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파혼 후 시작된 그의 집착: Chapter 891 - Chapter 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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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1화

눈앞의 이 남자는 하이석의 앙숙일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그래서 온유란은 침착하게 대답했다.“저희는 연기하는 게 아니에요.”“그럼 왜 하이석이랑 함께 있는 건가? 뭘 보고? 내가 알기로는, 하씨 집안에 시집오고 싶어 하는 아가씨는 없던데.”“좋아하니까 함께 있는 거예요.”“그를 좋아한다고?”“사랑해요.”남자는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 어울리지 않아. 그만 헤어져.”“어울리는지 아닌지는 저희 둘만이 아는 문제예요. 그걸 평가하실 분은 아닌 것 같은데요.”“지금 나한테 말대꾸하는 건가?”남자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눈썹뼈를 가로지른 깊은 흉터가 한층 더 위압적으로 보였다.“전 사실을 말한 것뿐이에요.”온유란은 겉으로는 태연했다.하지만 속은 이미 바짝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약한 기색을 보일 수는 없었다. 하이석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되니까. 그래서 이를 악물고라도 끝까지 침착한 척해야 했다.“아가씨, 배짱 하나는 대단하네.”남자는 또다시 사람 좋은 얼굴로 웃어 보였다. 그러나 그 웃음은 오히려 더 섬뜩했다.“나한테 대들었던 사람들이 어떤 꼴이 됐는지는 알고 있나?”“하수구에 던져지나요?”남자는 순간 멈칫하더니, 이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그리고 손을 휘휘 저으며 그녀를 물러가게 했다.*온유란이 연회장으로 돌아왔을 때, 유주만은 그녀를 데리고 몇몇 오래된 지인들에게 인사를 시키고 있었다. 도정숙은 메인 테이블에 앉아 있었는데, 퇴원 후 한동안 몸조리를 한 덕인지 얼굴빛이 제법 좋아져 있었다.“왜 그래?”도정숙은 그녀를 어릴 때부터 지켜봐 온 사람이었으니, 이상한 기색을 가장 먼저 알아챈 것도 당연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좀 피곤해서요.”“그래도 좋은 날이잖니.”도정숙은 다정한 손길로 그녀의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었다.하이석의 시선은 줄곧 온유란을 향해 있었다. 어딘가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하지만 육수린이 그의 목을 끌어안고 품에 매달린 채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고, 마침 연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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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2화

연우진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때, 방주헌이 콜라를 마시는 모습을 본 육수린도 덩달아 콜라가 먹고 싶어졌다.여동생 바보로 소문이 자자한 육민찬은 동생이 마시고 싶어 하자 부모의 허락을 받은 뒤, 콜라를 한 모금 먹여 주었다.육수린은 입맛을 다시듯 쩝쩝 입을 움직이더니, 미처 대비할 틈도 없이 딸꾹질을 했다.그 모습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육수린도 나름 체면이 있었는지, 아버지에게 안아 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작은 머리를 육강민의 품속에 푹 묻어 버렸다.“다들 나쁜 사람이네. 감히 우리 수린이를 놀리다니. 아빠가 이따 가서 혼내 줄까?”육강민이 달래듯 낮게 말하자 육수린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은 마치 작은 타조 같았다.하이석은 그런 부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조금은 부러운 감정이 밀려들었다.*오늘 유주만은 술을 꽤 많이 마셨다.의사라는 직업상, 한밤중에 전화 한 통만 와도 병원으로 달려가야 했기에 평소에는 이토록 거리낌 없이 술을 마시는 일이 거의 없었다.오늘은 모두가 어느 정도 술을 마셨지만, 유주만만큼 취한 사람은 없었다.그는 오늘 유난히 기분이 좋았다.술기운이 오른 유주만은 하이석의 손을 붙잡고는 대놓고 협박까지 했다.“네가 감히 우리 손녀를 괴롭히기라도 하면, 내가 메스 들고 가서 너랑 목숨 걸고 싸울 거다.”“전 괴롭힌 적 없습니다.”하이석이 억울하다는 듯 변명했다.“허튼소리 말아라. 너희 몇 놈은 어릴 때부터 내가 다 지켜봤다. 특히 너 말이다. 속이 얼마나 시커먼지. 우리 유란이가 어떻게 널 당해 내겠냐...”유주만은 한참 동안 같은 말을 반복했다.결국 육강민 일행이 그를 집까지 모셔다드리고 나서야 상황이 정리되었다.그제야 하이석도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같은 차 안에는 온유란 외에도 현정민과 도정숙이 함께 타고 있었다.온유란은 오늘 있었던 일을 하이석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두 어른이 괜히 걱정할까 싶어, 방으로 돌아간 뒤 둘만 있을 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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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3화

도정숙은 원래 몸이 좋지 않았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먼저 방으로 들어가 쉬었다. 그리고 온유란은 두 사람이 따로 나눌 이야기가 있다는 걸 눈치채고는 먼저 뒷채로 돌아가 쉬겠다고 했다.뒷채로 향하는 길.온유란은 손으로 제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하이석 씨 아버지 앞에서 말실수 한 건 없겠지?두 사람은 조금도 닮지 않았다.하이석은 신사적이고 침착한 사람인데, 그의 아버지는 어째서 산적 두목처럼 생긴 걸까.너무 무서웠다.시어머니는 대체 어떻게 그런 사람과 결혼한 걸까?*방으로 돌아왔을 때 마침 왕 기사가 안에 있었는데, 그는 몇 개의 선물 상자를 옮겨 놓고 있었다.“왕 기사님? 이건…?”“오늘 손님들이 보내온 선물입니다. 옥 장신구 같은 것도 있던데, 아무래도 전부 사모님께 드린 선물 같더군요. 연회가 시작되기 전에 유주만 어르신께서 따로 말씀하셨습니다. 전부 사모님께 가져다드리라고요.”“늦은 시간까지 고생 많으셨어요.”“별말씀을요. 사모님께서는 너무 예의를 차리시네요.”온유란은 그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따라 주었다.“왕 기사님, 잠깐 쉬세요. 물건은 여기 두시면 제가 정리할게요.”왕 기사는 웃으며 그녀를 바라봤다.“대표님의 아버님은 뵈셨습니까?”그가 말한 아버님은 당연히 하이석의 아버지일 터였다.온유란은 고개를 끄덕였다.“겁내지 마십시오. 대표님께서 계시니 아버님께서도 사모님을 어쩌진 못하실 겁니다.”“그분이… 아들을 무서워하나요?”왕 기사는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그분은 대표님께 쫓겨나 따로 사는 신세입니다. 요 몇 년은 대부분 해외에 계셨고, 집에 돌아와도 며칠 머물지 못하시죠.”“부자 사이가 안 좋은 건가요?”왕 기사는 잠시 말을 고르듯 멈칫하더니,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다른 집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을 다스리지만, 하씨 집안은 반대입니다. 게다가 지금은…”그는 헛기침을 한 번 했다.“대표님 밑에서 일하고 계시거든요.”온유란은 눈을 깜빡였다. 그녀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아버지가 아들 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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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4화

하이석은 아버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유란이를 따로 불러 무슨 말씀을 하신 겁니까?”“며느리 얼굴 한 번 보겠다는 데 문제라도 되냐?”“아버지는 사람을 겁주잖아요.”“너 같은 녀석과 결혼까지 한 아가씨가 그 정도로 겁이 많겠냐? 내가 무슨 흉악한 맹수라도 되는 줄 아나.”“생긴 게 무섭습니다.”하정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정말 자신의 친아들다웠다.그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말했다.“마침 누가 그 아가씨를 괴롭히고 있길래 내가 대신 정리해 줬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서 물어봤어. 혹시 너랑 무슨 거래라도 했나 싶어서. 난 그저 갑작스럽게 결혼한 이유를 알고 싶었거든.”“유란이는 뭐라고 했습니까?”하이석의 시선이 아버지에게 고정됐다.“나 며칠만 집에서 지내게 해 줘.”“지금 저랑 조건을 걸겠다는 겁니까?”“조건이 아니다.”“그럼 가셔도 됩니다.”말을 마친 하이석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러자 하정현이 한숨을 내쉬었다.“그 아가씨가 그러더라. 너와 결혼한 건 거래가 아니라 사랑 때문이라고.”“그래요?”하이석의 얼굴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녹음도 해 뒀다. 정말 괴롭힌 건 아니야.”“녹음은 두고 가십시오. 그러면 며칠 계셔도 됩니다.”하정현은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제 집에 들어와 며칠 머무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 하다니.하이석은 녹음 파일을 받아 들고 나가려다 문득 아버지를 돌아봤다.“그리고 어머니 화나게 하지 마십시오. 나이도 있으신데 또 싸우다가 도정숙 아주머니나 유란이한테 들키기라도 하면, 저까지 부끄럽습니다.”부모의 관계는 하이석에게 늘 골칫거리였다.한동안 떨어져 있으면 신혼부부처럼 다정하게 지내다가도,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어김없이 다퉜다.그런데 또 서로를 떠나지도 못했다.한때 하이석은 진지하게 이혼을 권한 적도 있었다.그랬더니 두 사람은 동시에 손가락질하며 입을 모아 그를 불효자라고 몰아세웠다.그 일 이후 하이석은 아버지를 집 밖으로 내보내는 쪽을 택했다.하정현이 가끔 집에 들어와 며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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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5화

하정현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래서 두 사람은 틈만 나면 다투는 것이었다.*하씨 저택의 안채.온유란은 왕 기사를 배웅한 뒤 육강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주만이 이미 잠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준비한 선물들을 정리해 두었고, 이어 욕실로 들어가 씻고 나왔다.샤워를 마치고 나온 그녀는 잠옷 차림이었다.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며 나오던 순간,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하이석을 발견했다.씻으러 가지 않겠냐고 물으려던 찰나, 그의 휴대폰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그를 좋아한다고?”“사랑해요.”특히 마지막 한마디.‘사랑해요.’그 대목만 몇 번이고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분명 하정현과 나눴던 대화였다. 그런데 이게 왜 녹음이 되어있는 거지?하씨 가문의 가장이라는 사람이 이게 대체 무슨 취미란 말인가.온유란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그때, 하이석이 막 씻고 나온 그녀를 보며 고개를 기울여 웃었다.그 웃음에는 노골적인 장난기가 어려 있었다.자신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반복되자 민망함에 견딜 수가 없었던 그녀는 급히 다가가 그의 손에 들린 휴대폰을 빼앗으려 했다.하지만 하이석이 한발 빨랐다.그는 몸을 일으키더니 휴대폰을 높이 들어 올렸다.키가 큰 탓에 온유란이 발끝을 세우고 뛰어오르며 손을 뻗어도 닿지 않았다.“휴대폰 줘요. 그만 틀어요.”하지만 하이석은 일부러 그러는 듯했다. 어떻게든 그녀를 놀려 먹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온유란은 부끄러움과 분노가 뒤섞여 괜히 울컥했다. 그녀는 결국 휴대폰을 빼앗는 걸 포기하고 몸을 돌려 다시 머리를 말렸다.꼭 털이 곤두선 새끼 고양이 같았다.하이석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웃었다.“화났습니까?”온유란은 대답하지 않았다.그가 팔을 잡으려 하자 그녀는 몸을 빼려 했지만, 하이석의 힘이 훨씬 셌다.그는 아예 그녀의 손을 붙잡더니 그대로 번쩍 안아 올렸다. 그리고 침대 위에 가볍게 눕혀 버렸다.온유란이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하이석은 몸을 숙여 그녀 위를 덮듯 내려왔다.하이석의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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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6화

오래 곁에 있을수록 미처 알지 못했던 모습들이 보이기 마련이다.하이석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리고 그를 더 깊이 알아갈수록 온유란은 깨닫게 되었다. 신사적인 겉모습 아래 감춰진 그의 강한 면모를.뜨겁게 달아오른 입맞춤은 귓가에서 시작되어 천천히 입술로 번져갔고, 서로의 숨결도 점점 더 깊이 얽혀 들었다.입술과 혀가 맞닿는 감각에 온유란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온몸의 신경이 더는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만 같았다.눈빛은 점점 흐려졌고, 욕망으로 짙게 물든 하이석의 눈동자만이 더욱 선명하게 시야를 가득 채웠다.온유란은 자신도 모르게 팔을 뻗어 그의 목을 감쌌다.그 순간,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덕분에 온유란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도 끊겼고, 감정에 깊이 빠져 있던 두 사람 역시 현실로 돌아왔다.어느새 온유란의 잠옷은 가슴께까지 밀려 올라가 있었다.그녀는 몸 위에 있던 하이석을 밀어내며 말했다.“전화 받아요. 이렇게 늦은 시간에 연락한 거면 분명 급한 일일 거예요.”하이석은 고개를 끄덕인 뒤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발신자 이름을 확인한 순간,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여보세요, 아버지?”아버지가 자신을 찾는 데는 대개 좋은 이유가 없었다.“자고 있었냐?”“네.”하정현은 코웃음을 쳤다.“잠들었는데 어떻게 전화를 받아?”“그래서 무슨 일이십니까?”“앞마당으로 나와. 우리 부자지간에 대화 좀 하자.”하이석은 미간을 문지르며 한숨을 내쉬었다.“또 어머니한테 쫓겨나셨습니까?”“아니!”하정현은 즉시 부인했다.“그리고 너 온유란이랑 같이 있지? 이상한 소리 하지 마라.”오늘은 온유란이 처음으로 하정현을 만난 날이었다.인상이 다소 무섭기는 했지만, 그래도 시아버지인 만큼 좋은 모습을 남기고 싶었다.그가 하이석을 찾는다는 말을 듣자 그녀는 얼른 다녀오라고 재촉했다.한창 분위기가 무르익던 때에 방해를 받은 탓인지, 두 사람 모두 더는 아까의 기분을 이어 갈 수 없었다.온유란은 머리를 말린 뒤 이불 속으로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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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7화

그런 짓은 분명 자기 아들이 먼저 해 봤기에, 그 아가씨도 그대로 따라 배운 게 틀림없었다.*다음 날.잠에서 깬 온유란은 시간을 확인하려고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가 기사 하나를 발견했다.[한때의 재벌가 영애, 몰락 끝에 우울증으로 투신]기사를 눌러 보니 주인공은 온유정이었다. 정말로 악취 나는 하천에 던져진 모양이다.물에 빠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행인에게 발견되기는 했지만, 그 하천은 너무 더러웠다. 주변은 진흙과 이끼로 뒤덮여 있었고, 봄철이라 수위까지 올라가 바닥도 몹시 미끄러웠다.게다가 밤까지 깊은 상황.행인 중 수영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었다고 해도 함부로 물에 뛰어들 엄두는 내지 못했을 것이다.그래서 결국 경찰에 신고가 들어갔다.구조대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온유정이 스스로 물 밖으로 기어 나온 뒤였다.검은 진흙으로 뒤덮인 몸에서는 악취가 진동했다. 게다가 얼굴마저 흙탕물로 범벅이 되어 있어 처음에는 누구인지 알아보지도 못했다.이후 병원으로 옮겨졌고,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 가운데 진흙을 씻어 내자 그제야 모두가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온유정이었다.경찰이 어떻게 물에 빠졌는지 묻자 그녀는 몸을 움츠린 채 감히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그저 실수로 떨어졌다고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그 하천 주변에는 난간이 설치되어 있어 쉽게 떨어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심지어 그녀는 술을 마신 상태가 아니라 정신도 멀쩡했다.게다가 최근 온창섭이 양수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일까지 알려져 있었기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우울증으로 인한 투신일 거라 추측했다.기사를 읽던 온유란은 속으로 중얼거렸다.하정현과 하이석은 외모는 전혀 닮지 않았는데, 일 처리 방식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똑같았다. 둘 다 말보다 행동이 먼저인 사람들이었다.휴대폰에는 부재중 전화와 문자도 여럿 쌓여 있었다. 그 중에서는 예전에 시골에서 알던 이웃들이 보낸 연락도 있었다.인터넷에서 유주만에게 양손녀로 인정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를 전해 온 것이었다.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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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8화

온유란이 하이석과 함께한 지도 제법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녀가 만나본 하이석의 지인들은 육강민 일행뿐이었다. 사촌이나 외가 친척 같은 사람들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아무래도 친척들과는 왕래가 거의 없는 모양이었다.도정숙은 처음에는 하이석의 아버지가 워낙 험상궂게 생겨서 까다로운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아침에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눠 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닌 듯했다.덕분에 그녀는 속으로 온유란을 위해 안도했다.*육씨 저택에 가기 전, 현정민은 온유란을 데리고 쇼핑에 나섰다.하이석은 퇴근 후 두 사람을 데리러 가기로 했다.전화를 걸어 위치를 물어보니 두 사람은 주얼리 매장에 있다고 했다.현정민은 백색 유리종 옥팔찌를 시착하는 중이었다. 온유란이 새 옷을 한 벌 지어 준 덕분에 거기에 어울릴 만한 장신구를 맞추려는 모양이었다.직원 몇 명은 현정민을 둘러싸고 있었고, 온유란은 매장을 천천히 둘러보고 있었다.하이석이 가게에 도착했을 때, 그는 온유란의 시선이 한 진열장에 머물러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 안에는 다이아몬드 반지 몇 개가 놓여 있었다.크기가 제법 큰 다이아몬드들은 조명 아래에서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그 진열장 앞을 지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 더 눈길을 주게 될 만큼 화려했다.온유란과 하이석의 관계는 처음부터 순수한 이유만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사람은 만족할 줄 알아야 했다.그 무렵 온씨 가문의 일은 그녀를 숨 돌릴 틈조차 없이 몰아붙였고, 도정숙의 수술 문제까지 겹쳐 있었다.결혼식이나 다이아몬드 반지 같은 것은 그때의 그녀가 생각할 여유조차 없는 일이었다.그때, 시야 한편으로 하이석이 들어왔다.온유란은 그를 향해 가볍게 미소 지었다.*현정민은 결국 팔찌를 구매했다.세 사람이 하씨 저택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하정현과 육진국이 낚시를 마치고 돌아온 뒤였다.하정현은 마당에서 함께 뛰어노는 육씨 가문의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정확히는, 그 시선이 육수린에게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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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9화

온유란은 두 사람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불법적인 계획’ 이야기가 나오자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의 의견은 놀라울 만큼 잘 맞았다.심지어 진지하게 의논까지 하고 있었다.그 모습을 보고서야 온유란은 진심으로 믿게 되었다. 두 사람이 정말 부부라는 사실을.*온유란과 하이석은 한동안 본가에서 지내다가도 가끔 헤이엘로 돌아가 며칠씩 머물곤 했다.아무래도 어른들이 없는 곳이 더 편했으니 말이다.게다가 온유란은 디자인 수업까지 등록한 상태였다.수업을 마치고 헤이엘로 돌아오면 곧장 다락방 작업실로 올라갔다.그곳에 틀어박혀 밤늦게까지 작업하는 일이 다반사였다.한편, 하이석은 최근에도 육강민과 이전에 논의하던 프로젝트 협력을 두고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하지만 세부 조건을 두고 양측의 의견이 번번이 엇갈렸다.사업에는 우정도 예외가 아니었기에 두 사람 모두 쉽게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그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하이석은 어느 날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다.“한 번쯤은 양보해 줄 수도 있잖아. 결혼 선물이라고 생각해.”그러자 육강민이 태연하게 답했다.“우리 집 큰애는 가을이면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둘째는 아직 분유 먹는 나이야. 아이가 없으니까 모르겠지만, 애 키우는 데 돈이 엄청 들어.”결국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마침 그날 하이석의 기분도 썩 좋지 않았다.그는 평소보다 일찍 퇴근해 온유란을 데리러 갔다.수업이 끝난 시간이었기에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이미 밖으로 나온 뒤였다.그런데도 온유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수업 장소는 임대한 교육센터.하이석이 교실 뒷문 쪽으로 가 보니, 온유란이 책상에 앉아 연필을 들고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다.어느새 6월로 접어든 무렵이라, 경성의 날씨도 제법 더웠다.그녀는 가볍고 산뜻한 차림에 머리를 하나로 묶고 있었다. 화장기 없는 하얀 얼굴은 앳된 분위기를 더했다.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어려 보였다.하이석은 뒷문에 기대어 조용히 그녀를 바라봤다. 굳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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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0화

두 사람은 밖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헤이엘로 돌아왔다.엘리베이터에 오른 뒤에도 하이석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무표정이었지만 온유란은 알 수 있었다. 그가 아직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는 것을.“아직도 화났어요?”온유란이 나직이 물었다.“안 났어요.”온유란은 그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겼다. 하지만 하이석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한 걸음 더 다가가 조심스럽게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머리를 그의 가슴께에 기대고 천천히 몸을 부볐다.고요한 공간에는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소리만 은은하게 울렸다.너무 조용한 나머지 그녀는 하이석의 심장 소리마저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온유란은 손끝으로 그의 등을 가볍게 쓰다듬었다.“그만 화 풀어요.”하지만 하이석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온유란은 슬며시 미간을 찌푸렸다.요즘 서은주와 가까이 지내면서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남자라는 존재는 의외로 단순해서 몇 마디 다정한 말과 포옹만으로도 쉽게 풀린다는 것.서은주는 늘 그런 식으로 육강민을 다뤘다.설마... 그 방법이 하이석에게는 통하지 않는 걸까.엘리베이터가 16층에 도착하자, 온유란은 허리를 감싼 팔을 풀고 먼저 밖으로 나갔다.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선 순간, 아직 불도 켜지지 않은 어둠 속에서 하이석이 뒤따라 들어왔다.그는 발끝으로 문을 닫아 버리더니 순식간에 온유란을 문과 자신의 몸 사이에 가두었다.온유란의 등이 벽에 닿았다.순간, 몸이 허공으로 들려 올라가자 그녀는 놀라 숨을 삼켰다.본능적으로 두 팔을 뻗어 그의 목을 감쌌다. 길고 가느다란 다리는 자연스레 그의 허리를 감아 올렸다.온유란은 하이석이 삼촌이라는 소리를 들은 뒤부터,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래서 조금이라도 그를 달래 주고 싶었다.어둠 속에서 먼저 입을 맞춘 것도 그녀였다.하지만 그 순간부터는 어떤 자제도 소용이 없었다.두 사람은 현관에서부터 서로에게 입을 맞춘 채 안쪽으로 향했다.옷은 하나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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