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s les chapitres de : Chapitre 901 - Chapitre 910

975

제901화

“사이즈도 딱 맞네요.”하이석은 그녀의 손을 받쳐 든 채 반지를 찬찬히 살펴보다가 시선을 들어 온유란을 바라봤다.“마음에 안 들어요?”온유란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마음에 들어요.”하이석이 몸을 기울여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온유란은 그저 모든 것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하이석과 함께한 뒤로 그녀는 줄곧 그의 손바닥 위에서 소중히 보살핌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그래서 늘 스스로에게 되뇌었다.너무 깊이 빠져들지 말자고. 절대 마음을 다 주어서는 안 된다고.어쩌면 어느 날 문득 꿈에서 깨어나듯, 결국은 헤어지게 될지도 모르니까.하지만 하이석은 그가 얼마나 진심인지, 행동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그래서 그녀도 진심으로 대해주고 싶었다.어쩌면 정말로 두 사람의 좋은 미래를 기대해 봐도 되는 건 아닐까.온유란은 팔을 뻗어 그의 목을 감싸 안더니, 얌전하면서도 수줍은 모습으로 그와 입술을 맞췄다.따뜻한 온기가 번져 나감과 동시에 방 안은 달콤하고도 아찔한 분위기로 물들어 갔다.*다음 날 아침.온유란은 결국 반지를 빼서 다시 케이스 안에 넣어 두었다.평소 디자인 작업뿐 아니라 바느질과 재단까지 해야 했기에, 그렇게 큰 다이아 반지를 늘 끼고 있기에는 불편했다.그러자 하이석은 이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다른 상자를 하나 꺼내 들었다. 그 안에는 심플한 디자인의 반지 한 쌍이 들어 있었다.커플링이었다.안쪽에는 두 사람 이름의 이니셜까지 새겨져 있었다.“도대체 반지를 몇 개나 산 거예요?”온유란이 웃으며 물었다.“이건 정한 씨가 공짜로 준 거예요. 자, 이제 끼워 줘요.”하이석과 같은 반지를 나란히 끼고 있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오늘 수업 끝나면 데리러 와 줄 수 있어요?”온유란이 먼저 부탁하는 일은 드물었다.하이석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상황은 어제와 비슷했다.하이석이 도착했을 때 교실에는 온유란과 그 남학생만 남아 있었다.남학생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온유란을 보고 웃으며 인사했다.“가려고요?”온유
Read More

제902화

5월 말, 경성에는 장마철이 찾아왔다.강가에는 옅은 안개가 드리우고, 온 도시는 바람에 흩날리는 버들개지로 가득했다. 어느새 잔잔한 비가 소리 없이 내리기 시작했다.이 계절은 유독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육강민은 허리에 오래된 지병이 있었다. 하이석과 협력 의향서를 체결한 뒤로는 좀처럼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집에서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덕분에 방주헌에게 한바탕 놀림까지 받았다.[형님, 결혼하기 전에는 비 오는 날 몸이 좀 불편해도 꾸역꾸역 출근하시더니, 이제는 아내가 생겼다고 이렇게 유난스러워지신 겁니까? 사는 것도 참 정교하게 하시네요. 듣자 하니 요즘은 매일 식단까지 따로 관리받으신다면서요. 누가 보면 애 낳고 산후조리라도 하는 줄 알겠습니다.]육강민은 당장이라도 방주헌을 찾아가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날 서은주는 유치원에서 육민찬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집에 들어서자 육강민은 딸과 놀아 주고 있었고, 육지성은 한쪽에 서서 업무 보고를 하고 있었다.“오빠!”육수린은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육민찬을 향해 달려갔다.육지성은 서은주를 보자 공손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리정은 요즘 어때요?”서은주가 물었다.“잘 지내고 있습니다. 잘 먹고 잘 자고요.”“복이 많은 사람이네요. 연주 씨는 요즘 먹기만 하면 토해서 고생인데.”연주는 최근 입덧이 무척 심했고, 그 탓에 사람도 눈에 띄게 야위어 가고 있었다.그 모습을 보는 육남혁은 마음이 타들어 갈 지경이었다.서은주는 말을 마친 뒤 둘이 계속 이야기하라는 듯 자리를 비켜 주었다.육지성이 보고하던 것은 하씨 가문과의 협력 건이었다.“협력 의향서에는 서명했지만 아직 정식 계약이 체결된 건 아닙니다. 들리는 말로는 회사 내부에 이번 협력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고위 임원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하이석이 나한테 이익을 양보한 게 불만이라는 건가? 자기들 이익을 깎아 먹었다고?”육강민이 냉소적으로 말하자, 육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하씨 그룹은 저희 성세그룹과 상
Read More

제903화

육강민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정말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되는 걸 순순히 받아들일 리 없었다.서은주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하이석 씨한테 큰아버지도 있었어요? 사촌들이랑 왕래하는 모습은 한 번도 못 본 것 같은데요.”“관계가 썩 좋은 편은 아니야.”육강민이 웃으며 말했다.“모든 대가족 형제들이 우리 형제처럼 사이좋게 지내는 건 아니거든.”서은주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육남혁의 독설만 빼면, 그들 형제의 관계는 확실히 화목하다고 할 만했다.“오늘은 일 많이 힘들었어?”육강민이 화제를 돌렸다.“괜찮았어요. 다만 장마철이라 그런지 환자가 많더라고요. 박사님은 가끔 왕진까지도 나가세요. 그런데 저는 옆에서 배우기만 하는 입장이라 힘든 게 없어요. 오히려 고생하시는 건 박사님이죠.”육강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내의 허리를 감싸 안고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그러자 육수린도 작은 손을 흔들며 아우성을 쳤다.“나도! 뽀뽀! 안아 줘! 높이!”육민찬 역시 얼른 다가와 매달렸다.육강민은 힘이 좋은 편이라 아이 하나씩은 양팔에 번쩍 안을 수 있었다.그는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지금은 아이가 둘뿐이라 다행이었다.하나만 더 늘어도 정말 머리 위에 올라타려 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날, 서은주는 유주만을 따라 북교로 왕진을 나갔다.그가 직접 찾아가 진료할 정도라면, 보통은 신분이 남다르거나 가까운 사람이었다.모든 진료가 끝났을 무렵에는 이미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마침 하씨 본가도 북교에 있었기에 유주만은 들르는 김에 도정숙의 상태도 살펴보기로 했다.도정숙은 골육종을 앓고 있던 탓에, 비 오는 날이면 관절과 뼈가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다.수술을 받은 덕분에 지금은 뻐근한 정도에 그쳤고, 진통제를 먹으면 견딜 수 있었다.예전 같았으면 벌써 병원에 실려 갔을 정도였다.“바쁘신데 직접 오시게 해서 죄송하네요.”도정숙이 웃으며 말했다.“원래 의사가 하는 일이 이런 것이죠.”유주만은 그녀를 진찰하며 말했
Read More

제904화

서은주가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자, 하정현이 낚싯대와 물통을 들고 집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또 육진국을 불러 낚시를 다녀온 것이 분명했다.하정현은 서은주를 발견하자 웃으며 말했다.“저녁 먹고 가요. 오늘 물고기를 꽤 많이 잡았거든요.”하이석은 물통 안을 힐끗 들여다봤다.정말로 다섯 마리, 여섯 마리쯤 들어 있었다.“정말 아버지가 잡으신 겁니까?”“그럼. 못 믿겠으면 육진국한테 물어봐.”육진국은 낚시를 무척 좋아했다. 낚시를 나갈 때마다 빈손으로 돌아오는 법이 거의 없었다.하지만 하정현은 달랐다. 대부분 물통이 텅 빈 채 돌아오기 일쑤였다.그 일로 현정민에게 놀림도 많이 받았다.장비는 누구보다 전문가처럼 갖춰 놓고, 정작 올챙이 한 마리도 못 잡아 온다고 말이다.하이석은 다시 한번 물통 속 물고기들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무심하게 물었다.“이 물고기들, 얼마 주고 사 오셨어요?”그러자 하정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하이석! 무슨 뜻이야? 육씨 가문 며느리가 여기 있다고 해서 내가 네 체면을 봐줄 줄 알아? 날 모함해도 정도가 있지!”“낚시로 잡은 거라기엔 너무 티 나잖아요. 전부 크기도 비슷하고 종류도 똑같고. 꾸밀 거면 좀 그럴듯하게 꾸미시든가.”서은주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하씨 부자는 정말 재미있는 사람들이었다.하정현은 오랜 친구의 며느리 앞에서 체면을 구겼다고 생각했는지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그는 아들을 한번 훑어보더니 눈짓으로 서재로 따라오라고 했다.“기분 안 좋냐?”“아니요.”“유란이랑 싸웠어?”하정현은 눈썹뼈 위의 깊은 흉터를 만지작거렸다.“저희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그런데 왜 나한테 화풀이야?”하정현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아주 상전 하나를 모시고 사는 기분이었다.아들 기분이 안 좋다고 집에 와서 아버지에게 화풀이하는 경우는 처음 봤다.“그럼 회사에 있는 그 늙은 인간들이 또 너 괴롭히는 거냐?”하정현은 아들을 바라봤다.“주식도 들고 있고, 매년 적지 않은 배당금도 챙겨 가면서 잘
Read More

제905화

“그래서 누가 이겼는데?”*오늘 저녁에는 유주만도 함께 자리했다.상견례 자리에는 참석하지 못했던 하정현은 자연히 그와 몇 잔 술을 나누게 되었다.식사하는 내내 하이석은 아버지 체면을 충분히 세워 주었고, 덕분에 하정현은 무척 만족스러웠다.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서은주를 바라봤다.“언제 육수린을 우리 집에 데려올 거예요?”“언제든 데려올 수는 있는데, 아이가 좀 많이 장난꾸러기라서요.”서은주가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 난 그 아이가 참 좋더라고요. 좀 떠들면 어때요. 강민이랑 은주 씨만 괜찮다면 우리 집에서 며칠 더 지내게 하고 싶을 정도예요.”“콜록!”온유란이 사레에 들렸다.아이를 슬쩍 데려가려는 건가?하이석은 아무 말 없이 휴지를 건네주고는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서은주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온유란이 뭔가 눈짓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 같긴 한데, 무슨 뜻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유주만은 술을 꽤 많이 마셨기에 그날 밤은 하씨 본가에서 묵게 되었다.반면, 서은주는 당연히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하이석은 직접 그녀를 배웅했고, 가는 길에 집에서 요양 중인 육강민의 상태도 들여다볼 생각이었다.저녁 식사가 끝난 뒤 온유란은 도정숙을 방까지 모셔다 드린 뒤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정말 내려가실 생각이세요?”“내가 제일 걱정되는 건 너였어.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고 싶었던 것도 너랑 더 오래 함께 있고 싶어서였고. 그런데 지금은 네가 행복하게 지내는 걸 보니까 마음이 놓이더라. 그냥 집에 한번 가 보고 싶어.”도정숙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하씨 가문 사람들도 다 괜찮은 사람들이야. 네 시아버지도 겉보기엔 무서워 보여도 속은 괜찮은 분이고. 진짜 무서운 건 겉으론 웃으면서 뒤에서 칼을 꽂는 사람들이야.”온유란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보고 싶으면 내려와서 나 보면 되고, 아니면 내가 널 보러 와도 되잖니.”도정숙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하씨 가문 사람들과도 잘 지내고. 혹시라도 서러운
Read More

제906화

하이석이 집에 돌아왔을 때, 하정현은 또다시 현정민에게 쫓겨나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도 표정만큼은 무척 좋아 보였다. 도대체 뭐가 그리 즐거운 건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하이석이 뒤뜰로 가자 온유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틀 뒤쯤 도정숙을 시골로 모셔다드릴 생각이라고. 본인도 며칠 함께 머물다 올 예정이었고, 유 아주머니도 같이 동행하기로 했다.“언제 출발하는데요?”하이석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굳이 묻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애초에 도정숙을 이곳으로 모셔 왔을 때부터 그녀는 늘 미안해했고, 폐를 끼치는 것 같아 불편해했다.“모레나 글피쯤이요.”하이석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같이 가고 싶은데 처리해야 할 일이 좀 있어요. 아마 배웅은 못 할 것 같아요.”“괜찮아요. 당신은 일 보세요. 아주머니만 잘 모셔다드리고 금방 돌아올게요.”하이석은 회사 이야기를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었지만, 온유란도 느끼고 있었다.최근 그의 일이 그리 순탄하지 않다는 것을.*이틀 뒤.온유란은 도정숙을 모시고 시골로 내려갔다.하정현은 하이석에게 바람도 쐬고 쉬다 오라고 했지만, 회사 일이라는 게 마음먹는다고 바로 내려놓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정리해야 할 것도 많았고, 미리 계획된 일정도 있었다.그중에는 지난해부터 잡혀 있던 일정도 적지 않았다.갑작스럽게 변경하려면 여러모로 번거로운 일이 뒤따랐다.차가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하이석은 한동안 대문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이제 그만 봐. 차는 벌써 멀리 갔어.”아들의 모습에 하정현이 혀를 찼다.“그렇게까지 아쉬워?”“네.”“예전엔 몰랐는데, 너도 꽤 순정파였구나.”하정현이 웃었다.“회사 일이나 빨리 정리하고 찾아가면 되잖아.”“좀 허전해서요.”“어디가?”“결혼하고 나서 처음 떨어져 있거든요.”하정현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너 때문에 나랑 네 엄마는 몇 년이나 떨어져 살았어!”하이석은 그를 한번 바라보았다.“그건 아버지 사정이었지 제 탓은 아니죠.”
Read More

제907화

“듣기로는 경성의 하씨 가문 사람들은 다들 덩치도 크고 험악하다던데. 사람도 서슴없이 죽일 것처럼 생겼다고 하더라고.”“유란아, 그런 사람이랑 정말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겠어? 원래 돈 많은 집일수록 며느리 보는 눈도 까다롭잖아. 지금은 사귀고 있다지만, 나중에 그 집안에서 정말 널 며느리로 받아들일 수는 있을까?”“그러게. 나중에 헤어지기라도 하면 남자친구 다시 만나기도 쉽지 않겠네.”*온유란은 질문에 정면으로 답하지 않고, 어색하게 웃으며 모르는 척 넘어갔다.“아, 맞다. 너 경성에서 유명한 의사를 의가족으로 모셨다며? 그럼 나중에 우리도 경성 가서 병원 갈 일 있으면 너 통해서 바로 진료받을 수 있는 거야?”“지난번에 우리 아들 데리고 경성 가서 진료받으려는데 전문의 예약 잡기가 얼마나 힘들던지. 앞으로는 너랑 아는 사이니까 훨씬 편해지겠네.”온유란은 애초에 알고 있었다.어떤 사람들은 문병하러 온 게 아니라 다른 속셈이 있다는 것을.동네 사람들을 모두 돌려보낸 뒤에야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돌아온 뒤에도 방문객은 끊이지 않았다.도정숙을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모시기 위해 이것저것 챙길 일이 많았다. 그런 와중에 불쑥불쑥 찾아오는 이웃들까지 상대하자니 몸도 마음도 지쳐 갔다.밤이 되어 침대에 누우면 자꾸 하이석 생각이 났다.예전에는 함께 잘 때, 그가 안아 주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체온이 워낙 높았기 때문이다.그래도 같은 이불을 덮고 있으면 늘 따뜻했다.그런데 지금은 혼자 누워 있으니 이불 속이 좀처럼 데워지지 않는 것만 같았다.그날 밤, 온유란은 침대에 누워 하이석과 통화를 하다가 문득 마음 가는 대로 말했다.“하이석 씨…”“응?”“보고 싶어요.”하이석은 잠시 말을 잃었다.무언가 말하려던 순간, 전화는 급하게 끊겨 버렸다.아마 그녀가 부끄러웠던 모양이었다.*온유란은 마을의 닭 울음소리와 개 짖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휴대전화를 확인해 보니 새벽 네 시였다.아직 잠이 덜 깬 상태였지만, 화면에
Read More

제908화

장마철 새벽 네 시.축축한 공기에는 서늘한 냉기가 스며 있었고, 온유란은 얇은 잠옷만 걸친 채였다. 옷자락은 이미 찬 기운에 젖어 들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체온이 포개지고, 숨결이 맞닿았으며, 귓가를 스치는 온기가 얽혔다.마치 세상의 어떤 비바람도 막아 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그때였다.“멍!”갑자기 들려온 개 짖는 소리에 온유란의 몸이 움찔 떨렸다.그러자 하이석이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시골 개들은 확실히 시끄럽네요.”그는 차를 몰고 왔지만 길이 익숙하지 않아 마을을 두 바퀴나 돌아야 했다. 덕분에 여기저기서 개들이 짖어 댄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온유란은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올 거면 미리 말이라도 하지 그랬어요?”“도착 시간이 확실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괜히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았고.”하이석의 시선이 그녀를 훑었다.얇은 잠옷. 토끼 귀가 달린 귀여운 실내화. 그리고 드러난 가녀린 발목.“이렇게 입고 나왔어요? 안 추워요?”“괜찮아요. 일단 안으로 들어가요.”온유란은 그의 손을 잡았다.소녀가 사랑에 빠질 무렵이면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한다.필요한 순간, 누군가가 눈부신 영웅처럼 나타나 주기를.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밤하늘의 별을 좇고 달을 쫓듯 달려와 오직 자신을 만나러 와 주기를.그런 마음에 감동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특히 그를 품에 안은 그 순간, 온유란은 생각했다.이 사람과는 정말 평생을 함께할 수 있을 것 같다고.“아주머님들은 아직 주무시고 계세요. 우리 조금만 조용히 해요.”온유란은 목소리를 낮추며 현관문을 살며시 닫았다. 그리고 그의 손을 잡은 채 마당과 대청을 조심스레 지나갔다.혹시라도 누군가 깰까 싶어 발소리마저 죽인 모습은 꼭 도둑이라도 된 것 같았다.그렇게 방 안으로 들어선 순간, 문이 채 닫히기도 전에 온유란은 그의 품과 문짝 사이에 갇혀 버렸다.하이석은 양손을 그녀의 어깨 양옆에 짚었다.고개를 숙이자 뜨거운 숨결이 얼굴 위로
Read More

제909화

순간, 머릿속이 뜨거워지는 듯했다.온유란은 온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고, 몸은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하지만 두 사람이 조금만 움직여도 작은 침대는 금세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마치 두 사람을 위해 일부러 장단이라도 맞춰 주는 것 같았다.소리가 너무 요란한 탓에 하이석도 난감해할 수밖에 없었다.결국 제대로 뭘 해 보지도 못하고 끝나버렸다.하이석은 그녀의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었고, 온유란은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배 안 고파요? 뭐라도 좀 해 드릴까요?”“안 고파요.”“그럼 씻고 얼른 쉬어요.”온유란의 침대는 폭이 1.2미터밖에 되지 않는 작은 침대였다.혼자 자기에는 충분했지만, 성인 남자 한 명이 더 누우니 아무래도 비좁을 수밖에 없었다.두 사람은 자연스레 몸을 바짝 붙인 채 누웠다.하이석은 밤새 운전해 온 탓에 몹시 지쳐 있었다. 그래서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잠이 들었다.온유란은 그의 품에 기대 누웠다.주변은 고요했기에 서로의 숨소리와 그의 규칙적이고 묵직한 심장 박동만이 귓가에 닿았다. 그런데도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놓였다.*다음 날.장마가 시작된 이후 처음 맞는 맑은 날이었다.도정숙은 몸 상태가 한결 나아진 덕분에 집 안의 이불과 옷가지를 내다 말릴 생각이었다.그녀는 곧장 온유란의 방문을 열었다.“유란아, 일어나. 이불 좀 들고 나와서 말려야…”말을 끝맺기도 전에 도정숙은 침대 위를 보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작은 침대 위에 두 사람이 함께 누워 있었던 것이다.그 순간, 온유란은 도정숙의 목소리에 순식간에 잠이 달아났다. 그녀는 곧바로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도정숙은 멍하니 두어 초를 서 있다가 얼굴이 붉어지더니 이내 황급히 문을 닫고 밖으로 물러났다.“유란이는 아직 안 일어났어요?”일 처리에 빈틈이 없는 유 아주머니는 이미 아침 식사를 준비해 둔 상태였다.“쉿!”도정숙이 급히 손짓했다.“왜요?”“하이석이 왔어요.”도정숙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Read More

제910화

도정숙은 장을 보고 돌아와 두 사람이 침대를 바꾼다는 이야기를 듣고 잠시 멍해졌다.예전의 그녀는 누구보다 절약하는 사람이었다.온창섭이 생활비를 보내는 것도 들쭉날쭉했던 탓에, 온유란을 키우려면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이번에는 웃으며 말했다.“바꿀 때도 됐지. 그 침대도 벌써 스무 해 넘게 썼잖아. 진작 바꿨어야 했어. 게다가 너무 좁아서 둘이 같이 자려면 불편해. 이석이는 키도 큰데 발 뻗을 자리도 없겠네.”온유란은 할 말을 잃었다.침대는 직접 고르거나 사러 갈 필요도 없었다.하이석의 전화 한 통이면 충분히 해결 될 일이었으니까.*그날 저녁, 새 침대와 매트리스, 각종 침구류가 집 앞까지 배달됐다. 거기에 가전제품까지 함께 도착했다.덕분에 집 안에 있던 오래된 전자제품 대부분이 새것으로 교체됐다.그 모습을 보고 이웃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온유란 남자친구가 정말 돈이 많다며 감탄하는 사람도 있었고, 부러움에 눈이 붉어질 만큼 질투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왜 이렇게 많이 산 거예요?”온유란이 미간을 찌푸렸다.“우리 엄마가 산 거예요.”그 말에 온유란은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특히 그날 밤, 현정민에게서 직접 전화까지 걸려 왔다.“유란아, 침대는 어때?”“좋아요.”“내가 직접 골랐어. 마음에 들고 편하면 됐지. 그런데 하이석이 침대는 튼튼한 걸로 골라 달라더라.”현정민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 침대는 걱정 안 해도 돼. 둘이 위에서 뛰어놀아도 끄떡없어.”온유란은 민망함에 발끝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었다.그때 전화기 너머에서 하정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요즘 침대는 다 편한 걸 우선으로 고르지 않아? 그런데 그 녀석은 튼튼한 걸로 골라 달라고 했어? 어젯밤에 도착해 놓고 오늘 바로 침대부터 바꾸는 거 보니까 수상해. 설마 침대를 무너뜨리기라도 한 거 아니야?”현정민이 곧장 눈살을 찌푸렸다.“당신은 입 좀 다물어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우리 아들이 그런 애예요?”“겉으로만 점잖지, 속은 아주 음흉하다
Read More
Dernier
1
...
8990919293
...
98
Scanner le code pour lire sur l'application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