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내 아이를 모르는 그가 내 상사라니!: Chapter 41 - Chapter 50

151 Chapters

제41화

하지만 따지고 보면 같이 증명사진 찍고 쇼핑하며 옷 몇 번 산 게 전부였다.산 옷도 권지헌이 좋아할 만한 옷이어서 허설아는 한 번도 밖에 입고 나갈 기회가 없었고 대부분 호텔 침대에서 망가지곤 했다. 권지헌은 허설아가 본질적으로 고집이 세고 성깔 있는 여자라는 걸 무의식적으로 무시했었다. 강시우는 줄곧 허설아를 허 아가씨라고 불렀다.정말 아가씨다운 성격이 있었다.다만 권지헌 앞에서는 전부 숨겼다. 권지헌을 마주할 때는 가시는 숨기고 부드럽고 따뜻한 배만 드러내는 고슴도치 같았다. 날카로운 가시는 다른 사람들에게 향해 있었다. 허설아의 모든 날카로움은 누군가 권지헌을 해치려 할 때 드러나곤 했다. 학교에 권지헌을 탐탁지 않게 여기며 여러 번 비아냥거리던 남학생이 있었다.허설아는 권지헌보다 더 화를 내며 허리에 손을 올리고 달려가서 상대방 얼굴이 빨개지도록 따지곤 했다. 누군가 권지헌을 위해 나서준 게 처음이었다내기 때문에 사귄 건 맞지만 허설아가 주는 온기를 탐닉했다는 건 권지헌도 인정했다.권지헌은 오롯이 자기만 바라보는 허설아의 눈동자에 빠져들었다. 반짝이는 눈동자는 권지헌 때문에, 권지헌을 위해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허설아가 헤어지자마자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은 걸 견딜 수 없었다. 허설아가 자기를 좋아할 때 다른 사람도 좋아하며 결혼할 계획까지 세웠다고 생각하니 권지헌은 입안이 씁쓸해지고 마음속에서 분노가 타올랐다.이성을 태워버릴 것 같았다.피부에서 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담배가 끝까지 타들어 가며 불씨가 권지헌의 손가락을 지지고 있었다.권지헌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담배꽁초를 버렸다.통화를 마치자 생각이 한결 정리된 듯했다.차량 흐름이 뚫리자 권지헌은 차를 몰고 그곳을 떠났다.-주말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평일이 되자 사무실 곳곳에서 하품 소리가 터져 나왔다.강지연이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얼굴을 찌푸린 채 사무실로 들어왔다.컨실러로도 가려지지 않는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얼굴로 허설아 앞에 걸어온 강지연은 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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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화

허설아는 복잡해진 마음으로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위에서 결정하는 대로 따라야지."권지헌이 강지연 편을 들면 허설아는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허설아는 휴대폰을 꺼냈다."이력서 몇 개 넣어야겠어."안초희가 맞장구를 쳤다."그것도 나쁘지 않아. 설아 씨 경력에 취직 못 할 것도 없잖아."김아림이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내기할게. 설아 씨 괜찮을 거야. 대표님은 분명 설아 씨 선택할 거야."안초희가 물었다."왜?"아무리 허설아가 능력이 뛰어나지만 대표님이 인턴을 감싼다면?게다가 그 여자는 입만 열면 끈적끈적하게 지헌 오빠라고 부르잖아.남자들은 그런 소리에 약해질 지도 모르지.허설아는 멍해졌다.아침에 허민정이 두통을 호소해서 먼저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온 뒤 연희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나서야 급하게 출근했다.아침 내내 팽이처럼 바쁘게 돌아치느라 그제야 아직 밥을 먹지 못했다는 걸 떠올렸다.지금은 온몸이 차가워지고 식은땀이 나며 손바닥이 저릿해졌다.뭐라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강지연이 울면서 조민규를 따라 돌아오는 게 보였다.조민규가 허설아를 보며 말했다."허설아 씨, 잠깐 따라와 봐요."조민규를 따라 대표 사무실로 들어가자 권지헌이 책상 앞에 앉아 손에 쥔 만년필을 돌리며 턱을 괸 채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오늘은 짙은 네이비 바탕에 적갈색 줄무늬가 있는 정장을 갈아입은 권지헌은 기품이 넘쳐보였다.넥타이는 아마 누군가 특별히 골라준 듯한 활기찬 백합 무늬로 단색이나 체크무늬보다 고급스러우면서도 딱딱하지 않았다.권지헌이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조민규 씨는 나가요, 문 닫고."조민규는 옆에 있으면서 필요할 때 허설아를 좀 도와 말이라도 해줄 생각이었다.하지만 이제 허설아에게 행운을 빈다는 눈빛밖에 보내줄 수 없었다.조민규는 몸을 돌려 문을 닫고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권지헌이 고개를 들었다.우두커니 서 있는 허설아는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화장도 하지 않고 립스틱도 바르지 않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고 입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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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화

나쁘지 않은 맛이었다.권지헌의 손이 허설아의 허리에 닿자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쓸어내렸다. 정신을 차린 허설아가 권지헌의 몸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허설아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고양이 울음소리 같아서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권지헌이 귀찮은 듯 말했다."왜 이렇게 문제가 많아?"폐소공포증에 저혈당에 초콜릿 알레르기까지... 다 사소한 문제 같지만 하나하나 심해지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남편이라는 남자는 평소에 신경도 안 쓰는 거야?급히 권지헌 품에서 빠져나온 허설아가 얼버무렸다."조심할게요…… 무슨 일로 절 부르신 거예요?""강지연 일, 어떻게 생각해?"허설아는 잔잔한 호수 같은 권지헌의 눈과 시선을 마주쳤다.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공과 사를 구별하는 태도로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강지연 씨는 우리 회사의 인턴 채용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요.""알겠어, 돌아가."이게 끝이야?이 한마디 물으려고 부른 거야?허설아가 참지 못하고 작게 중얼거렸다."이런 건 사내 메신저나 개인 sns로 물어보셔도 되잖아요." 시간 낭비도 줄이고…… 어차피 권지헌은 허설아를 별로 보고 싶지 않을 테니까.권지헌이 불쑥 말했다."남편이 바람피우는 건 알아?"허설아는 알지 못했다.남편?연민규를 말하는 걸까? 한 번은 연민규와 함께 연희를 데리고 나갔다가 회사 다른 부서 직원을 만난 적 있었다.마침 연민규 프로젝트 고객사 직원이었는데 연희 이름을 듣더니 성이 같다며 연민규가 허설아 남편이라 여겼다. 그 뒤로 연민규와 허설아는 상의 끝에 굳이 해명하지 않기로 했다.허설아는 권지헌이 연민규와 현서를 봤다는 걸 깨달았다.허설아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권지헌은 이미 알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알면서도 참는 거야?권지헌은 억누르고 있던 분노가 다시 타올랐고 허설아를 보는 눈빛이 험악해졌다."네 남편이 바람피운 상대가 네 대학 룸메이트더라."현서, 권지헌도 어디서 본 것 같긴 했다.허설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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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권지헌이 허설아의 턱을 들어 올렸다.검지에 낀 두께가 있는 반짝이는 반지가 허설아의 피부에 서늘하게 닿았다. 권지헌의 말투는 더 차가워졌다."뭘 믿고 나보고 잊으라는 거야?"허설아가 이미 결혼했으니까?권지헌의 손이 허설아의 허리를 꽉 잡아서 움직일 수 없게 했다.허설아는 입술을 깨물었다.알레르기 때문에 팔의 붉은 두드러기가 아직 가라앉지 않아 여기저기 얼룩덜룩하게 키스 자국처럼 남아있었다. 권지헌의 품은 단단하고 따뜻했다. 일이 바빠도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아서 정장 아래 감춰진 탄탄한 근육이 느껴지고 얇은 옷감 너머로 열기가 전해졌다.예전에는 훨씬 더 친밀했던 시간들도 있었다.하지만 지금…… 허설아는 권지헌의 눈에서 증오를 보았다.달처럼 맑고 차가운 눈동자에 온통 허설아의 모습만 비쳤다. 꾹 다문 입술과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매는 마치 신비한 샘물처럼 허설아를 빠져들게 만들었다. 가까이 다가간 허설아는 딸이 권지헌과 정말 많이 닮았다는 걸 깨달았다.특히 눈이 닮아있었는데 부채처럼 길게 뻗은 속눈썹에 짙은 색의 눈동자, 살짝 올라간 눈꼬리 마치 태어날 때부터 진한 아이라인을 그은 것 같았다.권지헌의 쏘아보는 눈빛에 소름이 돋았다.권지헌은 허설아를 미워하고 있었다.이 미묘한 감정을 느낀 순간 허설아의 몸이 가볍게 떨렸고 온몸이 얼음 구덩이에 빠진 것처럼 뼛속까지 차갑게 얼어붙었다.이해할 수 없었다.권지헌이 왜 미워하는 걸까?전에 헤어질 때도 권지헌을 위해 양보한다고 허설아가 순순히 물러난 거잖아?허설아는 코를 훌쩍였다.갑자기 억울해졌다. 허설아를 한 번도 신경 쓴 적 없다고 권지헌이 직접 말한 거였다. 허설아는 자기가 일방적으로 매달려서 시작한 잘못된 관계였기에 헤어지는 것도 자기가 끝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권지헌이 나중에 떠올렸을 때 창피한 기억만 남지 않도록……허설아도 체면이란 건 있으니까.그 생각이 들자 몇 년 동안 마음속에 쌓아뒀던 억울함과 서러움이 한꺼번에 치밀어 올라 권지헌의 품에서 벗어날 힘이 생겨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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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파도가 일렁이듯 오르락내리락했다.허설아는 빨간 끈으로 된 악세사리를 하고 있었는데 끈에 달린 작은 팬던트는 넘실거리는 파도에 반쯤 가려져 있었다. 게다가 이런 표정까지 지으니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까.허설아의 아름다움은 감상할수록 점점 헤어나올 수 없이 빠져들었다. 두어 번 헛기침을 한 권지헌은 물을 마시고 초조한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문 앞에서 기다리던 사람을 들어오라고 했다.디자인팀 총괄 유혜원이 허리를 씰룩이며 들어오더니 권지헌을 보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대표님, 저희 부서에서 새로 나온 디자인 시안입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그래요."사무실 안에는 권지헌이 서류 넘기는 소리만 들렸다.책상 아래 몇 분 동안 웅크리고 있던 허설아는 발이 저려 자세를 바꾸고 싶었다.하지만 권지헌이 다리를 꼬고 있어서 움직일 공간이 전혀 없었다.허설아가 손을 뻗어 권지헌의 종아리를 쿡쿡 찔렀다.권지헌은 무시했다.발이 심하게 저리고 무릎까지 저려왔다.허설아는 아예 손으로 권지헌의 다리를 강제로 벌려서 다리를 꼰 자세에서 다른 자세로 바꿔버렸다.다리를 양쪽으로 벌린 모양새가 되었다.드디어 움직일 공간이 생긴 허설아는 조용히 발목을 주물렀다.권지헌은 아무 반응도 없는 것처럼 계속 디자인 시안을 보고 있었다."이 부분은 디자인 포인트가 없네요. A 프로젝트, 설명 좀 해줘요."유혜원이 재빨리 디자인 컨셉을 설명하기 시작했다.권지헌이 서랍을 열어보았다.조민규가 전에 아침 식사로 준비해둔 개봉하지 않은 빵과 우유를 발견하고 책상 아래로 건넸다. 허설아는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빵과 우유를 빤히 쳐다보았다.멍하니 바라보는데 권지헌의 손가락이 우유를 톡톡 두드리며 빨리 받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허설아가 손에 받아들자 권지헌은 태연하게 손을 거두고 서랍을 닫았다.빵을 뜯는 소리가 좀 커서 유혜원도 들었을 것 같았다. 허설아는 조심스럽게 빨대를 꽂고 우유도 한 모금 마셨다.뭐라도 먹으니 저혈당 증상도 많이 완화됐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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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화

아무리 그래도 그걸 보고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잖아.허설아는 급히 시선을 거두고 책상 밑에서 빠져나오려 했다.빨리 나가고 싶었다.잠시 후 또 누가 올까 두려웠다.하지만 손에 우유 팩을 들고 있다는 걸 잊은 듯했다. 권지헌의 다리를 짚고 일어서는 순간 다른 손에 든 우유가 눌리며 빨대로 뿜어져 나온 우유가 권지헌에게 그대로 튀었다. 다리와 정장 바지에 온통 우유로 범벅이 되었다. 권지헌이 이를 갈며 얼굴을 찡그린 채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허, 설, 아. 뭐 하는 짓이야?"허설아는 허둥지둥 남은 우유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티슈 박스에서 티슈를 뽑아 권지헌에게 튄 우유를 닦아주었다. "죄송해요, 대표님.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권지헌의 옷은 한눈에 봐도 비싸보였다.허설아도 어릴 때부터 귀하게 자랐기에 셔츠와 정장 바지 같은 건 몸에 맞게 입으려면 맞춤 제작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허설아는 머릿속으로 옷들이 얼마나 할지 계산하면서 사과했다.손에 든 티슈로 여러 번 닦아도 진한 우유 냄새가 지워지지 않았다.허설아가 고개를 들었다."대표님, 제가…… 제가 배상할게요."권지헌이 허설아를 빤히 쳐다봤다.허설아가 허둥대며 아무렇게나 닦아댄 통에 닿으면 안 되는 곳을 여러 번 스친 탓에 온몸의 피가 한곳에 쏠리기 시작했다. 권지헌이 낮게 신음했다."일단 나가. 나중에 다시 부를게.""그럼 이 옷은……"권지헌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사무실에 갈아입을 게 있어."허설아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조심스럽게 제안했다."그럼 이 옷은 제가 세탁소에 맡겨도 될까요?"그래야만 배상 금액을 최대한으로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허설아가 떠나지 않자 권지헌은 아예 손을 확 잡아당겨 허설아가 책상 아래에서 계속 보고 있던 그곳에 가져다 댔다."정말 안 갈 거야?"더 있으면 권지헌이 이성을 잃고 무슨 짓을 할지 장담할 수 없었다.허설아의 얼굴이 확 빨개졌다.사무실 문이 열렸다가 홱 닫혔다.사무실 안이 다시 고요해졌다.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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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화

허설아는 권율 그룹 자회사에도 이력서를 넣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그 인사 계정은 마침 조민규가 운영하고 있었다.클릭해 보니 허설아가 구직 앱에 로그인한 시간이 바로 30분 전이었다.권지헌의 굳은 표정으로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그런 거 아니에요. 허설아 씨 팀에 게임 프로젝트 하나 맡기려고 부른 거예요."권율 그룹 계열사들이 개발한 게임이 여럿 있었다.그중 한 게임은 아직 기획안 단계였지만 학교 다닐 때 허설아가 하던 게임 스타일과 비슷해 보였다.권지헌은 허설아가 여전히 그런 게임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사업가로서 이익을 고려했을 때 권지헌은 이런 기획안을 허설아에게 맡기면 문제없을 거라 판단했다.이력서는 어떻게 된 일일까. "직원에게 이직할 권리는 있지만 지금 퇴사하면 연말 보너스는 없어요. 알아서 판단하라고 전해요.""알겠습니다, 대표님."조민규는 문 앞까지 가서야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었다.매번 권지헌에게 업무 보고할 때마다 혹시 실수라도 할까 봐 조마조마했다. 조민규는 허둥지둥 돌아가 허설아에게 걱정말고 일하라고 전했다. 권지헌이 한 말은 약간 미화해서 얘기했다. 능숙한 비서인 조민규는 상사의 명령은 적절히 미화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대표님이 설아 씨 능력을 높게 보시니까 열심히 해요. 연말 보너스도 적지 않을 거예요! 회사에 불만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요."허설아가 그제야 떠올랐다.확실히 이력서를 넣긴 했었다."잘못 클릭한 거예요. 전 이직할 생각 없어요."조민규가 떠난 뒤에도 허설아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머릿속은 온통 실수로 권지헌에게 우유를 쏟은 일뿐이었다.허설아는 고개를 돌려 안초희에게 물었다."초희 씨, 플로리스 옷 드라이클리닝 돼?"전통 있는 이탈리아 수작업 브랜드라 안초희도 플로리스 옷을 몇 벌 산 적 있었다."안 돼. 플로리스의 옷은 더러워지면 브랜드로 직접 보내서 세탁해야 해. 왕복 국제 배송비만 200만 원 넘으니까 보통은 안 빨지. 난 몇 벌 모아서 한꺼번에 세탁 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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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잠시 생각하던 조민규는 허설아가 괜찮은 선택 같았다. 예쁘장하고 일 처리는 깔끔하며 말수도 적고 시시비비에 끼어들지도 않았다.고객들에게도 익숙했다. 두 협력사와 직접 접촉한 적은 없었지만 전에 프로젝트 중 허설아가 맡은 것도 있었다.'허설아를 보내면 적당하겠어!'조민규는 급히 손에 든 커피를 내려놓고 종종걸음으로 권지헌에게 승인받으러 갔다.조민규를 가장 골치 아프게 하는 것이 바로 권지헌의 파트너였다.권지헌은 미혼이고 비서팀에도 적합한 인물이 없었다.정말 예쁘고 업무 능력도 좋은 사람이 있어도 전부 권지헌과 술자리에 나가기 싫다고 했다.농담이 아니라 그들은 정말 일을 더 사랑했다.조민규가 권지헌 앞에서 술자리 파트너에 대해 언급했다."대표님, 파트너가 필요하실 텐데 허설아 씨는 어떠세요?"권지헌이 담담하게 말했다."마음대로 해."권지헌이 동의하자 조민규는 한시름 놓고 허설아를 찾아갔다.자리에 앉아있던 허설아는 미간을 찡그렸다.술자리?조민규가 갑자기 왜 이런 걸 시킬 생각을 했을까?안초희가 위로했다."우리 남편 회사도 참석하는데 그냥 식사 자리야. 형식적으로 가서 사인만 하고 밥 좀 얻어먹고 나오면 돼."업계에서 술자리는 자주 있는 편이었다. 동종 업계끼리 경험을 교류하고 협력 기회를 찾고 서로 얼굴 익히고 명함 교환하는 사교 모임이었다.강지연이 지나가며 허설아를 힐끗 쳐다봤다."설아 언니, 설마 이 차림으로 갈 건 아니죠? 풉, 너무 쪽팔릴 것 같아요."강시우의 찔러 물어본 적 있는 강지연은 허설아 집안이 파산한 것도 알고 있었다.사무실에서 허설아를 볼 때마다 허설아가 입은 옷은 몇 년 전 철 지난 스타일이거나 몇만 원짜리 인터넷 쇼핑몰 제품이었다.보기만 해도 싸구려 같았다.강지연이 조민규에게 허설아를 추천한 것도 지금 연회 참석할 만한 제대로 된 옷이 없을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말을 마친 강지연은 커피잔을 들고 인턴 자리로 돌아갔다.전에 남편 따라 몇 번 가본 적 있는 안초희는 룰을 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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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화

"왜 술을 안 마셔? 어느 회사야?"말하던 남자의 손이 노출된 허설아의 등 쪽으로 다가왔고 닿지도 않았는데 허설아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허설아가 옆으로 피하며 샴페인을 들고 말했다."권율 그룹 마케팅팀입니다. 제 명함……"핸드백을 열기도 전에 남자가 막았다."에이, 필요 없어. 난 자기가 직접 자기소개하는 게 더 좋아. 명함은 그냥 종이 쪼가리일 뿐이잖아."허설아가 고개를 들자 상대의 시선이 가슴에 꽂혀 있었고 노골적인 눈빛이 일렁거렸다. 가슴 쪽이 노출된 것도 아닌데 박윤수는 얇은 원피스를 꿰뚫어 보기라도 할 듯 허설아를 빤히 쳐다봤다.'마케팅팀이면 그냥 말단 직원이잖아.''나중에 돈 좀 주면 해결할 수 있겠네.'기분 좋게 해주면 잠깐 스폰해주며 데리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질리면 내치면 되고 박윤수는 여자한테 후했다.박윤수는 술을 마시면서도 시선은 계속 허설아의 얼굴을 떠나지 않았다.멀리서 봤을 땐 등이 드러난 하얀 실크 새틴 원피스를 입고 있는 허설아가 마치 우아한 백자 꽃병 같아 집에 가져가서 장식품으로 두고 싶었다.가까이 다가가 보니 얼굴, 특히 두 눈이 더욱 혼을 빼놓을 듯 황홀했다. 차갑고 고혹적인 미인이었다.박윤수가 재촉했다."자기소개 안 해? 우리 앉아서 천천히 얘기하자."허설아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마음이 불안했다.이런 때 이런 사람을 만나는 건 좋은 일이 아니었다. 지금 가버리면 상대에게 허설아를 헐뜯을 기회만 줄 뿐이고 나중에 일이 커지면 아무 일 없었다 해도 일자리와 체면을 잃는 건 허설아였다.약자는 발걸음 내딛기도 힘든 사회였다.허설아는 신경 쓰는 게 너무 많았고 예전처럼 거리낌 없이 화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그때는 뒤에 아빠가 버텨주고 있었지만 지금은 허설아 뒤에 아무도 없었다.허설아가 쓴 웃음을 지으며 씁쓸한 기분을 삼키며 자기소개를 하려던 찰나, 갑자기 누군가 체온이 남아 있는 재킷을 걸쳐주었다. 옆에 다가온 남자는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무심하게 행동했다.남자가 느긋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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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화

"그렇군요. 두 분이 참 잘 어울리시네요."권지헌은 미소를 지을 뿐 대꾸하지 않았다.허설아가 막 술을 든 순간, 마주 오던 웨이터가 실수로 술을 쏟았다.레드 와인이 하얀 실크 새틴 원피스에 쏟아져 유난히 눈에 띄었다.권지헌의 눈빛이 멈칫했다."잠시 실례하겠습니다."권지헌은 바로 허설아에게 걸어갔다.박윤수 마음속에 남아 있던 욕망도 쏟아버린 술 한 잔과 함께 사라졌다. 박윤수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다행이야.''방금 선 넘는 행동을 하지 않아서.'권지헌이 다가가 물었다"무슨 일이야?"웨이터가 눈을 피하며 더듬거렸다."죄송합니다, 여사님. 옷을 갈아입을 곳으로 모셔다드릴게요."전에 누군가가 모임에서 이 여자를 찾아 술을 쏟으라며 돈을 줬었다. 배상을 요구하면 의뢰인이 돈을 내기로 하고 추가로 팁을 400만 원 더 얹어주겠다고 했다.돈에 마음이 움직인 웨이터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의뢰인은 허설아에게 갈아입을 드레스가 없을 거라며 장담했다. 허설아가 한숨을 쉬며 권지헌을 보았다."그럼 전 먼저 돌아갈까요?"갈아입을 드레스가 없었다.이게 마지막 한 벌이었다.권지헌이 어딘가 수상쩍은 웨이터를 예리한 시선으로 훑어보고는 허설아의 손목을 잡았다."따라와."위층에 권지헌이 예약한 방이 있었다.엘리베이터 안에서 권지헌은 전화를 걸어 원피스 한 벌 가져오라고 했다.방에 들어간 허설아는 약간 놀란 듯했다. 권지헌 정도면 프레지덴셜 스위트를 예약해야 하는 거 아냐?그냥 평범한 킹사이즈 방이었다.허설아가 멍하니 서 있자 권지헌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 방 기억 안 나?"이 방은 전에 두 사람이 나와 놀 때마다 머물던 방이었다.허설아는 잠자리에 좀 까다로웠는데 피부가 예민해서 침구가 좋지 않으면 두드러기가 났고 학교 근처에는 규모가 크고 깨끗한 호텔이 이곳뿐이었다.시간이 지날수록 허설아는 이 방의 채광이 가장 좋다는 걸 발견했다.매번 외박할 때마다 눈을 뜨면 햇살 속에 서 있는 권지헌을 볼 수 있었다.허설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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