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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봄 옷을 벗다: Chapter 61 - Chapter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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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화

그들은 정자나 호수로는 가지 않고, 곧바로 무성한 나무 아래로 향했다.세 명의 어른과 한 명의 아이가 그늘에 섰고, 귓가에는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사각거리는 소리와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빨리, 빨리, 물건을 꺼내거라!” 육승호가 양산을 휘저으며 소리쳤다.규안이 손에 든 크고 작은 물건들을 내려놓고는 난처한 표정으로 하진을 바라보았다.하진은 규안이 벌레를 몹시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얼굴 가리개를 벗고 소매를 걷어 올렸다.육승호가 다가와 물었다. “매미를 잡을 줄 아세요?”“잡아본 적은 없지만, 시도는 해 볼 수 있다.” 하진은 예전에 집안의 몸종들이 매미 잡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육승호도 그녀를 따라 소매를 걷어 올리더니, 허리에 손을 짚고 눈살을 찌푸리며 하진을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아무 감흥이 없던 하진은 아이의 얼굴에 승부욕이 생겼다. “뭐 어려울 게 있느냐? 그저 밀가루 풀을 대나무 장대에 바르고, 매미의 몸에 쿡 찔러 붙이면 된다. 자, 어떻게 하는지 잘 보거라.”하진은 항아리에서 밀가루 풀을 꺼내 대나무 장대 끝에 붙였다.“정말 잡을 수 있을까요?” 육승호는 여전히 의심스러웠다.하진은 장대를 들고 나무 아래로 걸어가며 미소를 지었다. “잘 보거라.”나무 위의 매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갑자기 조용해졌고, 오직 나뭇잎이 뒤집히는 사각거리는 소리만 들렸다.하진은 나무 아래에서 목을 젖힌 채 유심히 나무줄기와 나뭇가지 끝에 붙어 있는 작은 매미들을 찾았지만, 한참을 보아도 한 마리도 찾을 수 없었다.육승호가 옆에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요! 저기에 한 마리 있습니다!”하진은 몸을 살짝 굽혀 승호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육승호가 다시 가리켰다. “저기요! 저기에 있어요!”육승호는 너무 답답한 나머지, 두 손으로 하진의 얼굴을 감싸 잡고 직접 고개를 돌려주었다. 승호는 키가 작지만 않았다면 직접 나섰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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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하진은 남자가 육명장의 이복형제이자 육승호의 아버지인 육명천인 것을 알아차렸다.누각에서 차를 마시고 있던 육명천은 바람을 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난간에 기댔다. 그때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가는 것을 발견했다. 하진이가 자기 아들을 데리고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매미를 잡으려는 것 같았다.육명천은 흥미를 느껴 재미있는 장면을 구경했다.‘저 여인은 눈매가 참 곱구나.’ 육명천의 첫 느낌이었다. 하진이 고개를 들어 올릴 때 드러난 목선은 묘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고, 그녀의 두 눈은 유난히 반짝반짝 빛났다. 햇볕과 그늘 사이로 그 아리따운 얼굴이 반짝였고, 살짝 치켜든 고개는 약간 오만한 느낌까지 들게 했다. 그녀가 두 팔을 들어 올리자, 넓은 소매는 그녀의 팔꿈치까지 내려갔다. 하얗고 분홍빛 도는 살결이 그를 자극했다.나무 틈 사이로 잘게 부서진 햇빛이 그녀의 머리와 몸에 떨어져, 녹아내리는 봄눈처럼 보이게 했다.하지만 하진은 육명천을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왜 저기에 있지? 언제부터 저기서 보고 있었던 거지?’그녀가 당황한 사이, 육명천은 난간에서 사라져, 누각 안으로 들어갔다. “잠자리채 가져와, 매미를 넣거라.” 하진이 말했다.육승호는 황급히 잠자리채를 가져와 입구를 벌렸고, 하진은 조심스럽게 매미를 떼어내 채 안에 넣었다.“한 마리 더 잡아주세요.”하진은 규안이 건넨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잠자리채 속의 매미를 바라보았다. 존경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에 그녀는 큰 성취감을 느꼈다. 사람들이 기쁜 얼굴로 매미 구경을 하고 있을 무렵, 육명천이 나무 뒤에서 걸어 나왔다. 육승호는 아버지에게 잠자리채를 들어 보여주었다.“두 마리 잡았어요.”육명천은 자연스레 하진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볼 때는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얼굴에 붉은 홍조가 돌고 있었고, 옅은 붉은 기가 옷깃 사이까지 번져 있었다. 귀밑머리는 살짝 젖었고, 잔머리가 땀에 젖어 뺨에 달라붙었으며, 오밀조밀한 코끝에는 작고 투명한 땀방울이 맺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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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육명천은 그의 형님, 육명장과 닮은 구석이 꽤 있었다.전체적인 윤곽이 아니라, 오직 눈썹과 눈매가 닮은 것 같았다. 그러나 다시 볼 땐 그런 느낌이 없었고, 이러한 유사성은 점점 옅어졌다.육명천은 거침없고 자유분방해 보였다. 사람들에게 영리하고 외향적인 느낌을 주는 반면, 육명장은 더 침착하고 엄숙한 편이었다.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부류였다.“평곡에서 왔다고 들었는데 사실이냐?” 육명천이 물었다.“네.”“고향이 그립냐?”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생에서 죽는 순간까지 그녀는 자신의 고향, 평곡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육명천이 웃으며 말했다. “평곡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외지에 공무로 나갈 때 같이 데려가 줄 수도 있다. 평곡으로 돌아가면 되니, 가고 싶으면 말하거라.”하진은 진심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육명천을 응시했다. 육명천은 그녀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말했다. “농담이 아니다. 다만 막 경성에 돌아와 아직 처리할 공무가 많아 지금 당장 갈 수는 없다.”그의 말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하진은 순간 감동을 받았으나, 진심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리 말씀해 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다만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경성까지 왔으니, 왔던 길을 따라 돌아가면 된다.”‘왔던 길을 따라 돌아가다니.’ 하진은 중얼거렸다.육명천의 소탈한 태도는 가볍지도 오만하지도 않았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든, 그에게 가면 간단명료한 일이 되는 것 같았다. “나리 말씀이 맞습니다. 왔던 길을 따라 돌아가면 됩니다.” 하진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고, 육명천은 손을 흔들었다. “자기 집이라고 생각하고 편히 있거라. 나리라고 부르지 말고…”‘그러고 보니 호칭이 애매하구나. 오라버니도 아니고, 삼촌도 아니다.’매미를 가지고 장난치던 육승호가 뛰어와 논리정연하게 말했다. “아가씨께서 저보다 나이가 많으니, 누님이지요. 그러면 누님과 저는 모두 아버님이라고 불러야 합니다.”육승호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육명천이 아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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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등 뒤로 손을 숨긴 육승호의 손에는 그의 아버지가 잡아준 매미가 있었다.그 매미는 이미 그의 손에서 반쯤 죽은 상태였고, 더는 놀고 싶지도 않았다. 게다가 눈앞에 있는 사미정이 보고 싶어 하니, 꺼내서 그녀의 얼굴에 들이대어 똑똑히 보게 해주리라 마음먹었다.아무런 준비도 못 한 채, 눈앞에 들이닥친 매미는 가느다란 다리를 움직이며 얼굴로 기어오르려고 했다. 매미의 울음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려 퍼졌고, 이내 무엇인지 깨달은 사미정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비명을 질렀다.그 모습에 육승호는 오히려 웃음을 터뜨렸다. “승호야, 무례하게 굴지 마라.” 육명천이 가볍게 꾸짖자, 승호는 웃음을 멈추고 하진의 뒤에 숨었다.육완아는 황급히 사미정을 부축하며 나무랐다. “아이고! 승호야, 미정 아가씨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미정은 매우 놀랐는지, 얼굴이 창백해서 핏기가 돌지 않았고, 눈빛도 이상했다. 하진도 사미정이 혹시라도 잘못될까 염려했다. 하진은 사미정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는 사촌 자매지간이니 남들보다 못하게 대할 수는 없었다. “규안아, 어서 물을 가져와서 얼굴을 닦아줘라.”규안은 물통에서 물을 따라 손을 적신 후, 사미정의 얼굴을 살짝 닦았다. 그제야 사미정은 겨우 숨을 돌리고 이성을 차렸다. 하지만 떨리는 심장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빨리 처소로 부축해 가거라. 의원을 불러 진찰하게 하거라.”육명천은 옆의 몸종을 가리켜 부축하도록 했다. 사씨 가문 사람들이 손님으로 왔고, 게다가 자기 아들이 사고를 친 것이니, 육명천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모두가 떠난 후, 하진은 육승호를 뒤에서 끌어내어 쪼그리고 앉아 눈높이를 맞추고 물었다. “왜 매미로 장난을 친 거야?”육승호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손에 든 매미를 땅에 버렸다. “저 사람이 싫습니다.”하진이 궁금한 듯 물었다. “왜 싫은 거니?”사미정은 전에 육승호와 교류가 없었고, 오늘 처음 말을 건넸다.“거짓말을 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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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하진은 생각을 다시 정리하고 붓을 들었다.“평곡을 떠난 후 오랜만에 안부를 묻습니다. 이곳에서 하루도 아버지의 건강을 염려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근일 심사숙고한 것이 있습니다. 저희 가문을 위해 새로운 길을 열어줄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서신을 써서 아버지와 상의하고자 합니다.경성은 천자의 발아래에 있는 곳으로, 상인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드는 곳입니다. 이 땅의 번화함은 평곡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여기에 분점을 세운다면, 세 가지 득을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첫째, 장사가 흥하기 쉽습니다. 인구가 조밀하고 부유한 가구가 많아 이윤이 몇 배로 늘어날 수 있습니다.둘째, 장사 기회를 얻기 쉽습니다. 관료와 백성이 섞여 소식이 매우 빠르게 유통되므로, 이곳에 뿌리를 내릴 수 있다면 조정의 동향과 시장의 분위기를 더 쉽게 파악할 수 있고, 심지어 관아의 물품 조달 주문도 맡을 수 있습니다.셋째, 경성에서 분점을 내면, 초기 규모는 크지 않을지라도 대씨 가문의 명성을 널리 알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하지만 기쁜 소식만 전하고 근심을 말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이곳은 기회의 땅이나 황금이 깔린 곳은 아니고, 그 폐단 역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비용이 많이 들고 투자가 막대합니다. 이곳은 땅값과 인건비가 매우 비싸 분점을 처음 세울 때 상당한 자금이 투입될 것입니다. 여기에 관료들과의 응대 비용이나 명절 선물과 같은 지출도 피할 수 없습니다. 경영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오히려 본전을 잃을 우려도 있습니다.또한 경성은 규정이 복잡해 자칫 시비에 휘말리기 쉽습니다. 조금만 부주의해도 규정을 위반하거나 권세 있는 이들의 노여움을 살 수 있으니, 항상 신중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해야 합니다.”하진은 붓을 잠시 멈추었다가 기교 있게 한 문장을 덧붙였다. 이 문장은 위의 폐단에 정확히 대응하는 내용이었다.“고모님 일가가 현재 경성에서 벼슬을 하고 계십니다. 예전에 우리 집안이 그들에게 은혜를 베푼 적이 있으니, 만약 어려움에 부딪치면 고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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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그게 대체 무슨…” 하진은 모르는 척 말했다.사미정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고,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 “언니처럼 영리하신 분이 어찌 제 마음을 모를 수 있겠어요.”“정말 모르겠으니, 솔직히 말해 보거라.”사미정이 하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화등절에서 육명천 나리를 뵌 후, 그분을 연모하게 되었어요.”‘사미정의 속셈을 육완아는 알고 있는 것인가? 아마 모를 테지, 사미정이 노리는 것은 육완아의 작은 삼촌으로, 만일 두 사람이 혼인을 한다면 육완아는 사미정을 숙모라고 불러야 한다.’육완아의 성정으로 볼 때, 사미정에게 이런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필시 사미정을 냉대할 것이다. 육완아는 자신보다 한참 모자란 사미정이 자신의 머리 위에 오르는 것을 용납할 사람이 아니었다.하진은 오히려 사미정이 육완아 곁에서 감히 이런 마음을 품은 것이 놀라웠다.“무슨 허튼소리를 하는 거야? 셋째 나리는 항렬로 따지면 우리와 친척으로 엮일 분이다. 우리 모두 삼촌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런데 어째서…”하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돌렸다. 사미정은 다급한 듯 발을 동동 구르다가, 하진의 옆으로 다가와 어리광을 부리며 말했다. “한 집안 사람도 아닌걸요.”하진은 그녀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뻔뻔하게 부탁을 하러 온 사람이, 핑계만 대고 있으니.“너도 알겠지만, 내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전부 고모님의 뜻에 따라 움직인다. 게다가 너의 이 일은… 어린애들의 장난이 아니니, 내 뜻대로 할 수도 없다. 나중에 고모님의 눈 밖에 나서 또 한바탕 꾸중을 들을까 봐 두렵구나.”사미정은 입술을 삐죽거리고, 손수건을 비비 꼬며 원래 자리로 돌아가 앉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돕고 싶지 않으면 돕고 싶지 않다고 할 것이지, 우리 어머니를 왜 들먹이세요?”사미정이 어찌 자기 어머니를 모르겠는가? 그녀가 육부에 시집간다면, 그녀의 어머니는 틀림없이 크게 기뻐할 것이다. 하지만 하진의 말대로, 그녀는 집에 돌아가서 어머니와 이 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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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하진이 들어오자, 두 사람은 대화를 멈췄다.하진은 앞으로 나아가 육 노부인에게 몸을 숙여 문안을 올리고, 몸을 돌려 육명장에게도 몸을 숙여 인사를 올렸다.그녀가 무릎을 굽히기도 전에, 육명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를 지나치며 옆눈으로 힐끗 보더니 곧장 방을 나섰다.“이리 와서 앉아라. 할 말이 있다.” 육명장이 나간 후, 육 노부인이 말했다.하진은 약간의 이상함을 감지했지만, 옷매무새를 다듬고 노부인 옆에 조용히 앉았다.육 노부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오후에 네 고모가 사람을 시켜 서신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가 며칠 있어 주길 바라는 눈치였다.”하진의 손끝이 순간 움찔했으나, 이내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군요. 집을 떠난 지 꽤 되었으니, 돌아가서 고모님을 뵙는 것이 마땅합니다.”육 노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말했다. “돌아가서 며칠 동안 편안히 지내다가, 다시 돌아오너라.”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됐다. 가보거라.”육 노부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나는 인사를 올리고 안채를 나섰다.노부인이 집으로 돌아가 며칠 지내다 다시 육부로 오라고 한 말은, 그저 예의상 꺼낸 말 같았다. 그녀는 육부와 아무런 혈연관계도 없으니, 떠난 뒤에는 염치상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터였다.그녀는 방 안에서의 상황을 생각하던 중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고, 이내 몸을 돌려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규안이 뒤따르며 말했다. “아가씨, 이 길은 난월거로 돌아가는 방향이 아닌데요.”“방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앞뜰 서재로 간다.”“서재요? 거기는…” 규안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육부는 공간이 매우 넓어, 후원에서 앞뜰까지 걸어가려면 한참 걸렸다. 서재 앞에 도착했을 때는 등에서 땀이 흥건했다. 대문 앞에는 몇 명의 하인이 지키고 있었는데, 그녀를 발견하자마자 인사를 올렸다. 그중 한 명이 그녀를 뜰에서 기다리게 하고 안으로 보고하러 갔다.그러나 하인은 서재 대신 서재 옆의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곧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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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하진은 육명장을 바라보다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늦게까지 글을 쓰면 눈이 나빠지지 않을까?’그의 손에 쥐어진 찻잔에는 찻물은 없고, 찻잎만 남아 있었다.‘차를 새로 따라 줄까? 호의를 보일 겸? 아니야, 잘 보이려 온 것이 아니라 할 말을 정확히 전하려고 온 거야. 어차피 내일 떠나니, 이 속상한 마음을 풀어야겠다.’“앉거라.” 육명장은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하진은 그에게서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위치에 자리를 잡은 후 치마를 정돈하고 앉았다. 육명장은 마지막 획을 긋고 붓을 내려놓은 뒤, 종이를 한쪽에 밀어뒀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진을 바라보았다.“무슨 일인가?”하진은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밤에 폐를 끼쳤습니다. 중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육명장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계속 말하기를 기다렸다.하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내일 여기를 떠날 것입니다.”육명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할 말씀이 없으십니까?” 하진은 두 손을 꽉 쥐었다.육명장은 스스로 차를 따르면서 물었다. “무슨 말이냐??”그제야 하진은 자신이 남의 눈에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억눌러 두었던 분노가 한순간에 터져 나왔다.“화등절 승호가 사라졌을 때, 나리께서는 이유도 묻지 않고 저를 먼저 의심하셨습니다. 저를 믿지 않는 것도 당연합니다. 어쨌든 저는 외인이고, 염치없는 사람도 아닙니다. 저를 내쫓으려는 의도가 있는 듯해, 승호를 찾으면 스스로 떠날 생각을 했습니다.”하진은 숨을 고르고 계속 말했다. “다행히 승호를 찾았고, 노부인께도 작별 인사를 하려 했으나, 나리께서 또 태도를 바꾸는 바람에 당황했습니다. 감히 주제넘게 추측하건대, 나리께서 저를 남기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육명장의 두 눈이 살짝 흔들렸고, 얼굴에 미세한 변화가 생겼다. 하진은 개의치 않고 계속 말했다. “제게 사심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육부 라는 큰 나무의 그늘을 빌리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저를 이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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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한편, 육명장은 책상 뒤에 앉아 심호흡하다가, 책 한 권을 집어 들었지만, 집중이 안 되는 듯 시선을 촛불에 옮겨갔다. 말없이 촛불을 응시하던 그의 눈빛이 점차 흐릿해졌고, 머릿속에 커다란 눈이 떠올랐다. 맑은 눈빛으로 당돌하게 자신을 바라보던 그녀가 떠올랐다. 그의 호통을 들은 후에는 자리에 서서 그를 바라보았고, 그 때문에 육명장은 화를 내기도 욕을 하기도 어려웠다. ‘됐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와 무엇을 다투겠는가?’다음 날, 하진은 아침 일찍 일어났다. 간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해서 눈이 조금 부어 있었다. “짐은 다 챙겼느냐?” 하진이 물음에 공씨가 방 안을 한 번 둘러보더니 답했다. “별로 짐이랄 것도 없습니다. 옷 몇 벌과 장신구 상자만 챙겼습니다.”이때 규안이 끼어들었다. “노부인께서는 집에서 며칠 지내다가 다시 돌아오라고 하지 않으셨나요?”공씨는 손가락으로 규안의 이마를 콕 찌르며 말했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예의상 하신 말씀을 곧이곧대로 듣다니.”공씨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고, 규안도 시무룩해졌다.그들은 늘 하진을 걱정했다. 이번에 사씨 가문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자유를 누리지 못할 것이다. 하진이라고 우울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비록 겉으로 티를 내지 않아 아무도 몰랐지만. 막 문을 나서려 할 때, 마당에서 발소리가 들렸고, 누군가 그녀 곁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누님, 언제 돌아오실 겁니까?” 육승호의 뒤로, 육희아가 따라왔고, 하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집에 며칠 내려가 있을 거란다.”“그럼, 며칠 있다가 돌아온다는 거지요?” 육승호는 끈질기게 물었고, 하진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옆에 있던 육희아가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육희아는 하진을 바라보았다. “왜 이리 급하게 가세요? 아침에야 돌아간다는 소식을 알게 되어 할머니께 여쭈었더니, 모르겠다고만 하셨습니다.”하진은 미소를 지으며 육희아의 손을 잡았다. “육부에 머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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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피부가 희고 얇았던 하진은 당황하면 얼굴이 붉어진 게 티가 났다.사미정은 계속해서 자기 말만 계속했다. “제가 한 말 잘 들으시고…”“어머!” “얼굴이 왜 이렇게 붉어요? 고뿔이라도 걸렸나요? 저한테 옮기진 말아 주세요.”하진은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마차 안이 너무 답답해서 그런다.”“집으로 돌아가면, 어머니께 좋은 말 좀 해줘요. 나중에 육부에 시집가면, 제가 언니를 보살펴 줄게요.”사미정은 우쭐대며 말했고, 하진은 사미정을 한 번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헛된 망상에 빠져있구나. 고모님처럼 영리한 사람이, 어찌 사미정 같은 멍청이를 낳았을까?’마차가 한참을 달리다가 멈추었다. 몇 명의 하인이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마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집안으로 안내했다.집으로 들어서자마자, 그들은 안채로 향했다.대만여는 사미정을 보자마자 손을 잡고 한동안 안부와 육부에 관한 일들을 물었다.“어머니, 육부가 얼마나 웅장한지 아세요? 마당을 한 바퀴 돌면 다리가 아플 정도예요.”대만여는 부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도 명문 세가인데, 평범한 집안과는 다르지.”사미정이 다시 말했다. “육 재상도 뵈었어요. 근엄하고 웃음기도 없는 노인인 줄 알았으나, 의외로 젊으신 분이셨어요. 잘 웃지는 않으시지만, 얼굴은 온화하셨어요.”대만여가 웃으며 말했다. “육 재상께서 육완아를 입양했으니, 그 나이에는 당연히 그럴 만하지.”가난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권세가 있는 집안의 남자들은 열다섯이면 혼인을 논하고, 일찍 가정을 이루었다. 여자는 일반적으로 열세 살에 가정을 이루었다. 서른이면 자녀들도 다 키웠을 나이였다. 사미정은 눈알을 굴리며 다시 말했다. “육부에 또 다른 도련님이 계신 줄은 몰랐어요. 나리보다 몇 살은 어리신데, 용모가 훌륭하시더군요.”대만여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 댁의 셋째 아드님이다. 막 지방에서 돌아왔단다. 네 아버지 말로는, 이복형제라더구나.”두 사람은 차를 마시는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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