준은 강성시 지도부의 안내를 받으며 교진시 지도부와 인사를 마치고 구석을 향해 손을 흔들어 세련되고 당당한 분위기의 여성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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