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파혼 후 시작된 그의 집착: Chapter 581 - Chapter 590

628 Chapters

제581화

아마 꽤 놀란만 한 결혼 선물일 것이다.*육강민이 룸으로 돌아오자, 친구들이 그를 그냥 두지 않았다.잔에는 계속해서 독주가 채워졌고, 결국 밤 열한 시가 다 돼서야 술자리가 파했다.육지성은 이미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그의 부축임을 받은 육강민은 뒷좌석에 앉아 눈을 감고 가만히 숨을 골랐다.아까는 술에 취해 헛것을 본 걸까?아니면 은주가 너무 보고 싶어서, 헛것을 본 건가?어떻게 그렇게까지 닮은 사람이 있을 수 있지?특히… 그 눈.그는 머리가 지끈거려 미간을 꾹 눌렀다.“괜찮으십니까?”육지성이 룸미러로 그를 살폈다.“괜찮아.”“결혼식이 코앞인데, 술은 좀 줄이시는 게 좋겠습니다.”육강민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네온사인과 가로등 불빛이 뒤엉켜 차창을 스치며 그의 얼굴을 비췄다.*호텔에서 있었던 그 작은 해프닝은, 육강민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그저 술에 취해서, 서은주가 너무 보고 싶어 생긴 착각쯤으로 넘겼다.세상에 그렇게까지 닮은 사람이 어디 흔하겠는가!서은주는 이 일을 알지 못했다.결혼식 전날 밤, 강지택은 서은주를 방으로 불러 이것저것 한가득 챙겨주었다.보석이며 옥 장신구 같은 것들이었는데, 시집갈 때 가져가라는 혼수였다.지현과 강희진은 그녀와 함께 피부 관리와 전신 케어를 받으러 갔다.밤이 되어 침대에 누웠지만, 서은주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새벽녘이 밝아오자,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도착했다.그녀는 마치 인형처럼, 거울 앞에 앉아 남의 손에 이끌리듯 화장을 받았다.신부 화장은 워낙 복잡해서, 속눈썹만 해도 두 겹을 붙여야 했다.서은주의 조금 지친 기색에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웃으며 말했다.“예식장은 조명이 많아서 화장이 옅으면 얼굴이 창백해 보여요.”서은주는 고개를 끄덕였다.밖에 나설 때는 전통 예복을 입었다.몸에 두른 금 장신구는 모두 강씨 가문에서 맞춘 것이었다.붉은 보석이 박힌 봉황 비녀가 머리에 꽂히자, 장식이 흔들리며 우아하게 빛났다.강희진은 곁에서 분주히 챙겼다.배고플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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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2화

메이크업과 헤어를 마친 서은주가 예복으로 가라입자, 손리정 일행은 그녀를 둘러싸고 사진을 찍고 있다가 신랑 측 일행들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금세 자세를 가다듬고 긴장한 기색을 보였다.오늘의 육강민은 몸에 꼭 맞는 정장을 입어 평소보다 한결 단정하고 훤칠해 보였다.들러리들도 모두 말끔한 정장 차림이었고, 하이석은 단정하고 점잖은 아우라를 풍겼다.그중에서도 방주헌이 유독 눈에 띄었다.오늘은 일부러 번들번들하게 넘긴 올백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기분이 들뜬 탓인지 웃을 때마다 하얀 치아가 훤히 드러났다.정장을 입고 있어도 어딘가 가벼워 보이는 느낌은 감출 수 없었다.방주헌은 타고난 ‘인싸 기질’로 막 도착하자마자 강씨 가문 친척들과 금세 어울렸다.강씨 쪽 친지들이 많이 모였는데, 육강민을 보자마자 모두 강지택을 부러워했다.“참으로 훌륭한 손주사위네요. 정말 복 받으셨네요.”그러고는 방주헌을 보고 웃으며 덧붙였다.“미래 사위도 잘생기고, 성격도 활발해 보이네요.”강지택은 할 말을 잃었다.연애 중일 뿐이고 아직 정해진 것도 없는데 사위가 웬 말인가!육강민 일행은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까진 비교적 순조로웠다. 하지만 곧 손리정이 육강민에게 닭살 멘트를 해보라고 했고, 미간을 찌푸리던 육강민은 뒤에 서 있던 들러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들러리는 방주헌, 하이석, 허경빈, 그리고 육남혁이었다.육남혁은 사실 억지로 끌려온 것이었다.원래는 다른 친구였는데, 급한 일이 생겨 못 오게 되면서 그가 대신 투입된 것이다.“네가 알아서 해야지 왜 우리를 보는 거야?”육남혁이 웃으며 말했다.“닭살 멘트라는 게 대체 어떤 건데?”육강민이 눈살을 찌푸렸다.“예를 들면... 내가 먼저 멘트를 칠게. 잘 들어봐.”방주헌이 다가와 속삭였다.“피곤하겠어요.”육강민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가만히 있지 말고, 왜 라고 받아쳐야지.”이런 것도 모르면서 평소 형수랑은 대체 무슨 대화를 하는 거지?육강민은 억지로 끌려 나온 사람처럼 표정에 한 치의 변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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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3화

“그럼 너희는 대체 왜 온 거야?”육씨 형제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두 사람은 눈빛 한 번이면 서로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누가 할지는 투표로 정하자.”육강민은 말하며 하이석과 허경빈 쪽을 힐끗 봤다.예상대로 방주헌이 만장일치로 뽑혔다.방주헌은 순간 어리둥절했다.아니, 왜 나야?이건 분명 그가 육강민을 위해 정성껏 준비한 이벤트였는데, 어쩌다 자기 몫이 된 건지 어이가 없었다.“방주헌, 멍때리지 말고 빨리 해. 시간 없어. 길일 놓치면 안 되잖아.”육남혁이 재촉했다.이럴 때는 당연히 동생 편을 드는 법이다.방주헌?그건 뭐, 중요하지도 않았다.요즘 방주헌은 강희진과 공개 연애를 시작한 뒤로 어깨에 힘 잔뜩 들어가, 마치 집안 어른이라도 된 듯 굴었다.잘난 척 거들먹거리는 꼴이 거슬렸던 지라 다들 한 번쯤 손봐주고 싶었던 참이었다.지금이 딱 좋은 기회였다.육강민이 손리정을 향해 말했다.“주헌이 할 거야.”그러자 방주헌이 바로 인상을 썼다.“나 아직 동의 안 했거든?”하지만 육남혁 일행이 동시에 말했다.“우린 동의.”손리정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방주헌에게 이렇게까지 몰릴 줄은 생각도 못 했다.보통은 이런 상황이면 자연스럽게 신랑을 내세우게 되는데 말이다.결국 방주헌은 떠밀리듯 앞으로 끌려 나왔고, 시간을 지체할 수도 없어,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그야말로 자기 꾀에 자신이 넘어간 셈이다.외모가 워낙 반듯한 데다, 토끼 머리띠까지 하니 의외로 전혀 위화감이 없어 여자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사랑스럽다고 난리를 쳤다.강희진은 한켠에 숨어 휴대폰으로 조용히 방주헌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방주헌의 시선에 그 모습이 걸렸다.여자 친구 맞나?도와주기는커녕, 여기서 가장 신나게 웃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방주헌은 긴장하면 몸이 늘 따로 놀았다.그래서 춤을 출 때는 손발이 맞지 않고 엉성하기 그지없었다.강지택을 비롯한 어른들은 방에까지 들어오지 않았지만, 안쪽에서 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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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4화

양이나는 아버지를 바라봤다.그는 눈가가 살짝 붉어진 채로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웨딩카 행렬을 응시하고 있었다.“아빠는 진짜 저 애를 많이 아끼시네요.”“너한테는 못 해줬냐?”양홍철이 고개를 돌려 딸을 바라봤다.“성형하겠다고 해서 최고로 실력 있는 의사까지 붙여줬어. 도대체 어떻게 해놨길래 아직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거야!”“아직 회복이 덜 돼서요.”양이나는 웃으며 대답했지만, 시선은 점점 멀어지는 차 행렬을 향해 흘러갔다.그러나 이내 눈빛이 서서히 식어가며, 음산하게 가라앉았다.주변 사람들은 모두 부러움과 축복의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서은주, 그렇게 잠깐 웃는 거 아무것도 아니야!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짠거지!*차량 행렬은 곧바로 육씨 가문 저택으로 향했다.육진국 부부에게 예를 올린 뒤 잠시 쉬었다가, 결혼식이 열리는 호텔로 이동했다.웨딩드레스로 갈아입고 나니, 서은주는 이미 녹초가 된 상태였다.남들 결혼식은 보기만 해도 즐겁고 행복해 보였는데, 막상 본인이 해보니 결혼이 이렇게나 힘든 일인 줄은 몰랐다.육강민은 그녀가 배고플까 봐 따로 음식을 챙겨 보내줬다.그는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오늘은 하객이 워낙 많아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육씨 가문 사람들 모두가 나서서 돕고 있었다.그 와중에 육민찬만 아이들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정신없이 놀고 있었다.한창 친척들을 응대하고 있던 육남혁은 갑자기 들려오는 조카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들었다.“연주 쌤!”턱시도를 입은 육민찬이 한쪽으로 냅다 달려갔다.육남혁이 시선을 돌렸을 때, 아이는 이미 연주의 다리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평소엔 정장을 입던 그녀는 오늘은 드물게 카멜색 원피스를 입고 있어 단아한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배어 나왔다.허리를 숙여 육민찬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깨 위로 흘러내린 잔잔한 웨이브 머리가 얼굴을 반쯤 가려 부드러운 분위기가 연출되었다.연주의 아름다움은 화려하게 눈길을 사라잡는 쪽이 아니라, 차분하고 청초한 매력이 있어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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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5화

깔끔한 정장 차림, 곧게 뻗은 몸 선과 훤칠한 키로 육강민은 단연 돋보였다.평소의 서늘한 기운은 한결 누그러지고, 오늘의 육강민은 우아한 기품이 흘러넘쳤다.산마루에 내려앉은 눈처럼, 구름 위의 걸린 달처럼, 그저 인간이 감히 꿈꿀 수 없는 그 이상의 존재였다.그러다 방주헌에게 있어 가장 절망적인 순간이 찾아왔다.무대 뒤편 대형 스크린에 서은주와 육강민의 웨딩 화보가 재생되더니, 곧이어 방금 전 게임을 편집한 영상까지 흘러나왔던 것이다.토끼 머리띠를 하고, 스커트를 입은 방주헌의 모습이 아무 예고도 없이 떡하니 등장해 버렸다.순간, 객석은 웃음바다가 됐다.“와! 미친…”한 번 망신 준 것도 모자라서 이걸 대형 스크린에 틀어?그것도 반복 재생?방주헌도 체면이란 게 있는 사람인데 말이다.그저 들러리였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방주헌도 나름 유명 인사였다.급히 영상 담당 스태프를 찾아갔지만, 결혼식 전통이라 어쩔 수 없다며 지금 와서 해당 장면만 잘라내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하객으로 온 방석훈 부부는 당장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저건 절대 아들이 아니라고 외치고 싶었다.원래는 강씨 가문 사람들과 인사라도 나눠볼 생각이었는데, 아들이 벌인 일 때문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저 아들이 이상하게 보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정작 방주헌 본인은 죽을 맛이었지만, 하객들은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이제, 신부 입장하겠습니다!”사회자의 또렷한 목소리와 함께 홀 안의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졌다.그리고 한 줄기 스포트라이트가 떨어졌다.우아한 목선이 드러난 드레스, 길게 늘어진 치맛자락에는 촘촘히 박힌 보석들이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어 마치 은하수가 흘러내리는 듯했다.하얀 베일이 그녀의 맑고 선명한 얼굴을 은은히 가리고 있었다.그 순간, 서은주는 밤하늘의 별들보다도 더 눈부셨다.시선이 마주친 순간, 서은주는 살짝 미소 지었다.그 미소 하나에 육강민의 심장은 세차게 요동쳤다.오늘, 강준석이 아버지를 대신해 그녀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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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6화

둘은 서로 반지를 교환한 뒤, 육강민은 손을 들어 새하얀 베일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고 그녀의 입술 위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경건하고, 부드러운, 그 어떤 욕망도 섞이지 않은 입맞춤이었다.그 순간, 서은주의 눈동자에는 별빛이 스미는 듯 반짝였고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무대 아래에서는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육강민은 그녀에게 살짝 몸을 기울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부인, 앞으로 잘 부탁해.”서은주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사회자는 사랑스러운 화동을 그냥 넘기지 않았고, 육민찬에게 마이크를 건네며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하자, 아이는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아빠 엄마, 오래오래 행복하시고, 동생 많이 낳아 주세요!”순간, 장내는 웃음바다가 됐다.사회자가 웃음을 참고 다시 물었다.“왜죠?”“제가 좋으니까요.”“그럼, 남동생이 좋아요? 여동생이 더 좋아요?”“아빠 엄마가 낳아 주기만 하면 다 좋아요. 제 기대에 꼭 부응해 주셨으면 좋겠어요.”그 말투는 꼭 어른 같았다.육강민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사회자에게 이쯤에서 끝내라고 눈짓했다.무대에서 내려온 육민찬은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는 듯 의기양양한 얼굴이었다.예식이 끝나고 이제 부케 던지기 시간이 됐다.손리정은 이미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고, 강희진도 슬쩍 끼어들어 볼까 했지만, 강지택의 날카로운 눈빛에 바로 제지당했다. 결혼 생각 있는 아가씨들이나 나서는 거지, 연애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저러냐는 눈치였다. 여자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부케 받을 준비를 했다.서은주가 부케를 힘껏 던지자, 여럿이 동시에 손을 뻗었다. 이리저리 튕기던 부케는 누군가의 손에 맞고 방향을 틀더니 그대로 무대 아래로 날아갔다. 부케는 정확히 육남혁 쪽으로 향했고, 그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부케를 받아냈다.순간, 장내에서 웃음이 터졌고, 사람들은 육진국 부부를 향해 농담을 던졌다.“둘째도 결혼했으니, 이제 큰 아들 차례죠.”“다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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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7화

육민찬은 부케의 의미를 몰랐고 그저 이 영어 선생님이 좋아서, 꽃을 드리고 싶었을 뿐이었다.아이는 단순해서 맘에 드는 사람에게는, 좋은 걸 주고 싶은 법이다.육민찬은 연주 선생님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고 예쁜 꽃은 당연히 예쁜 사람에게 주는 거라고 여겼다.연주는 잠시 멍하니 부케를 바라보았다.“민찬아, 이건 내가 받기엔 좀…”“왜요? 마음에 안 들어요?”“아니, 그건 아닌데…”“그럼 그냥 받으세요.”육민찬은 바로 꽃을 그녀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케이크 드실래요? 제가 가져다드릴게요.”같은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그저 육민찬과 그녀 사이가 좋겠거니 생각했을 뿐이었다.*예복으로 갈아입은 서은주는 육강민과 함께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다가 자신의 부케가 연주의 손에 들려 있는 걸 보고는,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아주버님 손에 들려 있던 거 아니었나?“민찬이가 줬어요.”연주가 설명했다.“민찬이가 선생님을 정말 좋아하나 봐요.”서은주는 웃으며 덧붙였다.“오늘 너무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챙겨드리지도 못했네요.”“아니에요. 두 분 결혼 축하드려요.”“고마워요. 그럼 이따가 차로 모셔다드릴게요.”연주는 육민찬의 과외 선생님이었기에 그녀를 존중했고 자연히 더 신경 써주고 싶었다.물론 아들을 더 잘 가르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괜찮아요. 택시 타고 가면 돼요.”연주는 웃으며 사양했다.“선생님, 사양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육강민이 말을 이었다.“앞으로도 민찬이를 부탁드려야 하는데, 워낙 장난기가 심해서 조금만 더 너그럽게 봐주세요. 오늘 와주신 것만으로도 저희는 정말 기쁩니다. 부담 갖지 마세요.”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서은주와 다른 테이블로 이동했다.연주가 거절할 틈도 주지 않았다.육씨 가문은, 일처리가 빈틈이 없었다.멀리서 온 하객이나 지방 손님들을 위해 차량을 따로 준비해 둔 상태였다.연주만을 위한 배려는 아니었다.하객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날 무렵, 연주의 휴대폰이 진동했다.서은주에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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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8화

도시의 불빛은 대낮처럼 환하게 빛나는 가운데, 라디오에서는 진행자들이 육강민과 서은주의 결혼식 성대함을 이야기하고 있었다.총비용이 오백억에 달한다느니, 온갖 과장된 말들이 오갔다.그리고 부케 이야기가 나오자, 연주가 조용히 한마디 덧붙였다.“부케는 민찬이가 준 거예요.”뒷좌석에 앉아 있던 두 사람은 곧 웃으며 말했다.“아, 우리가 오해했네요.”육남혁의 차는 넓고 쾌적했지만, 연주는 마치 목을 옥죄는 듯한 답답함을 느꼈다.특히 뒷좌석에 앉았던 두 사람이 차례로 내린 뒤에는 더더욱 그랬다.육남혁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걸, 너무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뜨겁게 꽂히는 시선이 마치 칼날처럼 날이 선 느낌이었다.그 눈빛에는 묘한 압박이 담겨 있었다.하지만 연주는 고개를 돌려 창밖만 바라보며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굴었다.“민찬이가 선생님을 많이 좋아하더라고요. 저희 앞에서도 자주 칭찬합니다.”육남혁이 먼저 침묵을 깼다.“똑똑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죠. 예전엔 제가 공부를 봐줬습니다. 아마 제 흉도 꽤 봤을 테죠?”연주는 담담하게 답했다.“그런 말은 없었습니다.”“그럼, 저를 어떻게 말하던가요?”연주는 잠시 멈칫했다.사실 육민찬은 가끔 육남혁 이야기를 꺼내며, 큰 아빠는 악마라며 끝도 없이 숙제를 내준다고 투덜대곤 했다.하지만 그걸 그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많이 아끼신다고 했어요.”“아낀다…”육남혁이 옅게 웃었다.“그 말, 믿으세요?”연주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가 덧붙였다.“제 조카는 제가 잘 압니다. 분명 제 욕 많이 했을 겁니다. 제가 가르친 애들은 하나같이 참 투명해서요.”순간, 공기가 달아오른 듯해서 연주는 이를 살짝 깨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차는 어느 아파트 단지 앞에 멈춰 섰다.가방과 꽃다발, 답례품까지 든 연주가 안전벨트를 풀려고 손을 더듬었지만, 육남혁의 시선이 너무 노골적이었던 탓인지, 가슴이 두근거려 한참을 버벅거리기만 했다.그때, 육남혁이 손을 뻗었다.어둑한 차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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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9화

“지가 도망가 버렸어요. 나만 두고... 이게 사람 새끼냐고요!”육남혁이 낮게 웃었다.“아니지.”“맞아요! 인간도 아니에요!”방주헌이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집에 데려다줄까?”“나… 나 집 안 갈래요.”‘집’이라는 말에 방주헌은 급히 손을 내저었다.토끼 머리띠에 치마까지 입고 춤춘 것 때문에, 부모님이 눈빛이 아주 못마땅했기 때문이다.“그럼 방 하나 잡아줄게. 오늘은 호텔에서 자.”지방에서 올라온 하객들도 많아서, 육씨 가문에서는 호텔을 통째로 빌려 손님들 숙소로 제공하고 있었다.육씨와 강씨 가문 사람들 역시 오늘은 호텔에 묵을 예정이었다.양쪽의 거처와 호텔은 제법 거리가 있는 데다, 며칠 동안 바쁘게 움직인 터라 다들 지쳐 있었다.육강민과 서은주는 최상층 스위트룸에 머물고 있었다.술 냄새를 풍기며 비틀거리던 방주헌이 몽롱한 눈으로 육남혁을 올려다봤다.“오늘 나랑 같이 자는 거예요?”육남혁은 잠깐 멈칫했다.이 자식, 미친 거 아니야? 누가 같이 잔다고! 두 남자가 같이 자는 게 말이 되냐고!하지만 술 취하면 난리 치는 타입이라, 혼자 방에 두기도 찜찜했다.잠시 고민하던 육남혁은 결국 강희진을 찾아가기로 했다.문을 두드리자, 문이 열렸고 방주헌은 그녀를 보자마자 찰싹 달라붙었다.“희진 씨.”“이게 무슨…”강희진이 급히 그를 붙잡았다. “방주헌 좀 맡아줘요. 취한 사람이 있어서 제가 책임져야 해서요.”육남혁은 그녀가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방주헌을 떠넘긴 채 그대로 가버렸다.“주헌 씨.”강희진이 눈살을 찌푸렸다.“왜 집에 안 갔어요?”“집 가기 싫어요… 희진 씨... 강희진…”술기운에 그녀 이름을 계속 부르던 방주헌은 급기야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려 했다.“좀 정신 차려요.”강희진이 몸을 피했다.“나 피하는 거예요?”“그게 아니라…”“희진 씨도 나 싫어요?”방주헌이 춤을 췄던 사건 때문이라고 확신했다.“아니라니까요.”“그럼 뽀뽀해 줘요.”그의 말투는 거의 애교에 가까웠다.방주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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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0화

강지택은 웃음을 머금은 채 방주헌을 훑어봤다.그래도 재밌고 유쾌하긴 하다.같이 있으면 늘 웃을 일이 자꾸 생긴다.강여진이 세상을 떠난 뒤로, 삼대는 점점 무뚝뚝해져 강씨 가문은 한동안 웃음소리가 끊겼다.강희진이 이 녀석과 함께라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물 좀 마셔요.”강희진이 미지근한 물을 따라 건넸다.“아까 문 앞에서 뭐라고 했지?”강지택이 눈썹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방주헌은 컵을 꼭 쥔 채 말했다.“지금 말하면 안 될 것 같아요.”그 모습에 강지택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아버지?”강희진이 조심스럽게 불렀다.“집에 가기 싫다니, 오늘은 나랑 자면 되겠다.”강희진이 웃음을 터뜨렸지만, 방주헌은 패닉에 빠져버렸다.그리고 얼마 후, 노인과 청년이 방 안에 마주 앉아 서로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방주헌은 긴장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그 와중에 딸꾹질이 연달아 터져 나와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인생 참 고달프다, 진짜!지금쯤 육강민은 형수와 뜨거운 신혼 첫날밤을 보내고 있을 텐데 그는 어르신과 한 방에서 밤을 보내야 한다.인생 너무 하드코어다…“방주헌.”그때 강지택이 갑자기 방주헌을 부르는 바람에 그는 온몸이 굳어버렸다.“안 씻어?”“저는...”방주헌은 멘붕 직전이었다.씻긴 뭘 씻어요! 그 말이 왜 이렇게 이상하게 들리는지 모르겠다.평소엔 그렇게 배짱 좋던 녀석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쭈뼛거리는지, 꼭 수줍은 처녀 같았다.강지택이 씻으러 간 사이, 방주헌은 단톡방에 SOS를 쳤다.방주헌:[@전체. 형들 나 긴급 상황, 제발 좀 살려줘.]허경빈:[아직도 술자리에 붙잡혀 있냐?]방주헌:[아니, 나 지금 강지택 어르신 방에 있음. 오늘 여기서 자래.]허경빈:[완전 개 빡센데?]방주헌:[나 돌아가시기 직전이야. 긴장돼서 미치겠어!]육강민:[긴장하지 마. 뭐든 처음은 있는 법이니까.]방주헌은 당장이라도 화면 뚫고 들어가 육강민을 때려주고 싶었다.이게 사람이 할 소리냐고![형, 제발 좀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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