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진의 담담한 말이 끝나자마자, 백이천은 양복 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 남자가 건넨 서류에 서명했다.“기억해요. 이번 일은 당신이 도운 거고, 저는 단순한 자문일 뿐이에요. 보수도 받았고요. 우리는 서로 빚진 게 없어요. 어디까지나 비즈니스일 뿐이에요.”유시진은 서류를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백이천이 청수원을 나설 때쯤, 그레이 코닉세그 게메라는 이미 자취를 감추고 없어졌다.C국.이안영은 호텔에서 오현준을 따로 불러 만났다.“오 변호사님, 앉으세요. 그렇게 긴장하지 않으셔도 돼요.”오현준은 LY그룹이 고용한 수석 변호사이자, 이경성이 가장 신뢰하는 변호사였다.잘 다려진 정장을 입은 오현준은 전형적인 법조계 엘리트처럼 보였고, 표정 또한 엄격하고 흐트러짐이 없었다.하지만 지금 이안영 앞에 선 오현준은 어딘가 어색했고, 손발 둘 곳을 모를 정도로 긴장한 모습이었다.객실은 스위트룸으로 내부는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이안영은 소파에 몸을 편하게 기대고, 손에는 샴페인 잔을 들고 있었다.이안영의 차림은 오현준과는 극명하게 대비됐다.오현준이 셔츠와 정장으로 몸을 단단히 감싸고 있다면, 이안영은 거의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것과 다름없는 모습이었다.짙은 붉은색 슬립을 입고 있었는데, 안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치마 길이는 짧아 허벅지까지 올라왔고 깊게 파인 V넥은 가슴을 거의 드러낼 듯 아슬아슬했다.수용 레이스 소재라 몸에 밀착되며 반투명하게 비쳐 차라리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보다 더 자극적이었다.오현준은 몇 번이나 침을 삼켰다.앉으라는 말을 들었지만 도저히 앉을 수 없었다.얼굴이 붉어졌다가 하얘졌다가 하는 오현준을 보며, 이안영은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리고 가느다란 손으로 오현준의 넥타이를 잡아당겼다.“오 변호사님, 오늘 제가 왜 부른지 아세요?”이안영의 태도는 매혹적이었지만, 말투와 눈빛에는 노골적인 욕망과 압박이 담겨 있었다.오현준은 이경성이 이안영을 양녀로 들이겠다고 했을 때부터, 보통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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