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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잃고서야 알았던 사랑: Chapter 211 - Chapter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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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1화

“아니야.”유시진은 고개를 저었다.“병원에 안 가는 건 나야.”“뭐라고?”채연서는 놀라움에 숨을 삼켰다.“지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바로 못 가. 끝나는 대로 갈 거야.”유시진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담담했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그런 톤이었다.그 무심함 뒤에 어떤 감정이 있는지 채연서는 도무지 읽을 수 없었다.지나윤이 사고로 중증외상센터에 실려 갔고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인데, 우선순위를 다른 데 둔다니, 채연서로서는 믿기 어려웠다.하지만 동시에, 마음 깊은 곳에서 희미한 기쁨이 피어올랐다.‘시진이는 정말 지나윤에게 아무 애정도 없구나.’심지어 죽든 살든 전혀 상관없다는 뜻일지도 몰랐다.웃음이 터질 뻔했으나 지금 웃으면 완전히 밉보일 것이 뻔했고, 지금은 표정 하나, 말투 하나까지 조심해야 할 타이밍이었다.“그럼 조심해서 다녀와. 병원에 도착하면 무조건 바로 알려줘. 알지? 나도 같이 있고 싶어. 필요하면 병원에서 내가 곁에서 도울 수도 있어.”“이럴 때는 사람이 많을수록 힘이 되니까.”채연서는 진심처럼 보이게 말했고, 유시진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응. 나중에 연락할게.”블루 벤틀리가 시야에서 멀어지자, 채연서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팔짱을 꼈다.그리고 행복한 미소를 더는 숨기지 못하고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나쁜 사람은 천벌 받는다더니 그 말이 딱 맞네.”‘지나윤, 이번엔 그냥 거기에서 죽어버려.’로열 웨딩홀.박시현이 피팅룸에서 큰 드레스를 살짝 들어 올리며 걸어 나왔다.“준혁아, 이거 어때?”박시현이 넓은 드레스 자락을 양손으로 잡고 빙그르르 돌며 포즈를 취하자, 이준혁은 고개만 들고 가볍게 말했다.“예뻐.”그리고 다시 휴대폰 화면으로 시선을 내렸다.첫 번째 드레스부터 이 반응은 바뀌지 않았고 지금은 벌써 7번째 드레스였다.박시현은 바보가 아니었고 자기기만도 하지 않았다.본인 또한 이준혁은 자신에게 마음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둘은 원래부터 감정이 아닌 조건에 맞춰 만나게 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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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2화

지나윤은 일주일 만에 눈을 떴는데 눈을 뜬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있었다.여기가 어디인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그저 낯선 흰색 천장만 시야에 가득했다.잠시 생각을 더듬은 후에야 지나윤은 기억이 끊긴 지점을 찾았다.주경요양병원에서 걸려 온 전화가 걸려 와 엄마가 병원 밖으로 나갔다는 말.그래서 급히 차를 몰고 나섰다가 과속해서 사고가 났다는 사실.“엄마. 맞다, 우리 엄마. 우리 엄마 어디에 있어?”지나윤은 정신도 못 차린 채, 누구에게 묻는지도 모른 채 불안하게 말을 내뱉었다.“지나윤.”갑자기 고아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의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 우리 나윤이가 깼어요!”고아라는 거의 뛰다시피 병실 밖으로 나갔고, 곧이어 의사와 간호사가 우르르 몰려왔다.순식간에 병실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의사는 지나윤이 위기에서 벗어났고 회복 속도도 괜찮다고 설명했다.그 말을 듣는 순간, 고아라는 긴장이 확 풀렸는지 눈가가 붉어지더니 결국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너 진짜 사람 이렇게까지 놀라게 할 거야?”고아라는 아직도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한 얼굴이었다.“아라야.”지나윤은 자기 상태보다 더 급한 것이 있었다.얼마나 누워 있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는 안전한지 확인해야 했다.“나 얼마나 있었어? 그리고 엄마는 어떻게 됐어? 혹시 소식 들었어?”“이모는 괜찮으셔. 네가 사고 난 그날, 금방 찾았대. 그래서 다시 병원으로 모셔왔어.”그 말을 듣는 순간 지나윤은 긴 한숨을 내쉬었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처럼 가라앉았다.“그럼 누가 찾았는데? 경찰?”지나윤의 의문은 당연했다.전화를 건 요양병원 측에서는 이미 신고했다고 했으니, 경험 많은 경찰이 찾았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나 누구든 어디에서 찾았든 그저 무사하기만 하면 됐다.“다리 부상이 제일 심하고 다른 건 다 좋아지고 있대. 의사 말로는 운이 정말 좋았다고 하더라. 불행 중 다행이지.”고아라는 물을 따라 건네며 계속 설명했다.또한 고아라가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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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3화

“이준혁도 어쩔 수 없는 입장이지. 그래도 너한테는 꽤 진심이었거든.”“응, 알고 있어.”지나윤은 고아라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운 건 피터지. 아무리 생각해도 유시진보다 몇 배는 나아.”유시진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지나윤의 얼굴빛이 아주 살짝 굳어졌다.“교통사고가 나서 사람이 중증외상센터까지 갔는데, 유시진은 처음부터 끝까지 안 나타났어. 진짜 몇 번 봤던 개한테도 그렇게 매정하진 못하겠어.”“내가 살아오면서 그렇게 심장이 없는 것 같은 사람은 처음 봤어. 넌 그래도 아내잖아.”“유시진이 널 사랑하든 말든 최소한 가족이잖아. 이건 진짜 피도 눈물도 없는 거야.”고아라는 양손을 허리에 올린 채 씩씩거렸다. 말하면 할수록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왔고, 뒤어금니까지 부딪힐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너 그거 알아? 내가 이준혁한테 물어봤더니, 본인은 늦게 온 줄 알았다더라. 근데 유시진은 그림자도 안 보였다는데.”“네 병원비도 거의 가해자였던 대형 화물차 기사 쪽에서 처리했고.”진심으로 화가 난 고아라의 표정은 예쁜 이목구비가 다 일그러질 정도였다. 지나윤은 그런 고아라를 보며 애써 웃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우리 곧 이혼할 거였어. 엄마만 안 사라졌으면, 나는 그날 그대로 가정법원 갔을 거야.”“당장 이혼해!”고아라는 탁상을 치며 말했다.“그런 새끼랑은 무조건 이혼해야 해. 이혼하고 나면 편안하게 새로운 사랑을 찾는 거지. 내 눈엔 피터가 아주 괜찮아 보이던데?”또 제멋대로 사람을 엮으려는 고아라의 말에 지나윤은 여전히 힘없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애초에 지나윤은 사랑의 두 번째 사랑 따위는 바라지 않았다. 현재 지나윤에게 있어서 중요한 건 단 하나,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새로운 경력을 쌓는 것이었다.의사는 지나윤에게 안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신신당부했지만, 고아라가 옆에 있는 한 한순간도 조용할 수 없었다.하루 종일 그리고 밤까지, 고아라는 유시진을 향한 분노를 쉼 없이 표출했다.사고 났을 때도 안 왔네, 중증외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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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4화

유시진이 지연순을 찾았을 때는 해는 거의 저물어 있었다.지연순은 이미 길을 잃은 지 오래였고, 보이는 사람마다 ‘나윤아’를 부르며 붙잡아 세워 주변 사람들에게 정신이 이상한 노인 취급받고 있었다.유시진이 다른 직원을 보내지 않고 직접 나선 이유는 분명했다.유시진은 지연순의 치매 증세가 심해지면 낯선 사람이 데리러 왔을 때 오히려 저항할 수 있고, 억지로 데리고 가려다 다치게 할까 염려되었다.그래서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다행히 지연순은 유시진을 보자마자 정신이 조금 돌아온 듯했다.자신이 주경요양병원에 있어야 할 사람이라는 사실을 떠올린 듯, 어쩌다 여기까지 나온 건지 혼란스러워했다.유시진은 지연순을 차에 태워 요양병원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고, 담당 간호사에게 넘기고 나서야 다시 병원으로 향하려 했다.하지만 장우영에게서 온 연락은 예상과 달랐다.이준혁, 고아라, 피터, 그리고 우원재까지 모두 병원에 있다는 소식이었다.그 말에 유시진은 병원으로 바로 가지 않기로 했다.“유 대표님, 이런 늙은이가 괜한 말을 보태는 건 아닌데 그때 말한 그 친구 말이에요. 혹시 마음에 두고 있는 건 아닌가요?”전통주에 기분이 좋아진 유국현이 갑자기 수다스러워졌다.“아니에요.”유시진은 주저하지 않고 단호하게 부정했다.“그래요? 아휴, 아깝네요.”유국현이 괜히 아쉬운 듯 고개를 저었다.“유 대표님도 이제 적은 나이는 아니잖아요.”“얼굴이 동안이긴 해도 남자는 가정 꾸릴 때가 있는 법이기도 하고요. 사업은 이미 잘해놓았으니, 이제는 가정도 챙겨야 하지 않을까요?”유시진은 묵묵히 술잔을 들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국현은 이미 오랫동안 은퇴 생활을 했기에 재계 인맥과는 크게 엮여 있지 않았다.그래서 유시진과 지나윤이 이미 결혼했다는 사실도 모르는 듯했다.물론 유시진도 굳이 말할 생각이 없었다.이혼할 예정인 관계를 굳이 설명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근데 말이에요, 이렇게 나랑 천천히 술 마시고 있어도 돼요? 그 친구 곁에 있어 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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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5화

“내가 너 아픈 거 신경 쓰는 건 알겠는데 난 간병인을 못 믿어. 간병인이 나보다 잘할 수는 없잖아!”고아라의 말에 지나윤은 눈시울이 금세 뜨거워졌다.회복은 꽤 되었지만, 수술한 왼쪽 다리는 아직 전혀 힘을 쓸 수 없었고, 이제 막 휠체어에 앉아 움직일 정도였다.“진짜 내가 이렇게 폐인처럼 될 줄은 몰랐어.”혼잣말 같았는데 고아라는 바로 받아쳤다.“무슨 소리야? 평생 안 낫는 것도 아니고. 원래 뼈 붙는 데는 오래 걸릴 텐데. 겨우 며칠 지났잖아.”“그렇지. 그건 맞아.”고아라의 말이 이상하게 힘이 됐다.“내가 말하건데 너 조급해하면 안 돼. 다 낫고 바로 가정법원에 뛰어가서 이혼해.” 네 인생 새로 여는 거지.”“그다음에는 귀여운 연하남 두 명 정도 두고 기분 전환하는 거지!”고아라의 호언장담에 지나윤은 웃음이 터졌다.“아라야, 나 정말 빨리 나아야 해. 다리 안 나으면 LD주얼리 패션위크 어떻게 참가하겠어?”시간이 촉박했기에 지나윤은 마음이 급해 났다.고아라가 말한 것처럼 뼈 붙는 데는 오래 걸렸기에 설령 조급해한들 변하는 건 없을 것이었다.그날도 유시진은 얼굴을 비추지 않았으나 대신, 우원재가 지나윤의 병실에 왔다.“혹시 몰랐던 건 아니지? 너 교통사고 난 날, 나 바로 달려왔었어. 너 기절해 있었잖아. 그래서 3일 동안은 의자에 앉아 너 지켰어.”“근데 병원에서 하루 최대 두 명만 보호자로 둘 수 있다길래, 밤엔 나가 있었던 거고.”우원재의 말에 지나윤은 잠시 멍해졌다.고아라가 자기뿐 아니라 병실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거의 다 들려줬는데, 우원재 이야기만 쏙 빼놓고 있었던 것이다.지나윤이 고개를 돌려 고아라를 보자, 여자는 일부러 시선을 피해 기침만 했다.고아라는 우원재를 싫어했다.정확하게 말하면, 유시진 주변에서 얼쩡거렸던 남자들은 죄다 싫어했는데 그중에서도 단연 1순위가 우원재였다.고아라 기억 속의 우원재는 항상 채연서 편만 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그런 우원재가 사고 난 날 누구보다 먼저 뛰어오고, 보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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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6화

“혹시 지나윤 씨 계시나요?”문을 밀고 들어온 사람은 고아라가 알지 못하는 인물이었지만 지나윤은 알고 있었다.“박시현 씨.”지나윤은 박시현이 병문안을 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물론 박시현이 과일 바구니를 사 들고 일부러 찾아온 이유가, 자신과 친구가 되고 싶어서라고 순진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박시현은 지나윤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완곡하게 말했고, 우원재는 눈치를 챈 듯 병실을 나갔다.그러나 고아라는 여전히 자리를 뜨고 싶지 않았다.이미 지나윤은 고아라에게 이 여성이 이준혁의 약혼자, 박시현이라는 사실을 소개한 상태였다.또한 고아라는 박시현이 이준혁이 과거에 지나윤을 좋아했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다.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마음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겼다.그렇기 때문에 지나윤을 박시현과 단둘이 남겨 두는 것이 고아라는 불안했다.“괜찮아, 아라야. 먼저 나가 있어. 딸기 좀 사다 줘.”지나윤이 고집을 부리자, 고아라는 마지못해 병실을 나갔다.그 순간, 병실 안에는 지나윤과 박시현 두 사람만 남았다.가을이 깊어지며 날씨가 쌀쌀해졌고 병실 창문은 열려 있었다.차가운 공기가 그대로 밀려 들어와 지나윤과 박시현 사이를 감돌았다.“지나윤 씨, 제가 너무 직설적으로 말한다고 오해하지는 말아 주세요. 다만 준혁의 약혼녀로서, 약혼자 주변의 여자관계를 알 권리는 있다고 생각해서요.”박시현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말투는 정중했으며 태도는 지나치게 낮지도 높지도 않았다.질문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지나윤 씨와 이준혁 씨는 어떤 관계인가요?”“친구 관계예요.”지나윤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그게 전부인가요?”“그게 전부예요.”지나윤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처음부터 이준혁은 고백한 적이 없었고, 두 사람의 관계는 분명 친구 선에서 멈춰 있었다.게다가 이준혁의 어머니가 돈으로 마음의 안정을 사겠다며, 이준혁과의 관계를 끊으라고 요구했다.지나윤은 그 돈을 받았고 요구대로 행동했다.지금에 와서는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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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7화

청첩장 위에 티타늄 실버로 인쇄된 이준혁과 박시현의 이름이 지나윤의 시선을 잠시 끌어올렸다.이준혁은 정말로 결혼하는 것이었다.“축하해요.”지나윤은 청첩장을 받아들였다.이 결혼이 이준혁에게 행복을 의미하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재벌가에 몸담은 이상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도 많았다.이준혁에게는 박시현이 가장 적절한 선택일지도 몰랐다.적어도 자신보다는 나을 터였다.“결혼식은 석 달 뒤예요. 그때 꼭 와 주셔야 해요.”박시현이 당부하듯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꼭 참석할게요.”지나윤의 대답이 끝나자 박시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럼 쉬는 데 방해하지 않을게요. 부디 몸 잘 챙기세요.”박시현이 떠난 뒤, 문 앞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던 고아라가 다시 병실로 들어왔다.“나윤아, 그 박시현 씨가 뭐라고 해?”고아라는 단단히 닫힌 병실 문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난 왠지 마음이 안 놓여.”지나윤은 어깨를 으쓱했다.“별거 없었어. 그냥 청첩장 한 장 주고 간 게 전부야.”“청첩장이라고?”고아라는 눈을 크게 떴다.“누구랑 누구 결혼식인데?”“당연히 이준혁이랑 박시현이지.”“미쳤네.”고아라의 반응에 지나윤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표정이 되었다.다음 날, 지나윤의 병실에는 또 다른 방문객이 찾아왔다.하마터면 고아라가 빗자루를 들고 내쫓을 뻔했는데, 다행히 장우영이 앞을 막아섰다.지나윤은 채연서가 장우영과 함께 들어오는 모습을 보자, 유시진의 뜻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지나윤, 몸은 좀 어때? 많이 나아졌어?”사람들 앞에서의 채연서는 언제나 진심으로 걱정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그 모습이 지나윤으로 하여금 오히려 속을 뒤집어 놓았다.병실은 고요했고 지나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채연서는 전혀 어색해하지 않고 부드럽게 웃었다.“너는 모르겠지만 네가 사고 났던 그날 나도 시진의 차에 타고 있었어.”“네가 중증외상센터에 들어갔다는 얘기 듣고 너무 놀라서, 당장 같이 병원에 가고 싶었어. 안 믿기면 시진이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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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8화

장우영은 얇은 입술을 살짝 벌렸다.오늘 채연서를 데리고 지나윤을 병문안 온 것이 유시진의 지시였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장우영은 유시진 곁에서 비서로 일한 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채연서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다지 잘 알지 못했다.다만 채연서가 유시진의 첫사랑이며, 두 사람이 어린 시절 소년원에서 함께 고생하며 의지했던 사이라는 것은 알았다.또한 채연서가 유시진 마음속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는 존재라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었다.하지만 장우영은 채연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당시 유시진과 채연서는 그야말로 천생연분이라 불릴 만큼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고, 고등학교 시절 학교 안에서도 유명했고 행동도 늘 당당했다.지금도 유시진의 동창 중 상당수는 두 사람이 여전히 연인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외부의 시선으로 보면, 유시진은 채연서를 너무도 사랑했던 남자였다.외모든 집안이든 개인 능력이든, 유시진은 어디 하나 빠질 데 없는 인물이었다.장우영 또한 유시진이 채연서에게 부족한 점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그런데 그런 유시진을 먼저 떠난 쪽은 채연서였다.자세한 사정은 장우영도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그 일이 유시진의 할아버지와 관련되어 있다는 이야기만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유시진이 처음이자 가장 진지하게 쏟아부었던 감정은 그렇게 큰 상처로 돌아왔다.더 치명적인 문제는, 채연서가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해외로 떠난 뒤에도 계속해서 SNS에 글을 올리며 유시진을 자극했고, 외국까지 쫓아와 자신을 붙잡아주길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그러나 유시진이 선택한 것은 결혼이었다.장우영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지나윤은 유희봉이 선택한 사람이었지 유시진이 선택한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유시진은 지나윤을 사랑하지 않았다.그렇다 해도 이미 결혼을 한 이상, 지나윤은 유시진의 유일한 아내였다.그러나 비서라는 입장에서 타인의 가정사, 그것도 상사의 가정사를 두고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었다.하지만 장우영 개인적으로는 지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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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9화

채연서와 지나윤은 엄연한 경쟁 관계였다.그러니 이치로 보자면 피터는 늘 채연서 쪽에 서 있어야 했고, 지나윤과 친구처럼 지내는 일은 어딘가 맞지 않는 일이었다.“의사 말로는 지나윤 씨가 당분간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유 대표님, 더 하실 말씀이 없으시면 돌아가셔도 돼요.”피터는 유시진이 못마땅했다.특히 유시진만 나타나면, 지나윤이 눈에 띄게 불편해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지나윤 남편은 나예요. 내가 피터 상무님더러 나가라고 안 했는데 되려 저를 쫓아내는 건가요?”유시진은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차갑게 피터를 바라보았다.피터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두 분 곧 이혼하실 거 아닌가요?”유시진의 얼굴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눈빛 깊은 곳에서는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마치 세상 사람들 모두가 자신과 지나윤의 이혼을 알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곧 이혼한다는 건 아직 이혼하지 않았다는 뜻이죠. 이 정도 상식을 제가 피터 상무님께 따로 설명해 드려야 하나요?”“아직 이혼도 안 했다고 말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세요?”옆에 있던 고아라가 더는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어느 집 남편이 아내가 교통사고 나서 중증외상센터에 들어갔는데 얼굴 한 번 안 비치죠? 나윤이가 입원한 지가 며칠인데 그동안 어디 가서 뭐 하고 있었어요?”“사람은 안 와도 돈이라도 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가해 운전자가 돈을 안 냈으면, 나윤이는 치료비도 못 낼 뻔했어요.”고아라는 분노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지금은 고비를 넘기고 정신도 차렸으니까 이제야 찾아온 거겠죠. 그동안 뭐 하다가 이제 와서 나타난 거죠?”“아직도 자신을 아윤이 남편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분명히 말하는데, 나윤이가 인생에서 제일 운 없었던 일이 바로 당신과 결혼한 거예요.”병실 안이 순식간에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해졌다.하고 싶은 말을 쏟아낸 뒤에야, 고아라는 자신이 흥분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하지만 속은 시원했다.어차피 지나윤은 유시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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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0화

피터, 우원재, 고아라는 차례로 병실을 떠났고, 고아라는 우원재에게 거의 끌리다시피 해서 나갔다.결국 병실에는 유시진과 지나윤 두 사람만 남았고 방은 한결 넓어 보였다.“유시진, 아라는 그런 뜻이 아니었어.”“너도 고아라랑 똑같이 생각하겠지. 내가 한 번도 병문안을 오지 않았고, 치료비도 한 푼 내지 않았다고.”유시진은 지나윤의 말을 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먼저 꺼냈다.지나윤은 유시진의 말투와 뉘앙스를 듣고, 고아라가 자신을 억울하게 몰았다는 뜻처럼 느껴졌다.그러나 멋대로 짐작하고 싶지는 않았다.혼자 기대했다가 결국 실망하는 일을, 지나윤은 이미 너무 많이 겪어 왔다.“난 모르겠어.”지나윤은 솔직하게 말하자 유시진은 가볍게 웃었다.그리고 그 웃음에는 약간의 자조가 섞여 있었다.“의사가 말하길, 다른 부분은 이제 큰 문제가 없고 다리만 재활이 필요하대. 계속 여기 있는 건 적합하지 않아서 전원 절차를 밟아 놨어.”지나윤은 눈을 크게 떴다.“어디로 가는데?”“새로 연 재활센터.”“아니, 난 가기 싫어. 다리는 집에서도 충분히 회복할 수 있어.”지나윤이 재활센터에 특별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그저 이유 없이, 유시진이 마련해 준 곳으로 가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유시진은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았다.유시진은 이미 의사에게 물어봤다.의사는 현재 지나윤의 부상 중 가장 심각한 곳이 왼쪽 다리이니, 재활센터에서 정식 장비로 재활을 하는 편이 회복이 빠르고 후유증도 남기기 어렵다고 말했다.유시진은 의사가 해 준 이 말을 그대로 전할 수도 있었지만,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직전에 방향을 바꿨다.“재활센터에 가면 회복이 빨라. 빨리 나아야 이혼 절차도 진행할 수 있고, LD주얼리 패션위크도 갈 수 있잖아.”이 말에 지나윤은 설득되었고, 그날 바로 전원 절차를 밟았다.지나윤은 유시진 역시 이혼을 서두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아마 채연서와의 일이 임박한 듯했다.승유재활센터.이 재활센터는 최근 막 개원했다.기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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