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당연히 가야죠. 지헌아, 할아버지가 요즘 몸이 안 좋으시다던데 어떻게 된 거야?"권지헌이 차분하게 말했다."제가 화나게 해서요."주영훈이 탄식하며 몸을 뒤로 젖혔다가 연륜이 느껴지는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권지헌을 한참 바라봤다.이내 다시 자리를 고쳐 앉고 돋보기를 쓰며 모니터 속 머리 아픈 대학원생 논문들로 눈길을 돌렸다."네 할아버지가 나한테 와서 좀 봐달라고 연락이 왔는데 내가 바빠서 양은석 원장이 다녀왔어. 그냥 감기래.""그 양반도 참, 양 원장은 심장외과고 나는 소아과인데 감기를 어떻게 보란 거야."권호성이 전화로 했던 말을 떠올리던 주영훈이 눈을 흘겼다.권지헌 와이프가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어이구. 염치도 좋아.' 권지헌이 이렇게 잘돼서 권씨 집안의 아직 희망이 있으니 망정이지. 집안에 있는 나머지 사고뭉치들 같았으면 권호성이 팔팔하게 버틸 수나 있었을까?주영훈은 수많은 사람들을 봐왔었고 권호성이 점찍어 두었던 송원영도 본 적 있었다.이 동네 아이들치고 어릴 때 주영훈한테서 진료 받지 않은 아이가 없었다. 송원영은 순하고 얌전했는데 성깔이라고는 없는 인형 같아서 권지헌이 좋아할 스타일이 아니었다.허설아는 딱 봐도 자기 주관이 있는 사람이었다.기품 있는 분위기에 얼굴도 예쁘장한데 눈빛엔 고집과 야망도 있었다. 무엇보다 권지헌을 휘어잡을 수 있었다. 이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주영훈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할아버지가 또 찾거든 그냥 무시해. 아, 설아 씨 노트 다 읽었는데. 새로 쓰는 논문 감사의 말 부분에 설아 씨 이름 적을 생각이에요." 주영훈 수준의 논문이라면 수상은 당연한 일이었다.원장님이 직접 쓰는 논문 감사의 말이 이름을 올린다니 허설아는 왠지 과분하게 느껴졌다. "노트 몇 권 드린 것뿐인데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돼요.""겨우 감사의 말인데요 뭐, 제1저자를 주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사양해요!"주영훈의 말에 오히려 거절하기 쑥쓰러워져서 웃으며 받아들였다.두 사람은 주영훈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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