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Chapter 371 - Chapter 380

432 Chapters

제371화

약혼자가 있다는 허아연의 말에 주현우가 벌떡 고개를 들었다.허아연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사이 취기가 단숨에 다 날아가버린 듯했다. 주현우가 아무리 뚫어지게 쳐다보아도 허아연은 전혀 움츠러들거나 겁먹지 않고 눈을 똑바로 마주보았다.약혼자가 있다는 건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진짜 안시연에게 약혼자가 있었고 집안에서 정해준 혼사가 싫어 남자친구와 도망치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두 사람 모두 그 사고로 돌아갔다. 때문에 안시연 신분으로 사는 허아연이 약혼까지 떠안게 된 것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대외적인 얘기였다. 안서준의 뜻을 따라 안시연 신분으로 안씨 가문에 들어왔을 때, 이미 혼사를 물린 뒤였다. 다만 두 회사의 사업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파혼 사실을 발표하지 않았을 뿐이다.주현우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바라보자 허아연이 차분하게 말했다."주 대표님, 취해서 사람 잘못 보신 것 같네요. 저는 여러분이 찾는 허아연 씨가 아니에요. 그리고 저 잘 지내고 있으니까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돼요.""앞으로는 고인에 대한 그리움을 저한테 투영하지 마세요. 그거 굉장한 실례예요."허아연이 거듭 선을 긋자 주현우는 그제야 정신이 좀 드는 눈치였지만 눈시울은 여전히 빨개져 있었다. 허아연의 시선을 피해 자리에서 일어난 주현우는 통유리창 앞으로 걸어가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쓸쓸해 보이는 주현우의 뒷모습을 보며 허아연이 담담하게 물었다."주 대표님, 이만 가보게 제 휴대폰 돌려주실 수 있나요?"허아연의 말에 주현우는 그제야 돌아서서 다가와 양복 안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건네며 부드럽게 말했다."밑에까지 데려다줄게요."휴대폰을 받아 든 허아연이 담담하게 말했다."괜찮아요."아무리 거절해도 주현우는 굳이 배웅하러 같이 내려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허아연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 뒤를 따라 현관으로 걸어가던 주현우는 방금 들었던 말을 곱씹다가 눈빛이 어두워졌다.자신이 허아연이 아니라고 하며 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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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2화

안서준이 강성시에서 얼마나 유명한지는 허아연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본 적은 없었다.그런데 교진시에 와서 주현우와 몸싸움을 벌이는 걸 본 허아연도 순간 넋이 나갔다. 주현우를 한 대 친 안서준은 멈추지 않고 다리를 들어 주현우의 배를 걷어찼다.이번엔 준비하고 있었던 주현우는 맞은 얼굴을 슥 문지르고는 다리를 들어 안서준의 다리를 차버렸다. 그 뒤로도 두 사람은 서로 주먹질과 발길질을 멈추지 않았다. 방금 허아연은 호텔로 돌아가겠다고 했으니 절대 먼저 주현우를 다실로 불렀을 리 없었다. 분명 주현우가 억지로 잡아 둔 게 틀림없었다.그 생각이 든 안서준은 허아연이 그동안 받은 상처가 떠올라 저도 모르게 먼저 주먹이 나갔다.두 사람이 뒤엉켜 싸우는 걸 본 허아연과 진 부장, 그리고 전서진 일행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말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안서준이 손찌검을 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오빠, 그만 싸우고 우리 호텔로 돌아가요.""오빠, 오빠.""현우야, 볼 일 있으면 이따 다시 얘기하고 일단 그만해.""오빠, 지금 뭐 하는 거야? 아연이가 겨우 돌아왔는데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주민경도 말리면서 다급하게 소리쳤다.다들 한참을 뜯어말린 끝에 겨우 안서준과 주현우를 떼어놓을 수 있었다.둘 다 얼굴에 상처만 남고 말았다. 허아연은 안서준의 팔을 붙잡고 얼굴에 난 상처를 닦아주고는 서둘러 호텔을 떠났다. 전서진 일행은 안씨 남매가 떠나는 걸 지켜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안서준 역시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네. 교진시에서까지 겁도 없이 손찌검을 하다니."옆에 있던 진 부장은 연신 사과했다."주 대표님, 정말 죄송합니다. 서준 씨가 원래 성격이 좀 저래요. 아마 시연 씨한테 무슨 일이 생겼다고 오해해서 손찌검을 한 것 같으니 너무 언짢게 생각하지 말아주세요."그러고는 또 덧붙였다."서준 씨가 여동생을 정말 아끼거든요."진 부장이 거듭 사과하자 전서진 일행이 옆에서 말했다."괜찮습니다, 찰과상일 뿐 심한 건 아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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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3화

안서준이 입을 열기도 전에 허아연이 다시 말했다."앞으로는 그 사람 피할게요. 여기 일이 끝나는 대로 바로 강성시로 돌아갈 거고요."허아연의 답에 안서준이 손을 뻗어 얼굴을 가볍게 어루만졌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허아연은 안서준의 손을 밀어내고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잠시 뒤, 차가 두 사람이 묵는 호텔에 도착했다. 허아연은 직원에게 구급상자를 받아 안서준의 스위트룸으로 따라갔다.잠시 후 따라온 진 부장이 방에 들어서자마자 잔뜩 미간을 찌푸리며 안서준을 나무랐다."서준 씨, 여긴 교진시예요. 우리가 협력하러 온 건데 어떻게 먼저 손찌검을 할 수가 있어요? 이미지에 얼마나 안 좋겠어요, 이러다가……"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서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쏘아보자 진 부장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그리고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허아연을 보며 말했다."시연 씨, 그럼 오빠 잘 케어하고 상처 치료 부탁해요. 두 사람 이만 쉬게 그만 가볼게요."진 부장이 한마디 덧붙였다."다음에 또 이렇게 싸우면 절대 안 돼요." 말을 마친 진 부장은 안서준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어차피 지금 안서준이 화가 잔뜩 나 있어서 대답을 들을 엄두도 나지 않았다. 문이 쿵 소리와 함께 닫히자 구급상자를 든 허아연도 저도 모르게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정말 못 말리는 사람이었다.의자를 끌어와 안서준 맞은편에 앉은 허아연이 구급상자를 열며 물었다."얼굴 말고 다른 데는 안 다쳤어요?"안서준이 태연한 얼굴로 답했다."다 괜찮아."허아연은 구급상자를 열면서 말했다."앞으로는 이렇게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말아요. 게다가 여긴 그 사람들 구역인데 불이익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래요?"말을 마친 허아연은 다시 진지한 얼굴로 안서준을 보며 조심스럽게 약을 발라주었다.비록 친남매는 아니지만 2년을 함께 지내면서 허아연도 안서준을 가족이자 친구로 여겼다. 바로 코앞에 있는 허아연의 하얀 피부와 맑은 눈을 지켜보던 안서준이 불쑥 물었다."왜 연애 안 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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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4화

안서준의 능력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지만 난처할 뿐이었다.허아연이 안서준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다쳤잖아요, 일단 상처부터……"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서준이 다시 허아연의 손목을 잡아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허아연은 숨을 죽인 채, 안서준을 바라보며 꼼짝도 할 수 없었다.시선이 마주친 순간, 침을 삼키며 무슨 말을 말해야 할지 고민하던 순간, 안서준이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이더니 허아연에게 입을 맞추려 했다.허아연은 빠르게 얼굴을 홱 돌려 입맞춤을 피했다.허아연이 얼굴을 피한 탓에 안서준의 입맞춤은 입술이 아닌 볼에 전해졌다.뺨에 닿은 안서준의 입술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허아연은 순간 굳어버렸다.침을 삼킨 허아연은 안서준을 밀어내지 않고 두 손으로 소독약과 면봉을 꼭 쥔 채 차분하게 말했다."전에 주현우를 오랫동안 좋아했고 그 사람과 함께할 때도 난 최선을 다했어요.""그러다 결국 이 지경까지 돼서 교진시를 떠나고 교진시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졌어요."잠시 말을 멈췄던 허아연이 다시 말했다."그러니까 안서준 씨, 저한테 감정이라는 건 꼭 필요한 게 아니에요. 그래도 빨리 생각 정리해 볼게요."그 말에 허아연을 바라보는 안서준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동시에 조금 전 주현우를 너무 가볍게 때린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얼굴을 떼어낸 안서준은 다시 허아연의 뺨을 어루만지고는 목덜미를 살며시 감싸 쥐며 부드럽게 말했다."너 아직 너무 어려, 어떤 일에도 희망을 잃을 필요 없어. 주현우는 주현우일 뿐 세상 모든 남자를 대표하는 게 아니야."허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 마음 잘 추스를게요."허아연의 냉정한 모습에 안서준은 소독약과 면봉을 가져가며 말했다."방에 가서 쉬어. 이 정도 상처는 괜찮아."그 말에 허아연이 의자에서 일어나며 부드럽게 말했다."네, 일찍 쉬어요."말을 마친 허아연이 문을 열고 옆방으로 돌아가려 하자 안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배웅했다.멀어지는 허아연의 뒷모습을 보며 조금 전 털어놓은 속마음을 곱씹던 안서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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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5화

오원빈의 보고에 주현우의 눈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한참이 지나서야 담담하게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싸늘하게 전화를 끊었다.휴대폰을 테이블에 휙 던지고 다시 몸을 돌려 통유리창 앞으로 걸어갔다. 마음이 숨 막히게 답답했다. 계속 스스로 그 여자는 안시연일 뿐 허아연이 아니라고 되뇌었다. 하지만 여전히 숨이 막혀왔다.옆에 있는 서랍장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집어 든 주현우는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담배 연기가 천천히 피어올랐지만 주현우의 미간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현우 씨, 우리 얘기 좀 할까요?""현우 씨, 오늘 밤에 집에 들어와요?""주현우 씨, 나 오늘 몸이 좀 안 좋은데 와줄 수 있어요?""꼭 가야 해요?"몇 번이고 허아연을 오해했던 일들, 그날 밤 결국 아레아 베이를 나와 그 뒤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던 일이 떠올랐다.그날의 마지막 만남을 떠올린 주현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허아연이 좋아했던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걸 주현우는 모르고 있었다. 담뱃불을 재떨이에 비벼 끈 주현우는 손등의 흉터를 바라보다가 또 예전 일들을 떠올렸다. 예전에 주현우가 다칠 때마다 허아연은 늘 안절부절못하며 극진히 돌봐주었다.그런데 결혼한 뒤로는 그런 관심조차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라 생각했다. 두 손을 다시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은 주현우는 창밖 마당을 바라보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아연아, 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해?"그날 밤 주현우는 또다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그날 밤은 유난히도 길었다.……다음 날 오전, 연구소에서 호텔로 돌아오던 허아연 앞에 오지은이 불쑥 나타나 가로막고 섰다. "안시연 씨, 얘기 좀 해요."한쪽 어깨에 가방을 멘 허아연은 오지은을 아래위로 훑어보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그러자 오지은이 다시 자기소개를 했다."저는 오성 그룹의 오지은이에요. 어제 저녁에 우리 식당에서 마주쳤었죠.""오성 그룹요?" 허아연은 그 말만 되뇌고는 다시 말했다. "저는 동승 그룹에서 기술만 담당할 뿐 협력 업무 담당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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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6화

허아연은 빙빙 에둘러 말하는 오지은을 보며 사진을 다시 테이블에 휙 던져놓고 심드렁하게 말했다."혹시 주 대표님이 저한테 접근해도 저를 사모님 대역으로 생각하는 것뿐이라고 주 대표님을 좋아하는 오지은 씨가 미리 알려주러 온 거네요."그 말에 오지은이 순간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시연 씨, 교진시에 처음 와서 모르는 게 많을 것 같아서 좋은 마음으로 알려주려는 거예요."오지은의 호의에도 허아연은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담담하게 말했다."죄송하지만 오지은 씨, 난 여러분들 일에는 관심 없어요. 앞으로 찾아오지 말아요."오지은 옆을 지나가던 허아연이 내려다보며 어깨를 가볍게 톡 치고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주 대표님 사모님 돌아가신 지도 2년 됐다면서요, 오지은 씨도 좀 더 힘내야겠어요."말을 마친 허아연은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자리를 떴다.오지은이 조금만 더 노력해서 진작에 주현우를 마음을 사로잡았더라면. 지금 골치 아픈 일도 적어지고 어젯밤 같은 싸움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멀어지는 허아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오지은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허아연을 닮은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달랐다.허아연은 저렇게 날카롭지 않았다.허아연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던 오지은의 미간은 좀처럼 펴질 줄 몰랐다. 안시연이라는 여자,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다만 주현우한테는 관심이 없어 보였고 이미 약혼자도 있다고 전해 들었다. 심지어 어젯밤에는 안서준이 주현우와 몸싸움까지 벌였다고 했다.그렇다면 두 사람은 더더욱 가능성이 없을 것이다. ……한편 하이힐을 신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어가 버튼을 누르고 올라탄 허아연 머릿속에 방금 오지은의 이간질이 떠올랐다. 허아연은 피식 웃음이 나 입꼬리가 올라갔다. 2년이 지났는데도 전혀 나아진 구석 하나 없이 여전히 그대로였다. 앞으로 누구든 만날 수 있지만 주현우는 절대 가능성이 없었다.더 이상 예전의 허아연이 아니었다.영원히 그럴 일은 없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허아연은 아무 일도 없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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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7화

"아니면 오늘 이 계약 맺지도 않았을 겁니다.""안 대표님 말씀도 맞습니다." 안서준의 말에도 나름 일리가 있었기에 다들 반박할 수 없었다. 어차피 안시연은 프로젝트 참여 여부를 선택할 권리가 있었다.서명식이 끝나자 정부 인사들이 만찬을 준비했다고 했지만 안서준은 다른 볼일이 있다며 바로 거절했다.주현우가 허아연에게 접근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이상, 안서준은 허아연 근처에 얼씬거릴 기회조차 없게 만들 생각이었다. 악수를 나누며 인사할 때, 주현우는 강성시 정부 인사들과 인사를 마친 뒤 결국 허아연 앞으로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주현우가 내민 손을 담담하게 바라보던 허아연이 가볍게 손을 마주 잡으며 인사에 답했다.허아연이 손을 맞잡자 주현우가 내려다보며 말했다."그저께 밤 일로 시연 씨를 많이 놀라게 한 것 같네요." 손을 거둔 허아연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많이 놀랐어요. 앞으로는 이런 일이 다시 없었으면 해요."거리감이 느껴지는 답에 주현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그때 고개를 든 허아연은 주현우의 흰머리를 슬쩍 보고는 담담하게 시선을 거두었다.주현우의 애절한 마음에도 허아연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주현우를 오랜 세월 알고 지낸 만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주현우의 머리가 허아연 때문에 하얗게 센 거라면 그건 절대 사랑해서가 아니라 허아연의 죽음이 주현우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주현우는 허아연의 정체나 살아 있는지 확인하려는 건 그저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싶어서일 것이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예전에 허아연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으니 그걸로 갚은 셈으로 치면 그만이었다.사람들과 인사를 마친 뒤 허아연은 안서준을 따라 회의실을 나섰다.일행이 떠들썩하게 회의실 문 앞에 나온 그때, 복도 끝에서 권승준이 다가오고 있었다.성큼성큼 걸어오는 권승준의 뒤로 예닐곱 명의 다른 정부 인사들이 따르고 있었다. 권승준은 사람들 사이에서 빠르게 걸음을 옮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창밖에서 불어온 바람이 머리카락과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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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8화

"이분은 동승 그룹의 안서준 대표님이시고, 이쪽은 여동생이신 안시연 씨입니다."동료의 소개에 권승준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손을 내밀어 한 사람씩 인사를 나눴다.안서준 일행과 인사를 마친 뒤 권승준은 허아연 앞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며 부드럽게 인사했다."안 선생님, 교진시에 협력하러 오신 걸 환영합니다."권승준은 누군가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일은 드물었는데 마지막으로 불렀던 사람은 허아연이었다.권승준의 인사에 허아연이 가볍게 손을 마주 잡았다. "권 비서실장님."허아연의 그 한마디에 권승준은 손을 꼭 맞잡은 채 좀처럼 놓지 못했다.허아연을 본 권승준 역시 주현우 못지않게 놀란 상태였다. 권승준이 한참 멍하니 바라보자 허아연이 다시 가볍게 불렀다."권 비서실장님."그제야 정신을 차린 권승준은 손을 거두며 말했다."안 선생님이 제가 예전에 알던 분과 많이 닮으셨네요."허아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이번에 교진시에 와서 그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허아연의 말에 권승준은 다시 담당자를 돌아보며 물었다."이 국장님, 점심 만찬은 준비됐나요? 강성시에서 오신 손님들인데 소홀히 하시면 안 되죠." 이 국장이 얼른 웃으며 답했다."비서실장님, 안 대표님께서 점심에 다른 일정이 있다고 하셔서요. 나중에 다시 준비하겠습니다.""꼭 잘 신경 써주세요.""걱정 마세요, 비서실장님. 지금 제 최우선 과제입니다."결국 사람들은 회의실 앞에서 조금 더 얘기를 나누고서야 헤어졌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 허아연을 향해 고개를 돌린 안서준은 문득 권승준이 떠올랐다.허아연을 대하는 태도가 유난히 특별했는데 호감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물론 예전 허아연을 향한 감정일 뿐이었다.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이 호텔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권승준의 비서가 허아연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직접 만나서 전문 영역의 문제를 자문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주현우의 제안이라면 허아연은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거절했을 것이다.하지만…… 권승준은 좀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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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9화

몇 번이고 허아연에게 묻고 싶었지만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닫았다. 찻잔을 든 허아연은 전혀 감정 변화 없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한참 허아연을 바라보던 권승준은 결국 하려던 말들을 다 삼키고 허아연을 다정하게 바라보며 나직이 물었다."잘 지내셨어요?"권승준의 물음에 찻잔을 든 허아연의 오른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고 손등에 핏줄이 선명하게 불거졌다.권승준을 바라보며 한참 생각에 잠겼던 허아연이 부드럽게 말했다."잘 지냈어요."잘 지냈다는 허아연의 한마디에 권승준은 모든 걸 다 알 수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허아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권승준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이 나이가 되도록 정치계에서도 나름 굴렀던 권승준이 이렇게 마음이 흔들린 건 처음이었다. 한참 허아연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권승준이 말했다."안 선생님, 제가 서류 두 개만 결재하고 나서 교진시 좀 구경시켜드릴게요. 교진시 과학 연구 환경도 둘러보세요."허아연이 정체를 밝히고 싶지 않다는 걸 알기에 권승준도 더 캐묻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안 선생님이라고 불렀다.다만 "안"이라는 글자를 흘리듯 읽어 더 애틋하게 들렸다. 권승준의 배려에 허아연이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먼저 일 보세요, 비서실장님.""그럼 잠깐만 앉아 계세요, 안 선생님."권승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앞으로 걸어가 전화기를 들고 오전에 말했던 서류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서류를 다 확인하고 서명까지 마친 권승준은 마무리를 하고 허아연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기사에게 운전을 맡기지 않고 직접 운전했다. 허아연은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두 손으로 핸들을 잡은 권승준은 오늘따라 꼭 가이드 같았지만 품위와 카리스마가 넘쳤다. 권승준은 차분하게 지난 2년간 교진시의 변화와 특히 산업 기술 분야의 발전에 대해 설명해주었다.권승준의 설명을 듣던 허아연은 마음이 뭉클해졌다.이렇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개인 가이드까지 자처하고 있었다.……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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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0화

그 생각만 해도 주현우는 숨이 턱 막혀왔다.허아연이 떠난 지난 2년 동안 후회하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허아연을 오해하지만 않았더라면, 허아연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자기 감정을 조금만 더 일찍 인정했더라면……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얀 천장을 한참 바라보던 주현우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한참 동안 생각에 잠긴 채 말 없이 침묵하던 주현우는 불현듯 의자에서 일어나 휴대폰과 차 키를 챙겨 사무실을 나섰다.……한편 권승준은 허아연을 데리고 몇몇 연구소를 둘러보며 교진시의 지난 2년간의 변화를 보여주고는 예전에 함께 갔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예전에 허아연에게 밥을 산 적 있는 레스토랑이었다.처음으로 밖에서 허아연과 함께 외식한 곳이기도 했다.레스토랑의 룸마저 2년 전 룸이고 매니저도 여전했다. 권승준이 2년 만에 다시 온 걸 본 레스토랑 매니저가 놀라며 반가운 얼굴로 맞이했다. "비서실장님, 정말 오랜만에 오셨네요. 2년 동안 안 오셨었잖아요."권승준이 미소로 답하고는 몇 가지 요리를 주문한 뒤 허아연에게 메뉴판을 건넸다."안 선생님, 좋아하시는 요리 더 시키세요."권승준이 건넨 메뉴판을 자연스럽게 받아 든 허아연이 요리 두 가지를 골랐다.권승준은 허아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권승준이 허아연에게 말하지 않은 게 하나 있었다. 그날 화재 이후로 다시는 이 레스토랑을 찾은 적이 없다는 것과 허아연이 선물해준 로봇을 거의 매일 사용하면서 대화도 나누었다. 가끔 로봇을 보며 허아연이 아직 살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했다.그런데 2년이 지나 허아연이 정말로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권승준의 노골적인 시선에도 허아연은 여유롭게 미소로 답했다.그때 권승준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지난 2년 동안 교진시에도 변화가 좀 있었어요, 특히 산업 기술 분야의 발전이 커요."권승준의 말에 허아연이 답했다."그러네요, 스타라이트 테크의 발전만 봐도 알 수 있어요."허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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