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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화

사미정이 육명천의 부인이 되는 것은 그야말로 헛된 꿈이었다. 사미정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지만, 하진은 이 일에 휩쓸려 피해를 볼까 봐 두려웠다. 두 사람은 사촌 자매였고, 두 사람이 서로 내외해도, 남들이 보기엔 한 집안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사미정이 사람들의 미움을 받으면, 그녀 역시 환영받지 못한다. 그렇기에 대만여가 그녀의 의견을 물을 때, 신중하게 답할 필요가 있었다. 만일 어울리지 않는다고 답하면, 대만여는 필시 그녀가 다른 속셈이 있다고 여길 것이다. 그게 아니면 사씨 가문을 무시한다고 여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혼인을 찬성한다면, 곤란한 상황에 처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저녁 무렵에 안채에서 사람이 왔다.“미정의 일을 알고 있느냐?” 대만여는 하인들에게 차와 다과를 내오게 했다.하진은 대만여가 슬쩍 떠보는 것임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미정이가 제게 말해 주었습니다.”“이 일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두 사람이 어울리더냐?”하진은 즉시 대답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왜 그러느냐? 어찌 말이 없느냐?” 대만여가 다시 물었다.“제가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없는 일입니다.”하진은 일부러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괜찮으니, 말해 보거라.”하진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육명천 나리께서 부인과 사별하고 슬하에 아들 한 명이 있습니다. 꽃다운 나이에 둘째 부인으로 들어가는 것은…”하진은 말을 얼버무리며 대만여를 힐끗 쳐다보았다. 대만여는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미 속으로 계산을 다 해놓고 왜 내 의견을 묻는 거지?’“육씨 가문은 명문 세가이며, 선조들께서 건국 시절, 황제 폐하를 도와 큰 공을 세운 공신이지요. 한때 쇠락했으나, 지금은 전보다 더 큰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 나리께서는 육 재상의 아우이며, 풍채와 인품이 비범하고, 아직 젊으십니다. 미정이가 시집갈 만합니다.”대만여는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모님께서 흡족하다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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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하진은 하마터면 욕할 뻔했다. ‘결국 나더러 방법을 찾으라는 것인가?’“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고모님께서는 굳이 태도를 밝히실 필요가 없습니다. 미정이가 물어보면, 그저 모호하게 얼버무리세요. 혼사에는 선 후 순서가 있으니, 오라버니의 혼례를 치른 후에 미정의 일을 도모하자고 말하세요.”하진은 계속해서 말했다. “끈질길게 캐묻는다면, 모녀의 정을 들먹이며 곁에 좀 더 두고 싶다고만 말씀하세요. 미정이도 효심이 깊어 어쩔 수 없어 곁에 남을 겁니다.”대만여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결 부드러워진 눈빛으로 하진을 바라보았다. “역시 머리가 좋고 영리하구나. 네 말이 참으로 마음에 와닿는구나.”하진은 미소만 지을 뿐, 겸손한 태도를 유지했다.“됐다. 가보거라.” 대만여는 손을 흔들었다. “참, 잊을 뻔했구나. 모레 미정이와 같이 연회에 가자꾸나.”“연회요?”대만여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외랑(員外郎: 집사성에 속한 벼슬) 댁 부인이 연회를 준비했단다. 나와 같이 참석하자꾸나.”하진은 고개를 끄덕인 후 물러났다. 원외랑은 사백산의 직속 상사였다. 그 집에서 주최한 연회에 사미정을 데려가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하진까지 대동하려고 하니, 의문이 들었다.하진은 대만여가 갑자기 자비를 베푼다고 여기지 않았다. 분명 다른 의도가 있는 것 같았다. 대만여는 자기가 상인 집안 출신인 것이 매우 싫었고, 하진을 볼 때마다 자기 신분을 끊임없이 상기하게 되었다. 이튿날, 하진은 아무 데도 가지 않고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사준영은 밖으로 업무를 보러 가, 며칠 후에야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게 원외랑의 연회 날이 되었다. 대만여는 하진과 사미정을 데리고 마차를 타고 원외랑 댁으로 향했다.원외랑의 집은 육부만큼 넓고 웅장하지 않았지만, 공을 들인 티는 확실히 났다. 저택 안에는 오솔길과 정자, 누각이 있었다. 그들이 주최한 연회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맛있는 음식을 풍성하게 차려놓고, 관직이 비슷한 부인들끼리 한 자리에 모여 음식을 먹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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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연극 두 편을 본 후, 부인들은 서로 손잡고 정원으로 향했다.부인들은 대부분 사백산의 동료 가족들로, 대만여는 전에 종종 무리의 꽁무니를 따랐다. 몸종과 한 줄에 설 정도로 지위가 없었다.이곳은 관직에 따라 등급이 있었고, 원외랑은 사백산의 직속 상사로, 원외랑의 부인은 대만여보다 한 수 위였다. 아니, 한 수 이상이었다.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원외랑 부인은 친절하게 대만여의 손을 잡아 자기 곁에 세웠다.“평범한 옷감은 아닌 것 같네요. 경성에서 보기 드문 옷감이네요.”원외랑 부인이 대만여의 옷을 바라보며 연신 칭찬했다.옆에 있던 다른 부인들도 일제히 맞장구쳤다. “직조 방식이 평범하지 않고, 색깔도 보기 드문 것입니다.”대만여는 소매를 쓸어내리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 옷감은 정말로 진귀한 물건입니다. 이 숨겨진 문양을 보십시오. 빛을 받아야만 비로소 선명하게 보이지요. 양면 극사 기법을 사용했는데, 물에 닿아도 구겨지지 않고, 먼지가 묻지 않습니다. 얼마나 귀한지 실이 한 올이라도 풀릴 시, 신선이 와도 못 고친다고 합니다.”“다만…”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다만 무엇입니까?”대만여는 입술을 오므리고 미소를 흘렸다. “비록 귀한 옷감이긴 하나, 육 노부인께서 하사해 주신 은혜만 하겠습니까? 항상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입는답니다.”부인들의 표정은 각기 달랐다. 부러워하거나, 시기하거나, 비꼬는 표정이었다. “부인께서 참으로 복이 많으십니다.”대만여의 얼굴이 환희로 가득 찼다. 머리 위의 장신구들이 끊임없이 흔들렸다. 그녀는 몸을 돌려 뒤편의 한 귀부인을 곁눈질했다.“좋은 물건을 얻었다고 주제 파악도 못 하고 자랑부터 했습니다. 왕 부인께서 입으신 장화단만큼 귀하진 않습니다.”왕 부인은 평소 대만여를 가장 심하게 깎아내린 사람으로, 무슨 일이든 제일 먼저 대만여를 괴롭혔다. 하여 오늘 왕 부인에게 당했던 만큼 복수하기로 했다. 왕 부인은 속에서 천불이 났지만,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맞장구를 칠 수밖에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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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아직 혼처를 정하지 않았습니다.” 대만여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부인들께서 마음에 드시면, 이 아이를 데려가시지요.” 대만여는 하진을 앞으로 밀었다.귀부인들은 마치 물건을 평가하는 듯한 눈빛으로 하진을 바라보았다. 하진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녀는 소매 속에 감춘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하지만 대만여는 이내 다른 화제로 돌렸다. 이날 대만여는 잃었던 체면을 모두 찾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모두가 내게 호의를 보이는구나.’이틀 후, 대만여는 육부에서 사람을 보내기 전에, 하진과 사미정을 마차에 태워 육부로 돌려보냈다. 육부에 들어서자, 마당 안의 하인들이 유독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진은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곧장 안채로 가서 육 노부인에게 문안을 올렸다. 사미정이 문안을 올리고 돌아간 후에도 계속 머물렀다. 육 노부인은 근심스러운 얼굴로 그녀에게 몇 마디 따로 물었다. “무슨 걱정거리가 있으십니까?”육 노부인은 망설이면서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아무 일 아니니, 방으로 돌아가거라.”하진은 의아했지만, 노부인이 입을 열기를 꺼리는 듯하여 더는 묻지 않고 몸종들을 데리고 난월거로 돌아갔다. 난월거는 몸종들이 관리하고 있었던 탓에,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 쉬는 데 불편함이 없었다. 막 방에 들어선 그녀의 뒤로, 누군가 허둥지둥 달려와, 아무 몸종이나 붙잡고 물었다.“하진 아가씨는? 아가씨는 돌아왔느냐?”상대는 육승호의 유모, 전씨였고, 규안은 유모의 목소리를 알아차리고 밖으로 나갔다.“유모, 뭐가 그리 급하여 이리 허둥대는 겁니까?”“아가씨께서 안에 계십니까?”유모가 다급하게 물었다. “계십니다, 막 돌아오셨…”규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모는 방으로 뛰어갔다.상자 속 장신구를 마침 정리하고 있던 하진은, 유모가 갑자기 달려들자, 깜짝 놀랐다.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유모가 무릎을 꿇었다. “유모, 왜 이러는 거야!”하진은 그녀를 일으키려 했지만, 유모는 좀처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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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육명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방으로 돌아가거라. 당분간 함부로 돌아다니지 마라.” 만약 천연두로 확진되면, 집안의 모든 사람이 격리되어야 했다.하진은 승호가 평범한 병에 걸린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아이의 곁에 남아 무서워하지 않게 함께 있어 주고 싶었다.하지만 천연두는 달랐다. 사망률이 매우 높고 전염성이 있는 병이었다.‘내가 의원도 아닌데,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하진은 자기를 설득했다. 전염될까 봐 두려운 것도 아니었고, 죽음이 두려운 것도 아니었다. 손 쓸 수 없는 상황에, 혼란을 더하고 싶진 않았다. 그녀가 몸을 돌려 떠나려는 무렵, 유모가 눈물을 머금고 그녀를 바라보면서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하진은 유모를 보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마당 안에서 우는 소리와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거리가 꽤 멀었음에도 아주 또렷이 들렸다. 주변이 너무나 조용했던 탓도 있었다. 기침 소리가 잦아들자, 입과 코를 가린 몸종이 약 한 사발을 들고 방에서 나왔다. 마당 안이 소란스러워졌고, 사람들의 외침이 희미하게 들려왔다.“마시려 하지 않습니다. 기침을 심하게 하다가 다 토했습니다.”“승호 곁에 누군가 있어야 할 듯하니, 제가 들어가겠습니다.”육명천이 말했다. 육명장이 입을 열기도 전에,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 된다, 들어갈 수 없다.”조 노부인이었고, 그녀의 뒤로 한 무리 하인들이 따르고 있었다.“어머니, 승호 곁에는 사람이 필요합니다.”“저들은 사람들이 아니냐? 왜 하필 네가 들어가야 하는 거냐?” 조씨는 주위의 하인들을 가리켰다. “평소에 얼마나 잘 대해줬는데, 앞장서지 않고 뭐 하는 것이냐?”육명천이 대답했다. “어머니, 시중드는 사람이 적지는 않으나, 곁에 가까운 사람이 없으니, 분명 무서워할 것입니다.”조 노부인은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울먹이며 말했다. “나라고 마음이 아프지 않겠느냐? 승호는 내 친손자다. 하지만 들어가면 안 된다. 들어가서 병에 걸리면, 내가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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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육명장이 허락을 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조 노부인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이렇게 기특한 생각을 할 줄이야, 어서 들어가거라. 병이 낫는다면, 우리가 크게 보상할 것이다.”조 노부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육명장은 조 노부인을 흘겨보았고, 노부인은 그 눈빛을 느끼고 즉시 입을 닫았다. “사람을 불러, 노부인을 방으로 모셔라.” 조 노부인은 아무 말도 못 하고 하인들에게 둘러싸여 떠났다.하진은 조 노부인의 오만하고 제멋대로인 모습을 보고 보통 사람은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육 노부인조차 조 노부인의 만행을 보고 그저 눈을 감았다. 그러나 조 노부인은 육명장의 눈빛에 꼼짝도 못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전에 수두를 앓은 것이 확실하냐? 능력을 과시하려는 것은 아니겠지?”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입니다.”육명장은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분별하려는 듯했다. 육명장은 곁에 있는 하인에게 눈짓했고, 하인은 그녀에게 다가왔다. “아가씨, 따라오십시오.”하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아이의 처소로 향했고, 유모가 그 뒤를 바짝 따랐다. 몸종들은 그들에게 흰 수건을 씌워주고 뜰 안으로 들여보냈다.멀리 서 있던 육명장은 뒷짐을 진채 그들을 바라보았다.“형님, 만약 승호가 병을 무사히 낫고, 저 여인도 무사하다면…”육명천은 육명장을 돌아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신분은 저에게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아무 말도 없는 육명장의 등 뒤로 드리워진 넓은 소매는 뜨거운 바람에 부풀어 올랐다.한편, 마당 안으로 들어간 하진은 몸종들이 툇마루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계단을 밟고 올라가, 문을 열었다. 방 안은 빛이 들어오지 않아 매우 어두웠다. 창문은 열려 있었으나 바깥의 밝은 햇빛은 끝내 들어오지 못했다. 햇빛조차 병을 두려워하는 듯, 기세 좋게 창턱에 닿았다가 이내 꺾여 옅은 회색빛만 바닥에 깔렸다.코끝에는 진한 약 냄새가 감돌았고, 방 안 공기는 답답했다.두 몸종은 멀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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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유모는 깨끗한 옷을 가져와 승호에게 갈아입혔다.옷을 갈아입히는 동안 승호는 눈을 뜨고 하진을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누님.”하진은 서둘러 대답했다. “승호야, 걱정하지 마. 사흘이나 닷새면 괜찮아질 거야.”“네. 그런데 목이 마릅니다.”하진은 고개를 돌려 유모에게 분부했다.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 오너라. 의원도 다시 불러 아이가 깨어 있을 때 약을 먹여야 할지 물어보거라.”유모는 분부대로 움직였다.잠시 후 의원이 방으로 들어와 육승호의 몸을 진찰하고는 몸종들에게 약을 다시 가져오게 했다. 하진은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육승호에게 약을 먹였다. 반 그릇 정도 마셨지만, 다행히 토하지 않았다.의원은 이를 보고 기쁜 표정을 지었다. “약을 드셨으니, 됐습니다. 열을 내리고 갈증을 해소할 외용 약제를 하나 더 처방하겠습니다.”“고생해 주게.” 하진은 옷을 벗지 않은 채로 침상 곁을 지켰다. 육승호의 몸에 열이 오를 때마다 몸을 닦아주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몇 번이나 옷을 갈아입혔는지 모른다.하룻밤이 지난 후, 의원은 마침내 육승호가 천연두가 아니라 수두에 걸린 것이라는 확진을 했다. 덕분에 집안 사람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 후에도 발진은 계속되었고, 그럴 때마다 아이의 체온이 무섭게 올라갔다. 의원은 수포가 마르고 딱지가 앉아야 체온이 내려갈 것이라고 했다.하진은 아이를 돌보는 것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약물로 몸을 닦아주고, 연고를 발라주고, 아이가 긁지 못하게 막아야 했다.대부분의 일을 하진 혼자 도맡았다. 수두는 천연두만큼 흉악하지는 않지만, 전염성이 있어 방심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사흘 동안 간호한 끝에, 아이의 병세가 호전되기 시작했다.안색도 정상으로 돌아오고, 체온도 내려가 쌔근쌔근 자는 육승호를 바라보던 하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 동안 쌓였던 피로가 싹 사라졌다. 꼬박 사흘 동안 눈을 붙이지 못한 탓에, 이 방을 나서자마자 쓰러질 뻔했다.육명천은 고마움과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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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육 재상께서도 사람을 보냈다고?” 하진이 물었다.“네. 키가 크고 성격이 좋아 보이는 분이 오셨는데, 이름이, 장안, 맞아요, 장안이라는 분이 오셨습니다. 아가씨께서 깨어나시면 서재로 와 달라고 하셨습니다.”하진은 침상에서 내려와 신발을 신었고, 규안은 앞으로 다가와 그녀의 옷을 입히고 화장을 다시 해 주었다.화장대 옆에서 촛불이 흔들렸다. 거울 속의 사람은 눈빛이 매우 밝았으나, 그 표정에는 깊은 잠을 잔 후의 나른함이 배어 있었고, 머리카락조차 피곤해 보였다.그녀는 얼굴을 손바닥에 기댄 채, 잠에서 완전히 깨지 않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아가씨?” 규안이 나지막이 불렀다.하진은 두 손 사이에 얼굴을 묻고 좀 더 자고 싶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규안은 조금 초조해졌다. 이미 각 처소에 등불이 켜진 시간이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불렀다. “아가씨?”하진은 얼굴을 들었다. “가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고, 규안이 앞에서 등불을 들고 서재까지 안내했다.장안은 그녀를 발견하자마자, 앞으로 다가와 인사했다. “아가씨, 들어오십시오.”하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서재로 들어갔다.전과는 달리 육명장은 책상 뒤에 엎드려 있다가, 그녀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 일을 멈추고 방 안의 평상으로 자리를 옮겼다.“앉아서 이야기하지.”하진은 그의 오른편으로 길게 늘어선 의자 중 두 번째 의자에 앉았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이번에 승호가 완전히 나을 수 있었던 것은 너의 공로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말해 보거라.” 육명장은 말한 후 하진을 바라보았다. 눈빛은 맑았고, 얼굴은 붉은 기가 옅었으며, 아직 잠이 덜 깬 듯한 모습이었다.“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고, 오직 승호가 무사히 낫기만을 바랐습니다.”하진이 말을 마치자, 맞은편은 조용해졌다. 그녀는 천천히 육명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육명장이 한 손은 작은 탁자에, 다른 손은 다리에 짚고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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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육명장은 한 집안의 가장이자, 가문을 이끄는 가주였다. 집안 사람끼리 아무리 불화가 있어도, 그것은 내부의 일이며, 육명장에게는 별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소한 일에는 눈을 감아줬다. 하지만 문제가 커지면, 그는 좌시하지 않았다.바로 지금처럼. 육명장은 그녀의 총명함에 감탄했다. 말을 명확하게 하지 않아도, 말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리니 매우 좋았다. “참으로 영리하구나.”하진은 두 손을 무릎에 모으고 눈을 반쯤 내리떴다. 그러나 이 희미한 시선이 육명장의 허리춤에 있는 백옥대에 닿았다.이것은 3품 이상의 관료만 착용할 수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백옥 허리띠가 아니라, 권력, 지위, 그리고 황제의 은혜를 종합한 것이다.하진은 고개를 들어 말했다. “제가 총명하다고 칭찬하시니, 감히 한 가지 청해도 될까요?”육명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보거라.”하진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요구를 털어놓았다. “한 번은 제 목숨을 살려주시길 바랍니다.”“무슨 뜻이냐?”“지금은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훗날 위급한 일이 생겨 나리께 손을 내밀게 되면, 그때 제 목숨만은 한 번 건져 주시길 바랍니다.”육명장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하늘의 도리를 어기거나, 살인 방화 같은 일을 저지른다면, 나라도 너를 구할 수는 없다.”하진은 옷매무새를 다듬고 무릎을 꿇었다. “천리를 거스르지도 않을 것이고, 인명에 위협을 가하는 짓도 하지 않을 겁니다. 나리께 난처함을 주지 않을 겁니다. 그저 제게 살길을 열어주시길 바랄 뿐입니다.”육명장은 일렁이는 촛불 그림자에 파묻힌 여인을 바라보았다. 좁은 소매 아래로 하얀 손목이 드러났고, 두 손은 곱게 포개 다리 위에 놓여 있었다. 고개를 살짝 숙이니, 깨끗한 이마 위로 몇 가닥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영리하고 맑은 눈이 아래로 있었다. “좋다, 그리해주마.”육명장이 말했다. “다만, 그런 일이 생기질 않길 바란다.”하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육명장의 말에, 그녀는 든든한 구원처를 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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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하진은 뚫어지게 쳐다보는 시선에 불편함을 느껴 몸을 살짝 돌리며 말했다. “별일 없으시면, 이만…”육명천이 말을 가로챘다. “아까 내가 한 말은 진심이다. 승호를 구해준 은혜를 갚을… 정말 청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냐? 말만 한다면, 내 다 들어줄 수 있다.”그는 이미 사람을 시켜 그녀에 대해 알아보았다. 친척을 찾으러 경성에 왔으며, 사촌인 사준영과 약혼했으나, 후에 파혼을 했고, 사준영은 파혼하자마자 육완아와 약혼한 것까지 알게 되었다. 하진에게 득이었던 혼사가 깨지고, 고모 대만여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지금 경성에 머무는 것이겠군.하진을 바라보는 육명천의 눈빛에 연민이 더해졌다. “아닙니다, 저도 승호가 마음에 듭니다. 아이가 아프다는 데 어찌 지켜만 보겠습니까? 그 어린아이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차마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그저 아이가 빨리 낫기만 바랄 뿐, 다른 마음은 없었습니다.”육명천은 그녀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더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하진이 물러난 후, 육명천은 속으로 결정을 내렸다.육부의 정원은 매우 넓었고, 누각들이 즐비했다. 높이 솟은 능운각이라는 누각 외에도 몇 채의 삼, 사 층 높이의 낮은 누각들이 정원에 있었다.울창한 나무 뒤에 주홍색 누각 하나가 숨어 있었고, 작은 탁자 옆에는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탁자 위에는 찻잔이 놓여 있었고, 작은 화로 위에서는 사기 주전자가 김을 내뿜으며 물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육명천은 두꺼운 면사를 집어 주전자를 내려놓고, 먼저 맞은편의 찻잔을 데운 후, 차 한 잔을 따른 후, 자신에게도 한 잔을 따랐다. “이틀간 고민해보았는데, 부인을 맞이하기로 했습니다. 승호도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고요.”육명장은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그래, 부인을 맞이하고 싶다면, 두 노부인께 중매를 부탁하거라. 네 사생활까지 내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육명천은 육명장을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이미 마음에 품은 사람이 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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