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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잃고서야 알았던 사랑: Chapter 611 - Chapter 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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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1화

HF그룹이 현재 처한 위기는 백이천도 이미 인터넷을 통해 알고 있었다.지나윤이 피자를 먹는 동안, 백이천은 단 한마디도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계속해서 쓸데없는 농담을 해주었다.백이천은 원래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잘하는 편도 아니었다.그랬기에 지나윤은 백이천이 이렇게 하는 건 모두 자신을 위해서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피자 두 판을 다 먹고 나서야, 백이천은 지나윤에게 물었다.“HF그룹 지금 주가 폭락했잖아, 주주들이 분명 책임을 요구할 텐데,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지나윤은 잠시 침묵했고, 백이천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HF그룹 이사회는 내가 맡으면서 물갈이했지만, 주주 중에는 여전히 유씨 집안과 크고 작게 얽혀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나윤의 입에서 유씨 집안이라는 말이 나오자, 백이천은 참지 못하고 미간을 찌푸렸다.“아까 올라오기 전에 유시진한테 전화가 왔어. 그 사람이 백기사 도입을 제안했어.”“안 돼!”지나윤의 말이 끝나자마자 백이천은 강하게 반대했다.백이천은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유시진은 절대 좋은 의도로 그런 게 아니야! 이런 상황에서 유씨 집안의 돈을 끌어들이라는 건, 완전히 불난 집에 기름 붓겠다는 거나 다름없어.”“하지만 세이만 테크놀러지가 계속 HF그룹 주식을 사들이고 있어. 나는 그게...”“그 세이만 테크놀러지가 적대적 인수라고 해도 유씨 집안이라고 다를 게 있겠어? 유시진이 이렇게 나오는 건 결국 HF그룹을 다시 손에 넣으려는 거야.”“나윤아, 그 함정에 빠지면 안 돼.”지나윤이 말없이 있자 백이천은 말을 이었다.“고진수가 있던 회사도 처음부터 유시진이랑 연결되어 있었어. 어쩌면 고진수가 유시진이 보낸 산업 스파이였을 수도 있어.”“널 궁지로 몰아넣고 자연스럽게 백기사를 끌어들이게 하려고.”백이천의 말은 듣기에는 그럴듯했다.실제로 많은 기업이 적대적 인수를 막기 위해 백기사를 들였지만, 결국 또 다른 인수자에게 넘어간 경우도 적지 않았다.하지만 지나윤은 유시진이 그렇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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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2화

경찰서.지나윤과 고아라가 도착했다.고아라는 혼자 왔지만 지나윤은 아니었다.지나윤의 곁에는 백이천이 있었다.처음에 백이천은 고아라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지 못했다.그저 HF그룹이 FZZL 시스템 고객 정보를 유출해 심각한 악영향을 끼쳤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이었다.HF그룹이 긴급하게 대응했지만, 진범을 잡지 못한 상황에서 외부 공격이라는 해명은 전 인터넷에서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았다.하지만 어젯밤 지나윤과 함께 대책을 세운 뒤, 백이천은 이제 알게 되었다.지나윤을 이처럼 큰 위기에 빠뜨린 사람이 바로 고아라라는 사실을.고아라는 고개를 들어 지나윤을 바라보지 못했다.본인도 이 사태의 엄중성을 너무나도 잘 알게 되었기에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었다.백이천을 보는 것도 두려웠다.백이천은 고아라를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고아라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사건의 전말을 지나윤이 이미 백이천에게 이야기했을 것이라는 것을.고아라는 이제 자신은 더 이상 지나윤과 백이천의 친구라고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느끼고 있었다.이호진은 세 사람을 사무실로 불러 현재까지의 수사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고진수, 유전학 전문가, 올해 31세로 3개월 전, 시신이 바다를 떠돌다 한 작은 마을의 어부에게 발견됐어요.”이호진의 말을 듣는 순간, 고아라는 다리가 풀려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지나윤은 아무렇지 않은 듯 고아라를 힐끗 바라봤다.고아라가 아직도 고진수에게 마음을 완전히 떨치지 못했거나 혹은 여전히 감정이 남아 있는 상태라는 것을 느꼈다.그 사실이 지나윤의 마음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그때, 옆에 있던 백이천이 조용히 지나윤의 어깨를 감싸안았다.곧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백이천의 부드러운 눈빛이 지나윤의 마음속에 드리운 어둠을 조금씩 걷어내는 것만 같았다.이때, 이호진이 사진 한 장을 앞으로 내밀었다.“이 사람이 사망한 고진수예요.”지나윤과 일행은 사진을 보는 순간 모두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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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3화

주식은 쥐고 있었지만 HF그룹에는 수많은 주주와 직원이 있었고, 그 사람들 대부분은 지나윤을 잘 알지 못했다.이렇게 큰 사건이 터진 지금, 지나윤 혼자 힘으로 상황을 뒤집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어 회사 전체가 불안에 휩싸였다.“이혼해서 회사 지분 챙긴 여자가 무슨 실력이 있겠어.”“우리 회사가 저 사람 손에 들어간 건 진짜 재수 없는 일이지.”“이 큰 그룹이 설마 망하는 건 아니겠지?”“이럴 때가 제일 인수당하기 쉬워. 그때 구조조정 들어가면 우리 다 실업자 되는 거야.”탕비실 앞에서 직원들의 불만을 듣고 있던 지나윤의 귀를 갑자기 큰 손이 덮었다.“걱정하지 마. 나랑 있으니까 아무 일도 없을 거야.”귀가 막혀 있었지만 지나윤은 백이천의 그 말을 분명히 들었다.그리고 백이천은 실속 없는 말만 하는 게 아니었다.백이천은 자신의 자금으로 위기 대응팀을 꾸리고, 인맥을 총동원해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을 불러 모았다.기술, 법률, 홍보 세 방향에서 동시에 대응하며 HF그룹의 이미지를 최대한 회복시키려 했다.동시에 지나윤은 주주총회를 직접 열어 주주들을 설득했다.신뢰를 잃고 서둘러 주식을 팔려는 주주들에게는, 모든 주주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개인 계좌로 두 배 가격에 그 주식을 사들였다.회사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그뿐만 아니라 지나윤은 자기 돈으로 핵심 임원과 기술 인력의 급여를 인상해 내부를 안정시켰다.이렇게 지나윤과 백이천이 안팎으로 동시에 힘을 쏟은 결과, HF그룹의 주가는 더 이상 떨어지지 않고 점차 안정세를 보였다.하지만 거기까지였다.깊은 밤.아무리 화려한 도시라 하지만 결국은 땅거미가 져 조용한 시간, HF그룹 본사 건물은 불이 꺼지고 직원들은 모두 퇴근한 상태였다.그러나 대표실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지나윤은 통유리 창 앞에 홀로 서서 불 꺼진 도시의 야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사실 지나윤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고 백이천도 끝까지 함께하려 했으나, 며칠째 밤을 새워가며 도와준 백이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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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4화

유시진은 지나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얇은 입술은 열리지 않았고 오히려 더 굳게 다물리며 날카로운 직선처럼 굳어졌다.유시진은 발걸음을 옮겨 한 걸음씩 지나윤에게 다가갔다.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점점 좁혀졌고 공기는 점점 묘하게 변해갔다.지나윤은 더 물러설 곳이 없었고 뒤에는 통유리 창뿐이었다.등이 차가운 유리에 닿는 순간, 유시진의 두 손이 지나윤의 머리 양옆을 짚었다.“왜 백기사를 받아들이지 않는 거지?”유시진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이번에는 감정이 분명히 담겨 있었다.지나윤은 유시진이 화가 나 있다는 것을 느꼈다.“나한테 다른 생각이 있어.”“백이천이 그렇게 하라고 한 거야?”두 눈이 마주쳤다.어둠처럼 깊은 유시진의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지나윤은 자신이 꿰뚫어 보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유시진의 목소리에는 분명한 질책이 담겨 있었다.지나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침묵은 곧 인정이었다.“회사가 이렇게 위태로운 상황인데, 백이천이 감정적으로 행동한다고 해서 너도 같이 감정적으로 움직이는 거야?”유시진의 질문에 지나윤은 짜증이 치밀었다.“HF그룹은 이제 네 회사 아니잖아. 네가 신경 쓸 필요 없어.”지나윤은 유시진을 밀어내려 했지만, 오히려 손목을 잡혀 그대로 통유리 창에 눌렸다.“지나윤, 백이천 그 정도 수로 지금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유시진은 지나윤이 잘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고 백이천 역시 최선을 다했다.단순히 스캔들이 터진 것뿐이었다면, 지금의 위기 대응과 법적 조치, 보상 방안만으로도 HF그룹을 다시 일으킬 수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사업가로서의 직감이 말했다.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그 페이퍼 컴퍼니, 세이만 테크놀러지는 사실 거대한 고래와 같다고.HF그룹 전체를 집어삼키지 않고서는 절대 멈추지 않을 존재였다.심지어 이번 일련의 위기조차 그 사람들이 설계했을 가능성이 높았다.적어도 스캔들이 터지기 전, 장우영은 이미 유시진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세이만 테크놀러지가 은행에서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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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5화

‘넌 내 것’이야 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이를 악물고 버텼지만, 유시진의 거칠고 유연한 혀는 결국 지나윤의 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거침없이 깊숙이 파고들었다.마치 지나윤의 입안을 완전히 뒤집어놓지 않으면 절대 멈추지 않겠다는 듯했다.입가를 따라 가느다란 침 줄기가 흘러내렸고, 억지로 벌어진 턱은 점점 더 시큰하게 아파왔다.유시진은 조금의 도망칠 틈도 주지 않은 채 통유리 창에 단단히 눌러 붙였다.등 뒤에 닿은 유리는 차가움에서 점점 뜨거워졌고 지나윤의 옷도 땀에 젖어 들었다.지나윤이 숨이 막힐 듯한 상태가 되고 나서야 유시진은 비로소 여자를 놓아주었다.짝하는 소리는 고요하던 사무실의 공기를 다르게 변화시켰다.그리고 그 소리와 함께 유시진의 얼굴이 한쪽으로 돌아갔다.지나윤은 전혀 힘을 빼지 않고 뺨을 때려서 그런지 손바닥마저 얼얼하게 저렸다.유시진은 고개를 다시 돌려 지나윤을 바라봤다.지나윤의 입술은 유시진에게 눌려 붉게 부어 있었고 눈가도 살짝 붉어져 있었다.이러한 상황에 유시진은 가슴이 마치 깨진 유리 조각에 긁힌 것처럼 아릿했다.“난 그저 널 도우려던 거야.”“입으로 도와?”지나윤의 목소리는 차가웠다.가슴은 분노 때문인지, 방금의 키스 때문인지 여전히 들썩이고 있었다.지나윤은 유시진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사무실 문을 가리켰다.“나가.”“지나윤...”“안 나가면 내가 나갈게.”지나윤의 눈빛은 차갑고 단호했다.곧 지나윤은 발걸음을 옮겨 유시진과 스쳐 지나가듯 걸어 나갔다.그리고 문을 닫는 순간, 유시진의 모습은 갑자기 작고 쓸쓸하게 보였다.C국.세브란 병원.이경성은 병상에 누워 있었고 이원호는 그 옆에 서 있었다.지금 C국은 새벽이라 병실 안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누렇게 빛나는 침대 옆 스탠드 불빛이 이경성을 비추고 있었다.원래도 마른 얼굴이었지만, 그 빛 아래에서는 더욱 야위고 초췌해 보여 마치 곧 쓰러질 듯한 모습이었다.이경성은 심장 발작으로 병원에 실려 왔는데 이유는 분노였다.그날, 이경성은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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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6화

“하지만 그 사람은 제가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거든요.”“저는 제 전처처럼 밖에서도 당당하고 집에서도 살림을 잘하는 여자를 좋아해요.”“그 사람은 요리도 아주 잘하고, 아내로서는 현명하고 가정을 잘 꾸렸고, 직업인으로서는 지적이고 능력도 뛰어나죠.”“세계적으로 유명한 주얼리 디자이너에 재능도 넘치고, 레이싱 실력까지 갖춘 사람이에요.”“C국 레이싱 여신이라 불리던 이안영 씨와 한 길거리 레이스에서도 이긴 적도 있고요. 그런 사람이야말로 제가 평생 결혼하고 싶은 여자예요.”“그리고 LY그룹 프로젝트 있잖아요. 분명 매력적인 건 맞지만 저는 필요 없어요.”“어르신께서는 차라리 그 프로젝트를 공개적으로 경쟁하게 하는 게 나을 거예요. 옛날 무술대회처럼 사위를 뽑는 방식 말이에요.”“그러면 이안영 씨도 금방 시집갈 수 있겠죠.”“그리고 HF그룹은 제가 전처에게 준 거라서 애초에 다시 빼앗을 생각도 없어요.”“방금 말한 걸로도 충분히 이해가 안 된다면, 마지막으로 더 솔직하게 말할게요. 이씨 집안은 저랑 급이 안 맞는 것 같아요.”“그러니 헛된 기대는 접는 게 좋을 거예요!”이경성은 유시진이 자신의 앞에서 이렇게까지 막말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그래서 그 자리에서 화를 이기지 못해 심장 발작이 왔고 결국 병원으로 실려 갔다.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고, 안정을 취하며 회복하면 되는 상태였다.“아버지, 한 가지 부탁드릴 게 있어요.”이원호는 이경성 앞에 서서 자세를 낮췄고 말투 역시 한껏 조심스러웠다.이씨 집안은 자식들을 항상 억누르는 방식으로 교육해 왔다.이경성은 그중에서도 특히 더 엄격했다.지금 이씨 집안이 C국의 갑부가 되기까지 이 모든 것은 모두 이경성 덕분이었다.이원호의 현재 위치 역시 이경성의 말 한마디에 달려 있었다.그래서 이원호는 한 번도 이경성에게 반기를 든 적이 없었고, 무언가를 요구해 본 적도 거의 없었다.병실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이경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이원호는 마른침을 한 번 삼켰다.“채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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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7화

지나윤은 문지혁을 찾아갔다.“아시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지나윤 씨를 돕고 싶은 마음이 커요.”문지혁의 사무실에 앉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지나윤은 문지혁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HF그룹은 누가 봐도 누군가에게 당한 상황이에요. 일이 너무 갑작스럽게 터졌고, 문화국제교육 쪽은 유동 자금이 부족해요.”“게다가 이사회 쪽에서도 HF그룹의 사업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요. 문화국제교육이 백기사로 들어가기에는 솔직히 좀 어려워요.”“네, 알아요...”지나윤은 고개를 숙였다.“하지만...”문지혁의 큰 손이 지나윤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그 고리타분한 사람들은 내가 회사 돈을 쓰는 걸 반대했지만, 내 개인 명의 자산은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어요. 360억 정도는 마련하는 데 문제없어요.”지나윤은 눈을 들어 올렸다.금테 안경 너머로 보이는 문지혁의 두 눈은 여우처럼 웃고 있었다.‘360억...’아무리 들어도 이 숫자는 그냥 툭 나온 말처럼 들리지 않았다.그러니까 지나윤이 도움을 청하러 오기 전부터, 문지혁은 이미 가능한 한 돕기 위해 유동 자금을 준비해 두고 있었던 것이다.그런 생각이 들자 지나윤은 마음이 순간 따뜻해졌다.“문지혁 씨, 저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네요.”“입 한번 맞춰줘요.”문지혁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지나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그러나 지나윤의 겁먹은 표정을 본 문지혁은 깊게 숨을 내쉬었고 속이 조금 상한 듯했다.“볼에 하는 것뿐인데 그렇게까지 기겁할 필요 있어요?”문지혁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볼을 가리켰다.지나윤은 입술을 꾹 다문 채 여전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됐어요, 됐어요. 내가 하면 되잖아요?”말을 마치자 문지혁은 지나윤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옥처럼 희던 지나윤의 뺨이 붉어지는 것을 본 문지혁은 가볍게 헛기침을 두 번 했다.“유혹하지 마요. 안 그러면 내가 사고 쳐도 다 지나윤 씨 책임이에요.”지나윤은 어이없이 웃었다.입으로는 사고를 운운하면서도 문지혁은 지나윤과 거리를 뒀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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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8화

공격적인 인상이었던 유시진의 얼굴은 평온했으나, 늘 온화하고 단정하던 백이천은 미간을 찌푸린 채, 당장이라도 유시진을 죽여버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할 말 있으면 빨리하세요.”백이천이 먼저 입을 열었는데 목소리에는 인내심이 거의 담겨 있지 않았다.유시진은 서두르지 않고 찻잔을 들어 말차를 한 모금 마셨다.“아직 요리가 나오지도 않았잖아요.”“우리 둘이 같이 밥 먹을 사이였나요?”백이천의 날카로운 질문에도 유시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때, 직원이 미닫이문을 열고 요리를 하나씩 내왔다.유시진이 서두르지 않자 백이천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식사에 집중하기로 했다.이 식사는 유시진이 먼저 제안한 자리였다.원래 백이천은 거절할 생각이었지만 유시진이 왜 자신을 불렀는지 알고 있었기에, 곧바로 승낙했다.일식집을 고른 것도 유시진이 취향을 묻자, 대충 담백한 음식을 좋아한다고 답했기 때문이었다.백이천은 킹크랩 다리를 하나 떼어냈고, 먹으면서도 맞은편에 앉은 유시진을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봤다.유시진이 자신을 부른 이유는 분명 지나윤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이 자리에 나온 것이다.유시진은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차를 다 마신 뒤, 가방에서 서류 하나를 꺼냈다.“세이만 테크놀러지는 여러 층으로 얽힌 페이퍼 컴퍼니예요. 조사해 보니 제일 꼭대기 회사는 레이즈그룹이라는 곳이고 등록지는 M국이에요.”“관련 자료는 전부 이 안에 있어요. 당신이 가진 인맥을 동원해서 지나윤 씨와 함께 그쪽으로 가보면, 고진수 신분을 도용한 산업 스파이를 잡을 수도 있을 거예요.”백이천은 조용히 음식을 먹으면서 유시진의 말을 듣고 있었다.그러나 시선은 무심한 듯 유시진이 들고 있는 서류로 향했다.백이천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유시진이 말을 이었다.“그리고 H섬의 세그닉스바이오 컴퍼니도 백기사로 끌어들일 수 있어요.”백이천이 살짝 눈을 들어 올렸다.“세그닉스바이오 컴퍼니라면 H섬 최고 갑부 존의 회사잖아요.”말하던 중, 백이천은 문득 깨달은 듯 눈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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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9화

“유시진 씨, 생각해 본 적 있어요? 저는 애초에 HF그룹이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길 바랐어요.”유시진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그건 당신이 나윤이에게 일부러 남겨준 회사잖아요. 정말 잃게 된다 해도 저는 아쉽지 않아요. 오히려 더 기쁠 거예요.”“유시진 씨한테는 회사가 중요하겠지만, 제 눈에는 나윤이만 중요하거든요.”“저는 나윤이가 다시는 당신과 얽히는 걸 원하지 않아요.”“HF그룹이 없어지면, 유시진 씨도 뻔뻔하게 나윤의 곁에 붙어서 비서 노릇을 할 이유가 없어지잖아요.”“그리고 나윤이도 유시진씨가 과거에 자신을 위해 빈털터리로 나갔다는 걸 계속 떠올리지 않게 될 테니까요.”백이천의 말은 노골적이면서도 솔직했다.이는 지나윤 앞에서는 결코 입 밖에 내지 않을 말이었다.유시진은 찻잔을 들어 올렸지만 이미 차는 비어 있었다.백이천이 자신이 손대지 않은 찻잔을 밀어 유시진 앞으로 내밀었다.“더 이상 나윤이가 유시진 씨에게 빚지게 하지 마세요. 아무리 베풀어도 나윤이는 당신을 다시 사랑하지 않을 거예요.”“모든 잘못이 돈으로 갚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이 말에는 유시진도 동의하고 있었다.유시진은 백이천이 건넨 차를 한 모금 마셨는데 이미 식어버린 뒤였다.“두 사람은 정말 절친답네요. 생각하는 것도 똑같고요. 내가 베풀면서 대가를 바란다고 생각하는 건가요?”“당신은 자선가가 아니라 사업가잖아요.”백이천의 말을 들은 유시진은 웃었다.여유롭던 백이천은 그 웃음을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유시진은 늘 사람에게 안정감을 주는 유형이었다.마치 태산이 무너져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사람이었다.그리고 저렇게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듯한 웃음을 지을 때, 유시진의 상대는 대개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했다.유시진은 그렇게 미소를 띤 채, 다시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이번에는 서류가 아니라 계약서였다.“좋은 일식집은 많아요. 제가 왜 하필 여기, 그것도 B시에 온 건지 아세요?”백이천은 유시진의 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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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0화

유시진의 담담한 말이 끝나자마자, 백이천은 양복 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 남자가 건넨 서류에 서명했다.“기억해요. 이번 일은 당신이 도운 거고, 저는 단순한 자문일 뿐이에요. 보수도 받았고요. 우리는 서로 빚진 게 없어요. 어디까지나 비즈니스일 뿐이에요.”유시진은 서류를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백이천이 청수원을 나설 때쯤, 그레이 코닉세그 게메라는 이미 자취를 감추고 없어졌다.C국.이안영은 호텔에서 오현준을 따로 불러 만났다.“오 변호사님, 앉으세요. 그렇게 긴장하지 않으셔도 돼요.”오현준은 LY그룹이 고용한 수석 변호사이자, 이경성이 가장 신뢰하는 변호사였다.잘 다려진 정장을 입은 오현준은 전형적인 법조계 엘리트처럼 보였고, 표정 또한 엄격하고 흐트러짐이 없었다.하지만 지금 이안영 앞에 선 오현준은 어딘가 어색했고, 손발 둘 곳을 모를 정도로 긴장한 모습이었다.객실은 스위트룸으로 내부는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이안영은 소파에 몸을 편하게 기대고, 손에는 샴페인 잔을 들고 있었다.이안영의 차림은 오현준과는 극명하게 대비됐다.오현준이 셔츠와 정장으로 몸을 단단히 감싸고 있다면, 이안영은 거의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것과 다름없는 모습이었다.짙은 붉은색 슬립을 입고 있었는데, 안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치마 길이는 짧아 허벅지까지 올라왔고 깊게 파인 V넥은 가슴을 거의 드러낼 듯 아슬아슬했다.수용 레이스 소재라 몸에 밀착되며 반투명하게 비쳐 차라리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보다 더 자극적이었다.오현준은 몇 번이나 침을 삼켰다.앉으라는 말을 들었지만 도저히 앉을 수 없었다.얼굴이 붉어졌다가 하얘졌다가 하는 오현준을 보며, 이안영은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리고 가느다란 손으로 오현준의 넥타이를 잡아당겼다.“오 변호사님, 오늘 제가 왜 부른지 아세요?”이안영의 태도는 매혹적이었지만, 말투와 눈빛에는 노골적인 욕망과 압박이 담겨 있었다.오현준은 이경성이 이안영을 양녀로 들이겠다고 했을 때부터, 보통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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