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Chapter 361 - Chapter 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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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1화

"그 프로젝트는 장 팀장이 맡고 있어. 문제 있으면 그 사람과 얘기해, 처리해줄 거야."전화기 너머 오지은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며 서운한 목소리가 이어졌다."현우야, 왜 이렇게 차가워? 나 다른 뜻 없어. 우리 이제 친구도 못해? 그리고 아연이가……"오지은이 허아연 얘기를 꺼내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현우는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지금 주현우에게 오씨 가문은 다른 기업들과 다를 바 없었다. 철저히 업무 관계만 유지하며 불이익을 주거나 특별 대우하지도 않았다.처음 반년 동안은 오지은도 몇 번이나 소동을 벌이며 병원을 들락거렸다.하지만 주현우는 신경 쓰지 않았다.그 뒤로는 오지은도 건강해져서 2년 가까이 병원 놀음을 하지 않았다.……저녁 6시, 주민경이 잔뜩 풀이 죽은 채 돌아왔다.주민경은 힘없이 소파에 털썩 앉아 널브러진 쿠션을 끌어안으며 말했다."호텔에서 하루 종일 죽치고 있었는데도 안시연 씨 코빼기도 못 보았어. 호텔 직원한테 방 번호랑 연락처 좀 달라고 했더니 특별 고객이라 안 된다는 거야. 내가 주씨 집안 딸이라고 해도 안 통해."말을 마친 주민경이 또 비꼬듯 덧붙였다."동승 그룹 딸이 나보다 콧대가 더 높네."그때 유서희가 부엌에서 반찬을 들고 나오며 말했다."올라가서 네 오빠 밥 먹으라고 불러."유서희의 말에 주민경은 안고 있던 쿠션을 던지고 위층으로 올라가 주현우를 불렀다.그날 밤 주현우는 자기 아파트로 돌아가지 않고 본가에 머물렀다.본가에는 아름다운 추억이 많이 남아 있었는데 대부분이 허아연과 관련 있었다.오원빈이 허아연을 조사했지만 수상한 점은 나오지 않았고 주현우도 더는 캐묻지 않았다.주민경처럼 매일같이 일부러 허아연을 뒤쫓아 다니거나 일상을 방해하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은 안시연일 뿐, 허아연이 아니었다. 목요일이 되자 스타라이트 테크는 강성시 정부 인사와 동승 그룹을 초청해 연구소 견학을 준비했다. 동시에 주현우를 비롯한 투자자들에게도 초청장을 보냈다.주현우도 시간을 따로 비워두었다.동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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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2화

주민경의 확신에 차분하던 주현우의 마음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감히 더 방해할 수 없었다.2년 전 허아연을 떠나보낸 주현우는 누구보다도 안시연을 방해하는 게 두려웠다.진실을 낱낱이 밝히고 싶었지만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2년 전의 비극이 또 다시 반복된다면 살아갈 의미조차 없을 것 같았다. 오전 11시가 넘어 차가 연구소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보안 검사를 거치고 단지에 들어선 뒤로 주민경의 시선은 허아연에게 고정된 채 1초도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오늘 이곳에 온 건 오로지 허아연 때문이었다.허아연도 이미 진작부터 주민경의 시선을 알고 있었다. 사실 오전에 회의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미 느끼고 있었다.다시 교진시로 돌아오면서 만나기 가장 두렵고 긴장되었던 상대가 바로 주민경이었다. 다행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둔 덕에 침착함을 유지하며 빈틈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었다.허아연은 일행을 따라 연구소로 들어가 지일우와 한민규의 설명을 들으며 안서준 옆에서 걷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새 옆에 다가와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주민경을 무심코 발견하고 말았다. 깜짝 놀란 허아연은 순간 얼굴빛이 확 바뀌었다.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웃으며 물었다."주민경 씨, 왜 그래요?"주민경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아니요, 그냥 친구 하고 싶어서요."주민경의 말이 끝나자 주현우가 정색하며 말했다."민경아, 이리 와."주민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허아연을 보며 말했다."안시연 씨, 우리 연락처 교환할 수 있을까요?"허아연이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나중에 드려도 될까요? 지금은 다들 견학하는 데 방해될 것 같아서요.""네, 네, 그럼요."연신 알겠다며 답을 하고 나서야 주민경은 주현우 곁으로 돌아갔다.뒤에서 몰래 조사하는 주현우와 달리 주민경은 거침없는 직진형이었다.잠시 뒤, 허아연이 예전에 맡았던 가정용 로봇 프로젝트 견학까지 마치고 잠시 쉬는 사이 주민경은 결국 허아연의 연락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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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3화

안서준도 주현우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하지만 주민경 앞에서는 허아연이 빈틈을 드러낼까 봐 걱정되었다.허아연이 빈틈을 보이거나 주씨 가문과 얽히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게 아무리 죄 없는 주현우의 여동생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안서준의 당부에 허아연이 부드럽게 답했다."알아요, 거리 둘게요.""여기 일 다 끝나면 되도록 빨리 돌아갈게요."자신의 뜻을 이해해주는 허아연을 보며 두 사람이 같은 마음이라는 걸 느낀 안서준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일 너무 무리하지 마. 네가 잘 쉬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일정이나 진도에 쫓길 필요 없어."허아연이 병원 치료를 받으러 갈 때 함께 간 적 있는 안서준은 신체화 증상이 나타나면 움직이거나 말할 수도 없어서 집에서 치료에 전념했다는 말에 다시 교진시로 돌려보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적어도 주씨 가문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말이다. 게다가 우울증이 이렇게 심한 환자는 처음이었다.그래서 지난 2년 동안 안서준은 부모님과 함께 허아연을 극진히 돌봐왔다. 걱정하는 안서준의 말에 허아연이 웃으며 말했다."알아요, 몸이 먼저고 휴식이 먼저죠."허아연의 말에 안서준이 오른손을 들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허아연이 그 손을 살며시 떼어내며 말했다."시간도 늦었으니 얼른 돌아가서 쉬어요.""그래." 안서준은 부드럽게 대답하고 허아연의 스위트룸을 나갔다.안서준이 나가는 걸 지켜보던 허아연은 조용히 문을 닫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휴대폰을 들자 화면에는 여전히 주민경의 SNS 피드가 떠 있었다.화면을 닫으려는 순간 주민경에게서 내일 같이 밥을 먹자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허아연은 웃는 얼굴로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주민경이 사무치게 그립고, 꼭 안아주고 마음속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결국 꾹 참고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거절했다.그 뒤로도 주민경이 몇 번이나 약속을 잡으려 했지만 허아연은 매번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침대에 엎드린 채 꼼짝 않고 허아연이 보낸 답장을 보던 주민경은 서운해졌다.그렇게 아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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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4화

몇 차례 교류 이후, 동승 그룹의 경영진과 기술진은 스타라이트 테크와 경주 그룹에 더 마음이 기울었다.그러나 주현우에 대한 편견 때문에 안서준은 협력 얘기를 꺼내지 않고 아직 지켜보는 중이라고만 말했다.그 사이 오성 그룹은 몇 번이나 몰래 동승 그룹의 다른 책임자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협력 기회를 얻으려 했다. 다른 책임자들은 오지은과 오중근 부녀를 만나주었지만 안서준은 만나주지 않았다.당연히 협력은 성사되지 않았다.……그날 오전, 다시 안서준에게 문전박대당한 오지은은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휴대폰을 들고 몇 번의 회의에서 찍힌 허아연의 사진들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안시연이 허아연을 닮았다는 얘기는 진작 전해 들은 적 있었다. 그동안 닮았다는 말만 들었던 오지은은 사진을 확인한 순간, 찬물을 뒤집어쓴 듯 얼어붙었다. 쌍둥이인 오지은과 오예은 자매보다 더 빼다 박은 쌍둥이 같았다. 숨을 꾹 참고 있던 오지은의 휴대폰을 쥔 오른손 손등에 핏줄이 불거졌다.주현우는 분명 당장이라도 안시연이라는 여자와 엮이려고 미친 듯이 애쓰고 있을 것이다.오예은이 떠났을 때도 이렇게까지 감정 변화나 흰 머리가 몇 가닥 없었다. 하지만 허아연이 떠나고 2년 만에 새까맣던 머리가 거의 다 하얗게 세어버렸다.주현우가 정말 오예은을 좋아하기는 했는지 저도 모르게 의심이 들었다.허아연의 사진을 꼼짝 않고 노려보던 오지은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이 여자가 진짜 안시연이라고? 허아연 그때 진짜 죽은 거 맞아?"주현우 마음도 얻지 못했는데 안시연까지 나타나자 오지은은 크게 당황했다.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만약 안시연이 허아연과 아무 관계도 없다면 자신이 주현우의 죽은 아내를 닮았다는 걸 본인은 알고 있을까?올해 스물여덟이 된 오지은은 오랜 세월 기다려온 주현우를 그 누구에게도 쉽게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교진시의 귀한 손님이면 어때서? 미간을 찌푸리던 오지은의 머릿속에 다시 일을 벌일 꿍꿍이가 떠올랐다.……경주 그룹.주현우가 막 외근에서 돌아오자 오원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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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5화

작년에 출시한 반도체는 해외의 내로라하는 기업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전혀 밀리지 않았다.그러나 안시연만큼은 다른 문제였다. 주현우는 여전히 정말 허아연인지 아닌지 알아볼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 그냥 답을 알고 싶을 뿐 다른 목적은 없었다.주현우의 지시에 오원빈은 바로 움직였다.호텔에서는 강성시 정부 인사들이 왜 경주 그룹과 협력하지 않느냐고 안서준을 설득하고 있었다. 경주 그룹은 자금력이든 기술력 모두 뛰어나지만 자금력이 특히 좋다고 했다. 또한 이건 단순한 사업상의 협력이 아니라 양측 지역의 대외적 태도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허아연은 옆에서 정부 인사의 말을 들으며 아무 말 없이 지켜보기만 할 뿐 의견을 내지 않았다.한바탕 논리를 펼치던 정부 인사가 허아연을 돌아보며 물었다."시연 씨, 제 분석이 맞지 않나요?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허아연이 노트북을 무릎에 올린 채 안서준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답했다."저는 오빠 뜻대로 할게요."정부 인사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자 안서준이 차를 음미하더니 웃으며 말했다."진 부장님, 경주 그룹과 협력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에요. 단지 기술 분야에 뛰어든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지켜보는 중이에요.""기술 분야에 뛰어든 지는 얼마 안 되지만 작년 경주 그룹의 반도체 성과는 세계적으로 화제였잖아요. 저는 경주 그룹 대표인 주현우 씨를 믿습니다. 현지 정부 인사도 주현우 씨를 아주 높이 평가하고 강력히 추천하고 있고요."정부 인사의 말이 끝나자 노크 소리와 함께 비서가 안서준 방으로 들어와 보고했다."대표님, 경주 그룹에서 내일 저녁 낙원 호텔에서 대표님과 시연 씨를 모시고 저녁 식사를 하고 싶다고 초대하셨어요.""진 부장님께도 초대장이 가실 거예요."안씨 남매가 답을 하기도 전에 정부 인사가 대신 답했다."내일 시간 맞춰 갈 수 있으니 좋은 교류의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전해요."정부 인사의 말에 안서준은 고개를 든 채 싸늘하게 바라볼 뿐이었다.안서준의 싸늘한 표정을 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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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6화

"아직도 못 잊었어?"안서준의 물음에 허아연은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단호하게 답했다."아니에요."잊을 수는 없는 건 당연했다. 어릴 때부터 20년이 넘게 함께 자라며 알고 지냈으니까. 다만 잊지 못했을 뿐, 다른 감정은 남아 있지 않았다.남보다도 못한 사이였다.허아연의 단호한 눈빛에 안서준은 엄지로 턱을 가볍게 쓸며 부드럽게 말했다."아연아, 난 네가 같은 실수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 2년 전에 목숨 걸고 도망쳐 나온 만큼 확실히 알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시연이의 전철을 밟는 건 더더욱 원치 않아."안서준의 당부에도 허아연의 눈빛은 여전히 단호했다."알아요, 오빠."오빠라는 호칭에 안서준은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평소 둘만 있을 때는 절대 오빠라고 부르지 않았고 남들 앞에서만 부르는 허아연이었다. 잠시 멈칫한 안서준은 손끝으로 자기 입술을 한 번 스치고는 손을 거두었다.그리고 책상 앞에 앉아 다시 일을 시작했다.두 사람 각자 자기 할 일에 몰두했다.……정부 인사가 대신 경주 그룹의 초대를 수락한 탓에 다음 날 저녁 안서준은 결국 허아연을 데리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검은 정장 차림에 머리를 뒤로 넘긴 안서준은 처음 왔을 때보다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껄렁한 멋도 조금 더해졌다.오늘 밤 흰색 원피스 차림의 허아연은 부드러우면서도 아름다웠다.남매가 룸에 들어섰을 때는 사람들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주현우와 강성시 정부 인사 외에 전서진과 심유환도 와 있었다.주민경도 와 있었다.허아연이 들어오자 가장 흥분한 주민경이 다가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시연 씨, 왔네요. 이제 귀찮게 안 할 테니 연락처 또 차단하지 말아줘요."허아연은 살갑게 다가오는 주민경을 보며 여유롭게 웃었다."알겠어요."주민경은 당당하고 여유로운 허아연을 자리에 앉히고 주스도 따라주고 간식도 챙겨주었다. 여자친구를 챙기는 남자친구도 이정도로 살뜰하기 힘들 것이다. 상석에서 가깝게 앉아있는 주민경과 허아연을 지켜보던 주현우는 안서준이나 다른 정부 인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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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7화

주민경은 말문이 막혔다.안서준이 되묻자 주민경은 그제야 괜한 말을 해서 주현우의 아픈 상처를 사람들 앞에서 들춰낼 뻔했다는 걸 깨달았다. 생각에 잠긴 얼굴로 안서준을 보며 뭐라 답할지 고민하던 주민경 대신 전서진이 웃으며 분위기를 수습했다."부부 사이에 약간의 갈등이 있기 마련이죠. 현우가 아연이를 너무 사랑해서 집착이 좀 심했던 거예요.""뭐, 지난 일은 지난 일이니까요. 아연이가 정말 잠깐 몸을 숨겨서 두 사람이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현우가 분명 오해도 다 풀고 아연이의 지금 삶도 진심으로 축복해줄 겁니다."비즈니스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전서진은 확실히 노련했다.그건 허아연에게 들려주는 말이기도 했다.허아연이든 아니든 틀린 말이 아니니까. 전서진은 말을 하는 내내 살폈지만 허아연은 남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무덤덤하게 듣기만 했다. 주현우가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미련이 심하다는 전서진의 말에 허아연은 속으로 헛웃음이 나왔다. 주현우가 제일 사랑한 건 주현우 본인 뿐이었다. 차라리 허아연에게 상처를 주면서 오해에서 비롯된 분풀이를 할지언정 해명을 들으려거나 대화를 나누려고도 하지 않았다.주현우가 사랑한 건 오예은이지, 단 한 번도 허아연이 아니었다.다들 참 그럴싸하게 포장하네. 다시 지난 일을 떠올려봐도 이미 전생의 기억처럼 아득했다. 험난했던 순간은 다 흘러갔으니까. 전서진이 수습하는 걸 본 주민경은 감탄하면서도 주현우를 너무 미화한다고 생각했다.주현우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아연이한테 상처만 준 사람이었다. 주현우만 아니었으면 아연이도 병나지 않았을 것이다.허아연이 떠난 지 2년이나 지났지만 주민경은 여전히 주현우를 용서할 수 없었다. 허아연의 죽음이 주현우와 무관하다는 걸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주현우는 모든 책임을 벗어던질 수 없었다. 전서진이 수습하자 안서준이 더 환하게 웃으며 눈썹을 치켜올리고 말했다."주 대표님이 이렇게 순정파일 줄은 정말 몰랐네요. 와이프 분이 철이 없으셔서 장난이 심하셨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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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8화

주현우가 오늘 이곳에서 식사 약속이 있다는 걸 미리 알고 일부러 이곳에서 약속을 잡은 오지은이었다. 동승 그룹과 협력 얘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소문으로만 듣던 안시연이 허아연과 대체 얼마나 닮았는지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오지은의 부탁에 주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안씨 남매는 너를 알지도 못하는데 굳이 인사할 것도 없어. 협력하고 싶으면 너희 아버지한테 사람 찾아서 알아보라고 해."안시연이 정말 허아연인지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주현우는 오지은이 또 설쳐대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주현우의 거절에 웃음기 어렸던 오지은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갔다.입술을 앙다물고 주현우를 한참 노려보던 오지은이 입을 열었다."현우야, 꼭 이렇게까지 매정하게 굴어야겠어? 예은이한테 했던 약속도 다 소용없는 거야?""사실 너도 알잖아, 내가 협력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라……"오지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현우가 말을 끊었다."업무 때문이 아니면 더더욱 들어갈 필요 없어. 안씨 가문은 협력 얘기 나누러 온 거지 놀러 온 게 아……"주현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번엔 오지은이 말을 끊고 물었다."너 예은이 사랑하기는 했어?"주현우는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오지은을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오지은이 이어서 말했다."예은이 죽고 나서는 바로 결혼했으면서 허아연이 죽고 나서는 1년 만에 머리까지 하얗게 세어버렸어. 심지어 예은이한테 줬던 반지까지 도로 가져갔잖아.""주현우, 예은이 사랑하지 않았으면 왜 고백을 받아준 거야? 예은이 부탁은 왜 들어줬어? 그래 놓고 이제는 우리 집안 나 몰라라 팽개치고 나는 또 왜 이렇게 오랫동안 기다리게 한 건데?"여전히 물러서지 않는 오지은을 보면서도 주현우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오지은, 난 너한테 어떤 약속도 한 적 없어. 그리고 다른 건 네가 나한테 얘기할 자격도 없어."오성 그룹을 돌봐준다고 한 약속은 허아연이 떠나기 전에 이미 지켰었다.지금의 오성 그룹을 더 이상 돌봐줄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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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9화

허아연이 통화를 다 마치고 다시 걸어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먼저 룸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주현우도 룸으로 돌아갔다.허아연과 주현우가 눈앞에서 멀어지는 걸 지켜보던 오지은은 갑자기 피식하고 자조적인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방금 주현우 무슨 뜻이었을까? 오지은이 안시연을 귀찮게 할까 봐 견제한 걸까?몇 번 보지도 않은 사람을 저렇게까지 감싼다고?두 사람이 들어간 룸을 노려보는 오지은의 눈이 분노로 시뻘게졌다.……룸 안에서 차례로 들어오는 허아연과 주현우를 본 안서준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다시 주현우를 붙잡고 술을 냅다 마시기 시작했다. 밤 10시가 넘어 자리가 파할 무렵 안서준과 주현우 모두 적잖이 취해 있었다. 그동안 이렇게까지 취한 건 처음이었다.안서준이 안시연의 오빠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아니면 이렇게까지 체면을 봐주지도 않았을 것이다.사람들이 룸을 나서고 있을 때도 정부 인사는 계속 안서준을 붙잡고 경주 그룹이나 주현우나 다 괜찮으니 성사시킬 만한 협력이라며 설득했다. 안서준이 고려 중이라고 하자 정부 인사는 아예 다실을 하나 더 예약하더니 두 사람을 데리고 갔다. 얘기를 더 나누게 하려는 것이었다.정부 인사는 오늘 밤 식사 자리에서 경주 그룹과의 협력을 확정 짓는 게 목적이었지만 안서준이 좀처럼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이런 식이면 돌아가서 보고하기도 곤란했다. 정부 인사가 여전히 두 사람을 잡고 얘기하자 더 이상 시간 낭비하기 싫었던 허아연은 안서준에게 다가가 나직이 말했다."오빠, 난 아직 처리할 일이 남아서 먼저 호텔로 갈게요."안서준이 얼굴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말했다."그래, 먼저 가서 쉬어."안서준의 다정한 손길에 주현우의 눈빛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상대가 정말 허아연인지 아직 확신할 수 없었지만 안서준의 손짓이 거슬렸다.안서준의 손을 살며시 감싼 허아연은 바로 떼어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당부했다."네, 오빠도 일 끝나면 일찍 호텔 돌아가요."허아연은 말을 마치고 나서야 안서준의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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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0화

그때 입구에 있던 직원들은 분명 주현우가 허아연을 끌어당기고 허아연의 도움을 바라는 눈빛도 봤으면서도 주현우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바로 시선을 피해버렸다.허아연이 안서준이나 강성시 정부 인사를 좀 찾아달라고 소리쳤지만 두 직원은 귀가 먼 사람처럼 눈길도 돌리지 않았다.허아연과 주현우를 투명 인간 취급했다. 얼굴을 잔뜩 찡그린 허아연이 말했다."주 대표님, 계속 이러시면 신고할 거예요.""딱 십 분이면 돼. 몇 가지만 확인하고 싶어서 그래."말을 마친 주현우는 허아연의 대답을 기다릴 새도 없이 팔을 잡아끌고 2층 다실로 데려갔다.우아한 인테리어의 다실에서 직원이 차를 올리려 하자 주현우는 그냥 나가라고 하고 직접 허아연에게 차를 우려주었다.애써 정신을 다잡고 우려낸 차를 허아연에게 건넨 주현우는 사이드 소파에 앉았다.허아연은 주현우가 건넨 차를 마시지 않고 그대로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주 대표님, 하실 말씀 있으면 빨리 하세요."고개를 들어 바라본 허아연의 눈에는 주현우의 모습이 전혀 없었다. 분명 코앞에 있는데도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허아연을 보며 주현우는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다가가 안아주고 미안하다고, 보고 싶었다고 말하고 싶었다.그러나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조용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시선이 마주치고서도 주현우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자 허아연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제야 주현우가 입을 열었다."2년 전에 유건희가 너 도망치게 도와준 거 맞지?"허아연이 아무런 동요 없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주현우가 이어 말했다. "너랑 유건희 기술이면 가짜 시신 하나 만들어서 속이는 건 일도 아니었겠지. 유건희가 나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교진시에서 인맥도 배경도 상당하잖아."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유건희는 보통 사람들과는 왕래나 만남을 갖지 않았다.그러나 왕래하는 사람은 하나같이 대단한 인물들이거나 능력이 뛰어났다. 유씨 가문의 배경도 손꼽히게 대단했지만 정작 본인은 배경 따위 개의치 않고 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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