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บททั้งหมดของ 잃고서야 알았던 사랑: บทที่ 101 - บทที่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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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화

지나윤은 전태지가 수상한 속내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몸을 돌려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전태지의 거대한 몸집이 앞을 막아서면서 길을 완전히 차단했다.지나윤은 이전처럼 술병으로 전태지를 내리치려 했지만 술병은 힘없이 손바닥을 미끄러지며 바닥에 떨어졌다.이에 지나윤은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팔에 힘은 전혀 들어가지 않았고 시야마저 흐릿해 보였다.“이제야 약이 듣네. 너무 느려.”귓가에는 전태지의 흐릿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지나윤은 자신의 의식이 점점 흐려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약을 먹은 것이 분명했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이에 지나윤은 깊이 후회했다. ‘애초에 이 자리에 오지 말아야 했어.’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몸은 불덩이가 되어 열이 올라 식은땀이 흘렀고 얼굴과 귀까지 붉게 달아올랐다.“덥지? 괜찮아. 내가 도와줄게. 다 벗으면 시원해질 거야.”전태지는 두 손을 비비고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지나윤을 끌어안았다.병원, 입원 병동.채연서는 환자복을 입은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원재가 너무 과장해서 말했어. 그냥 조금 긁힌 정도인데 일부러 차 몰고 올 필요까지 있었어? 혹시라도 단속이라도 걸리면 어쩌려고.”“괜찮아.” 유시진은 미지근한 물을 한 컵 따라 채연서에게 건넸다. “너만 무사하면 되거든.”그 말에 채연서의 눈가가 금세 촉촉해졌다.사실 본인도 알고 있었다. 유시진이 자신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상황을 따질 겨를도 없이 차를 몰고 병원으로 달려왔다는 사실을.“검사 결과 나왔는지 보고 올게.”유시진은 그렇게 말하고 병실을 나섰다.채연서는 말로는 붙잡지 않았지만, 환자의 검사 결과와 판독 결과는 모두 담당 의사에게 바로 전달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굳이 직접 가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복도 끝에서 유시진은 장우영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끝내 연결되지 않았다.시아호텔.2408호 스위트룸.지나윤은 온 힘을 다해 버텼지만, 결국 침대 위로 내던져졌다.약물의 파장으로 약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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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

윤성복싱장.지나윤은 그 안에서 오후 내내 복싱했다.과거 싸움을 배울 때 복싱도 조금씩 병행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손에서 멀어졌던 기술이었다.천장에 매달린 샌드백은 강하게 맞고 튀어 올라 지나윤의 얼굴을 스치자 얼굴은 금세 붉게 달아올랐다.곧 지나윤은 바닥에 주저앉았는데 눈물은 멈추지 않고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지나윤은 약에 취해 성폭행을 당했다.상대는 전태지였고 뇌에 지방이 낀 사람처럼 멍청한 남자였다.지나윤은 이를 악물었다. 깊은 속에서부터 역겨움이 올라왔고 고통이 지나윤을 휘감았다.호텔을 나온 뒤 지나윤은 회사로 돌아가지도 않았고 휴가도 내지 않았다. 그저 곧바로 복싱장을 찾아 분노를 쏟아냈고 지금까지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그러나 몸에 남아 있는 감각은 아무리 때려도 사라지지 않았다.밤이 되어 복싱장을 나설 무렵, 모르는 사람이 친구 추가를 보냈다.지나윤은 원래 낯선 사람의 요청을 받지 않았지만 상대는 이렇게 보내왔다.[어젯밤 내가 찍은 걸 보고 싶지 않나요?]어젯밤이라는 단어가 지나윤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불길한 예감 속에서 지나윤은 결국 수락했다. 그리고 수락하자마자 상대는 곧바로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사진 속에는 호텔의 큰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지나윤이 있었고, 그 위로 한 남자의 몸이 겹쳐져 있었다.촬영 각도상 지나윤의 얼굴과 남자의 등만 보였다.주요 부위는 남자의 몸에 가려져 있었지만, 두 사람 모두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곧 지나윤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어둠 속에서 얼굴은 핏기 없이 창백해졌고 입술은 너무 악문 탓에 피가 배어 나왔다.하룻밤 사이에 세상이 무너져 내린 기분이었다.전태지에게 짓밟힌 것도 모자라 누군가에게 사진까지 찍혀 협박받고 있었다.이보다 더한 절망이 있을까 싶었다.지나윤은 휴대폰 속 사진을 바라보다가 당장이라도 바닥에 내던지고 싶어졌다.그러나 높이 들었던 팔은 결국 내려왔다.휴대폰을 부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었고 이제는 냉정을 되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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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화

여름밤의 바람은 낮보다 한결 서늘했다.유시진은 드물게 인내심을 보이며 오래 기다렸으나 지나윤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이 일 해결해 줄 수 있어.”결국 먼저 말을 꺼낸 쪽은 유시진이었고 지나윤의 반응은 여전히 담담했다.“조건은?”“사직서 내고 집으로 돌아와. 그리고 앞으로 이혼 이야기는 다시 꺼내지 마. 예전처럼 내 아내로 지내.”유시진의 목소리도 감정 없이 덤덤했다.그리고 이번에는 지나윤의 침묵은 더 길어졌다.“이혼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 사진이 세상에 나가는 건 절대 허용하지 않을 거잖아.”그 말을 하며 지나윤은 유시진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는데 그 눈동자에서 처음으로 동요하는 감정을 읽어냈다.“사진이 공개되면 네가 원하지 않아도 네 부모님과 유씨 집안 사람들이 모두 이혼을 요구할 거야. 그리고 HF그룹에도 헤아릴 수 없는 악영향이 생길 거니까.”그 말에 유시진은 아무 말이 없었다.“그러니까 그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너는 이 일을 해결해야 하잖아.”지나윤의 날카로운 분석에 유시진은 화를 내기는커녕 낮게 웃었다.“지나윤, 내가 정말 너를 그렇게까지 아깝다고 여길 것 같아?”지나윤은 잠시 말을 잃었다.“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거 아닌가?” 유시진은 웃음을 거두고 표정을 굳혔고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았다. “우리 집안과 내가 이 일에서 깨끗하게 빠져나갈 방법이 얼마든지 있지만 너는 다르잖아. 사진이 퍼지는 순간 네 남은 인생은 끝이야.”“사진은 공개되지 않을 거야.”지나윤은 침착하게 말했다.“100억을 받아 놓고도 사진을 퍼뜨린다면 그 사람은 이 판에서 더는 먹고살 생각이 없는 거겠지.”지나윤은 자조적으로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다시 멈춰 서서 유시진을 돌아봤다.“유시진, 그 사진 속 남자 너지?”지나윤에게 들켰지만 유시진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부정도 인정도 하지 않은 그 모습이, 그 자체로 답을 한 것이었다.지나윤의 눈가가 서서히 붉어졌고 차라리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이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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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

유시진은 단지 궁금했을 뿐이었다.지나윤이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졌다고 스스로 오해했을 때, 자신에게 미안함을 느꼈을지였다.지나윤은 그 침대 사진을 유시진의 얼굴에 던지고는 고개를 돌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눈물은 문을 지나서야 뚝뚝 흘러내렸다.집에 돌아오자 혼란스러웠던 감정이 서서히 가라앉았다.그 사람은 돈을 위해 도촬을 하는 사람이었고 지나윤은 실제로 100억이라는 거액을 지불했다.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사진을 공개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그렇지 않다면 앞으로 어떻게 이런 방식으로 돈을 벌 수 있겠는가?다만 공개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본을 남기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다.여러 차례 곱씹은 끝에 지나윤은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채영?]수화기 너머로 샘물처럼 맑고 차분한 남자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지나윤이 한동안 말을 잇지 않자, 남자는 호칭을 바꿨다.[나윤아, 무슨 일이야?]그제야 지나윤은 부탁하자 말을 끝까지 들은 남자는 쓸데없는 질문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졸리면 먼저 자. 아직 안 졸리면 30분만 기다리던지.]이에 지나윤은 기다리기로 했다.30분 뒤, 전화가 걸려왔다.[휴대폰, 컴퓨터, 카메라를 포함해 전자기기 전부 접근했어. 집에 데스크톱에 백업한 게 있더라고. 전부 삭제했으니까 안심해도 돼. 내용은 보지 않았어.]지나윤은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고마워.”[지금은 괜찮아?]“괜찮아.”[사실은, 돌아와도...]상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지나윤은 전화를 끊었다.사진 문제는 완전히 정리됐다.100억을 썼고 누군가에게 신세도 졌지만 일이 커지지 않았고 평판에도 타격은 없었다.그랬기에 지나윤은 이 정도면 헛돈은 아니라고 판단했다.문제는 따로 있었다.전태지는 이번에 뜻을 이루지 못했고 앞으로 같은 수법을 다시 쓰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지나윤은 침대에 누워 뒤척이다가 결국 유시진을 떠올렸다.머릿속은 혼란스러웠고 마음은 아파왔다.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지나윤은 수면 유도 음악을 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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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화

“이건 내가 낸 걸로 하죠. 다음에 기회 되면 그때 한 번 사면돼요.”장우영은 끝내 지나윤을 말리지 못했다.장우영은 늘 지나윤을 ‘나윤 씨’라고 불렀지만, 그렇다고 지나윤이 유시진의 아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지나윤이 카드를 꺼내 결제하는 모습을 보며 장우영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저런 돈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유시진과 이혼 문제로 갈등을 빚은 뒤, 남자는 더 이상 지나윤에게 돈을 준 적이 없었다.지금 HF그룹에서 일하고 있다고 해도 지급되는 월급은 평범한 디자이너 수준이었다.그런데 수백만 원이나 되는 금액을 결제하는 모습은 무리해서 허세를 부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사실 이 의문은 유시진 역시 품고 있었다.지나윤은 6억 원이 넘는 드레스를 아무렇지 않게 샀었고 몇천억 원대의 바이올린 컬렉션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100억을 들여 사진을 사들이기도 했다.유시진은 한때 그 돈이 이준혁에게서 나온 것이라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이준혁은 외부와의 연락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라 지나윤에게 돈을 보낼 방법 자체가 없었다.그렇다면, 이준혁이 아니라면 그 막대한 자금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병원에서 채연서를 돌본 뒤, 유시진은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사람을 시켜 지나윤의 은행 계좌를 조회하려 했다.그러나 지나윤의 개인 계좌는 최고 등급의 보안이 설정돼 있었고, 유시진조차 접근 권한이 없었다.결혼 3년 만에, 유시진은 처음으로 지나윤이라는 사람에게 순수한 호기심을 느꼈다.다만 그 호기심은 오래가지 않았다.유시진은 스스로 나름의 결론에 도달했다.사무실에 앉아 분기별 매출 보고서를 바라보던 유시진의 시선이 멈췄다.HF그룹의 신규 브랜드가 또다시 FY주얼리에 밀려 있었다.“피터...”유시진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는데 평소보다 유난히 맛이 옅게 느껴졌다.병원에서는 채연서는 퇴원 수속을 마쳤으나 안색은 입원해 있을 때보다 더 좋지 않았다.유시진이 병실을 나간 뒤 채연서는 혼자 남아 크게 화를 냈다.원래 계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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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화

“지나윤, 그저께 출근 왜 안 했어? 일이 있으면 미리 하든 당일에라도 휴가를 내야 해. 내가 입원 중이었어도 문자정도는 보낼 수 있었을 텐데.”채연서는 커피를 내리며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나윤에게 물었다.“알았어. 다음부터는 주의할게.”지나윤은 담담히 답하고 자신의 커피를 들고 탕비실을 나왔다.지나윤의 태도를 보아, 전태지와 있었던 일을 의도적으로 덮고 없는 일처럼 넘기려 한다고 판단한 채연서는 곧 휴대폰을 꺼내 조커에게 연락했다.HF그룹과 JJ건설의 협력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다.오늘은 한식 미식타운이 정식 개장하는 날이었고, 회사 대형 스크린에서는 개관식과 리본 커팅 행사가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었다.식당에서는 많은 직원이 밥을 먹으며 중계를 지켜봤는데, 화면 속 유시진의 모습이 유난히 보기 좋아보였다.그러나 관심이 없는 지나윤은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식사했다.유시진은 전태지가 지나윤에게 약을 먹이려 했고, 거의 목적을 이룰 뻔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럼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밝은 얼굴로 전태지와 나란히 서서 리본을 자르고 있었다.평소 지나윤은 식당의 장조림을 좋아해 늘 깨끗이 비우던 메뉴였지만 오늘은 몇 숟가락 뜨지 못한 채 그대로 남겼다.오후가 되자 유시진에게서 메시지가 왔는데 지나윤은 대표실로 오라는 호출을 받았다.유시진이 내선 전화를 쓰지 않은 이유를 지나윤은 짐작했다.디자인부 내선은 모두 채연서에게 연결되기 때문이다.유시진은 자신이 지나윤을 찾았다는 사실을 채연서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괜한 오해를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지나윤은 사무실 문 앞에서 깊게 숨을 고른 뒤 들어갔다.솔직히 말해, 당분간은 유시진을 보고 싶지 않았다.집 앞에서 크게 다투고 헤어진 뒤라, 다시 마주하면 서로 불편해질 게 뻔했다.“나 왔어.”노크하고 들어간 뒤 지나윤이 말했다.유시진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표정으로 지나윤을 잠깐 흘겨보고는 다시 서류에 시선을 내렸다.지나윤은 가슴이 답답해졌다.전태지에게 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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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화

지나윤도 퇴근하려 했지만, 유시진에게서 메시지가 왔는데 회사에서 기다리라는 내용이었다.이에 지나윤은 짧게 답했다.[공적인 일? 아니면 사적인 일?]곧바로 답장이 왔다.[사적인 일.]그래서 지나윤은 기다리지 않았다.오늘은 야근이 없었기에 원래는 사내 셔틀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갈 생각이었다.그런데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검은색 파사트 한 대가 지나윤 앞에 멈춰 섰다.운전석에는 장우영이 앉아 있었다.“나윤 씨, 타시죠.”“괜찮아요.” 지나윤은 정중히 거절했다. “지하철 타고 가면 돼요.”“모셔다 드리려는 게 아니에요.”장우영의 말에 지나윤은 잠시 어리둥절했다.“대표님 지시라서요.”그 말에 지나윤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유시진에게 휘둘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장우영을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기에, 지나윤은 결국 차에 올라탔다.차는 쇼핑몰로 향했고 장우영은 유시진이 지정한 매장 앞에 정확히 세웠다.늦게 도착한 유시진을 본 순간, 지나윤은 웃음이 나올 뻔했다.채연서를 집에 데려다주는 길에 함께 태워도 됐을 텐데 굳이 이렇게 돌린 것이었다.물론 채연서가 불편해할까 봐서였을 수도 있고, 회사 사람들의 눈을 의식했을 수도 있었다.어쨌든 채연서라는 세컨드에 비해, 법적으로 아내인 자신은 비서가 운전하는 차로 쇼핑몰에 보내지는 신세였다.오히려 누가 보면 자신이 세컨드인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지나윤의 표정이 좋지 않은 걸 눈치챘는지 유시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옷은 마음대로 골라. 내가 살게.”늘 그렇듯 무심한 태도였지만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말투였다.지나윤은 이 옷이 내일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이 매장의 옷은 비쌌지만 유시진의 일정에 동행하는 자리라면 남자가 비용을 부담하는 게 맞았다.이에 지나윤은 사양하지 않고 여러 벌을 입어봤고 유시진은 소파에 앉아 말없이 기다렸다.과거에도 유시진이 옷을 사준 적은 많았고 지나윤의 사이즈 또한 정확히 알고 있었다.그리고 가끔은 이렇게 매장에 직접 데려온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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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화

지나윤은 골프 실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홀인원이 이 스포츠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다만 그 영광의 주인공이 채연서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시진아.”채연서는 흥분한 얼굴로 유시진을 향해 골프채를 흔들었지만, 발걸음은 한 발짝도 옮기지 않았다.곧 유시진이 먼저 움직여 채연서 쪽으로 걸어갔다.초록빛이 짙은 언덕 위에서 채연서는 연핑크와 아이보리 톤이 섞인 칼라 폴로셔츠에 같은 색감의 골프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머리는 포니테일로 묶여 있었고, 전체적인 인상은 귀여우면서 운동을 꽤 하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거기에 완벽한 홀인원까지 더해지자, 그 순간 클럽 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존재가 됐다.오명헌과 박효영도 유시진을 따라 채연서 앞에 섰다.“유 대표, 이분을 알아요?”오명헌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묻자 유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알죠.”“채연서라고 해요. 제 고등학교 동창이고 지금은 HF그룹 디자인부 팀장이죠.”“이 나이에 팀장이라니!”오명헌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게다가 홀인원까지 했잖아.”박효영이 오명헌의 팔을 툭 치며 웃었다.“대단하네요.”오명헌은 연신 엄지를 들어 올리자 채연서는 얼굴을 붉히며 손을 내저었다.“아니에요. 그냥 취미로 치는 수준이고 방금 건 운이 좋았을 뿐이죠.”겸손한 태도에 두 사람은 다시 한번 칭찬을 보탰다.지나윤은 멀찍이서 그 장면을 지켜볼 뿐, 다가가지 않았다.채연서가 나타난 이후로 유시진의 시선은 단 한 번도 그쪽에서 떨어지지 않았다.채연서가 칭찬받을 때마다, 유시진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자부심이 떠올랐다.지나윤은 문득, 지금 조용히 사라져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저녁 식사는 채연서가 합류함으로써 다섯 명이 함께하게 됐다.채연서는 골프가 너무 치고 싶었는데 같이 올 사람이 없었다는 이유로 혼자 오게 됐다고 했다.물론 그 말을 지나윤은 믿지 않았다.A시는 크고 작은 골프장이 넘쳐나는 곳인데, 하필이면 혼자 이 골프장에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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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화

언덕 위에서 채연서는 유시진에게 수건을 건넸는데 남자는 그 수건으로 되려 여자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줬다.그 모습에 지나윤은 시선을 거뒀다.‘심심하네.’ 남들이 다정한 모습을 보이는 걸 지켜보느니 차라리 할 일을 찾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이에 지나윤은 종이와 펜을 꺼내 스케치를 시작했다.디자인이 원래 좋아하던 전공은 아니었지만, 묘하게도 그림을 그릴 때면 집중이 잘 됐다.너무 몰입한 나머지, 자신의 테이블 옆에 누군가가 언제 앉았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했다.그림을 마치고 고개를 들었을 때 눈앞에 못생긴 얼굴이 있었다.이에 지나윤은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섰고 얼굴은 단번에 굳었다.“지나윤, 또 보네.”이곳에서 전태지를 마주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전태지는 예전과 다를 바 없이 음흉한 눈빛으로 지나윤을 훑었다.“혼자야?”지나윤은 대답하지 않고 머릿속에서 전태지의 접근을 어떻게 끊어낼지 빠르게 계산하고 있었다.“보니까 우리 둘 인연도 있네. 유 대표랑 어떤 관계인지도 대충 들었어. 유 대표가 주는 만큼은 나도 줄 수 있어.”“손해 보게 하진 않을 테니까 가격을 불러. 어차피 유 대표는 늘 널 방치하잖아. 내가 두 배를 줄 테니까 앞으로 나랑 지내는 게 어때?”전태지가 손을 내미는 순간, 지나윤은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가지 말고 말로 해. 그래봤자 돈 문제잖아.”손목이 붙잡힌 지나윤은 힘껏 뿌리쳤지만 빠져나오지 못했다.도움을 청할 틈도 없이 뒤에서 급한 하이힐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전태지는 손을 놓았고, 대신 누군가가 지나윤의 옷깃을 거칠게 움켜잡았다.“이 요망한 여자, 드디어 잡았네.”상대는 여자였지만 체격이 크고 거칠어 보였다.곧 욕설을 퍼붓는 동시에 지나윤의 옷을 마구 잡아당겼다.“남자들 앞에서 벗는 걸 좋아한다며? 오늘은 실컷 벗겨주지.”옷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지나윤이 입고 있던 슈트가 뜯어졌고 속옷 끈이 반쯤 드러났다.지나윤은 지체하지 않고 그대로 발을 들어 여자를 걷어찼다.힘을 조절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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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화

요즘 지나윤은 정신없이 바빴고 말 그대로 발이 땅에 닿을 틈이 없었다.하루는 병원을 오갔고, 또 하루는 경찰서와 법원을 수없이 드나들었다.지나윤은 가해자로 분류됐다. 사정이 있었다고는 해도 장지민에게 입힌 상해가 결코 가볍지 않았기 때문이다.장지민은 변호사를 선임해 공식적으로 사과와 손해배상을 요구했다.사과는 할 수 있었으나 배상에는 응하지 않았다.애초에 모든 일의 발단은 전태지가 먼저 지나윤을 집요하게 괴롭힌 데 있었다.전태지와 장지민은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가진 집안이었지만 그렇다고 법 위에 군림할 정도는 아니었고, 법정에서는 결국 증거가 우선이었다.그러나 온라인은 달랐기에 지나윤은 이 며칠간 인터넷을 아예 끊었다.지금 온라인에서 자신이 어떤 말로, 얼마나 심하게 욕을 먹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장지민이 돈을 주고 고용한 댓글알바도 있었겠지만, 사실관계 따위에는 관심 없는 군중심리의 네티즌들 역시 불을 붙이는 데 능숙했다.회사에는 따로 휴가를 내지 않았다.HF그룹의 규정상 무단결근 3일이면 근로계약 해지가 가능했기에 지나윤은 유시진이 직접 나서서 자신을 해고하길 기다리고 있었다.사건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린 뒤로, 유시진은 마치 지나윤의 인생에서 사라진 사람처럼 행동했다.충동적이었다고 나무라지도 않았고 지나윤을 대신해 한마디 변호도 하지 않았다.메시지 한 통조차 보내지 않았기에 지나윤은 이 모든 침묵이 선을 긋기 위한 방식이라고 생각했다.그게 유시진 개인의 판단이든, 집안의 결정이든 간에 이번에는 분명히 완전히 손을 떼려는 의지였다.예전에 네티즌들이 이준혁과의 과거 일을 다시 끄집어냈을 때, JJ건설 주가가 그날 바로 하한가를 기록했다.지나윤은 그 일에 대해 이준혁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이미 연락을 끊은 사이였는데도 결국 또다시 엮이고 말았으니까.오늘로 무단결근이 닷새째였는데도 인사팀에서 해지 통보는 오지 않았다.지나윤은 더는 참지 못하고 사직서를 들고 직접 회사로 향했다.“저 여자야, 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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