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파혼 후 시작된 그의 집착: Chapter 1111 - Chapter 1120

1137 Chapters

제1111화

송지아는 그 말을 듣자 다급히 해명했다.“오빠, 설령 그 사람이 아니었어도 똑같이 도왔을 거야. 누군가 억울하게 누명을 썼고, 마침 내가 도울 수 있었다면 모른 척하지 않았을 거라고.”“그 사람이 허경빈이라서 도와준 건 아니고?”송요가 재차 묻자 송지아는 단호하게 대답했다.“아니야. 난 사람을 보고 판단한 게 아니라, 옳고 그름을 따졌을 뿐이야.”송윤재는 피식 웃었다.“사실 너희 사이에 있었던 일도 전부 초등학생 때 일이잖아. 이제 와서 계속 마음에 담아 둘 필요는 없어. 아버지도 나이가 드시니 잔소리가 많아지신 것뿐이고.”그는 잠시 송지아를 바라보다 흐뭇한 목소리로 덧붙였다.“네가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된 걸 보니, 정말 다 컸구나. 우리와 허씨 집안이 아주 가까워질 수는 없겠지만, 저쪽에서 먼저 호의를 보인다면 우리도 겉으로는 예의를 갖춰야 해. 무슨 뜻인지 알겠지?”송지아는 옅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송씨 남매가 육씨 집안의 만월연에 모습을 드러내자, 수많은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그들에게 쏠렸다.송윤재는 깊고 뚜렷한 이목구비에 단정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차림을 하고 있었다. 눈에 띄게 화려한 외모는 아니었지만, 빼어난 골격과 특유의 기세가 있어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존재감이 느껴졌다.다만 그의 손에 들린 분홍색 어린이용 보온병만큼은 그런 분위기와 영 어울리지 않았다.아내는 오지 않았지만, 딸은 함께였다.오늘 송민정은 파란색 솜옷을 입고 송지아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모자를 쓴 앙증맞은 얼굴은 인형처럼 사랑스러웠고, 몸에는 복슬복슬한 작은 가방을 비스듬히 메고 있었다.“송윤재, 오랜만이네.”육남혁이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송윤재의 딸을 본 그의 눈에는 자신도 모르게 부러운 기색이 스쳤다.우리 집에는 왜 아들만 둘인 거야!“오랜만이야. 축하해.”송윤재는 육남혁과 악수했다. 오랜 지인인 하이석도 다가와 자연스럽게 대화에 합류했다.“송지아가 손잡고 있는 저 꼬마는 누구야?”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방주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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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2화

“민정아, 여기는 허경빈 삼촌이야.”송윤재가 딸에게 허경빈을 소개했다.며칠 전만 해도 허경빈의 집에 놀러 가 따뜻한 고양이 털을 실컷 쓰다듬고 왔던 송민정은, 타고난 연기파답게 그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말간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는 이내 입꼬리를 예쁘게 올리며 천연덕스럽게 인사했다.“삼촌, 안녕하세요.”“그래, 안녕.”허경빈은 아이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어쩔 수 없이 장단을 맞춰 주었다. 며칠 사이에 낯선 사람이 되어 버린 기분이 묘했지만, 송윤재 앞에서는 내색할 수도 없었다.“요즘은 어때? 잘 지내지?”송윤재가 무심한 듯 안부를 물었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는 특별한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지만, 허경빈은 괜히 어깨가 굳었다.“그럭저럭요.”“설에 선물 들고 왔을 때는 내가 집에 없었잖아. 다음에 내가 밥 한번 살게.”“괜찮아요.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돼요.”“얼마 전에는 꽤 화제의 중심에 섰더군.”순간 허경빈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송윤재가 말하는 건 분명 하채린과 얽힌 그 일일 터였다.어린 시절 송윤재에게 깔려 죽도록 얻어맞을 뻔했던 기억 때문인지, 허경빈은 아직도 그 앞에만 서면 본능적으로 위축됐다. 게다가 송윤재는 워낙 기세가 강한 사람이었다. 육남혁이나 하이석처럼 존재감이 남다른 이들 곁에 서 있어도 전혀 밀리지 않을 만큼 묵직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그와 마주하고 있자니, 마치 혈통에 새겨진 본능이 먼저 굴복하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하지만 방주헌을 비롯한 친구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바라보기만 할 뿐, 누구 하나 그를 구하러 나서지 않았다.“허경빈과 송씨 집안이 묵은 감정을 푼 건가?”그 광경을 지켜보던 육강민도 꽤 뜻밖이라는 듯 물었다.“그런가 보지. 워낙 오래전 일이고, 다 어릴 때 있었던 일이잖아. 이제 와서 계속 마음에 담아 둘 필요도 없고.”육남혁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 뒤 직원을 불렀다. 그리고는 급히 좌석 배치를 바꿔 허경빈과 송씨 집안사람들을 같은 테이블에 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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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3화

“너도 온다는 걸 알고 차로 데리러 갔었어. 그런데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부모님께 너랑 윤재 형이 이미 출발했다는 말을 들었지.”설도윤은 마치 아주 익숙한 사이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 갔다.두 사람은 전보다 훨씬 가까워진 듯 보였다. 특히 송지아에게 말을 건네는 설도윤의 친근한 말투가 허경빈의 신경을 거슬렀다.불편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몹시 기분이 나빴다.허경빈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내내 불길 위에서 서서히 구워지는 듯한 괴로움을 느꼈다.두 사람의 관계를 말로 전해 듣는 것과, 이렇게 직접 눈앞에서 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누가 봐도 잘 어울렸다. 남자는 준수하고 여자는 아름다웠으니, 다른 이들의 눈에는 더없이 보기 좋은 한 쌍으로 비칠 터였다.하지만 허경빈에게만큼은 그 모습이 유난히 눈에 거슬렸다.그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어느새 손은 테이블 위의 찻잔을 세게 움켜쥐고 있었다. 따뜻한 찻물이 도자기 잔을 통해 손바닥을 데웠지만, 정작 그의 온몸에는 싸늘한 냉기가 감돌았다.어찌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서서히 사지를 잠식했다.마음 같아서는 당장 달려들어 설도윤을 걷어차 버리고, 송지아의 손목을 붙잡아 그대로 이곳을 뛰쳐나가고 싶었다.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그때 손안의 휴대전화가 짧게 진동했다.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는 방주헌이 보낸 메시지였다. 허경빈이 송지아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뿐이었다.[연적이 나타났는데, 넌 왜 아무 반응도 없어?]허경빈은 태연한 얼굴로 답장을 보냈다.[내가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하는데?][너무 침착해 보이잖아.][전부 연기야.][그럼 지금 기분이 어떤데?]허경빈은 억눌러 두었던 감정을 손끝에 모조리 쏟아 냈다.[젠장, 열받아 죽겠어. 미치겠다고! 아아아아악!!!]멀지 않은 곳에서 휴대전화를 확인한 방주헌이 고개를 숙인 채 웃음을 터뜨렸다. 어깨까지 들썩이는 걸 보니 제대로 신이 난 모양이었다.“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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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4화

허경빈은 휴대폰을 테이블 아래로 내려 메시지를 확인했다.화면을 넘겨 볼수록 그의 눈빛은 서서히 차갑게 가라앉았다.사람이란 게 참 무섭다. 앞에서는 멀쩡한 척하면서 뒤에서는 딴짓이라니. 설도윤은 정말 까도 까도 끝이 없는 사람이었다. 설씨 집안도 하나같이 가관이었다. 그러면서 무슨 명문가 행세를 한다고.“삼촌, 새우 드세요.”옆에 앉아 있던 송민정이 불쑥 말을 걸어오면서 허경빈의 생각을 끊었다.허경빈이 막 휴대폰을 집어넣으려는 순간, 설도윤이 먼저 새우 한 마리를 집어 들며 웃었다.“경빈 삼촌은 바쁘신 것 같은데, 도윤 삼촌이 새우 까줄까?”“싫어요!”“왜 싫어?”설도윤은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저는 경빈 삼촌이 좋으니까요.”말인즉슨 설도윤은 싫다는 뜻이었다.순간, 그의 입가에 걸려 있던 미소가 어색하게 굳었다.송지아조차 어린 조카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는지 놀란 눈으로 송민정을 바라봤다.“민정아!”송윤재가 미간을 찌푸렸다.평소 송민정은 예의도 바르고 성격도 좋은 아이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설도윤만은 영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설날 당일에도 그랬다. 설도윤이 영화를 보러 가자며 송지아를 데리러 집에 왔는데, 송민정이 자기도 꼭 따라가겠다며 떼를 쓰는 바람에 결국 셋이 함께 ‘부니 베어’를 보러 갔었다.아빠에게 한소리 들은 송민정은 서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을 다물었다.순식간에 테이블 위로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허경빈은 헛기침을 두어 번 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마침 육민찬이 구석에서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그가 손짓하자 육민찬은 금세 알아보고 쪼르르 달려왔다.“삼촌, 저 부르셨어요?”“여기는 송민정이야. 너보다 어린 동생.”허경빈이 두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안녕, 민정아.”송민정은 고개를 갸웃하며 육민찬을 바라봤다. 눈가가 살짝 붉어진 걸 보니 아직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얌전히 인사를 받아주었다.육민찬은 그런 송민정의 얼굴을 보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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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5화

송민정은 육씨 집안 사람들과 어느새 허물없이 어울리며, 제 아빠의 존재는 까맣게 잊어버린 듯했다.“여기는 우리 증조할머니, 이쪽은 할아버지랑 할머니…….”육민찬이 한 사람씩 소개해 주자 송민정도 야무지게 인사를 건넸다. 워낙 붙임성이 좋고 말도 예쁘게 하는 아이라 어른들의 얼굴에는 금세 웃음꽃이 피었다.박명숙은 송민정을 처음 보는 터라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민찬이는 어디서 이렇게 예쁜 꼬마 아가씨를 데려왔니?”“송윤재 딸이에요.”육남혁이 대신 대답했다.“아, 송씨 집안 아이구나. 어쩜 이렇게 예쁘게도 낳고 잘 키웠을까.”육씨 집안의 이번 세대에는 육수린이 유일한 여자아이였다. 그러니 앙증맞은 송민정을 보자 모두가 예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특히 한주미는 당장이라도 아이를 품에 안고 볼에 입을 맞춰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급기야 세뱃돈 봉투까지 여러 개 챙겨 송민정에게 건넸다.“할머니, 저 이거 받으면 안 돼요.”송민정이 쑥스러운 듯 손사래를 쳤다.“괜찮아. 설날에 받는 세뱃돈이야.”한주미는 웃으며 아이가 메고 있던 작은 크로스백 안에 봉투를 쏙 넣어 주었다.“먹고 싶은 거 있으면 할머니한테 말하고.”그 모습을 지켜보던 육강민이 아들에게 물었다.“넌 얘랑 언제 알게 됐어?”“허경빈 삼촌이 소개해 줬어요.”육민찬은 밥을 한입 가득 떠먹다가 문득 생각난 듯 송민정을 바라봤다.“그런데 너 아까 왜 울었어? 누가 괴롭혔어?”송민정은 대답하지 않았다.“겁먹지 마. 다음부터 누가 괴롭히면 나한테 말해. 내가 가서 혼내줄게.”육민찬이 제법 비장한 얼굴로 장담하자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아직 코흘리개나 다름없는 조그만 녀석이 대체 누굴 때려눕히겠다는 건지.그런데 송민정은 그 말을 정말로 믿은 모양이었다.“정말요?”“그럼! 내가 혼자 안 되면 우리 형도 있잖아.”육민찬은 당당하게 연우진을 쳐다봤다.“우리 둘이 같이 가서 혼내주면 돼. 그렇지, 형?”얌전히 앉아 우아하게 식사를 하던 연우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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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6화

두 사람의 시선이 정면으로 맞부딪혔다.설도윤은 화들짝 놀라 손가락을 떨었고, 들고 있던 휴대폰이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쾅 하는 둔탁한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허경빈은 벽에 비스듬히 기대 선 채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통화 내용을 얼마나 들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입가에는 의미심장한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어딘가 거만하면서도 거리낌 없는 분위기, 제멋대로인 듯 자유분방한 기색이 묘하게 사람을 압도했다.원래도 허경빈은 나이에 비해 소년 같은 인상이 강했다. 얼핏 보면 사회에 갓 나온 대학 졸업생처럼 보일 정도라 사람을 방심하게 만드는 얼굴이었다.하지만 그가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오는 순간, 설도윤은 숨이 턱 막혔다.“허경빈 씨?”허경빈은 아무 대답 없이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을 주워 들었다.화면에는 거미줄처럼 금이 가 있었다.그가 손끝으로 갈라진 액정을 천천히 쓸어보며 물었다.“제 때문에 많이 놀랐어요?”“아닙니다.”“안색이 별로 안 좋은데요.”허경빈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웃고는 있었지만 그 미소에는 어딘가 사악하고도 위험한 기운이 배어 있었다.“찔리는 게 없으면 제가 귀신이었어도 놀라지 않았겠죠. 그런데 당신 표정을 보니까 꼭 남들한테 들켜선 안 될 짓이라도 한 사람 같네요.”“그럴 리가요. 그냥 갑자기 나타나셔서 놀랐을 뿐입니다.”“겁이 그렇게 많아요?”설도윤은 허경빈과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그래서 더더욱 그의 속내를 읽을 수 없었고, 긴장감은 갈수록 짙어졌다.허경빈은 그런 설도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설도윤 씨.”그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남이 모르게 하려면 애초에 하지 말았어야죠.”한 글자, 한 글자. 일부러 또박또박 들으라는 듯 느리게 내뱉었다.“당신이 한 일을 아무도 모를 거라고 착각하지 마세요.”설도윤의 심장이 쿵쿵 거세게 뛰었다.역시. 이 사람은 알고 있었다.“사람들을 전부 바보로 보지 마세요. 아직 되돌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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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7화

송씨 집안.집으로 돌아온 송민정은 욕실의 작은 발판 위에 올라서서 이를 닦았다. 보송보송한 포메라니안이 꼬리를 흔들며 아이의 발치 주변을 쉴 새 없이 맴돌았다.송윤재는 세면대 옆에 기대어 두 팔을 가슴 앞에 포갠 채 딸을 바라봤다.“말해 봐. 도윤 삼촌이 왜 싫은 거야?”송민정은 입안 가득 치약 거품을 문 채 웅얼거렸다.“그냥 싫어요.”“그래도 이유는 있을 거 아니야.”아이는 칫솔질을 멈추고 거울 너머로 아빠를 빤히 바라봤다.“아빠는 직감을 믿어요? 엄마가 그러는데, 여자의 직감이 제일 정확하대요.”여자라니.고작 다섯 살인 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 송윤재는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웃음이 날 것 같았다.“아, 맞다. 오늘 육씨 가문 어른들이…”송민정은 입을 헹군 뒤 발판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욕실 밖으로 쪼르르 달려가 자신의 작은 가방을 찾아 지퍼를 열었다.“저한테 세뱃돈을 엄청 많이 주셨어요.”송윤재가 가방 안을 들여다보니 실제로 적지 않은 돈이 들어 있었다.그런데 봉투의 액수를 하나하나 확인하던 그의 시선이 문득 한곳에 멈췄다. 붉은 실로 정교하게 엮은 팔찌 사이에 금과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작은 토끼가 매달려 있었다. 한눈에 봐도 평범한 장신구가 아니었다.“이건 또 누가 줬어?”“육씨 집안 둘째 숙모요.”서은주가 준 건가?그렇다면 틀림없이 강씨 집안에서 나온 물건일 터였다. 평범한 팔찌일 리 없었다.“너…”송윤재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송민정이 얼른 해명했다.“둘째 숙모는 제가 너무 귀엽고 좋대요. 앞으로 자주 놀러 오라고도 했어요. 이거 주실 때는 분명히 안 받았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방 안으로 들어와 있었어요.”아이는 정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동그란 눈을 깜빡였다.송윤재는 관자놀이를 짚었다.분명 아이가 잠든 사이에 서은주가 몰래 넣어 둔 것이었다.그는 만월연에 참석하며 분명 축의금을 냈다. 그런데 정작 집으로 돌아올 때는 딸이 돈과 금붙이로 가득 찬 가방을 메고 왔다.가치를 따져 보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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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8화

송지아가 몸을 돌렸을 때, 어느새 허경빈이 보이지 않았다.주변에는 온통 낯선 얼굴뿐이었다. 어깨와 어깨가 맞닿을 만큼 빽빽한 인파가 끊임없이 밀려들었고, 그녀는 사람들의 흐름에 떠밀려 원치 않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겨야 했다.갑자기 혼자 떨어지고 나니 어디로 가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송지아는 미간을 찌푸린 채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형형색색의 등불 아래로 수많은 얼굴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중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허경빈은 대체 어디로 간 거지?그녀가 애타게 사방을 살피던 순간, 머리 위로 익숙한 목소리가 불쑥 떨어졌다.“나 찾았어?”송지아가 황급히 돌아보자 허경빈이 바로 뒤에 서 있었다.그의 손에는 앙증맞은 토끼 모양 등불이 들려 있었다. 등불 안쪽의 따뜻한 불빛이 정교하게 뚫린 무늬 사이로 새어 나와 그의 손끝까지 은은하게 밝혔다.허경빈이 토끼 등불을 그녀에게 내밀었다.“네 거야.”“고마워.”송지아는 그가 토끼 등을 사러 간 줄은 미처 몰랐다.허경빈이 다시 앞장서서 걷기 시작하자 그녀도 토끼 등불을 손에 든 채 뒤를 따랐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작은 등이 살랑살랑 흔들리며 황금빛 그림자를 드리웠다.손바닥만 한 크기에 속이 비치도록 섬세하게 조각된 토끼가 제법 귀여웠다.송지아가 토끼 등을 살펴보느라 잠깐 시선을 내린 사이, 거센 인파가 두 사람 사이로 밀려들었다.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가로막힌 허경빈은 곧바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바짝 따라와.”“등불 축제에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어.”송지아는 이번에는 놓치지 않으려 허경빈을 바짝 따라붙었다. 그러나 사방에서 밀려드는 사람들 탓에 또다시 옆으로 떠밀릴 뻔했다.다행히 이번에는 두 사람이 떨어지지 않았다.그다음 순간, 누군가 그녀의 손을 단단히 붙잡았기 때문이다.송지아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자신의 손을 감싼 손을 따라 시선을 올리자 허경빈의 옆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손목에 살짝 힘을 주자 송지아의 몸이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와 단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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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9화

육씨 집안의 만월연 이후, 설도윤은 송지아가 의도적으로 자신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분명 허경빈이 송지아에게 무언가를 말한 게 틀림없었다.이대로라면 다 된 밥을 눈앞에서 빼앗기게 생겼다.‘정정당당하게 경쟁할 생각은 하지 않고, 뒤에서 비겁하게 수작을 부려? 허경빈, 그러고도 네가 남자야? 네가 먼저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더는 가만히 있지 않겠어.’*등불 구경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뒤에도 허경빈의 머릿속에는 축제에서 있었던 일이 맴돌았다.지난번에는 그저 잠깐 손을 맞잡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법 오랫동안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작고 부드러운 손.손바닥에 고스란히 닿았던 따스한 감촉을 떠올리는 순간, 전에 꾸었던 그 황당하고도 야릇한 꿈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허경빈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경빈아?”갑자기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허경빈은 손에 들고 있던 자동차 열쇠까지 바닥에 떨어뜨렸다. 금속이 대리석 바닥과 부딪치며 맑은 소리를 냈다.“너 왜 그래?”정월대보름이라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려고 본가에 돌아온 참이었다. 거실에 있던 허진강은 당황한 아들을 의아한 얼굴로 바라봤다.“저요? 아무렇지도 않은데요.”허경빈은 황급히 열쇠를 주워 들며 시선을 피했다.“등불 축제는 볼 만했어?”“그럭저럭요. 좀 피곤해서 먼저 방에 들어갈게요.”그는 서둘러 계단 쪽으로 향했다.홀로 남은 허진강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내가 뭐 특별한 걸 물어봤나? 그런데 저 녀석은 대체 왜 얼굴이 빨개진 거야?’다음 날, 허경빈은 송윤재에게서 주말에 집으로 와 식사하자는 연락을 받았다.만월연에서 송윤재는 설에 받은 선물에 대한 답례로 밥을 사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허경빈은 그저 의례적으로 건넨 인사라고 생각했는데, 송윤재는 빈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정말로 그를 집에 초대한 것이다.기다리던 주말이 되자 허경빈은 유난히 멋진 옷을 골라 입었다. 그것도 모자라 미용실까지 찾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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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0화

“송지아 씨에게 진실을 말씀드리러 왔어.”“일단 나랑 가.”설도윤은 다급히 진이화의 팔을 붙잡아 밖으로 데려가려 했다. 하지만 진이화가 순순히 따라가지 않으면서 두 사람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허경빈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봤다.저 둘은 지금 대체 뭐 하는 거지?그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상황을 살피던 순간, 진이화가 갑자기 설도윤의 손을 뿌리쳤다. 그러고는 곧장 송지아의 곁으로 달려갔다.“송지아 씨, 저와 설도윤은 진작 헤어졌어요. 그 사람은 진심으로 지아 씨를 좋아해요.”진이화는 다급히 숨을 고르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저희는 헤어진 뒤에도 친구로 지냈어요. 제가 경성에 홀로 지내면서 의지할 곳 하나 없는 걸 가엾게 여겨서, 도윤이가 조금씩 챙겨 준 것뿐이에요. 요즘 밖에서 온갖 소문이 돌고 있잖아요. 도윤이는 떳떳하니 굳이 해명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저는 착한 사람이 억울한 오해를 받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어요. 저 때문에 두 분의 인연이 어긋난다면 저는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거예요.”진이화는 결백을 증명하겠다는 듯 손까지 치켜들었다.“제 말을 믿지 못하시겠다면 맹세할게요. 제가 지금 한 말에 조금이라도 거짓이 있다면, 밖에 나가자마자 차에 치여 죽어도 좋아요.”허경빈은 할 말을 잃었다.‘젠장.’이게 대체 무슨 막장 전개야?“이화야, 이러지 마.”설도윤은 곤란한 표정으로 그녀를 말렸다.“이 일은 내가 지아에게 직접 설명할게.”“어떻게 설명할 건데? 밖에서는 이미 말도 안 되는 소문이 퍼질 대로 퍼졌잖아. 내가 너한테 이렇게 큰 피해를 줄 줄 알았다면,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절대로 너한테 도움을 청하지 않았을 거야. 나 때문에 네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게 됐잖아.”진이화는 울분을 삼키듯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추악한 생각만 할 수 있지?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으면 무조건 그런 관계인 거야? 심지어 그 일로 너를 협박한 사람까지 있다며. 사람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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