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파혼 후 시작된 그의 집착: Chapter 571 - Chapter 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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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1화

맥주 한 캔일 뿐인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취기가 도는 걸까?강희진은 손을 뻗어 방주헌의 얼굴을 감싸 쥐고는 싱긋 웃었다.“진짜 너무 잘생겼다.”방주헌은 이런 쪽으로는 꽤 순수한 편이라, 강희진의 대담함에 귀 끝이 다시 붉어졌다.“너무 취한 것 같으니 내가 집에 데려다줄게요.”그는 손을 내밀어 휘청거리는 강희진을 부축하려 했다.그런데 강희진의 몸은 너무 뜨거워서 닿는 순간, 손이 데일 듯했다. 주머니 속에는 콘돔이 들어 있었고, 머릿속에는 온갖 악귀들이 몰려들었다.특히 술기운에 붉어진 그녀의 얼굴과 입술, 그리고 술 냄새와 섞인 그녀의 향기는 이미 방주헌의 이성을 잠식해 버리고 있었다.‘안 돼! 방주헌, 취한 틈을 타서 선을 넘어선 안 돼!’방주헌은 한 발 물러섰다.그녀와 거리를 두고, 어떻게든 스스로를 진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겨우 뒤로 물러섰는데 강희진이 다시 따라붙었다.한 걸음씩 밀어붙이던 강희진은 방주헌을 그대로 벽에 몰아넣었다.그녀의 몸은 힘이 풀려 한없이 부드럽게 무너져 있었고, 맞닿은 자리마다 뜨거운 열기가 번져 방주헌은 온몸이 아찔하게 떨렸다. “희진 씨, 시간도 늦었으니까, 제가 집에 데려다...”방주헌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눈앞의 여자는 그의 발을 밟고 오라서더니 그대로 목을 감고는 그의 입술을 덮쳤다.너무나 뜨겁고도 부드러운 감촉에 방주헌은 힘이 쭉 빠지는 듯했다.강희진은 그의 셔츠를 잔뜩 구겨 놓았다.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여기저기 탐색이라도 하듯 집요하게 매달렸다.서툴지만, 마음을 전하려는 듯한 조급함이 묻어났다. 방주헌은 눈앞이 아찔했다.강희진의 몸은 말캉했고, 입술은 달콤해서 말로는 이루 표현할 수 없는 두근거림이 서서히 온몸을 휘감았다. 그의 목을 휘감고 있던 강희진의 손이 목덜미를 스치자, 잔잔한 전류가 흐르듯 몸이 저릿해졌다.방주헌은 급히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희진 씨…”입을 여는 순간, 그녀의 혀가 그대로 파고들었다.방주헌의 머릿속이 하얘졌다.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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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2화

오늘 밤의 분위기가 너무 좋았던 탓일까.두 사람은 정신을 잃은 듯 서로에게 빠져들었고, 옷은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었다.강희진은 어느새 침대 위로 밀려났고, 방주헌은 이내 몸을 기울였다.몸은 이미 깊이 달아올라, 힘없이 녹아내리듯 풀어져 있었다.방주헌은 그녀를 내려다봤다.가쁘게 어어지는 숨결과 낮게 새어 나오는 신음소리. 너무나 아찔한 광경이었다.방주헌의 입맞춤이 아래로 이어졌다.뜨겁게 달아오른 손끝이 그녀의 옷 속으로 파고들어, 잘록한 허리에 닿는 순간, 강희진은 몸을 움찔하며 낮은 신음을 뱉어냈다. 방주헌의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다.당장이라도 그녀를 집어삼킬 듯 다소 위험하게 빛나고 있었다.강희진은 오늘 밤, 정말 선을 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그녀의 손끝이 방주헌의 허리춤으로 미끄러져 내려갔고, 벨트가 풀리는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오랜 시간 해외에서 지내며 보고 들은 것이 많았던 강희진은 비교적 대담한 편이라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라면, 체면이나 수줍음 같은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신경은 팽팽히 곤두섰고 모든 감각들이 손끝으로 집중됐다.방주헌도 입술을 살짝 벌리며 그녀를 받아주었다.거칠어진 숨소리와 뜨거운 숨결이 들쭉날쭉, 그녀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눌러 담은 열기와 흥분을 좀처럼 숨길 수 없어 마치 불에 데인 듯 뜨겁게 활활 타올랐다. 순간 치솟는 열기에, 강희진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고 방주헌은 그대로 욕실로 뛰어가 버렸다.아직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강희진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뭐지? 이게 끝이야?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끝났다고?’욕실로 들어간 방주헌 역시 어안이 벙벙했다.‘와... 미치겠네...’강희진은 분명 그를 우습게 볼 것이다.그가 너무 빨리 끝내버렸기 때문이다.모든 게 너무 순식간에 벌어졌고, 온몸의 피가 끓어오르는 것처럼 흥분해 있었는데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그대로 끝나버린 것이다.강희진의 몸을 조금 탐했을 뿐이다.방주헌은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잘난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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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3화

“모르겠습니다. 저 상태가 벌써 며칠째 이어지는 걸 보면 뭔가 크게 충격받은 것 같긴 한데요.”조우리도 슬쩍 떠보듯 물어본 적이 있었다.그때마다 방주헌은 원망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는데,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한 기세라 더는 묻지도 못했다. 방주헌이 강희진과 다퉜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도대체 뭐에 꽂혀서 저러는 거지?그래도 방주헌은 금세 감정을 추슬렀다.그는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체면을 회복해서 강희진에게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놈인지, 탄복하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다.다만 강희진은 요즘 너무 바빴다.디자인 의뢰가 몰려들어 정신없이 지내는 탓에, 서은주조차 그녀를 만나려면 미리 약속을 잡아야 할 정도였다.방주헌으로선 실력을 펼칠 기회조차 없어, 내심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그래도 육씨 가문에 자주 드나들었다.강지택이 그곳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함께 채찍도 휘두르고, 공원에 나가 운동도 했다.방주헌은 입담이 좋아 강지택의 일상에도 웃음이 많아졌다.강지택은 늘 공원에 걷다 보니 동네 노인들과도 이미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연예계 소식에는 관심이 없는 이들은 방주헌을 알아보지 못했고, 그저 잘생긴 젊은이를 보자 웃으며 손주냐고 농담을 던지곤 했다. 강지택과 방주헌은 서로를 바라보며, 둘 사이 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잠시 난감해졌다.방주헌은 또 종종 강지택을 모시고 밖으로 나가, 경성에서 유명한 맛집들을 찾아다니며 식사를 대접했다.그 덕에 육민찬과 육수린까지 덩달아 호강하며 맛있는 걸 꽤나 먹게 됐다.하지만 강지택은 맛있는 걸로 꼬신다고 해도 딸을 시집보낼 생각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그런 뜻 아닙니다. 희진 씨가 요즘 너무 바빠서요. 어르신도 모처럼 경성에 오셨으니, 대신 제가 좀 더 곁에서 챙겨드리고 싶었습니다.”방주헌의 입은 꿀을 바른 듯 달콤해서 강지택을 흐뭇하게 만들었다.그 결과 불과 일주일 만에, 육민찬이 5근이나 불어버린 것이다.결혼식에서 화동을 맡았는데 배가 동글동글하게 나와버려 서은주가 맞춰준 예복이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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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4화

그러자 강희진이 웃으며 말했다.“맞아. 요즘 외국인 고객을 맡게 됐는데, 해외에서 살긴 했어도 영어 말고는 자신이 없거든. 프랑스 고객 때문에 통역이 필요해서 요즘 연주 언니랑 자주 같이 일하고 있어.”“주든 정식 직원이에요?”“아니, 특별 초빙한 통역사야. 동시통역을 주로 하고, 뉴스나 비즈니스 행사 쪽 일을 많이 하셔.”“동시통역이요?”서은주는 TV에서 외교 행사나 국제 중재 같은 프로그램에서 본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대단한 분이네요.”“실력도 좋은데 사람은 더 좋아. 마침, 큰 건을 끝내고 휴가 중이라, 우리 회사 일은 알바로 도와주고 있는 거야.”무엇보다 주든에서 보수를 후하게 주기도 했다.동시통역은 요구 수준이 높아서 인재가 부족한 만큼 수입도 상당하다고 강희진이 덧붙였다.하루 단위로 계산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엔 시간, 심지어 분 단위로 비용을 매기기도 한다는 것이다.경력 있고 실력 좋은 통역사는 시간당 거의 이백만 가까이 받기도 한다고 했다.육민찬은 간식을 먹으며 조용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통역이라는 게 이렇게 돈이 되는 일이구나.’집에 돌아온 뒤, 평소처럼 육남혁이 숙제를 봐줬다.그런데 요즘 큰 아빠는 어딘가 기운이 없어 보였다.자주 멍하니 있었고, 예전처럼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육민찬이 조심스럽게 물었다.“큰 아빠, 기분 안 좋아요?”“아니야.”“이거 드세요.”육민찬이 강희진이 사준 간식을 육남혁에게 건넸다.아이 생각에는 맛있는 걸 먹으면 기분이 나아지는 법이니까, 큰 아빠도 먹으면 괜찮아질 거라 여긴 것이다.육남혁은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이건 누가 사준 거야?”“이모할머니요.”강희진 이야기가 나오자, 육민찬은 오늘 있었던 일을 신나게 풀어냈다.통역사가 돈을 많이 번다는 얘기까지 덧붙이며, 가슴을 탁 치며 선언했다.“저 나중에 통역사가 될 거예요!”그 말을 듣는 순간, 육남혁의 마음이 묘하게 흔들렸다.그러더니 학교에 일이 있다며 저녁도 먹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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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5화

서은주는 육민찬에게 과외를 붙이는 일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강희진 말대로라면 동시통역은 시간, 심지어 분 단위로 돈을 받는 일인데, 그런 사람이 아이 하나 가르치느라 시간을 허비할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런데 이틀 뒤, 뜻밖의 답을 받았다.“연주 언니가 승낙했어.”강희진의 목소리는 한결 가벼웠다.“정말요?”서은주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내일 주말이니까 내가 직접 모시고 갈게. 보수는 그때 가서 천천히 맞춰봐.”“고마워요, 이모.”육강민이 퇴근하자, 서은주는 이 소식을 전했다.그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넥타이를 느슨하게 잡아당겼다.결혼식이 가까워질수록 일은 많아지고, 약속도 잦아져 눈가에 피로가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서은주는 그의 넥타이를 풀어주며 말했다.“그분이 승낙할 줄은 몰랐어요.”육강민은 짧게 답한 뒤 물었다.“형은 집에 있어?”“학교에 일이 있다고 어젯밤에도 들어오지 않았어요.”서은주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요즘 좀 이상해요. 얼굴 보기도 쉽지 않아요.”“그분이 와도 돌아오지 않고 배길 수 있을까?”육강민이 낮게 중얼거렸다.“네?”서은주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아무것도 아니야.”“아주버님이 계시지 않으니, 당신이 민찬이 숙제 좀 봐줘요.”“...”“화는 내지 말고요!”서은주가 미리 못 박자, 육강민은 감정을 잘 조절해 보겠다고 약속했다.하지만 육민찬 방에 들어가자마자, 방 안에서는 이따금 누군가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어른의 멘탈이 무너지는 건, 아이 숙제 봐주기에서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방금 전까지 얌전히 숙제를 하던 육민찬은 돌아서면 지우개를 만지작거리며 놀고 잠시 뒤에는 화장실에 간다, 목마르다, 배고프다며 한참을 들쑤셔 놓다가 겨우 연필을 잡았나 싶더니, 첫 마디가 이 문제는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숙제만 아니면 다정한 부자였지만 숙제만 시작하면 집안이 전쟁터가 된다.육강민은 육민찬의 숙제가 끝날 때까지 지켜보고, 씻기는 것까지 챙긴 뒤에야 방으로 돌아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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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6화

어젯밤에는 놓아달라고 애원하며 온몸이 아프다고 난리였던 그녀는 지금, 허리도 안 아프고 다리도 멀쩡한 모양이다.남자들의 침대 위에서 하는 말은 믿을 수 없다지만, 육강민이 보기엔 여자 쪽이 더 그런 것 같다.씻고 거울을 보던 서은주는 육강민이 남긴 붉은 자국을 발견했다.부끄럽고 너무 얄밉기도 해서 일부러 목까지 올라오는 니트를 꺼내 입었다.아래층으로 내려가니, 한주미는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고, 박명숙은 판소리를 들으며 흥얼거리고 있었다.그리고 육진국은 낚싯대와 미끼를 정리하는 중이었다.육수린은 서은주를 보자마자, 짧은 다리로 비틀거리며 달려왔다.그저 따뜻하고 평온한 일상이었다.“민찬아, 그만 놀고 손 씻고 와. 선생님이 오실 거야.”서은주가 육수린을 품에 안으며 말했다.그 말을 듣자마자, 육민찬은 금세 시무룩해졌다.“커서 통역사 하고 싶다며. 그래서 엄청 좋은 선생님 모신 거야. 그러니까 잘해야 한다?”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후다닥 손을 씻으러 갔다.서은주는 도우미에게 차를 내오고, 간식도 준비하라고 일렀다.*모든 준비가 끝날 즈음, 강희진의 차가 육씨 저택에 들어섰다.조수석에 앉아 있던 연주는 다소 얼떨떨했다.주든에서 그동안 괜찮은 기회를 줬다.이번에도 강희진이 아이 영어 과외를 부탁하길래 별다른 의심 없이 승낙했을 뿐이었고 설마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차는 점점 외곽으로 향했고, 그때부터 슬슬 의문이 커지기 시작했다.강희진과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면, 사기당하는 건 아닌지 의심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그런데 여긴 대체 어디지?눈앞에 펼쳐진 저택은 보통 서민이 살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여긴…?”차에서 내리기 전, 연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우리 조카네 집이에요.”“…조카?”그러면 서은주! 육씨 가문을 말하는 것이다!연주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조카네 아이가 영어를 배우고 싶다는데, 당장 괜찮은 선생님을 못 구해서요. 그래서 제가 부탁드린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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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7화

연주는 고개를 돌려 육강민의 시선을 피했지만, 곧바로 미소 띤 한주미의 눈과 마주쳤다.“저녁 먹고 가요.”사람은 원래 예쁜 것을 좋아하는 법이다.딸이 없는 한주미는 특히 단정한 분위기의 고운 아가씨를 보면 더 마음이 갔다. 연주를 보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육씨 가문 사람들은 성격도 좋고, 괜한 권위도 없었다.어떤 집안처럼 돈이나 권력을 믿고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태도는 전혀 아니었다.게다가 조건도 넉넉하게 제시했다.연주는 딱히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했고,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그런데 그 사람은 지금 집에 없는 것 같았다.수업 시간은 평일 저녁으로 정했고, 오늘은 주말이라 오후에 시험 삼아 한 번 수업을 해보기로 했다.민찬의 실력을 좀 더 파악한 뒤, 학습 계획을 세우려는 생각이었다.*오후가 되자, 연주는 약속대로 다시 육씨 가문을 찾았다.서은주는 차와 과일을 내오며 말했다.“선생님, 민찬이 잘 부탁드려요. 혹시 말 안 듣고 장난치면, 절대 봐주지 마세요.”“엄마, 나 되게 얌전한데... 언제 말 안 들었다고 그래요.”육민찬이 작게 투덜거렸다.“그래, 내가 잘못 말했네. 우리 민찬이가 제일 얌전하지.”서은주는 아이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방을 나갔다.육민찬은 쑥스러운 듯 연주를 향해 웃었다.선생님은 너무나 예뻤고, 가까이 오면 좋은 향기도 났다.그래서인지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어 평소보다 더 얌전하게 굴었다.*한편, 육남혁은 학교에서 연구 과제와 논문 작업에 매달리고 있었다.그렇게 바쁘게 움직여야만 잡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그때 휴대폰이 울리자 그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전화를 받았다.“왜.”“형, 오늘 집에 와?”“안 가.”“그렇게 바빠?”“좀 바빠.”육남혁은 안경을 벗고 미간을 눌렀다.“설마 민찬이 숙제 못 봐주겠는 거야?”육민찬이 공부를 시작한 뒤로, 숙제 봐주는 일은 골칫거리가 되어버렸다.침착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육강민조차도 종종 화를 참지 못할 정도였기 때문이다.그래서 육민찬 공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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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8화

육남혁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육강민으로서 알 길이 없었다.다만 그 이후로 한동안, 육남혁은 집에 자주 들어오긴 했지만, 연주가 수업하는 시간은 교묘하게 피해 다녔다.그래서 두 사람은 다시 마주칠 일이 없었다.그쯤 되자, 육강민은 오히려 자신이 잘못 짚은 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다.형이 그 연주라는 여자에게, 감정이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육남혁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니, 그로서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결혼식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더 이상 다른 일에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어쨌든 기회는 만들어줬고 그걸 못 잡는다면, 동생으로서도 더는 해줄 게 없었다.*결혼식을 앞두고, 육씨 가문은 유난히 분주해졌다.외지에서 올라온 친척과 지인들이 많아 집 안은 어수선했고, 육민찬도 집중력이 흐트러져 공부할 마음이 없어 결국 연주와의 수업도 잠시 중단됐다.서은주는 연주에게 청첩장을 건넸다.“제 결혼식, 꼭 와주세요.”“당연하죠.”두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말이 잘 통했다.연주가 과외를 하는 동안, 가끔 서은주의 의학 논문 번역도 도와주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결혼식을 앞둔 며칠 전, 서은주는 강씨 가문으로 들어갔다.결혼식 당일, 그곳에서 시집을 가게 되어 있었으니까.강지택 역시 이 기회를 빌어, 그녀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다.그는 중년에 딸을 잃었고, 딸 강여진을 직접 시집보내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으로 남아 있었다.그래서 그 사랑을 전부 서은주에게 쏟고 있었다.육수린은 엄마와 떨어질 수 없어 함께 갔고, 심지어 육민찬까지 캐리어를 끌고 강씨 가문에 눌러앉았다.아이들이 모두 빠지자, 순식간에 육씨 가문은 한산해졌다.퇴근해 돌아온 육강민은 텅 빈 집이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다.특히 아이들이 없는 게 크게 와닿았다.평소 같으면 육수린이 해맑게 “아빠!” 라며 달려왔을 것이고 한밤중에도 일어나 아이가 또 울지는 않는지 살피는 게 일상이었다.그런데 지금은 갑자기 혼자가 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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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9화

문제는 처음이 너무 허무하게 끝났다는 거였다.그래서 방주헌은 반드시 기회를 잡아,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야 했다.방주헌은 강씨 가문에 자주 드나들며 자연스럽게 강희진과 단둘이 있을 기회를 노렸다.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그날도 강씨 가문에서 저녁을 먹고, 강희진이 그를 문밖까지 배웅했다.차 옆에서, 가볍게 입맞춤을 나누고 헤어지려던 방주헌이 고개를 돌리다 그대로 얼어붙었다.강씨 가문 삼대가 어느새 문 앞에 나와 둘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묘하게 소름 끼칠 정도였다.방주헌은 등골이 서늘해졌고, 강희진은 민망해서 땅을 파고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다들 왜 거기 서 계세요?”집 안에서 서은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때 어디선가 튀어나온 육민찬이 외쳤다.“엄마! 빨리 와봐요! 주헌 삼촌이랑 이모할머니가 뽀뽀해요!”보는 건 그렇다 쳐도, 왜 사람까지 불러 모으냐고!연애 한 번 하는데, 구경까지 하는 건 너무 민망했다.강희진이 집 안으로 들어가자, 육수린이 방금 들은 말을 그대로 따라 하며작은 손을 짝짝 치며 외쳤다.“뽀뽀!”강희진은 어디라도 숨고 싶었다.강지택은 그 모습을 보며 한마디했다.“아이고, 딸 키워봤자 남 주는 거라더니.”강희진은 얼굴이 붉어진 채 그에게 매달렸다.“아빠, 저 아직 그렇게 빨리 시집 안 가요. 아빠 곁에 더 있을 거예요.”강지택이 코웃음을 쳤다.“네가 안 가면, 저 녀석이 짐 싸서 우리 집으로 들어올 판이다.”강준석이 혀를 찼다.“이 날씨에, 밖에서 저러고 있으면 안 춥나 몰라.”강정한이 웃으며 덧붙였다.“아버지, 연애하는 사람들은 속이 뜨거워서 괜찮대요.”“그래, 젊어서 좋구나. 난 바람만 불어도 온몸이 쑤신다.”강지택이 웃으며 한마디 던지자, 삼대가 한마디씩 거들었다.그 바람에 강희진은 더는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결혼식을 이틀 앞두고, 서은주는 양홍철의 전화를 받았다.두 사람은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육수린도 함께 갔는데 예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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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0화

양홍철이 결혼식에 온다는 얘기를 들은 강지택은 썩 내키지 않았다.강여진의 일은 여전히 그의 마음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서은주가 허락한 일이라, 더 말하지는 않았다.밤이 깊어 갈 무렵, 서은주는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들어가 보니, 앨범을 들고 있는 강지택은 눈가가 붉어져 있었고 그녀가 들어오는 걸 보고는 헛기침을 하며 그저 눈이 좀 불편하다고 둘러댔다.그리고 손을 내밀어, 옆에 앉으라며 자리를 내주었다.“할아버지…”서은주는 양홍철 일 때문에 마음이 상했을 걸 알기에, 설명하려 했다.하지만 강지택이 말을 막았다.“아무 말도 하지 마라. 할아버지 바라는 건 하나다. 네가 행복하게 잘 사는 거. 그거 하나면 된다.”서은주가 행복하다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양홍철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서은주는 강지택의 어깨에 기댔다.“할아버지, 감사합니다.”“이 녀석아, 할아버지한테 고맙단 말을 왜 하는 것이냐. 난 그냥 너랑 강민이가 수린이 동생 하나 더 낳아주길 바랄 뿐이다.” 서은주의 얼굴은 금세 달아올랐다.방을 나선 서은주는 육강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 너머는 꽤 시끄러웠다.결혼식이 가까워지면서, 육강민의 친구들이 속속 경성에 도착했고, 군 시절 동기들까지 모이니 자연스레 술자리가 이어지고 있었다.“술 좀 적당히 마셔요.”서은주가 당부했다.“알겠어.”육강민은 이미 꽤 마신 상태라 머리가 어지러웠다.그는 룸을 나와 호텔 복도 벽에 몸을 기대었다.“애들은 자?”술기운이 배어든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다.“아직요. 주헌 씨랑 이모가 데리고 나갔어요.”방주헌이 강희진과 단둘이 있고 싶어서, 아이들 핑계를 댄 것뿐이었지만, 육민찬의 손을 잡고 육수린을 품에 안은 네 사람의 모습은 영락없는 한 가족이었다.“은주야…”술에 달아오른 몸이 답답했던지, 육강민은 셔츠 단추를 두 개 풀었다.“나 안 보고 싶어?”서은주가 강씨 가문으로 들어간 뒤, 두 사람은 마음껏 붙어 있을 수 없었다.서은주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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