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파혼 후 시작된 그의 집착: Chapter 681 - Chapter 690

767 Chapters

제681화

가게 주인은 육남혁과 꽤 가까운 사이였는지, 아이를 데리고 온 걸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교수님 조카 아니죠?”“아닙니다.”“그럴 줄 알았어요. 민찬이가 이렇게 생기진 않았던 거 같아서요.” 주인은 웃으며 메뉴판을 건넸다.“민찬이요?” 연우진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너랑 비슷한 또래 조카가 하나 있거든.”“이름이 뭐예요?”“육민찬.”연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동명이인은 많다지만 이렇게까지 절묘하게 겹칠 리는 없었다.그제야 아이는 머릿속이 정리됐다.스키장에서 만난 그 집안도 ‘육’ 씨였고, 이 아저씨도 ‘육’ 씨였다.결국 한 가족이었던 것이다.연주가 엮이지 못하게 하려던 대상도 이들이었다.분명 뭔가 있다.날이 추워 육남혁은 식당 대표 메뉴 김치 전골과 소금 갈비, 그리고 옥수수전까지 주문했다. 가게 주인은 서비스로 배즙도 내주었다.아이는 물을 마시는 모습마저도 단정해서 연주가 얼마나 정성 들여 키웠는지 단번에 느껴졌다. 하지만 육남혁은 원래도 입맛이 없었고, 연주와 다른 남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라는 생각에 더더욱 수저를 들고 싶지 않았다.아이는 배가 고팠는지 배즙을 연이어 마셨다.한 그릇을 다 비우자, 육남혁은 아무 말 없이 자기 몫까지 아이 앞에 밀어주었다. “아저씨는 안 드세요?”“난 별로라.”“고맙습니다.”육남혁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너 엄마랑 살지? 그럼, 아빠는?”“하늘에 별이 됐대요.”그 말에 육남혁은 숨이 순간 멎었다.“연주 씨 말로는 별은 영원히 존재하는 거라서, 늘 우리와 함께 있는 거래요. 근데 그건 저 속이려고 하는 말이라는 거 알아요. 세 살짜리 아기들이나 믿는 거지, 전 그렇게 어리지 않거든요. 아빠는 돌아가신 거예요. 엄마는 한 번도 아빠를 보여준 적 없어요. 지금쯤이면 무덤 앞에 풀이 허리까지 자랐을지도 모르죠.”육남혁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렸다.도대체 어디서 이런 말을 배운 거지?어린애라고 하기엔 입이 너무 매웠다.보통 부모가 없으면 아이들은 그런 이야기를 꺼리
Read more

제682화

연주는 육남혁에게 속수무책이었다.결국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아들을 한 번 바라보고는 밖으로 나갔다.연우진은 엄마가 이렇게 순순히 물러설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자신이 화나게 한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그녀는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사람이어서 쉽게 타협하는 법이 없었다.아이는 놀란 눈으로 육남혁을 바라봤다.이 아저씨는 뭔가 다르다.육남혁은 아이에게 밥 먹으라고 눈짓하고, 자신은 밖으로 나왔다.연주는 눈가가 붉어진 채 서 있었고 그가 다가오자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어딘가 긴장한 기색이 묻어 있었다.“아이가 여기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어요. 번거롭게 해드렸네요. 식사는 제가 계산할게요. 다 먹고 나면 바로 데려갈게요.”“아마 데려가진 못할 거야.”짧은 한마디였다.그런데 그 말을 들은 순간, 연주의 얼굴에는 놀람과 함께 일종의 공포까지 스쳤다.그렇게까지 긴장하게 만든 이유라도 있는 걸까?“그게 무슨 뜻이죠?”혹시 뭔가 알고 아이를 빼앗으려는 건가?“며칠, 우리 집에서 지내고 싶다더군.” 육남혁의 말이 끝나자마자, 연주는 거의 반사적으로 단호하게 말했다.“안 됩니다. 절대 안 돼요.”그 표정은 마치 무언가를 극도로 두려워하는 사람 같았다.“내가 아이한테 해코지라도 할까 봐 그러는가?”육남혁은 안경을 고쳐 썼다.“아니에요.”“애 아빠는 누구지?”차가운 바람이 스치는 연주의 얼굴은 유난히 창백했다.아이를 미친 듯이 찾아다닌 탓에, 평소 단정하고 평온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다소 흐트러져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았다.육남혁의 집요한 눈빛이 한겨울밤 불꽃처럼 날카롭고 파고들었다.연주는 시선을 피하며 낮게 말했다.“당신은 모르는 사람이에요.”“당신한테 잘해줬나?”“네.”“어쩌다 죽었나?”연주는 잠시 멈칫했다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병으로요.”육남혁은 비웃듯 짧게 웃음을 흘렸다.그녀와 다른 남자 사이의 일은 알고 싶지 않았는데도 자꾸만 파고들고 있었다.대체 애 아빠가 누구지?그가 옆에 없던 세월에 그녀
Read more

제683화

“아는 건 맞아.”“근데 아저씨 앞에서는 좀 쭈뼛거리는 것 같던데.”“아니거든.”“또 센 척이네.”그 남자가 그녀에게 했던 말을 아들이 똑같이 하고 있었으니, 연주는 뭐라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둘은 사람을 약 올리기로 마음먹은 것만 같았다. “아저씨 집에 못 가게 하는 거... 혹시 엄마 전 남자친구라서 그래요?”마음이 아직도 쓰라린 상태였던 연주는 그 말에 거의 피를 토할 뻔했다.전 남자 친구?이 녀석은 도대체 어디서 이런 쓸데없는 걸 배운 거지?“아니야!”“또 우기시네요.”“연우진, 계속 헛소리하면 엉덩이 맞는다!”“그럼, 아저씨 불러서 직접 물어보죠.”연주는 순간 말을 잃었다.연우진은 원래도 영리해서 또래보다 말도 훨씬 빨랐기에 그 작은 입으로 사람 속을 뒤집어놓는 재주가 있었다.육남혁을 끌어들이겠다는 말에 연주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아이는 오히려 해맑게 웃었다.“연주 씨, 너무 우기기만 하는 건 별로예요.”연주는 당장 테이프로 그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육남혁은 밖에서 담배를 피우며 육강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진을 단체 채팅방에 올린 사람이 그였으니, 이미 상황을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며칠 전 스키장에서 우연히 만났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어.”육강민은 잠시 머뭇거리다 물었다.“형, 그 애… 형 아들이야?”“아니. 시기가 안 맞아.”“갑자기 조카 하나 생기는 줄 알았어.”육강민이 안도하듯 덧붙였다. “형, 새아빠 할 생각은 없어?”육남혁은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사실… 저렇게 큰아들 하나 공짜로 생기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꺼져.”육강민은 진심으로 만약 그 아이가 형의 아이라면 집안이 더 북적였을 거라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똑똑하고 운동 신경도 제법 뛰어났으며 말도 너무 잘했다.외모는 형을 많이 닮진 않았지만, 이상하게 비슷한 부분도 있었다.특히 조금 독한 말투가 판박이였다.육강민은 조금은 많이 아쉬웠다*연주는
Read more

제684화

연주의 표정만 봐도 아들을 육남혁에게 보내고 싶지 않다는 것이 훤히 드러났다.하지만 아들한테 약점을 잡혀, 어쩔 수 없이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녀는 집에 두고 온 어린이용 손목시계를 꺼내 아이 손목에 채워주고, 아이를 품에 꼭 안으며 당부했다.“아저씨 말 잘 듣고 얌전히 있어야 해.” “알겠어요.”연우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어른 흉내를 내며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연주 씨도 얌전히 잘 있어야 해요. 무서운 꿈 꾸면 전화해요. 내가 바로 달려갈게요. 일만 하지 말고 밥도 꼭 챙겨 먹어요.”그 말에 연주는 눈시울이 붉어지고 목 끝이 시큰하게 저려왔다.그녀는 아들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육남혁은 애써 시선을 돌렸다.고작 며칠인데, 마치 생이별이라도 하는 것처럼 굴고 있었다.*육남혁의 아파트는 경대와 직선거리로 약 육백 미터도 되지 않아 걸어서 금방이었다.연주가 떠난 뒤, 그는 한 손에 캐리어를 들고 다른 손으로 아이 손을 잡은 채 걸었다.밤은 깊어 찬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거리는 한산했지만,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건 묘하게 다른 느낌을 주었다.아파트 내부는 단정하고 심플했지만 분위기는 따뜻했다.소파 위에는 캐릭터 쿠션들이 있었고, 벽에는 예쁜 장식이 걸려 있었다. 커튼은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파스텔 블루와 핑크였고, 베란다에는 식물들이 놓여 있었으며 편안한 흔들의자도 있었다.누가 봐도 한때 여성과 함께 살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연우진은 고개를 갸웃했다.혹시 여기가 엄마랑 아저씨가 살던 그 집인가?“아저씨, 오늘 밤 저는 어디서 자요?”아이는 육남혁의 슬리퍼를 질질 끌며 물었다.커다란 슬리퍼 속에 작은 아이가 들어가 있는 모습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손님방은 정리가 안 돼서 오늘은 나랑 같이 자.”시간은 이미 11시가 가까워져 육남혁은 따로 정리할 기운이 없었다.“아저씨, 코골이나 이갈이해요?”육남혁이 눈썹을 올렸다.“아니.”“저는 코 고는데... 괜찮을까요?”“……”육남혁이 뭐라고 하든, 애를 내쫓을 수도
Read more

제685화

스스로 미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자의 아이를 집에까지 들였다.다시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이고 있던 그때, 침실 문이 열렸다.연우진이 헐렁한 슬리퍼를 끌고 머리를 내밀었고, 그가 담배 피우는 걸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아이는 그에게 다가와 까치발을 들고, 그의 손끝에서 담배를 낚아채더니 재떨이에 눌러 껐다.“아저씨, 담배는 몸에 안 좋아요.”육남혁은 안경을 살짝 고쳐 올렸다.“어린 게 잔소리 많네.”“어른들은 진짜 말썽꾸러기예요.”“엄마도 그래?”“네. 늘 바빠서 밥도 제때 안 먹어요.”아이는 손가락을 꼽으며 연주의 ‘죄목’을 조목조목 나열했다.육남혁은 그 모습을 웃으며 바라봤다.다른 남자 사이에 태어난 아이라는 사실만 떠올리면 마음이 불편해지는데,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이상하게도 정이 갔다. “가자, 이제 자야지.”육남혁은 허리를 숙여 아이의 엉덩이를 받쳐 안아 들었다.아이는 조금 어색한 듯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아저씨.”“응?”“저 아저씨 안아도 돼요?”“그래.”허락을 받자 아이는 조심스럽게 팔을 뻗어 그의 목을 감았다.말캉하고 따뜻한 작은 볼이 그의 목덜미에 닿았다. 따뜻한 체온에 서로가 끈끈하게 이어지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아이는 몹시 지쳤는지, 그의 품에 기대자 금세 잠들었다.겉으론 제법 시크한 척했지만, 결국은 어린아이였다.말랑한 몸이 바싹 기대오자, 그의 마음도 스르르 풀렸다.다만 진짜로 코를 골았다. 작은 숨소리였지만, 육남혁처럼 잠귀가 밝은 사람에게는 천둥소리나 다름없었다.*밤잠을 설친 탓에 육남혁은 다음날 늦게야 잠에서 깼다.눈을 뜨니 연우진은 이미 깨어 있었고, 심지어 밖에서 아침 식사 마저 사 왔다.놀랍게도 두 사람의 입맛이 꽤 잘 맞았다.육남혁은 아이를 데리고 연구실로 갔다.공동 연구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 그와 두 명의 교수를 제외하면 전부 석박사 과정생들이었다.연우진은 그곳에서 단숨에 인기쟁이가 되었고, 반나절도 되지 않아, 작은 책가
Read more

제686화

육남혁은 저녁 먹으러 오라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그는 거절하려 했지만, 한주미가 바로 쏘아붙였다.“일주일째 얼굴도 못 봤다. 같이 밥 한 끼 먹는 게 그렇게 어렵니? 내가 직접 모시러 가야겠어?”육남혁은 어쩔 수 없이 수그러들었다.“사람 하나 데리고 갈게요.”한주미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아들이 드디어 정신 차리고 여자 친구를 데려오는 줄 알고 집안 도우미들을 시켜 안팎을 깨끗이 정리하게 했고, 서은주와 함께 미용실에도 다녀왔다.한참을 분주하게 준비를 마친 한주미는 차에서 작은 꼬마가 내리는 것을 보고는 그대로 얼어붙었다.아이 얼굴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채, 그녀는 곧장 집 안을 향해 낮게 외쳤다.“여보, 우리 아들 여자 친구도 없이 애부터 데리고 왔어요.”차를 마시며 연극을 보던 박명숙은 깜짝 놀라 찻잔을 떨어뜨릴 뻔했다.육민찬이 가장 먼저 뛰어나갔고, 연우진을 보자 눈을 반짝이며 달려가 와락 끌어안았다. “형이 나 보러 온 거야?”연우진은 시큰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빨리 들어와!”육민찬은 신나서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한주미는 아이 얼굴을 제대로 보고 나서야 연주와 너무 닮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완전히 착각했다는 걸 알아차렸다.하지만 연주 아들이 큰아들과 함께 있는 건 조금 이상했다.평소 집에서 만나도 열 마디도 안 나누던 사이인데, 언제 이렇게 친해진 걸까?육씨 가문 사람들은 연우진을 따뜻하게 반겨주었다.하지만 아이는 이런 가족 분위기를 처음 접하는지 어쩔 줄 몰라 그저 얌전히 앉아 있었다.박명숙은 시력이 좋지 않아 돋보기를 끼고 아이를 가까이 불렀다.그리고 사탕 한 줌을 꺼내 그의 주머니에 넣어주었다.“증조할머니, 처음 뵙겠습니다.”“오냐, 이건 두부 과자다, 아주 맛있단다. 네가 아주 마음에 들어서 주는 거니까, 잘 챙겨.”아이도 고개를 끄덕였다.박명숙은 손을 뻗어 작은 얼굴을 쓰다듬으며 웃었다.“우리 강아지, 참 예쁘게도 생겼구나.”박명숙은 평소에도 육민찬이나 육수린을 부를 때 “우리
Read more

제687화

집에 꼬마 손님이 온 덕분에 저녁상은 유난히 푸짐했다.그리고 곧 연우진이 파는 곧잘 먹는데 생강은 싫어하고 고수는 극혐한다는 것을 알아챘다.그런 식습관이 놀랍게도 육남혁과 똑같았다.서은주는 미소를 지으며 연우진에게 새우를 하나 집어 주었다.그러자 육수린도 작은 손을 흔들며 자기도 먹겠다고 조르기 시작했다.“남이 먹는 건 다 따라 하네. 막상 주면 또 안 먹을 거면서.”서은주는 미간을 찌푸렸다.연우진은 아무 말 없이 새우 껍질을 까서 육수린의 작은 그릇에 놓았다.육수린은 새우를 먹으며 까르르 웃었다.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남을 배려할 줄 알았다.동생들을 잘 챙기는 모습이 꼭 맏이 같았다.육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연우진을 예뻐했다.식사를 마친 뒤, 육민찬은 그를 끌고 방으로 들어가 장난감 놀이를 했다.박명숙은 손잡고 들어가는 두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나직이 감탄했다.“참 예의 바른 아이구나. 연주가 혼자서 저렇게 잘 키워냈다니, 고생이 많았을 거다.” “앞으로 자주 놀러 오라고 할게요.” 한주미가 웃으며 말했다.박명숙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덧붙였다.“남편 일찍 떠나보냈으니… 연주도 참 안 됐구나.”*박명숙과 한주미가 아무리 붙잡아도 육남혁은 연우진과 함께 자신이 머물고 있는 아파트로 향했다. “아저씨는 왜 결혼 안 해요?”연우진은 육민찬이 선물한 장난감 자동차를 품에 안고 물었다.“갑자기 왜 그런 걸 묻지?”“아까 할머니가 소개팅하라고 했잖아요.”한주미는 늘 아들의 결혼 문제를 걱정하며 몇 마디씩 잔소리를 하곤 했고, 아이는 그 말을 우연히 들은 것이었다.육남혁은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그럼, 소개팅 갈 거예요?”아이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너랑 상관없는 일이다. 어른 일에 끼어드는 거 아니야.”“그럼...”아이는 입술을 깨물더니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상대에게 아이가 있는 거 어떻게 생각해요?”육남혁은 잠시 멈칫했다. 운전 중이던 그는 룸미러로 뒷좌석에 앉은 아이를 바라보았다.연우진은 고개를 숙이고 눈
Read more

제688화

이 아파트에는 그들만의 추억이 너무 많았다.달콤했던 순간들, 깊게 얽혀 있던 시간들…….기억은 밀려오는 파도처럼 그녀를 덮쳤고, 저항할 틈도 없이 마음을 뒤흔들었다. 연주는 목이 타는 듯한 느낌에 숨조차 편히 쉴 수 없었고 겨우 숨을 내뱉을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육남혁,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이 계절엔 실내 난방이 항상 켜져 있어 공기가 답답할 정도로 뜨거웠다. 그녀는 발코니로 나가 창문을 살짝 열었다.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어 연주는 조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물 좀 마셔.”육남혁이 따뜻한 물을 들고 와 그녀에게 내밀었다.“고마워요.”목이 바짝 마른 상태라 연주는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컵을 잡았다.그런데 육남혁이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빼려는데 육남혁의 다른 손이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뜨겁고 강한 힘에 도저히 빠져 나갈 수 없었다.혹시라도 아이에게 들켜버릴까 봐 그녀는 목소리를 낮췄다.“육남혁, 뭐 하는 거예요?”그는 컵을 옆에 내려놓고 그녀를 응시했다.“나 피하는 거야?”“일단 좀 놔요.”“오늘 동생이 한 말에 생각이 좀 많아졌어.”“무슨 말을 했는데요?”“너는 이미 자기 삶을 살고 있는데, 나는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연주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육남혁이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당기는 바람에 그녀는 중심을 잃고 그대로 그의 품에 안겨버렸다.순식간에 좁혀진 거리, 너무 가까워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게다가 허리에 닿는 손길 때문에 몸이 점점 더 굳어갔다.“육남혁!”연주는 방 쪽을 흘끗 보며 아이가 갑자기 튀어나올까 봐 긴장했다.지금 이런 모습이면, 뭐라 해명할 길이 없었다.“그렇게 두려워?”육남혁이 고개를 숙였다.그의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얼굴에 닿았다.그 열기가 가슴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찬바람으로도 식힐 수 없었다.“당장은 안 나올 테니, 걱정 마.”그녀의 귓가를 스치듯 낮게 울리는 목소리에 그녀
Read more

제689화

입술을 깨물던 연주는 작은 소리로 불렀다.“교... 교수님.”“안 들리는데.”분명 들었으면서 그가 일부러 그러는 걸 알고 있어 고개를 홱 들어 그를 노려보았다.“당신…”하지만 입술을 떼기도 전에, 육남혁이 갑자기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그녀의 몸이 굳어버렸다. 머릿속이 벼락 맞은 듯했고,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그의 뜨거운 입술이 사람의 신경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연주가 손을 들어 그의 가슴을 밀어내려 했지만, 허리에 감긴 육남혁의 손은 오히려 더 세게 조여왔다.그는 더 가까이 다가오며 그녀의 영역을 거침없이 침범했다.하지만 연주는 끝까지 이를 악물고 버티려 했다.그러나 밀어낼 수가 없었다.그러다 육남혁이 그녀의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고, 통증에 그녀가 입술을 벌렸다.그의 키스는 집요하게 파고들어 끝까지 몰아붙였다.점점 혀끝이 감각을 잃어가고 휘몰아치는 전율에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자꾸만 힘이 풀렸다.그의 손이 허리를 감싸고 있지 않았다면, 그대로 주저앉았을 것이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육남혁은 마침내 그녀를 놓아주었다.하지만 몸은 여전히 밀착된 상태였다.두 사람의 숨결이 겹쳐지고 얽히며, 여전히 아슬아슬한 공기가 주변을 감쌌다.입술과 입술이 닿을 듯 말 듯 스쳤고, 그가 남긴 흔적에는 여전히 뜨거운 열기가 남아 있어 금방이라도 타오를 것만 같았다.“나랑 헤어지고, 후회한 적 없어?”그의 목소리는 낮게 깔려 있었다.“다 지나간 일이에요.”연주는 방금전 키스의 여운으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강민이 말이 맞아. 나는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어. 학교에 남아 강의하고, 이 아파트를 산 것도… 전부 네가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야.”육남혁은 그녀의 얼굴을 조용히 쓰다듬었다.“돌아온 네가 나를 못 찾을까 봐 겁났어.”그 몇 마디에 연주는 마음이 흔들렸다.심장이 요동치고 코끝이 시큰해졌다.“바보예요? 내가 당신을 버렸는데 왜 이렇게 고집스러운 거예요?”“지금은?”“뭐요?”“나 아직 여기
Read more

제690화

연주가 아들과 함께 떠난 뒤, 기분이 좋지 않았던 단체 채팅방에서 술 마실 사람을 찾았다.그들만 모이는 장소가 따로 있었다.육강민이 가장 먼저 도착했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 형이 이미 보드카 반병을 비운 상태였다. “무슨 일인데? 고백했다가 차이기라도 한 거야?”육남혁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쏘아봤다.“술 마실 거면 마시고, 아니면 꺼져.”“화가 이렇게 난 거 보면 제대로 까였는데?”“육강민!”“알았어, 알았어. 입 다물게.”그 뒤로 방주헌, 하이석, 허경빈도 도착했다.육남혁은 원래 절제되고 이성적인 사람이었기에, 이렇게까지 무너진 모습은 모두에게 낯설었다. 하지만 굳이 이유를 묻지 않았고, 그냥 함께 술을 마셨다.“맞다, 그날 밤 연주 씨 아들은 어디서 찾은 거예요?” 원래도 호기심이 많았던 방주헌은 육남혁이 연주 때문에 술을 마시는 줄도 모르고 말을 마구 던졌다.“진짜 놀랐다니까요. 어떻게 그렇게 큰아들이 있냐고요. 희진 씨도, 나도 순간 어안이 벙벙했어요.”육강민이 계속 눈짓을 보냈지만, 이미 술기운이 오른 방주헌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근데 얼굴을 자세히 보니까 팔할은 연주 씨를 빼다 박았던데요? 나머지는 뭔가 이상하게...”방주헌은 턱을 쓰다듬더니, 육씨 가문 형제를 바라봤다. “분위기가 강씨 가문 핏줄 같았단 말이죠.”“어디가 닮았다는 거야!” 그러자 육남혁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끊었고, 그 말에 방주헌은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왜 갑자기 살벌해?’그는 육강민을 바라봤다.“대체 무슨 일이야? 누가 보면 실연당한 줄 알겠어.”육강민은 한숨을 쉬었다.방주헌은 어쩜 저리도 분위기 파악 못 하는 걸까?무심코 던진 말이 육남혁의 아픈 심장을 제대로 찌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결국 하이석이 과일 조각을 집어 그의 입에 넣어버린 덕분에 방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그날 밤, 육남혁은 술을 많이 마셨고, 육강민이 그를 아파트까지 데려다줬다.이 공간은 육강민도 처음이었고 내부를 보자마자 머리가 아파왔다. 생
Read more
PREV
1
...
6768697071
...
77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