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내 아이를 모르는 그가 내 상사라니!: Chapter 31 - Chapter 40

151 Chapters

제31화

권지헌의 지시였다는 걸까?그렇다면 의도는 뭐지?휴대폰을 들고 한참 망설이던 허설아는 결국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스스로 굴욕을 자초하고 싶지 않았다.어차피 권지헌이든 강지연이든 허설아는 철저히 공과 사를 구별할 생각이었다.실수하지 않되, 이상 엮이고 싶지도 않았다.강지연은 오후 내내 화장하지 않으면 게임만 했다.허설아가 몇 가지 업무를 지시했지만 강지연은 입으로만 대답할 뿐 하나도 하지 않았다.안초희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저 여자는 일할 사람 같지 않아."허설아는 깊게 심호흡하며 캡처를 해서 조민규에게 전송했다.그리고 퇴근 카드를 찍고 바로 퇴근했다. 허설아가 업무를 지시했지만 하지 않는 건 강지연의 일이었다.강지연이 일을 안 한다고 허설아가 대신 처리해 줄 의무는 없었다.강지연은 오후 내내 강시우에게 불평만 늘어놓았다."왜 나를 다른 데로 보낸 거야? 난 비서팀에만 있고 싶단 말야!""지헌이도 회사를 생각해서 그런 거야. 너도 지헌이를 좋아한다면 회사 업무를 좀 더 알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강시우는 용돈까지 보내주며 한참을 달래서야 겨우 강지연의 기분을 풀어줄 수 있었다.고개를 들자 허설아가 보낸 업무 지시가 보였다.강지연은 계속 게임만 하느라 허설아가 지시한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지시하려 들다니.'강지연이 여기 온 건 처음부터 권지헌 때문이었다.강지연은 허설아를 볼 때마다 학교 다닐 때 허설아와 권지헌이 함께 다니던 모습이 떠올랐다.허설아는 엄청 달라붙는 성격이었다.길을 걸을 때도 자연스레 권지헌의 어깨에 기대곤 했는데 샴 쌍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권지헌도 거부하지 않았다.두 사람 뒤에서 걸어가던 강지연은 허설아가 찰싹 붙자 권지헌이 손을 뻗어 허설아가 들고 있던 가방을 받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자연스럽게 허리를 감싸는 모습이 보였다. 앞에 물웅덩이가 보이자 권지헌은 팔에 힘을 주며 아이를 안듯 허설아를 안고 건너갔다.강지연이 미간을 찌푸렸다.'허설아는 혼자
Read more

제32화

허설아는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진짜 대표님 여자라고 해도 지금 당장은 우리 부서 인턴이니까 규정대로 하면 돼. 대표님이 봐주신다고 하면 우리도 어쩔 수 없는 거고."한없이 차분한 목소리였다.일말의 흔들림도 없이 평소처럼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었다.안초희도 공감하며 말했다."맞아. 돈 많은 사람들은 주변에 여자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 오늘 점심에도 기획부 안 상무가 대표님 사무실로 가는 거 봤어. 안 상무랑 대표님 대학 동기래."김아림은 목에 걸친 안마기 강도를 높이며 비웃듯 말했다."안유민 말하는 거야? 어쩐지~ 며칠 전에 왜 갑자기 헤어졌나 했더니 타겟을 바꾼 거였네."안초희는 혀를 끌끌 차더니 장난스럽게 허설아의 가느다란 허리에 손을 대보며 감탄했다. 다들 비슷한 음식을 먹는데... 아니, 심지어 허설아보다 덜 먹는데도 왜 허설아만 허리가 이렇게 가는지 신기했다.출산 후 배에 남은 군살을 내려다보던 안초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설아 씨는 어떻게 허리가 이렇게 가늘어? 게다가 가슴도 크고. 내가 남편이면 매일 밤 하고 싶을 것 같아."김아림이 거들었다."자기 차례는 멀었어! 나도 설아 씨 같은 사람 좋아해!"사무실 기혼 여직원들이 깔깔 웃었다.안초희는 웃다가 눈물까지 났다.허설아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화면을 보며 마음속으로 존재도 하지 않는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남자들은 스물다섯만 넘으면 쉰둘이야. 하고 싶어 봤자 뭐 하겠어."이렇게까지 과장된 건 아니지만 권율 그룹 여직원들의 배우자 대부분도 대기업에서 일하느라 바빴기에 부부관계 빈도가 그렇게 높지 못했다.하지만 남편이 안 된다는 허설아의 말에 몇몇 여직원들이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허설아 귀에 갑자기 정색하며 말하는 김아림의 목소리가 들렸다."대표님, 안녕하세요."방금까지 활기찼던 사무실 분위기가 얼어붙었다.권지헌은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띤 채 허설아를 보며 물었다."밑에 인턴은 어디 갔어?"허설아는 바로 알아챘다.차를 얻어 탄 그
Read more

제33화

회식 때 강지연이 권지헌 옆에 붙어있는 걸 보고 다른 마음을 먹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제는 다들 조용해졌다.허설아는 자리에 앉아 모니터 속 표를 보고 있었지만 몇 분째 스크롤을 내리지 않았다.확실히 허설아는 권지헌을 잘 알고 있었다.눈빛 하나, 행동 하나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정도였다. 아까 강지연 얘기를 꺼냈을 때 화가 났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예전에 허설아는 권지헌이 화내는 게 무서웠다.평소에도 말이 없는 편인데 화가 나면 더더욱 대꾸하지 않고 온몸에서 저기압이 느껴졌다.학교 다닐 때, 허설아가 권지헌이 농구하는 사진을 SNS에 올린 탓에 학교 대나무숲에까지 퍼져서 다른 학교 사람들도 권지헌을 알아보고 다닌 적 있었다. 허설아가 바로 삭제했지만 여전히 권지헌에게 많은 불편을 끼쳤었다.그땐 권지헌이 농구하고 밥 먹고 수업 들을 때에도 사람들이 몰려와 구경하곤 했다.허설아도 난처해졌다.권지헌이 자기 사진이 퍼지는 걸 싫어하는 것도, 귀찮은 건 딱 질색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의 방해를 받으니 말할 것도 없었다.그때 권지헌은 아까와 같은 눈빛으로 허설아를 쳐다보곤 했다.마치 허설아가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게 했다. 그러다 어떻게 된 건지 며칠 뒤부터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았고 권지헌의 일상도 다시 평온해졌다.하지만 여전히 허설아한테는 말을 걸지 않았다.농구를 마치면 권지헌은 허설아가 들고 있던 물을 가져가서 고개를 젖히고 벌컥벌컥 마셨다. 물이 목을 타고 흘러내렸고 온몸에서 폭발적인 남성 호르몬이 느껴졌다.허설아는 권지헌의 새끼손가락을 살짝 잡아당겼다.권지헌이 힐끗 쳐다보자 허설아가 애원하며 말했다. "지헌아, 내가 잘못했어. 나한테 화내지 마."나긋나긋하면서도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였다. 일주일 동안 허설아를 무시했던 권지헌도 마음이 약해져 있었다.매번 싸우고 나면 권지헌은 마음이 약해졌는데 이번이 가장 오래 무시했던 때였다.하지만 매번 똑같았다.항상 허설아가
Read more

제34화

지난번과는 달랐다.지난번 창고에 갇힌 뒤로 허설아는 이 증상을 고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매일 일부러 몇 분씩 스스로를 가두고 더이상 견디기 힘들 때 허민정에게 문을 열어 달라고 했다.폐쇄된 공간에서 혼자 겨우 30초 정도는 버틸 수 있었지만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진 편이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권지헌과 같은 엘리베이터에 탄 탓에 원래부터 마음을 졸이며 긴장하고 있었다.엘리베이터 안은 창고보다 공간이 더 좁고 폐쇄적이었다. 허설아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이 권지헌의 양복에 묻었다.권지헌이 나지막하게 말했다."두려워하지 마. 구조 요청했으니 구조대가 곧 올 거야.""허설아, 대답 좀 해! 괜찮아?"허설아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입을 벌려도 신선한 공기가 많이 들어오지는 않았다.손발이 저릿해져 갔지만 이성은 남아 있었다.권지헌이 얼굴을 감싸며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추려 하자 허설아는 고개를 돌렸다. 인공호흡을 하려던 입술이 뺨에 닿고 말았다. 허설아는 얼굴을 돌린 채 거부하듯 말했다."대표님, 이러지 마세요. 전 괜찮아요. 대표님이 이러시면 남편이 오해할 거예요."허설아는 억울했다."대표님, 전 정말 남편을 사랑해요. 제 결혼 생활을 망치지 말아 주세요, 제발요."숨 막힘 때문인지 공포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허설아의 눈물이 권지헌의 손가락에 떨어졌다. 뜨거운 눈물이 실이 끊긴 구슬처럼 끊임없이 흘러내렸다.예쁘장한 눈시울이 빨갛게 부어오른 채 고집스럽고도 서러운 눈빛으로 권지헌을 바라보았다. 마치 괴롭힘을 당한 뒤 이슬을 머금은 봉오리 같았다.예전에 비해 허설아는 천진난만함은 덜했지만 성숙미가 느껴졌다. 바로 그 분위기가 권지헌을 달아오르게 했다.권지헌은 비웃듯 웃으며 눈을 감았다."허설아, 네가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아? 지난번에 네가 매달려서 구해달라고 하지 않았으면 내가 신경이나 썼을 것 같아?""엘리베이터에서 사고 나면 산재야. 나도 회사가 손해 보는 거 싫거든, 알겠어?"칠흑같이 어두운 공간에서 허설
Read more

제35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허설아는 바로 밖으로 뛰쳐나갔다.마치 뒤에서 맹수가 쫓아오는 것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권지헌은 그 자리에 서서 구조대와 얘기를 나누고 급히 올라온 빌딩 관리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시에 허설아가 길가에 세워진 차에 타는 걸 지켜보다가 시선을 거뒀다.난데없는 사고에 빌딩 관리자는 겁에 질려 당장이라도 권지헌에게 무릎 꿇고 사과할 기세였다. "저희 엘리베이터는 매일 점검을 해서 이럴 리가 없는데 말입니다. 대표님, 걱정 마세요. 꼭 꼼꼼하게 조사하겠습니다.""네, 서두르세요."낙하산으로 온 대표가 소문만큼 괴팍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한참 설명하던 관리자가 권지헌의 입을 보더니 물었다."대표님, 혹시... 엘리베이터 문에 끼이신 건가요?"권지헌이 입술을 만지작거렸다.아마 허설아의 립스틱 자국일 것이다."괜찮아요.""아, 그럼 다행이네요."권지헌 마음속에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허설아는 기혼에 아이도 있고, 권지헌과의 관계도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과거가 되어버렸다.하지만 권지헌은 참을 수 없었다.왜?분명 허설아가 먼저 건드려놓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권지헌만 쏙 빼놓고 떠나려 하다니.그렇게 제 맘대로인 좋은 일이 어디 있어.-주말이 되자 허설아는 연희를 데리고 외출했다.허민정은 쇼핑몰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따라가지 않고 옛 친구와 약속을 잡고 근처 공원에 산책하러 갔다. 쇼핑몰 안에서 강시우가 멀리서 허설아에게 손을 흔들었다."설아야! 여기야!"가까이 다가가자 허설아가 연희에게 말했다."시우 아저씨라고 불러."두 살인 연희는 아직 어눌하고 앳된 발음이었다."시우 아저씨, 안녕하세요."강시우도 연희를 처음 보는 것이었다. 순간 심장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 커다란 눈, 동그란 얼굴에 빨간 입술은 마치 인형처럼 예뻤고 양 갈래로 묶은 머리에는 레이스 리본을 하고 있었다.연희를 보지 않았다면 아이가 있다는 허설아의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
Read more

제36화

권지헌이 물음표만 적힌 답장을 보냈다."박희수 이모가 우리 둘 의심하잖아. 여자 친구 있다고 했더니 설아가 도와주기로 했어.""이 사진 희수 이모한테 보내도 괜찮을까?"설명을 마친 뒤에야 강시우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연희가 너무 귀여웠던 탓인지 평소 바람둥이를 자처하던 강시우도 아내와 아이가 있는 따뜻한 가정에 대한 동경심이 생긴 것이다.권지헌이 답장을 보냈다."안 돼.""우리 엄마라면 아이 데리고 있는 여자는 분명 의심할 거야."강시우 부모도 절대 아이 딸린 여자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아이를 보면 누가 봐도 강시우가 대충 둘러대려는 걸 알아챌 것이다.강시우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권지헌이 갑자기 허설아가 다른 남자와 낳은 아이를 보고 기분이 언짢아진 줄 알았다.지금 보니 역시 권지헌답게 냉정하고 객관적이었다. 강시우는 손잡은 것처럼 찍힌 사진을 보냈다. 허설아가 옆에서 걷고 있고 강시우가 뒤에서 허리를 감싼 채 거울을 보며 찍은 사진이었다.강시우의 손은 허설아 허리에 닿지 않았고 허설아의 얼굴도 나오지 않았다.하지만 사진으로 보면 한없이 다정하고 애틋해 보였다. 마치 열애 중이지만 공개하기 부끄러워하는 커플 같았다.이 사진은 어디 하나 문제가 없었기에 박희수에게 보내도 괜찮을 것 같았다.허설아와 강시우는 예전부터 쭉 친구 사이였다.대학 때도 허설아는 강시우와 자주 게임을 했다.허설아네 집에서 개인 미술 전시회를 열어줬을 때, 권지헌을 초대했지만 권지헌은 아르바이트가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대신에 강시우는 전시회에 갔었다.기숙사에 돌아온 강시우는 허설아가 그린 그림들이 전부 예술 작품이라고 했다!다른 사람들은 강시우가 오버한다고 생각하며 권지헌을 쳐다봤다."지헌아, 그 그림들 다른 사람한테 돈 주고 그리게 한 거 아냐? 개인전까지 열다니 정말 사치스러워. 그 돈 있으면 우리 기숙사 사람들 밥이나 사지."권지헌은 강시우가 찍은 사진을 보지 않았다.하지만 허설아가 그림 그리는 모습은 본 적이 있었다
Read more

제37화

도윤정이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물었다."지연이가 지헌이한테 폐 끼치는 건 아니지?"강지연 얘기가 나오자 박희수는 껄끄러워졌다.아들이 대놓고 강지연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박희수가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함부로 뭘 약속할 수는 없었다.박희수 마음속에는 아들이 최우선이었다. 남편도 그 뒤로 밀려날 정도였다. 박희수는 찻잔을 들며 얼버무렸다.권지헌이 강지연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했으니 당연히 아들 뜻을 따라야 했다.다른 건 다 뒷전이었다."아니야. 애들 업무에 관해선 나도 안 물어봤어.""그럼 둘이 혹시 발전할 가능성은 없을까?"도윤정이 기대에 찬 얼굴로 박희수를 바라봤다.박희수는 열정적이었지만 강지연과 권지헌 얘기는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무슨 가능성? 맞다, 윤정아, 내 조카가 있는데 올해 스물여섯이고 괜찮아. 다음에 너희 지연이한테 소개해 줄게. 젊은 사람끼리 알아가면서 친구 사귀는 건 나쁠 거 없잖아."도윤정은 멍해졌다.'박희수 무슨 뜻이야?''지연이가 권지헌을 좋아하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그런데 지금 지연이한테 다른 사람을 소개 시켜준다고?'도윤정이 확실하게 물어보려는데 박희수는 더 얘기할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 휴대폰을 들고 즐겁게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권씨 집안의 지위를 봐서라도 박희수 앞에서 막무가내로 굴 수는 없었다.도윤정은 속으로 화가 났지만 얼굴에는 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마음속에 피가 뚝뚝 흐르는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말했다."알았어. 언니 말대로 할게."도윤정이 수긍에 박희수도 기분이 나아졌다.도윤정이 계속 따졌으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말 몰랐다.따지고 보면 다 권지헌 때문이었다.바로 그때 권지헌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학창 시절 사진이었는데 파란 셔츠에 흰 긴바지를 입고 있는 권지헌은 품에 잘록한 허리에 다리가 늘씬한 여자를 안고 있었다. 긴 머리의 여자는 고개를 들고 권지헌과 얘기하고 있어서 얼굴이 가려졌지만 작은 보조개가 보였다.권지헌의 얼굴은 아주 선
Read more

제38화

엘리베이터는 금방 5층에 도착했다.아이를 데리고 내리던 허설아는 여전히 권지헌을 발견하지 못했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반투명한 전망 엘리베이터라 절반은 밖을 볼 수 있었다. 유리 너머로 권지헌은 연민규가 조심스럽게 연희를 안고 허설아의 손을 잡아당기는 걸 볼 수 있었다.허설아가 손을 뻗어 남자의 팔짱을 끼는 것 같았다.세 사람이 내리고 엘리베이터 안에 남은 배달원이 내리지 않는 권지헌을 보며 귀띔했다. "형님, 안 내리세요?"정신을 차린 권지헌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내려요, 고마워요."도윤정을 보낸 박희수는 권지헌이 오는 걸 보고 깜짝 놀라며 기뻐했다."어머, 어떻게 왔어?""계산해 드리러 왔어요. 싫어요?""당연히 좋지! 아까 네가 보낸 사진 삭제 안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박희수는 저장하는 걸 깜빡했다며 속으로 한없이 후회했다.권지헌은 한 손으로 재킷 단추를 풀고 맞은편에 앉았다."다른 사진도 있잖아요?"강시우가 보낸 건 분명 삭제 안 했을 것이다.박희수가 불평했다."그게 같아? 같은 아들도 아니고 여자 친구도 다른 여자애잖아!"안타깝게도 여자는 정말 같은 여자였다. 박희수는 생각만 해도 아쉬웠다."대학교 때 여자 친구야? 네가 그 애 엄청 좋아하는 것 같던데 왜 헤어진 거야?"엄청 좋아했다고?권지헌은 반박하려 입을 열었지만 부정할 만한 말이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하지만 허설아를 좋아한다고 인정하는 것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제가 차였어요."박희수는 더 충격을 받았다.아들을 차버릴 배짱 있는 여자가 있다니?"네가 가난하다고 싫어한 거 아냐? 그러니까 내가 무슨 아르바이트를 하냐고 그랬잖아! 우리 권씨 집안 아들이 가난하다고 차이다니!"이렇게 며느리를 놓쳤다는 게 박희수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아니에요. 저한테 돈 많이 써줬어요."박희수는 말을 바꿨다."역시 네 할아버지 결정이 역시 틀리지 않았어. 봐봐, 이렇게 좋은 여자애를 만났잖아."안타깝게도 그렇게 좋은 여자는 이미 결혼했다.
Read more

제39화

허설아 모녀와 갈라지고 연민규의 아우디가 차량 행렬 속으로 사라졌다. 차량 십여 대 떨어진 곳에서 검은색 BMW가 연민규를 따라갔다.30분 후, 아우디가 다른 쇼핑몰에 멈춰 섰고 고급 브랜드 옷을 입은 여자가 쇼핑몰 안에서 나왔다. 손에 쇼핑백 여러 개를 든 여자가 연민규 차에 올라탔다.차에 오르자마자 두 사람은 다정하게 포옹하고 키스했다. 차가 유유히 떠나갔고 뒤따르던 BMW는 더 이상 따라가지 않았다.차 안에서 늘씬한 손가락이 핸들을 톡톡 두드렸다. 관자놀이에서 강렬하고 짜증 나는 통증이 밀려와 권지헌의 뇌를 뭉개버리는 것처럼 자극했다. '허설아는 알까?'저 남자는 병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집에서 앓고 있는 사람 같지 않았다.비싼 차를 몰고 다른 여자에게 명품을 사주면서 정작 자기 아내와 딸에게는 좀 더 괜찮은 곳에 지내게 할 돈도 내놓지 못한다고?권지헌은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허설아가 키스할 때 보여준 몸의 반응은 부부 관계를 자주 하는 것 같지 않았다.저 남자가 무능한 걸까, 아니면 핑계를 대며 허설아에게만 무능하게 구는 걸까?저런 남자 때문에 허설아가 권지헌을 차버렸다니.아마 남자의 우스운 자존심 때문이었을 것이다.권지헌은 차를 따라가기로 했다. 허설아의 삶을 보고 싶었다.권지헌을 차버리고 도대체 얼마나 좋은 남자를 찾았는지 보고 싶었다. 허설아에게 새로운 삶이 있으니 어찌 보면 방해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축복은 절대 불가능했다.권지헌은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증오와 씁쓸함을 모두 억눌렀다. 담배를 연달아 몇 개비 피워서야 가슴속 답답함이 가까스로 사라졌다.곧이어 권지헌은 시동을 걸고 떠났다.주말 도로에는 차가 많이 붐볐다. 앞에서 몇 건의 교통사고까지 나서 신호등에서 차를 세우고 기다리던 권지헌은 앞쪽 버스에서 어른과 아이 두 사람이 내리는 걸 발견했다. 허설아는 연희를 안은 채 머리를 맞대고 무언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은 차 안의 사람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앞을 지나가던
Read more

제40화

휴대폰 너머에서 30초간 침묵이 흘렀다.권지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반대편에서 서은석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뭐야, 전 여자 친구가 바람피웠어?""아니."권지헌이 무의식적으로 반박했다.권지헌의 소꿉친구인 서은석은 허설아를 알지 못했다. 서은석이 더 신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세상에 너를 차버리고 바람까지 피울 배짱 있는 여자가 어디 있겠어! 그럼 왜 전화한 거야?"권지헌이 질문을 피했다."복수하겠다는 게 단지 네가 좋아해서 그런 거야?""나한테만 해당하는 얘기라면 그래. 너도 알다시피 나는 속이 좁아서 좋아하는 여자와 사귀지 못했으면 모를까 내 여자 친구가 됐는데 감히 바람을 피운다고?"남반구 햇살 좋은 작은 섬에 누워있는 서은석이 웃으며 느긋하게 말했다."꿈도 꾸지 말아야지. 남자의 자존심과 내 감정 때문에라도 그 여자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권지헌이 미간을 찌푸리며 담뱃불을 붙였다.이어 담배를 한 모금 빨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그럼 그 여자가 이미 힘들게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으면 어떻게 할 거야?"서은석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오래 알고 지낸 사이인 두 사람은 어릴 때 관사에서 옷도 나눠 입으며 자란 사이였다. 게다가 공부는 못했지만 유학 가서 심리학과 철학을 공부했던 서은석은 권지헌이 말하는 여자가 십중팔구 권지헌과 관련 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서은석이 휘파람을 불었다."아까 남편이 바람피우고 아이는 아프고 집안은 파산했다고?"권지헌이 응하고 답했다.서은석이 웃으며 말했다."그 여자가 못 사는 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상관없어.""그럼 됐잖아. 혹시 좋아해?"권지헌이 주저 없이 말했다."그럴 리가 없잖아?"권지헌은 절대 허설아를 좋아할 리 없었다.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권지헌이 잠시 멈칫했다."전에는 그 여자의 아이가 내 애인 줄 알았어. 하지만 오해였어."아마 아이 때문에 권지헌이 계속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듯했다. 분명 그럴 것이다.서은석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Read more
PREV
123456
...
16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