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파혼 후 시작된 그의 집착: Chapter 1121 - Chapter 1130

1137 Chapters

제1121화

허경빈은 설도윤이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이제 설도윤은 허경빈을 완전히 적으로 돌린 셈이었다.허씨 집안을 건드리는 것은 분명 위험한 도박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로 송씨 집안의 신뢰와 지지를 얻고 송지아와 무사히 결혼할 수만 있다면, 설도윤에게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왜 아무 말도 못 하죠? 저지를 용기는 있어도 인정할 용기는 없나요?”진이화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이화야, 이제 그만해.”설도윤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린 뒤 송지아를 바라봤다. 애써 짜낸 미소에는 씁쓸함과 자조가 가득했다.“내가 주제도 모르고 너를 욕심낸 거야. 너와 결혼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도 않아. 그저 네가 나를 오해하지만 않는다면 그것만으로 만족해.”그는 송씨 가족들을 차례로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정말 죄송합니다. 괜한 일로 폐를 끼쳤습니다.”인사를 마친 설도윤은 진이화에게 함께 나가자는 눈짓을 보냈다.그러나 진이화는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허경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였다.“당신이 그러고도 남자예요? 뭐라고 말이라도 해 봐요.”허경빈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무슨 말을 하라는 건데요?”“남을 협박해 놓고 인정도 못 하겠다는 거예요?”허경빈의 입가에 옅은 조소가 번졌다.“내가 언제 부정했습니까?”“내가 저 사람을 협박한 건 맞아요. 그래서요?”그의 얼굴에는 한 치의 거리낌도 없었다. 오히려 누구도 자신을 어쩌지 못한다는 듯 오만하고 당당했다.“내가 저 사람에게 욕심이 지나치다고 말한 적은 있어도, 그런 식으로 모욕을 준 적은 없습니다.”허경빈은 설도윤을 힐끗 바라보며 비웃었다.“그런데 자기 주제는 제법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나 보네요. 백조를 탐했다는 것은 알고 있으니.”설도윤은 허경빈이 오만하고 제멋대로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송씨 집안 한복판에서도 이렇게 거침없이 행동할 줄은 몰랐다.“예전에도 당신을 쓰레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당신은 인간도 아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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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2화

“유미!”송윤재의 낮고 엄한 목소리가 거실을 울리자, 맹렬하게 짖어 대던 강아지가 거짓말처럼 입을 다물었다.그가 눈을 가늘게 좁혀 노려보자 유미의 조그마한 몸이 흠칫 떨렸다. 조금 전까지 기세 좋게 설도윤에게 달려들던 녀석은 꼬리를 축 늘어뜨린 채 송지아의 발치로 쪼르르 달려가 숨었다.*허경빈이 송씨 집안에서 식사하기로 했던 약속은 결국 갑작스러운 소동으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송윤재는 현관까지 그를 배웅하며 다음에 다시 초대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허경빈은 그 말에 담긴 미묘한 거리감을 모르지 않았다.이 일은 결국 송씨 가족이 누구의 말을 믿느냐에 달려 있었다.만약 그들이 설도윤의 말을 믿고 자신을 의심한다면, 어쩌면 그는 평생 다시는 이 집의 문턱을 넘지 못할지도 몰랐다.그 생각에 가슴 한쪽이 무겁게 가라앉았다.“삼촌!”그때 송민정이 안쪽 방에서 쪼르르 달려 나왔다. 아이는 갑자기 돌아가려는 허경빈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맑은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오늘 점심 우리 집에서 먹기로 했잖아요.”허경빈은 애써 웃음을 지으며 아이의 보드라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삼촌한테 일이 좀 생겼어. 다음에 다시 먹으러 올게.”“그럼 내일 삼촌 집에 고양이 보러 가도 돼요?”허경빈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옆에 서 있는 송윤재를 슬쩍 바라봤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결국 허경빈은 대답을 남기지 못한 채 현관문을 나섰다.그가 탄 차가 대문 너머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던 송민정은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동그란 얼굴에는 섭섭한 기색이 가득했다.송윤재는 그런 딸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툭 쳤다.“아까 유미를 일부러 내보냈지?”“삼촌이 맞을 뻔했잖아요.”송민정은 자신이 잘못한 게 없다는 듯 당당하게 대답했다.“분명 방에 있으라고 했는데, 몰래 엿들은 거야?”“아니에요. 몰래 엿들은 건 엄마고, 나는 그냥 엄마 옆에 있어 준 것뿐이에요.”송윤재가 말없이 바라보자, 아이는 눈치를 살피며 한마디를 재빨리 덧붙였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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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3화

허경빈은 차라리 머리를 벽에 박고 싶은 심정이었다.아버지의 사고방식은 언제나 기상천외해서, 다음 순간 무슨 말을 꺼낼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었다.아니나 다를까, 허진강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띤 채 아들을 바라봤다.“경빈아, 넌 어릴 때부터 남들이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 별로 신경 쓰지 않았잖아. 설 전에 송씨 집안에 선물 좀 가져다주라고 했을 때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죽는소리를 하더니.”도살장에 끌려가는 소?허경빈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아버지와 대화를 나눌수록 두통만 심해지는 기분이었다.허진강은 아들의 표정을 재미있다는 듯 살피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오늘은 송씨 집안에서 밥 한 끼 먹는다고 레드카펫이라도 밟으러 가는 것처럼 차려입었더구나. 게다가 그 사람들이 너를 오해할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고.”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솔직히 말해 봐. 네가 신경 쓰는 게 송씨 가족 전체의 시선이야, 아니면 그 집안의 누군가가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한 거야?”마침 국수를 먹던 허경빈은 그 말에 그대로 사레가 들렸다.“콜록, 콜록!”한동안 연거푸 기침하느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허진강은 물을 건네기는커녕, 속내를 들켰다는 듯 당황하는 아들을 보며 더욱 즐겁게 웃었다.“왜? 그 집 딸한테 한 번 물리더니, 그때 없던 정도 이제 와서 생긴 거냐? 우리 경빈이가 드디어 여자에게 눈을 떴구나. 늙은 아버지는 아주 감격스럽다.”허경빈은 순식간에 식욕을 잃었다.그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허진강이 곧바로 불러 세웠다.“어디 가?”“자려고요!”“무슨 잠을 자. 국수부터 다 먹어. 음식 버리면 못 써.”허진강은 작게 코웃음을 친 뒤, 축 처진 아들을 달래듯 말했다.“그렇게 풀이 죽어 있지 마. 일단 배부터 채워야 저 인간쓰레기를 어떻게 상대할지 궁리할 힘도 생기지.”허경빈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그 말만큼은 일리가 있었다.그는 다시 자리에 앉아 남은 국수를 깨끗이 먹었다. 따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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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4화

송지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마친 뒤 허경빈에게 답장을 보내려던 순간, 휴대전화에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설도윤이 보낸 것이었다.[다음 주 화요일에 같이 저녁 먹을래?]다음 주 화요일?잠시 날짜를 헤아리던 송지아는 그날이 밸런타인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그녀는 칫솔을 입에 문 채 손가락으로 휴대전화 가장자리를 천천히 쓸었다. 거울 속 입가에 의미를 알 수 없는 옅은 미소가 스쳤다.이내 화면을 몇 번 두드려 짤막한 답장을 보냈다.[그래요.]답장을 받은 설도윤은 순식간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일방적으로 공격당하며 방어만 하느니, 차라리 자신이 먼저 움직이는 편이 나았다. 더구나 허경빈에 대한 송씨 가족의 인식이 이토록 좋지 않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송씨 가족은 설도윤의 말을 믿었다.송지아는 직접 진이화를 식사 자리에 초대하고 선물까지 적지 않게 챙겨 주었다. 그 행동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다정하고 사려 깊은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설도윤은 처음에 송지아를 그저 훌륭한 결혼 상대로만 생각했다.그녀와 결혼하면 자신의 신분과 지위가 단숨에 올라갈 수 있었다.하지만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지켜보니, 모두가 떠받드는 ‘작은 공주님’이라는 별칭과 달리 그녀에게는 제멋대로 구는 면이 조금도 없었다. 영리하고 아름다웠으며, 업무 능력까지 뛰어났다.그런 송지아를 알아 갈수록 설도윤의 마음에도 어느새 진심이 조금씩 스며들었다.심지어 가슴이 두근거리는 순간도 있었다.다만 가족들의 넘치는 사랑과 보호 속에서 곱게 자라서인지, 송지아는 생각보다 달래기도 쉬웠고 속이기도 쉬웠다.그의 부모님도 송지아가 밸런타인데이에 아들과 만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이번 기회는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 가능하면 이번에 송지아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그래. 시간을 끌수록 또 무슨 변수가 생길지 모르잖니.”들뜬 분위기 속에서도 설도윤은 쉽사리 안심하지 못했다.“그래도 허씨 집안 쪽이 계속 마음에 걸려요…”“벌써 며칠이나 지났는데 허경빈은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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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5화

허진강이 곱게 포장된 반지를 들고 돌아왔을 때, 조금 전까지 진열장 앞에 있던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그는 주변을 둘러보다 강정한에게 행방을 물었다. 그러자 허경빈이 조금 전 누군가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뒤 서둘러 나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누구랑 이야기했는데?”허진강이 미간을 찌푸리자 강정한은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아마 성이 설 씨였던 것 같은데요.”“설도윤?”강정한이 고개를 끄덕였다.허진강은 골치가 아픈 듯 손가락으로 미간을 꾹 눌렀다.설마 이 녀석, 설도윤을 쫓아가 두들겨 패려는 건 아니겠지?불길한 예감에 그는 곧장 허경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아들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갑자기 생각났는데, 하랑이가 목욕한 지 오래됐더라고요. 목욕시키러 가는 중이에요.”허진강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저 녀석, 충격을 너무 받아서 결국 이상해진 건가?최근 허경빈은 눈에 띄게 기운이 없었다. 게다가 밖에서는 송씨 집안과 설씨 집안의 혼사가 임박했다는 소문이 연일 떠돌고 있었다.아들의 정신 상태가 걱정된 허진강은 얼마 전에도 넌지시 물은 적이 있었다.“요즘 왜 그렇게 넋을 놓고 다녀? 꼭 실연이라도 당한 사람 같잖아.”허경빈은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저 실연 안 당했어요.”“그것도 맞는 말이네. 너와 송씨 집안 딸은 사귄 적도 없는데, 어떻게 실연이라고 할 수 있겠어?”그 순간 허경빈은 진심으로 아버지와 연을 끊고 싶었다.*하랑이는 집에서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편안하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그런데 갑자기 고양이 침대에서 끌려 나와 반려동물 미용실로 보내지더니, 난데없이 목욕과 미용을 한꺼번에 받게 됐다.거기서 끝이 아니었다.허경빈은 하랑이의 목에 앙증맞은 나비넥타이까지 매어 주었다.하랑이는 하이석과 온유란의 손에서 자란 고양이였다. 하씨 집안에 있을 때는 하정현마저 녀석을 몹시 귀여워했다. 그야말로 온 집안을 제 세상처럼 누비던 귀한 고양이었다.그런 하랑이에게 허경빈은 심지어 레이스 치마까지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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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6화

송지아에게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오빠 송윤재가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하나뿐인 여동생을 끔찍이 아꼈다.송지아는 마음만 먹으면 가족의 사랑과 보호를 받으며 평생 편안하게 살아갈 수도 있었다. 굳이 힘든 일을 자처하며 고생할 필요가 없었다.송지아는 허경빈의 말을 듣고 살며시 미소 지었다.“이런 집안에서 태어난 것만으로도 나는 대부분의 사람보다 훨씬 운이 좋은 거잖아. 부모님께 받은 사랑이 많으니까 나도 가족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그리고…”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차분한 목소리로 덧붙였다.“스스로 돈을 벌어야 어디서든 당당할 수 있어. 남자든 여자든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건 중요하니까.”허경빈은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아버지는 경성에 아는 사람이 많다고 늘 말씀하셨어. 하지만 우리 가족이 경성을 떠난 지 워낙 오래돼서, 예전과는 사람도 상황도 많이 달라졌더라고. 게다가…”말끝을 흐린 송지아가 허경빈을 슬쩍 바라봤다.그 시선을 알아차린 허경빈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게다가 뭐?”“많은 사람이 우리 두 집안 사이에 앙금이 있다고 생각해. 허씨 집안은 성세 그룹뿐만 아니라 하씨 집안, 방씨 집안과도 관계가 깊잖아.”송지아는 손에 든 포크로 샐러드를 가볍게 뒤적이며 말을 이었다.“그래서인지 우리 집안과 가까이 지내기를 꺼리는 사람이 꽤 많아. 나중에 우리 두 집안의 사이가 틀어지면 중간에 끼어 곤란해질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아.”“오늘 나를 만나자고 한 게 그 이야기를 하려던 거야?”허경빈은 바보가 아니었다.송지아가 정말 조카를 데리고 고양이만 보러 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그녀가 먼저 연락해 왔다는 사실은 분명 기뻤다. 하지만 그는 섣불리 기대하지 말자고 몇 번이나 자신을 다잡았다.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야 했다.송지아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마침 식사를 마친 송민정은 눈치 빠르게 식당 한편에 마련된 어린이 놀이 공간으로 향했다. 아이가 자리를 비우면서 두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단둘이 이야기할 시간이 생겼다.“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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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7화

특히 식사하면서 송지아가 들려준 이야기는 허경빈에게 더할 나위 없는 희소식이었다.며칠 동안 가슴을 짓누르던 답답함도, 눈앞을 가리고 있던 짙은 먹구름도 한순간에 말끔히 걷혔다.그 순간, 허경빈의 머릿속에서는 두 개의 목소리가 치열하게 맞붙었다.한쪽에서는 쉴 새 없이 그를 부추겼다.‘들이대! 겁먹지 말고 입 맞춰.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몰라!’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매섭게 양심을 두드렸다.‘넌 그래도 양심 있는 사람이잖아. 잠든 사람에게 이러면 안 돼. 입 맞추는 순간 갑자기 눈을 뜨면 어떡하려고? 놀라서 너를 피해 버릴 수도 있잖아. 송지아는 네 여자 친구도 아니야. 이건 엄연히 못된 짓이라고. 정말 입 맞추고도 네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어?’‘들이대!’‘안 돼!’‘무조건 들이대!’‘절대 안 돼!’두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한참을 다투던 끝에, 결국 욕망이 이성을 이겼다.허경빈은 더 이상 사람답게 굴고 싶지 않았다.점잖고 올바른 사람인 척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그는 여전히 송지아의 뺨 가까이에 머물러 있던 손을 천천히 움직였다. 팔을 그녀의 반대편으로 뻗어 좌석 등받이를 짚은 뒤, 몸을 기울여 조심스럽게 다가갔다.손가락이 그녀의 목덜미 옆에 가볍게 닿았다.손끝에 닿은 피부는 따뜻하고 보드라웠으며, 그 아래에서 작게 뛰는 맥박까지 느껴지는 듯했다.순간 차 안의 공기가 모조리 빠져나간 것처럼 숨이 막혔다.허경빈은 저도 모르게 호흡을 멈췄다. 흐트러진 숨결이 송지아의 얼굴에 닿아 그녀를 깨울까 봐,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두 사람의 거리는 조금씩 좁혀졌다.더 가까이. 조금만 더…이제는 송지아가 내쉬는 따뜻한 숨이 그의 입가를 가볍게 간질일 정도였다.그녀의 숨결이 스칠 때마다 허경빈의 신경이 팽팽하게 당겨졌다.마치 잠든 채로도 계속 그를 유혹하는 것 같았다.심장이 쿵, 쿵, 쿵 세차게 뛰었다. 가슴 안쪽이 아플 정도로 거센 박동이었다.“송지아…”허경빈이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낮고 잠긴 목소리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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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8화

송지아에게 몰래 입 맞추는 데 성공한 허경빈은 속으로 날아갈 듯 기뻤다.하지만 조금 지나 냉정을 되찾자 자신이 몹시 못된 짓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들었다.이건 순전히 잠든 사람을 상대로 몹쓸 짓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만약 송지아도 자신에게 마음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이 일을 알게 됐을 때 자신을 혐오하게 되지 않을까?허경빈은 식사하면서 송지아가 들려준 이야기를 다시 한번 되짚으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다음 날.허경빈은 하이석이 집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일부러 하씨 집안을 찾아갔다.온유란은 임신한 뒤로 유난히 먹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허경빈은 그녀를 위해 새콤달콤한 매실 절임을 사 갔고, 하정현에게 줄 귀한 고량주도 몇 병 챙겼다.눈치 빠른 하이석이 그 속셈을 모를 리 없었다.허경빈은 아무 일 없이 선물까지 바리바리 싸 들고 찾아올 사람이 아니었다.“나한테 부탁할 일 있어?”단번에 속내를 들킨 허경빈은 어색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이석아, 우리 알고 지낸 지 꽤 오래됐지?”“할 말 있으면 바로 해. 새삼스럽게 옛날이야기 꺼내지 말고.”허경빈은 시작부터 말문이 막혔다.정말 매정한 녀석이었다.“우리 중에는 나만 혼자잖아. 너희가 다들 행복하게 사는 걸 보니까 나도 연애하고 싶더라고…”허경빈은 하이석을 향해 능글맞게 웃었다.“내가 우리 중에서 제일 막내잖아. 다들 평소에도 나를 제일 아껴 줬고. 내가 어려움에 빠졌으면 너도 당연히 몸을 던져서 도와줘야지!”하이석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없이 그를 살폈다.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에 허경빈은 괜히 뒤통수가 서늘해졌다.다행히 옆에 있던 온유란이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차 좀 마실래요?”“무슨 차예요?”“오렌지와 배, 대추를 넣은 과일차예요.”“고마워요, 형수님.”허경빈은 따뜻한 과일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은은한 과일 향과 달콤한 맛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그는 맛있다며 온유란을 한껏 추켜세웠다. 그러자 하이석이 갑자기 한마디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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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9화

허씨 집안은 경성에서도 가장 번화한 중심지에 초고층 빌딩 한 채를 통째로 소유하고 있었다.그곳을 처음 방문한 설도윤은 건물 꼭대기 층에 자리한 허경빈의 집무실에 도착하자 통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도시를 내려다봤다.수많은 건물과 촘촘한 도로가 아득한 발아래 펼쳐져 있었다.마치 거대한 도시 전체가 자신에게 굴복해 발밑에 엎드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송지아와 결혼해 송씨 집안의 지원을 받을 수만 있다면, 언젠가는 자신도 허경빈처럼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을 터였다.“귀한 손님이 오셨네.”마침 고객과의 미팅을 마치고 집무실로 돌아온 허경빈이 설도윤을 바라봤다.“나한테 무슨 볼일이죠?”“밸런타인데이에 지아에게 청혼할 생각입니다. 허경빈 씨도 시간 되시면 오시겠습니까?”허경빈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설도윤은 전에 보석점에서도 자신을 초대했다. 그런데 굳이 회사까지 찾아와 같은 말을 반복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우리 사이에는 오해가 좀 있지 않습니까. 허경빈 씨도 송씨 집안과 계속 불편하게 지내고 싶지는 않으실 테고요.”설도윤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제가 두 집안의 관계를 중재해 보고 싶습니다. 송씨 가족들도 그 정도 부탁은 들어주시리라 생각합니다.”“송씨 가족들도 참석해요?”설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다만 지아는 아직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니 당분간 비밀로 해 주십시오.”허경빈은 그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나중에 시간과 장소를 보내 주세요. 시간 되면 갈 게요.”설도윤의 얼굴에는 승자의 여유가 가득했다.그는 목적을 이뤘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허씨 그룹을 나섰고, 곧장 진이화를 만나러 갔다.두 사람이 약속한 장소는 고급스러우면서도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좋은 식당이었다. 독립된 공간으로 꾸며진 방 안에는 부드러운 조명이 내려앉아 있었고, 테이블 위의 촛불이 잔잔하게 흔들렸다.설도윤은 정교하게 포장된 선물 상자를 진이화에게 내밀었다.진이화는 샤넬과 루이비통 정도의 포장만 알아볼 수 있었다. 상자를 열어 본 그녀의 얼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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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0화

다음 날, 설도윤은 진이화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짐을 모두 정리했고 이제 역으로 출발한다는 내용이었다.설도윤은 회의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만 남긴 채 휴대전화를 꺼 버렸다. 이후 진이화가 보내는 연락에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오늘은 밸런타인데이였다.그는 송지아에게 청혼하기 위한 준비로 분주했다.그 시각, 진이화는 홀로 아파트에서 여행 가방을 끌고 내려오고 있었다.문을 나서기 전, 그녀는 한때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눴던 집 안을 천천히 돌아봤다. 함께 고른 가구와 곳곳에 남은 추억을 바라보자 쉽사리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그러나 결국 마음을 다잡고 문을 닫았다.건물 밖으로 나온 진이화가 택시를 부르려던 순간, 입구 앞에 미리 세워져 있던 검은색 승용차에서 남자 두 명이 내렸다.“진이화 씨 맞으십니까?”두 사람은 모두 키가 185센티미터쯤 되어 보였다. 단단한 근육이 검은색 정장 위로 불룩하게 드러나 있었고, 움직임만 봐도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사람들임을 알 수 있었다.진이화는 놀라 몸을 움찔하며 경계 어린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누구세요?”“설도윤 씨가 역까지 안전하게 모셔다드리라고 저희를 보냈습니다. 믿기 어려우시다면 직접 전화해서 확인하셔도 됩니다.”“설도윤이요?”“네.”하지만 설도윤의 휴대전화는 이미 꺼져 있었다.몇 번을 걸어도 연결되지 않자 진이화의 얼굴에 망설이는 기색이 떠올랐다.그러자 남자 중 한 명이 정중한 말투로 설명했다.“저희를 믿지 못하시겠다면 직접 택시를 타셔도 됩니다. 저희는 뒤에서 따라가겠습니다. 역에서 안전하게 열차에 타시는 것까지만 확인하면 임무는 끝납니다. 그래야 설도윤 씨에게도 제대로 보고드릴 수 있고요.”두 사람은 시종일관 예의 바르게 행동했고, 심지어 직접 택시를 불러 주겠다고까지 했다.그 정도로 말하자 진이화의 경계심도 조금씩 누그러졌다. 결국 그녀는 두 남자가 여행 가방을 차에 싣도록 내버려 둔 뒤 뒷좌석에 올랐다.차 안에는 그녀를 위한 아침 식사까지 준비되어 있었다.진이화는 설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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