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파혼 후 시작된 그의 집착: Chapter 981 - Chapter 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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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1화

연위성은 말없이 아이를 바라봤다."외삼촌, 제가 발라 드릴게요."연우진은 침대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조심스럽게 연고 뚜껑을 열었다. 손끝에 하얀 연고를 조금 짜낸 뒤, 상처가 난 얼굴에 아주 살살 펴 발라 주었다.아이의 손은 작고 여렸다. 말랑하고 따뜻한 손끝이 닿을 때마다 연위성은 코끝이 시큰해졌고 가슴 한편도 묘하게 뜨거워졌다."아프면 꼭 말씀하셔야 해요."연우진은 꼭 작은 솜이불 같은 아이였다. 겉으로는 무뚝뚝한 척하지만, 누구보다 마음이 따뜻했다.연위성이 미소를 지었다."외삼촌이 아프면 제일 먼저 우리 우진이한테 말할게."연우진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외삼촌. 전 왜 하이석 삼촌이 외삼촌을 때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삼촌은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연위성이 눈을 가늘게 떴다."전에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었나?""그건 맞아요."연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까다롭긴 한데, 좋은 사람이에요. 저랑 민찬이가 삼촌 집에 수영하러 갈 때마다 집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잖아요. 속으로는 귀찮아하는 것 같으면서도 항상 수박도 먹기 좋게 잘라 주고, 아이스크림도 챙겨 주세요."연위성은 아무 말 없이 옅게 웃었다.하지만 연우진은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저랑 민찬이도 싸운 적 많아요. 그래도 다음 날이면 또 제일 친한 친구로 돌아가요. 외삼촌이랑 하이석 삼촌도..."아이는 환하게 웃었다."다시 좋은 사이가 될 수 있을 거예요."그 순수한 말에 연위성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눈앞의 조카는 또래보다 훨씬 조숙했다.생김새는 여동생을 꼭 닮았지만, 차분한 성격만큼은 육남혁을 빼닮아 있었다.가끔은 어른도 말문이 막힐 만큼 뼈 있는 말을 툭 던지기도 했다."다 됐어요."연우진은 연고를 내려놓으며 다시 한번 신신당부했다."작은어머니가 그러셨는데, 연고가 다 흡수될 때까지는 조금 기다렸다가 주무셔야 한대요."연위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연우진은 연고를 한쪽에 치워 두고 손을 씻으러 다녀온 뒤, 연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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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2화

추석 당일. 하정현 부부를 비롯해 도정숙과 유주만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온 가족이 함께 주방을 오가며 명절 음식 준비에 한창이었다.하이석과 온유란 역시 어른들 앞에서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자연스럽게 행동했다.그러다 현정민이 두 사람의 아버지와 아들을 향해 말했다."여보, 하이석이랑 둘이 게 좀 손질해 줘요."부자가 나란히 싱크대 앞에 선 순간이었다.하정현은 그제야 아들의 상태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눈치챘다."하이석, 괜찮냐?""네, 괜찮습니다.""...지금 뭐 하는 거야?""게 씻고 있는데요."하정현은 잠시 아들의 손을 바라보다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난 또 게를 죽이려는 줄 알았네."하이석은 집게를 휘두르는 게를 물끄러미 바라봤다."집게를 저렇게 휘두르는데.""보기만 해도 얄밉지 않습니까?"하정현은 말문이 막혔다. 게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잠시 뒤 하이석은 문득 아버지를 바라보더니 무심하게 한마디 던졌다."오늘 입으신 옷... 별로네요."하정현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자신의 옷을 내려다보며 황당한 얼굴로 말했다."이거 네 아내가 만들어 준 옷이야."하이석도 순간 멈칫했다."...제가 잘못 봤네요."하정현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만 나왔다.이게 대체 무슨 소리람.아내가 일부러 게 손질을 함께 시킨 것도 부자끼리 이야기 좀 나누라는 뜻이었는데 지금 분위기로는 친해지기는커녕 속만 뒤집힐 판이었다.결국 하정현은 장갑을 벗어 던졌다."안 해. 내 옷이 못생겼다고?"온유란이 직접 디자인해서 만들어 준 옷을 입고 낚시만 나가도 부러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데.이 녀석이 감히 그 옷을 못생겼다고 해?하정현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그 자리에 온유란이 조용히 앉았다.그녀는 게를 손질하는 하이석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물었다."무슨 일 때문에 그렇게 속상한 거예요?""아무 일도 없어요.""제가 분명 말했잖아요. 연위성과는 이미 다 끝난 사이라고.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했든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요."온유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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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3화

하이석은 담담하게 대답했다."회사 일은 알아서 하고 있습니다."하정현은 슬그머니 아들 곁으로 다가갔다."그래도 아버지한테는 말해 봐. 무슨 생각인지 들어나 보자."하이석이 피식 웃었다."며느리가 시아버지한테 하소연하는 건 많이 봤어도. 시아버지가 며느리한테 아들 흉보는 건 처음 봅니다."순간 하정현의 얼굴이 붉어졌다."아버지, 나이도 오십, 육십 다 되신 분이 참... 대단하십니다."하정현은 민망해서 괜히 헛기침만 했다.*한편, 온유란은 현정민과 함께 월병을 빚고 있었다.그때 휴대전화가 진동했다.처음 보는 번호였다.평소 인터넷으로 의뢰받은 디자인 일을 하다 보니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오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별생각 없이 전화를 받았지만,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뜻밖에도 온창섭이었다."유란아... 내 목소리 듣기 싫은 거 안다. 하지만 끊지 말아 다오. 부탁이다."명절이 되자 홀로 남겨진 온창섭은 더욱 가족이 그리워졌다.온유란의 목소리는 담담했다."무슨 일이세요?"온창섭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나 지금 하씨 저택 대문 앞에 있다."온유란의 표정이 굳어졌다."뭐라고요?""걱정하지 마. 방해하려는 건 아니야. 네가 어릴 때부터 커스터드 월병을 제일 좋아했잖니. 그거 조금 사 왔다. 네 얼굴은 안 봐도 괜찮아. 대신 월병은 하씨 가문 사람들에게 맡기고 갈게."목이 메인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흘러나왔다."유란아, 추석 잘 보내."온유란은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었다.가장 아버지가 필요했던 시절에는 곁에 없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그의 부성애를 바라지 않았다.*저녁 식사를 마친 뒤 가족들은 거실에 둘러앉아 추석 특집 방송을 보며 달을 감상했다.온유란은 내내 도정숙 곁을 지켰다.도정숙은 추석이 지나면 다시 시골로 내려갈 예정이었다. 평생 살아온 곳이라 도시 생활이 아무래도 불편했던 것이다.그날 밤 온유란은 도정숙과 같은 방에서 잠을 잤다.덕분에 하이석은 오랜만에 혼자 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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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4화

경찰차가 하씨 저택 앞에 멈춰 섰다. 경찰은 곧바로 하이석을 데리고 갔고, 그 소식은 순식간에 경성 상류층을 뒤흔들었다.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신고자는 육지성과 함께 경찰서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그 사실은 사람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두 집안이 얼마나 가까운 사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정작 육지성도 영문을 알지 못했다.추석 다음 날이면 연위성을 다시 아파트까지 데려다줘야 했기에 그가 직접 차를 몰았다.당연히 육씨 가문의 차였다.그런데 연위성이 갑자기 경찰서에 들르겠다고 한 것이다.그는 신분이 특수한 사람이라 경찰도 지난 몇 년간의 행적과 경력을 계속 확인하고 있었고, 평소에도 경찰과 접촉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육지성도 알 수 없었기에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았다.그런데 하이석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신고하러 갈 줄이야.더 황당한 건 육강민이 이 일을 자신에게 단 한마디도 귀띔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한 시간쯤 지나 하이석이 경찰서에 도착했고 온유란과 하정현 부부도 곧바로 뒤따라왔다.하지만 하이석은 도착하자마자 곧장 따로 불려가 조사를 받았고, 뒤늦게 도착한 하씨 가문 측 변호사는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변호사가 상황을 알아본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상대는 주먹 한 대 맞은 정도라 상해가 심한 편은 아닙니다. 이 정도면 합의금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상대가 끝까지 처벌을 원하면..."그는 말을 흐렸다."하이석 대표님도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그 말의 뜻은 분명했다. 최악의 경우 며칠간 구류될 수도 있었다.현정민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유란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며칠 전 육씨 가문에 갔을 때 정말 하이석이 사람을 때린 거야?"온유란은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머릿속이 새하얘졌다.연위성,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얼마 지나지 않아 육강민과 육남혁, 그리고 허경빈도 경찰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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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5화

"하이석!"육강민이 다급히 그의 팔을 붙잡았다."놔."하이석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하이석, 정신 차려. 여기가 어디인지 몰라? 경찰서야."연위성은 맞은편에 앉은 채 끝내 옅은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놔."하이석은 이를 악물었다."당장.""안 돼."육강민도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곁에서 지켜보던 허경빈은 당황한 얼굴이었다. 설마 하이석이 육강민과까지 몸싸움을 벌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육남혁 역시 사태가 더 커질까 봐 두 사람을 말리려 뛰어들었지만, 자칫하면 하이석의 주먹에 맞을 뻔했다.밖에서 소란을 들은 경찰들이 황급히 달려와서야 겨우 상황이 진정됐다.덕분에 경찰서 안 사람들까지 하나둘 몰려와 구경하는 소동이 벌어졌다.연위성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결국 육씨 형제들은 당신 편이군요."하이석은 말없이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그러고는 낮게 웃었다."그럴 만도 하죠. 당신들은 가족이고 전...”잠시 말을 멈춘 그가 씁쓸하게 웃었다."결국 남이니까요."그 말에 허경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하이석! 그 말은 너무 심하잖아."하지만 하이석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난 절대 사과 안 해. 이 사람이 끝까지 가겠다면 나도 끝까지 상대해 줄 거야."육강민이 헛웃음을 흘렸다."그래. 잘났어. 우리가 괜히 왔네. 좋은 마음으로 왔는데 원망만 듣네. 마음대로 해."그는 그대로 몸을 돌려 조정실을 나갔다.하이석 역시 얼굴을 굳힌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남겨진 경찰들은 서로 얼굴만 바라봤다. 이 정도까지 일이 커질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경찰서는 원래도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하이석이 육씨 형제들과 언성을 높이고 몸싸움 직전까지 갔다는 소식은 금세 경성 상류층 전체로 퍼져 나갔다.사람들은 하나같이 같은 말을 했다.결국 그들도 갈라섰구나. 친형제도 다투는데, 하물며 그들이야.회성에 있던 방주헌도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작 며칠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 이게 무슨 난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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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6화

반 시간쯤 뒤, 온유란은 담당 경찰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연위성이 경찰서 근처의 한 카페에서 만나겠다고 했다는 답이었다.육지성은 차 안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들리지 않았다.하지만 그날 저녁, 하이석은 경찰서에서 풀려났고 온유란은 직접 차를 몰고 그를 데리러 갔다."배고프지 않아요?"하이석은 옅게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아버님이랑 어머님께서 집에서 저녁을 준비해 두셨어요. 가기 싫으면 밖에서 먹어도 되고요.""집으로 가요."하이석은 몹시 지쳐 보였다.차에 오르자마자 휴대전화를 켜더니 회사와 관련된 전화 몇 통을 연달아 받았다.통화를 마친 그는 지끈거리는 듯 미간을 꾹 눌렀다.온유란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집에 돌아온 하이석은 밥을 몇 숟갈 뜨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곧장 방으로 올라갔다.온유란도 한참 뒤 방에 들어갔다.이미 잠든 줄 알고 조용히 씻은 뒤 살며시 침대에 누웠다.그 순간, 하이석이 아무 말 없이 몸을 반대편으로 조금 옮겼다.온유란의 몸이 굳었다. 한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도, 두 사람 사이에는 예전의 따뜻함이 남아 있지 않았다.그날 밤, 둘 다 한숨도 이루지 못했다.*새벽 세 시가 넘도록 뒤척이던 온유란은 끝내 잠을 포기하고 작업실로 향했다.헤이엘에서도, 하씨 본가에서도 하이석은 그녀만을 위한 작업실을 마련해 두었다.재단 도구는 물론 필요한 장비가 빠짐없이 갖춰져 있었고, 한쪽에는 아직 웨딩드레스도 걸려 있었다.곧 다가올 결혼식을 바라보자 마음이 더욱 복잡해졌다.*다음 날 아침.하씨 저택에 손님이 찾아왔다. 방주헌이었다.온유란은 그의 방문이 반가웠다.워낙 성격이 좋아 하이석과 육씨 형제들 사이를 조금이나마 풀어 줄 수 있을 거라 기대했기 때문이다.두 사람은 문을 닫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온유란은 차만 가져다준 뒤 다시 작업실로 들어가 재봉틀을 밟았지만 마음이 영 딴 데 가 있었다.방주헌이라면 분위기를 풀어 줄 줄 알았다.하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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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7화

"그럭저럭요."서은주는 직원을 불러 음식을 주문한 뒤 온유란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형수님, 안색이 너무 안 좋아요. 요즘 하이석 씨는 좀 어떠세요?"온유란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오늘 그녀가 서은주를 찾아온 것도 하이석과 육씨 형제들의 관계를 조금이나마 풀어 보고 싶어서였다.서은주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사실 엄청난 갈등이 있는 건 아니에요. 다들 자존심이 너무 세서 누구 하나 먼저 손을 내밀지 못하는 것뿐이죠."그녀는 온유란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형수님은 하이석 씨를 잘 설득해 보세요. 저도 오빠들한테 이야기해 볼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그 말에 온유란은 비로소 조금 안심이 됐다.서은주는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곧 신부가 될 사람이 그렇게 풀이 죽어 있으면 안 되죠. 밥 먹고 쇼핑이나 할까요?"온유란이 웃으며 물었다."시간 괜찮아요?”“제가 공부만 하는 사람도 아니잖아요."서은주도 따라 웃었다."민찬이랑 수린이도 한창 클 때라 날도 점점 추워지고, 가을옷도 새로 사줘야 하거든요."*서은주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온유란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그녀는 하이석에게 줄 가을용과 겨울용 울 니트 두 벌을 샀다. 집에 돌아가면 오늘만큼은 꼭 차분히 이야기를 나눠 보기로 마음먹었다.그 시각 하이석은 회사 사람들과 회의를 하고 있었다.하씨 가문의 친척들은 이번 폭행 사건을 빌미 삼아 하이석에게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압박을 넣고 있었다.회의가 끝난 뒤, 온유란은 차를 들고 서재 문을 두드렸다."하이석 씨, 차 한잔 마셔요."하이석은 말없이 찻잔만 들어 올렸다.온유란이 막 새로 산 니트를 꺼내려던 순간, 하이석은 책상 위에 놓인 밀봉 봉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열어 봐요."온유란은 의아한 표정으로 봉투를 뜯었다.안에는 그녀와 연위성이 만나는 모습이 찍힌 사진들이 들어 있었다.촬영 각도 때문인지 두 사람이 꽤 가까운 사이처럼 보였다.하이석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연위성은 경찰서에서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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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8화

그날 밤, 온유란은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도정숙은 말없이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유란아, 부부 사이에는 못 할 말이 없는 거야. 속에만 담아두지 말고, 무슨 일이든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해."온유란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아요."도정숙은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레 물었다."연위성 그 아이는..."온유란은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저희는 오래전에 끝났어요."그녀는 미련을 못 버리는 사람이 아니었다.그저 억울했을 뿐이다.하이석이 자신이 연위성을 만나러 간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이해할 수 있었다.그가 얼마나 자존심이 강한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하지만 그녀는 달리 어떻게 해야 했을까?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남편이 구류되는 걸 지켜보기만 했어야 했을까?온유란은 새벽 세 시가 훌쩍 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잠도 얕았다. 아침 일곱 시가 조금 지나 눈을 뜬 그녀는 거실로 내려갔다.하정현은 식탁에 엎드려 사전을 펼쳐 놓은 채 종이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그 옆에는 하이석이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마주쳤다. 하지만 하이석은 먼저 눈을 돌려 버렸다.그녀를 더는 보고 싶지 않다는 듯했다.온유란이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어머님은요?"하정현이 손을 휘휘 저었다."도정숙 아주머니랑 산책 나갔어."그러더니 기다렸다는 듯 종이를 내밀었다."유란아, 이것 좀 봐라. 내가 지어 본 이름들인데 어떤 것 같냐?"종이에는 손주 이름 후보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온유란은 피식 웃었다."다 예쁜 이름이네요."하정현은 흐뭇하게 웃었다."그치? 나도 아주 잘 지었다고 생각했어."그 순간, 하이석이 툭 한마디 던졌다."그게 좋은 이름이라고요? 안목 한번..."온유란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 담담하게 받아쳤다."맞아요. 제 안목은 별로예요. 그러니까 당신을 골랐겠죠."하정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두 사람이 냉전 중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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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9화

"커피 부탁드릴게요."하채린은 작업실에 들어서자마자 걸려 있는 웨딩드레스에 시선을 빼앗겼다.온유란은 커피를 건네며 자연스럽게 물었다."복지원에서 오는 길이라면서요?"하채린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고개를 끄덕였다."오빠가 예전에 사고를 한 번 당했거든요. 그 일 이후로 다리도 많이 다쳤고... 그때부터 복지원을 꾸준히 후원하면서 봉사도 하고 있어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돕고 싶다면서 말이에요."온유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새언니, 웨딩드레스 정말 예뻐요."온유란은 옅게 웃기만 했다."계속 일하세요. 전 신경 쓰지 마시고요."하채린이 웃으며 한쪽에 자리를 잡자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하지만 이야기를 나눌수록 온유란은 하채린이 계속 하이석에 관한 이야기만 은근히 떠본다는 걸 느꼈다. 그러다 하채린이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다."사촌 오빠가 육씨 가문 사람들이랑 완전히 틀어졌다는 말이 있던데 정말이에요?"온유란은 속으로 흠칫했지만 얼굴에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하채린은 빙긋 웃었다."새언니가 모를 리가요. 아까 뒤뜰로 들어올 때 도우미들이 그러던데요. 새언니랑 사촌 오빠가 싸웠다고요.""그런 일 없어요."온유란이 짧게 대답하자 하채린은 더 묻지 않았다.잠시 뒤,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하채린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사촌 오빠가 오셨나 봐요."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들고 있던 커피잔이 기울며 커피가 쏟아졌다.그러자 몇 방울이 그대로 웨딩드레스 치맛자락에 튀었다.온유란이 얼굴을 굳히자 하채린은 다급히 사과했다."새언니, 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제가 바로 닦을게요."그녀는 급히 무릎을 꿇고 얼룩을 문질렀다. 하지만 커피는 이미 천 안쪽까지 스며든 뒤였다. 닦으면 닦을수록 얼룩은 지워지기는커녕 점점 더 번져 갔다.온유란이 황급히 다가갔다."제가 할게요. 더 만지지 마세요.""아니에요. 제 잘못이니까 제가..."하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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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0화

온유란은 하이석의 말을 듣는 순간, 그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목 안이 바싹 마르고 따끔거렸다. 겨우 몸을 돌려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어느새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지금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초라할지는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하지만 더는 아무렇지 않은 척 품위를 지킬 힘도, 애써 감정을 숨길 여유도 남아 있지 않았다."새언니."바닥에서 일어난 하채린이 다급히 그녀를 붙잡았다."화내지 마세요. 오빠도 홧김에 한 말이에요. 두 분 이제 곧 결혼식도 올리잖아요. 이런 일로 싸우실 필요는 없잖아요."온유란은 씁쓸하게 웃었다."결혼식?"자조가 묻어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이런 상태에서 결혼식을 치러서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그녀는 작업대 위에 놓인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작업실을 나섰다.하이석과 스쳐 지나가는 순간, 낮게 한마디만 남겼다."오늘 도정숙 아주머니를 모셔다드릴게요."돌려 말했지만 하이석은 그 의미를 알아들었다. 그녀 역시 함께 떠나겠다는 뜻이었다.손가락이 움찔 움직였다. 붙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끝내 그녀의 옷자락조차 닿지 못했다."오빠, 뭐 하고 있어요? 얼른 쫓아가요!"하채린이 다급히 재촉했다. 하지만 하이석은 차갑게 말했다."여자 하나 때문에 그럴 필요 없어. 결국 돌아올 거야.""안 돌아오면요? 결혼식은 어떻게 하려고요?"하채린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다급했다."그럼 안 하면 되지."그 말을 끝으로 하이석은 그대로 등을 돌려 걸어 나갔다.그 역시 감정에 휩쓸린 채 오기를 부리고 있었다.두 사람 모두를 말릴 수 없다는 걸 깨달은 하채린은 결국 앞채로 달려가 하정현 부부를 붙잡고는 눈물을 쏟아냈다."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웨딩드레스를 더럽히지만 않았어도… 두 분이 저 때문에 이혼이라도 하게 되면, 차라리 제가 죽는 게 나아요…"현정민은 연신 흐느끼는 하채린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내가 가서 한번 이야기해 볼게."그때 하이준이 입을 열었다.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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