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내 아이를 모르는 그가 내 상사라니!: Chapter 411 - Chapter 420

550 Chapters

제411화

권지헌은 이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나중에 연희가 내 뒤를 이을 수 있을지 보고 싶어."권지헌은 연희를 자신의 후계자로 키울 생각인 게 분명했다. 잠시 놀란 허설아가 다시 생각해보니 연희만 원하면 어려울 건 없을 것 같았다.저녁을 다 먹은 뒤 권호성이 권지헌한테 전화를 걸었다. 집 안에 권지헌 부부와 짐을 정리 중인 도우미 몇 명뿐이라 권지헌도 거리낌없이 스피커폰으로 받았다."지헌아, 지민이 쪽에 좀 일이 생겼으니 네가 한번 다녀와라.""안 가요.""……뭐라고?"권지헌이 꿈쩍도 하지 않고 요지부동으로 말했다."할아버지, 권씨 집안 자식이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에요. 제가 예전에 겪었던 머리 아픈 일은 지민이보다 훨씬 더 많았어요. 그래도 할아버지나 아버지한테 도움 바라지 않았어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전 지민이를 믿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 지민이도 할 수 있을 거예요."권호성이 잠시 침묵했다."큰형인 네가 동생 좀 챙겨주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할아버지가 직접 다녀오시는 건 어떠세요? 그게 훨씬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제가 티켓 끊어드릴까요?"권호성은 속이 뒤집어져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집 안 도우미들은 감히 아무 말도 못 하고 하나같이 고개를 숙인 채 권지헌과 허설아 앞을 지나쳐 갔다.허설아가 권지헌을 보며 물었다. "만약 지민 씨한테 진짜 무슨 일이 생겼으면 어떡해?""할아버지가 왜 프랑스에 있는 지호한테 연락 안 했을까?"맞는 말이었다. 권지민의 친형인 권지호에게 연락하지 않고 권지헌한테 가라고 했다?! 방금 권호성이 사실대로 말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권지민에게 일이 생긴 게 아니라 권정민 쪽에 권지헌이 직접 가야 수습할 수 있는 다른 사고가 났을 것이다. 권호성이 사정을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 그저 영문도 모르는 권지헌을 보내서 뒷수습을 하게 할 생각이었다. 허설아는 은근히 짜증이 치밀었다. 권호성은 한 번도 권지헌을 안쓰럽게 여긴 적이 없는 듯했다. 집안의 기둥이니 당연히 모
Read more

제412화

허설아는 맹세코 그런 뜻이 아니었다.그냥 단순하게 나이도 많은 권호성이 한밤중에 무슨 일이 있어서 전화했을 것 같아서였다.노인을 한밤중까지 기다리게 하자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허설아가 손목에 힘을 주며 권지헌의 가슴팍을 짚고 재촉했다."먼저 전화하고 와. 할아버지가 원하는 게 뭔지 듣고 와도 되잖아." 권지헌이 꼼짝도 않자 허설아가 발로 툭툭 찼다. 세면대에 걸터앉은 자세라 권지헌 허벅지밖에 닿지 않았다.권지헌이 고개를 숙였다. 깊고 그윽한 눈매 위로 짙은 속눈썹이 부채처럼 드리워졌다. 박희수 유전자를 이어받아 권지헌의 속눈썹은 연희한테도 그대로 전해졌다.속눈썹이 짙은 남자는 호르몬이 왕성한 경우가 많아서 눈썹과 수염에 체모까지 다 무성하게 자랐다.권지헌도 하루만 면도를 하지 않으면 까슬까슬하게 자라났다. 허설아가 손을 뻗어 턱을 만졌다.새로 자라난 수염을 만지자 손끝이 까끌거렸다. 허설아가 또 발로 톡 찼다."전화하고 와. 돌아오면 면도 해줄게."권지헌의 손바닥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허설아의 발목을 감쌌다.요즘 너무 바빠서 겨우 좀 붙었나 싶던 살이 또 빠져서 발목에는 살이 없었다. 손으로 잡으면 발꿈치 뼈가 다 느껴졌다.권지헌이 고개를 들어 허설아를 봤다."밤에 무슨 면도야."어차피 내일 아침에 또 해야 했다.아침저녁으로 면도할 여유는 없었다."그럼 내일 아침에 해줄게.""일어날 수 있겠어?"허설아가 살짝 짜증이 났다. '왜 이렇게 말이 많고 꾸물거리는 거야!' "싫으면 말고."허설아는 이렇게 삐칠 때면 유난히 예뻐보였다. 눈매와 눈썹 끝에는 성난 기색이 서려 있고 입술은 살짝 내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일부러 도발한 권지헌을 만족시켰다. 권지헌이 가볍게 웃으며 몸을 굽혀 허설아 뺨에 입을 맞췄다."잠깐만 기다려."권지헌은 허설아가 부리는 무심하면서도 사소한 투정이 좋았다. 마치 털을 세운 고양이 같아 살살 달래주면 그만이었기에 권지헌의 마음을 채워주기에 충분한 투정이었다. 욕실 문이 열렸다 닫혔다.
Read more

제413화

업계 밖 사람들도 전에 서풍이 그린 그림을 본 적 있지만 그게 서풍 작품인줄 지금 알았다고 했다. 서풍의 인지도는 허설아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았다.의뢰 메시지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허설아는 인내심 있게 훑으면서 익숙하고 관심 있는 의뢰 메시지 몇 개를 골라 의뢰인과 일정을 조율하고 수락했다.의뢰 메시지를 처리하고 허설아는 요즘 틈틈이 그린 그림들을 업로드했다. 서풍이 꾸준히 인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허설아가 진심으로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했다.쉬는 시간마다 그림을 그리고 스케치를 구상하고 새 그림을 완성해서 업로드했다.그림 한 장 한 장 늘어갈 때마다 실력이 느는 게 보였다. 팬들은 재능도 있는데 노력까지 하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 했다. 그림을 업로드한 뒤 허설아는 로그아웃했다. 태블릿을 열고 방금 수락한 의뢰의 스케치를 그리기도 전에 권지헌이 아래층에서 올라왔다.온몸에 눈이 쌓여 있었다.얼마나 오래 서 있었는지 눈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허설아가 일어나려 하자 권지헌이 말렸다."가까이 오지 마, 몸이 차가워. 씻고 올게."허설아가 시간을 확인했다.한 시간 동안 전화했으니 춥지 않으면 이상했다.침대에서 일어난 허설아는 아래층 부엌으로 내려가 가스레인지를 켰다. 따뜻한 생강차를 끓여 권지헌에게 줄 생각이었다.도우미가 인기척에 바로 일어나서 나왔다."사모님, 왜 직접 내려오셨어요? 제가 하면 돼요.""괜찮아요, 지헌이한테 줄 생강차 좀 끓이려고요. 금방 올라갈게요."도우미는 허설아가 요리에 전혀 서툴지는 않은 걸 발견하고 옆에서 거들었다.허설아가 냉장고를 열면 도우미가 바로 정갈하게 잘 정리해 주었다. 생강차를 다 끓이자 권지헌이 머리를 닦으며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따뜻한 바닥 보일러 덕분에 권지헌은 실크 잠옷 차림으로 내려왔다.허설아가 생강차를 건넸다."마셔. 안 그러면 내일 감기 걸려."도우미가 바로 옆에서 말했다."대표님, 사모님께서 내려와서 직접 끓이신 거예요. 제가 도와드리려고
Read more

제414화

어젯밤에 허설아 본인이 직접 깎아주겠다고 했었다. 허설아가 권지헌을 흘겼다.늦게 일어났을 뿐 안 깎아준다는 것도 아닌데.연희가 물었다."엄마, 아빠 왜 여기로 이사했어요?""앞으로 우리는 여기 살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저기 집에 사는 거야. 이따가 엄마가 연희 방 보여줄게."연희가 눈을 깜빡거렸다."우리 같이 살아요?""그럼, 연희는 아빠, 엄마랑 같이 살 거야. 앞으로 여기 있고 싶으면 여기 있고 할아버지, 할머니 보고 싶으면 큰집 가면 되는 거야.""외할머니는요?"허설아가 1층의 방 하나를 가리켰다."외할머니 방은 저기야. 오늘 외할머니는 왜 식사하러 안 오셨어?" 그 말에 연희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외할머니 아침 일찍 큰곰 할머니랑 같이 나갔는데 나는 안 데려갔어요."도우미가 다급하게 설명했다. "큰 사모님과 허 사모님은 연극 보러 가셨어요. 꼬마 아가씨는 아직 이해하기 어려울 거라고 안 데려가신 거예요."허민정은 연극을 무척 좋아했다. 젊을 때 연동근과 자주 연극보러 다녔다.그때도 허설아는 데려가지 않았었다.박희수는 예전에 연극단 단원이고 권정우가 예술을 좋아하긴 했지만 연극은 즐기지 않았다.마침 취향이 맞는 사람을 만난 데다 30년 만에 다시 하는 헌정 공연에 허민정과 박희수는 신나서 보러 갔다.허설아가 따라 웃었다."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도 전에 연극 보러 가실 때 엄마 안 데리고 갔어." 연희는 연극 보러 가고 싶었지만 집에서 아빠, 엄마랑 같이 있는 것도 좋았다.권지헌이 휴대폰 메시지를 확인했다."전문 경호 팀 연락해 뒀어. 오늘 너한테 연락갈 거야."허설아가 잠깐 멈칫하다가 답했다."경호팀 필요한 거 어떻게 알았어?""어젯밤에 자면서도 물건 걱정하는 잠꼬대를 하더라."권지헌이 어이없다는 듯 허설아를 봤다."힘내, 허 대표. 나랑 딸 먹여 살리길 기다리고 있어.""좋아."권지헌은 문을 나서기 전에야 며칠 집을 비운다는 말을 꺼냈다."삼촌한테 일이 좀 생겨서 며칠 다녀와야 해. 무슨 일 있으
Read more

제415화

허설아가 눈을 부릅떴다."잊었으면 너도 같이 잊어버렸겠지."권지헌이 피식 웃으며 허설아 손에서 면도기 날을 가졌갔다. 허설아가 들고 있다가 다치지 않도록 말이다. "물어봤어, 아침에 면도하다가 실수한 거라고 했더니 더 말이 없었어. 다만 면접 끝나고 전동 면도기를 선물받았지."허설아가 날카롭게 물었다."취업 설명회 여자가 준 거야?""응." 권지헌이 담담하게 인정했다."그런데 나 혼자 면도할 땐 베이지 않는데 여자친구가 실수한 거라고 했어.""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나를 바보로 생각하지 않겠어?" "아니야."그때 권지헌의 표정이 지금보다도 더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누가 봐도 얼굴에 가득 흘러넘치는 행복에 감탄했을 것이다. 허설아가 익숙하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권지헌은 아주 어릴 때 생각이 났다. 언젠가 본채에 들렀을 때, 박희수가 권정우 턱수염을 정리해 주는 걸 본 적 있었는데 그 눈빛이 얼마나 부드러웠는지 몰랐다.문밖에 권지헌이 있는 줄 몰랐던 박희수가 투정 부리듯 말했다."면도할 줄도 몰라? 무슨 마가 꼈는지 집안의 면도기란 면도기는 죄다 고장이야. 가만히 좀 있어 봐."권정우는 아무 말 없이 박희수를 바라보며 웃었다.웃으며 입꼬리가 움직인 탓에 면도날에 살짝 베이고 말았다.박희수가 허둥지둥 휴지와 알코올을 찾으러 갔지만 권정우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괜찮아. 밖에 나가서 우리 마누라가 한 거라고 하면 부러워 죽을 거야."그 모습이 어린 권지헌에게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런 게 결혼 생활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 면도기를 선물했던 여자는 권지헌이 입꼬리가 한껏 올라간 채 다정한 눈빛으로 신난 기색을 숨기지 못하며 여자 친구 얘기하는 걸 보게 되었다. 그 순간, 권지헌은 면도기가 부족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마음속에 피어오르던 감정이 바로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지금, 권지헌은 그토록 바라던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다. -출근하자마자 민지강이 다가왔다."대표님, 어젯밤에 아무 문제 없
Read more

제416화

태풍이 휘몰아치자 도시 전체가 비바람에 휩싸였다.강성시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데다 마침 이번 태풍 경로 중 풍속이 가장 강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호텔 측은 일찌감치 투숙객들을 1층으로 대피시켰다.내려가보니 로비에 사람이 가득했다.저마다 태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분주하게 움직였다.서은석도 로비로 내려왔지만 송원영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서은석은 프런트로 가서 송원영에게 대피 안내를 했는지 물었다.프런트 직원은 객실 전화를 해봤지만 받지 않고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했다. 태풍 때 투숙객에게 사고라도 나면 호텔도 책임을 피할 수 없는데 이미 엘리베이터까지 멈춰 있었다.80층이 넘는 객실까지 걸어 올라가는 건 생각만 해도 불가능한 일 같았다.서은석은 프런트 직원을 난처하게 하지 않았다."제가 올라가볼게요. 올라가서 전화 드릴게요.""손님, 저희 직원과 함께 가시죠."초특급 호텔인지라 손님을 혼자 계단으로 올라가게 둘 수는 없었다. 기본적인 서비스는 갖춰야 했다.서은석이 현지 말투로 차분하게 말했다."직원분들이 올라가면 너무 오래 걸려요. 무슨 일 생기면 제가 연락드릴게요. 그 분 방 카드키 주세요."호텔 매니저가 망설였다.서은석은 매니저가 무슨 걱정하는지 알고 있었다. 휴대폰에서 송원영과 찍은 사진을 꺼내 보여주며 말했다. "방에 묵은 사람과 친구예요. 이것도 안 되면 권 대표한테 확인해도 좋아요." 이 호텔은 마침 권지헌이 투자를 해서 지분이 있었다.매니저도 이전부터 서은석을 알고 있던 터라 결국 카드키를 건넸다.부디 송원영에게 아무 일이 없기를 바랐다.단숨에 한참 높이 올라간 서은석이 비상구 복도에 서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겨울인데다 강풍까지 부는데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건물 전체가 또 강풍에 흔들렸다.서은석이 전송한 메시지는 여전히 답장이 없었다. 서은석도 어디서 그런 힘이 나서 올라갔는지 알 수 없었다. 두 다리는 감각을 잃은 것 같았고 방 문 앞에 도착해서는 거의 무의식적
Read more

제417화

"물 좀 마셔요.""고마워."물을 마시니 확실히 나아졌다. 서은석이 물을 삼키고 담담하게 말했다."그냥 운동했다고 생각해. 너무 신경 쓰지 마." 창밖에 번개가 치고 파도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해변가 호텔이라는 홍보 문구가 무색하게 태풍이 오면 오히려 위험이 눈앞에 들이닥쳤다.송원영은 건영시 사람이라 매년 태풍을 몇 차례씩 겪었다.그런데 이번처럼 강한 태풍은 처음이었다.무엇보다 송원영 마음속에도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 모든 것이 정성껏 쌓아올린 것들을 전부 무너뜨리고 뒤죽박죽으로 뒤엉키게 했다. 서은석은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태풍 정보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심각하진 않아. 오늘 밤만 지나면 괜찮을 거야."송원영이 서은석 옆에서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왜 이렇게까지 신경 써줘요?"서은석이 잠깐 멈칫했다.어릴 때부터 서은석은 늘 기분 내키는 대로 살아왔다. 본인이 원하는 즐거운 일은 뭐든 할 수 있었다.바람처럼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권지헌은 규칙이라는 감옥 같은 틀에 갇힌 것처럼 뭐든 권호성이 정한 요구에 맞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나아갔다. 하지만 서은석은 달랐다.무엇이든 선만 넘지 않으면 집안에서도 늘 허락해 주었다.서은석은 목에서 여전히 진한 피비린내가 났지만 꾹 참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집에서 여섯째라 굳이 가업을 물려받지 않아도 되고 가문을 일으키는 것도 내가 아니어도 돼. 그래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거야."그 말은 이렇게 하는데 다른 이유는 없다는 것이었다.송원영의 시선이 오랫동안 서은석 얼굴에 머물렀다.솔직히 말하면 서은석은 전형적인 바람둥이 같은 얼굴이었다. 누구한테나 장난기 가득하고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질 줄 몰랐다. 주변 여자들한테도 항상 다정했다.서은석 같은 남자라면 집안 배경이 아니어도 수없이 많은 여자들이 줄을 설 것이다.주변에 여자가 없을 리도 없었다.전에 서은석이 사귀자고 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송원영은 거절했다.서은석의 순간적인 충동일 뿐 진심으로 사귀려는
Read more

제418화

서은석의 표정은 진지했다.농담은 아닌 것 같았다.눈앞에 있는 남자의 얼굴에 진심이 써 있었다."나를 좋아해달라는 건 아니야. 그냥 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근데 왜 꼭 선을 봐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네?"송원영은 빨리 시집가고 싶어서 안달하는 타입처럼 보이지 않았다.이 바닥에서 남은 인생을 남편 덕으로 호강하기 위해 결혼에 목맨 여자들을 서은석은 잘 알고 있었다. 그중에 송원영처럼 권율 그룹에서 출근하며 자료 복사 심부름을 시켜도 군소리 없이 하는 사람은 없었다.송씨 집안 딸이라기보다 성격 좋은 직장인처럼 보였다.가끔 선을 넘었을 때만 약간 반항할 뿐이었다.송원영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창밖에는 비바람이 그칠 줄 몰랐다. 바다 위에서는 파도가 암초에 부딪히며 세차게 부서졌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소리만 세상을 가득 채웠다. 호텔 복도에는 바람 소리가 울부짖듯 휘몰아쳤다.머릿속이 윙윙 울리고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송원영이 쓴웃음을 지었다."꼭 맞선을 봐야 하는 게 아니라 내 목적을 이루는 걸 도와줄 사람이 필요한 거예요.""목적이 뭔데요?"서은석이 캐물었다. 건물이 흔들리면서 송원영이 저도 모르게 서은석 쪽으로 몸이 기울었고 받쳐주듯 잡는 손길에 안겨버렸다. 남자의 향수 냄새가 송원영을 감쌌다. 정담이라는 이름의 남성 향수였다.따뜻한 체온이 몸을 감싸고 시원한 향수 냄새가 전해지자 송원영은 심장이 쿵쿵 빠르게 뛰었다.서은석의 손이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손바닥의 온기가 온몸의 신경을 뜨겁게 자극했다. 서은석은 여전히 집요하게 물었다. "목적이 뭔데?"송원영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말…… 말하고 싶지 않아요.""아." 서은석이 말끝을 흐렸다. 방금 계단을 뛰어 올라온 탓에 목소리가 심하게 잠겨 있었는데 오히려 더 허스키하게 들렸다. "내가 맞춰볼까? 집안에 오빠나 동생보다 낫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거지?"너무 무서운 사람이었다.어떻게 단번에 아무도 몰랐던 속마음을 맞춰버리는 걸까! 서은석이 소파에
Read more

제419화

조건은 충분히 솔깃했다.서은석 본인도 자기가 무슨 나쁜 늑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송원영이 눈을 몇 번이나 깜빡였다.서은석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헤어질 것을 전제로 한다는 건 서은석이 지금 그냥 심심해서 잠깐 가지고 놀겠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송원영이 원하는 조건을 충족시켜 주면서 말이다. 송원영은 서은석의 말을 알아들었다고 자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어차피 서로 이용하는 거라면 송원영도 망설일 게 없었다.단 하나, 진심만 들키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마음이 복잡해진 송원영은 알겠다는 답을 들은 순간 서은석 얼굴에 번진 미소를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서은석이 품에 안긴 송원영을 꽉 끌어안았다."일단 쉬어. 내일 태풍이 지나가면 같이 돌아가자."-별채에 돌아오니 박희수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거실에는 같은 유니폼 차림의 사람들 여러 명이 미소 띤 얼굴로 허설아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사모님, 안녕하세요."박희수가 손짓했다."이리 와봐. 내가 찾아본 연희 돌봐줄 케어팀이야, 직접 보고 남길 사람 골라. 이게 첫 번째 팀이야."허설아는 손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에야 연희를 안아 무릎 위에 앉혔다."연희는 누가 마음에 들어?" 박희수가 고른 팀이라면 분명 검증을 거쳤을 것이다. 어차피 실력은 어느 정도 수준 이상으로 다 비슷할 것이다. 이력서만 봐도 눈앞의 팀원들 모두 훌륭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허설아는 결정권을 연희한테 넘겼다.일부는 연희가 면접 보는 것 때문에 더 긴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반대로 아이일 뿐이라며 여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아이 하나 달래는 거야 식은 죽 먹기였다.연희를 기분 좋게 해주는 건 어렵지 않았다.연희가 곰돌이를 안고 팀원들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곰돌이가 갑자기 버둥거리며 육아 도우미 한 명한테 달려들었다.도우미가 바로 피하더니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어색하게 연희를 봤다."죄송해요, 아가씨."연희가 곰돌이를 부르자 바로 꼬리
Read more

제420화

12월의 파리는 바람이 차갑고 비가 잦았다.비행기에서 내린 허설아는 자연스럽게 패딩을 여몄다.공항 출구를 나서자마자 기다리고 있는 권지헌이 눈에 들어왔다.박희수가 허설아가 탑승한 항공편 번호를 권지헌에게 알려줘서 마중 나오게 한 것이었다.외국인들 사이에서 키가 압도적이지는 않았지만 백인들 중 드문 동양인 얼굴이라 그래도 눈에 띄었다.검은색 롱코트를 입고 서 있는 권지헌은 마치 조각상 같았다. 같은 비행기에 탔던 옆자리 승객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남편분이 혹시 모델이에요?""아니에요."대학교 때 촬영팀이 건영시에 와서 캠퍼스 씬 촬영을 한 적 있었다. 권지헌을 눈여겨본 캐스팅 매니저가 한 역할 맡아보라며 권했다. 학생 입장에서는 마음이 흔들릴 만한 솔깃한 조건들이었다. 하지만 권지헌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허설아는 이번 기회에 단숨에 스타가 될지도 모르는데 왜 시도해 보지 않냐며 물었다. 지금도 그때 권지헌의 시니컬한 표정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마치 우스운 얘기라도 들은 것처럼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차갑게 웃었다.지금 생각하면 그때 권지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어릴 때부터 권정민 같은 사람을 자주 봐왔으니 연예계의 황당한 일들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 명예도 돈도 부족하지 않은 권지헌이 화려해 보이기만 하는 세계에 흔들릴 이유가 없었다.권지헌이 허설아를 발견하고 성큼성큼 걸어왔다.눈에는 감출 수 없는 기쁨이 어려 있었다."어떻게 왔어?""파리 구경하고 싶어서 왔지."권지헌은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온 채 더없이 피곤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허설아가 핀잔을 줬다."며칠 동안 잠 안 잤어?""몇 시간씩 자긴 했는데 일이 너무 많아서 눈 감기 무섭게 깨워서 말이야."공항을 나와 차에 오르고 나서야 권지헌은 허설아에게 일어난 일들을 설명했다."삼촌이 오고 나서 몇 군데 로케 촬영을 하고 밤에 술을 마셨대. 촬영팀에 남자 배우가 여자 배우와 실랑이를 하다가 실수로 밀어서 물에 빠트렸대. 그런데 그 여자
Read more
PREV
1
...
4041424344
...
55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