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현은 해바라기씨를 까먹으며 말을 이었다.“확실히 세상엔 먼저 다가가는 여자들도 있어. 그런데 유란이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 손에 이끌려 그런 외진 곳에서 자랐잖아. 그러니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 수밖에 없지. 네가 말하지 않으면 그 애가 어떻게 알겠냐? 어쩌면 그 애도 널 좋아하면서도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는 걸 수도 있어. 괜히 고백했다가 거절이라도 당하면, 지금의 관계마저 깨질까 봐 두려운 걸 수도 있고.”하정현은 해바라기씨를 까며 아들을 바라보더니 짓궂게 웃었다.“설마 너, 유란이가 널 좋아하지도 않는데 갑자기 사랑한다고 했다가 도망갈까 봐 겁나는 거야?”그러더니 그의 어깨를 툭 두드렸다.“사랑은 말해야 한다. 아들아, 자신감을 가져. 남자는 원래 먼저 움직이는 거야.”하이석은 고개를 끄덕였다.생각해 보니 아버지 말이 맞았다.예전과 지금은 달랐다.그때는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한참 뒤, 하정현이 갑자기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평소엔 그렇게 대단한 척하더니, 친아버지를 집에서 내쫓을 때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던 놈이 사랑 때문에 끙끙 앓고 있다니. 아, 진짜 웃겨 죽겠네. 하하하!”너무 호탕하게 웃어댄 탓에 하이석은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하정현은 웃음을 겨우 참으며 말했다.“근데 네 반응은 아주 정상이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누구나 자신 없어지고, 질투도 하고, 괜히 예민해지고 속도 좁아지는 법이야. 네 아버지가 다 겪어본 일이라 잘 안단다. 다만 네게도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을 뿐이지.”그때 안채에서 현정민이 걸어 나왔다.“당신! 한밤중에 밖에서 뭘 그렇게 웃고 있는 거예요?”방금 전까지 큰소리치던 하정현은 순식간에 기세가 죽었다.“아들놈이랑 얘기 좀 하고 있었어.”“무슨 얘기요? 당신이랑 아들은 머리 쓰는 수준부터가 다른데.”하정현은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아내의 어깨를 감싸 안고 안채로 향했다.“감정 문제로 고민이 좀 있어서 말이야. 정민아, 내가 말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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