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파혼 후 시작된 그의 집착: Chapter 931 - Chapter 940

975 Chapters

제931화

“뭐하고 있던가요?”“방주헌이랑 허경빈까지 합세해서 넷이서 고스톱을 치고 있더라니까. 난 여기 누워 있는데, 저 인간들은 병실에서 대놓고 도박판을 벌이고 있었어.”육강민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게다가 난 아직 상처 회복 중이라 자극적인 음식은 입에도 못대는데, 방주헌은 꼭 내 앞에서 꼬치를 시켜 먹더라니까? 냄새나 맡으면서 참으라나 뭐라나.”그 말에 서은주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푸흡.”확실히 방주헌이라면 그러고도 남았다.*그 시각, 병실 안에는 온유란과 하이석만 남아 있었다.하정현 부부는 전날 밤을 꼬박 새운 데다 오늘도 친척과 지인들을 상대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온유란은 두 사람을 먼저 집으로 돌려보냈다. 문밖에는 왕 기사와 간병인이 지키고 있었으니 큰 문제는 없을 터였다.그렇게 이틀이 지났지만 하이석은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방주헌은 팔짱을 낀 채 침대 앞에 서서 유주만을 바라봤다.“선생님, 하이석 머리 진짜 괜찮은 거 맞죠?”“뇌 CT 결과는 이상 없어.”“그럼 두개골이라도 열어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마침 병실에 와 있던 허경빈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온유란은 그 말을 듣고 눈을 크게 떴다.이게 어찌 친구라는 사람들이 할 소리리란 말인가.그때 방주헌이 문득 떠오른 듯 말했다.“아, 형수님. 아까 밖에서 장승일이라는 사람을 만났어요. 형수님 대학 동기라던데, 문병 왔다가 하씨 집안 사람들한테 막혀서 못 들어오더라고요.”그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근데 형수님 얘기할 때 표정 보니까, 형수님 엄청 좋아하는 것 같던데요?”허경빈이 웃으며 거들었다.“형수님처럼 예쁘면 결혼했어도 마음 두는 사람이 있는 법이지.”“이거 하이석이 봤으면 또 질투했겠네.”그 순간 유주만의 시선이 침대 위로 향했다.하이석의 손가락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인 듯했다.설마 이 녀석한텐 이런 자극이 필요한 건가?생각에 잠긴 유주만은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입을 열었다.“유란아, 만에 하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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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2화

병실 안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하이석의 상태를 확인하느라 의사와 간호사들이 분주히 움직였고, 소식을 들은 서은주까지 급히 달려왔다. 그런데 막상 병실 앞에 와 보니 방주헌과 허경빈이 무언가를 두고 심각하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내가 너보다 형이잖아.”“형이면 더 양보해야지.”서은주는 온유란 곁으로 다가가 팔꿈치로 슬쩍 그녀를 쿡 찔렀다.“저 둘은 또 왜 저러는 거예요?”온유란은 한숨 섞인 얼굴로 답했다.“하이석 씨가 기억을 잃게 된다면 누가 큰아버지 할 거냐, 누가 작은아버지 할 거냐 가지고 싸우는 중입니다.”하이석이 눈을 떴다는 사실에 온유란은 누구보다 기쁘고 벅찼다.그런데 이 두 사람 덕분에 감격은커녕 머리만 지끈거렸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그 말을 들은 서은주는 피식 웃었다.“제가 전에 말했잖아요. 저 둘 진짜 뻔뻔하다고.”그러더니 덧붙였다.“한 명이면 그냥 웃긴 놈인데, 둘이 뭉치면 재앙입니다.”온유란은 순간 눈을 깜빡였다.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혼자면 그저 유쾌한 사고뭉치에 불과했지만, 둘이 함께 있으면 감당이 안 됐다.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을 받은 하정현 부부와 육강민을 비롯한 사람들이 하나둘 병원에 도착했다.현정민은 그동안 괜찮은 척했지만 결국 아들이 깨어난 모습을 보자 눈시울이 붉어졌다.“이 녀석아, 이틀이 넘도록 의식도 못 찾고 누워 있으면 어떡하니. 사람 놀라 죽일 일 있냐?”타박하는 말투였지만 목소리에는 안도감이 가득 담겨 있었다.“특히 유란이는 다친 몸으로 끝까지 네 곁을 지켰어.”그 말에 하정현이 곧장 끼어들었다.“나도 돌봤어.”“당신이 뭘 했는데요?”“세수도 시켜 주고, 손발도 닦아 주고, 몸도 다 닦아 줬지.”하이석은 말없이 눈을 감았다.“얘는 왜 말이 없어?”현정민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유주만을 바라봤다.“선생님, 설마 우리 애 말도 못 하게 된 건 아니죠?”유주만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건 아닙니다. 뇌 혈류가 충분히 회복되지 않아서 일시적으로 목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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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3화

서은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담요를 건넸다.남자의 휠체어는 반자동식이라 누군가 밀어 주지 않아도 움직일 수 있었다. 다만 지금 앞에 있는 엘리베이터는 장애인용 설비가 갖춰진 형태가 아니라 혼자 타기에는 다소 불편해 보였다.서은주는 자연스럽게 그의 뒤로 돌아가 휠체어를 밀어 주었다.“고맙습니다.”남자가 미소를 띠며 인사했다.엘리베이터 안에는 두 사람뿐이었다.서은주는 고개를 숙인 채 음성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었다.육민찬이 치킨을 먹고 싶다며 한참 투정을 부리는 내용이었다. 육강민이 사 주지 않자 이번에는 서은주에게 퇴근길에 사다 달라고 조르고 있었다.메시지를 듣던 그녀의 입가에 절로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병실이 있는 층에 도착한 뒤에도 서은주는 먼저 나서 휠체어를 밀어 주며 밖으로 나왔다.원래부터 상대의 마음을 세심하게 살필 줄 아는 사람이었다.도움을 주면서도 시선을 과하게 머물게 하지 않았고, 배려에도 적당한 거리를 두었다. 상대가 부담스럽거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배려였다.복도를 함께 지나가는 동안 몇몇 의료진이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고, 서은주는 그때마다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 모습은 조금의 거리낌도 권위도 없었다. 마치 자신이 육씨 가문의 며느리라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사람 같았다.그녀는 아몬드처럼 또렷한 눈매와 가느다란 눈썹을 지녔다. 청아한 분위기 속에 은근한 요염함이 스며 있는 얼굴이었다.남자는 무릎 위에 올려 둔 담요를 손끝으로 천천히 쓸어내렸다.아름답고 온화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자신만의 신념과 고집 또한 분명히 자리하고 있었다.육강민은 보는 눈도 좋았고 운도 좋았다. 그저 밖에 한번 나갔다가 데려온 여자가 하필 강씨 가문의 외손녀였으니.정말 부러울 정도였다.두 사람이 함께 병실 안으로 들어서자 하정현이 잠시 눈을 깜빡였다.“둘이 같이 왔네?”“우연히 마주쳤습니다.”하이준이 답한 뒤 하정현과 현정민에게 인사했다.“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 이석이는 좀 어떻습니까? 아직도 말을 못 하나요?”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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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4화

하정현은 그래도 아내를 먼저 챙겼다. 현정민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병원에는 자신이 남아 하이석을 돌보겠다고 했다.무엇보다 하이석은 다리를 다친 상태라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누군가의 부축이 필요했기에, 힘쓰는 일은 자신이 맡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하정현이 자청하자 현정민도 더 말리지 않고 그를 남겨 두었다.온유란과 하이석은 같은 병실을 쓰고 있었지만, 하정현은 어디까지나 시아버지였다. 괜한 오해를 사지 않도록 두 침대 사이에는 커튼을 쳐 두었고, 그는 줄곧 하이석 쪽 공간에만 머물렀다.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온유란의 귀에 하정현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잠이 안 오냐? 어릴 땐 잠 안 온다고 나 붙잡고 동화책 읽어 달라더니, 크고 나서는 아예 찾지도 않는구나. 난 너무 졸리다. 너 안 잘 거면 나 먼저 잔다.”그리고 정말 십여 초쯤 지났을까. 곧바로 우렁찬 코 고는 소리가 병실 안에 울려 퍼졌다.이게 바로 머리만 대면 잔다는 건가.한밤중 무렵이었다. 온유란은 옆쪽에서 들려온 작은 소리에 잠에서 깼다.몸을 일으켜 보니 하이석이 침대에서 내려오려 하고 있었다.반면 간병용 의자에 누워 있던 하정현은 천둥이 쳐도 모를 듯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화장실 가려고요?”온유란이 조용히 묻자 하이석이 고개를 끄덕였다.한쪽 다리에는 깁스가 되어 있었다.온유란은 조심스럽게 그의 몸을 받쳐 들고 화장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문을 열자마자 손목이 붙잡혔다.순간 몸이 안으로 끌려 들어갔고, 문이 닫히는 동시에 그의 팔이 그녀의 목덜미를 감싸며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하이석 씨...”갑작스러운 행동에 온유란의 몸이 움찔 떨렸다.“움직이지 마요.”하이석이 입을 열었다.메마르고 쉰 목소리였지만 이상할 만큼 사람을 꼼짝 못 하게 만드는 힘이 담겨 있었다.따뜻한 손끝이 목덜미 뒤쪽을 천천히 스쳐 지나갔다.한쪽 다리에 힘을 제대로 실을 수 없는 탓에 그의 체중 절반가량이 온유란에게 기대어 있었다.턱은 그녀의 어깨와 목 사이에 가볍게 닿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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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5화

하이석은 기어코 온유란을 자신의 곁에 눕혔다. 같은 침대에 나란히 누워, 한 이불을 덮은 채였다.커튼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는 하정현이 있었다.온유란은 괜히 긴장됐다. 민망하기도 했고, 얼굴이 화끈거렸다.“뭘 그렇게 걱정해요. 우리 아버지 잠들면 아무것도 몰라요.”하이석이 그녀의 뺨을 손끝으로 가만히 쓸었다.이렇게 가까이 맞닿아 있는 감각은 조금 전 입을 맞췄을 때보다도 더 사람을 흔들어 놓았다.한참 그녀를 바라보던 하이석이 문득 입을 열었다.“아까 했던 말, 진심이었어요?”“무슨 말이요?”“유주만 선생님 앞에서 했던 말이요.”그의 시선이 온유란에게 고정됐다.“당신이 말했잖아요. 나를 사랑한다고.”순간, 온유란의 숨이 턱 막혔다. 심장도 걷잡을 수 없이 뛰기 시작했다.설마 다 듣고 있었던 건가.하이석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자 숨결이 뺨 위로 스쳤다. 그 목소리는 마치 귓가에 직접 내려앉는 것처럼 낮고 부드러웠다.“한 번만 더 말해 줄래요? 당신 입으로 듣고 싶어요.”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억눌러 참는 듯한 음색. 특히 마지막에 길게 남은 여운은 이상할 만큼 사람의 마음을 흔들었다.온유란은 심장이 너무 빨리 뛰는 것 같았다. 정말 이러다 큰일 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예전의 그녀였다면 이런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했을 것이다.하지만 한 번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뒤로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온유란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하이석 씨.”목소리는 작고 부드러웠다.“사랑해요.”말을 내뱉고 나니 심장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다.부끄러워서 차마 그의 눈을 마주 볼 수도 없었다.“부끄러워요?”하이석의 코끝이 그녀의 뺨을 살짝 스쳤다.“얼굴이 엄청 뜨거운데.”온유란은 입술을 깨물었다. 속눈썹도 가늘게 떨렸다.“유란 씨.”“네?”“저 지금 키스할 거예요.”그의 코끝이 그녀의 코를 천천히 스쳐 지나갔다. 조금씩, 아주 천천히.그러다 입술이 맞닿는 순간, 온유란은 가슴속 혈액이 한꺼번에 치솟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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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6화

소나기가 한차례 지나간 뒤부터 기온이 훌쩍 올랐다.어느새 여름이 깊어져 병실 안에서도 매미 울음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입원한 지 일주일쯤 되었을 무렵, 하이석의 다리 붓기도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 금이 갔던 부위의 깁스를 새로 교체한 뒤, 유주만은 다음 주면 퇴원해 집에서 요양해도 되겠다고 말했다.그동안 두 사람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눈치챌 수 있었다. 하이석과 온유란 사이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예전의 두 사람은 늘 서로를 존중했다. 하지만 어딘가 지나치게 예의 바른 느낌도 있었다. 서로를 배려하긴 했지만,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듯한 거리감이 남아 있었다.물론 온유란은 시부모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여전히 조심스러웠다.반면, 병상에 누워 있는 하이석은 달랐다.하루 종일 무료하다 보니 틈만 나면 온유란을 바라봤다. 시선은 좀처럼 그녀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마치 다시 예전의 '아내 바라기'가 된 사람 같았다.현정민은 그런 젊은 부부를 보며 흐뭇해했다.반면, 하정현은 속이 말이 아니었다.전문 간병인을 붙여 주자고 했더니 하이석이 단칼에 거절한 것이다.낯선 사람이 자신을 만지는 게 싫다는 이유였다.그런데 정작 그 뒤로는 아버지를 부려 먹기 시작했다.다리 하나 다친 것뿐인데 아주 상전이 따로 없었다.하정현은 아들이 온유란에게 매달리는 모습을 수도 없이 봤다.참다 못한 그는 결국 한마디 했다.“그렇게 좋으면 유란이한테 시키지 그래?”하이석은 태연하게 답했다.“힘들까 봐요.”“그럼 네 늙은 아버지는 안 힘들고?”“아버지는 늘 운동 하시잖아요. 체력 좋으시면서.”하정현은 여러 번 때려치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현정민이 나타나 말했다.“당신, 부자 관계 좋아지고 싶지 않아요?”“전혀.”하정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그러자 현정민은 피식 웃었다.“그럼 손주 안 보고 싶어요? 손녀도? 이석이가 빨리 회복해야죠. 지금 둘 분위기면 아이 생기는 것도 시간문제예요.”하정현은 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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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7화

육수린은 하랑이라는 이름의 새끼고양이를 무척 좋아했다.작은 고양이를 품에 안은 채 조그만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자신이 먹을 옥수수가 익기만을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아무것도 안 먹고 있어?”육강민이 웃으며 하이석 곁으로 다가왔다.“환자 집에서 파티를 여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해?”하이석이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방주헌 말로는 널 기분 좋게 해 주려고 그런 거래.”“참 고맙네.”이를 악물고 내뱉은 말이었다.하이석은 저 멀리 강희진 곁을 맴돌고 있는 방주헌을 바라봤다.차를 따라 주고, 꼬치를 구워 주고, 물 한 잔까지 챙겨 주는 모습이 꼭 충성심 강한 수행원 같았다.사랑이라는 건 참 신기한 것이었다.방주헌은 원래 레이싱 말고는 오래 좋아하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그런데 강희진만큼은 달랐다.공개 연애를 시작한 뒤부터 지금까지, 두 사람은 하루도 떨어질 줄 몰랐다.보통은 시간이 지나면 설렘도 옅어지기 마련인데, 방주헌은 아직도 처음과 다를 바 없었다.같은 집에서 지내는 강정한조차 견디지 못할 정도였다.그는 결국 대놓고 말했다.“차라리 내가 나갈까? 둘이 편하게 있게.”보통 사람이라면 민망해서라도 사양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방주헌이었다.“좋아요. 언제 이사 갈 겁니까?”그 말을 들은 강정한은 곧장 그를 문밖으로 내쫓았다. 심지어 으름장까지 놓았다.“한 번만 더 우리 집 문턱 넘으면 다리 부러뜨릴 줄 알아.”물론 진심은 아니었다.그런데 며칠 뒤. 방주헌은 강희진을 만나러 담을 넘어 집 안으로 들어갔다고 했다.강정한의 방식은 상식이 통하는 사람에게는 잘 먹혔다. 하지만 방주헌 같은 사람에게는 전혀 소용이 없었다.게다가 강정한은 그의 옷 입는 취향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결국 직접 나서서 옷을 골라 주며 안목부터 길러야 한다며 잔소리를 늘어놓았다.덕분에 두 사람은 틈만 나면 부딪혔다.한편, 오늘 바비큐 파티에는 강정한이 오지 않았다.덕분에 남겨진 허경빈만이 꼬치를 굽고, 남의 연애를 구경하며 외로움을 씹어 삼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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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8화

바비큐 파티가 끝난 뒤에도 온유란은 하이석이 제대로 먹지 못했을까 봐 걱정되어 직접 면까지 끓여 그의 앞에 내놓았다.그런데 이 자리에서 가장 뻔뻔한 사람은 역시 방주헌이었다.면을 한 그릇 얻어먹은 것도 모자라 남은 바비큐까지 잔뜩 싸 갔다.겉으로는 음식이 아깝다며 포장하는 척했지만, 사실은 강희진 집에 들려 강정한에게 갖다 주려는 속셈이었다.추석이 되면 강씨 가문에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러 갈 예정인 만큼, 지금의 방주헌은 강씨 가문 사람 누구 하나 감히 소홀히 대하지 못했다.육수린은 어느새 육강민의 어깨에 기대 잠이 들어 있었다.반면, 서은주는 온유란의 손을 붙잡고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에 함께 쇼핑하러 가자는 약속까지 잡았다.시끌벅적했던 시간이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가자 주변은 금세 조용해졌다.하이석은 천천히 면을 먹고 있었고, 온유란은 그의 곁에 앉아 휴대폰을 넘기고 있었다.한편, 하랑이는 그녀의 발치에 웅크리고 잠들어 있었다.온유란은 패션위크 영상을 보다가 마음에 드는 옷이 나오면 하이석에게 보여 주곤 했다.하이석은 패션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언제나 진지하게 들어 주었다.사랑이라는 건 어쩌면 그런 것이었다. 좋아하는 것을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예전의 온유란은 이런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못했다.그가 관심 없어할까 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봐, 괜히 머쓱해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잔잔하고 평온한 행복이라는 것은 아마 이런 순간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패션위크 보고 싶어요?”하이석이 물었다.“다리 좀 더 나으면 데려가 줄게요.”온유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하이석은 면을 반쯤 먹고 따뜻한 우유까지 마신 뒤, 온유란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천천히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온유란은 그의 다리를 건드릴까 봐 양손으로 휠체어 양옆을 짚고 몸을 지탱했다.입술이 떨어졌을 때는 두 사람 모두 숨결이 흐트러져 있었다.온유란은 얼굴이 붉어진 채 말했다.“여긴 앞마당이에요. 다리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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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9화

분명 연애는 방주헌이 먼저 시작했다.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하나같이 자신보다 먼저 결혼식을 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하정현 부부는 결혼식을 치러 본 경험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틈만 나면 육씨 가문 사람을 찾아가 이것저것 물어보며 조언을 구했다.두 집안이 자주 왕래하게 되면서 하이석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버지가 정말로 남의 집 아이를 하나 데려왔다는 것을.그 아이는 육수린이 아니라 연우진이었다.날씨가 더워지며 아이들도 여름방학에 들어갔다. 서은주는 더 이상 병원 실습을 나가지 않았고, 육강민과 함께 두 아이를 데리고 강씨 저택에서 한동안 머물게 되었다.그러다 보니 집에 남은 연우진은 자연히 외로워질 수밖에 없었다.하정현은 틈만 나면 그를 하씨 저택으로 데려왔다.연우진도 자주 드나들다 보니 어느새 하씨 저택의 경비견 두 마리와도 친해졌다.그는 온유란을 무척 좋아했다. 온유란과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귓불이 붉어질 정도였다.그런데 신기한 일이 있었다.연우진은 하씨 저택의 개들과도 금세 친해졌으면서, 유독 하이석과는 어딘가 서먹했다.둘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가까운 것도 아니었다.한 번은 연우진이 우연히 하이석과 온유란이 입을 맞추는 장면을 목격한 적도 있었다.하이석은 괜히 아이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 준 것 같아 설명하려 했지만 연우진은 손을 휘휘 저으며 대답했다.“전 어릴 때부터 해외에서 자랐어요.”그 말의 뜻은 분명했다. 이 정도 일은 이미 많이 봤다는 의미였다.원래부터 둘 다 말수가 많은 성격은 아니었다.연우진은 육민찬처럼 활발하지도 않았고, 육수린처럼 애교가 많은 아이도 아니었다.그래서 둘은 종종 마주 앉아 서로만 빤히 바라보곤 했다.그런 모습을 본 방주헌은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사람처럼 굴었다.애초에 하이석이 자신보다 먼저 결혼식을 올린다는 사실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는 어느 날 일부러 옛날 혼약 이야기를 꺼내며 놀리기 시작했다.“사위랑 장인은 원래 사이가 안 좋은 법이야.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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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0화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자 경성의 날씨는 한층 더 뜨거워졌다.회성에 머물던 육강민 가족도 다시 경성으로 돌아왔다.한편, 하이석은 깁스를 풀었지만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걷는 데는 여전히 불편함이 있어 지팡이에 의지해야 했다.그 지팡이는 방주헌이 선물한 것이었다.허경빈과 돈을 모아 함께 샀다고 했다.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방주헌은 사람을 시켜 지팡이에 글자까지 새겨 넣었다.[하이석 전용 지팡이]그 결과는 뻔했다.하이석은 그 지팡이로 방주헌을 한 대 후려쳤고, 집을 지키던 개 두 마리까지 풀어 그를 쫓아냈다.방주헌은 양심도 없는 놈이라며 길길이 날뛰었지만 하이석은 단 한마디만 남겼다.“꺼져.”이런 광경이 펼쳐질 때마다 온유란은 한쪽에 앉아 조용히 구경만 했다.오히려 그녀는 하이석의 친구들이 자주 집에 놀러 오는 게 좋았다. 다친 뒤 집에만 머무는 하이석이 심심해할까 걱정됐기 때문이다.하지만 유주만이 외출과 보행을 허락한 뒤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하이석은 다시 회사에 나가기 시작했고, 온유란도 늘 그의 곁을 함께했다.*회사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씨 가문의 친척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입원 기간 동안 온유란도 대부분 얼굴을 본 적 있는 사람들이었다.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은 휠체어를 탄 남자였다.하이석의 사촌 형, 하이준.반듯한 외모에 아직 젊은 나이였지만 휠체어에 의지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게다가 원래도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닌지라, 하씨 가문 어른들 역시 그를 대수롭지 않게 대하는 눈치였다.온유란은 회사 일에는 문외한이라 조용히 한쪽에 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처음에는 회사 문제를 논의하러 모인 줄 알았는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분위기가 묘했다.회의라기보다는 하이석을 압박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같았다.특히 하백규라는 사촌 숙부가 가장 공격적이었다.“이석아, 말이 좀 거칠게 들릴지 몰라도 솔직히 말하마. 지금 네 관심은 회사보다 다른 데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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