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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잃고서야 알았던 사랑: Chapter 701 - Chapter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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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1화

장전웅은 팔짱을 낀 채 눈을 가늘게 뜨고 지나윤을 바라봤는데 얼굴에는 오만함이 가득했다.하지만 지나윤은 딱히 화를 내지 않았다.오히려 먼저 테이블 위에 놓인 기획서를 다시 집어 들었다.“작가님, 그럼 이거 한번 봐주시죠. 저와 협업하면 서로 윈윈이에요.”“저작권 비용이든 이후 마케팅이든 전부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될 거예요.”“그런 이야기 말고요.”장전웅은 손으로 기획서를 밀어냈다.“나한테 제안하는 곳이 어디 한두 군데인 줄 아세요? 게다가 저 같은 유명 작가는 돈도 안 부족해요.”지나윤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장전웅을 바라봤다.그리고 얼굴에 점점 음흉한 기색이 떠오르는 걸 본 순간, 장전웅이 무슨 뜻으로 저러는지 바로 알아차렸다.“지 대표님은 똑똑한 사람이니까, 돈 말고도 다른 걸로 이야기할 수도 있잖아요...”장전웅은 그렇게 말하며 두 손을 지나윤 쪽으로 뻗었다.순간 지나윤은 장전웅 손목을 붙잡아 그대로 뒤로 꺾었다.“악!”장전웅은 얼굴을 찌푸리며 비명을 질렀다.“작가님.”지나윤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경찰서 가서 사업 이야기 나누고 싶으시면 제 경호원이 직접 모셔다드릴 수 있어요.”말을 끝낸 지나윤은 손을 놓아버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대로 장전웅 집을 나왔다.그날 밤, 장전웅 집에는 또 다른 손님이 찾아왔다.“역시 이안영 대표님은 상황 판단이 빠르시네요...”이안영은 장전웅 무릎 위에 앉아 있었다.붉은 네일이 칠해진 손끝으로 장전웅 턱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작가님. 저한테서 뭘 얻고 싶으면 먼저 제 요구부터 들어주셔야죠.”장전웅은 이안영 쪽으로 몸을 기대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알았어요. 다 대표님 말씀대로 할게요.”“전부 다요.”다음 날.고도겸은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지나윤이 와 있는 걸 보고 놀랐다.“무슨 일이세요? 대표님?”“유 대표님이랑 백 박사님이 HF그룹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무서워서 여기로 도망오신 거예요?”지나윤은 손에 들고 있던 기획서를 그대로 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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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2화

장전웅의 말에 지나윤과 고도겸은 동시에 놀랐다.그래도 장전웅 쪽에서 먼저 한발 물러난 이상, 지나윤 역시 이 협업을 계속 추진하고 싶었다.“앞으로 작가님이랑 이야기하는 건 제가 맡을게요.”고도겸은 지나윤을 바라보며 말했다.“대표님은 다시 그 사람이랑 만나지 마세요. 괜히 또 이상한 마음 품을 수도 있으니까.”고도겸다운 세심한 배려였다.그렇게 이후 장전웅과의 협의는 전부 고도겸이 맡게 되었고, 지나윤은 디자인 작업에만 집중했다.고도겸은 매일 진행 상황을 지나윤에게 보고했고 양측 분위기는 꽤 좋았다.다만 장전웅이 해외 일정으로 출국한 상태라 최종 계약은 귀국 후 진행하기로 했다.그 후 거의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JNY 아뜰리에의 모든 업무 중심은 장전웅과의 협업 시리즈에 맞춰졌다.그 사이 유시진과 백이천은 여러 번 지나윤을 찾아왔다.하지만 지나윤은 새 시리즈 디자인에만 집중하고 싶었고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결국 두 사람의 약속 제안도 전부 거절했다.한여름, 강렬한 햇살이 쏟아지는 오후였다.그린필드 골프클럽.문지혁의 공이 그대로 홀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주변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곧 문지혁은 금테 안경을 벗어 땀을 닦은 뒤 다시 안경을 쓰고는 맞은편 유시진의 잔뜩 굳은 얼굴을 발견했다.“고작 한 번 진 거로 얼굴이 이렇게 죽상이 된다고?”문지혁은 유시진 옆으로 다가와 어깨를 툭 쳤다.“지나윤이 요즘 연락 안 받아줘서 기분 안 좋은 거야? 골프 실력까지 많이 떨어질 정도로?”“네가 말 안 한다고 해도 아무도 네가 벙어리라고 생각 안 해.”유시진은 차갑게 받아쳤다.최근 기분이 안 좋은 건 사실이었다.벌써 며칠째 지나윤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또한 지나윤은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거의 작업실에서 살다시피 하는 것 같았다.한 번은 참지 못하고 백이천에게 전화까지 걸었다.백이천은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말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지나윤은 백이천조차 거의 만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좋아하는 사람이 일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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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3화

‘왜 그런 걸까?’우원재는 턱을 만지며 잠시 고민했다가 갑자기 무언가 깨달은 듯 말했다.“아, 알겠네. 둘 다 지나윤한테 차였으니까 그런 거네.”말이 끝나고 나서야 우원재는 자신이 속마음을 그대로 내뱉었다는 걸 깨달았다.그러나 유시진과 문지혁은 한참 전부터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왜?”우원재는 뒤통수를 긁적였다.“사실 맞잖아.”문제는 지나윤이 자기 역시 안 좋아한다는 점이었다.그 사실까지 떠오르자 우원재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곧 유시진은 와인을 한 모금 마신 뒤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이제 말해. 오늘 나 부른 이유가 뭐야?”문지혁은 턱을 괸 채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그냥 보고 싶어서 불렀는데 그러면 안 돼?”그 말에 우원재는 입에 머금고 있던 와인을 그대로 뿜어버렸고, 사레까지 들렸는지 기침까지 했다.“그럼 아쉽네.”유시진은 무표정하게 말했다.“난 우원재만 보고 싶었는데.”옆에서 유시진이 어깨를 툭 치자 우원재 얼굴 근육이 그대로 굳었고, 그 모습에 문지혁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한참 웃던 문지혁은 그제야 본론을 꺼냈다.“별건 아니고, 너도 알지? JNY 아뜰리에. 이번에 휴고상 받은 그 SF 작가랑 협업 준비 중인 거.”“장전웅 작가?”우원재가 옆에서 끼어들었다.“나 그 사람 책 읽어봤어. 「빅뱅」.”말을 하던 우원재는 갑자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근데 솔직히 블랙디 스타일이랑 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블랙디는 또 누구야?”문지혁이 궁금하다는 듯 묻자 우원재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너 소설 안 봐?”“블랙디는 QD그룹 SF 쪽 유명 작가야.”문지혁은 곧바로 질린 눈빛으로 우원재를 바라봤다.“그러니까 네 아버지가 너더러 맨날 정신 좀 차리라고 하는 거야.”“아니 소설 보는 게 어떻게 정신 못 차리는 거야?”우원재가 억울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나중에 제가 QD그룹 인수할 수도 있잖아.”“우원재, 조용히 해.”옆에서 유시진이 한마디 하자 우원재는 바로 입술을 손으로 눌러버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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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4화

장전웅은 A국 작가였지만, 남자가 쓴 SF 소설은 P국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다.특히 「빅뱅」은 베스트셀러를 넘어 거의 신드롬 수준이었다.그래서 이번 독자 사인회 역시 P국에서 열리게 된 것이었다.지나윤 역시 원래부터 장전웅의 독자였고, 게다가 장전웅 담당 편집자까지 직접 연락해 초청장을 보내왔다.물론 전에 장전웅에게 한 차례 불쾌한 일을 당한 적은 있었지만 이번은 공개적인 독자 사인회였다.이렇게 사람 많은 자리에서까지 장전웅이 함부로 행동하진 못할 거라 생각했다.무엇보다 이번에는 경호원도 두 명이나 데리고 왔다.장전웅은 역시 지금 가장 잘나가는 작가다운 인기를 자랑했고, 특히 P국에서 그 열기는 상상 이상이었다.지나윤은 담당 편집자를 따라 행사장 안으로 들어갔다.가는 곳마다 「빅뱅」과 장전웅 광고가 눈에 띄었다.사인회 장소는 국제호텔 로열 파티장이었고, 초청받은 사람들 대부분은 P국 정재계 인사들이었다.일반 독자는 추첨으로 뽑힌 극소수만 참석 가능했다.그러던 중 지나윤은 사람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 하나를 발견했다.바로 이안영이었다.오늘 이안영은 노출이 심한 드레스를 입진 않았지만 정장은 여전히 화려했다.강렬한 핫핑크 컬러, 너무 눈에 띄어서 지나윤도 바로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지나윤은 이안영이 장전웅 팬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그 순간 이상하게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독자 사인회는 순조롭게 진행됐고 네 번째 순서 장전웅의 연설이 시작됐다.장전웅은 열정적인 척 목소리를 높이며 연설을 이어갔다.하지만 지나윤 귀에는 그 말들이 전부 겉만 번지르르한 이야기처럼 들렸고, 딱히 진정성도 느껴지지 않았다.“마지막으로...”장전웅은 일부러 말을 끊자 순간 파티장 전체가 조용해졌다.지나윤은 무대 위 장전웅을 올려다봤는데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잠깐 마주쳤다.그리고 이어진 장전웅의 웃음, 아주 불쾌한 웃음을 보았다.그 미소를 보는 순간 지나윤 팔에 소름이 돋았다.“이번 휴고상을 받은 제 작품 「빅뱅」은...”“앞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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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5화

그리고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진짜 협업 상대를 공개해 자신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주려 했던 것이다.지나윤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솔직히 말해 전혀 충격받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지나윤은 정말로 장전웅의 「빅뱅」을 좋아했고, 이번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에도 진심이었다.영감도 넘쳐서 이미 수많은 협업 디자인까지 구상해 둔 상태였다.그런데 전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지나윤은 몸을 돌렸고 실망이 가득 담긴 뒷모습이 천천히 멀어졌다.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안영 입가에는 더욱 짙고 화려한 미소가 번졌다.경호원의 호위를 받으며 지나윤은 국제호텔을 빠져나왔지만 곧바로 귀국하진 않았다.계속 생각했다.한참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었다.지나윤은 카페의 하얀 테라스에 서 있었다.한 손으로 석조 난간을 짚은 채 아래 펼쳐진 번화한 거리 풍경을 내려다봤다.그때 휴대폰이 울렸고, 발신인을 본 지나윤은 조금 놀랐다.“우원재?”[응, 나야. 지금 어디야?]“P국 카페에 있어.”지나윤은 솔직하게 답했다.[형이 전화 안 했어?]갑자기 유시진 이야기가 나오자 지나윤은 순간 멈칫했다.“아니? 대신 고도겸한테 연락은 왔어.”지나윤은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고도겸이 전화로 ‘유 대표님 비서’ 이야기했던걸.그 말을 들었을 때 원래 이 소식을 유시진이 직접 자신에게 알려주려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그럼 C국 LY그룹이 너를 노리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거네?]“응. 장전웅이 이미 LY그룹이랑 협업한다고 발표했어. 내 SF 시리즈는 완전히 엎어진 셈이지.”지나윤 목소리에서 실망감이 느껴지자 우원재는 급히 분위기를 띄웠다.[왜 엎어져? 넌 그냥 SF 작가랑 협업하고 싶었던 거잖아. 내가 한 명 추천해 줄게.][QD그룹 쪽 유명 작가 블랙디, 장전웅한테 절대 안 밀려. 내가 보기엔 둘이 스토리 짜는 스타일도 좀 비슷하다니까?]지나윤은 피식 웃었다.웹소설을 무시해서가 아니었지만 장전웅은 휴고상 수상 작가고,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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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6화

하얀 테라스는 노을빛에 물들어 주황빛으로 반짝였는데 마치 묘한 분위기의 얇은 베일이 덮인 것 같았다.남자는 새하얀 셔츠를 입고 있었다.위쪽 단추 세 개가 풀려 있었고, 그 사이로 선명한 쇄골이 아슬아슬하게 드러났다.저녁 바람이 짧은 머리를 흐트러뜨렸고, 흩어진 머리카락이 이마 위로 내려앉아 오히려 더 시선을 끌었다.지나윤은 천천히 눈을 들어 올리자. 레스토랑 안에서는 수많은 시선이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하지만 지나윤은 사람들이 보는 걸 자신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전부 자기 옆에 서 있는 이 남자를 보고 있었다.지나윤 기억 속 유시진은 늘 정장을 입고 있었고, 이렇게 셔츠만 단독으로 입은 모습은 드물었다.게다가 단추까지 몇 개나 풀려 있는 것으로 봤을 때는 누가 봐도 의도적으로 이렇게 입은 것이 분명했다.“어떻게 여기까지 왔어?”지나윤이 먼저 입을 열자 유시진은 고개를 돌렸고, 짙고 깊은 눈동자 안에 지나윤 모습이 담겼다.“당연히 너 보러 왔지. 한참 전부터 네 옆에 있었는데 너는 전화만 하느라 나 못 봤잖아.”우원재와 통화를 끝내자마자 또 고도겸과 통화했다.그런 지나윤을 바라보는 유시진 얼굴에는 묘하게 서운한 기색이 어려 있었다.“미안. 진짜 못 봤어.”“내 존재감이 그렇게 없었나?”원래 유시진은 어디를 가든 존재감이 강한 사람이었지만 지나윤은 정말 온 정신이 새 프로젝트 기획에 쏠려 있었다.“그럴 수도 있지.”지나윤 대답에 유시진은 미간을 찌푸렸다.유시진은 자신이 존재감 없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지나윤이 자신을 못 봤다는 건 결국 지나윤 눈에 자신이 안 들어온다는 뜻이었다.유시진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해가 완전히 저물어가며 주변도 점점 어두워졌다.“오늘 여기서 묵을 거야?”유시진이 묻자 지나윤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저었다.“아니, 돌아갈 거야.”“같이 가.”“그래.”지나윤은 유시진과 함께 가는 걸 거절하지 않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유시진은 대체 무슨 의미로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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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7화

“단 거 좀 먹을래?”지나윤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순간 흠칫했다.유시진과 거리가 너무 가까워지자 지나윤은 곧바로 당황해서 다시 고개를 돌려버렸다.유시진은 지나윤의 불편함을 눈치챈 듯 옅게 웃으며 살짝 거리를 벌렸다.“좀 피곤해 보여서. 단 거 먹으면 피로 풀리잖아.”“괜찮아. 단 거 먹으면 졸릴 것 같아.”“그러면 과일은?”“과일은 괜찮은데 비행기에 있어? 없으면 잠깐 세워서 사 오면 되지.”유시진 말에 지나윤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비행기인데 무슨 자전거도 아니고.’세운다는 말이 너무 어이없었다.“그냥 있는 거 아무거나 먹을게.”유시진은 역시 지나윤이 까다롭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잠시 후 직원이 포도 두 송이를 가져왔다.청포도와 보라색 포도였다.유시진은 원래 지나윤에게 어느 쪽을 먼저 먹을지 물으려 했으나, 지나윤은 어느새 새로운 디자인 영감이 떠오른 듯 스케치에 완전히 집중하고 있었다.결국 유시진은 묻지 않고 보라색 포도 한 알을 따서 천천히 껍질을 벗기고는 자연스럽게 지나윤 입가로 가져갔다.지나윤은 순간 멈칫하며 유시진을 바라봤지만 남자의 표정은 너무도 태연했다.마치 직접 포도를 까서 먹여주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듯했다.“내가 먹을게.”“너 그림 그리고 있잖아.”“그냥 내가 해.”“그래도...”“괜찮아.”“원래 나 포도 까는 거 좋아해. 너 때문에 하는 거 아니야.”지나윤은 순간 어이가 없었다.유시진을 이렇게 오래 알았는데 포도 까는 게 취미라는 건 처음 들었다.묘하게 어색하긴 했지만 결국 지나윤은 입가에 닿은 포도를 받아먹었다.포도는 달고 과즙이 풍부했다.유시진은 이번엔 청포도 한 알 따서 다시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지나윤은 그림을 그리면서도 계속 유시진에게 포도를 받아먹자 가슴 한쪽이 묘하게 흔들렸다.유시진이 직접 포도를 까서 자신에게 먹여주는 날이 올 줄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유시진...”지나윤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조용히 말했다.“억지로 안 어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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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8화

“괜찮아.”유시진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잠깐 기대 있었던 정도였으니까.”그 말 속에 얼마나 진심이 담겨 있는지 지나윤은 굳이 따져보고 싶지 않았다.두 사람은 비행기 안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기는 A시 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집 들러서 씻고 옷 갈아입고 와. 내가 만나게 해줄 사람 있거든.”유시진 말을 들은 지나윤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유시진 본인은 명령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 수도 있었지만 저런 말투는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지시받는 기분 들게 했다.“왜 그래?”유시진은 지나윤 표정 변화를 바로 눈치챘다.“나 중요한 일 많아. 같이 안 가도 될 것 같은데.”“지나윤.”몸을 돌리려는 순간 지나윤 손목이 유시진 손에 붙잡혔다.“우원재가 말한 그 웹소설 작가 블랙디 만나러 가는 거야.”막 손을 빼려던 지나윤은 그대로 멈췄고, 결국 지나윤은 유시진과 따로 움직이려던 계획을 접었다.두 사람은 먼저 삼호거리로 돌아갔는데, 각자 집에서 씻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서였다.현관문 앞에서 도어락을 누르던 유시진이 고개를 돌렸다.“이럴 때 이웃의 장점이 드러나는 거지.”지나윤은 유시진을 힐끗 바라봤다.“가는 길이 같아서?”유시진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아주 빨리 널 다시 볼 수 있다는 거.”말을 마친 유시진은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갔고, 지나윤은 조용히 한숨을 내쉰 뒤 자기 집 문을 열었다.샤워를 마치고 옷까지 갈아입은 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현관문을 열었다.그리고 복도에서 다시 마주쳤다.“봐.”유시진 입가에는 옅은 웃음이 걸려 있었다.“다시 만나는 속도 엄청 빠르지?”지나윤은 그런 유시진을 무시한 채 담담하게 말했다.“가자.”블랙디 집으로 향하는 차 안. 지나윤은 문득 궁금해져 유시진을 바라봤다.“내가 블랙디 찾으려는 건 어떻게 알았어? 통화 엿들었어?”“엿들은 게 아니라 당당하게 들은 건데?”유시진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네가 전화하느라 정신없어서 날 못 본 거지.”말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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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9화

하지만 사실 유시진과 지나윤은 정말 묘하게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골프장에서 우원재가 블랙디 이야기를 꺼낸 순간부터 유시진은 이미 지나윤이 블랙디와 협업을 선택할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유시진은 지나윤은 넘어진 자리에서 반드시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라는 걸 믿고 있었다.이안영이 중간에서 훼방을 놓고 장전웅을 가로챘다면, 지나윤은 분명 다른 사람을 찾아 협업할 것이다.절대 SF 콘셉트 신제품 프로젝트를 그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짙은 회색 코닉세그가 도로 위를 빠르게 질주했다.한 시간쯤 지났을 무렵, 지나윤은 유시진이 서서히 속도를 줄이고 있다는 걸 느꼈다.“거의 다 왔어?”지나윤은 고개를 기울여 차창 밖을 바라보자 밖에는 정용빌딩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바로 장전웅 작업실이 있는 곳이었다.“여긴 왜 온 거야?”지나윤은 유시진을 바라보며 물었다.“여기 장전웅 작업실 아니야?”유시진은 바로 대답하지 않은 대신 차를 세운 뒤 지나윤을 바라보며 되물었다.“나 믿어?”지나윤은 유시진 얼굴에 떠오른 옅은 미소를 바라보더니 힘주어 고개를 저었다.“안 믿어.”지나윤은 그렇게 말하면 유시진 기분이 상할 줄 알았으나 오히려 유시진 입꼬리는 더 짙게 올라갔다.곧 유시진은 몸을 기울여 지나윤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나도 안 믿는데?”그 순간 지나윤은 알아차렸다.유시진이 말한 안 믿는다는 건, 지나윤이 정말 자신을 안 믿는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걸.귓가에는 아직도 유시진 숨결이 남아 있는 것 같자, 지나윤은 급히 유시진을 밀어낸 뒤 차에서 내렸다.웅장한 정용빌딩이 눈앞에 서 있었고, 지나윤은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니라는 걸 확신했다.여기는 확실히 장전웅 작업실이 있는 곳이었다.예전에 장전웅이 협업하는 척했을 때 지나윤은 꽤 많은 준비를 했었고, 고도겸과 함께 이곳에도 여러 번 찾아왔었다.당시 장전웅은 해외에 있었기에 성희롱 같은 문제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작업실 직원들과도 한두 번 정도는 전부 마주친 적이 있었고, 적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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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0화

네 시간이 흐른 뒤, 지나윤과 유박문은 분식집 앞에서 헤어졌다.“바로 답 주실 필요는 없어요. 며칠 천천히 고민해 보시고 결정되면 연락 주세요.”“네, 네...”유박문은 목덜미를 긁적이며 얼굴을 살짝 붉혔다.“그럼 안녕히 가세요, 대표님.”“잘 가요.”유박문이 몸을 돌려 정용빌딩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지나윤도 천천히 돌아섰다.그리고 그제야 유리창에 기대 조용히 서 있는 유시진을 발견했다.“왜 아직 여기 있어?”유시진은 고개를 돌려 지나윤과 눈을 마주쳤다.“기다리고 있었어.”“설마 네 시간 동안 여기 서 있었던 거야?”“응.”유시진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차 안에서 기다리면 됐잖아.”유시진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지나윤 앞으로 다가오더니, 반걸음 정도 남았을 때 살짝 고개를 숙였다.지나윤은 순간 유시진 이마가 자기 이마에 닿을 줄 알았다.“감동받게 하고 싶었거든.”바로 눈앞에 있는 검은 눈동자는 별빛처럼 반짝였고, 얇은 입술 끝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지나윤은 자꾸만 유시진이 일부러 자신을 유혹하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그럼 실망했겠네.”지나윤은 일부러 차갑게 말하며 유시진을 밀어내고는 곧장 차 쪽으로 걸어갔다.유시진은 그런 지나윤 뒤를 조용히 따라갔고 입가에는 씁쓸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시내로 돌아왔을 땐 어느새 저녁 시간이 가까워져 있었다.“같이 밥 먹을래?”유시진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태도 역시 진심이 담겨 있었지만 지나윤은 고개를 저었다.“안 돼. 고도겸이랑 약속 있어서 회사 식당에서 먹기로 했어.”지나윤이 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손목이 갑자기 붙잡혔다.길고 짙은 속눈썹 아래로 지나윤 시선이 유시진에게 향했고 남자의 눈빛에는 아쉬움이 스쳐 지나갔다.“블랙디 작품. 돌아가면 꼭 읽어봐.”유시진 말에 지나윤은 잠시 멈칫했다.“당연하지. 협업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작품은 제대로 읽어봐야지.”말을 마친 지나윤은 손목을 비틀어 유시진 손에서 빠져나왔다.“오늘 도와줘서 고마웠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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